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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꾸는 사람  (2005-11-26 17:47:50, Hit : 568, 추천 : 21)
제목  
   황우석 사태의 부정적인 점과 긍정적인 점

 

대중문화의 한 특징 중에는 스타를 통한 욕구의 대리 만족이다. 대중스타들을 푹빠진 청소년들은 그들의 많은 시간과 삶을 그들을 쫓아다니며 소비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중스타들에 대한 안티가 들어오면, 전쟁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보면서, 어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찬다. 청소년들의 비이성적인 대중스타에 대한 몰입을 걱정하면서 말이다.

근데 황우석이란 기호를 통해 표출된 우리 사회의 어른 문화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아니 더욱 심하면 심했지, 절대 덜 하지 않다. 박정희, 전두환에서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던 정치적 스타들에 대한 영웅주의적 몰입은 이미 잘 알려진 현상이다. 근데 이들은 이미 죽었거나, 너무 늙었거나, 정치적으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바로 이때 우리사회의 미숙한 어른들을 위한 대중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바로 황우석이 이들 미숙한 어른들을 위한 스타로 등장했던 것이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황우석 논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과학이나 생명윤리가 아니다. 황우석을 소비하는 미숙한 어른들의 <빠돌이, 빠순이 문화>이다. 황우석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의 수준 낮은 기초 과학에 대한 인식이나 지원, 그리고 그 속에서 만들어진 조급한 성과주의와 이에 기반한 저급한 과학 윤리가 아니다. 바로 황우석을 소비하면서 수용하는 우리 사회의 미숙한 어른들의 집단적인 광기이다. 영웅을 만들어 환상을 소비하는 그 감상적 수준의 사회적 분위기 말이다.

이렇게 물어보자. 과연 지금 황우석이란 기표를 통해 이상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에 광분한 미숙한 이 어른들이, 황우석 이전에 이 사회의 기초 과학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황우석이란 코드를 걷어내었을 때, 과연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국 기초과학의 미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질 지 말이다.

결국 모든 논의의 길을 황우석 죽이기와 살리기로 집중되면서, 이번 사태를 통해 논의되고 개선되어야 할 기초 과학에 대한 지원과 국제적 수준으로 재정비해야 될 과학 윤리에 대한 문제는 저 멀리로 내던지고 있다.

지금 사이비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광기에 휩싸인 미숙한 어른들은 제2, 제3의 황우석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황우석 사태가 몰고온 문제를 한국적 상황이라는 이상한 단어로 감싸주고자 하는 것은 황우석 그 개인에게나 제2, 제3의 황우석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정하게 황우석 사태가 우리에게 던져놓은 한국 기초 과학의 현재와 그 윤리적 허점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이번 사태를 이끌어가는 것이, 황우석 사태를 보다 발전적으로 만들어주면서, 이땅에 제2, 제3의 황우석이 탄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황우석이 이땅에 기여를 한 것은 단순히 그가 이룬 배아줄기 세포 연구 성과만이 아니다. 황우석이 이땅에 기여한 것은 이 긍정적인 연구 성과와 더불어 한국 기초 과학의 현실적-윤리적 문제점들을 펼쳐놓았다는 것이다. 문제의 지점을 펼쳐놓음으로써 문제를 극복할 대안적 모색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런데 황우석 신드롬을 감상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소비하는 이땅의 미숙한 어른들은, 이런 발전적 논의의 장을 스스로 폐쇄시키면서, 오히려 황우석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역설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황우석 사태가 보여준 하나의 긍정적인 점은 있다. 바로 한국 사회의 밑바닥에 놓인 감상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얼마나 파시즘적 토양이 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하나는 바로 민주 개혁 세력이라고 불리는 일부 개혁 세력들이 국수주의적 보수주의자들과 아주 많은 감상적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적어도 이 두가지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은 이번 황우석 사태의 긍정적인(?) 결과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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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우리 사회의 되먹지 못한 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내도 되나 싶다.
물론 부정하고 싶겠지... 
부정하면 할 수록 너절해지는 것을 어떻게 참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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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카산드라'를 위하여...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쩌면 목마라는 상징으로 더욱 잘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중심에는 아가멤논과 헬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또한 맹장 아킬리우스와 헥토르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어쩌면 트로이 전쟁의 처음과 끝, 그 깊은 곳에는 전설적인 예언자였던 카산드라가 자리잡고 있다. 카산드라는 태양신 아폴로에 의하여 신성한 예지력을 소유하게 되지만, 또한 아폴로의 저주로 인하여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여인이다.

2005년 11월의 대한민국!! 지금 여기 카산드라의 운명을 밟고 있지만, 우리가 결코 카산드라처럼 보낼 수만은 없는 '제2의 카산드라'가 있다. 그리고 그 이름을 혹자는 'PD수첩'이라고도 부르고, 혹자는 '불치병 환자들의 희망을 짓밟는 매국노들'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한낱 서푼어치 이름이야 무엇이 대수이랴. 쌀비준안 통과에 항의하다 자식같은 폭력경찰의 곤봉과 방패 앞에 유명을 달리한 故전용철의 죽음과 골곡진 사연마저 그저 한국사회에 몰아치고 있는 <타도 'PD수첩'!!>이라는 토끼몰이식 굿판에서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지금 'PD수첩'의 취재과정에서 벌어졌다는 미확인성 헤프닝이나 뒷이야기에는 관심이 솔직히 없다. 그리고 더하여 그런 이야기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굿판의 핵심이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PD수첩'에 의하여 후속으로 기획되고 있다는 내용의 적절성 혹은 사실성 여부에도 관심을 멀리할 것이다. 바로 그 이유는 현재 비정상적이고 희극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한국언론의 들쥐근성과 이에 적절하게 추임새를 불어넣는 빗나간 애국주의에 대한 넌덜머리라고 보면 된다.

만약 한국사회가 집단적 건망증에서 코딱지만큼이라도 자유로운 사회였다면, 심지어 불과 몇 개월 전의 상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한겨레신문마저도 맹목적인 황우석 우상화에 고개를 숙이고 투항을 할 지경이었으니, 여타 다른 언론들과 사회적 검증틀은 전혀 작동되지 못하고 그저 황우석팀의 입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며 부푼 희망만 키워왔던 것은 아닌가? 심지어 수많은 자연과학자들과 진보적 사회단체에서 요구했던 많은 기초적 의혹들마저도 황우석팀은 기막힌 정치적 술수로 대응했다. 그중에서 소위 "민주노동당의 국정감사 자료요청 때문에 연구활동에 엄청난 차질이 있다"는 둥의 말도 안되는 궤변을 언론에 흘렸던 상가집 발언은 백미중의 백미였다.

이처럼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사태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이다. 다만 학계 내부의 시선에 따른 논쟁은 주견과 자격이 못되어서 나설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첫째는 언론의 기본적 본분을 오로지 'PD수첩'만이 총대를 매고 행사하였으며, 기간 이 핵심을 외면하며 혹세무민을 거듭했던 나머지 언론들의 안면몰수 및 증거인멸 시도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 그 냄비언론들의 증거인멸을 위한 마녀사냥의 재물로 채택된 <'PD수첩' 물어뜯기>가 결합되어 알맹이가 부실한 거대한 쇼비지니즘 상태로 여론몰이가 자행되고 있는 것이 다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더욱 근원적인 감정의 과잉 출구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바로 이 부분이 한국언론의 청산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거대언론의 임무방기와 들쥐근성

요즘 난데없이 '진실'의 정의와 의미에 대한 주석붙이기 게임이 한창이다. 냄비언론들은 국익과 진실이라는 해괴한 대결구도를 만들어 놓고 선택을 강요하는가 하면, 평소에는 '비판정신을 통한 진실의 추구'를 언론의 본분인 양 떠벌이던 거대언론들은 상대적 소수에 불과한 'PD수첩'류들을 딴지꾼으로 매도하기에 급급하다. 하기야 언제 저들이 단 한 번이라도 소수의 발언권을 인정한 적이 있었는가. 오직 언제나 그들은 다수를 빙자하여 주류의 체계를 반석처럼 다지는데 능할 뿐이다.

더 나아가 혹자는 <무조건적인 진실>이 아니라 시기와 여건을 고려하는 <'지혜로운'(?) 진실>을 주문하지만, 나는 솔직히 무식하여 그 '지혜로운'(?) 진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지혜'가 목전의 이익을 위하여 사소한(?) 반칙과 선의의(?) 거짓 쯤은 공적으로 양해하고 묻어두자고 하는 의미라면 그저 한글을 만든 분들이 애처로울 뿐이다.

실제 황우석팀의 논문을 게제했던 사이언스 5월호에는 같은 비중과 분량으로 생명윤리의 중대성에 관한 다른 논문이 실렸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우리 언론의 보도환경은 어떠했는가? 과연 지금 'PD수첩' 죽이기에 앞장서고 있는 거대언론들은 당시에 치정주의의 주술에 사로잡혀 있지 않았던가? 이는 황우석 교수가 기자회견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과 함께 인류문명을 이끌어 온 또 다른 수레바퀴인데도 말이다. 그런데도 마치 윤리('PD수첩'의 방송내용')에 대한 기본적인 점검이 과학(황우석팀의 성과)을 방해한다고 몰아세우는 아햏햏한 광풍에 입을 여는 언론은 과연 있는가?

그렇다면 이들 냄비언론들은 왜 지금처럼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침잠하고 있을까? 그것은 바로 자승자박에 대한 두려움이요, 제 얼굴에 침뱉는 용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껏 황우석팀의 입만 통하여 모든 기사를 작성하고, 확인되지 않은 미래의 부가가치를 계량화시켜 많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이라는 이름의 주술을 걸어왔던 스스로의 이력을 끝끝내 고집하고 싶은 것이다. 이로써 한국언론의 문제는 'PD수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준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하여 오히려 정당한 역할을 행사한 'PD수첩'의 지난주 보도내용을 떼거지로 과도하게 물어뜯으며 공격하는 더러운 동업자 정신에 존재하는 것이란 말이다.  

이들은 카르텔의 외연을 확장시키기 위하여 필연적으로 항상 반쪼가리 정보를 절대시하고, 심지어 사실이 아닌 내용을 윤색하여 기정사실로 만들어 유포시킨다. 이들은 청의협을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과 민주노동당에게 '줄기세포연구 자체를 반대하는 집단'이라고 뻔뻔한 거짓 라벨링을 서슴치 않으며, 넋나간 불교계에서는 난데없는 '난자보시론'을 들고 나와 여성의 신성한 인권마저 희화화시켜 석가모니에게 귀쌈맞을 짓마저도 서슴치 않는다. 한 마디로 정제되지 않은 추상적 이익 앞에서라면 그 어떠한 짓마저도 서슴치 않겠다는 살기를 느낄 뿐이다.    

'국익'이 아닌 '인간'을 위하여, 아니 '인간'이 아닌 '약자'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 불행히도 거친 바람은 쉽사리 멈출 것같지 않다. 이미 'PD수첩'은 보도과정과 다른 의혹에 대한 후속탄의 방송을 기정사실화했으며, 청와대는 이 사태의 전개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박기영 보좌관에 대한 신임을 굳히지 않고 있다. 또한 황우석팀에 따르면 국내의 여파는 외국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고, 국내여론은 'PD수첩' 죽이기를 뛰어 넘어 MBC죽이기로 진군할 양상이다. 외국(더 정확하게는 외국의 생명과학계)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황우석發-'PD수첩' 경유-도착지 미정>인 희한한 굿판이 조성된 선정성에 힘입어 치킨게임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우리가 황우석팀의 성과에 왜 주목했는지를 되새겨야 한다. 물론 그들에게는 각각 다양한 이유가 있다. 황우석팀의 열정과 수많은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고통과 염원, 그리고 오랜 생명과학계의 숙원을 한꺼풀 열어젖힌 많은 연구진들의 노고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실체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살림살이도 팍팍해서 별로 살 맛이 없던 가운데 그것도 기초과학의 변방으로 취급받던 조국의 과학자가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더 나아가 그 결과가 엄청난 경제적 이익으로 환원된다니 너냄없이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성원했던 국민들의 기대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라도 더욱 냉정하고 거시적인 시선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불과 몇 년 전에 벌어졌던 실체없던 '국익논쟁'에서 더욱 치열한 반면교사를 거듭해야 한다. 적어도 백주대낮에 생사람을 두들겨 죽여 놓고도 등돌려서 생명을 운운하는 대한민국은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겠는가? '국익'이 아닌 '인간'을 위하여, 아니 '인간'이 아닌 '약자'를 위하여...

'PD수첩'이여, 어제밤 너를 보며 안타까웠던 것은 광고없는 방송이어서가 아니다. 막말로 지난 일주일간의 숱한 번민과 광란의 과정 속에서도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고 시청자에게 재판단을 구하려는 사회자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 대하기 억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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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디수첩이 한 일

황교수가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시점에서
황교수의 연구에서 발생한 비윤리적인 문제 지적
이후 황교수도 연구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
그런데 피디수첩이 받은 대접은
엄청난 반피디수첩 여론에 쫄아
전무후무할 것 같은 모든 광고주들의 광고빼기

이후 피디 수첩이 한 일(흘린 일)

논문의 진짜가짜여부 파악
이 소식 들리자마자
반피디수첩 여론은 더욱 미친 듯 광분
진보누리에서 조차 이건 오버질이라는 논객들의 글들이 흘러나옴

2 이제 내 생각

피디수첩 하는 짓은 절대 오버짓아님
설령 후에 온 국민들과 정부가 거의 미쳐돌아가는 듯한 열광적 지지를 받는
황교수의 논문이 진짜라고 밝혀져도
피디수첩은 어떤 비난도 받지 않아야 함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과거의 경험을 통해서
어떤 거대한 무엇이 어떤 무엇에 대해
그것이 무조건적인 진실임을 강요할 때
그 거대한 무엇은 거의 백프로 사이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

언론의 의무는 바로 그것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심을 던지고 진짜와 사이비를 밝히는 것
이 의무를 비난하거나 하지 말라는 자들은
광신도 사이비와 하등 다를바가 없는 것임

만약 근례로
일본에서 있었던 역사조작사건을 폭로한 언론이
직접 그 조작현장을 잡지는 못하고
만약 그 발견유물에 대한
어떤 과학적인 검사를 요구했을 때
그 유물을 조작한 역사가가
유물의 회손의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던가 혹은
일본 국민들의 엄청난 민족주의적인 여론에 밀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
우리는 그대로 그 조작의 역사가 진실이라 믿고
칠십만년 전부터 본토에 살았던 일본인이 어쩌면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일

오히려 이번 일은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황교수 논문의 진짜가짜 여부를
확실하게 공고히 함으로서
황교수 연구를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성서가 사이비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하는 좋은 계기


3 어쨌든 결론

황교수는 연구 계속하면 되고
피디수첩은 계속 자기의무하면 됨
누구를 비난하거나 누구도 비난 받을 일이 전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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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03 1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역사조작 사건을 폭로한 일본 언론을 보며,
한국의 대중들은 .. 역시 '일본은 조작을 했어'라고 했지만,

과연 우리는 그러한 언론을 가질 수 있을까????????
 

과학기술인연합이란 곳에서 퍼왔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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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경꾼 (2005/12/02, Hit : 605, Vote : 0)  
제목
  PD수첩 탓말고 과학자사회가 나서야 한다

PD수첩과 황우석 교수팀과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이제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PD수첩은 황우석 교수팀으로부터 5개쌍의 배아줄기세포와 모근세포를 받았고, DNA 검사를 전문으로 하는 모 회사에 테스트를 의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4개쌍에 대해서는 판독불가능, 1개쌍에 대해서는 배아줄기세포와 모근세포의 DNA 불일치 결과를 얻었다는군요. PD수첩은 1차 검증결과가 Science에 보고된 내용에 문제가 있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만큼 사전에 황우석 교수팀과 합의한 대로 2차 검증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황우석 교수팀은 PD수첩 쪽에서 의뢰한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한편 2차검증에도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에 PD수첩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비롯 복수의 해당 분야 전문 과학팀들에게 1차 검증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판단을 의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DNA 검사는 상당히 자리를 잡은, 표준화된 기법으로 일반적으로는 검사 방법, 검사 실행 및 결과 해석에 있어 논란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제까지의 오랜 공방이 손쉽게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DNA검사가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외로 논란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험과학을 전공하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과학 실험에서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입니다. 얼핏 보기에 간단해 보이는 경우도 더 집요하게 파고 들면 상반된 해석들이 제기될 여지가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실험을 해나갈 수 있는 것은 단지 표준화된 규칙들을 잘 익히고 이를 충실히 따르는 것만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축적된 암묵적 지식과 숙련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고 또 그 실험이 설계되고 진행되는 국지적 맥락 내에서 특유한 잠정적 기준들, 이해 혹은 과학적-실용적 목적들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요. 허나 애초 주어진 맥락을 떠나 다른 맥락으로 옮겨가면 불확실성과 비결정성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제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가 너무 걱정이 많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앞으로 PD수첩과 황우석 교수팀 사이의 진실공방이 일반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지리하게 진행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 와중에 정작 이제까지 이미 드러난 문제점들은 별 것도 아닌 듯 치부되거나 보다 더 중요한 의제들은 제대로 토론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닥쳐 올까 두렵습니다.

어떤 분들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런 문제는 과학에 맡기고 PD수첩은 당장 방송 중단하고 찌그러지라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제대로 된 대응이 될 수 없습니다. 우선 "과학에 맡겨라"라는 얘기가 그저 "연구에 문제가 있었다면 1-2년 안에 허위가 드러날 수밖에 없으니 내버려 두라"라는 류의 주장이라면 과학에 대해 지극히 나이브한 관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료과학에서는 실험의 반복이 쉬운 일이 아닌데다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결과가 새로운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거나 이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학자가 집요하게 황 교수팀의 결과를 파고 드는 것이 아닌 한 설사 허위가 있었더라도 1-2년 안에 쉽게 밝혀지기는 어렵습니다. 더욱이 황우석 교수팀 구성원중 두세명이 연구의 허위 가능성을 제보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아, 그럼 지금부터 이제까지의 모든 논란은 없던 것으로 하겠습니다. 진실은 언젠가 과학이 밝혀줄 것입니다. 궁금한 분들은 향후 2-3년 동안 Science, Nature, Cell, Nature Biotechnology 혹은 Stem Cell 같은 저널들에 게재되는 논문들을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라고 얘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얼런지 의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학자사회"가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대표적인 "과학자단체"들이 나서야 합니다. 과학, 공학, 의학을 전공하는 분들도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만, 사실 우리 사회에는 여러 과학자.학술단체들이 존재합니다. 우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포괄하는 "대한민국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ROK)"이 있습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Korean Academy of Science and Technology)", "한국공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과 "대한민국의학한림원(National Academy of Medicine of Korea)"도 있지요. "대한의학회 (Kore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도 있습니다. 이외에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Korea Federation of Science and Technology Societies)"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Korean Federation of Women's Science and Technology Associations)"도 존재합니다. "의료과학자"만의 조직은 아니지만 "대한의사협회(Korean Medical Association)"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사회적 역할은 과학자사회 구성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만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물론 이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에 대해서조차 비판이 제기되어 왔기는 합니다. 과거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과학이 어찌되건 대학이 어찌되건 장관자리에나 관심있는 원로 교수들이 노니는 곳이라는 싸늘한 시선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날에는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젊은 과학.공학자들은 이들 단체들이 원로 혹은 장년층 과학.공학자들의 친목 모임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도대체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의문을 자주 제기하곤 합니다. 허나 그러한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것이므로 이 정도로 하고요.

중요한 것은, 이들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은 과학자사회 구성원들의 이익 대변 외에도 <과학자사회, 정부, 산업체 그리고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직하고도 신뢰할만한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해줘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는 요즘 이들의 그와 같은 매개자 역할은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중요한 과학, 공학 혹은 의학 관련 사안들이 대두될 때 논란이 제기될 때 이들이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존립 이유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사회 속에서의 책임있는 과학자사회>의 위상을 스스로 허무는 것인 동시에 결국은 과학자사회의 이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나서야 할런지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98년 경희대의료원팀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다고 밝혔을 때 비단 윤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과학적 타당성의 측면에서도 BBC 등 외국의 언론들과 외국의 과학자들은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이에 대한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는 생명복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조사에 나섰고, 이는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 보다 차분하게 논의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물론 이번 경우는 좀 다릅니다. 경희대의료원팀은 실험 결과를 논문 형태로 보고하지도 않았으나 황우석 교수팀은 Science에 논문을 제출했고 또 받아들여져서 이미 출판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매매 난자의 사용, 연구원 난자제공 여부 문제로부터 시작해서 연구 허위 가능성에 대한 내부 제보자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갈 수록 논란이 확산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싫든 좋든 DNA 검사 결과를 둘러싼 논란이 진행될 것이라는 점에서, 과학자사회가 수수방관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우선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만큼, 대한민국학술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공학한림원, 대한민국의학한림원, 대한의학회 등은 공동으로 위원회를 신속히 구성하고 DNA 검사 결과에 대한 리뷰 등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가 허위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이후 1) 황우석 교수팀의 연구실천이 인체를 활용하는 연구에서의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배하며 이루어졌는지; 2) 문제가 있었다면 과학자사회 차원에서 어떠한 대응이 필요한지; 3) 우리나라 대학, 의료 및 연구기관들에서의 연구윤리 교육 및 지침 준수 실태는 어떠한지; 4) 문제가 있다면 이를 개선하기 위해 어떠한 제도적.정책적 개선이 필요한지; 또한 5) 정부, 생명윤리심의위원회, 현장 과학.공학.의학자 및 시민사회와 협력하는 가운데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와 같이 논란의 여지가 큰 연구의 경우 어떠한 연구범위, 연구지침과 규제가 적절한지 등등 여러 차원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적 토론을 조직하고, 제도적.정책적 개선을 제언해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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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하겠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이런 역할을 못하고 있으니 과학.공학.의학 전반에 대한 차분하고도 진지한 사회적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개별 과학자를 영웅으로 만들고 광적으로 지지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이 제 역할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옵니까?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를 입겠지만 그중에서도 바로 과학자.공학자.의학자가 큰 피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대표적 과학자단체들은 이제 더 이상 수수방관, 침묵하지 말고, 한국과학기술인연합과 같은 젊은 과학자.공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과학자사회, 정부, 산업체 그리고 시민사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정직하고도 신뢰할만한 중간매개자의 역할>을 <사회 속에서의 책임있는 과학자사회>의 제 역할을 실천으로 보여줘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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