과학기술인연합이란 곳에서 퍼왔셈
이름
구경꾼 (2005/12/02, Hit : 605, Vote : 0)
제목
PD수첩 탓말고 과학자사회가 나서야 한다
PD수첩과 황우석 교수팀과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PD수첩은 황우석 교수팀으로부터 5개쌍의 배아줄기세포와 모근세포를 받았고, DNA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모 회사에 테스트를 의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개쌍에 대해서는 판독불가능, 1개쌍에 대해서는 배아줄기세포와 모근세포의 DNA 불일치 결과를 얻었다는군요. PD수첩은 1차 검증결과가 Science에 보고된 내용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만큼 사전에 황우석 교수팀과 합의한 대로 2차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황우석 교수팀은 PD수첩 쪽에서 의뢰한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2차검증에도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PD수첩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비롯 복수의 해당 분야 전문 과학팀들에게 1차 검증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DNA 검사는 상당히 자리를 잡은, 표준화된 기법으로 일반적으로는 검사 방법, 검사 실행 및 결과 해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오랜 공방이 손쉽게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DNA검사가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외로 논란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험과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과학 실험에서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얼핏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경우도 더 집요하게 파고 들면 상반된 해석들이 제기될 여지가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단지 표준화된 규칙들을 잘 익히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축적된 암묵적 지식과 숙련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또 그 실험이 설계되고 진행되는 국지적 맥락 내에서 특유한 잠정적 기준들, 이해 혹은 과학적-실용적 목적들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애초 주어진 맥락을 떠나 다른 맥락으로 옮겨가면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PD수첩과 황우석 교수팀 사이의 진실공방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정작 이제까지 이미 드러난 문제점들은 별 것도 아닌 듯 치부되거나 보다 더 중요한 의제들은 제대로 토론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 올까 두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문제는 과학에 맡기고 PD수첩은 당장 방송 중단하고 찌그러지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제대로 된 대응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과학에 맡겨라"라는 얘기가 그저 "연구에 문제가 있었다면 1-2년 안에 허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내버려 두라"라는 류의 주장이라면 과학에 대해 지극히 나이브한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료과학에서는 실험의 반복이 쉬운 일이 아닌데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새로운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거나 이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학자가 집요하게 황 교수팀의 결과를 파고 드는 것이 아닌 한 설사 허위가 있었더라도 1-2년 안에 쉽게 밝혀지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황우석 교수팀 구성원중 두세명이 연구의 허위 가능성을 제보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아, 그럼 지금부터 이제까지의 모든 논란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과학이 밝혀줄 것입니다. 궁금한 분들은 향후 2-3년 동안 Science, Nature, Cell, Nature Biotechnology 혹은 Stem Cell 같은 저널들에 게재되는 논문들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얼런지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자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표적인 "과학자단체"들이 나서야 합니다. 과학, 공학,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사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과학자.학술단체들이 존재합니다. 우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포괄하는 "대한민국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ROK)"이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Korean Academy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공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과 "대한민국의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도 있지요. "대한의학회 (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도 있습니다. 이외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Korea Feder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Societies)"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Korean Federation of Women's Science and Technology Associations)"도 존재합니다. "의료과학자"만의 조직은 아니지만 "대한의사협회(Korean Medical Association)"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과학자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만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서조차 비판이 제기되어 왔기는 합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과학이 어찌되건 대학이 어찌되건 장관자리에나 관심있는 원로 교수들이 노니는 곳이라는 싸늘한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젊은 과학.공학자들은 이들 단체들이 원로 혹은 장년층 과학.공학자들의 친목 모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도대체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문을 자주 제기하곤 합니다. 허나 그러한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므로 이 정도로 하고요.
중요한 것은, 이들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은 과학자사회 구성원들의 이익 대변 외에도 <과학자사회, 정부, 산업체 그리고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직하고도 신뢰할만한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해줘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이들의 그와 같은 매개자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학, 공학 혹은 의학 관련 사안들이 대두될 때 논란이 제기될 때 이들이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사회 속에서의 책임있는 과학자사회>의 위상을 스스로 허무는 것인 동시에 결국은 과학자사회의 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나서야 할런지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98년 경희대의료원팀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혔을 때 비단 윤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의 측면에서도 BBC 등 외국의 언론들과 외국의 과학자들은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이에 대한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생명복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고, 이는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보다 차분하게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경우는 좀 다릅니다. 경희대의료원팀은 실험 결과를 논문 형태로 보고하지도 않았으나 황우석 교수팀은 Science에 논문을 제출했고 또 받아들여져서 이미 출판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매매 난자의 사용, 연구원 난자제공 여부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연구 허위 가능성에 대한 내부 제보자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갈 수록 논란이 확산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싫든 좋든 DNA 검사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자사회가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한의학회 등은 공동으로 위원회를 신속히 구성하고 DNA 검사 결과에 대한 리뷰 등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허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후 1)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실천이 인체를 활용하는 연구에서의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배하며 이루어졌는지; 2) 문제가 있었다면 과학자사회 차원에서 어떠한 대응이 필요한지; 3) 우리나라 대학, 의료 및 연구기관들에서의 연구윤리 교육 및 지침 준수 실태는 어떠한지; 4)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제도적.정책적 개선이 필요한지; 또한 5) 정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현장 과학.공학.의학자 및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가운데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큰 연구의 경우 어떠한 연구범위, 연구지침과 규제가 적절한지 등등 여러 차원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적 토론을 조직하고, 제도적.정책적 개선을 제언해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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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하겠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과학.공학.의학 전반에 대한 차분하고도 진지한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별 과학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광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겠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과학자.공학자.의학자가 큰 피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수수방관, 침묵하지 말고, 한국과학기술인연합과 같은 젊은 과학자.공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과학자사회, 정부, 산업체 그리고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직하고도 신뢰할만한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사회 속에서의 책임있는 과학자사회>의 제 역할을 실천으로 보여줘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