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테러클럽 | 권보드래

▣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국문학과


만약 그대가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를 당할 수 있다면? 제국주의적인 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미국인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인 남성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남성이라서 테러 대상이 될 수 있는 그런 세상에 산다면? “서울 ○○동에서 윤아무개씨가 피살당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새벽 2시경 귀가하던 윤씨는 M16­A2로 무장한 괴한들에 의해 습격을 당했다고 합니다. 예의 남성 테러조직의 범행으로 추정됩니다. …”라거나 “부산 ○○동 술집에서 폭탄이 터져 13명이 사망하고 22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모두 남성으로서, 사건 직후 ‘반군 6’에서는 자신들의 범행임을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반군 6’은 최근 10년 사이 결성된 남성 테러조직 중 하나이며….” 이런 소식이 TV 뉴스에 심심찮게 보도되기 시작한다면?

‘발바리’의 공포…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저런, 농담만은 아니다. 암컷 호모사피엔스 중 절대 다수가 이런 테러의 공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밤늦은 귀갓길, 가로등 없는 50m 남짓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온몸이 바짝 긴장되곤 한다. ‘어이, 왜 이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래보지만 긴장은 거의 본능적이다. 택시를 타거나 인적 드문 화장실에 가거나 낯선 남자와 단둘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불쾌한 긴장감에 압도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매일매일 느끼는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 공포 중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겪는 몫은 아마 절반쯤? ‘발바리’에다 ‘용인 발바리’까지 출몰하는 세상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대남성 테러조직이 출현하더라도 꼭 경악할 필요는 없단 말이다. 수천 년간 테러에 시달려온 여성 사이에 그런 반작용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페미니스트로 자처하거나 그렇게 불린 적은 없다. 오히려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는 늘 ‘경계, 경계 경보!’라는 식이었다. “전 아니거든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하는 변명투를 섞어서. 명절 때마다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불평등에 대한 항의가 연래에 무성했지만, 큰집 큰딸에 일 많은 집 맏며느리면서도 한 번도 그런 항의에 공감하지 않았다. 부엌 바닥에 퍼질러 앉아 파 다듬는 것도 좋은데요, 왜? 오직 식(食)을 위해 분투해야 하는 그런 ‘동물적’인 생활이 삶의 근거에 눈감을 수 없게 만드는데요, 왜요? 오며 가며 귀향길에만 이틀이 걸릴 때도 있었고, 두 평도 안 되는 좁은 부엌 바닥에 며느리 여럿이 뒤엉켜 자야 할 때도 있었지만, 다 재미있었다. 부엌에서의 연대는 또 얼마나 끈끈한가.

여자라서 분노를 느낄 때가 없었을 리 없다. 면밀한 인정과 보상의 체계로 조직돼 있는 가족을 벗어나면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정색을 하고 항의하고 싶진 않았다. 여성의 항의는 으레 귀찮거나 피곤한 걸로 치부돼버리니까. 여성 정책이란 어딘지 봐주지 뭐, 하는 냄새가 나니까. 귀찮고 피곤한 존재가 아니라 위협적이고 공포스런 존재가 될 수 있었다면 나도 분노를 다르게 표출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으려나? 차라리 남성 테러조직이라도 출현한다면 거기를 동경했으려나?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공포로 군림하거나 생산의 힘을 발휘하거나, 둘 중 무엇도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페미니즘 앞에서는 늘 조마조마했다. 관심이 없을 리 없고, 페미니즘의 성과는 담뿍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랬다. 페미니즘은 어디까지, 어떻게 갈 수 있으려나? 명절의 ‘며느리 대반란’이 영악한 이기주의를, 대가족 대신 핵가족을 택하는 자가당착식 결론을 넘어설 수 있으려나? 반가족주의는 정말 가족 너머를 발견할 수 있으려나? 저항은 언제 생산의 힘을 낳는가? 차라리 파괴는, 남성 테러클럽식 폭발력은 어떨까? 설 연휴 여파로 아픈 허리를 두들기다가 잠깐 공상에 잠기지만, 남편과 아들 얼굴을 떠올리곤 화들짝 놀라고 만다. 어이구, 마누라 있고 딸 있는 남자들은 잘도 파렴치한 짓을 해대더구만. 이런 배짱 갖곤 멀었어, 정말 멀었어. 심장 단련 삼아 소문 높았던 <미저리>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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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허니’ ‘씬 시티’ 등에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한 미국 여배우 제시카 알바<사진>가 남성지 ‘플레이보이’가 선정한 ‘올해의 섹시 스타’ 명단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다.

이 잡지는 오는 3월호에 알바를 포함해 25명의 유명 여자 연예인의 이름을 발표할 예정이다.

알바 외에도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TV시리즈 ‘위험한 아내들’의 에바 롱고리아를 비롯해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놀즈, 카르멘 엘렉트라, 스칼렌 요한슨, 제니퍼 애니스톤 등이 명단에 올랐으며, ‘게이샤의 추억’으로 헐리우드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중국 여배우 장쯔이도 여기에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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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2-1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시켜 알바.. 라는 패러디가 생각나 잠시 큭큭.. 댔습니다.
흠, 머리이어 캐리와 제니퍼 애니스톤이라니 어이가 없군요. 장쯔이도.. 별로..
에바 롱고리아와 비욘세 놀즈, 스칼렌 요한슨은 동의! 카르멘 엘렉트라(누군지 모름). ㅎㅎㅎ

비로그인 2006-02-11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생각해도 장쯔이는 아닌듯...
 

 

“이 시대 문학에 대한 지나친 옹호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문학권력’ ‘주례사비평’ 등 1999년에서 2000년대 초반을 뜨겁게 달군 문학동네 논쟁에서 이명원, 강준만 등과 함께 젊은 세대와 비주류의 핵심에 섰던 숙명여대 권성우 교수(문학평론가·43)가 최근 저서 ‘논쟁과 상처’(숙명여대 출판부)를 통해 매너리즘에 빠진 일부 작가와 비평문화를 동시에 비판했다. 또 ‘거대 언론’과 ‘거대 기업’이라는 권력에 침묵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문인들에 실망감을 표하며 자기검열과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말고 ‘자의식을 드러내 자유를 찾으라’고 주문한다. ‘주례사 비평’ 논쟁의 연장인 동시에 작가들에 대한 새로운 문제 제기인 셈이다.

그는 소위 ‘문학의 위기’가 다름 아닌 비평가들의 지나친 애호주의와 작가들의 장인정신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의례적인 해설 비평과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세련된(?) 주례사 비평들은 작가 자신으로 하여금 자기 갱신과 미학적 쇄신에 대한 욕망을 근원적으로 자극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이러한 점은 작가들의 자기 교정에 반드시 필요한 비판적 문제 제기에 대한 작가들의 내성까지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나친 애호와 주관적 의미 부여야말로 정작 ‘문학의 위기’를 조장하는 중대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작품은 탄탄한 문학성에도 불구, 전혀 거론되지 못하는가 하면 어떤 작품은 몇몇 한계와 아쉬움에도 찬사 일변도로 흐르는 ‘치우친’ 비평 문화도 지적한다. 저자는 김진석의 평론집 ‘소외에서 소내로’와 이명원의 평론집 ‘파문’ 등을 전자의 예로, 김영하의 ‘검은 꽃’을 후자의 예로 들었다. 충분한 담금질 없이 다량의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와 출판문화에도 책임을 묻는다.

“일 년에 한 권꼴로 장편소설, 창작집, 산문집 등을 발간하는 문학출판의 빡빡한 순환회로 속에서 우리 시대 작가의 비상한 상상력은 끊임없이 탕진되고 소모된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언론 권력에 대한 문인들의 문제의식 부재, 혹은 침묵도 도마에 오른다.

저자는 이러한 문단의 문제점이 대안 비평 문화의 정착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작가와 비평’ ‘크리티카’ ‘포럼X’ 등 새로운 비평집단의 등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역설한다.

책은 이와함께 2001~2002년 ‘문학권력’ 논쟁이 한창이던 때 권교수가 여러 문예지에 기고한 글들을 함께 실었다. 문단 권력과 권위의식에 도전하며 치열한 논장을 벌였던 권씨의 ‘논쟁의 추억’이자 ‘실존적 보고서’다.

권씨는 “처음 논쟁의 불씨를 놓았을 때는 외롭고 힘들었지만 곧 저와 인식을 같이 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힘을 얻었다”면서 “완고한 문단권력에 갑자기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겠지만, 치열한 논쟁 끝에 다양한 대안 세력들이 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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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은 전쟁의 참혹함을 독특한 방식으로 기억하는 소설이다. 커트 보네거트는 1943년, 스무 살의 나이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으며 영미 연합군 800대의 폭격기가 2개월간 폭격을 가해 13만 명의 희생자가 생겼던 ‘유럽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학살’ 독일 드레스덴 폭격에서 살아남았다. 드레스덴 폭격 이후 커트 보네거트는 20여 년이 지난 후에야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전쟁의 경험을 전통적인 소설의 기법, 즉 한 명의 서술자가 사건을 서술하는 방식으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레스덴은 도시 전체가 건축 박물관처럼 보일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였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미 연합군은 소련 측에 폭격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다는 명목 하에 재래식 폭격기로 도시를 초토화시킨다. 드레스덴의 13만 명이라는 희생자 수는 히로시마 핵폭탄으로 인한 희생자보다도 많다. 이 어이없는 참변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보네거트는 드레스덴 참변을 기억하는 자신의 자세에 대해 성서를 인용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될 때 롯의 부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어기고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만다. 보네거트는 소금기둥이 되는 운명이라 할지라도, 파괴의 순간을 뒤돌아보고 기억하는 자세를 긍정하고 있다.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거의 없다. 극적인 갈등도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약하고 거대한 힘 앞에 무기력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가장 중요한 효과 중 하나는 개성을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커트 보네거트의 여타 소설처럼, <제5도살장> 또한 꼴라주처럼 다채롭고 짤막하며 경쾌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이 에피소드들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보편적인 시간관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이자 드레스덴 참변에서 살아남은 검안사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자유롭다. 그는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재로 자유롭게 시간여행을 할 줄 안다.

독자들은 빌리 필그림을 따라서 그의 현재와 과거, 미래까지 자유롭게 들여다본다. 빌리는 한참 전쟁 와중에 부인과 결혼하는 장면으로 시간여행을 가기도 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트랄파마도어 혹성으로 납치됐던 순간으로 떠나기도 한다. 빌리는 미래를 볼 줄 알기에 자신이 언제 죽을지, 가족이 언제 죽을지를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놀랍지 않다. 또한 사람들의 죽음이 서술 될 때마다, “그렇게 가는 거지”(so it goes)라는 문장이 후렴구처럼 붙는다. 이 문장에는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부조리한 비극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 담겨있다. 세상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이 같은 담담함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전쟁터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된 빌리의 부대원들이 밀어터지는 기차 안에서 죽어갈 때도 “그렇게 가는” 것이다.

빌리를 납치한 트랄파마도어 혹성 사람들은 지구와는 정 반대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트랄파마도어 혹성 사람들은 ‘로키 산맥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볼 수 있다. ‘자유의지’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영원하다. 그래서 그들은 책을 읽을 때 ‘수많은 경이로운 순간들’을 일시에 들여다보기를 선호한다. 빌리가 왜 자신을 납치했느냐고 묻자, 트랄파마도어 인은 왜 라는 질문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단지 이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빌리가 납치된 것일 뿐이라고 답한다.

트랄파마도어인의 세계관은 세계의 부조리함을 견디는 하나의 방법처럼 제시된다. 어차피 모든 것은 영원하므로,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순간만을 보면서 살자는 것. 물론 미국으로 돌아온 빌리는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 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5도살장>에는 역설적으로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희망을 찾는 문장들이 자주 등장한다.

꼴라주적 기법을 사용한 까닭에 이 소설에는 다양한 자료들이 자유롭게 삽입된다. ‘지구에는 평균 324,000명의 신생아가 태어나는데 평균 10,000이 굶주림이나 영양실조로 죽는다.’ 남북전쟁 이후 비겁죄로 유일하게 총살당한 군인에 대해 법무관은 ‘군 기강’을 위해서는 ‘사형’을 당연하게 부과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드레스덴 참변은 1760년, 프러시아 군에 의해서도 일어난 바 있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 어느 장교는 ‘군사적으로 꼭 필요하지는 않았던’ 참변이라고 기록하기도 한다. 이처럼 갑작스레 삽입되는 자료들은, 과거와 현재를 다층적이고 총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커트 보네거트는 이 소설을 구상할 당시 친구의 부인에게 혼이 났다. 그녀는 커트 보네거트가 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젖비린내 나는 애들’에 불과했다고 쏘아붙인다. 또한 전쟁을 영웅시하는, ‘프랭크 시나트라나 존 웨인처럼 매력있는’ 배우들이 역할을 맡는 전쟁영화들을 비판한다. 백여 년 간 쓸모 없이 피를 흘린 십자군 전쟁에서 소년 십자군까지 동원되었던 것처럼, 젊은이들은 전쟁을 영웅시하는 책과 영화를 보면서 자라나서 전쟁터에서 피를 흘렸다. (그래서 이 소설의 부제는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이다.) 이 부조리한 전쟁을 기억하는 자세는 평정심과 지혜다.

“하느님, 저에게 허락하소서. 내가 바꾸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정심과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늘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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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윤은미 기자

 

 

 

 

 

이 책은 과학과 기술의 역사, 과학기술의 흐름을 통해 세계사를 훑어보면서 ‘즐거운 과학기술’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의 나일강이 범람한 뒤 토지를 재조사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기하학이 생겨났다고 전해준다. 황하, 메소포타미아 등 고대 인류문명도 기하학을 이용한 관개시설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었다. 고대 과학자들은 숫자놀이를 발전시켜 역수, 제곱, 2차·3차 방정식 풀이법 등을 개발하는 등 수학을 추상적으로 즐겼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 과학자의 일화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것보다 먼저 땅에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뒤집기 위해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무게가 다른 2개의 물질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는 것이 대표적. 저자는 그가 낙하법칙을 정립하기 10년 전에 이같은 실험을 했을 리가 없다고 말한다.

과학은 늘 신학에 짓눌려왔지만 뉴턴은 영국의 종교적 온건주의자와 결합하면서 빛을 발한 경우다. 그가 사망한 뒤 영국의 유명시인 알렉산더 포트는 “어둠 속에 있던 자연과 자연법칙들을, 신께서 말씀하시길 뉴턴이 ‘있으라’하매 모든 것이 밝아졌다”고 칭송했다. 저자는 서구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 마야, 잉카, 이슬람 등이 쌓아올린 과학·기술 업적까지 일목요연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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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후사의 인식'은 1979년 10월 15일에 첫 권이 출간됐으며,이후 10년에 걸쳐 6권으로 완결됐다. 지금까지 모두 합해 50여만부가 판매됐다. '인식'은 10·26으로 판금되었다가 1980년 서울의 봄으로 해금됐다. 5·17 이후 저자들이 대거 구속되거나 조사받았으며 대학으로부터 쫓겨나는 등 수난을 겪었다.

한길사는 2004년 '인식'의 출간 25주년을 맞아 재출간을 하면서 "친일 군상부터 반민특위,미군정,분단에 이르기까지 해방 전후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각처의 흐름을 매우 사실적으로 진단하는 동시에 오늘의 역사,사회의 현실적 맥락이 무엇이며 또한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적확하게 해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되었다"고 밝혔다.

'인식'에 참여한 필자들은 그동안 사회와 학계,그리고 정부에서 활약한 진보적 지식인들이 망라됐다. 강만길 임헌영 염무웅 이종석 최장집 송건호 김윤식 조동걸, 서울대 김학준, 이화여대 진덕규, 성균관대 이동화, 영남대 염무웅, 중앙대 유인호 이종훈 교수와 친일문제연구가 임종국, 재야운동가 백기완,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이상 당시 직책) 등이 저자인데 지금 보면 우파 인사도 적지 않는 등 50여명에 이른다. 이 중 강만길 교수는 현재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이며,이종석은 NSC 사무처장을 거쳐 통일부장관에 내정됐다. 임헌영 중앙대 문창과 교수는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이며,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김대중 정부의 출범에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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