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깍두기 > 다아시경 시리즈 2탄이 나오네^^



행책이 드디어 다아시경 2탄을 내는 모양이다. 수고하십니다^^


<책소개>

귀족 탐정 다아시 경 2
사이드와이즈상 수상작


행복한책읽기 SF총서 009
마술사가 너무 많다
TOO MANY MAGICIANS -LORD DARCY 2

랜달 개릿 지음 김상훈 옮김

--------------------------------------------------------------------------

신고전 SF
2002년판 완역


과학적 마법 문명의 지배를 받는 20세기 런던에서 일어난 불가해한 밀실 살인을 다룬  걸작 미스터리!
--------------------------------------------------------------------------


영불제국의 마술사 컨벤션이 열린 고급 호텔의 객실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살해된 사람은 런던 후작의 주임 법정 마술사인 서 제임스 즈윈지였다. 완전한 밀실인 피해자의 방에 들어가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같은 마술사밖에는 없지만, 문제의 호텔에는 이미 수백 명의 마술사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런던 수사 당국에서는 서 제임스의 라이벌이자 사건 현장을 발견한 노르망디 대공의 법정 마술사 숀 오 로클란을 흑마술 용의로 체포하고 런던 탑에 감금한다. 자신의 소중한 조수인 숀이 체포되었다는 사실에 격분, 런던으로 달려온 노르망디 대공의 주임 수사관 다아시 경은 즈윈지가 살해당하기 하루 전 셰르부르의 싸구려 하숙집에서 정체불명의 사내가 칼에 찔려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해군에서 새로 개발된 비밀 병기의 존재가 서서히 드러나면서, 사태는 영불제국 해군 정보부와 폴란드 비밀경찰 사이의 첩보전 양상을 띄기 시작하는데......

기술 수준은 아직도 가스등과 증기 기관차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과학적’ 마법이 놀랄 정도로 발달한 또 하나의 20세기 유럽을 무대로, 천재적인 귀족 탐정 다아시 경과 법정 마법사인 숀의 활약상을 그린 전설적인 미스터리 SF 제2탄!

--------------------------------------------------------------------------

“추리와 스릴러와 판타지를 절묘하게 결합한 랜달 개릿의 최고 걸작!”
                    --데이빗 랭포드, 『판타지 백과사전』(The Encyclopedia of Fantasy)

"개릿의 최고 걸작. 다아시 경의 세계는 풍성한 디테일로 가득 찬 리얼리스틱한 장소이다.“
                    --『SF독자를 위한 안내서』 (A Reader's Guide to Science Fiction)

 

<역자해설>

다아시 경의 귀환

김상훈(SF평론가, 행복한책읽기 SF총서 기획자)




다아시 경(Lord Darcy) 시리즈의 제2권이자 유일한 장편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를 독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2006년 1월 현재 국내에 번역 소개된 랜달 개릿의 작품으로는 제1단편집인 『셰르부르의 저주』(행복한책읽기 SF총서 006)와 본서가 유일하지만, 작가의 모국인 미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장 유명한 본 시리즈조차도 2002년에 베인(Baen) 출판사에서 시리즈 전 작품을 집대성한 옴니버스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품절 내지는 절판 상태였다. 개릿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고전적’인 작가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 이면에는 당시의 SF작가답게 대부분의 작품이 『어스타운딩』이나 『판타스틱』 등의 SF잡지에 분산 게재되었으며, 이것들 모두가 페이퍼백이나 하드커버 형태로 단행본화되지는 않았다는 내부 사정이 있었다. 게다가 개릿 자신이 Robert Randall, Darrel T. Langart 등 무려 16개가 넘는 필명을 사용해서 (때로는 로버트 ‘소설공장’ 실버버그 등의 신예작가들과 함께) 수많은 펄프 잡지에 모험 SF를 게재한 ‘양산형’ 작가였다는 사실―그러나 질병으로 인한 긴 공백을 겪은 탓에 그 요건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못했다―을 감안하면, 개릿은 ‘흘러간 황금시대’ 작가의 전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랜달 개릿이 21세기 들어서도 꾸준하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친근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역시 그의 최고 걸작으로 간주되는 『다아시 경』 시리즈가 있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가장 먼저 읽었던 개릿의 작품은 다아시 경 시리즈가 쓰이기 직전인 1962년 『애널로그』지에 분산 게재되고, 다음 해인 1963년에 더블데이(Doubleday)사에서 단행본화된 장편 『뭐든지 할 수 있어 Anything You Can Do』의 낡은 페이퍼백 판이었다. 난파한 항성 간 탐험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괴물 외계인이 지구에 착륙해서 인간을 사냥한다는 펄프SF의 전형적인 침략 테마를 뼈대 삼아, 인류와는 사고 체계가 전혀 다른 외계인과 인류 사이에서 벌어지는 허허실실의 싸움을 그린 이 작품은 발표 당시에조차도 너무 고풍스럽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개릿 자신의 박학함과 장인적 수완이 잘 드러난 이 소품에 대해 필자는 개인적인 애착을 느끼고 있다.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힘들지만 1950년대의 단순 소박한 우주SF 등에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적막함’ 내지는 고독감이,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가슴에 와 닿는다고나 할까.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설정의 ‘신기함’에 먼저 눈이 가는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다아시 경』 시리즈는 미국 SF, 나아가서는 미국 문학 특유의 자기 충족적 ‘내향성’이 매우 긍정적으로(바꿔 말하자면 문화적 배경을 독자와 공유하는 ‘즐거움’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현된 작품이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와 편집자와 팬들 사이의 교류가 매우 활발한 SF 팬덤에서 흔히 인사이드 조크(inside joke)로 불리곤 하는 내부인끼리의 농담이 들어간 작품이나 다른 작가의 등장인물을 끌어오는 재귀 소설(再歸小說; recursive novel)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아시 경』의 경우는 이런 측면뿐만 아니라 SF와는 역사적으로 사촌지간인 미스터리1) 장르에 대한 포괄적인 패러디/패스티시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특히 장편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에 이르러서는, TV 프로그램 및 영화로 대표되는 1960년대의 서구 팝컬처에 대한 오마주―때로는 위트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모호하기 그지없는―가 마치 숨은 그림처럼 문맥 곳곳에 잠복하고 있다는 점이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일일이 설명한다면 사족이 되겠지만, 눈에 띄는 몇 가지를 나열하자면……


1. 본서의 제목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는 물론 난초와 맥주를 사랑하는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Nero Wolfe) 시리즈 굴지의 걸작 『요리사가 너무 많다』2)의 직접적인 패러디이며, 본서에서 마이크로프트 홈즈적인 역할을 맡은 런던 후작의 모델은 외모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네로 울프 본인이다.

2. 홈즈보다 열 배는 더 무례한 ‘폭군’ 네로 울프에게 시달리면서 독자들의 동정을 산 조수 아치 굿윈(Archie Goodwin)의 성 굿윈을 프랑스어(혹은 영불어)로 번역하면 bonne victoire, 즉 bon triomphe가 된다.

3. 본서에서 살해당하는 서 마스터 제임스 즈윈지의 모델은 실존하는 캐나다인 무대 마술사 랜달 제임스 해밀턴 즈윈지(Randall James Hamilton Zwinge)이다. 즈윈지는 초능력 트릭에 관한 세계적인 권위자이며, TV에서는 ‘어메이징 랜디(Amazing Randi)’라는 애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4. 등장인물인 티아 아인찌히의 숙부인 네아펠러 아인찌히를 의역하면 ‘나폴레옹 솔로’가 된다. (나폴레옹 솔로는 1960년대를 풍미한 TV 스파이극 〈The Man from U.N.C.L.E〉의 주인공이다. 이 드라마는 플레밍의 007 시리즈에 대한 패러디의 성격을 짙게 함유하고 있었다.) 이런 식의 비교적 알기 쉬운(?) 이름 바꾸기는 시리즈 도처에서 발견된다.

5. 이를테면, 마술사 길드의 장인 서 라이언 ‘갠덜푸스’ 그레이(Sir Lyon Gandolphus Grey)의 모델은……


1960년대의 ‘현대’사회에서(본 시리즈의 시간 설정은 해당 작품이 잡지에 게재된 연도와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과학기술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지의 제왕』식의 노골적인 마법도 아닌 ‘과학적 마술’이 가장 중요한 테크놀러지로 자리잡고 있다는 설정은 SF에서 시작된 대체역사 내지는 병행 세계(Parallel World) 패러다임을 통해 구축된 것이며, 『다아시 경』이 주는 즐거움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장편인 『마술사가 너무 많다』에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을 꼽으라면 역시 ‘망토와 단검(Cloak and Dagger)’ 이라는 통칭으로 불리는 고전적인 첩보물의 서사구조가 글자 그대로 런던의 짙은 안개 속에서(SF라는 합리성의) 망토를 두르고(판타지에 나올 법한) 단검을 휘두르는 등장인물들로 치환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개릿 자신이 SF와 판타지 작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던 창조적 시대착오 협회3)의 멤버였음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럽이 대표하는 ‘고풍스러움’에 대한 ‘젊은’ 미국 작가 특유의 탈구축적 태도가 발현된 탓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마술사가 너무 많다』는 밀실 살인과 눈속임(misdirection)을 다룬 퍼즐 미스터리의 왕도를 결코 벗어나지 않고, 예의 ‘공평함’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지극히 매력적인 수작이다.


작가인 고든 랜달 필립 데이비드 개릿은 1927년에 미국 미주리 주 렉싱턴에서 직업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고, 1948년에 텍사스 테크놀러지컬 칼리지에서 B.Sc(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미 해병대에서 잠시 복무한 후 미시간 주로 가서 화학 기술자로 일하다가, 뉴욕 시로 이주해서 SF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어스타운딩 사이언스 픽션(Astounding Science Fiction)』6월 호에서 단편 「The Absence of Heat」로 데뷔한 이래, 그는 무려 16개가 넘는 필명으로 『애널로그』, 『어스타운딩』, 『어메이징 스토리즈』, 『판타스틱』 지 등에 수많은 중단편을 기고했고, 로버트 실버버그와의 공동 저작 등을 통해 직인적(職人的)인 높은 완성도를 가진 견실한 SF 장편을 꾸준히 발표했다. 특히 그는 미국 SF의 황금기를 일궈낸 명편집자 존 W. 캠벨 Jr.의 수제자적인 존재였고, 뛰어난 위트와 기지로 사람들을 매료시킨 인기작가였다. 『다아시 경』 시리즈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매우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1970년대의 긴 공백기간 중에는 가톨릭 수도원에서 수도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1979년에 심각한 뇌손상을 입은 뒤에는 긴 입원 생활에 들어갔고, 1987년에 팬들의 애도를 받으며 타계했다.


랜달 개릿 저작 목록

1. The Shrouded Planet (1957)
2. The Dawning Light (1958)
3. Pagan Passions (1959)
4. Unwise Child (1962)
5. Anything You Can Do…… (1963)
6. Too Many Magicians (1967)―다아시 경 시리즈. 장편. 본서
7. Murder and Magic (1979)―다아시 경 시리즈. 제1 중단편집.
8. Takeoff! (1980)―단편집
9. Lord Darcy Investigates (1981)―다아시 경 시리즈. 제2 중단편집
10. The Steel of Raithskar (1981)
11. The Best of Randall Garrett (1982)―걸작 단편선
12. The Glass of Dyskornis (1982)
13. Lord Darcy (1983)―6, 7, 9의 합본
14. The Bronze of Eddarta (1983)
15. The Well of Darkness (1983)
16. The Search for Ka (1984)
17. Return to Eddarta (1985)
18. The River Wall (1986)
19. The Gandalara Cycle, Volume 1 (1986)―10, 12, 13의 합본
20. The Gandalara Cycle, Volume 2 (1986)―14, 15, 16의 합본
21. Takeoff Too (1987)―단편집
22. Lord Darcy (2002)―13에 시리즈의 마지막 단편인 「전쟁 마법」 (The Spell of War)(1979)을 추가한 완전판


| 다아시 경 시리즈 |

<1권>
The Eyes Have It ―Analog 1964년 1월 호
A Case of Identity ―Analog 1964년 9월 호
The Muddle of the Woad ―Analog 1965년 6월 호
A Stretch of Imagination ―Of Men and Malice. 앤솔러지. 1973년
The Spell of War ―The Future At War. 앤솔러지. 1979년

<2권>
Too Many Magicians ―Analog 1966년 8월 호∼11월 호

<3권>
A Matter of Gravity ―Analog 1974년 10월 호
The Bitter End ―Asimov’s SF 1978년 9월 호, 10월 호
The Ipswich Phial ―Analog 1976년 12월 호
The Sixteen Keys ―Fantastic 1976년 5월 호
The Napoli Express ―Asimov’s SF 1979년 4월 호


                                                      Copyright ⓒ Kim, Sanghoon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릿광대 2006-01-10 0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2편 정말 기대했었는데...드디어 나오는 군요^^
 
 전출처 : 깍두기 > (펌)북컬렉터를 위한 강추종목 - SF

http://zsnest.egloos.com/tb/1118625에서 퍼왔습니다.
엄청엄청 공감가는 글이라.
내가 SF를 모으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어......

 
 
북컬렉터를 위한 강추종목 - SF
소장가. 라고 한다면 역시 어떤 물건을 이용할 목적이 아닌 ' 가지고 있을 목적 ' 으로 구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우리나라에 책을 소장하려고 모으는 사람이 많은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추천할만한 종목이 있으니,

단연코 SF ( Science Fiction )

이다.


1. 절판이 잘된다.

일단 SF장르의 책인 것이 확인되면 불문곡직하고 내가 빨리 사들이려는 이유. 바로 절판이 잘되기 때문이다. 일부 영화화된 것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SF들은 1쇄만으로 끝나는 것이 보통. 1-2개월쯤 지나서 서점에 가면 그나마 안정권이지만 여기에서 한두끝 더 지나면 그걸로 절판되어 ' 구할 수 없는 책 ' 이 되어버린다. 종종 이것이 이후에 재번역되어 나오거나 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건 뉴로맨서나 신들의 사회처럼 ' 압도적 명작 ' 의 경우이고, 대부분의 경우엔 이런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져간다.

2. 경제적 부담이 없다.

한창때는 그럭저럭 좀 나왔다고하나 그것마저도 한달에 10여만원 투자하면 넉끈했고, 일반적으로 SF는 한달에 한두권 나올까말까하다. 즉, ' 한국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SF를 다 사모은다 ' 라는 목표를 설정하더라도 결코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 한국시장에 출시되는 모든 로맨스 소설을 모으겠다 ' 라고 결심했다면? 일반적 직장인들은 파산을 각오해야한다. 그러나 SF는 그렇지 않다 !! 많아봐야 한달에 1-2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3. 콜렉션의 독특함이 압도적이다.

그렇다. 한국에서 출간되는 SF들만 모은 콜렉션. 의 유니크함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다. 어떤 누가 특정 장르에 해당하는 모든 책을 다 사모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SF를 사는 사람들은 국내에 몇백명 되지도 않는다. 그들 모두가 책을 소중하게 간직하리란 보장도 없다. 몇십년쯤 지나면 당신은 어엿하고 당당한 ' SF소장가 ' 대열에 설 수 있는 것이다.

4. 뿌듯함이 남다르다 !!

한국에서 SF가 과연 몇천권이나 팔릴까? 좀 알려진 것들이야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SF들은 몇백권 내외로 팔리는게 전부이다. 만약 당신이 ' 다빈치 코드 ' 를 샀다면 그건 출판사의 재정에 그다지 많이 기여했다고 볼 수 없다. 몇백권쯤 샀으면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SF는 다르다. 단 한권을 샀다해도 당신은 이 책의 출판에 지대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후에 이 출판사가 ' 다른 SF도 내볼까? ' 라고 생각할 정도로 만드는데도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 어떤 장르에서도 이런 뿌듯함을 누리긴 어렵다고 단언할 수 있다.



SF 컬렉터의 대열에 서려는 분들을 위해, 다음의 사이트를 소개한다. http://wiki.sfreaders.org/SFReaders 이 사이트에서도 < 새책소식 - 따끈따끈한 새책 정보! > 코너를 참조하면 이번달에 뭘 사야할지는 명확해진다. 물론 이 코너에서 소개하는 책들은 SF를 굉장히 넓은 범위로 봤을 때의 기준이므로, 좀더 범위를 좁힌다면 경제적 부담과 하드코어함을 과시하기 위한 기회는 더더욱 넓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코지토 > 신화와 꿈, 그 사이에 담긴 비밀들
아발론 연대기 - 전8권 세트
장 마르칼 지음, 김정란 옮김 / 북스피어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1. 끝없는 상상력의 원천,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


과거의 왕이었고 미래에도 왕인 자 - 글래스턴배리 수도원 아더왕의 묘비에서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 어린 시절 우리의 상상력과 꿈을 그 얼마나 자극하던 단어였던가. 우리는 막대기 엑스칼리버를 들고 상상의 백마를 타고 골목 골목을 브리튼의 어느 숲속이라고 여기며 달렸다. 이순신도 멋졌고 김유신도 멋졌지만 아더왕와 원탁의 기사는 무언가 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단어였다.


우리에게만 그러했을까? 아더왕과 그의 멋진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천년이 넘는 시간을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중세 유럽의 시인들은 각 민족과 지방의 전설에 아더왕의 이야기를 결합했고 끝없이 순환시켜가며 마침내 죽지 않는 왕, 과거에도 왕이었고 미래에도 왕인 한 인물과 그를 둘러싼 ‘불멸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를 완성했다.


종교와 신화, 신화와 비의, 그리고 주술과 상징이 버무려진 이야기들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로 여긴다. 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중 천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어 현대인의 가슴에 아로새겨지는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다. 왜 아더왕은 그토록 오래 우리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을까?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라서?


<아발론 연대기>를 읽으면서 나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아더왕이 살았던 브리튼의 숲속에 숨겨진 수많은 비밀과 상징들이 고스란히 아발론에 잠들어 있었고 인류는 그 비밀과 상징을 통해 시간을 넘어서 한 때 인류가 가졌던 지혜를 후손에게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비의와 상징들은 기독교가 고대의 신비를 억압하기 전, 태고의 인류의 원형적인 사고와 신앙이었다.



2. 여신들의 이야기


성모여, 당신은 살아있는 희망의 원천입니다. - 단테


<아발론 연대기>를 흔히 기사들의 편력, 모험 이야기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발론 연대기는 <여신들의 이야기>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기사들은 여신들의 계획, 양육, 음모에 따라 끊임없는 모험을 겪는다. 최고의 기사인 란슬롯은 여신에게 키워졌고 귀네비아로 상징되는 여신의 힘으로 모험을 떠나고 왕국을 분열시키고 다시 평화를 찾는다. 란슬롯은 귀네비아를 볼 때마다 황홀경에 빠진다. 마치 이시스를 본 ‘입문자(initiator)'들이 이시스의 현현을 보며 황홀경에 빠져들 때처럼. 그리고 귀네비아의 사랑을 얻은 후 무한의 힘을 발휘한다. 이시스가 사랑의 힘으로 자신의 베일을 걷고 입문자에게 진실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주면 입문자는 세상의 모든 미혹을 물리칠 지혜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처럼.


<다빈치 코드>가 그리 좋은 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몇 가지 진실은 담고 있다. 기독교는 인유의 의식에서 여신을 도려내고 그 자리에 신을 앉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기독교로 인해 여신은 중세의 무의식으로 가라앉아 신화와 전설에서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아발론 연대기>는 기독교가 절대권력으로 유럽을 지배할 때 여신이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숨겼고 어떻게 자신을 원형으로 만들어 보존하였는지를 보여준다. 여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 그리고 자신을 볼 수 있는 자 에게만 기꺼이 자신의 베일을 걷는다.


3. 비밀과 상징의 숲


상징은 다른 표현양식을 통해서는 도저히 드러낼 수 없는 인간존재의 가장 깊은 측면을 드러낸다 - 진 쿠퍼


유럽의 성당을 가면 우리는 가끔 놀라게 된다. 도대체 중세에 건설된 성당에 왜 이렇게 기독교와 관계없는 조각과 그림이 많은 것일까? 물론 전면을 장식한 화려한 모자이크와 벽화, 조각은 틀림없는 기독교의 그것이다. 그러나 기둥아래, 벽면 아래를 살펴보면 기기묘묘한 조각과 그림들이 곧잘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성당의 위용과 성스러움에 압도당한 우리는 그런 하찮은 조각에는 아무런 관심도 두지 않고 지나간다. 아미앵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연금술의 상징도, 옥스퍼드와 킬펙의 성당에 조각되어 있는 셰엘라-나-기그의 이교도적인 상징도 관광객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니까.


성당을 지은 메이슨은 기독교에 많은 상징과 기호를 심어서 그 기호를 아는 사람에게만 자신들의 신비를 전한다. 마찬가지로 중세에 널리 퍼진 신화와 전설에는 고대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읽을 수 있는 비밀이 숨어 있다. 란슬롯은 왜 세 가지 색깔의 갑옷과 무기를 들고 모험을 완수한 것일까? 왜 멀린은 악마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것일까? 왜 란슬롯은 수레에 탄 순간 수치스러운 기사로 취급받았을까?


저승과 이승,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이 있다. 그 경계의 비밀을 알고 전하려는 사람들을 우리는 마법사, 혹은 샤먼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한번은 누구나 샤먼이 되어 경계를 넘어 여행을 떠나야 한다. 살아 있으면서 그 여행을 완수할 수 있는 사람을 고대인들은 ‘영웅’이라고 불렀다. 란슬롯과 가웨인은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다. 칼 차고 전쟁을 하는 영웅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의 영혼을 지닌 채 완전함을 찾아 또 다른 차원의 부름에 응할 줄 아는 순례자로서의 영웅. 다시 말해서 우리 모두가 한번은 겪어야할 삶의 여행에 자신의 존재 전체를 걸 줄 줄 아는 용기를 가졌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영웅이다. 그리고 그들 영웅은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너 역시 영웅이며 기꺼이 비밀과 상징을 통해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여행을 떠나라고.


그들의 속성을 알아 볼 수 없을 때 우리는 중세의 옛 모험담과 로맨스만을 볼 뿐이다. 그리고 그 상징들 속에 녹아있는 풍부한 진실들을 놓치게 된다. 삶의 신비를 잃어버린 우리들은 우리를 향해 외치는 고대의 지혜를 들을 수 없다. 중세의 고딕 성당을 지나가며 고작 그림엽서에 실릴만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처럼 우리는 눈앞에 있는 생의 신비를 볼 수 없는 것이다.


삶은 결코 단체 관광여행이 아니다. 모든 이에게 삶은 편력이자 모험이며 모든 이는 그 자신의 삶에서 여신의 부름을 받아 퀘스트를 떠나는 기사이자 영웅이다. 그리고 그 중 축복받은 몇몇은, 여신의 부름에 자신의 전 존재를 던질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이들은 이시스의 베일을 들추고 신비의 황홀경에 빠질 것이다.



4. 꿈, 그리고 신화


우리의 내부에는 가득 차 있는 꿈의 판테온이 있다 - 조셉 캠벨


기사들이 모여 만찬을 먹으며 환담을 나누는 궁성으로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갑작스럽게 나타나 왕비를 납치하고는 머나먼 자신의 나라로 떠나버린다. 왕비를 찾으러 가는 란슬롯은 그 들어보지 못한 왕국이 한번 가면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등장 할 때에는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그 검은 기사는 알고 보니 먼 마법의 왕국의 유명한 왕자이자 기사이며 그 아버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최고의 현군이다.


전형적인 꿈의 내러티브다.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침입자가 우리, 혹은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가져간다. 우리는 두려움에 떤다. 그리고 그를 ?던지 혹은 그로부터 도망간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전혀 낯선 곳에 서있는데 그 침입자는 익히 알고 있는 누군가의 얼굴로 변해 있다.


이 다소 모호한 내러티브구조를 보면서 개연성과 리얼리즘을 논하며 극적인 재미가 없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꿈속의 우리는 그 개연성 없는 내러티브에 빠져 두려움에 떨기도 하고 슬픔에 겨워 울기도 한다. 누구도 꿈을 극의 구조로 이해하고 분석하지 않는다. 오히려 꿈속의 미분화된 상징들을 개인의 내밀한 욕망과 무의식의 일부로 파악할 때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신화는 인류가 꾸는 꿈이다. 그 속에는 먼 시간의 저편에서 손짓하는 인류의 내밀한 사고와 욕망이 담겨있다. 그 상징을 이해할 때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게 되고 인간을 이해할 때 우리들 자신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아더왕의 신화는 그리스신화보다 더 오래된 인류의 원형의식을 보여준다. 여신이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로고스가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야훼라는 이름으로 여신을 몰아내기 이전의 시절,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달의 시대에 인류가 꾸었던 꿈들이 소박한 내러티브 내에 반짝이고 있다.



5. 우리 모두는 성배를 찾아야 한다.


<길가메시>는 모든 사람의 서사시다 - 마크 헤드슬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매일 매일 똑같은 행위를 반복할 뿐 진정한 삶의 의미는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 이런 의문이 고개를 들곤 한다. 그러나 바쁜 일상사는 그런 생각을 붙잡고 있을 여유를 베풀지 않는다. '옷 속의 가시 같은‘ 의문을 묻어둔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한다. 마음속의 가시는 꿈속으로 스며들고 언젠가는 우리 곁을 찾아올지도 모른다. 아더왕과 그의 기사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궁정생활을 즐길 때 먼 마법의 나라에서 온 여인은 외친다. 그대들은 그저 밥만 먹으며 흥청거리는 게으름뱅이라고. 그녀의 나라에는 모험이 기다리고 있는데 왜 떠나지 않느냐고. 그 여인, 혹은 여신은 우리들 마음 깊은 곳에 가려진 비밀이 우리를 부르기 위해 보낸 사자인 것이다.


삶이 의미 없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모험을 향해 떠나야 한다. 실제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 존재의 비밀을 찾는 모험의 여행을 말이다. 아더왕이 찾던 성배와 길가메시가 찾던 불사의 비밀은 우리의 존재 깊숙이 숨겨져 있는 비밀의 상징이다. 사회가 혹은 외부의 권력이 삶에 강제한 가치와 의미들이 아니라 각자의 가슴 속 깊숙이 새겨진 생의 의미를 찾을 때 우리들의 생은 불멸의 것이 된다. 육체적 생은 끝날지라도 우리가 삶의 무대에 아로새긴 의미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브리튼의 숲이 아닐지라도 모험은 존재하고 존재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시작될 수 있다.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내방에서, 사무실의 컴퓨터 앞에서도 우리는 모험여행을 시작할 수 있다. 진정으로 비밀을 알기를 원하는 자에게 언제든지 여신은 자신의 사자를 보낸다.


그 부름을 인식하여 존재의 비밀을 찾아 모험을 떠나고 싶다면 우리는 경험자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각자의 모험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이미 모험을 끝낸 이들이 상징을 통해 남겨둔 지도하나쯤을 간직한다면 뜻밖의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 먼 옛날 브리튼 숲에서 있었던 일, 아니 그 보다 더 먼 옛날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았던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두자.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길가메시이고 오시리스와 호루스이며 아더왕의 기사들이니까.


<아발론 연대기>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현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한권의 책에 담을 수 있는 가장 많은 비밀과 의미를 담아둔 훌륭한 편력의 참고서. 생의 모험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에게 브리튼 숲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경원 통신원 = 미국에서 해마다 실시되는 '올해의 황당한 소비자 경고문' 국제 경연에서 페인트 제거용 히트건(권총 모양의 열풍기)의 경고문이 1위에 올랐다.

NBC 뉴스는 화씨 1천도(섭씨 538도)의 열을 내는 이 제품의 사용 설명서에 적혀 있는 "이 공구를 헤어 드라이어로 사용하지 마시오" 라는 경고가 올해의 '가장 황당한 경고문'으로 뽑혔다고 8일 보도했다.

이 경고문을 발견해 경연에 보낸 사람은 미시간주 홀란드에 거주하는 탐 브루넬리라는 남성으로, 그는 1위 상금 500달러와 함께 필립 하워드의 저서인 '상식의 죽음(the Death of Common Sense)'이라는 책을 부상으로 받게 됐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이 경연은 M-LAW 라고 불리는 소비자 감시그룹인 '미시간 소송 오용 감시(Michigan Lawsuit Abuse Watch)' 주최로 열렸다.

지난해에는 화장실 변기 청소용 솔의 "몸을 닦는데 쓰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1위를 차지했다.

M-LAW 의 로버트 도리고 존스 회장은 "경고문들은 각종 소송이 난무하는 시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남발되는 각종 소송으로 인해 모든 상품에 지나칠 정도의 경고문들이 잔뜩 붙게 되는 것"이라며 "판사들이 이런 가치없고 하찮은 소송들을 기각한다면 황당한 경고문들도 줄어들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M-LAW측은 이 경연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경고문을 주의 깊게 읽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불필요한 소송을 줄일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거액의 소비자 피해 배상 소송이 많고 기업들에는 "경고하지 않으면 소송당할 수 있다"라는 개념이 퍼져 있는 미국에서는 어디에서나 당연하고 또 우스꽝스럽게까지 보이는 경고문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태다.

한편 올해 경연에 소비자들이 발견해 보내온 황당한 경고문들 가운데 미시간주의 잼 새르더가 보낸 부엌칼 경고문 "절대로 떨어지는 칼을 잡으려 시도하지 마시오 "가 2위를 차지, 상금 250달러를 받게 됐다.

또한 콜로라도주의 앨리스 모간이 보낸 칵테일용 종이 냅킨에 적힌 경고문이 3위로 100달러의 상금을 받게 됐는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힐튼 헤드섬 주변의 운하 지도가 그려진 이 냅킨의 경고문에는 "주의: 항해에 이용하지 마시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설치류와 해충등으로부터 정원수를 보호하는데 쓰이는 제품인 삵쾡이 오줌을 말린 '옐로 스노 (yellow snow)'병의 "식용이 아님"이라는 경고문과 제빵용 팬의 "오븐용기는 오븐속에서 이용하고 나면 뜨거워짐"이라는 경고문이 각각 감투상을 차지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의 경제학 - 즐기기

안윤호(아마추어 커널해커)   2006/01/05

 

 

디지털 카메라처럼 수많은 모델이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출시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델이 다양한 경우 선택은 쉽지 않다. 약간의 지겨움과 써보지 않은 모델에 대한 동경만으로 제품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즉각적으로 하락한다. 메이커들이 제시하는 수많은 기능과 특징들은 어떤 선택이든지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아마 어떤 제품을 사도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 때문에 생기는 망설임에 직면한다. 사람들은 써보고 싶은 새로운 제품에 대한 기변증(기종을 변경하고자하는 마음의 병이라고도 한다.) 때문에 자신의 기계를 팔고 다시 새로운 모델을 구입함으로서 메이커를 즐겁게 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쓸 수 있을 때 여러 가지 기종을 써보고 싶다는, 그래서 선택의 가능성을 최대화 하려는 욕심 때문에 마니아들을 기계를 바꾸고 또 바꾸게 된다.

필름 카메라의 시절 SLR (single lens reflex) 카메라들은 고급기의 주종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최신의 기종에 관심이 있으므로 기종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2-3년이 지난 카메라를 올드 카메라로 부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과거의 기종을 너무 오래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속칭 올빠(올드 기종을 사랑하는 사람)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들은 새로운 카메라를 팔아야 하는 메이커의 입장에서나 새로운 것을 선호하는 얼리 어댑터의 입장에서는 환영받을 만한 요소가 적다.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곧바로 새로운 기종으로 한정된다. 물론 새로운 기종이 성능이 더 좋겠지만 그 가격에 비례할 만큼은 아니다. 어떤 시기에 강렬했던 모델에 대한 집착은 많은 시간을 들여서 완성도를 더해간다. 자신이 원하는 <기계의 눈>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하는 색감을 갖고 있을 지도 모른다. 때로는 그것을 현재의 모델이 아니라 과거의 모델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른바 지름신(사람들에게 구매 충동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의 강림으로 디카를 여러 번 바꾸어도 촬영의 실력은 그다지 빠르게 늘지 않는다. 정작 디지털 카메라를 사는 목적은 마음에 드는 디지털 영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좋은 영상에 대한 열망과 성능 그리고 최종적인 영상과 기계의 가격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이성적이라거나 경제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이들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다. 요즘은 무서운 속도로 써버리지 않으면 쓰는 일에 뒤쳐진다. 스타일이며 체험이다. 경제관념을 떠나 시기에 맞추어 빨리 써버리지 않으면 쓸 기회조차 없어진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DSLR의 바람이 분 후로 DSLR의 가격이 인하되고 사지 않으면 안될 정도의 붐이 일고 있기 때문에 올해와 내년에는 하이엔드나 중급기 이상의 디지털 카메라들은 더 빠른 곡선으로 가격이 인하될 것임에 틀림없다. 일반적인 용도의 작은 디지털 카메라들은 이제 신품이지만 재고인 제품의 처분가격이 10만 원대에 접어든 제품들도 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디지털 카메라를 신기하게 바라보지 않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이엔드가 걸어갔던 것과 비슷한 길을 내년이나 후년에 DSLR 기종들이 답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필자 역시 1년만 기다리면 그 흔하게 될 DSLR 모델중의 몇 개를 헐값에 구하여 잘 쓸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홀려있는 DSLR 열풍에 참여하는 즐거움은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 억울해 보이는 가격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가격이 마구 떨어지는 하이엔드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 과거에는 비싼 가격과 발표 당시로서는 놀라운 성능을 보여 주었으며 놀라운 감각의 사진들을 찍을 수 있는 능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중고 시장에서 가격이 떨어진다. 먼저 비싼 가격에 산 사람이 이 카메라에 대해 싫증을 느끼면 다른 사람이 역시 같은 기대와 실망을 느끼고 싶어서 이 카메라를 사게 된다. 기계의 성능은 사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신품과 잘 사용된 중고는 성능상 차이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기계에는 잘못이 없지만 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가격은 계속 떨어진다. 2년 전 100만원에 육박하던 기계는 올해는 20만 원대에 거래되고 내년이나 그 이듬해에는 어떻게 될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떨어질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물론 어떤 기종들은 사람들의 사랑에 힘입어 놀라울 정도로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떨어지는 순간은 곧 다가온다. 독자들이 시험 삼아 dcinside.com 의 장터에 한번 가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시간과 가격에 대해 민감한지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해외의 ebay같은 장터도 마찬가지다. 중고품의 경우 만원(약 10달러) 정도의 가격에 사람들은 매우 예민하지만 정작 신품의 경우에는 별로 예민하지 않다. 신비로운 일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다.

DSLR 기종이 디지털 카메라의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 과거에 SLR이 카메라 업계를 지배했던 것처럼 .

이런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드라이브는 시간에서 온다. 시간이 흐르면 값이 떨어진다. 컴퓨터 업계에서는 이미 컴퓨터의 메인보드나 CPU의 경우에서 질리도록 보아온 일들이기 때문에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에는 카메라들이 반도체의 눈을 달고 무어의 법칙과 비슷한 특성을 지니게 된 것일 것이다. 아무튼 카메라에게 큰 잘못은 없다. 분명히 시간에는 경제학적인 중요한 무엇인가가 있는데 아직은 특별한 경험적인 법칙이 알려져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경제학은 고사하고 시간을 연구하는 철학자조차 그렇게 많지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소비자 가전제품(comsumer's electronics)으로 변한 PC와 디지털 카메라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를테면 오디오와 유사한 관점에서 본다면, 디지털 카메라에는 중요한 특성 하나가 있다. 즐긴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오디오의 경우 즐김의 대가인 매니아 층이 있다. 수없이 많은 CD나 LP를 들어보고 갖고 있고 기계를 계속 바꾸기도 하며 몇 십년동안 듣기도 하는 기묘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들의 목적은 기계를 싸게 구입하는 것이나 그저 음악을 듣기위한 것이 아니다. 듣고 싶은 소리를 위해 기계를 구입하고는 실망도 하고 열광도 하곤 한다.

필자도 한때 빠져있던 오디오의 세계에서는 상당히 많은 비용과 노력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도 필요했다. 항상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필요한 시간은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개인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원하는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마음이 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일단 오디오와 음반을 골랐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음악을 즐기기 위한, 충심으로 즐기기 위한 시간이 없다면 오디오는 소리를 연주하는 단순한 가전제품에 불과하다. 수천 장의 CD를 모으고 좋은 오디오를 갖고 있더라도 즐기지 못한다면 그동안 투자한 시간은 진정으로 보상받는 것이 아닐 것이다.

오디오와 음반을 모으기 위해 공부하는 시간과(이를테면 베토벤의 교향곡들은 베토벤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다 들어보지 못할 만큼 다양하다. 모차르트는 더 많을 지도 모른다. 결국 좋은 음반을 고를 수 있을 정도의 안목을 가지려면 역시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장비와 음반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 즐길 수 있다.) 장비를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만들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이들을 감상하고 즐기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너무 비싼 장비를 사버리면 초조해져서 즐기기 위한 시간과 여유가 부족할 수도 있다.

CD를 수천 장 갖고 있는 매니아라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이들을 고르고 구하기 위해 투자했을지 필자는 가끔 궁금해지곤 한다. 수백 장의 CD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이들이 음반을 듣고 구하는 내용은 책으로 써도 될 정도의 분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의 조사에 의하면 이들이 자주 듣는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조사를 하지 않더라도 오디오 광들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듣는 곡들이 몇 개 안된다는 사실을.). 수많은 탐색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 끝에 결국 몇 십장이 안 되는 음반을 자주 듣는 것으로 귀결된다.

수십 대의 오디오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듣는 오디오는 결국 한 순간에는 하나 밖에는 없는 것이다. 결국 평범한 오디오라도 열심히 듣는 사람과의 실제적인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바로 시간 때문이다. 사용가능한 단 하나의 몸 그리고 한정된 시간에 갇힌다. 열정이 많은 장벽들을 돌파시켜 주며 시간의 제약을 단축시켜 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다. 분명히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베토벤이 다시 태어나도 다 들을 시간이 없는 녹음들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문화상품을 제대로 흡수하거나 소비할 시간조차 없다. 그렇게 바쁘게 살아간다.

온갖 물건들에 사람들은 홀린다. 그리고 문화 코드들에도 사람들은 홀린다. 오디오에 빠져본 사람들은 모두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다 들어보지도 못하는 음반들이 널려 있다. 그러나 이 것이 소용이 없는 것인가? 답은 <아니다>이다 . 어떤 곡들은 소비자의 가슴에 깊이 파고든다. 평생 지울 수 없는 곡들을 듣고 또 듣는다. 나머지 곡들은 그 보다는 덜 중요하다. 억지로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매우 촉박한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사람들은 웃고 울고 한다. 험난한 시간의 파도 위에서 춤을 추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정말 즐기기 위해 집착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들은 극복된다. 사람들은 이런 시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열정을 기꺼이 일으킨다. 결과적으로 앞서 장황하게 이야기한 오디오 마니아가 얻은 것은 <만족>이라는 것이다. 자기만족이다. 그 자체가 자기표현이기도 하다.

마음이 보고 싶어 하는 영상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비라고 할 수 있는 좋은 디지털 카메라 역시 제대로 다루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오디오의 경우와 유사한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자신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적어도 다른 사람의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정도가 되지 않는다면 스냅 사진만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현을 위한 욕구는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흔한 스냅 사진기를 가지고 일반적인 사진 만들기를 계속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원하는 카메라를 찾아 헤맬 것이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메이커와 관련업계의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는 와중에 만약 본인도 즐거울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실제적인 애호가의 레벨이 일반적인 가전제품을 사용하는 것과 매니아의 중간정도에 걸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과 노력의 투자도 그 사이에 걸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투자도 빠져들기 시작하면 가벼운 일이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 한대를 가져보면 서브 카메라를 갖고 싶을 것이고 싸고 좋은 기종이 나타나면 서브카메라를 하나 더 가져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사용하는 시간은 언제나 제한적이다. 집착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시간의 제한 속에서는 초조해 지거나 체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더 많이 즐기고 싶은 초조함과 집착 속에서 문화사업은 이상한 것들이 번식하기에 이상적인환경으로 변한다. 물건이 흔해지면 사용할 시간은 더 줄어드는 이상한 현상도 나타난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시간 = 돈
시간의 경제학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바가 적으나 어느 때 부터인가 “시간은 곧 돈이다” 라는 사고 패턴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처음에는 사람들이 시간제로 급여를 받기 시작하면서 출발했을 지도 모르는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완전한 리스트는 아니다.

  • 시간제로 환산해 본 임금이나 일당
  • 투자의 타이밍처럼 타이밍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일의 결과
  • 사람들이 시간을 투입하여 얻는 만족도를 경제적으로 환산해본 수치

    첫 번째는 과거에 시간제로 급여를 받던 시대의 산물이다. 2차 산업의 시대에 사람들은 공장이나 일터에서 시간에 따라 주로 육체적인 활동으로 몸의 시간과 돈을 맞바꾸곤 했다. 일한 시간만큼 임금이 지급되었다. 제조의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밀접한 비례관계는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당시의 관습과 무의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건은 귀했고 시간은 그보다는 덜 귀중해 보였다. 아직도 직업이 부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의 특성으로 돈을 사냥하는 관습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적당한 투자처나 사업에 투자함으로서 타이밍과 안목으로 돈을 버는 것이다. 운도 따라야하지만 적절한 안목과 판단이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일하는 시간이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변했다.

    세 번째는 높아진 생산성으로 남는 시간이 다시 반드시 소비되어야 하는 문화산업의 단면이다. 제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자 물건은 소비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일부는 여행과 같은 체험산업으로 다른 부분에서는 문화 사업으로 모습을 달리하여 나타나게 되었다. 일을 하거나 투자를 해서 번 돈을 써야 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세 가지의 시간 이용 패턴에 대해서도 혼동스러워 한다. 아직 익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시간의 소비는 주로 첫 번째와 세 번째의 경우에 나타나는데 세상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시간의 가치는 더 중요해지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생산성이 높아져 흔해지기 시작한 물건 그 자체보다 시간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경제학은 시간의 소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점차 시간에 대한 요구는 높아지게 되었다. IT 기술이 발전하자 시간을 잘 편집할 수 있다면 많은 일들을 쉽게 해치우면서 현실을 편집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은 일의 본질과 문화와 여가 활동까지도 바꾸어 놓았다. 기술은 누가, 어떻게, 언제,어디서 무슨 일을 하는 가를 바꾸었다. 세상의 사업과 일자리들은 불안정해졌다. 사람들이 일에서 느끼는 압박감을 여행이나 레저, 문화산업의 영역에서 풀려고 하면서 이 분야는 거대해졌다고 한다. 시간은 더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주제를 심도있게 다룬 레온 크라이츠먼의 역작 <24시간 사회>의 머리말에는 이런 말이 있다(24시간 사회는 시간의 역사와 압박감 그리고 압박감의 유래에 대해 자세하게 적었다.).

    "IT는 새로운 이중 계급 사회를 만들고 있다"
  • 계급 1: 돈을 절약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
  • 계급 2: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쓰는 사람

    사실일지도 모른다(그러나 톨게이트에서 몇 백 원을 내기 위해 차들이 긴 줄을 서고 있을 때에는 아직 경제학과 시간의 상충지점이 아직은 꽤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의 수요는 이렇게 절박하다. 시간에 대한 많은 미련이 베이비붐 세대부터 싹트기 시작하여 이를 다룬 뉴스위크의 주제는 “환갑이 된 베이비 붐 세대 - 80까지 일하고 100세까지 살고 싶다”로 정해진 적이 있다. 그러나 베이비 붐 세대의 평균수명은 70세가 조금 넘는다. 그 다음의 세대는 더 큰 기대를 갖고 세상을 살고 있을 것이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즐기는 일에도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시간을 소비하는 일에도 잘하고 못하는 구분이 생긴다. 여가 시간은 예전보다 많이 늘어났지만 만족할 만큼 소비하려면 돈과 아울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정말 이상한 경제학이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시간은 더 필요하다. 이런 문화코드에 크게 어필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나온다면 정말 큰 비즈니스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시간은 물질이 아니다. 시간은 만들어 내거나 저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수요는 언제나 블랙홀처럼 강력하다.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할 필요가 없겠지마는 현대적인 의미의 문화생활은 불가능해진다. 아마 TV도 보지 않고 인터넷도 하지 않으며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일도 적게 하면 시간은 좀더 남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한 불편도 반드시 감수해야 한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람들의 욕망을 부추기는 기술에 의해, 광고에 의한 사람들의 교육(광고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교육활동이다)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고 하므로 이것을 정면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고 즐겁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문화활동은 다른 사람들이 이미 투자해 놓은 많은 시간과 인프라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기존의 문화적 인프라를 부정하거나 담을 쌓고 살아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있으므로 차라리 이것을 효과적으로 즐기는 일이 더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경제활동은 서비스와 문화활동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변수이다. 비록 이들을 측정할 좋은 경제적인 법칙이 없다고 해도 투여한 시간은 중요한 변수이다. 사람의 수명 역시 시간으로 측정되므로 자신의 인생을 바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시간은 양도되는 것이 아니긴 하지만 남의 인생을 흡수하는 것이기도 하다. 활발한 커뮤니티나 자료의 저장소는 사람들의 헌신에 가까운 노력이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참여”라고 부르는 것으로 참여는 경제적활동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인터넷의 많은 포털들은 이러한 참여 작업을 이용하여 성장해왔다

    너무 집착하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널려있는 문화코드들을 부정할 이유는 없다. 시간의 경제학은 다른 사람의 노력과 시간을 흡수하면서 효율적으로 변한다. 네트웍은 다른 사람과 나 사이의 간격을 IP 주소 한 개로 단축시켰다.

    비록 알려진 것이 적지만 이런 요소들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시간의 경제학은 경제학적인 면보다는 사회 심리학적인 측면이 더 많다. 반드시 “시간 =돈”의 공식으로 시간을 스와핑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시간의 파도위에서 서핑을 즐기는 것이다. 파도가 날카롭기는 하지만 서핑이 즐거우면 더 좋을 것이다.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