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시사 주간지 '슈피겔'이 거울이라는 뜻이라지요.
사회를 비추는 거울, 거짓없는 진실을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담겨있겠죠.
저는 그것과 같은 선상에서 역사의 의미가 기억의 각인, 재해석에 의한
반성과 진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한 말로 역사는 미래를 비추고 있는 것이지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는 이제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에서 많이 해방되었지요. 그런데 곳곳에 벽이 있습니다.
민족, 인종, 종교, 문화, 정치....
우리는 과연 닫힌 세상에 살고 있는가, 열린 세상에 살고 있는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정수일씨의 책에서는 분명히 우리의 참모습, 세상을 향한 자세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묻어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합니다. 
나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책을 신청합니다.
 
성의있게 리뷰 쓸게요. ^^
 
 
 
 
yes24에는 리뷰를 조건으로 책 나눠주는게 알라딘보다 많다...
오늘 처음으로 신청해봤는데, 과연... 걸릴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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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1-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그런 게 있었군요. 라주미힌님은 책 욕심쟁이로군요.^^

라주미힌 2006-01-1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같이 해요... ㅎㅎㅎ

stella.K 2006-01-13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러시면 마음 약해져서 안 되요. 윽~

라주미힌 2006-01-13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G에서 받은 에펠은 다 쓰셨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06-01-13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쓰긴요, 다 읽지도 못했다우...^^

stella.K 2006-01-13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요, 거기서 200자평 어떻게 쓰는 거예요? 거긴 서평쓰기 링크 안되던데...ㅜ.ㅜ

stella.K 2006-01-13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은 제가 뭘 물어보면 꼭 침묵모드더라. 흥~!

라주미힌 2006-01-13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자평 쓰는데가 없네요.. 흐흐 나도 그동안 몰랐네욤.

마늘빵 2006-01-13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스물넷이 책을 더 많이 주나봐요? 흠. 거긴 거의 안들어가는데.
 

윤종수(서울 고등법원 판사)   2006/01/12  

 

1977년 일단의 네오나치 그룹이 미국 시카고 근교의 스코키(Skokie) 시에서 퍼레이드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곧 격렬한 반발을 일으켰는데 당시 스코키 시는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여 살던 곳으로 특히 그들 중 약 20%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거나 생존자와 관련이 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네오나치 그룹의 의도는 뻔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을 자극하여 괜한 소동을 일으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자 일부러 스코키를 택하여 이슈화 시킨 것이다. 그러나 이는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발이자 모욕이었으므로 이에 대항하여 같은 날 데모를 계획하는 한편 그들을 상대로 행사중지가처분을 구하는 신청을 법원에 제출함으로써 사법부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이 사안의 법률적 쟁점은 명확하였다.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서 보호되는 표현의 자유가 이 경우에도 보호되느냐 문제였다. ACLU(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 이 단체는 1920년에 설립된 비영리단체로서 개인의 자유에 관련된 이슈에 관한 대중 교육과 법적 소송, 입법 운동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도 인터넷에서의 음란물규제와 관련된 CDA 법안 등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가 네오나치 그룹의 변호에 나선 것도 바로 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ACLU를 대표한 변호사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유대인 사회로부터 온갖 비난과 공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심정적으로 도저히 네오나치 그룹의 의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끝까지 사건을 맡아 소송을 수행하였고, 결국 유대인들의 평온과 양측의 충돌로 인한 위험성에 대한 고려보다 표현의 자유를 우선시한 법원에 의하여 위 행사중지가처분 신청은 기각되었다. 그 후 네오나치 그룹은 그것만으로 성과를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서인지 계획한 날에 행진을 하지 않았고 결국 이 사안은 한바탕의 격렬한 논쟁만 남긴 채 마무리 되었다.

내가 이 사건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TV에서 우연히 이 사건을 다룬 스코키란 영화를 보면서이다. 위 영화는 그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해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위 사건을 그대로 극화한 것이다. 위 영화는 네오나치 그룹의 변호를 맡은 ACLU의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면서 그의 갈등과 고뇌를 보여준다. 하도 오래 된지라 영화의 자세한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명확하게 남아있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 끝 무렵 사건 관계자들을 기자가 인터뷰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기자가 위 변호사에게 당신은 유대인인데도 어떻게 네오나치 그룹을 변호할 수 있느냐 라는 질문을 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아무리 우리의 견해가 옳은 것이고 다수라고 하여도 이와 다른 소수의 견해를 가치 없는 것이라는 이유로 보호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우리의 견해가 소수가 되었을 때 똑 같은 이유로 보호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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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깍두기 > 해설자만 훌륭하다면 얼마든지!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고지훈 지음, 고경일 그림 / 앨피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제가 언젠가 무슨 책 리뷰를 쓰면서 얘기한 적 있죠?
근현대사는 제게 쥐약이라고.
아마 이유도 말했을걸요?
오대빵으로 진 축구경기, 재방송으로 보고 싶지 않다고요.

그러나 이제 그 말 취소해야겠습니다.
오대빵으로 처참하게 진 축구경기도 재방송으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해설자만 훌륭하다면.
바로 이 책,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처럼요.

이 책에서 우리에게 현대사를 해설해 주는 고지훈이라는 분은
축구 경기 해설자로 치면 정통 스타일은 절대 아닙니다.
뭐랄까.....얼마전 MBC 주말 뉴스를 진행하던 최일구 아나운서가 떠오릅니다.
최일구 아나운서, 처음에 엄청 황당했죠.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내보내야 할 뉴스, 그것도 9시 뉴스에서
그가 가끔 폭탄처럼 던진 멘트들 때문에
시청자들은 생소해 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어 하기도 했으나
그건 또 그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괜찮아서
나중엔 최일구 아나운서가 무슨 말을 할까 기대하며 뉴스를 지켜보았습니다.

이 책도 첫장을 넘기면서 좀 걱정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근현대사가 전혀 즐거운 분야가 아닌데.....이거 이 페이스로 계속 나가도 괜찮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괜한 기우였습니다.
이 책은 웃겼을 뿐만 아니라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고
역사에 임하는 작가의 진지함과 성실함 때문에
수많은 농담과 역사인물에 대한 비아냥이 조금도 거슬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처럼 조봉암과 조병옥이 다만 이름이 비슷하다고 해서 헷갈리는
무지한 독자에게는 이 책보다 더 좋은 현대사 입문서가 없을 듯 합니다.

후진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오늘의 세대에 생존하는 우리들의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 한, 내 조국, 내 민족의 역사를 뒤덮은 퇴영의 먹구름은 영원히 걷히지 않을 것입니다. ....정부로부터의 시혜를 기대하기에 앞서 스스로의 의무를 다하며......일하는 국민, 협조하는 국민으로 재기합시다.

누가, 언제 한 말일까요? 박정희가 5대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이 뭔가 수상쩍지만 말인즉슨 옳은 것 같기도 한 애매모호한 연설(저......사이에도 길고 긴 말들이 있습니다)을 이책의 명 해설자는 짧고 명쾌하게 해석해 줍니다.

"노동자? X나게 일해. X나게 일하고 난 다음에? 또 X나게 일해. 일하고 또 일하고 또 일하고......이런 생명을 건 희생적 노력을 먼저 하란 말이야! 정부가 뭔가 해주기 전에 말이지!"

사실 역사서에 숱하게 등장하는 법조문, 포고령, 신문기사, 이런 것들
그냥 본문 그대로 실려 있으면 읽어봐도 무슨 소린지 모릅니다.
이 책에선 그런 것들을 절대로 날 것 그대로 내놓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의미이며, 무엇을 노린 것인지, 누구를 향한 화살인지
이런 걸 절대로 구구절절하지 않게 촌철살인의 한마디로 정리해 줍니다.
그렇다면 저자가 역사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의역이 너무 심하지 않을까?
에 대해서는 제가 이 분야에 취약하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제 주관으로는 그렇지 않을거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은 저자가 역사인물에 대해 재구성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내놓은 새로운 통찰에 제가 저도 모르게 감동하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에 전두환에 대해 언급하면서
수천명을 죽인 살인자 전두환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
수천억을 해먹었다는 도둑놈 전두환에 대해서는 게거품을 물었던
이 시대 우리들의 자화상에 거울을 들이댑니다.
과연 이것이 정상이냐고.
그러고 보니 우리의 모습도 괴물입니다.

 

저자에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엄청 재미나겠다, 고 생각하며
이번에는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통사적으로 해설해 주시는 책을 내신다면
당장 사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이 만화책인 줄 알고 있어서 실물을 봤을 때 살짝 실망할 뻔 하였으나
읽다보니 만화보다 더 정신없이 빠지게 되어 그 실망을 얼른 취소하였음을 밝힙니다.
그런 착각을 한 것은 책소개에서 '한국컨텐츠 진흥원 우수만화 선정작'이라는 대목을 봤기 때문인데
그것은 이 책 군데군데 있는 인물 캐리커쳐 때문인 듯 합니다.
책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지는 만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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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지수

[김소희의 오마이섹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동성애는 경향성인 듯하다. 비율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나뉘지 않을까? 나는 남자와 잠자리를 하지만 ‘100% 스트레이트 걸’(이성애자)이라 장담은 못하겠다. 실제 나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나면 침을 질질 흘리고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사랑받을까 주위를 맴돈다. 친구랑 폰섹스 비슷한 걸 해봤고, 술 마시다 물고 빨고 한 적이 있으며, 꿈속에서는 수많은 그녀들과 별별 영화 다 찍었다. 취향도 분명하다. 주로 50대 이상 언니들에게 꽂히는 편이다. 완경을 한 사려 깊고 다정한 피부라니. 베이비 로션을 몸 구석구석 발라주며 마사지해 ‘바치고’ 싶다. 세월에 대한 ‘존경’과 소녀다움에 대한 ‘감탄’일 수 있겠는데, 그런 요소도 성욕을 자극한다.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한때 주변 사람들에게 진지하게 이렇게 묻고 다닌 적이 있다. “너의 ‘동성애지수’는 몇%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생각을 가다듬고는 “어, 나는 몇%인 거 같아”라고 답했다. 대충 자기가 다 안다. 제아무리 이성애자라도 “0%야”라고 확언하는 사람은 없었다. 가장 낮은 수치가 5%였다(2%짜리도 있었는데 지나친 부정이 오히려 이상해 예의 주시 중이다). 지조 없는 나는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지만 20% 아래로는 내려가본 적이 없다. 한 여자 후배는 자긴 45∼50%쯤 된다며, 어릴 적부터 제대로 ‘개발’만 됐다면 지금쯤 레즈비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아직 좋은 여자를 만나지 못해 그냥저냥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도 한탄했다. 오래전 한방에서 잠을 자다가 술 취한 그녀가 계속 내 발가락을 빨고 싶다고 조르는 통에 혼비백산했던 적이 있다. 못 박이고 건조한 발이 자신없어서였는데, 그녀는 내가 자기에게 맘이 없어 그랬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차라리 (내가 자신 있는) 목덜미나 손목, 배꼽을 빨겠다고 할 것이지. 쩝.

내 남자에게 때맞춰 전화하는 남자 후배가 있는데, 그는 ‘자기 부정형 게이’임이 틀림없다. 동성애자인데 자기 자신은 잘 모르거나 그 사실을 거부하는 사람을 뜻한다. 난 처음엔 그런 줄도 모르고 부단히 소개팅을 주선했다. 하는 족족 안 됐다. 그는 늘 “형, 나 장가가고 싶어요”라고 징징대지만 실제론 내 남자에게 시집오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닐까 싶다. 기회를 봐서 내 옆자리 새끈남을 소개해줄까 고민 중이다.

사람마다 생김이 다르듯 동성애지수도 제각각이다. 소견상 70%가 넘으면 안정적인 동성애자인 것 같다. 가끔 저 멋진 애가 왜 게이일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저 멋진 애가 레즈비언인 것은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동성애지수보다 관계에서 더 크게 작용하는 건 의존(집착)지수다. 낮을수록 좋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친구든, 혼자 꽂히고 삐치고 상처받는 애들. 자기만 외롭다고 여기면서 정작 남을 외롭게 하는 이들이란…. 그리하여 나는 이 겨울 20% 안팎의 동성애지수를 지닌 여자를 급구한다. 기왕이면 (같이 다니기 좋게) 돈 많고 패션 감각 좋은 언니였으면 좋겠다. 날도 추운데 럭셔리 온천에서 때 밀고 오일 발라주며 하루 종일 놀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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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1-13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이 분 재미있넹...

깍두기 2006-01-13 0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는 몇 퍼센트일까요?
낮게 나오지는 않을 거 같은데......연락해 볼까?^^

라주미힌 2006-01-1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자한테 특별히 끌려 본적은 없는네, 사람마다 조금씩은 그런 성향이 있나봐요...

마늘빵 2006-01-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여자'만' 좋은데.

로드무비 2006-01-13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마이섹스' 글들 정말 재밌어요.^^

2006-01-13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국민윤리, 노예의 도덕

“도덕교과 폐지가 한국 사회의 발전”이라 주장하는 <도덕교육의 파시즘>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개인을 희생해야 하는 식민지 교육의 잔재를 없애자

▣ 장정일/ 소설가

언론이나 사회 각계 인사들의 입을 통해 걸핏하면 들을 수 있는 한탄 가운데 하나가 ‘날이면 날마다 청소년의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있다’는 타령이다. 그런데 김상봉 교수의 최근작 <도덕교육의 파시즘>(길, 2005)은, 지금 이대로라면 차라리 “도덕교과 폐지운동을 하는 것이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한 시급한 과제며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도 “양심적인 일”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국가와 도덕 사이의 ‘근대적 갈등’

모두 아는 사실로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교과 중엔 ‘철학’이 없다. ‘국민윤리’가 철학을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런 반성 없이 사용하고 있어서 그렇지, 국민윤리란 윤리학을 포함하고 있는 철학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생경한 용어다. 국민윤리를 국가공동체 속에서 구성원들의 가치·규범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말하면, 억지 해명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이미 그것은 윤리가 갖는 보편 법칙을 거세하고 왜곡한 ‘이중언어’에 해당한다.

윤리나 도덕은 그 보편적 성질 때문에 자기가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이때 공동체는 가족일 수도 있고 학교일 수도 있고 국가일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족쇄에 포박된 작금의 윤리 교과서가 가장 중요한 헌신의 대상으로 가르치는 공동체는 오로지 국가와 민족이다. 이런 국민윤리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것이 어떤 전쟁이든 국가이익과 민족번영에 도움이 된다면 좋은 것이다. 또 무수한 나를 희생해서 기업을 살리고,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옳은 것이다.


△ (일러스트레이션/ 황은아)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 도덕교육이 자유로운 개인 주체를 바탕으로 인류라는 보편 범주를 윤리의 터전으로 삼기보다는, 국가나 민족을 윤리의 주춧돌로 삼게 된 것은 식민지 교육의 잔재다. 일제의 교육은 국민을 나라의 주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무장된 황국신민으로 키우는 것이었다. 그런 교육 목표 속에서 식민지 조선인은 자유의지와 내면의 입법 능력을 상실한 노예도덕을 습득했고, 불행하게도 이런 사정은 해방이 되고 나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나를 죽이고, 국가를 받든다’는 노예의 도덕으로 학습된 독재자들이었다.

우리나라 도덕교육의 윤리적 왜곡이 시작된 실마리는 일제의 국가주의 교육관 때문이었지만, 근본 원인을 캐고 들어가면 국가와 도덕 사이의 근대적 갈등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근대 사회는 인간을 침해할 수 없는 양심과 도덕의 주체로 설정하고 있지만, 모든 사람에게 국민국가의 구성원으로 존재할 것을 요구하는 근대세계에서 국가는 자신의 일반 의지에 국가의 구성원이 참여할 것을 강제한다. 때문에 개인과 국가는 도덕의 문제에서 첨예하게 부딪치게 된다. 이때 공교육의 주체인 국가는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가가 국민들에게 가르칠 도덕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결정한다.

고등학교에 철학 과목 만들라

현재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윤리 교사 자격증은 철학과 졸업생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까닭은 박정희에 이어 또 한 번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전두환이 오랜 군부정권을 정당화해줄 이데올로기 장치를 강화해야 할 필요를 느꼈고, 보편과 자유의 학문인 철학보다는 좀더 정치적인 새로운 학문(!)을 창출해야 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국민윤리학이라는 지극히 한국적인 학문으로, 1979년부터 동국대와 경북대에 있던 국민윤리학과가 서울대학교에 번듯이 입성하게 된 것은 1981년이었다.

이 책에 대한 국민윤리학과 교수들의 반박과 비난이 상당하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제대로 된 윤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각 대학의 국민윤리과가 철학과로 폐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국의 역사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사 연구가 학문일 수 있는가” “내가 하는 학문이 인류·인간이 부재한 것이 아닌가”(윤해동, <식민지의 회색지대>, 역사비평사, 2003)라고 회의했던 어느 한국사 전공자의 고민도 생각해보기 바란다. 절충적이고 과도기적인 단계로, 중학교 ‘윤리’ 과목은 국민윤리과가 계속해서 맡고, 고등학교는 ‘윤리’를 없애는 대신 ‘철학’ 과목을 새로 만들어 철학과에 맡기는 것을 감히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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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1-13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