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은폐,
외화 밀반출,
진술자 회유, 압박,
왜곡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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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뭔가가 추가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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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황우석 교수는 지난달 12일 MBC 피디수첩에 줄기세포를 넘겨줄 때 YTN에도 따로 줄기세포를 건네 검사를 의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YTN측 검사 결과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아닌 것으로 나오자,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교수의 핵심측근에 따르면, 황교수는 지난달초 피디수첩측으로부터 "줄기세포의 DNA분석을 해보자"는 제안 전화를 받았다. 이때 황교수는 "그걸 왜 해야 하느냐"고 피디수첩측에 반문했다.

황교수측은 이에 대해 "황교수는 팀원들을 100% 신뢰하고 있었다"며 "김선종 연구원으로부터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보고받았기 때문에 성공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황교수는 지난달 12일 청와대와의 사전조율을 거친 뒤 피디수첩측에 5개의 줄기세포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황교수는 YTN에도 검사를 부탁하며 줄기세포를 내줬다. 피디수첩측이 거론했던 '또다른 언론기관'이다.

그러나 지난달말 YTN 조사결과 환자의 체세포와 다른 것으로 나오자, 황 교수는 그제서야 줄기세포에 문제가 있음을 처음 인지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황교수팀은 비상국면에 들어갔고, 줄기세포 배양을 재검증하기 위해 담당자인 김 연구원과 박종혁 연구원을 급히 찾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규리 교수와 윤현수 교수가 지난 1일 YTN 기자와 함께 김 연구원을 찾아간 까닭이다.

안교수는 이때 피디수첩 인터뷰 및 자살 기도에 대한 정황도 함께 파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 연구원과 박 연구원의 가족이 함께 이동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 귀국비용으로 1만 달러씩을 두 연구원에게 각각 건넸던 것으로 나타났다.

황교수측은 "하지만 두 연구원은 귀국에 응하지 않았다"며 "당시엔 바꿔치기 가능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같은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CBS사회부 이재준 기자 zzlee@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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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전용철ㆍ홍덕표 농민의 죽음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이제 세인들의 관심은 온통 허준영 경찰청장의 거취문제에 집중되고 있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 앞서 '자진사퇴 불가' 입장을 천명하는 기자회견을 감행하는 등 전방위적인 사퇴압력에 꿋꿋이(?) 맞서고 있는 허준영 청장의 처신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이 와중에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가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두 농민을 직접적으로 가격해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진압 경찰이 누구냐'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6일 두 농민의 사인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를 통해 "진압경찰이 달아나던 고 홍덕표(68)씨를 뒤쫓아가 방패로 뒷목을 때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대외법률사무소의 최규호 변호사는 "육중한 방패의 날로 70세 가까운 고령 노인의 목뼈를 강타한다는 것은 법률상으로 살인의사가 100% 인정되며, 결국 누군가 홍 노인을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살인 경찰이 누구인지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게 최규호 변호사의 지적이다.

하지만 최 변호사는 "당국이 수사를 한다고 해도 실제 농민들을 직접 가격해 숨지게 한 진압경찰을 가려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수백, 수천명의 전경이 똑같은 제복과 방패를 들고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데 어떻게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 변호사는 "유사한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전경들의 방패나 헬멧에 해당 전경의 이름이나 고유 번호를 적는 등의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변호사는 "전경들로 하여금 사후 처벌을 우려해 과잉폭력 행사를 자제토록하는 몇 가지 조치만 취한다면 무고한 시민이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은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CBS정치부 이희진 기자 heejjy@cbs.co.kr

 

 

좀 웃기는 아이디어 같으면서도 나름대로 효과가 있을 것 같기도 하넹...
그런데 전경의 살인진압을 '개인'적인 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어.
공권력에는 '누구의 이름'을 달아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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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5-12-2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들 중에도 지금 전경에 있는 녀석들 많은데, 내용이 틀린 기사는 아니지만서도 마음이 좀 착잡해지곤 합니다. 끌려간 그놈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고뉴스 2005-12-28 13:33]    



황우석 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우연히 ‘딴지일보’에 올라온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읽으며 “딴지일보가 약 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검색을 해 보니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11월 29일에 어느 매체에 올린 글이 눈에 들어온다. 그 글을 읽으며 이번에는 “아, 총수가 약 먹은 거였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모든 의문이 풀리는 듯 했다.

몇 십 개국을 돌아다니며 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알게 됐다는 총수.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속의 애국주의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 믿어왔는데, 이번에 드러난 그의 투철한 애국심을 에 보며 그만 덩달아 나도 국기에 대한 경례가 하고 싶어졌다. 딴지 총수가 여행을 통해 익혔다는 국제적 감각,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월등히 후진 모양이다. 그의 주장을 보자.

#1.  
"PD수첩은, 2002년 안정환의 이탈리아전 결승 헤딩골은 카메라 사각이어 제대로 잡히지 않아 그렇지 사실은 안정환의 핸들링이었다는 것을 온갖 자료를 동원해 증명해내고 또 손에 닿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은 안정환은 거짓말쟁이라는 걸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입증한 꼴이다."

과학을 스포츠에 비유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본다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스포츠신문도 ‘신문’이고, 스포츠 기자도 기자인 이상, 안정환의 결승골이 사실상 핸들링이었다면 그 사실을 보도해야 한다. 그런다고 판정이 뒤바뀌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리고 그런 사실을 국익을 위해 대중은 몰라야 한단 말인가?

게다가 과학은 스포츠가 아니다. 마라도나는 자신의 결승골이 실은 핸들링이었다고 떠들며 “황금의 손” 어쩌구 하며 그 사실을 공공연히 자랑하고 다녀도 선수 생활 하는 데에 지장이 없지만 (그 실수는 그의 것이 아니라 심판의 것이므로), 과학자는 거짓말을 하는 순간 학자로서의 생명이 끝나기 때문이다.

축구에서는 할리우드 모션으로 심판의 눈을 속여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게 잘하는 일인지 몰라도, 과학의 그라운드에서는 그런 짓 하는 선수는 당장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 자격까지 박탈을 당하게 된다. 총수는 이 차이도 모르는 걸까?

#2.
“만천하에 황 교수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얻게 된 우리 사회의 이득은 생명과학 분야에 있어 보다 투철한 윤리의식 획득과 그에 준하는 보다 엄정한 프로세스의 확립. 아마도 그쯤일 게다. 그럼 손실은. 황우석 명성에 국제적 흠, 국민들 자존심에 상처, 연구진 사기의 저하 정도 되겠다.”

이렇게 “대차대조”표를 짜놓고 총수는 묻는다. “PD수첩이 방송하지 않고 황 교수에게 조용히 조언할 순 없었냐?”고 묻는다. 총수의 눈에는 ‘투철한 윤리의식 획득과 엄정한 프로세스의 확립’보다는 ‘황우석 명성', '국민들 자존심’, ‘연구진 사기’가 더 중요해 보이는 모양이다.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여성의 몸에서 나오는 난자가 과학 그 자체와는 별 관계가 없는 ‘명성’이나 ‘자존심’이나 ‘사기’ 따위보다는 더 소중한 것 같은데, 딴 총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200개의 난자로 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어냈을 때에 세계는 두 가지 점에 놀랐다. 먼저 황우석 박사의 연구 성과에 놀랐고, 그에 못지않게 그가 그 많은 난자를 구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듣자 하니 이번 연구에 사용된 난자의 수가 무려 1000여개를 넘어선단다. 몸에 위험한 배란촉진주사를 맞으며 그 많은 난자를 기증한 65명 여성의 몸이 ‘명성’과 ‘자존심’과 ‘사기’보다 못하단 말인가?

#3.
“우선 연구원 난자. 헬싱키선언, 보편타당하다. 그러나 충분히 자발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 경우, 연구원 난자기증 가능하단 것이 배아복제 실험과정에서 우리가 경험적으로 획득한 실험윤리라고 국제과학계에 주장하는 꼴 좀 봤음 한다. 그 주장이 꼭 국제적으로 환영받길 원해 하는 생각은 아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논리 있다면 헬싱키선언이고 나발이고 우리 생각을 자신 있게 말하는 꼴 좀 보고 싶어서다.”

문제는 “우리가 경험적으로 획득한 실험윤리”라는 것이 “보편타당”하지 않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닐까? 다른 나라에서 연구원의 난자 채취를 금하는 것은, 연구팀 내의 권력관계로 인해 난자 기증의 자발성이 훼손될 염려가 있기 때문일 게다. 그 규정을 빗겨가려면 외국과 달리 한국 연구실의 분위기는 매우 자유스럽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알고, 딴지 총수도 인정하겠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 반대다.

게다가 실제로는 어땠는가? 박을순 연구원의 난자 기증은 사실상 강요당한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PD수첩’ 측에서도 이미 자신의 난자를 기증하는 문제를 놓고 고민하는 박 연구원의 글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가 망가뜨린 난자, 네가 알아서 채워 넣으라’는 압력이 행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헬싱키 선언을 피해가는 데에 “스스로 납득할 만한 논리”란 게 있을 수 있겠는가?

#4.
만천하에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여기서 총수는 ‘PD수첩’이 “만천하에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황 교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그것은 바로 황 교수 자신이다. 그 동안 그는 국민들 앞에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해 왔던가? 언론들이 황우석 편들어주느라 꼼꼼히 정리해주지를 않아서 그렇지, 이제까지 드러난 그의 거짓말은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다. 황 교수가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간단하다. 황 교수가 거짓말을 안 하면 된다. 그러더니 총수는 이렇게 선언한다.  

그리고 이제 제발 황우석 좀 그냥 냅두자. 사람 죽겠다.

황 교수가 어디 죽을 사람인가? 이제까지의 행태로 볼 때 그는 끝까지 죽지 않을 사람이다. 그가 10kg나 빠진 몸무게를 들고 병원에 입원한 것을 보고 하는 얘기인 것 같은데, 그나마 황 교수에게 일방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언론의 태도가 약간이라도 바뀐 것은, 수염도 안 깎은 모습으로 병실에 누워 그가 연출하는 유치한 수난극을 보고나서의 일이라는 점, 잊어서는 안 된다.

#5.
‘딴지일보’에 오른 인터뷰를 통해 총수는 목하 자신을 변명하는 모양이다. 물론 11월 29일자의 글로 천하의 딴지 총수 스타일이 상당히 망가진 것은 사실인데, 사실 그 당시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냥 “내가 생각이 짧았다” 하고 넘어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마음속으로 인정이 안 되는 모양이다. 누가 한 말이더라? “모든 사람이 어떤 주의를 주창하는 것은, 그것이 옳아서가 아니라, 과거에 그들이 그것을 한번 주장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총수와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원천기술”이라는 마법의 주문을 통해 줄기교는 서서히 배판포교로 진화하는 모양이다. 저들은 음해세력(?)에 맞서  황우석을 옹호한다고 하나, 그들이 지금 열심히 옹호하는 것은 사실 바로 얼마 전에 보여주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일 뿐이다. 누구 말이더라?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동물이라고...

#6.
그러니 이건 경거망동할 사안이 아니다.. 불확실한 정보에 움직이지 말고 차라리 직관으로 판단하라. 그래서 딴지는 다른 모든 언론들이 붕붕 나르며 수많은 기사를 낼 때...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실상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어요. 그 동안..

“직관으로 판단하라.” 갑자기 총수께서 개똥철학까지 하시는데, 그렇게 ‘직관’ 믿고 줄 잘못 섰다가 민망해진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모든 이들이 제 ‘직관’을 남발하며 미쳐 돌아가던 시절에, 유일하게 이성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지금 딴지가 씹고 있는 ‘브릭’이었다. 그리고 풍자와 해학으로 몰상식한 사회를 도발하던 딴지일보. 총수가 거룩하게 애국질 하는 동안, 딴지가 하던 일을 대신 맡았던 것은 ‘DC의 과학 갤러리’였다.

총수는 손가락에 침 발라 “똥꼬 깊쑤키” 꼽고 알아서 반성하라. 굳이 이런 일에까지 내 손가락을 써야 겠는가?




글·진중권(시사평론가·‘SBS 전망대’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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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2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남 비꼬는 글쓰기.. 썩 보기 좋아보이진 않지만, (악취미인지는 몰라도) 후련하다..

라주미힌 2005-12-28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딴지 일보 아직도 있네.. ㅡ..ㅡ; 엽기 코드는 한물 간거 같은데..

로드무비 2005-12-28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인용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듯.
김어준 총수 정말 왜 그랬을까요? 갸우뚱.

라주미힌 2005-12-28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재적 전체주의자가 아닐까요..
불통만 튀기면 활활 타오를... (성인용품 ㅋㅋ.. 그 장사 아직도 하나.. 옛날엔 정말 웃기게 읽었었는데..)

깍두기 2005-12-2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딴지일보....안 가본지 꽤 됐죠.
싸이트 요상하게 바뀌어 가더라구요.
그래도 김어준이 저런 말꺼정 할 줄은 몰랐네.

페일레스 2005-12-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쩝... 쾌도난담 할 때도 중간중간 핀트가 안 맞는다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런 게 점화된 걸지도... 아무튼 찝찝합니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영국의 헤럴드 핀터 기념강연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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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진실, 그리고 정치(Art, Truth and Politics)'
  
  〈前略〉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이 잘 알고 있다시피, 이라크 침공의 명분은 사담 후세인이 대단히 위험한 대량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중의 일부는 45분 내에 발사 가능하며, 엄청난 파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얘기됐었죠. 우리는 그 말이 진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또한 후세인이 알 카에다와 연계돼 있으며, 9.11테러에 책임이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그 말이 진실이라고 저들은 주장했지만, 이것도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이라크가 세계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저들은 진실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진실은 이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진실은, 미국이 세계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구현하려 하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현재에 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2차대전 이후 미국의 대외정책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비록 제한적이라 하더라도 이 시기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차대전 후 소련과 동유럽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는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조직적 야만, 광범위한 학살, 독립적 사상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 이런 일들이 벌어졌죠. 이러한 야만과 학살과 탄압의 모든 실상은 모두 기록으로 남겨졌고 검증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같은 기간 미국이 저지른 범죄는 피상적으로만 언급이 됐을 뿐이라는 점입니다. 기록이 남겨진 것도 아니었으며, 범죄로 인정된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그것이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오늘날 세계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진실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믿습니다. 소련의 존재 때문에 일정 부분 제약을 받긴 했지만, 이 기간 동안 미국의 행동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위임받았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함을 보여줍니다.
  
  사실 주권국가에 대한 직접적 침공은 미국이 애용하는 수법은 아니었습니다. 미국은 주로 '저강도전쟁(low intensity conflict)'을 선호해 왔습니다. 저강도전쟁이란 1,000명의 사람이 죽긴 죽는데 폭탄 한 발을 떨어뜨려 단번에 죽는 것보다는 더디게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나라의 심장부를 오염시켜, 그 죽음의 병균이 서서히 퍼져 나가면서 사람들이 죽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굴복하거나 또는 맞아 죽고, 같은 얘기이긴 합니다만, 그리고 미국의 우방과 군대와 대기업들이 편안하게 권력을 누리게 됐을 때, 미국은 카메라 앞으로 다가가 '이제 민주주의가 회복됐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2차대전 이후 미국이 펼쳐 왔던 대외정책의 본질입니다.
  
  아주 중요한 사례로 니카라과의 비극을 들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니카라과의 비극이 과거와 현재를 불문하고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을 보여주는 아주 강력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1980년대 후반 저는 런던의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모임에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 의회는 니카라과정부에 저항하는 콘트라반군에 대한 지원의 확대 여부를 놓고 논의 중이었습니다. 저는 니카라과정부 측을 대변하는 대표단의 일원이었는데, 대표단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제가 아니라 존 메트카프(John Metcalf) 신부님이었습니다. 미국 측 대표는 레이몬드 사이츠(Raymond Seitz) 부대사였습니다(후에 대사가 됨). 메트카프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부대사님, 저는 니카라과 북부의 한 교구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제 교구에 사는 주민들은 학교와 병원과 문화센터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있었죠. 그런데 몇 달 전, 콘트라반군이 저희 교구를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파괴했습니다. 학교, 병원, 문화센터를 파괴했습니다. 간호사와 여선생들을 강간했고, 의사들을 학살했습니다. 그것도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들은 야만인처럼 행동했습니다. 제발 귀국의 정부에 대해 이 소름끼치는 테러행위에 대한 지원을 철회할 것을 요청해 주십시오."
  
  레이몬드 사이츠는 합리적이고, 책임감이 있으며 세련된 신사로서 아주 좋은 평판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외교관들 사이에서도 아주 존경받고 있었죠. 그는 차분히 듣고 난 후,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신부님,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쟁에서는 언제나 무고한 백성이 고통을 받기 마련입니다."
  
  좌중에는 싸늘한 정적이 감돌았습니다. 우리가 그를 노려봤지만, 그는 조금도 움추러드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언제나 무고한 백성들이 고통 받기 마련이지요.
  
  마침내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귀국의 지원이 '무고한 백성'들을 잔혹한 학살의 희생자로 만들고 있는 것 아닙니까? 미 의회가 콘트라에 대한 지원을 늘린다면 이런 종류의 학살은 더욱 늘어나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귀국 정부는 엄연한 주권국가의 국민들에 대한 살인과 파괴를 지원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 아닙니까?"
  
  사이츠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저는 귀하의 주장이 사실과 부합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꾸했습니다.
  
  미 대사관을 떠날 때, 한 대사관 직원이 저의 희곡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만 저는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할 것 같군요.
  
  "콘트라는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들'과도 같은 높은 도덕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은 니카라과의 잔인한 소모사 독재정권을 40년 이상 지원했습니다. 1979년 니카라과 민중들은 산디니스타와 함께 소모사정권을 축출해내고 맙니다. 숨 막히는 민중혁명의 순간이었죠.
  
  물론 산디니스타정권도 완벽하지는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교만한 측면도 있었고, 그들의 정치철학 속에는 몇몇 모순되는 요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똑똑했고, 합리적이었으며, 세련됐습니다. 그들은 안정되고, 품위 있으며, 다원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형제도가 폐지됐고, 가난에 허덕이던 수십만 농민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구조됐습니다. 10만 가구 이상의 농민이 농지를 분배 받았고 2,000개 이상의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문맹률이 급속히 감소해 15% 이하로 내려갔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가 실시됐습니다. 유아사망률은 3분의 1 이하로 감소했고, 소아마비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산디니스타의 이같은 업적을 마르크스ㆍ레닌주의의 선동행위라고 깎아 내렸습니다. 미국정부가 보기에 대단히 위험한 선례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만일 니카라과가 사회적.경제적 정의의 기본적 요건을 충족할 수 있도록 놔둔다면, 의료 및 교육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적 단결 및 민족적 자존을 이룩할 수 있도록 놔둔다면, 이웃 나라들도 똑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될 테니까요. 게다가 당시에는 엘살바도르에서도 현상타파를 위한 치열한 저항운동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앞에서 저는 우리를 감싸고 있는 '거짓의 태피스트리(벽걸이융단)'에 관해 말했습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틈만 나면 니카라과를 '전체주의적인 지하감옥'에 비유했습니다. 언론, 그리고 영국정부도 이 비유를 정확하고 공정한 평가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산디니스타정권 하에서는 암살특공대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습니다. 고문도 없었습니다. 군부의 조직적, 공식적 야만행위도 없었습니다.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살해당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3명의 사제, 즉 2명의 예수회 신부와 1명의 매리놀선교회 선교사가 니카라과 정부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전체주의적 지하감옥은 니카라과의 옆 나라,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에 있었습니다. 1954년, 미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과테말라 정부를 전복시켰는데, 이후 연이은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2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89년 엘살바도르 수도 산살바도르의 센트랄 아메리칸 대학에서는 세계에서 매우 존경받는 예수회 신부 여섯 분이 '알카티연대'라는 무장단체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했는데, 이 무장단체는 미국 조지아주 포트 베닝에 있는 미 특전사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비상한 용기를 보였던 로메로 대주교는 미사 집전 도중 암상 당했습니다. 엘살바도르에서만 7만5,000명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왜 이들이 죽어야만 했을까요? 보다 나은 생활이 가능하고, 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갖는 즉시 그 사람은 공산주의자로 낙인 찍힙니다. 이들은 감히 현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숙명처럼 걸머져야 했던 가난과 질병과 비천함과 억압의 끝없는 지속에 의문을 품었다는 이유로 죽음을 맞았습니다.
  
  결국 미국은 산디니스타정권을 전복시켰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걸렸고 상당한 저항이 있었지만, (미국의) 쉼 없는 경제봉쇄와 3만의 희생자는 니카라과 민중의 저항정신을 꺾어놓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탈진했고, 다시 가난이 찾아 왔습니다. 카지노가 다시 돌아왔고, 반면 무상의료와 무상교육은 사라졌습니다. 거대기업은 복수심을 품은 채 돌아왔습니다. 한마디로 '민주주의'가 회복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책'은 결코 중미지역에만 적용된 것이 아닙니다. 세계 도처에서, 결코 중단함이 없이 수행된 것이죠. 그런데도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진행되고 있습니다.
  
  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우익군사정권을 지원했고, 많은 경우에는 정권 자체를 만들어냈습니다. 인도네시아, 그리스, 우루과이, 브라질, 파라과이, 아이티, 터키, 필리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그리고 칠레가 그러합니다. 1973년 칠레의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의 만행은 결코 지워지지도, 용서되지도 않을 겁니다.
  
  이들 나라에서 수십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났는가? 이 모든 비극이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에 일어난 일이란 말인가? 그 대답은 '예'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학살이 있었고, 모두가 미국의 대외정책이 초래한 비극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모를 겁니다.
  
  그런 일은 없었으니까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세상은 그런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 문제도 되지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미국의 범죄는 조직적이고, 일상적이며, 사악하고, 일말의 가책도 없이 행해지고 있는데도 이에 관해 실제로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 정말 대단합니다. 자신을 보편적 선의 세력으로 가장하면서 전 세계에 걸쳐 은밀한 권력의 조작을 펼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최면술의 극치라고 할 만합니다.
  
  저는, 미국이 의심할 여지없이 지상 최대의 쇼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야만적이고, 무관심하며, 경멸적이고, 무자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매우 영악하기도 합니다. 세일즈맨으로서 미국이 팔아먹을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은 스스로에 대한 사랑, 즉 자기애(自己愛)입니다. 미국은 늘 승자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TV에 나와 '미국 국민(American People)'이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 들어봅시다.
  
  "본인은 '미국 국민'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자 합니다. 이제 '미국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기도하고, 또 나서야 할 때입니다. 또한 '미국 국민'께서는 '미국 국민'을 위해 본인이 취하려는 행동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시기를 당부합니다."
  
  대단한 전략이지요. 언어가 생각을 마비시키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국 국민'이란 말은 정말로 달콤한 확신의 환상을 심어줍니다. 도대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국민'이라는 환상의 소파에 편안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니까 말입니다. 그 소파가 사람의 지성과 비판적 사고를 질식시켜 버린다 해도, 일단은 매우 편안합니다. 물론 이같은 상황은 같은 미국인이라 해도, 빈곤선 이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4천만명의 빈민과,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광범위한 감옥의 군도에 갇혀 있는 2백만 수감자에게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제 미국은 더 이상 저강도전쟁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자제와 우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지요. 더 이상 미국은 유엔이라든가 국제법, 비판적 이견 등에 대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무력하고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또한 미국의 뒤에는 재잘재잘거리면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작은 양이 한 마리 있습니다. 병들고 무력한 영국이 그 작은 양이죠.
  
  도대체 우리의 도덕적 감수성에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아니, 도덕적 감수성이란 걸 우리가 가져보기는 했습니까? 이 말은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즘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거의 쓰지 않습니다. '양심', 두 글자의 말 말입니다. 양심이란 우리 자신의 행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우리 몫의 책임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이제 '양심'은 다 죽고 없어진 걸까요? 관타나모 수용소를 봅시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아무런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그곳에 3년 이상 갇혀 있습니다. 이들은 변호사나 정당한 법적 절차도 허용되지 않은 채 사실상 무기징역을 살고 있습니다. 전적으로 불법적인 이 수용소는 제네바협약도 무시한 채 오늘도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른바 '국제사회'는 이를 묵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유세계의 지도자'를 자처하는 나라가 이처럼 뻔뻔스런 범죄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우리는 관타나모에 갇힌 사람들에 대해 생각이나 해봤습니까? 언론은 뭘 하고 있는 겁니까? 예, 가끔 보도는 하죠. 6면 한 구석에 조그만 기사로 말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살아서는 나올 수 없는 불모의 땅에 갇혀 있습니다. 이들 중 영국인을 포함한 상당수가 현재 단식투쟁을 하고 있는데, 미군 당국은 이에 대해 강제급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강제급식이라는 게 알고 보면 끔찍한 것입니다. 진정제, 마취제, 이런 것 사용하지 않습니다. 코에 튜브를 꽂아 넣고 이를 통해 음식물을 목구멍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당하는 사람들은 피를 토합니다. 한마디로 고문이죠. 이런 행위에 대해 영국 외무장관은 무슨 말을 했을까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영국 총리께서는 한 말씀 하셨을까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왜 말을 못하고 있는 걸까요? 미국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관타나모에서의 우리의 행위를 비판하는 것은 적대행위로 간주하겠다.'
  
  미국의 동맹이 아니면 곧 적이라는 얘기죠. 그래서 블레어는 입을 꼭 다물고 있는 것입니다.
  
  이라크 침공은 강도행위이자, 노골적인 국가테러이며, 국제법에 대한 완벽한 무시입니다. 침공은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반복함으로써 언론을 조작하고, 나아가 대중을 조작한 일련의 사기에 의해 촉발된 제멋대로의 군사행동이었습니다. 목표는 물론 중동지역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의 모든 명분들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이제는 이라크를 독재자의 손에서 해방시켰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수십만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거나 불구가 된 것은 미국의 무시무시한 군사력이 제멋대로 사용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고문과 집속탄, 열화우라늄탄과 수많은 이유 없는 학살, 비참함과 치욕과 죽음을 안겨 주었으면서도 '중동지역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사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몇 명이나 죽여야 대량학살자, 전쟁범죄자의 '명예'를 누리게 되는 걸까요? 10만명? 저는 차고도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형사재판소의 법정에 피고로 서야 할 사람은 바로 부시와 블레어입니다. 그런데 부시는 생각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그는 국제형사재판소 조약을 비준하지 않았죠. 그래서 부시는 미국 군인이나 자신과 같은 미국 정치인이 국제형사재판소의 피고석에 서게 된다면 미 해병을 보내 구해오겠노라고 큰소리를 칩니다. 하지만 블레어는 이 조약을 비준했기 때문에 피고석에 세울 수가 있습니다. 혹시 국제형사재판소가 관심이 있을지도 모르니 블레어의 주소를 알려줍시다.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죽음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부시와 블레어는 죽음을 별 것 아닌 문제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라크의 저항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10만 명 이상의 이라크인이 미군의 폭탄과 미사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라크인들의 목숨은 (부시와 블레어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의 죽음은 없었던 일입니다. 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사망자로조차 기록되지 않습니다. 미군 사령관 토미 프랭크스가 뭐라고 말했죠?
  
  "우리는 사망자 집계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했죠.
  
  이라크 침공 초기에 영국의 주요 일간지 1면에는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의 어린 소년의 뺨에 키스하는 사진이 실렸습니다. 사진 설명에는 '고맙게 여기는 어린이'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며칠 후, 두 팔을 잃은 4살 난 이라크 어린이의 사진과 관련 기사가 1면이 아닌 신문 속지에 실렸습니다. 이 어린이의 가족은 미군 미사일에 몰살당했고, 어린이가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어린이는 '내 팔은 언제 다시 생겨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얘기는 빠졌습니다. 토니 블레어는 이 어린이는 안지 않았습니다. 손발을 잃은 다른 어린이를 안지도 않았고, 피 묻은 시체를 안지도 않았습니다. 피는 더러우니까요. TV에 나와 고상한 연설을 해야 할 그의 셔츠와 넥타이를 더럽힐 테니까요.
  
  2천명 이상의 미군 전사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는) 사실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미군 전사자의 시체는 밤에만 묘지로 옮겨졌고, 장례식은 아주 조촐하게 치러졌습니다. 부상자들은 병상에서 썩어가고 있고, 그중 일부는 평생을 그렇게 썩어갈 것입니다. 전사자나 부상자 모두 서로 다른 묘지에서 썩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中略〉
  
  앞에서 저는 미국이 이제는 자신의 패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내놓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이제 미국이 공개적으로 선언한 정책은 '전면적 지배(full spectrum dominance)'로 정의됩니다. 이는 제가 만들어낸 말입니다. 미국 정부가 스스로 하는 말입니다. '전면적 지배'란 지상, 해상, 공중, 그리고 우주에 대한 완벽한 통제, 나아가 이곳들에 있는 모든 자원에 대한 통제를 의미합니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132개국에 702개의 (해외) 군사기지를 갖고 있습니다. 물론 스웨덴은 이 132개국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미국이 어떻게 그 많은 해외 군사기지을 갖게 됐는지 우리는 잘 모르지만, 어쨌든 분명히 있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미국은 현재 8,000기의 실전용 핵탄두를 갖고 있으며, 이중 2,000기는 15분 이내 발사준비 상태로 대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벙커버스터라는 새로운 유형의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미국에 협조적인 영국도 자신의 핵미사일 트라이던트를 교체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이 핵미사일들은 도대체 누구를 겨냥한 것일까요? 오사마 빈 라덴일까요? 당신, 아니면 저일까요? 중국, 또는 파리일까요?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이 유치한 광기, 즉 핵무기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것이 현재 미국 정치철학의 핵심이라는 사실입니다. 미국은 현재 영구적 군사 초강대국이라는 것, 그리고 결코 이러한 지위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만 합니다.
  
  미국 내에서도 수백만은 못 될지라도, 적어도 수 천 명의 사람들은 미국 정부의 행동에 대해 역겨워하고, 수치스럽게 여기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보여주듯 이들은 아직 응집력 있는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양식 있는 미국인들의 불안과 공포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입니다.
  
  부시 대통령에게는 매우 유능한 연설문 작성자가 여럿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저도 한번쯤은 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미 국민들을 상대로 다음과 같은 짤막한 연설을 하도록 하고 싶으니까요. 잘 빗겨진 머리에 장중하고, 심각하며, 자신에 찬, 그러면서도 성실한 표정을 지으며, 때로는 쓴 웃음도 지어가며, 이상할 정도로 매혹적인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서 말입니다.
  
  "신은 선하다. 신은 위대하다. 나의 신은 선하다. 빈 라덴의 신은 악하다. 그의 신은 나쁜 신이다. 후세인의 신도 나빠. 아, 그 자식은 신이 없군. 그 놈은 야만인이었지. 우리는 야만인이 아냐. 우린 사람의 모가지를 치진 않잖아. 우린 자유를 신봉한다. 신도 믿는다. 난 야만인이 아냐. 난 민주적으로 선출된 자유세계의 지도자야. 우리 사회는 인정 많은(compassionate) 사회지. 우린 전기의자 사형도, 독약주사 사형도 아주 인정 넘치게(compassionate) 시행하지. 미국은 위대한 나라야. 난 독재자가 아니야. 그 놈이 독재자지. 난 야만인이 아니야. 저 놈, 저 놈, 저 놈들이 야만인이지. 나에겐 도덕적 권위가 있다. 이 주먹이 보이지 않나? 이게 나의 도덕적 권위다, 임마. 까불지 마."
  
  작가의 삶이란 취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거의 발가벗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애달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스로 선택을 하고, 이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작가의 삶이니까요. 하지만 온갖 풍상을 겪는 것은 사실이고, 그중에는 뼛속까지 시린 모진 풍상도 있기 마련입니다. 작가는 자기 자신만의 사지로 대지를 딛고 서 있어야 합니다. 숨을 곳도, 보호해 줄 사람도 없습니다. 물론 거짓말을 한다면 사정이 달라지겠지요. 작가가 거짓말을 한다면 이는 자신의 보호막을 만드는 것이며, 그 때는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라 정치가라고 해야겠지요.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의 영상이 정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단 1mm만 움직여도 그 영상은 변합니다. 사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일련의 반영만을 볼 뿐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때때로 그 거울을 부숴버립니다. 진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 곳은 거울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의 온갖 역경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삶과 사회의 진실을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시민으로서의 불요불굴의 지적 결의야말로 우리들에게 주어진 핵심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사실 하늘의 명령(mandatory)입니다.
  
  그러한 결의가 우리의 정치적 비전에 녹아들어 있지 않다면, 우리가 지금 거의 잃어가고 있는 것을 되찾을 희망은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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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5-12-2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잘 보았습니다. 찾던 글인데 여기서 만나네요.

라주미힌 2005-12-28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됐네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