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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물학도  (2005-12-16 18:48:40, Hit : 107, 추천 : 13)
제목  
   황박사의 언론플레이 그 끝은 어디일까?
우려했던 대로 황박사는 "논문조작의혹"에 "원천기술이 있는데 재연해 보이면 되지 않느냐? 시간과 기회를 달라"라고 당당히 요구하고 있군요. 더불어 누군가 자신을 음해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있다며 검찰의 수사까지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황박사가 또한번 수준급 언론플레이를 선보이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있군요....

1. 이번 사건의 핵심은 "논문조작의혹"이다.

이번 사건은 누가 뭐래도 황박사팀이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서 복제된 배아줄기세포를 만들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2005년 사이언스논문이 조작된 데이타를 기반으로 작성된 것이냐 아니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황박사는 '인위적 실수'라는 말로 데이타조작을 간접 시인을 하면서도, "음해세력이 있다"는 둥 "원천기술이 있다"는 둥 하면서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황박사의 말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황박사가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그렇게 당당할 수는 없습니다. 데이타 조작은 비전공자의 눈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소한 실수"로 보일지 몰라도 과학자에게는 근본자질을 의심켜하는 사안입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로만 보더라도 황박사의 다른 논문도 검증해야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수준입니다). 그 사실을 황박사가 몰라서 저렇게 당당한 것이라면 그런 분이 국가 핵심 BT 연구과제의 책임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운 것이고, 알고도 저렇게 당당한 것이라면 정말 뻔뻔스럽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중간고사 때 부정행위 하다가 걸린 놈 왈 “그 정도 점수 받을 실력은 충분히 있다. 기말고사때 내 실력을 보여줄게...” 이러는 것 하고 다를 게 없습니다.


2. 원천기술만 있으면 됐지 논문조작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인가????

현재의 분위기로 봐서는 황박사팀이 체세포복제를 통해 배아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면죄부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물론 "줄기세포를 몇 개(8개? 12개?) 만드는 것 까지 성공했는데, 관리를 잘못해서 잃어버리고 지금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주장이 사실일 가능성도 있는데 실제로 논문까지 발표해 놓고 중요한 자료를 실수로 잃어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박사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논문조작의 심각성으로 봐서 황박사는 이미 학자로서의 자질을 잃었고 따라서 앞으로 황박사는 다시 논문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학계를 지탱해온 중요한 룰 중의 하나가 데이타를 속이지 않는 다는 것인데, 데이타 조작이 밝혀질 경우는 (기술이 있고 없고 여부를 떠나서) 국제적으로 거의 퇴출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만약 정부가 계속 연구비를 지원하고 황박사를 감싼다면 한국 생물학계 전반이 국제적으로 외면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황박사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져 체세포복제된 줄기세포주를 다시 만들어 낸다고 하더라도 그 "원천기술"이라는 것이 황박사만 할 수 있는 그런 기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논문으로 발표된 기술, 재료 등은 발표하는 순간 비영리 목적의 연구를 위해 요구가 있을 때는 제공해 주는 것이 원칙이자 의무입니다. 따라서 만약 황박사팀이 정말 실현가능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논문에 기술한 방법이 거짓이 아니라면, 논문으로 발표된 이상 비영리목적의 연구를 위해서는 누구나 그 기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설사 황박사팀이 그 기술을 직접 제공하지는 않더라도 다른 연구팀에 의해 쉽게 재연이 될 것입니다. 물론 황박사팀이 그 동안 쌓인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정말 그렇게라도 믿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앞선 건 사실이겠지만 그 차이가 좁혀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특히나 만약 황박사팀이 앞으로 재연한다면 언론에 생중계되다시피 할 텐데 (노하우가 있더라도 다 밝혀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 보고도 못 따라하면 바보들이죠...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황박사팀이 핵치환 기술 말고 사실 줄기세포에 대해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업적(가장 중요한 것이 줄기세포를 변형되지 않게 배양하는 기술과 줄기세포를 원하는 세포 또는 기관으로 분화시키는 기술)이 전혀 없다는 사실인데, 그 말은 결국 줄기세포 연구에서 황박사팀이 별로 경쟁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투자해오고 믿어왔던 것이 아까워 황박사에게 미련을 가질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만약 황박사가 정말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고” 정말 대단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다면 이렇게 언론플레이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한 후에 바이오벤쳐를 열어서 특허도 제대로 걸고 국익도 제대로 만드는 것이 명예회복의 유일한 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사실 전 개인적으로 “줄기세포가 있었다”라는 주장도 별로 신빙성이 없어 보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만약 그 주장이 사실이라면 논문을 투고하기 전에 줄기세포를 잃어버렸어야 되는데 (논문투고전에 줄기세포가 있었다면 그렇게 중복된 사진을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때 까지 논문 투고를 미루던지, 백보를 양보해서 논문 투고가 급했다고 한다면 일단 투고해 놓고 그동안 줄기세포를 다시 만들려고 무지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줄기세포가 없다면 그것은 만들려고 해도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나중에 만든 6개는 3개월 만에 만들어 졌다고 했는데, 그 실력으로 그동안 뭐 했을까요 하나도 못 만들고..).
둘째, 지금 냉동보관중인 줄기세포주를 다시 풀어서 키우고 있다고 말하는데, 줄기세포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가 냉동보관중인 세포주가 있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냉동보관중인 줄기세포주가 있다면 PD 수첩이 DNA 검증을 요구했을 때 그것들을 풀어서 줬어야 정상적인데 그렇게 하지 않고 엉뚱한 것 줬다가, 막판에 몰리자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냉동 세포주를 다시 풀어서 키운다는 것인지....

어쨌든 우리는 지금 참담한 기분으로 국민영웅인 한 스타 과학자의 비굴한 최후를 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결코 황박사 한 명의 사기극으로 마무리 될 성질이 아니며, 과학정책이라는 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라고 불리는 근본 방향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정치적으로는 정책의 실패에서 오는 탈출구로서의 “황우석 우상화”라는 우민화 공작에 대해 반듯이 권력핵심에게 책임을 물어야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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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mas 2005-12-1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은 글이네요.
추천하고 퍼갑니다. :-)
 

 

종교상의 불행은 한편으로는 현실의 불행의 표현이자 현실의 불행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강조!-제가 강조하는 겁니다.)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을 상실해버린 현실의 정신이다.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중에서-

한동안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나쁜 내 머리를 탓했습니다. 서문도 이해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본문이야! 그러나 몇 권의 다른 책을 계기로 이 문장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종교의 기원, 엥겔스의 포이에르 바하와 독일 고전 철학의 종말이라는 저작을 통해서요.

황우석교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근대의 정신은 신에서 인간으로 미신에서 과학으로 종교에서 (인간의) 본성으로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서구의 기준으로 따지면 빅토리아 시대같은 인간 본성에 대한 억압의 시기가 있었지만 분명하게도 종교적 금기, 윤리적 제한으로부터 본능에 충실한 인간적인 삶을 찾아냈던 것이 바로 근대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종교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또한 있어 왔습니다. 특히나 어렵고 힘들때 종교는 더욱 절실해지기 마련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들이 왜 종교에 귀의를 하는지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곤궁한 상태, 정신을 잃어버린 죽음앞의 인간이 종교를 찾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지요. 사형수는 종교에 귀의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정신을 찾는 겁니다.

그렇다면 황우석 교수라는 과학자가 어떻게 한국에서 하나의 종교적 신앙의 형태로 변이가 됐을까요? 혹시나 우리나라 시민들이 곤궁한 상태에 있었던 게 아닐까요? 어려운 경제 상황을 돌파할 추진체가 될 것이 필요했는데 우리앞에 황우석이라는 인물이 나타납니다. '사회 과학'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무능한 정부-보수 정당에게는 호재가 됐을 겁니다.

시민들은 곤궁한 상태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아우성인데 애초에 그러한 것을 해결한 의지도 별로 없고 능력은 더더욱 없는 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과 정신(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정신을 만들어주는 것이겠지요. 정치가들이 드디어 새로운 신앙을 찾았을 때, 언론들은 옆에서 설교를 하기 시작합니다.

33조가 될 것이다, 한국을 선진국으로 진입을 시켜 줄 것이다. 놀라운 것은 걸핏하면 서로 싸움박질이나 해대면서 으르렁거리는 자들이 33조라는 금전적 희망앞에서는 공통의 신앙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수구 신문의 독자 게시판과 걸핏하면 개혁을 부르짖는 현 정부의 지지자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는 사이트의 게시판이 비슷한 글로 가득찼습니다.

민주노동당같은 좌파는 이 상황에서 수구와 노빠들로부터 공통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제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이 비이성으로 똘똘뭉친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들(수구와 노빠)이 절대적으로 옳았거나 아니면 광기로 뭉쳤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전자는 아닌 게 밝혀졌으니 이제 남은 것은 후자 뿐이지요.

민주노동당과 같은 좌파와 엠비씨, 프레시안은 과학과 싸우고 있었던 게 아닙니다. 신앙과 그것도 사이비 신앙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래서 이렇게 힘들었던 겁니다. 사실 난감하지요. 민주노동당은 사이비 신앙에 물들었던 자들로부터 지지를 받아 집권을 해야 하는 정당이라는 점에서요. 우울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곤궁한 피조물을 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들을 마냥 그렇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http://www.jinbonuri.com/bbs/view.php?id=fight_board2&page=1&sn1=&divpage=1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0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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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판 '황우석 스캔들'에서 '신뢰회복책'을 배운다"
  [제언]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면…

 

어제 노성일 이사장의 폭탄발언을 계기로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실성을 둘러싼 우려가 사실상 현실로 드러났다.
  
  그간의 논란 과정을 쭉 되짚어 보면, 크게
보아 〈사이언스〉가 검증했으니 문제 없다는 입장과 〈사이언스〉 같은 학술지는 연구자의 정직성을 전제로 해서 제출된 자료만을 심사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입장이 서로 충돌하는 모양새를 띄어 왔다. 이 중 후자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2002년 가을에 드러난 물리학자 헨드릭 쇤의 기만행위 사례를 들어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저명한 저널도 종종 '실수'를 하곤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곤 했다(☞관련 기사 바로보기)
  
  다소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이번 공방을 계기로 쇤 사건과 같은 과학에서의 기만행위 사례에 관심이 커진 것은 앞으로의 연구윤리 논의를 위해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쇤 사건은 기만행위에 대처하는 제도적 장치가 이미 잘 갖춰져 있던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그런 경험이 거의 없었던 한국의 상황에는 사실 썩 잘 들어맞지 않는다.
  
  헤르만-브라흐 사건 : 과학 선진국 독일의 '황우석 스캔들'
  
  필자가 생각하기에 황 교수 사건으로부터 한국 과학계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쇤 사건이 아니라 1990년대 후반에 독일에서 있었던 일명 '헤르만-브라흐 사건'이다. 이는 유전자 치료와 암 연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두 명의 분자생물학자 프리드헬름 헤르만(Friedhelm Herrmann)과 마리온 브라흐(Marion Brach)가 공저한 수십 편의 논문에서 기만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독일 과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일대 사건이었다.
  
  헤르만-브라흐 사건의 발단은 두 사람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했던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르만은 독일 통일 후 동베를린에 세워진 국가연구센터인 막스 델브뤽 분자의학센터(MDC)에 실험실 공간을 얻어 20여 명의 과학자들로 연구팀을 조직했는데 브라흐는 팀에서 네 명의 그룹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들은 줄곧 공동 연구를 하다가 1996년 초에 헤르만이 울름대학에, 브라흐가 뤼벡대학에 각각 정교수 자리를 얻어 베를린을 떠났다.
  
  두 사람의 기만행위가 드러나게 된 것은 1997년 초, 그들의 연구 데이터 중 일부가 조작됐다는 의심을 품은 베를린 연구팀의 한 박사후 연구원이 이 사실을 멀리 뮌헨에 있던 자신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에게 상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지도교수는 이 사실을 막스 델브뤽 센터, 울름대학, 뤼벡대학에 각각 알렸고, 고발 내용을 추궁당한 브라흐는 자신이 헤르만과 공저한 4편의 논문에서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실토했다.
  
  그녀는 서로 연관이 없는 방법론을 사용한 서로 무관한 실험들에서 나온 이미지 파일들을 "뒤섞고 잘라 붙여" 새로운 실험 데이터를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헤르만 역시 조작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헤르만은 베를린에 있을 당시의 연구 프로젝트는 네 명의 그룹 책임자들에게 일임해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조작의 모든 책임을 브라흐에게 돌렸다.
  
  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막스 델브뤽 센터, 울름대, 뤼벡대는 각각 조사위원회를 꾸렸고, 각각의 대표들이 모이는 국가 차원의 조사위원회도 구성되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헤르만과 브라흐의 실험실로 들어가던 연구비 지급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즉각 중단되었다. 이들 위원회는 헤르만과 브라흐가 쓴 다른 논문들의 조작 여부를 조사했고, 결국 두 사람이 공저한 37편의 논문들에서 데이터가 조작된 것이 확실하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most probably)"고 결론 내렸다.
  
  이에 따라 브라흐는 1997년 9월 뤼벡대에서 파면되었고,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던 헤르만은 다음해 9월 스스로 교수직에서 물러났다. 1998년 4월 독일연구재단(DFG, 미국의 국립과학재단 NSF에 해당하는 연구비 지원기구)은 이 사건의 파장을 좀 더 완전하게 평가하기 위해 태스크포스 팀을 구성했다. 이 팀은 조사 대상을 넓혀 1985년부터 1996년 사이에 헤르만이 저자로 들어간 347편의 논문을 조사한 후, 2000년 6월에 이 중 94편의 논문(브라흐와 공저한 53편 포함)이 조작된 것이 확실하거나 그랬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문제제기 못한 독일 젊은 연구자들이 사태 악화 '원인'
  
  이 사건은 독일 과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미쳤다. 독일 과학자들은 기만행위의 엄청난 규모에 경악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러한 사실이 너무나 늦게 밝혀졌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느꼈다. 이 사건에서 베를린 팀의 젊은 연구자들은 헤르만과 브라흐의 데이터 일부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상당기간 동안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앞날이 위협받을까 두려워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이 사건 이전에는 독일의 연구기관이나 지원기관 중 과학에서의 부정행위 고발 처리에 관한 공식 지침을 갖추고 있는 곳이 거의 없었고, 따라서 젊은 연구자들이 자신의 신원을 보장받으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적절한 창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독일에서 기만행위와 연구윤리 문제를 다루는 제도적 장치가 정비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먼저 독일 내 73개 기초연구기관을 관할하는 막스플랑크연구회(MPS)는 1997년 12월, 부정행위로 의심되는 사건이 생겼을 때 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관한 내부 규정을 승인했다. 이에 따르면 MPS 산하 연구기관에서 부정행위에 대한 의심이 제기되었을 때, 해당 기관의 소장은 내부고발자의 신원을 보호하면서 즉각 기관 내에서 비공식 조사를 실시하고 MPS의 연구담당 부회장에게 이 사실을 비밀리에 알려야 한다.
  
  부정행위 고발을 당한 사람은 2주간 소명의 기회가 주어지며, 이로부터 다시 2주 내에 공식 조사가 발족될지 여부에 대해 전해 듣게 된다. 공식 조사가 발족되는 경우 이는 새로운 상임위원회가 담당하게 되는데 MPS 이사회에서 선출되는 조사위원장은 MPS나 그 산하기관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어야 한다. 조사위원회는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고 처벌에 대한 권고안을 낼 수 있고, 가능한 처벌 방법은 단순 경고, 연구비 환수, 파면, 그리고 극단적인 경우 검찰에 대한 고발 등이 포함된다. MPS 회장은 이 중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기회'를 '위기'로…연구윤리 프로그램 마련돼
  
  아울러 MPS 이사회는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연구윤리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 프로그램은 부정행위를 저지른 소수의 과학자를 잡아내는 것보다 부정행위의 예방이 더 근본적인 대책이라는 믿음을 반영하여, 실험 노트를 정리하는 올바른 방법, 논문의 저자를 결정하는 기준, 논문에 대한 기술적 기여를 인정하는 기준 등의 쟁점들과 연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의 내용을 교육하게 했다.
  
  2000년 12월에 MPS는 산하 연구기관에서 근무하는 과학자들에 대해, 훌륭한 과학 실천을 위한 지침을 지키겠다는 동의서에 대한 서명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규정은 연구자들이 10년간 실험 자료를 접근 가능한 형태로 보관해야 하고 논문에 쓰인 실험 프로토콜이 복제될 수 있도록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또한 논문에서 명예 저자표시(honorary authorship)를 불허하고 젊은 과학자들이 적절한 지원과 감독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한편 대학연구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는 DFG 역시 위원회를 구성해 훌륭한 과학 실천을 위한 지침을 마련했다. 대학은 좋은 과학 실천의 규칙들을 교육해야 하며, 대학마다 옴부즈맨(민원조사관)을 두어 의심이 가는 과학 실천이 있을 때 젊은 과학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독립적 중재자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DFG는 이러한 지침의 강제를 위해 2002년까지 규정을 갖추지 못한 기관에게는 DFG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될 거라는 엄포를 놓았고 이는 실효를 거두었다. 아울러 DFG는 각 대학의 옴부즈맨 외에 자체적으로 세 명의 상임 옴부즈맨을 따로 두어 지방 차원에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담당하게 했다.
  
  과학계 자정 능력 상승의 기회로 삼자
  
  헤르만-브라흐 사건에 대한 독일 과학계의 대응과정과 이로부터 촉발된 제도적 변화는 현재 한국의 상황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독일에서는 내부고발 이후 관련 연구기관들 모두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문제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과정을 공개함으로써 국제 과학계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반면 한국에서는 서울대가 황우석 교수의 요청을 받고 나서야 뒤늦게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을 뿐, 미즈메디병원이나 한양대병원 등의 여타 기관들은 그런 움직임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 과학계의 신뢰도를 크게 손상시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며, 지금부터라도 즉각 모든 관련 기관들에서 사건의 경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또한 독일의 전례에서 볼 수 있듯, 황우석 교수의 논문 진실성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과학에서의 기만행위를 다루고 젊은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를 교육할 과학계 내부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 지난 한 달여 동안의 사건 진행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에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면서 기만행위의 고발을 접수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조사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대학이나 연구소, 지원기관, 정부부처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외국의 전례들을 참고해 과학에서의 부정행위를 조사하는 표준적 절차와 담당기구를 대학 등의 연구기관이나 지원기관에 만들 것이 요구되며, 필요에 따라서는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중앙 행정관청(미국 보건복지부 산하의 연구윤리국 ORI가 그런 예다)을 설치하는 것도 고려해 봄직하다. 아울러 대학(원)에서는 훌륭한 과학 실천을 구성하는 주요 내용을 지침으로 만들어 대학원생과 연구자들에게 교육하는 과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들 제도의 마련은 이번 사건을 통해 크게 흔들리고 의심받은 한국 과학계의 자정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명진/성공회대 강사(과학기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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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공황'을 극복하는 길  
  '황우석 공황'을 극복하는 길  
  2005-12-16 오전 10:05:46      

  전대미문의 환란(換亂) 사태로 결국 IMF 구제 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1997년 11월 21일이 바로 이랬다. 물론, 전조가 있었다. 양식 있는 전문가들의 지속된 경고도 이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여전히 장밋빛 미래를 되뇌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다가 "꽝"하고 일순간에 무너졌다. 국민들은 공황에 빠졌고, 그 뒤 눈물과 분노 없이는 듣기 어려운 비극들이 수없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했다.
  
  '황우석 공황',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결국 11개라고 주장하던 맞춤형 줄기세포는 거짓임이 드러났다. 2개는 있을 것이란 말도 들리지만, 더불어 제기된 여러 의혹과 정황들은 아예 줄기세포의 존재를 부정하는 쪽에 기울어 있다. 연구 결과의 날조(fabrication)가 아니라 더 심각한 위조(falsification)라는 것이다.
  
  이미 황우석 교수와 국내 과학계는 때를, 그것도 매우 중요한 때를 벌써 3번이나 놓쳤다. 첫 번째 실기는 황 교수께서 난자 관련 윤리 의혹에 대해 떠밀려 사과함으로써 세계 과학계의 구설에 오른 일이다. 두 번째에도 서울대 수의대 기관윤리위원회(IRB)가 자체 조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힘으로써 또다시 국내 과학계가 자정 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보이는 데 실패했다. 세 번째 실기는 더 참담했다. 이제는 다른 사람의 입과 진술을 통해 치명적인 연구 부정행위가 드러나게 되는 수모를 겪은 것이다.
  
  이 사건은 IMF 환란 사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적어도 그 때는 국민들이 금이라도 모아서 해결에 대한 의지를 표출하고 또 실제로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황우석 교수가 때마다 강조하시던 '성녀(聖女)'들의 난자를 모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의혹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익명의 많은 젊은 과학자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음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다. 따라서 이제 이들이 선배 과학자들의 과오로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기에 사태를 수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단 한번밖에 더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영롱이, 스너피, 줄기세포…철저한 검증 절차 밟아야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게 있다. 오늘 필자의 기고는 철저히 공적인 관점에서 작성된 것이다. 따라서 인간적인 정리(情理)는 배제했다. 아울러, 또 다시 이 사건을 '의학계 대 비의학계', '외국파 대 국내파'의 대립 구도로 규정하려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배격돼야 한다. 이 절체절명의 사태 앞에서 다시금 편 가르기로 반사적 이익을 찾으려 한다면, 이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두 번 범하는 것이다.
  
  이 사태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제기된 의혹이 지금 문제가 된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웨이드 기자는 〈네이처〉의 편집장을 지내기도 했고, 연구 부정행위에 관한 실제 사례를 조사해 저서로 펴내기도 한 이 분야의 전문가다. 웨이드 기자는 여러 차례 필자와 전화 통화 및 이메일 교환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했다.
  
  "모든 연구 부정행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실제 부정행위가 드러나기 매우 오래 전부터 이미 자료 조작(data cooking)이 시작됐다는 사실이다."
  
  벌써부터 2004년 〈사이언스〉 논문의 진위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며, 국내 최초의 복제소인 영롱이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그렇지 않아도 체세포 핵이식 줄기세포에 대한 의혹이 사실로 입증됨으로써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린 황 교수께서는 물론 억장이 무너지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 의혹들을 불식시킬 책임(burden of proof)은 이제 당신에게 주어져 있음을 정중히 알려 드린다.
  
  왜 그런가? 서울대가 자체 진상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 이전에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과학으로 풀어야 한다'며 후속 연구와 논문을 통해 줄기세포의 진위를 입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얼핏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정직한 오류(honest error)'만이 후속 연구의 재현으로 이전 논문의 진위를 입증해도 무방하다는 '연구 부정행위 처리의 대원칙'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나온 주장이다.
  
  즉 당시에 가용한 정보와 기술 수준으로는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었던 경우에 한해 후속 연구에 의한 진위 검증이 타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필자가 이전 기고를 통해서 밝힌 것처럼, 제기된 의혹은 결코 정직한 오류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중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해야…
  
  더 중대한 문제가 또 있다. 황우석 교수가 만들었다고 '주장'한 핵이식 줄기세포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수 없이 많은 여성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이전 논문의 결과가 막연히 사실일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실시되는 후속 연구에 위험을 무릅쓰고 난자를 기증하는 셈이다. 요컨대 난자 매매나 암묵적 강제에 의한 난자 공여와는 비교도 할 수도 없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
  
  연구 부정행위가 선량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범죄 행위로 간주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안이 이러함에도 후속 연구의 결과를 기대하거나 또는 들리는 것처럼 냉동 줄기세포를 복원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더 큰 과오를 범하는 것임을 감히 말씀 드린다. 이러한 연구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라, 지금 더 시급한 과제는 이전 연구와 관련해 제기된 의혹을 낱낱이 해명함으로써 한 점의 거짓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것만이 자발적 난자 제공자의 선의를 악용하지 않는 길이다. 동시에 이전의 과오에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방법이다.
  
  문제가 된 연구에 저자 등으로 관여한 20여 명의 자칭 '학자'들의 신상에 대한 조치는 해당 대학이나 기관에 맡길 일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분명한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 연방규정(42 CFR Part 93)은 관련자에 대한 연구비 지원 중단은 물론, 심지어는 거짓 결과를 내기 위해 기존에 사용한 연구비까지 물어내도록 요청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 공무원이 이러한 연구 부정행위에 직간접으로 관여했으면 형사법에 따른 소추 대상이 된다. 물론 모든 연구 부정행위 관련자는 앞으로 어떠한 정부 관련 자문위원의 자격도 얻을 수 없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구 부정행위를 통해 선량한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 행위를 주도 또는 묵과한 사람들이 한 국가의 과학 기술 정책을 좌지우지하도록 내 버려둬서는 안 된다는 확신의 표현인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 사태의 전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우리 사회에 아직 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양심과 진실의 불씨를 확인했다. 강양구 기자로 대표되는 〈프레시안〉은 온갖 박해와 매도에도 불구하고 정론을 지향함으로써 상황에 따라 춤추듯 요동하는 대형 언론사의 이중적 행태를 매우 부끄럽게 만들었다.
  
  비이성적 네티즌들의 폭거로 회사의 존망을 앞에 둔 상태에서도 진실 보도의 원칙을 지켜낸 〈PD수첩〉은 우리에게 그래도 행동하는 양심적 지성이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아울러, 의혹을 파헤치는 데 결정적 공로를 한 많은 젊은 과학자들의 존재는 필자처럼 외국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자부심이 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오직 목숨을 걸고 이 엄청난 연구 부정행위를 제보한 '내부 고발자'의 용기 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필자는 이 분께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기립 박수(standing ovation)'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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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니?
과학적 사고의 부재... 아쉽다.

여전히 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줄기세포 하나에 올인을 한다...

기회만 되면 대중의 광기가 날뛰는 이 나라가 무섭다.
미안하지만, 황우석 당신은 철저하게 파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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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2-16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밉지만 불쌍하네요.

라주미힌 2005-12-1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을 보기 전 까지는 그래도 과학자의 양심이나 선의를 믿고 싶었는데,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환자들의 희망을 뻔뻔하게 팔아먹고, 광기에 휩싸인 사람들에 대한 책임, 월화수목금금금 40만원 받고 교수들 밑에서 온갖 드러운 일을 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학도들을 위해서라도
황우석에게 확실하게 그 책임을 지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사기극이었다는데에 분노를 느낍니다.
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