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돌바람 > 상상동물과 전쟁동물
전쟁동화집 - Bookvillage Classic
노사카 아키유키 지음, 이선희 옮김, 정택영 그림 / 책이있는마을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사자-개미를 아세요? 플로베르는 이 녀석을  "앞은 사자이고 뒤는 개미일 뿐만 아니라 생식기는 거꾸로 달려 있다"고 하네요. <욥기>에서는 " 늙은 사자는 먹이가 없어서 죽어갈 수밖에 없다"고 하구요. 라이시, 미르멕스, 미르메콜레온, 그리고 사자-개미라고 불리는 이 녀석은 그러나 먹이가 없어서 죽어갈 수밖에 없대요. 왜 먹이가 없지. 궁금했어요. 아버지는 사자고 어머니는 개미니까 용맹스럽고 부지런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데 녀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몸을 닮아 앞부분은 사자고 뒷부분은 개미로 태어났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고기를 먹을 수도 풀을 먹을 수도 없어서 그냥 굶어죽었다는군요. 이렇게 허망한 환상동물(상상동물)도 있을까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최고의 것을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죽어버리다니.

저건 상상동물이니까 그냥 그렇다고 치고, '전쟁동물'이라는 것도 있어요. <반딧불이의 무덤>이라는 만화 보셨나요? 보셨다면 거기에서 사람이 나오던가요? 숨고, 숨기고, 울고, 또 우는 그들이 사람이었던가요. 아님 폭격하고, 폭격하고, 또 폭격하는 그들이 사람이었던가요? 제가 본 유일하게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들이었어요. 시체요. 내장이 파열되고, 머리가 너덜거리고, 사지가 잘려나간 시체가 그나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이 끔찍한 만화를 동화로 읽는 것은 또 얼마나 넌덜머리가 나는 일인지요. 보지 말라구요. 그럴까요. 그나마 살아 있는 게 이런 것밖에 없는데 어떻게 보지 않을 수 있지요.

전쟁동화라. 사자-개미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 아닌가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노사카 아키유키는 자신의 전쟁체험을 동화로 풀었는데요, 이게 너무 아파요. 왜 그들이 그렇게 강경하게 보수주의를 지지하는지 이해가 되거든요. 이해는 되는데 이게 미로잖아요. 우리가 한국전쟁 당시 지배적인 입김을 넣은 체험을 통해 강경하게 반빨갱이주의자가 될 것을 강요받았듯, 베트남 사람들이 베트남전쟁을 통해 학살자 한국인을 기억하듯 역사는 전쟁을 통해 되반복되고 있다는 증언이거든요. 이건 쉽게 멈춰지지도 사라질 것 같지도 않거든요. 작가는 종이로 만든 풍선에 수소가스를 넣어 미국으로 띄어보내던 아이들의 체험을 패전 소식을 접한 이후에는 수소 대신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숨으로 채워넣고 막막하게 띄어보내기는 하지만 그것은 또 얼마나 그야말로 동화적인가요. 소망, 믿음, 마음으로 전쟁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어디 있겠나요.

다시 전쟁동물로 돌아가서, 그가 전쟁터에서 만난 동물들 좀 보실래요. 유난히 몸집이 커서 다른 고래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한 고래가 있어요. 다른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싶었지만, 사랑도 하고 싶었지만 그가 너무 커서 다른 고래들은 녀석을 끼워주지 않네요. 그러다 녀석은 자기보다 더 큰 고래를 만나게 돼요. 그게 누구냐구요. 잠수함이요. 미국을 공격하기 위해 마지막 폭격을 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수함만은 녀석을 따돌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녀석은 그녀를 사랑하기로 했지요. 잠수함은 적에게 포위되어 있어요. 마지막 선택이 남았지요. 항복할 것이냐 적과 함께 죽을 것이냐. 잠수함에 탄 선원들은 유서를 쓰기로 했어요. 모두의 유서를 모아 자꾸 따라오는 고래의 꼬리에 달아주었지요.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요. 그리고 적을 향해 몸을 던지려는데, 그때 잠수함을 사랑한 고래가 어떻게 했게요. 죽으려고 작정한 그녀를 대신해 미군을 향해 돌진해요. 그리고 고래를 본 미군은 또 다른 잠수함이라고 생각하고 고래를 향해 포탄을 쏘아대지요. 분명 잠수함을 향해 포를 쐈다고 생각했는데 망망한 바다는 핏빛으로 물들어요. 고래의 살점들이 여기저기 떠 있구요, 그 사이로 마지막 연애편지처럼 병사들의 유언이 둥둥 어디론가 흘러가지요. 굶주린 소년에게 말을 거는 파란 앵무새나, 빼빼 마른 코끼리와 사육사나, 말과 병사, 늙은 늑대와 소녀, 고추잠자리와 바퀴벌레 모두 8월 15일을 기억하는 '전쟁동물'들이지요.

상상동물들이 나오는 상상동화가 있다면 전쟁동물들이 나오는 전쟁동화라는 것도 있어요. 참 지독하지요. 현실은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은 것까지 상상하게 해주니까요. 상상을 강요하니까요. 이렇게 지독한 동화는 머리털나고 또 처음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책을 천천히 아이에게도 읽어줄 작정입니다. 천천히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베트남 전쟁에서 학살된 이들을 기리기 위해 정부로부터 받은 일본군 위안부 생활지원금 전액을 그들에게 건네주고 그해 돌아가신 문명금 할머니를 기억하기로 합니다.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다시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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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은 잘 모르겠지만...

10년 이상(그 이하도 많은)의 것들은 너무나 뻔하거나, 너무나 쌩뚱맞다...

그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이미 수많은 복제품을 남겼고, 새로운 것이 아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먼지가 쌓인 골동품같다.
기념비적인 것들이 나에게는 기념이 될 수는 없다고나 할까...
기대는 큰데 말이지... 설명은 장황하고... (과거엔 이랬던 작품들이다..라고)

(그냥 무식한 소리 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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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07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때와 지금은 비교 안되게 좋은 작품이 많이 나왔습니다^^

라주미힌 2006-01-07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겠죠.. 그러니깐 물만두님같은 매니아 분들이 많으신 거겠죠.. ㅎㅎ

하이드 2006-01-07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세요.찌릿

라주미힌 2006-01-07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네... ㅎㅎㅎ
 

<8뉴스><앵커> 지난 3일, 가족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숨진 40대 가장의 안타까운 소식 전해 드렸습니다만, 당시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뇌사 상태에 빠진 부인과 딸이 장기 기증을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주현 기자입니다.

<기자> 화마는 네 가족의 단란한 삶을 앗아갔습니다.

가장 박상원 씨는 목숨을 버려가며 부인과 남매를 구해냈지만, 세 가족 모두 위독했습니다.

친척들은 논의 끝에, 사고 이틀만인 어제(5일) 장기 기증 의사를 밝혔습니다.

[방재혁/방 씨 동생 : 누나가 평소에 그런 얘기를 몇 번 하셨다고 합니다.

죽으면 장기기증을 해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어머니 방신자 씨는 친정 아버지와 큰 언니의 동의를 받아 오늘 오후 4시 반, 심장과 간, 신장, 각막 등 5가지 장기 적출 수술을 받았습니다.

딸 은미 양은 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의 동의에 따라, 오늘 밤 적출 수술을 받게 됩니다.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기를 기증받아 새 삶을 살게 됐습니다.

[박정환/박 양 할아버지 : 내 손녀가 세상에 일부라도 살아있다는 마음의 위로라도 받을까 싶습니다.

] 은미 양의 오빠 지항 군 역시 장기를 기증하려 했지만 상태가 악화돼 어제 숨을 거뒀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서로 아끼며 열심히 살았던 네 가족. 친척들은 모레 세 가족의 합동 장례식을 치르기로 결정했습니다.

 

 

 

곡해하거나 폄하할 의도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다만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그것이 한 가족의 의사였을까...
병원비를 감당하기 힘든 친척들의 선택이라는 느낌이 든다..

한 가족의 마지막이 아름다우면서도 무지 슬픈 것은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한채 사라져 갔다는 것...

며칠 전만해도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이었을텐데...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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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학자의 연구주제까지 된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
“당신은 몇평에 사나” 처절한 구별짓기의 현장, 보이지 않는 카스트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고현정, 김남주, 김지호, 김현주, 김희애, 송혜교, 신애라, 이영애, 채시라, 최지우, 한가인(가나다 순) 등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이 빼어난 미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다 아파트 광고 모델이다. 대다수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꿈이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기 때문에 아파트를 향한 꿈은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계속 나래를 펴고, 그 꿈을 인도하기 위해 한국의 미녀들이 총출동한 것이다.

압구정동, 여기가 슬럼가냐?

아파트는 ‘코리언 드림’이다. 그건 한국인에게 진지하고 심각하고 비장한 드림이다. 그런데 외국인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다. 충격을 받는 외국인들도 있다. 네덜란드인으로 단국대 교수인 헨니 사브나이에는 “한국인이 아파트에 살고 싶어하고 그걸 진보라고 여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특이하다”며 “세계 어디에도 고층 아파트 건물들로 이루어진 마을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의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를 본 어느 독일인 교수는 “여기가 서울의 슬럼가냐”고 물어 한국인 안내자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프랑스의 한 도시계획가는 서울 반포의 5천분의 1 축적 지번 약도를 보고선 “한강변의 군사기지 규모는 정말 대단하군”이라고 말했다나.


△ 한국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도 평수에 따른 차별이 있다. 서울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판자촌 위로 타워팰리스가 솟아 있다. (사진/ 박승화 기자)

대단한 건 통계로도 입증된다. 한국의 아파트 가구율(전국 47.3%, 서울 50.3%, 강남구 75.8%)은 세계 최고다. 70년대부터 한 세대 이상 지속돼온 아파트값 폭등 속도도 세계 최고일 것이다. 그런 ‘세계 최고’라는 위상에 비추어보면, 1994년 서울 아파트 단지의 거대함에 충격을 받은 프랑스 마른라발레대 지리학과 교수 발레리 줄레조가 한국의 아파트를 박사논문의 주제로 삼기로 마음먹은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아야 했다. 현장답사를 하면서 한국인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충격을 받은 것이다. 한국인들은 왜 아파트가 연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살려면 주택을 수없이 건설해야만 한다는 사실과, 그 많은 아파트를 왜 지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은 제기할 필요도 없다는 점을 이해 못하는 순진파로 취급되어 자주 낙심하기도, 마음을 상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협소한 영토에 인구밀도가 높은 네덜란드나 벨기에에서는 도시 집중화가 대규모 주택 건설을 초래하지 않았으며, 공간이 넉넉한 프랑스에 오히려 대규모 주택 건설이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은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파트를 향한 한국인들의 열광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가?”라는 연구 주제를 물고 늘어져 지난해 <한국의 아파트 연구>라는 책을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인의 ‘영토 부족에 대한 강박관념’과 더불어 한국인들에게 아파트는 현대적인 삶을 상징했으며, 고도성장의 포드주의적 양산 체제에 더 들어맞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아파트는 한국적이다. 한국과 한국인의 특성을 상징하거나 대표할 수 있는 사물을 하나 들라면 그건 단연 아파트일 것이다. 아파트는 처음에 현대성의 상징으로 도입됐다. 1958년 광복 이후 최초로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아파트가 세워졌을 때 준공식에 참석한 이승만 대통령이 역설했던 것도 바로 ‘현대성’이었다. 1964년 마포아파트단지 완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도 아파트를 현대성의 상징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현대성’만으론 부족했다. 1960년대 말까지 아파트에 대한 저항은 완강했다. 정부는 마포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까지 제작하게 하는 등 아파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마당이 없다거나 공동생활의 불편함이 크다는 것 등이 아파트를 꺼리게 만들었다. 양변기마저 기피 사유가 되었다. 아직도 대다수 국민이 화장실 휴지로 신문지를 쓰던 시절 마포아파트의 양변기는 오히려 골칫덩어리였고,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신문지로 막힌 양변기를 뚫느라 바빴다.

아파트에 날개를 달아준 건 ‘돈’이었다. 투기 바람이었다. 60년대 말부터 시작된 정부의 ‘강남 개발’이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자금 조달 목적을 위해 강남 개발에 열을 올렸고, 1970년 7월7일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부동산 투기로 떼돈을 버는 이른바 ‘말죽거리 신화’가 탄생하게 되었다.

네트워크를 깔기에 가장 적합하다


△ 아파트가 고급화하면서 한국의 미녀들이 총출동해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두산아파트 '위브'의 텔레비전 광고(맨위)와 대우 푸르지오 텔레비전 광고.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말 그대로 군사작전이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 사망자가 77명이나 나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아파트는 한국의 군사주의적 초고속 압축성장을 웅변했다. 예컨대, 잠실의 초창기 4개 단지의 건설을 지배한 구호는 ‘주택건설 180일 작전’이었으며, 이 작전은 성공적으로 완수됐다.

한국인들은 군사주의를 혐오하지만, 한국을 세계적인 정보통신 강국으로 떠오르게 만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아파트 대단지가 제공해주는 군사주의적 효율성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랴. 중앙집중화의 터전 위에 선 아파트 공화국이야말로 네트워크를 깔기에 가장 적합한 체제가 아닌가. 반면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은 교외주거지역의 특성상 인구밀집이 쉽지 않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들어 인터넷 보급망에서 한국에 뒤처질 수밖에 없다.

아파트는 한국인 코드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 할 단일성과 밀집성을 아파트가 상징하는 동시에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다. 또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구별짓기’가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남들과 구별되고자 하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소재가 빈약한 아파트 공화국에선 아파트가 가장 중요한 구별짓기 양식이 된다.

별로 믿기지 않겠지만, 아파트 공화국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아파트 구별짓기의 제1원칙이라 할 지리적 위치의 중요성은 수백 년 전부터 ‘민간신앙’의 수준에서 인식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산 정약용이 죽기 전 자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대문 밖으로 이사가지 말고 버텨야 하며, 서울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고 사회적으로 재기하기 어렵다고 신신당부한 동시에 경고했던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건재하지 않은가 말이다.

서울 모 대학에 다니는 네팔인 유학생 검비르 만 쉐레스터는 한국인들은 인도와 네팔의 카스트 제도에 대해 놀라면서 비판하지만 자신은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카스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입생 환영회 때의 일이다. 선배들은 처음 본 신입생에게 먼저 ‘집이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방에 산다고 대답했을 때와 강남에 산다고 대답했을 때 선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방에 사는 신입생에게는 더 이상 질문이 없었던 반면 강남 출신 신입생에게는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면서 관심을 가졌다.”

서울·지방, 강남·강북 등의 지리적 위치 다음으로 중요한 구별짓기 소재는 아파트 평수다. 일부 지역에선 아파트 평수에 따라 어린아이의 친구들이 구분된다는 건 상식이다. 심지어 한국 최고급 아파트인 타워팰리스에도 아픔이 있다. 평수에 따른 차별 때문이라고 한다. 그 안에도 젊은 독신자와 노인 부부 등을 위한 30평대 이하의 소형 아파트들이 있다. “‘30평 애들하곤 놀지 마’- ‘부의 상징’ 타워팰리스 빈곤층(?)의 비애”라는 제목의 어느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런 이야기다.

고밀도형 민주주의와 인터넷

124평 펜트하우스에 사는 최모군(13)은 “어느날 60평대에 사는 다른 동 친구를 집으로 초대했는데, 부모님께서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어서 그 뒤론 안 데려온다”고 털어놨다. 최군은 “이곳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대치동 D중학교에서도 아파트 평수와 부모의 직업에 따라 친구들이 구분된다”고 말했다. 소형 아파트들이 주로 D·E동에 몰려 있다 보니 “난 이곳(D·E동)에 살지 않는다”며 결백(?)을 증명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D동 20평대 오피스텔에 사는 이아무개(32·여)씨는 “가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사람이 묻지도 않았는데 ‘난 여기에 놀러 온 것뿐’이라고 해명하기도 한다”며 “일부 주민들은 자신이 소형 아파트에 산다고 오해받는 것을 불쾌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별로 믿고 싶지 않겠지만, 그런 처절한 구별짓기 욕구가 한국인의 삶에 대한 전투성을 배양시켜 한국의 대외경쟁력을 높여주는 데에 기여했는지도 모르겠다. 20평대에 사는 사람이나 120평대에 사는 사람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없고 구별짓기의 효과도 없다면,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할 이유도 약화되지 않을까? 소설가 이외수는 아파트를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으로 정의했지만, 아파트는 인간을 보관만 해주는 곳이 아니라 욕망이 타오르게끔 관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도 그걸 아파트 체제의 장점이라고 감히 말하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묘한 나라다. 자본주의에 비판적 자세를 취하는 것과 한국이 ‘경제대국’임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함께 손을 잡고 같이 간다. 논리적으로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가치의 평화 공존이야말로 한국의 저력(?)이다. 개혁·진보의 이름으로 국가주의를 당당하게 실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 1960년대 말까지 아파트에 대한 저항은 완강했다. 하지만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건설 뒤 아파트는 '현대성'의 상징으로 우뚝 섰다. 사진은 마포아파트단지의 1965년 모습. (사진/ 대한민국정부 기록사진집)

그건 아파트 공화국이 자랑하는 고밀도에서 비롯된 생존 본능은 아닐까? 한국의 민주주의도 고밀도형이라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고밀도 민주주의는 한국 특유의 온라인 민주주의를 낳았으며, 오프라인에서도 ‘월드컵 열기’나 각종 ‘촛불 시위’에서 보듯 일시에 수많은 군중을 동원할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이는 한국 민주주의가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늘 ‘열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가능성이 높다는 걸 시사한다.

그건 아파트 거주 구조의 전염력이나 압박력이 높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2년 6월 월드컵 열풍 때에 많은 아파트에 태극기가 내걸린 것은 아파트 관리소와 통반장이 합심해 “태극기를 걸고 주민이 하나됨을 보여주자”며 태극기를 걸지 않은 집을 찾아가 태극기를 걸도록 권유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이기적 시위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이기도 하다. 아파트는 시위 체험과 방법론을 가르쳐주는 대학이다. 일부 아파트의 반상회가 내부 단합을 통해 집값을 올려놓는 묘기를 선보일 수 있는 것도 고밀도 주거 구조의 파괴력(?)을 잘 말해준다 하겠다.

고밀도 주거구조의 축복이라 할 인터넷은 다시 고밀도 행태를 강화한다. 더 나은 칸막이 속으로 들어가려는 ‘위계의 게임’은 인터넷 시대에 신속한 정보 교환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인터넷 사이트의 상담 코너에선 ‘투자’ 상담뿐만 아니라 똑같은 강남이라도 어느 학교가 더 좋다는 정보까지 왕성하게 교환되고 있다.

고밀도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 유리하기 때문에 ‘따라 하기’를 낳기 마련이고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공연한 불안감을 갖게 만든다. 부동산값 폭등은 경제적인 현상인 동시에 심리적인 현상이다. 사람들이 우우 몰려다니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걸 이용해 대박을 터뜨리는 산업이 엄청난 고수익을 올리기에 유리했다는 것이다. 일부 중산층은 물론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까지 그 산업의 일원으로 참여한 ‘대박 신드롬’은 빈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윤수일의 아파트와 당신의 아파트

한국의 1673만 가구 가운데 절반인 841만 가구는 집이 없다. 한국 사회에 대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빈부 양극화의 진원지는 바로 아파트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은 마비됐다. 이화여대 건축과 교수 임석재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에 나오는 아파트 광고 비평은 처음엔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다가 종국엔 독자를 슬프게 만들고야 만다. 우리의 아파트 중독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폭로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강홍구는 “모든 아파트에는 분노와 공포가 창문처럼 매달려 있다”고 했다. 아파트는 아파트의 주인이 아닌 노예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리라. 한국적 삶이 전쟁이라면, 그 전쟁은 우선적으로 아파트의 노예가 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이 어떤 아파트를 점령하는 순간 당신은 더 나은 아파트를 또 점령하기 위한 임전 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조망권과도 싸워야 하고 발코니와도 싸워야 한다. 윤수일의 ‘아파트’는 아무도 없기에 쓸쓸하다지만, 아직 아파트를 단 한 번도 점령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아파트는 처절하거나 경건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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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0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갑니다. 꾹.

라주미힌 2006-01-07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인줄 단번에 알았습니다. ㅎㅎ

딸기 2006-01-07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퍼갈께요.
 

 

 

 

 

멸종 위기의 뭇 생명들을 대신하는 탄원은 윌슨 특유의 사려깊음이 곁들여져 깊은 울림으로 연결된다. 독설도 마다 않는다. "사람이 점령한 에덴은 도살장에 다름 아니었다"는 것이고 "논쟁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이제는 경제주의자와 환경주의자가 의기투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책을 채운다. 인류는 지구 환경의 '탕아 소유주'가 아니라 '성실한 관리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지적이며, 놀라운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책 앞에 누가 감히 "노!"할 수 있겠는지….

배영대 기자

 

 

 

 

 

 

2004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과 본격미스터리상 대상을 수상한 일본 소설. 그해 말 각종 베스트셀러 순위 미스터리 부문을 대부분 석권한 인기작이다. 방금 사정을 하고 늘어진 한 남자의 질펀한 입담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독자를 사로잡고는 곧바로 긴장감 넘치는 추리 세계로 이끌어간다.

 

 

 

 

 

중국 당나라 때 신화와 도교를 바탕으로 원숭이 아내, 신선, 협객, 귀신이 등장해 기이한 상상력과 환상적인 서사를 펼친 ‘배형전기’를 옮겼다.

 

 

 

 

 

영국 개방대학 물리학과 교수 출신인 스티븐 웹의 ‘…모두 어디 있지?’는 과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SF 작가 등이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찾아가는 흥미로운 책이다. 책은 “모두 어디 있지?”라는 질문에 대해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풀이를 크게 세 범주로 정리한다.

첫번째가 외계인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는 주장이다. 영국의 거석 유적 스톤헨지, 남태평양 이스트섬의 거상을 우주인이 세웠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외계인이 존재는 하지만 아직 우리와 의사 소통이 안 된다는 부류이고, 세번째는 외계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난해한 개념이나 독자를 가르치려는 작가의 욕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불과 몇 문단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들은 무지개 송어처럼 꿈틀대면서 손에 잡혔다가 곧 미끄러져 나간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서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그곳에 그대로 남아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은 <어린 왕자>의 사막여우같이 한두 가지의 교훈을 전하려 하거나 <루바이야트>의 늙은 현자처럼 당신을 달콤한 허무로 초대하지 않는다. 그가 현대문명의 위기를 그렸다거나 환경생태문학의 선구자라거나 하는 얘기도 그냥 거창하게만 들린다. 그는 몇 가지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들려줄 뿐이다.

그는 1984년 49살의 나이에 자살했다. 얼굴이 날아간 그의 시신은 몇 주가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그의 몸 옆에는 술병과 44구경 총이 놓여 있었다. 집의 벽과 문, 천장에는 수백 개의 총알구멍이 나 있었다. 그때 미국의 대통령은 레이건이었다. 카프카의 말처럼 미국인은 너무 건전하고 낙천적이었다. 남들이 다 좋다는 시절에 그는 미국이 잃어버린 송어를 낚으러 일찍 떠났다.

이 책의 번역본은 1987년 한 문예지의 부록으로 처음 나왔다. 서울대 김성곤 교수의 번역은 훌륭하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면 절대 이 초판본을 그에게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절판되어서 중고서점에서도 찾기 힘든 이 책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최근 역사를 어떻게 하면 좀 더 재미있는 강의로 엮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역사학자와, 인문학적 깊이가 담긴 만화를 꿈꾸던 젊은 만화가”가 만나 만들어낸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앨피 펴냄)에 따르면 류근일은, “아무리 좋게 봐줘도 봉건적 자유주의자”에 불과하다. 그의 행적은 ‘과대포장된 순수 청년의 텍스트 놀음’이었고 ‘노블리스 오무라이스(?)’였으며 ‘김일성주의 비판에서 알리바이 찾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를 한국 노동운동사에 전설을 남긴 안쓰런 ‘생계형 전향자’ 김문수와 함께 엮어놓은데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들이 있다.

한국 현대사 인물 22명. ‘북으로 간 사람들’에는 박헌영, 홍명희, 그리고 문익환, 임수경이 등장한다. 김주열과 전태일, 박종철은 ‘변혁의 불씨들’로 묶었고 김종필과 이기붕은 ‘절대권력의 2인자 되기’로, 김용무, 이인, 오제도, 선우종원은 ‘절대권력의 조력자 되기’로 엮었다. 신군부 ‘전·노’에 대한 경멸에는 거침이 없다.

때로 너무 튄다 싶을 정도로 익살과 재치, 풍자와 야유가 범람하는 독특한 글쓰기는 어쨌든 읽는 재미를 주며 설정한 주제에도 충실하다. 과감한 생략과 단순화로 역사를 지나치게 희화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는 뒤로 읽어갈수록 해소된다. 그만큼 독특한 감식안과 나름의 진지성, 방대한 텍스트를 소화해낸 성실성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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