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주미힌 2005-12-11 21:36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3월


책읽기는 즐거워야 한다. 이 책은 독자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함께 '신나게 논다'는 점에 있어서 놀이의 전부를 보여준다. 책을 만화경처럼 이리 저리 돌려보고, 다양한 각도로 볼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보여준 책이기도 하다. 또한 어려워 보이는 미학을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려는 저자의 재치와 글재주는 지적 쾌감과 맞물리는 순간 순간마다 놀라움과 쾌감을 맛보게 해준다.

프뢰벨은 "놀이는 어린이의 내적 세계를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며, 아동기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산물이고, 인간생활 전체의 모범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놀이는 기쁨과 자유와 만족, 자기 내외(自己內外)의 편안함과 세계와의 화합을 만들어 낸다.”고 했으니, 놀이와 예술 그 둘의 실루엣은 너무나 흡사하다. 복제된 사고와 이미지에 짓눌린 인간의 창조적 본성을 자극하는데에 이 책이 유용할 듯 싶다.

 


세계를 뒤흔든 열흘
존 리드 지음, 서찬석 옮김 / 책갈피 / 2005년 6월


거대한 권위와 부정 앞에 민중의 힘을 의심하곤 한다. 여론에 휩쓸리고 자본가, 권력가에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세상은 언제나 그렇게 돌아간다라고 자위하던 모습들에서는 자괴감이 흐른다.

민중의 위대한 도전과 열정이 함축되어 있는 '볼세비키 혁명'을 현장감, 사실성있게 보여주는 이 책은 민중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사유의 힘, 행동의 힘.. 스스로를 묶고 있던 사슬을 끊고 그들의 이상을 만들어 가려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 평화, 평등, 누구보다 인간답게 우리는 살고 싶으니까.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이론과실천 / 2005년 5월

칭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웨더포드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출판사 / 2005년 2월

잭 웨더포드의 책 두권...

개인적인 생각이자만 역사 읽기의 즐거움을 하나 꼽으라면, 인식의 변화를 들겠다.
배쳑되야만 하는 야만, 우리가 추구해야하는 문명... 파괴자 칭키스칸...
그 모든 것이 누군가로부터 주입되어 왔던 공식이었고,  그 안에서 지적 태만으로 평안을 추구했던 나의 답답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진실이란 끊임없는 자기 성찰 앞에 있음을 깨닫게 한다.
저자의 이야기 솜씨 또한 빠져들만큼 좋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힘은 역시 인간에게 있었습니다. 개인의 힘은 무지 작지만, 그 개인은 세상을 바꿔가고 있었습니다.
한비야씨는 이 책의 주인공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야에서 떨어져 있던 '다른 세상'의 사람들이 주인공이고, 그들을 비추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굶주림, 전쟁, 질병은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침묵 속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선진국, GNP 몇 만 달러에 목말라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연봉, 나의 복지, 나의 행복...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당신의 국경은 어디까지인가? 되물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이 책이 전합니다

 

대담
도정일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05년 11월


도정일, 최재천 두 학자의 허물없는 대담집이 반갑다. 전문성이 서로의 경계와 벽이 되어서는 안된다. 소통만이 서로의 질과 범위를 넓힐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이 넘실거리는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가 만들어낸 틀에 구속된 수 많은 가치와 진실을 되돌아 봐야하 할 당위성을 수확한다.
배움과 앎의 본질에 대해 인식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책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페미니스트는 무조건 말술에 줄담배라고 생각한다' 69p

세상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여성을 구속하는 사회구조와 의식일 것이다.
나도 저자의 비판에 벗어날 수 없는 수컷일 뿐이기에 나의 의식과 내 인생 거의 전반에 걸쳐 난도질을 당하게 된다. 읽기 힘든 책이다. 많이 공감하면서도 나에게 뻗치는 칼날은 무지 날카롭기에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기 힘들다고 피하면 안될 것이다. 편견을 거두고 성이 아닌 인간의 가치를 전면으로 내세워 같이 풀어가야 할 숙제이다. 이 책을 그 시작점으로 삼아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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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일 "황 교수가 해법 내놔야"

[오마이뉴스 2005-12-11 13:07]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11일 황우석 서울대 교수팀이 <사이언스> 논문 진위 논란의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밝혔다.
...
노 이사장은 이날 오전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와 김선종 연구원은 황 교수의 일을 도와주는 입장이었다"며 "논문의 진위여부 문제는 황 교수팀에서 얘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공동저자로 올라있는 노 이사장은 "나도 황 교수가 영국 런던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에야 논문을 봤다. 나는 논문이 나온 과정을 전혀 모르니 황 교수가 해법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
노 이사장은 "언론에 자꾸 나가게 되는데 나는 이런 문제에 끼고 싶지 않다. 나는 황 교수팀도 아니고 공동연구를 하면서 도와준 것뿐이다"고 말했다.


기사 전문
(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98013&ar_seq=1 )

 

 

-----------------------환상적인 댓글 ------------------------------------

양아
보통 배가 난파하려고 하면 쥐들이 가장 먼저 사라진다지? 딱 맞는 말이었구먼...

빛둥
내 기억엔 이 사람이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2번째인가 3번째 Author인데... -_- 정말 어처구니 없구만.

차라리 '내 이름은 노성일이 아냐~'라고 하는 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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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권연구가 국제정치나 법학의 부속물로만 여겨졌던 우리의 전통에 비추어볼 때 인권의 발전사뿐 아니라 역사적 현실과의 연관 속에서 인권의 이론과 실제를 실천적으로 서술함으로써 본격적인 인권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특히 옮긴이가 정성스럽게 수집, 편제한 한국의 인권연대기는, 결코 만만하지 않은 질과 양의 책 내용을 정확한 우리말로 옮겨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인권교과서로 승화시켜 놓은 그의 의지와 노력과 함께 우리 인권의 지평을 한 단계 확장하는 너무도 소중한 디딤판이 되고 있다. 혹 북한의 요덕수용소를 향한 인권논쟁이 미국의 관타나모수용소에 내재된 패권주의를 은폐·엄폐하는 이 현실의 답답함을 깨치고자 한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곰씹어 읽어야 할 책일 듯 싶다.

한상희/건국대 법대 교수

 

인권 개념도 역사의 산물이다. 인권학의 산실로 떠오르고 있는 미국 덴버대 교수인 저자의 야심 찬 저작인 이 책은 동서고금을 가로지르면서 인권사상의 기원과 그 발전 과정을 추적한다.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벨기에 브뤼셀의 유럽국제학교에서 공부한 저자는 자신의 조국이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인권운동을 펼치면서 인권학의 표준교재로 통하는 ‘인권독본’과 ‘국제주의와 그 배신’ 등을 저술한 실천적 인권학자다.

이 책은 인권의 역사를 전근대-계몽주의-산업혁명시대-세계대전시대-지구화시대로 나눠 살펴본다. 자유 평등 박애 관용의 인권 개념은 모든 전통 문화권 속에 그 맹아를 간직하고 있지만 18세기 서구 계몽주의에서 오늘날의 형태로 본격 발현했다.

계몽주의적 전통에서 자유주의적 1세대 인권(시민적 정치적 권리)의식이 싹텄고 산업혁명시대를 거치면서 사회주의적 2세대 인권(경제적 사회적 권리)의식을 낳았으며 제3세계적 3세대 인권(문화적 권리)의식은 세계대전의 시대를 관통하며 자라났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몇 가지 통념에 도전한다. 우선 과거 현실사회주의 국가에서 인권 침해가 광범위하게 자행된 것은 사실이나 참정권의 확대와 보통선거권의 부여 같은 제1세대 인권이 사회주의 이념 전통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또 1세대와 2세대 인권의식을 18세기 유럽 계몽주의와 그 계승자인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의 산물로 바라보는 시각을 비판하면서 20세기 비서구권에서 식민주의에 대항한 투쟁이 큰 역할을 했음을 강조했다.

 

 

 

 

 

 

조선 후기 '입'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있었다. 책 제목으로 쓰인 '이야기 책 읽어주는 노인'이다. 서울 동문 밖에 살던 그는 책 없이 입으로 국문 패설(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을 읽어주었다. '숙향전''심청전'같은 전기를 주로 애송했다. 문제는 노인이 가장 재미난 대목을 앞에 놓고 입을 다문다는 것. 궁금증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노인에게 다투어 돈을 던져주었다.

"애들과 부녀들은 안타까워 눈물까지 떨군다네/영웅의 성패가 어찌될 건가 손에 땀을 쥐면서./재미나는 대목에서 말을 뚝 그치니/돈 받는 법 묘하구나/누군들 뒷말이 듣고 싶지 않으랴."

TV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노인은 이른바 지금의 토탈 엔터테이너가 아니었을까. 그의 속이 훤히 보이는 '상술'이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요즘 같은 시절엔 상상도 못할 미담도 있다.

홍씨가 가세가 기운 이씨의 집을 사들였다. 그런데 수리 도중 돈 3000냥이 나왔다. 뜻밖의 횡재다. 그런데 웬걸? 홍씨는 이씨 집에서 나왔으니 돈을 돌려주려 하고, 이씨는 어차피 집을 넘긴 상황이니 새로 나온 돈도 홍씨 것이라고 사양한다.

조선 후기 여항(閭巷) 시인 조수삼(1762~1849)의 시와 글을 묶은 책이다. 여항은 백성들이 사는 거리나 골목을 뜻하는 말. 시는 물론 그림.의학.바둑.거문고 등에 두루 재능이 뛰어났던 조수삼이 19세기 조선 민초들의 삶을 진솔하게 들려준다. 굳이 비유하며 조선시대판 '만인보'쯤 될까. 부패한 왕조, 피폐한 경제 속에서 고단하게 살아갔던 백성들을 따뜻하게 보듬고 있다. 시편으로 돌아보는 19세기 조선 민중 생활사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이 책은 현대의 신분 증명이 어디서 유래했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개괄한다. 이런 작업에 으레 끼어들기 마련인 ‘정체성’에 관한 복잡한 성찰은 없다. 책의 도입부는 “호주머니 속 신분증에서 중세의 흔적을 추적해보는 것이 주제”라고 못 박는다. 저자에 따르면 최첨단 홍채 인식 기술의 뿌리도 사실 중세에 닿아 있다. 안구에 광선을 쏘아 동공 안의 개인적 특성을 판별하는 방식은 이미 르네상스 시대 학자들이 착안했다. 그들은 눈빛으로 개인을 구별하는 연구에 골몰했다.

최초로 인명부를 만든 건 종교계였다. 1215년 ‘고해성사 증명서’가 탄생했는데, 이것이 서류를 통한 신원 확인의 시초가 됐다. 모든 신도가 최소한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하고 영성체를 받도록 통제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했다. 명부와 고해성사 증명서를 대조해 의식을 실천하지 않은 자는 성찬식 참여를 금지했다. 14세기 말에는 군대도 체계적인 인원 관리를 적용했다. 당시 유럽의 군주들은 직접 용병을 기용하지 않고 중개인에게 위탁해 전쟁을 수행했다. 이들 ‘군대 장사꾼’은 병사 수를 부풀려 초과된 급여분을 챙겼다.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고용주는 각 병사에게 신분증을 발급하고 명단을 만들었다. 이 같은 인적 관리는 징집하거나 탈영을 방지하는 데도 막중한 역할을 했다.

군인 같은 특정 계층에서만 적용됐던 신분증 제도가 보편화된 계기는 페스트 창궐이다. 15세기 말 유럽에서는 보균자를 구별하기 위해 세세한 개인정보가 망라된 ‘위생증’이 도입됐다.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으려면 각자는 자신의 건강함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현대와 중세의 신분증명 제도는 사회 구성원에 대한 체계적인 통제란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기록과 통제가 늘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17세기 부유한 관광객들은 여행기에 “그놈의 여권이라는 게 없어도 (뒷돈으로) 이렇게 편히 다닐 수 있네”라고 적으며 거드름을 피웠다. 21세기 한국에서도 전자화된 인적 관리를 비웃듯 부유층 자제들이 병역의무에서 제외되곤 한다. 중세와 현대의 신분 증명은 그 허점까지 닮았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1923년 창간된 여성잡지 '신여성'을 교육과 국문, 가정교육, 디자인문화이론 등 각기 다른 분야를 전공한 9명의 소장 학자들이 비판적으로 재해석했다.

잡지의 탄생 과정과 편집 구성, 필자, 출판과 유통 등을 꼼꼼하게 정리했으며 게재된 기사와 만평을 통해 여성의 풍속사를 설명했다.

책은 남녀 학생의 풍기문제, 여학생 제복 문제 등을 주제로 한 기사에 대해 "'신여성'은 당시 여학생의 순수가 침해되는 것에 대한 우려와 비난, 대안 제시와 같은 담론을 제출함으로써 역으로 '순수로서의 여학생', 즉 마리아로서의 여학생을 강력히 환기한다"고 분석했다.

저자를 대표해 서울대 교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희경 씨는 머리말에 "'신여성'은 신여성을 둘러싼 당대의 긴장과 갈등을 매우 첨예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텍스트"라고 적었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은 미국 여성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속옷 브랜드다. 붉은색 실크와 검정 레이스 등 화려한 속옷들은 여성들의 시선을 잡으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마치 영국 빅토리아 시대 귀부인의 방처럼 꾸며진 탈의실에서 속옷을 입고 거울에 비춰보던 이주은씨는 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열정이나 욕망을 훔쳐 본 것 같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미술사학자인 그가 저서의 제목을 ‘빅토리아의 비밀’이라고 지은 것은 그때의 시선과 느낌을 영국 빅토리아 미술에서 그대로 느꼈기 때문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의 순결과 금욕을 강조한 성적으로 가장 엄숙했던 시기다. 하지만 이 시대의 그림에 나오는 여성들에게는 순결하기 보다는 쓸쓸하고 또 관능적이다. 저자는 그 아이러니한 느낌에 주목하고 그림이 담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은밀한 뒷면을 조심스레 공개한다.
저자는 그림 속에 담겨 있는 사회·문화의 시대상을 꼼꼼하게 읽어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섞어 생생한 경험처럼 되살려 놓는다. 늘 어렵게만 생각되던 미술사를 쉽고 흥미롭게 살려낸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아름다운 겉모습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그 여인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그 비밀이 궁금해서 그림을 지나쳐버리지 못했다면 그건 이미 그림이 건 마법에 걸려든 것이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름다운 색감과 신비로운 구도안에 숨겨진 빅토리아 시대의 은밀한 속내를 바라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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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11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 책 읽어주는 노인, 관심이 무럭무럭..그런데 가격이...;;;

이리스 2005-12-1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저.. 빅토리아 시크릿표 속옷 좋아하는데 ㅡ,.ㅡ

라주미힌 2005-12-1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가격이 문제겠어요. 비숍님 질러주세요.. ㅎㅎ
낡은구두님/ 빅토리아 시크릿 홈페이지 가봤는데... 좋네요. 자주 가봐야겠어요. ㅎㅎ

panda78 2005-12-1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이번 건 꽤... 끌리는군요. ;;;
 

 

동성애 민간인 학살

▣ 고경태/ 한겨레21 편집장 k21@hani.co.kr

저는 화성 출신입니다.

경기도 화성이 아닙니다. 은하계의 별 화성입니다. 그래서 금성을 모릅니다. ‘금성에서 온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들을 모릅니다. 여자들이 어찌 남자들의 깊은 뜻을 다 알겠습니까. 마초 흉내를 내려는 게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서 남성에 관해 100% 이해할 수 있는 여성이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남자로 태어나지 않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답니다.

그렇다면 동성애자들에 대한 이해는 어떨까요. 아마 우주선을 타고 금성이나 화성에 직접 가는 것만큼 어려울 듯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태도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잣대가 되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답을 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톨레랑스가 넘치는 척, 전향적인 척 폼을 잡을 순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깊이 이해하기는 힘듭니다.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이런 가정을 해봅니다. 만약 청소년으로 성장한 제 자식들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과연 기껍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제가 동성애자가 돼보지 않는 한, 그들을 1%의 편견도 없이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호 표지이야기의 주제는 동성애, 그것도 청소년 동성애입니다. 일부 독자들의 얼굴 찡그리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린 자녀들이 있는 가정에서는 <한겨레21>을 몰래 숨겨놓을지도 모릅니다. 꼭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의 이상을 품었던 이들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많이도 죽었습니다. 한센병 환자들도 그랬습니다. ‘문둥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강제 이주당하고, 전쟁통엔 학살의 비극을 비껴가지 못했습니다. ‘변태’나 ‘호모’로 취급됐던 동성애자들은 집단학살의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변태’나 ‘호모’ 같은 모멸적 꼬리표들은 ‘정신적 학살’의 효과가 충분합니다. 실제 이들에 대한 학살은 다른 형태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을 억누르는 거대한 편견은 어린 친구들을 고층 아파트 옥상으로 내몹니다.

10여 년 전 뇌성마비 장애인들을 취재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뇌성마비와 정신박약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흐느적거리는 몸놀림만으로 그들의 지능을 의심하고 바보처럼 여긴 셈입니다. 너무나 부끄러운 무지였습니다. 그래도 이건 약과입니다. 동성애 성향을 고백한 자녀를 정신병원에 처넣는 부모에 비하면.

무지는 때로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름답다”는 말은 “안다”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서 낙관하라(그람시)”가 아니라 “본능으로 거부하든 말든 이성으로 학습하라”정도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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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동성애자들이 신음하고 있다

성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은 늘어나지만 폐쇄적인 현실은 변하지 않아
‘나이주의’와 ‘이성애주의’라는 이중의 굴레 속에 자살을 고민하는 그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청소년 동성애는 위험하다. 동성애를 고민하는, 동성애를 하는 청소년들을 어른들은 걱정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 청소년 동성애는 한국 사회의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내 아들이 게이(남성 동성애자)이면 어쩌나, 우리 딸이 레즈비언(여성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더 이상 미국 중산층만의 공포가 아니다. 한국은 이제 청소년 동성애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90년대 중반 동성애 인권운동이 시작되고, 90년대 후반 인터넷을 통한 동성애 문화가 활성화되면서 더 이상 한국에도 청소년 동성애자는 ‘없는’ 존재가 아니다. 청소년 동성애자는 오늘도 인터넷을 통해 동성애 정보를 접하고, 동성애 커뮤니티에 나와 친구와 만나고 있다.

통계로 봐도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청소년이 적지 않다. 장재홍 등의 2003년 연구에 따르면, 자신이 동성애 성향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본 청소년이 11.0%(남성 4.1%, 여성 12.2%)에 달했다. 이처럼 성 정체성을 고민하고, 나아가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늘고 있지만, 청소년 동성애자를 둘러싼 현실은 변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동성애에 대한 의심의 촉수가 발달하면서 조용히 살고 싶어도 숨어살기 힘든 사회가 됐다.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자신을 표현하고 있지만, 사회가 청소년 동성애를 받아들일 준비는 부족하다. 역설적으로 청소년 동성애자에게 한국 사회는 안전지대가 아니다. 청소년 동성애자가 위험하다.

성인 동성애자조차 몰랐던 학교의 검열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올해 5월 인권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이반검열>은 이성애자뿐 아니라 동성애자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성인 동성애자들조차 잘 몰랐던 현실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반검열>은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이반(동성애자)에 대한 검열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중3인 ‘천재’(가명·여성)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찍고, ‘여성영상집단 움’의 이영 감독이 연출했다. 천재는 텔레비전 안테나에 나란히 앉은 참새만 보아도 “둘이 사귀는 거야?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사춘기 ‘청소녀’다. 하지만 천재에게는 ‘자유’가 없다. 학교에서는 감시당하고, 집에서는 갇혀 지낸다. 중1 때부터 ‘이반’으로 찍혔기 때문이다. 천재는 “(이반으로 의심되는) 친구들과 밥만 같이 먹어도 교무실로 불려간다”고 말한다. 교사는 ‘지도’의 명목으로 부모에게 천재에 대해 알렸다. 어머니는 천재의 등하굣길에 동행하고, 주말에도 친구들과 만나지 못하게 한다. 천재와 친구들은 “술·담배는 지도해서 되지만, 레즈비언은 지도해서 되는 게 아니잖아”라고 하소연한다. 천재는 “막 화나. (여자들끼리는) 왜, 왜, 왜 안 되는 거야”라고 혼자 분통을 터뜨린다. 그리고 천재는 “도대체 몇 개야, 몇 개” 하면서 자신의 손목을 내보인다. 가녀린 손목에는 15개의 ‘금’이 뚜렷하게 보인다. 자해의 흔적이다.

청소년 동성애자의 자살률은 높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의 자살 중 30%가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됐다. 청소년 동성애자의 자살 시도율이 이성애자 청소년보다 2~3배 높은 것이다. 실제 미국의 청소년 동성애자 중 48~76%가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고, 29~42%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의 청소년 자살은 대개 ‘성적 비관’으로 간주돼왔다. 언제나 동성애자 청소년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고생 두 명이 손을 잡고 투신 자살을 해도 성적 비관으로 취급됐다. 하지만 ‘성적 비관’은 알고 보면 ‘성적 정체성 비관’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최근 한국에서도 청소년 동성애자의 심각한 자살 시도율을 보여주는 논문이 나왔다. 강병철, 하경희(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씨는 올해 13~23살 청소년 동성애자 1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청소년 동성애자의 동성애 관련 특성이 자살 위험성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 동성애자들도 심각한 자살 위험에 노출돼 있다. 조사 대상자의 70% 이상이 자살에 대해 생각해본 경험이 있고, 18.1%가 ‘매우 자주 해봤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자살을 시도해본 경우가 45.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르렀다.

다큐멘터리 <이반검열>은 앞으로 다른 청소녀 이반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천재가 주인공인 <이반검열>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고편 형식의 증언들이 나온다.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찍을 청소녀들의 증언과 <이반검열> 이영 감독의 전언을 토대로 구성해본 상황은 심각하다. 19살인 청소녀 이반은 “후배가 반쯤 미쳐 살다가 자살했다”고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그의 후배가 이반이라는 소문이 학교에 돌았고 교사는 부모를 불러서 ‘아우팅’(원하지 않는 커밍아웃)을 시켰다(물론 ‘보호’의 명분, ‘지도’의 의도였을 것이다). 부모는 후배를 자퇴시키고 정신병원에 데려갔다. 결국 후배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하고 말았다. 고3인 청소녀는 친구들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10여 명의 동급생이 “레즈비언이 어떻게 학교에 다닐 수 있어?”라며 교무실 앞에서 구타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깨가 탈골되고 발목 인대가 늘어나는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정작 처벌은 피해자가 받았다. 그는 집단구타 재발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한 달 동안 수업도 들어가지 못한 채 교무실에서 근신해야 했다. 그는 부당한 처우를 부모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면 커밍아웃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이반검열>에 등장하는 청소년들. 이들은 "여자를 좋아하는 게 마음대로 되느냐"고 항변한다.

절반 이상 언어폭력, 20% 신체적 폭력 경험

이처럼 한국은 반동성애 폭력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특히 학교에서 집단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청소년 동성애자에게 폭력의 위험은 커지고 있다. 강병철씨의 논문에 따르면, 조사 대상 청소년 동성애자의 절반 이상(52.9%)이 욕설 등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20% 정도는 신체적인 폭력을 당하거나 소지품이 망가진 적이 있으며, 신체적인 구타나 무기로 공격하는 심각한 수준의 폭력을 당한 경우도 10%가 넘었다. 아우팅도 심각한 문제였다. 32명(32.4%)이 아우팅을 당한 적이 있고, 이 중 14명이 아우팅으로 친구와 교사에게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부당한 처우로는 ‘교무실에 불려가 반성문을 썼다’ ‘따돌림을 당했다’ 등이 있었다. <이반검열>에서 한 청소녀는 “성경책 한 권을 그대로 옮겨적을 때까지 수업에 들어가지 말라는 처벌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아우팅은 자퇴로 이어지기도 한다. 올해 18살인 재민(가명·남성)은 탈학교 청소년이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고1 때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그가 다시 학교에 돌아왔을 때, 학교에는 동성애자라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학생들은 수군거렸고, 교사들도 불편해했다. 재민은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가족의 몰이해와 또래집단의 왕따는 청소년 동성애자를 학교 밖으로 밀어낸다. 자퇴를 넘어서 가출로 내몰기도 한다. 강병철씨의 논문에서도 커밍아웃시 상대의 수용도가 부정적일수록, 반동성애 폭력 경험이 많을수록, 아우팅을 당한 경험이 있을수록, 동성애자 친구가 적을수록 자살의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은 청소년 동성애자들이 극단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저하게 숨죽이고 살거나 모든 관계에서 탈출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처럼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변했지만, 사회는 여전한 가운데 ‘충돌’이 일어난다. 성인뿐 아니라 청소년들의 동성애에 대한 태도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장재홍 등의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 청소년들은 동성애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34.7%)는 반응을 가장 많이 보였다. 그 뒤를 ‘징그럽다’ ‘정신병이다’ 등이 차지했다. 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와는 다르나 그럴 수 있다’는 긍정적인 대답은 9.3%에 그쳤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05년 10월 서울의 고등학생 101명(여성 49명, 남성 54명)을 대상으로 동성애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이 조사에서도 63%의 학생들이 ‘남자와 여자만 서로 사랑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라고 믿고 있었고, 44%의 학생들이 ‘동성애는 정신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커밍아웃은 쉽게 아우팅으로 이어지고, 자칫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동성애자 인권운동가들은 “준비되지 않은 커밍아웃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충고한다.


△ 편견은 펑소년 동성애자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된다. 자살한 청소년 동성애자를 추모하는 집회. (사진/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제공)

인터넷, 동성애 사회에 접속하는 통로

물론 커밍아웃이 비극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올해 고3인 해준(가명·남성)이는 올 2월 어머니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라고 말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는 아직 아들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강요를 하진 않는다. 해준이는 학교 친구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했지만, 친구들은 비밀을 잘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해준이는 겉보기에 친구 많은 학생이지만, 속으로는 ‘외톨이’라고 느낀다. 친구들이 끝끝내 동성애자인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해준이의 외로움을 풀어주는 사람들은 동성애자 친구들이다. 해준이는 중2 때 처음 동성애자 사이트에 접속했다. 고2 때부터 동성애자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고, 고3 여름에는 동성애자 인권단체가 주최하는 청소년 동성애자 학교에 참여했다. 수능 시험이 끝난 주말에 해준이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왔다. 동성애자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이다. 이들처럼 동성애자 청소년들에게 인터넷은 동성애 사회에 접속하는 통로이자, 동성애자 친구를 만나는 길이다.

이송희일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은 21세기의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비트 퀴어 세대”라고 부른다. 이송희일씨는 “90년대 세대가 인권운동, 퀴어 퍼레이드, 이태원 게이 문화 등을 통한 가시적이고 대면적인 체계에 의존했다면, 2000년대의 청소년들은 인터넷 카페와 화상 채팅 등 비트 입자 속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구성한다”며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가상 공간에서 시작해 가상 공간에서 완결시키는 새로운 세대”라고 말했다.

해준이와 친구들은 모두 중2 때 인터넷을 통해 동성애자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고2 때 인터넷 모임을 통해 동성애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강병철씨의 논문에 따르면,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대부분 인터넷(70%)이나 친구(23.1%)를 통해 동성애 커뮤니티에 접근한다. 이송희일씨는 “학교가 이성애를 재생산하는 포디즘(전통적인 대량생산 시스템)의 공장이라면, 인터넷은 자율학습을 지원하는 섹슈얼리티의 학교”라고 분석했다. 한편 조사 대상 청소년들이 동성애 성향을 인지한 시기는 중학교 때가 60.0%(63명)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18.1%(19명), 고등학교 11.4%(12명) 순서였다. 남성 동성애자들이 일반적으로 성경험을 통해 정체성을 깨닫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시기가 빠른 반면, 여성 동성애자는 성 정체성을 깨닫는 시기가 남성 동성애자보다 늦은 편이다. 여성의 동성애는 ‘우정’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청소년의 성은 우리 시대 뜨거운 감자다. 동성애뿐 아니라 이성애에도 편견은 남아 있다. (사진/ 류우종 기자)

도움주지 못하는 상담 시스템

이날 해준이와 함께 다닌 병욱(가명·남성)이는 충청도의 중소도시에 살고 있다. 고3인 병욱이는 고1 때부터 성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기 시작했다. 병욱이는 “남자도, 여자도 좋았다”며 “혼란스러웠지만 상담할 사람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병욱이는 여자친구도 사귀어봤지만 친구 이상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민 끝에 고2 때부터 동성애자 사이트에 접속해 다른 동성애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송윤옥 청소년 상담전문가는 “동성애 고민을 상담하는 청소년들이 늘고 있고 연령대도 낮아지고 있지만, 학교 안팎에 상담 시스템은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상담자부터 동성애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고, 정확한 정보도 부족해서 상담을 꺼리게 된다”고 말했다. 교사와 상담가에 대한 성 정체성 교육부터 절실하다는 것이다.

올해 대학 1학년인 정혜(가명·여성)도 청소년기의 혼란을 혼자 감당해야 했다. 교회에 다녔던 정혜는 중학교 시절 고민을 감당하기 어려워 목사에게 상담을 요청했다. 목사에게 “여성인데 여성을 사랑해서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지만, 목사는 “이 어둠의 자식아, 당장 이곳을 떠나라!”는 ‘응답’을 받았다. 정혜의 고민은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풀리지 않았다. 정혜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친구를 사랑했지만 고백하지 못하는 고통을 받았다. 몇 번이나 학교 상담실의 문을 두드렸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혜는 “상담이 절실히 필요해 찾아갔지만, 막상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털어놓지 못한 채 엉뚱한 이야기만 늘어놓다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고백해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그의 말문을 막아버린 것이다.

정욜 동성애자인권연대 활동가는 “미국 매사추세스츠주 교육위원회의 경우, 위기에 놓인 성 소수자 청소년을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동성애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성애자-동성애자 연합 모임을 지원한다”며 “한국에서도 서둘러 청소년 동성애자를 위한 상담과 지지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이중의 굴레에 놓여 있다. 청소년은 아직 무성적 존재라는 나이주의와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이성애주의가 청소년 동성애자들을 둘러싼 현실이다. 하지만 청소년 동성애자는 어른들의 기대와 달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헤매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조차 없다. 지금 여기에서, 청소년 동성애자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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