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

2005.12.30. (금)
딴지 편집국

 

그만 닥쳐라.

1.

여태 줄거리는 생략. 최근 상황만 보자.

논문조작 이슈로 출발한 본 사태, “줄기세포 없다”는 절규 한 방에 의제, 대반전된다. . 이 역설. 너는 죽고 나는 꼭 살겠다는 이 필살의 폭로가, 철썩 같이 믿었던 것이 완전 부정될 때 붕괴되는 자신의 내적질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 방어기제를 자극, 오히려 일거에 국면을 전환시킨다.

조작은 했더라도, 원천기술만 있어다오.

이 사태를 바라보던 대척의 두 시각, 이 새로운 전선서 다시 격돌한다.

그럼에도 절대퇴출 vs 그렇다면 기회제공.

전자, 대체로 이성적 논리적이다. 신뢰를 생명으로 하는 과학계에서 이제 그는 끝났다. 퇴출의 본질은 논문조작. 글쎄 황우석은 대체가능하다니까. 후자, 사태 초기 애국주의로 질타되었던 감정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혐의 짙다. 대체로 온정적 감상적. 내동이 치기엔 아까와 너무 속상해. 씨바.
 

2.

이 사태 본질, 논문조작, 맞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설혹 음모론 사실로 판명 나더라도 황교수 책임, 줄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황우석 사태는 과학적 오류의 문제를 넘어선지 오래다. 이건, 언론사태다. 모든 언론들이 제각각 써댄 상상의 대본으로 포탈메인 화면에 의해 실시간 연출되고 있는 21세기형 언론 쌩쇼.

지금 언론들, 미쳤다. 그 외 모든 표현, 적확하지 않다. 미쳤다. 단위기간 내 이렇게 많은 ‘사실무근’이란 단어를 매체에서 접할 기회는 평생 다시 없을 것, 자신 있게 단언하는 바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내 배를 내가 좀, 째겠다. 더불어 그 사실무근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어찌된 연유로 기사화되었었는지에 대한 단 하나의 해명기사도 앞으로 볼 일 없을 것, 역시 단언하는 바다.

3.

소설과 기사의 양식 경계를 단숨에 붕괴시킨 이 인문학적 성취는, 전인민의 신춘문예 추리소설부문 집단등단을 목표로 한 국가단위의 교육시뮬레이션 훈련이 아니라면, 미친 게 확실하다. 아무 것도 확실치 않으나 무엇이나 써댄다. 이건 기사작성이 아니라 저술활동이다. 팩트는 겨우 한 줄인 정보총량으로 영롱이고, 스너피고 마구마구 걸고 나자빠진다.

그 덕에 사람들은 갈팡질팡, 모든 프로세스는 뒤죽박죽. 가장 먼저, 사기꾼으로 불린다. 논문이 철회된다. 그리고 조사가 시작된다. “일부 인정했다”는 뭘 일부 인정했다는 건지, 내용 없는 중간발표에 이어 황교수 사직한다. 그리고서야 원천기술 인정범위 논한다. 그런데, 아직 조작에 관한 진실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순서가 대체 이게 뭔가. 논의의 절차와 판단의 순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왜곡되고 말았다. 이 혼란, 스스로 감당할 범주를 벗어나 007 살인면허 자체 발급한 언론 탓, 절대적이다. , 모르겠거든, 제발, 닥치고 있어라.
 

4.

피디수첩 취재윤리 논란, 호들갑이었다.

사회고발프로 속성 자체가 폭력적이다. 윽박지름과 몰래카메라로 만들어진다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었다. 탈세 이사장도, 사이비 교주도, 비리 공무원도 그들 개인에겐 취재의 함정과 카메라의 폭력성 있어 왔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지는 공적이득이 사적피해를 충분히 상쇄 한다 여긴 우리, 그 폭력 사실상 묵인 방조해왔다. 왜 이번에만 예왼가. 주인공이 달랐다. 취재윤리논란은 주인공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던 모두의 바람과 핑계와 명분이었다. 상식은 때로 그렇게 감상적이다. 상식의 저항을 뚫고 임무 수행한 피디수첩, 박수 받을 만하다.

그럼에도 피디수첩에 할 말 있다. 첫 방송, 취지, 옳다. 그러나, 생명윤리가 진정 걱정됐다면 황박사가 거짓말쟁이임을 입증해내는 사회고발이 아니라, 우리네 연구 환경과 조건의 어떤 점이 미비해 거짓말 할 수밖에 없었나를 밝히는 다큐멘터리였어야 했다. 사람들 격한 반응, 애국주의 탓만 할 게 아니다. 모두가 믿던 걸 하루저녁에 전복시키는 데 팩트만으로 충분한가. 화법이 싸가지 없으면 내용 전에 열부터 받는 게 커뮤니케이션이다. 사람들은 팩트 이전에 그 문법에 설득되지 못한 거다. 똑같은 내용, 안타까워하며 차분히 짚는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였다면, 달랐다. 피디수첩이 취한 최초의 자세 달랐다면, 그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론, 황교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가진 쇼비니즘 색채, 짙다. 그러나. 대중의 감정이입을 멍청한 착각이고 위험한 파시즘이라고만 단정하는 게으르기까지 한 관성적 비판과, 영웅적 캐릭터로부터 위무 받고 대리만족 느끼던 대중을 간단히 애국주의로 괄호 치는, 그 야박하고 오만한 이성주의가 난 훨씬 더 재수 없다. 그리 이성적인 자들이 황우석을 효수한 순서는 대체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리고 황우석 아니어도 된단다. 거기까진 좋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뤄낸 일마저 아무 것 아닌 것처럼 말하는 거, 정말로 재수 없다.

5.

원천기술 인정 여부 논란, 언론 니들이 머리 쓸 일 아니다. 입대지 마라. 조작된 논문 끝장낸 삘 받아서 더 가고 싶겠지만, 이젠 그만 지껄여라. 원천기술이 있다 없다 한 마디, 지금 급하게 안 해도 된다. 그 기술 존재유무의 확인, 몇 개월 시간 주면 간단하다. 그걸 왜 있다 없다 지금 단정해야 하나. 하나의 단정마다 새로운 국면이다. 이제 제발 순서 지키자. 이 말이 황빠로 들린다면, 자신이 황까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6.

대한민국, 집단의처증 상태다. 그래도 모두들 자긴 객관적이란다. 하긴 원래 의처증이 더 논리적이다. 한 팔 들어 겨드랑이 긁었더니 손 흔들었다는 게 의처증이다. 하필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신체 특정 부위가 간지러울 확률을 소수점 세 자리까지 계산하면서. 의처증일 땐, 그 순간 아무리 명백해 보이는 증거도 잠시 물러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겨야 한다. 자신의 빛나는 논리력과 영민한 상상력을 멈추고, 당분간 입 다물고 있어야 한다.

언론 니들은, 이제 제발 그만 닥쳐라.

(인터뷰 2탄과 함께 게재하려던 총수성명, 이렇게 혼자 덜렁 올라간다)

 

생명윤리 문제기만 했던 초기, 호들갑 그만 떨고 주눅 그만 들고, 지금부터 보편 타당한 기준 세우면 될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곧 논문정국 시작됐고, 본지, 입 닥쳤다. 왜. 쥐뿔도 모르니까. 본지, 소설 죽이게 쓴다. 하지만 이건 그럼 안 되는 사안이다.

서울대 생명공학부 연구원의 용기는 그래서 고마웠다. 모두들 한 줌 안 되는 정보만으로 저만의 객관을 외치며 폭주할 때, 우리가 명백히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것들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의 계기, 마련해 줬다. 그게, 필요했었다.

하지만, 인터뷰 2탄, 싣지 못한다. 이유를 말하는 자체가 그에겐 불이익이다. 묻지 마시라.

2탄의 주 내용, 한마디로 연구기관으로서의 미즈메디, 신뢰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위험한 스타일의 연구자 유형이 있다 했다. 그런 스타일이 생물학 벤처와 만나면 학문적으로 신뢰하기 힘든 결과물을 내놓는다 했다. 구체적 사례와 실명들도 거론되었다. 다음은 관련 발언 일부.

"미즈메디 측에 대해 제가 신뢰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건, 기분이 아니고 그들의 논문을 본 이후에 가진 생각입니다. 그 안의 논문조차도 서로 겹친다는 점. 수정란 줄기세포 성공 논문.. 그런 거 연구 할 때 중요한 게, 얘를 얼릴 수 있어야 되요. 그래야 젊었을 때 복제해 놓고 얼려놨다가, 나이 들었을 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거 가지고 교체를 해야 되요. 근데 그 실험을 했어요. 얼려놓고 며칠 뒤에 다시 배양해 봤더니 콜라겐 만들어지는 게 형편없더라.. 그러면 좀 위험하거든요? 그걸 논문에 냈는데, 얼리기 전 사진이랑 얼린 후 사진이 똑같았어요. "

사진이 같으면 안 된다 했다. 그리고 미즈메디에서 출간한 논문 세 편이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논문의 뭐가 겹치는지 그런 건 지금 묻혀져 있는데 꼭 찾아보라 했다. 하지만 미즈메디와 메디포스트의 음모론엔 동의하지 않는다 했다. 영롱이 이야기도 했다.

"영롱이 논문 안 나갔다고 또 의혹이라고 하던데 그건 몰라 하는 소리에요. 못 나가는 게 당연해요. 돌리가 성공한 건 엄청난 거였지만, 영롱이처럼 이미 한 번 성공한 걸 비슷하게 하면, 그레이드가 쫙 떨어지고 취급을 안 해요. 이렇게 물어봐요. 그래서 옛날에 했던 실험보다 더 나아진 것은 무엇이냐 여기에 대해 대답해 봐라. 사실 없거든요.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있겠죠. 양보단 소가 더 힘들다.

그렇다면 바로 그렇겠죠. 구체적으로 뭐가 힘드냐. 그것만으로 과연 의미가 있냐. 그런 식으로 문제가 제기 되요. 이쪽 전문가들이 보기엔 영롱이 케이스엔 논문 안 내는 게 맞아요. 그리고 논문을 쓴다는 것은 50%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거예요. 논문 자체가 그런 의미를 가지잖아요. 정보를 공유하자는 거니까. 그런데 더 큰 것을 하기 위해서 이런 거는 출간 안 해요. 그건 당연한 거고... "

여기까지다. 인터뷰 전문, 싣지 못한다. 안타깝다. 객관적 사고와 비판의 문을 열어둔 채, 작금 상황에 대한 전체적 이해도 제고를 위해 한 번쯤 들어봐도 해 되지 않을 음모론과 관련한 인터뷰를 싣지 못한다면, 그럼 좋다.

그 동안 닥치고 있던 본지, 음모론 조사위를 발족하는 바다.

언론들 입 닥치라며 니들은 뭐냐고. 본지, 본지다.

시중 음모론을 취합하고 그 논리를 점검하고 정황을 확인하고 개연성을 타진하고 등장인물 만나보고 자료를 조합해, 가장 그럴 듯한 음모론 하나 직접 구성하겠다. 음모론은 황빠? 조까는 소리다. 물론 경위야 어떻든 결과적 논문조작의 최종책임, 황우석에게 있다. 그러나 그것이 조작의 경위와 그 여러 가능성에 대해 따져보는 것까지 멈춰야 할 이유, 결코 되지 못한다.

본지가 재구성할 음모론, 좀 기다려주시라.

음모론, 본지가 전공이다.

 

 

- 딴지총수
(chongsu@ddanz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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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5-12-3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졌다.

깍두기 2005-12-3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어준 그만 닥치지?

urblue 2005-12-31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포월 2005-12-31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즈질!
 

달력만 갈지 않았어도

어제와 같은데....

 

누가 '땡' 해줄 때까지

'얼음' 할란다...

 

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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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12-30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깍두기 2005-12-3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
=3=3=3

라주미힌 2005-12-30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벌써!!! ^^;;;

moonnight 2005-12-31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 술과 함께 새해를 맞을 계획입니다. ^^;
 

종무식 후에..

야근을 한다...

난 아니고..

측은 또는 미안해서 그냥 야근하는거 구경하다가 왔다..

내년의 내 모습일 수도 있으니까....

 

일 잔뜩 떠넘기고, '왜 퇴근안해?' 그러고 가는 '대가리급'의 덕담은

올해같은 내년을 약속한다.

고맙구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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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12-30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먹고 살기 힘들군요.
그 덕담 참......염장인가.

아영엄마 2005-12-3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웃, 저런 야근이라니... 그 분도 속상하시겠습니다. 윗사람 미워~~잇!
 
 전출처 : 숨은아이 > 미심쩍은 점들_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사전



재미있고 유익한 이 책에서 미심쩍은 점들.

87쪽
“엔간하다”를 “어여간하다”의 준말이라 했는데, 엔간하다는 “어연간하다”의 준말이다. 아마 오타인 듯.


109쪽
“하룻강아지”가 “하릅강아지”에서 온 말임을 설명하면서, 하릅강아지는 “한 살짜리 강아지, 곧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라 했다. 그런데 한 살짜리 강아지와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는 다르다. 태어난 지 1년 된 강아지는 이제 한 돌이 지날 무렵, 막 두 살이 되려고 하는 강아지다. 한 살짜리 강아지는 “태어난 지 채 1년이 안 된 강아지”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 사람의 경우에도 돌을 맞은 아기와 채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는 명백히 다르지 않으냔 말이다.

158쪽
고려의 어원을 ‘산고수려’라 한 데에 대해서는 http://www.aladin.co.kr/blog/mypaper/653237에 썼다.


181쪽
단말마(斷末魔)를 설명하면서 본뜻은 “혈(말마 : 산스크리트 marman)을 끊음, 곧 죽음이나 죽을 때”를 의미하고, 바뀐 뜻은 “숨이 끊어질 때 마지막으로 지르는 비명을 말한다.”고 했는데, 요즘에도 ‘단말마의 비명’ 하는 식으로 많이 쓰일 뿐이지 단말마란 말 자체가 “숨이 끊어질 때 지르는 비명”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202쪽
백병전을 설명하면서 “혼자 몸으로 자기 무기만을 가지고 싸우는 육박전”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혼자만 싸우거나, 1 대 다수로 싸우는 것이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백병전은 “여럿이 1 대 1로 붙는 싸움”을 뜻한다. 곧 한 사람 한 사람이 몸 부딪히며 1 대 1로 붙어 싸우기는 하지만 전체로 봐서는 두 패거리가 치고받고 싸우는 경우다.

211쪽
소경을 가리키는 “봉사”를 설명하면서 한자로 奉事라고 썼는데, 소경을 의미하는 봉사는 한자어가 아니다.

248쪽
장안을 설명하면서 “조선시대 중국을 섬기는 모화사상에 물든 양반들”이 중국 한나라의 수도 장안이란 말을 서울을 가리키는 말로 들여왔다고 했는데, 정말 조선시대부터 쓰기 시작했을까? 장안이 마지막으로 중국 왕조의 수도가 된 건 당나라 때인데, 당나라는 조선이 세워지기도 훨씬 전인 907년에 망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건 삼국 시대부터이고, 907년이면 통일신라 때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와서야 “장안”이란 말이 들여왔을까?

258쪽
아우트헤벤(aufheben) → 아우프헤벤(aufheben)

259쪽
“지향”의 한자를 指向이라고 썼는데, 여기서 설명하는 의미(목적, 목표를 가리키는 말)에 맞는 한자는 志向이 옳다. 指向은 작정하거나 지정한 방향으로 나아감을 뜻한다.

261-262쪽
차비(差備)에 대해 설명했는데, 차비란 한자어는 “채비”로 변형되었다. 곧 채비의 원말로서 차비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 책에서는 ‘채비’란 말을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264-265쪽
청서를 설명하면서, 영국에서 정부의 정책안을 기록한 책에 표지를 청색으로 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203쪽에서는 백서를 설명하면서 “17세기 영국에서는 정부의 보고서 표지에는 흰 표지를 붙이고, 의회의 보고서에는 푸른 표지를 붙였다.”고 했다. 의회의 보고서에 붙이는 ‘푸른 표지’는 청색이 아니고 녹색인가? 아니면 다른 시대 이야기인가?

320쪽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의 유래를 중국 역사책인 [오대사(五代史)] ‘왕언장전’에 나오는 고사에서 찾았다. 전쟁터에서 포로가 된 왕언장이 “표범은 죽어서 아름다운 가죽을 남기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름을 가벼이 여겨서야 쓰겠는가. 나는 떳떳하고 아름다운 이름을 남기겠노라.”라고 말한 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표범 대신 호랑이로 바뀐 듯하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왕언장에게 귀순을 권한 적국 임금을 “당나라 황제”라고 했다. ‘당나라’라고 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와 싸운 그 당나라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니 오대사 속의 당나라는 ‘후당’이라고 써야 한다.

352쪽
“쌍심지를 켜다”란 말을 설명하면서 “쌍심지는 한 등잔에 있는 두 개의 심지를 말한다. 심지가 두 개나 있는 등잔이니 보통 등잔보다 배는 밝고 뜨겁다.”는 데서 이 말이 왔다고 했다. 글쎄, 내 생각에는 사람 두 눈이 빛날 때, 그 두 눈동자를 심지 두 개로 비유해서 표현한 것 같은데.

353쪽
“쑥밭이 되다”란 말에 대해 설명하면서, “쑥은 키가 크기 때문에 다른 잡초보다 더 무성하게 자란다.”고 했다. 쑥이 키가 크다고? 사전에서 찾아보니 쑥은 뿌리줄기가 옆으로 기면서 자라며, 높이 60~120cm에 이른단다. 그러니까 1미터가 넘게 자라기는 자란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쑥이 다른 잡초에 비해 크다고?

359쪽
“어안이 벙벙하다”를 설명하면서 어안이란 “정신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했다.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어안은 “어이없어 말을 못 하고 있는 혀 안”이다.

373쪽
천애고아를 설명하면서 ‘천애’는 ‘천애지각(天涯之角)’의 준말이라고 했는데, 천애지각의 한자 표기는 天涯之角이 아니라 天涯地角이다.

393쪽
부/분(分)을 설명하면서 ‘푼’을 “어떤 것을 10으로 나누었을 때 그것의 10분의 1을 가리키는 말”이라 했다. 그게 10분의 1이란 말인지 100분의 1이란 말인지 표현이 불분명하다. 푼은 1할의 10분의 1, 곧 전체 수량의 100분의 1이다. (단, 길이와 무게의 단위로 쓰였을 때는 한 치의 10분의 1, 한 돈의 10분의 1을 가리킨다고 한다.)

399쪽
“애매모호하다”라는 말에 대해서, 애매(曖昧)는 일본어로서 우리말 모호(模糊)와 같은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애매하다”, “애매모호하다”는 말은 쓰지 말고 “모호하다”라고 쓰자고 한다. 흔히 이렇게들 알고 있는데, 내가 대학국어 시간에 배웠을 때도 그렇고, 또 표준국어대사전을 보고 생각해봐도, 이건 틀린 설명이다. 애매와 모호는 같은 말이 아니다. 애매하다는 것은 이를테면 A인지 B인지 구별하기 어렵다, 잘 구별이 안 된다는 뜻이다. 모호하다는 말은 흐릿하여 파악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애매한 것이나 모호한 것이나 그 정체가 불분명한 점은 같지만, 정확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게 동그라미를 비뚤게 그린 건지 세모를 두루뭉수리하게 그린 건지 애매하다.
그는 워낙 모호하게 말해서, 그가 정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말이 같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대답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애매했다.
그는 대답을 모호하게 얼버무렸다.


400쪽
오재미를 놀이주머니를 뜻하는 일본말이라고 했는데, 표준어는 오자미로 우리말이다. 가르쳐준 치카님께 감사!

420쪽
매머드를 “홍적기 시대”에 살던 코끼리과 화석 동물이라고 했는데, 홍적기 시대란 무슨 말인가? 정확히 “홍적세”라고 써야 옳다. 홍적세는 지질학적인 시대 구분으로, ‘-기’는 ‘-세’보다 큰 단위다. 이를테면 신생대의 제4기 중 앞 시대를 홍적세, 그 뒤를 충적세라고 한다.

431쪽
실루엣을 “하나의 색조만을 사용한 도안이나 물체의 윤곽이 뚜렷한 그림자를 가리킨다.”고 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설명이 훨씬 이해하기 쉽다.

실루엣
(&프silhouette)
「명」「1」『미』윤곽의 안을 검게 칠한 사람의 얼굴 그림. 18세기 말에, 프랑스의 재무상 실루엣이 극단적인 절약을 부르짖어 초상화도 검은색만으로 충분하다고 주장한 데서 유래한다. 「2」『수3』옷의 전체적인 외형. ¶우아한 실루엣의 드레스. §「3」『연』그림자 그림만으로 표현하는 영화 장면. '음영'으로 순화. ¶실루엣의 기법을 잘 살린 영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437쪽
유럽(Europe)이란 낱말이 아시리아어의 ‘엘레브’에서 유래했으며 그 말은 ‘해지는 곳, 어두운 곳’이란 뜻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해지는 곳, 어두운 곳이란 뜻에서 생겨난 말은 Occident이고, 유럽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우로파와 관계가 있다. 정확히 어느 쪽이 옳은지 모르겠다.

442쪽
캉캉(cancan)을 “프랑스의 속어로 ‘욕설’이란 뜻이다.”라고 했는데, 내가 가진 민중 불한사전에 따르면 cancan은 오리 울음소리를 흉내낸 의성어이기도 하고, 또 “험담, 뒷공론”을 뜻하기도 한다. 욕설과 험담은 다르지 않은가.

460쪽
“오라질”이란 말을 설명하면서 “‘질’은 ‘지다’의 원형으로 ‘묶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라고 했다. ‘질’은 ‘지다’의 원형이란 게 무슨 말인지? 게다가 '지다'가 '묶다'는 뜻이라고? 그럼 오라를 진다는 말이 오라를 '묶는다'는 뜻이 되게? 그냥 오라에 묶이는 것을 “오라를 진다”고 할 뿐이다.

465쪽
“화냥년”에 대해서는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92361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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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출판유통계의 ‘고질병’과도 같은 불법 사재기가 또 다시 불거졌다.

단행본 출판사 모임인 한국출판인회의(회장 김혜경)는 27일 교보문고, 영풍문고, 서울문고, 예스24, 인터파크, 알라딘, 리브로 등 대형 온오프 서점 7곳에 공문을 보내 5개 출판사의 책 5종을 베스트셀러 집계에서 빼줄 것을 공식 요청했다. 이에 따라 교보문고 등은 12월 넷째주 베스트셀러 집계에서부터 문제가 된 책들을 뺀 목록을 발표했다.

출판인회의의 한 관계자는 29일 “올 초부터 몇몇 출판사들의 불법 사재기가 유통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며 “현장 확인과 대형 서점들의 판매자료 검토 등 자체 조사 결과 5종의 책이 사재기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해당 출판사쪽에 확인 작업을 거쳐 이번 조처를 취하게 됐다”고 말했다.

출판인회의는 이미 9월 회원사 등에 공문을 보내 사재기를 뿌리뽑기 위한 자정 노력을 촉구하는 한편, 그래도 사재기가 없어지지 않을 경우 상응하는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행법상 사재기는 공정거래법과 출판진흥법에 위반된다.

익명을 요구한 출판인회의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출판사들은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대신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빼기로 서로 양해한 것”이라며 “이번처럼 눈에 보이는 수법 외에 또 다른 사재기 수법이 있을 수도 있어 다양한 방식으로 조사를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출판인회의 쪽은 해당 책 이름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교보문고 주간 베스트셀러 집계의 경우 셋째 주에 각각 종합 4위와 5위였던 <세계 명화 비밀>(생각의나무 펴냄)과 <쏘주 한잔 합시다>(큰나 펴냄)가 넷째 주 순위에서 아예 빠져 있는 등,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올라 있던 책 몇 종의 순위에 ‘이상 징후’가 보였다.

이와 관련해 출판사 큰나의 최명애 대표는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빼는 데 대해 출판인회의 쪽에 양해를 해준 적이 없다”면서 “출판인회의가 하필 10월1일~11월30일 기간을 정해서 조사를 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처는 출판인회의의 전체 의견을 물어서 결정된 것이 아니다”라며 “우리 출판사는 사재기를 한 적이 없으며, 출판사를 접을 각오를 하고 30일 이번 일과 관련된 전모를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생각의나무 박광성 대표는 “우리 책의 경우 영업자가 친구에게 부탁해 24권을 한꺼번에 주문한 것이 문제가 됐는데, 이걸 사재기로 봐야 할지 억울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출판인은 “이번 사재기 조사를 주도한 출판인회의 핵심 출판사들 역시 사재기 혐의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 아니냐”고 말해 이번 파동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을 예고했다. 출판계의 사재기 파동은 1997년과 2001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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