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순례 뒤돌아보기

낡은 책은 현재에서 멀어진 책. 낡아서 생기는 효과는 대개 두 방향. 컴퓨터처럼 업데이트가 가치인 분야는 쓸모 없어질 터이고, 문학작품처럼 쌓임으로써 빛나는 분야는 가치가 높아질 터다. 그러나 한 사회 또는 한 인간의 궤적인 점에서 전혀 값없는 것은 없다. 컴퓨터 용어의 변천에 관심둔 이한테는 사용설명서도 귀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헌책방은 그런 책을 파는 곳이다.

헌책방 순례라 했다. 순례는 찾아가며 예를 표하는 것이니 존숭은 아니어도 존중의 염이 깔렸다.

천지사방 흩어진 그런 책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이 헌책방 주인몫이다. 분별하는 눈썰미의 그들은 버려진 파지뭉치에서 쏠쏠한 것을 건져내고, 죽어서 흩어질 운명의 개인 장서를 거두어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필요한 이에게 전한다. 책은 돌고 돌아 낡지 않는 콘텐츠를 전하고 자체는 너덜거려 사라질 때 제값을 한다. 그 순환의 한 고리를 맡아 끊어지지 않도록 이어주니 헌책방 주인의 공덕은 작지 않다.

그들의 일과는 파지간과 고물상을 뒤지고, 묶어서 지고 나르고, 닦고 붙이고 꽂는 일. 폐포는 먼지가 쌓이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고 손은 갈퀴처럼 볼썽 사납다. 설핏 보아 힘들고 구질구질하여 맡은 바 구실과는 달리 영 폼나는 일이 아니다. 하여 때로 좀글붙이들한테 당신이 뭘 알아? 무시당하고, 좀노랭이한테는 거저 얻어 비싸게 판다고 타박을 당한다.

하니, 순례라 제목 붙여 그 노고에 경의를 표하기로 망발은 아닐 터이고 ‘책과 지성’ 섹션의 꼬리에 붙어 어색하지 않을 터이다.

“헌책방은 사양업종”이라는 말은 주인들한테서 더 쉽게 듣는다. 호시절이 있어 흘린 밥도 주워먹던 때가 그때다. 이제 밥 없으면 피자 사먹지 하는 때, 제 자식한테는 새 것만을 사주겠다는 사람들한테 헌책은 당치 않는다. 책방은 피자가게를 피해 한적한 골목에 돌아앉았고 핸드폰 가게에 밀려 고가도로 그늘에 숨어 지나가는 이의 눈길은 못 끌고 찾아오는 이의 발길이 닿을 따름이다.
책이 마른다는 얘기도 공통이다. 귀중한 고서는 해를 거르고 그냥저냥 쓸만한 책들조차 점차 만나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구제금융 이후 그런 현상은 더하니 새책의 출판과 소비가 줄어든 것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한다. 더불어 박제된 정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인터넷과 책을 권하지 않는 대학입시 제도의 영향으로 책이 팔리지 않은 탓도 있다. 그래서 책방 주인들은 눈에 띄면 띄는대로 책을 모아둔다. 동네책방은 웬만하면 중간상인들한테도 책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책과 손님의 연결망이 성글어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 인터넷 판매. 웬만한 책방이면 홈페이지를 만들어 두고 표지와 서지정보를 띄워 전국의 독자로 손님 삼는다. 특히 2차 책방의 경우 특화전략도 가능한 불황 타개책. 인문사회, 또는 미술 관련 서적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 고서 또는 희귀본만을 판매하는 곳이 그러한 예다. 이러한 곳은 입지가 중요하여 특정지역, 또는 인터넷에 둥지를 틀었다.

헌책방의 어려움은 책의 순환에서 조금이나마 숨통을 틜 수 있다. 책은 결코 모실 것이 아니다. 다만 지식과 정보, 그것을 순환시키는 매체로 의미 있을 뿐이다. 쌓아두어 죽은 책을 살리는 곳이 헌책방. 주변에 혹 썩어나는 책이 없는가 둘러보시라.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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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기자 = 인터넷서점 YES24(www.yes24.com)는 14일부터 도서 본문검색 서비스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 서비스는 책 제목과 저자 이름을 모르더라도 키워드 하나만으로 책 본문에 이르기까지 책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연금술사'라는 키워드를 입력하면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뿐 아니라 내용에 '연금술사'라는 단어가 포함된 도서까지 조회해 해당 도서의 본문 일부를 열람할 수 있으며 바로 구매도 할 수 있다.

YES24는 도서 본문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전차책 전문 업체인 북토피아(www.booktopia.com)와 제휴해 5만권이 넘는 콘텐츠를 제공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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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은 소수의 천재들이 실험실에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단 한 번에 내놓는 것인가? 과학적 가설이 일단 실험에 의해 검증되면 하나의 확고부동한 이론, 틀림없이 ‘참’인 이론이 탄생하는가?

저자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과학사에 나타난 흥미로운 7가지 사례를 들려주며 이런 깔끔한 도식은 오히려 예외적임을 보여 준다. 이들은 ‘과학사회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과학사의 이면을 훑으며 과학의 확실성에 덧씌워진 신화를 벗겨 낸다.

저자들이 보기에 과학적 논쟁이 해결되는 방식이 늘 과학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기준에 의해 논쟁이 종식되는 게 아니라 과학자 사회의 알력과 타협, 그리고 권력관계에 영향을 받았다.

가설이 있고 다음에 실험이 있고 그 다음에 확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새로운 이론에 ‘동의하기로 동의하기’가 있었기 때문에 상대성이론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어떠한 과학적 삶을 살아야만 하는지에 대해 과학계가 내린 결정의 결과로 생겨난 진리이다.”

“과학의 논쟁에서도 소수의 견해가 패배하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반드시 타당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숫자가 적거나 소수파가 먼저 죽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과학을 ‘골렘’이라 칭한다. 유대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창조물인 골렘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원래는 주인을 잘 따르지만 언제라도 미쳐 날뛸 수 있는 위험천만한 존재다.

과학에서 뭔가 잘못되면 과학 공동체는 모든 책임을 과학과 기술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인간의 실수 탓으로 돌린다. 과학 ‘바깥’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류는 과학이론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결론이다. 과학과 기술 역시 인간의 활동에 불과한 것이다.

뭔가 잘못되는 경우 그것은 피할 수도 있는 인간의 실수를 피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어떠한 과학이론도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이 완전한 확실성을 제공한다고 추정하는 바로 그 순간, 진리의 저울은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본질적으로 위험하다. 그러니 과학자들은 약속을 덜해야 한다. 그러면 약속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원제 ‘The Golem’(1993, 1998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

 

 

 ‘아발론 연대기’는 프랑스 작가 장 마르칼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방대한 저작들을 갈무리해서 내놓은 역작이다. 11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기 작가들이 쏟아낸 아더왕과 성배(聖杯)의 전설에 관한 저작을 모아 다시 썼다.

저명한 저작들은 물론 웨일즈와 아일랜드의 민담집 등 성배를 소재로 다룬 거의 모든 기록을 담아냈다. 시인이자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 작업에만 40년간 품을 팔았다.

저자 마르칼은 “켈트 영웅들이 한국 독자들을 꿈꾸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면서 영웅들의 모험담을 즐기는데서 벗어나 다른 문화와 다른 피부빛깔, 역사적 불화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나의 시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깨닫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기억의 물 깊은 곳에 파묻혀 있는 엑스칼리버를 다시 찾아낼 용기를 가진 자에게 신화는 깨달음을 준다는 설명이다.

〈김진호기자〉

 

우선 저자에 주목하자. 그는 '향료 전쟁' '위대한 두목 엘리자베스' '사무라이 윌리엄' 등으로 국내 독자에게 낯익은 논픽션 작가. 세계 각국을 포괄하는 역사여행과 탐험에 정통한 그의 글쓰기가 주목되는 점은 서구 중심주의 역사관을 살짝 비틀어대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스스로 일본에 머물렀던 백인 이야기를 선보였던 '사무라이 윌리엄'에 비해 '화이트 골드'는 훨씬 본격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역사의 한 장을 들춰보니 서구가 잘 나가기 이전 '역사의 그늘'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서구.백인.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되는 요즘이지만, 긴 시야로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준다. 재미를 보장하는 대중 역사서로 유감없다.

 

범죄의 정황들을 통해 범죄자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을 추정해내는 프로파일러의 작업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아울러 FBI의 흉악범 체포 프로그램, 범인의 행동증거 분석법, 지리 추정 프로파일링, 필체 분석, 범죄수사에 관한 최신 이론 등을 200여장의 사진과 함께 설명한다.

 

 

 

 

  김용래 기자 = '제국'의 저자인 이탈리아의 자율주의(아우토노미아)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네그리가 스피노자(1632-1677)를 새롭게 읽었다.

'전복적 스피노자'(그린비 펴냄)

근대 여명기의 철학자 스피노자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그의 '범신론'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면, 네그리는 스피노자의 정치철학에 주목해 그 정치적 의미를 현재의 문제로 이끌어냈다.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을 통해 초월적 권위나 목적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세계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구성한다는 메시지를 얻고 있다.

따라서 네그리의 스피노자는 현존하는 개체들의 능력 속에서 그리고 이들의 결합 속에서 영원한 신적(神的) 능력을 발견한 철학자로 새롭게 자기매김한다.

 

애덤 스미스에서 시작해 슘페터에 이르기까지 250년에 걸친 22명의 위대한 경제사상가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 경제사의 큰 흐름을 이해하게 해준다. 시대상황과 경제학자의 생애를 통해 그들이 경제학 이론을 창안하게 된 동기를 찾아내고 그 이론이 역사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각 이론들을 아우르는 공통의 줄거리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지은이는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지켜본 뒤 일곱 번째 개정판이자 최종판인 이 책에서 마지막 장을 완전히 새롭게 써서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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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5-12-17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또 지름신을 -.-... 추천 누르고 갑니다.

라주미힌 2005-12-17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주 신간 소식을 접하는데 꼭 몇 권씩 눈에 띄더라구요... 낡은구두님 많이 질러주세용.. ^^
 
 전출처 : 마태우스 > 황우석 단상

 

 

 

 

1. 왜 그랬을까.

황우석의 기자회견을 보고나니 마음이 착잡하다. 그의 회견에서 ‘사과’는 없었다. 오직 떠넘기기와 논점 일탈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가 말한 걸 100%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해도, 줄기세포 8개만 가지고 ‘줄기세포 11개를 만들었다.’고 논문을 쓴 건 명백한 사기다. 능력이 있다는 것과 사기를 쳤다는 것은 전적으로 다른 전제, 그러니 ‘줄기세포를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건 절대로 변명이 될 수 없다.


2004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은 200여개의 난자를 이용해서 딱 하나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 의미가 있을 뿐, 환자 맞춤형 어쩌고 하는 게 가능하려면 성공률이 더 높아야 했다. 최소한 10개가 필요했던 건 그 때문인데, 딱 10개로 맞추면 너무 속이 보이니 11개로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된다. 만약 8개만 성공했다면 사이언스에 실리지 못했을테니, 그건 노성일의 말대로 “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자회견장에서 황우석은 시종 당당했고, 말도 거침이 없었다. 그 당당함이 혹시 자신을 교주로 모시는 소위 ‘황빠들’로부터 나오는 건 아닐까. 실제로 기자회견 이후에도 황빠들은 눈빛이 살아있네 어쩌니 하면서 노성일을 비난하기 바빴다. “그래도 피디수첩이 잘못했다. 왜?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걸 보도했으니까.”라는 어느 황빠의 댓글처럼, 그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과학에 대해 무지한만큼 더 맹목적이 되어간다. 하지만 그들이 황우석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과는 달리 황우석은 그네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같다. 그간 해온 숱한 거짓말은 물론이고, 앞으로 할 수많은 거짓말 역시 그런 믿음에서 기인한다.


2. 주 저자

‘황빠’에서 ‘황까’로 순식간에 전향을 한 나는 전향자들이 흔히 그렇듯이 황우석에 대한 증오심을 드러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이 백의종군하겠다고 해놓고서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한데, 노성일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려는 게 비겁한 까닭은 논문에 등재된 스물다섯명의 저자 중 황우석이 주 저자(corresponding author)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대주주가 그렇듯이 주 저자는 논문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존재이며,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서 논문점수를 부여할 때 가산점을 받는다. 이름이 처음 나오는 제1저자에겐 가산점을 안주는 곳도 있지만, 주 저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다 (보통 학위생이 제1저자가, 지도교수가 주 저자가 된다).


우리 학교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국내잡지에 실린 논문 한편에는 150점이 부여되는데 저자가 셋이면 각각 50점을 받지만, 이름에 별표(*)가 들어간 주 저자는 거기다 75점(50%)의 가산점을 받아 125점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많은 가산점을 주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그 논문의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무한책임을 져야 할 황우석이 노성일을 맹렬히 비난하면서 사죄 대신 화를 내는 건 그야말로 적반하장이다.


3. 누구 말이 맞는가?

인터뷰, 그리고 반박 인터뷰. 지루하게 이어지는 인터뷰를 그대로 생중계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전파낭비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15일날 방영된 피디수첩을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가 향수는 좋고 방귀는 구리다는 정도의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라면, 황우석이 그런 식의 말들을 인터뷰에서 하는 게 얼마나 부적절한 것인지 알 수 있을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중 누구 말이 맞느냐고 묻는다면, 난 당연히 노성일의 손을 들어주겠다. 정황상으로도 그렇지만 내가 주목한 건, 황빠들이 비난했던 그의 작은 눈이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신뢰성이 있어보이는 황우석과 달리, 가끔 울기도 했던 노성일은 그 작은 눈만큼이나 불쌍해 보였다.


TV나 만화에서 간신을 묘사할 때, 늘 눈을 작게 그리기 마련이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눈이 작은 사람들은 남보다 더 정직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가장 눈이 작았던 나 역시 진작에 그런 진리를 깨닫고 정직하게 살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지인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믿는다.”는 말을 내게 한다. 눈이 크다는 것만 믿고 거짓말만 일삼는 사람을 생각하면, 눈 작은 게 언제나 나쁜 건 아니다.


4. 안규리

내가 황빠였던 시절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그를 옹호했던 건 사이언스에 대한 믿음도 작용했지만, (퀴리부인처럼 되라고 '규리'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안규리 교수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이유가 됐다. 미국서 돌아와 자기 실험실도 없었던 시절, 우리 교실의 한 귀퉁이를 빌려서 실험을 하셨다. 남의 공간에서 더부살이하는 것만큼 서러운 것은 없는 법,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연구를 하는 안교수의 모습은 내게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안교수는 그 논문이 조작이라는 걸 알았을까. 피디수첩에 의하면 줄기세포 관리는 몇몇 핵심인물이 했으니 안교수가 모를 수도 있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내가 아는 분이 2004년 논문에 관여했던 문신용 서울대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윤리 문제가 불거져 황교수가 사과한 데 이어 MBC도 취재윤리를 위반했다고 사과한 시점이었는데, “이렇게 일단락이 되는구나.”고 지인이 말하자 문교수는 고개를 저었단다. “그렇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말은 당연하게도 문교수가 논문의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 않을까 의심하게 만든다. 손을 뗀 문교수가 아는 것을 안교수가 몰랐을까. 그녀 역시 어느 시점에서는 논문이 조작된 것임을 알지 않았을까.


5. 곰팡이

“줄기세포가 곰팡이가 슬어 모두 훼손됐다.”는 말을 황우석에게 들었을 때, 좀 어이가 없었다. 세포를 키우는 과정은 무균적인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세포는 ‘클린 벤치’라는 지극히 깨끗한 시설 안에서 배양하는데, 거기서는 인간오염기인 나도 오염을 시키는 게 쉽지 않다. 하물며 줄기세포만큼 중요한 것을 곰팡이에 오염시킨다면 그곳은 더 이상 ‘랩(실험실을 좀 있어보이려고 부르는 말)’이 아니다. 보관용액으로 쓰이는 -80도짜리 액체질소에 곰팡이가 기어들어갈 여지도 없거니와, 웬만한 세포는 여러 개로 나누어 보관함으로써 한큐에 다 죽을 위험을 분산시킨다. 그러니 곰팡이 운운하는 것보다는 40만원씩 받느라 굶주렸던 연구원이 다 먹어치웠다고 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하고 설득력이 있다.


6. 내부 고발자

‘사이언스는 무오류의 잡지다.’는 걸 비롯해서 내가 했던 말은 대부분 틀렸다. 그래도 딱 한가지 맞춘 게 있다면, ‘그 많은 연구원들이 모두 침묵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피디수첩을 보니 최초의 제보자는 2004년 때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고, 그가 황박사를 떠난 이유는 황우석이 “해서는 안될 일을 해서”, 그리고 “말려도 안되니까”였다. 피디수첩은 그 제보를 받고나서 조사를 시작했고, 결국 김선종 연구원에게서 핵심적인 증언을 받아낸다. 물론 그의 증언이 없었어도 방영에 별 문제가 없었을 만큼 피디수첩의 취재는 충실했다. 난 사이언스만 알았지 피디수첩은 몰랐다. 종교계와의 싸움을 비롯해서 피디수첩이 명예훼손에 휘말린 건 한두번이 아니며, 그 과정에서 피디수첩은 성실한 취재만이 살길이라는 걸 몸으로 깨달았을 거다.


난 부르짖었었다. 과학계는 자체 검증이 가능한 곳이라고. 그러니 과학계 스스로 검증하게 하자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사이언스에서 논문이 취소된 독일 과학자의 경우 문제를 제기한 곳은 역시나 비슷한 연구를 하는 다른 대학의 연구진이었듯이, 황우석의 실체도 결국에는 밝혀졌을 것이다. 하지만 실험의 전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내부 고발자의 제보가 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과학계의 검증엔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을 테고, 황우석은 그 동안 ‘영웅’으로 군림하면서 천문학적인 연구비를 계속 받아냈으리라. 황우석의 연구에 기대를 했던 분들의 좌절은 마음이 아프지만, 그의 제보는 과학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황우석이 일주일간의 병실 생활을 끝내고 서울대 연구소로 출근했을 때 연구원들 몇몇은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사랑하는 대상을 상실해서 우는 울음, 가슴의 눈물샘을 건드려 시작되는 감동의 울음, 그때 왜 그랬을까 하는 회한의 울음, 누군가가 박해를 받을 때 박해 대상과 자기를 동일시함으로써 우는 것, 그리고 무서워서 우는 울음... 그들의 울음은, 내가 보기에, 자신의 수장이 박해를 받아서 나오는 “얼마나 고생했냐”는 울음이 아니었다. 표정으로 볼 때 그건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불안의 울음이었다. 그들은, 그게 조작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거다. 믿거나 말거나.


7. 자살

노성일의 폭로가 있던 날, 황우석이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한 사람이 제법 있었다. 그래서 안규리 교수도 그에게 정신과 의사를 보낸 것이겠지만, 기자회견을 보니 황우석은 절대로 자살할 사람이 아니었다. 자살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이 남아 있는 사람의 행위이다. 하지만 과학계에서 절대로 해서는 안될 짓을 해놓고도 다른 사람 탓만 하는 사람에게 쥐꼬리만한 양심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혹자는 말한다. 그래도 능력은 있으니 기회를 줘야지 않냐고. 하지만 과학계는 거짓말에 대해 일반 사회보다 훨씬 더 가혹하다. 사이언스는 물론이고 데이터 조작같은 짓을 했던 사람의 논문을 받아줄 학술지는 하나도 없다. 그러니 이제 황우석을 잊자. 지난 2년간, 그리고 최근 한달여 동안 우리 사회는 너무 황우석 얘기만 했다. 이 땅에 과학자가 황우석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사람도 그 혼자만은 아니다. 혹 그중 누군가가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한다고 해도 수십조의 부가가치를 산출한다느니, 강원래를 걷게 한다드니, 우리나라를 앞으로 먹여살릴 거라느니 하는 식의 기대는 하지말자. 황우석 스스로 자초한 면이 있지만, 황우석에 대한 과도한 기대가 그로 하여금 자멸의 길을 걷게 했다는 걸 상기하자.


8. 사족

노성일의 폭로가 있던 날,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잠깐 구상했던 거다. 부관참시라고 생각지 마시고 재미로 읽어 주시길.

 

[D 대학 서민 박사는 소의 대변에서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야클’이란 기생충을 발견했다. 서씨는 “올해 초 전남 곡성에 있는 소 100마리의 대변을 받아서 검사한 결과 11마리의 변에서 야클을 발견했다.”면서 “곧 네이쳐 지에 이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쾌거에 찬사를 보내면서 “기생충학에 대해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알라딘수첩 팀이 가보니 전남 곡성에는 소가 딱 두 마리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씨가 증거로 제시한 다른 쇠똥의 사진들이 죄다 2번 소와 3번 소의 것과 똑같았던지라, 의혹을 증폭시켰다. 곡성에 사는 주민 박찬미 씨(35)는 “원래 곡성은 여물이 없어서 소를 키울 수가 없는 곳”이라면서 “곡성에 소가 100마리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씨는 “내가 쇠똥을 받을 당시에는 분명 100마리가 있었다. 지금 두 마리밖에 없다면 그건 마을 주민들이 다 잡아먹은 탓”이라고 반박했다. 이 얘기를 들은 마을주민 세실(37) 양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서 소 98마리를 잡아먹었다면 거의 사흘마다 한 마리의 소를 먹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난 쇠고기를 못먹은지 벌써 3년이 되었다. 내가 단 한 마리의 소라도 먹었다면 팔뚝이 이리도 가늘겠는가.”


알라딘수첩 팀은 서씨에게 따졌다.

“소는 다 어디로 갔습니까? 정말 있었다면 소꼬리라도 보여 주시죠.”

서씨는 흔쾌히 보여주겠다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며칠 뒤 서씨는 다른 말을 한다. “곡성이란 곳이 워낙 척박한 곳이라 꼬리가 없는 소도 많이 있었고, 확보해둔 소꼬리도 우리 연구원이 꼬리곰탕집에 팔아치운 모양입니다.”

알라딘수첩은 물었다. “그렇다면 야클이 정말 있긴 있는 겁니까?”

서씨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클은... 우리가 야클을 있다고 믿고, 거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또 그 믿음에 따라 행동한다면 야클은 분명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야클의 존재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실체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면 야클은 없는 것이기도 하지요. 기자님은 어느 쪽입니까?”

그의 질문에 알라딘수첩 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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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박사 : 선종아

김선종 : 예.

황박사 : 너 실수 좀 해야겠다?

김선종 :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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