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끼사스 > 김애란을 읽는 어떤 방법 - 로즈마리님께①
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안녕하세요, 로즈마리님. 님 서재에 종종 들러 쓰신 글을 훔쳐 읽고 가곤 합니다. 님의 글에서, 뭐랄까, 매우 정직한 글쓰기를 하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추상적 개념어를 빌어다 눙치는 식이 아니라 쉬운 어휘들로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는 글쓰기. 용례가 적확한지는 모르겠지만 '고졸(古拙)하다'-개인적으로 막연한 호감을 가진 단어입니다-는 형용사가 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르겠습니다.

서재에 들러도 댓글조차 잘 남기지 못한 채 나오곤 하던 제가 이렇게 로즈마리님께 띄우는 서신의 꼴을 빌어 서평난에 끼적이는 것은 일전에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를 읽고 쓰신 서평을 읽은 까닭입니다. 평소 구사하는 어휘와는 달리 단호한 표현들을 동원해 "섣불리 고른 게 잘못"이라고 일갈하신 글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탓입니다. 당시 저도 김애란을 읽었고 독후감(感)을 어떻게 정리해 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죠. 평소 신뢰하던 평자인 님께서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한 윤성희, 정이현 등을 거론하며 서릿발 같은 판정을 내린 걸 보곤 '내가 김애란을 읽고 받은 막연한 호감이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조심스러워졌습니다.

경험이 뒷받침되지 않은 글쓰기 탓에 내실이 없고 허황되다, 80년대생 필자에게 기대되는 새로움이 안보인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게 문체인데 그것마저 1~2편 외엔 성공을 말하기 힘들다…는 평이었다고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이렇게 정리해 놓고 보니 김애란을 읽고 나서 회사 동료 R과 퇴근길에 나눴던 대화가 생각나는군요. 제가 "아… 꼼꼼한 취재 없이도 이런 소설이 나오는구나" 하고 허망한 듯 감탄을 말하니 R은 "김연수는 이거 읽고 '내 시대는 갔구나' 했다더라"하고 받아쳤습니다. 그 자리에선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다음날 바로 <…A빠이, 이상>을 입수해서 읽었습니다. 김연수의 장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본전생각도 들지 않았을까' 짐작도 해보고….

김연수가 분명하게-저같은 문외한은 막연하게- 느꼈던, 김애란의 '경험없는 소설'이 이룬 경지는 무엇이었을까요.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작가에 대한 제 막연한 호감과 님의 단호한 혹평의 연유를 가늠하는 잣대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맞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님은 님도 너그러이 인정해 주시겠죠. 그저 저는, "한때 유행했던 하루키의 모방 그 이상은 아닌 듯하다"는 평가를 받아들이기 힘든 저는, 제 막연한 호감에서 김애란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을 끄집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과연 다음에 그녀가 보여줄 게 있을까"를 의심하기보단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손댈 엄두가 안나는 생각의 실타래를 천천히 풀어보려 합니다.

잘 풀릴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군요. 일단 소설집 <달려라, 아비>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려 합니다. 대신 이번엔 페이지 번호 순이 아니라 개별작품이 발표된 시기 순으로 해보려구요. 아래와 같이 목차를 정렬해 보니 로즈마리님이 "개 중 제일 잘 된 소설"로 꼽았던 작품 번호는 ⑥번과 ⑧번입니다.

①노크하지 않는 집(창작과비평 2003년 봄호) ②나는 편의점에 간다(문학과사회 2003년 가을호) ③종이 물고기(창작과비평 2004년 봄호) ④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현대문학 2004년 5월호) ⑤영원한 화자(실천문학 2004년 가을호) ⑥달려라, 아비(한국문학 2004년 겨울호) ⑦사랑의 인사(문학사상 2005년 3월호) ⑧스카이 콩콩(문예중앙 2005년 여름호) ⑨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문학동네 2005년 가을호)

아참, 다음에 뵙기 전에 드릴 말씀. 김애란을 하루키의 추종자로 규정하신 것은 아까도 말씀드렸듯 동의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은 문체에 대한 의견입니다. 저는 작가의 군더더기 없는, 문법에 정확한, 술술 읽히는 문장의 탁월함에 기꺼이 두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윤성희는 못 읽어봐서 뭐라 말씀드리긴 힘들겠지만 우리나라 소설가 중에 이렇게 깔끔한 문장을 구사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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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tv도 잘 안보지만...

 

100만원 이하 될때까징 기다려야징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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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거리두기’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걸다"

역사는 기억을 둘러싼 ‘계급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노동의 흔적을 얼마나 제대로 기억하느냐에 따라 전체 역사에서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도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대든 기억되는 것은 늘 ‘주류’였다. 힘과 권력이 없는 노동자는 역사 속에서 잊혀지게 마련이고, 때론 왜곡된 채로 기억의 한 모퉁이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1970년, 여공들의 삶을 ‘그녀들의 눈높이’로 접근한 <여공 1970, 그녀들의 반(反)역사>(이매진 펴냄)라는 책이 더욱 눈에 띄는 지도 모르겠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던 비주류 중에 비주류인 ‘여공’들의 역사에 37살 소장학자 김원 교수(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가 정면으로 돌진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02년 우리나라와 일본을 비교한 <여공 담론의 남성주의 비판>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를 발전시켜 지난해 말 책으로 발간했다. 그는 이 책으로 고 김진균 서울대 교수를 기리는 ‘김진균상’ 학술상 부문 1회 수상자로 결정돼 11일 시상식을 갖기도 했다. 김원 교수를 지난 17일 만났다.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가기 전에 그에게 우선적으로 궁금했던 세 가지를 물었다. 일명 ‘김원 교수에게 묻는 세 가지 왜?’

▲ 김원 교수는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대학원 석사와 박사를 졸업했다. 문화연구 시월 회원,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리츠메이칸대학 외국인 객원연구원, (사)민주화기념사업회 총서발간사업 공동연구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제2기 보고서 공동 집필자, 서강대, 한림대, 상지대 강사를 거쳐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 왜 ‘여공’이었나.

“여공은 산업화시기 정부, 고용주 그리고 시민사회 내 구성원들이 여성노동자들을 차별하기 위해 썼던 말이다. ‘공순이’와 번갈아 사용된 이 말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뿐만 아니라 다른 복합적인 의미를 가졌다. 작업장, 노동운동, 기숙사, 소모임, 생활 속에서 여공은 모두 존재했지만, 이들을 여공이라고 부르는 담론은 다층적이었다.

내가 문제를 삼는 것은 여공에 대한 ‘지배적 담론’이다. 이 글은 여공의 일상을 분석한 글이라기보다 여공을 규정하던 지배적 담론이 숨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폭로하는 작업이었다. 여공이라는 담론을 둘러싼 힘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공'이라는 담론을 둘러싼 힘의 관계를 추적하다

- 왜 1970년대인가.
“70년대, 정확하게는 1960~70년대 이른바 발전주의 시기는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해방 8년사, 한국전쟁, 그리고 1950년대와 상이한 사회가 구성된 시기다. 토대라는 수준에서 임노동자가 한국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했고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이 국가의 지상과제로 상정됐다. 농촌사회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한 산업사회로 이행되던 시점이다.
이와 함께 여성노동의 경우도 이전 가부장의 종속된 대상에서 ‘근로여성’이라는 ‘노동하는 주체’로 의미가 부분적으로 강화됐다. 바로 그 시점이 1970년대 초반이다. 또 하나는 70년대는 현대 한국사회를 형성한 ‘현재진행형’ 혹은 ‘기원’이기 때문에 그 시대를 선택했다.”

- 왜 분석틀로 푸코의 ‘익명적 지식’이라는 개념을 이용했나.
“익명적 지식은 체계적인 형태로 정리되지 않은 보통사람들의 지식을 말한다. 또는 형식적인 체계 안에 포섭돼 은폐되거나 감춰진 지식을 의미한다. 지배적 담론은 자기 정당성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관련 사건, 사실, 제도 등은 유지하나 정당성을 흔드는 것은 배제, 은폐, 왜곡시킨다.
이 책은 ‘여공’에 대한 책이 아닌, 여공을 ‘둘러싼 담론’에 대한 글이다. 공식 역사에서 무시되고 사료로서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지배적 이야기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위협하는 수다, 잡담, 수기, 노래, 낙서 등 익명적 지식을 드러내는 것은 지배담론을 해체하는 작업이다. 이른바 총체성이라는 이름 아래서 역사적 개별자(개별성)를 억압한 근대지배, 근대적 지식체계에 대해 가장 도발적 비판을 제기한 사람은 푸코였다. 내 책은 지배적 역사해석을 해체하는 ‘반(反역)사’를 지향했다. 이 점에서 푸코의 익명적 지식이라는 문제설정은 의미 있다.”

이 책은 자그마치 860페이지 분량이다. 논문을 기초로 작성된 책이라 다소 딱딱할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여공의 수기와 인터뷰, 신문기사, 대중가요, 드라마, 소설 등 익숙한 자료들이 이용돼,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질 만큼 쉽게 읽혀진다. 당시 여공을 둘러싼 지배적 담론을 파헤치기 위한 김 교수의 노력은 정작 900페이지에 육박한 책의 두께가 아닌 내용을 보면 더욱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책장을 넘기면서 김 교수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말하고 싶었을까 궁금해졌다.

“그동안 1970년대 여성노동에 대한 많은 자료 및 연구들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노동을 결혼 전 일시적 노동, 남성노동보다 열등하거나 여성노동의 저항을 경제적이고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으로 여겨 왔다. 이러한 지배적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는 것은 여성노동을 둘러싼 연구자, 노동운동가들의 남성주의 관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노동에 대한 남성주의 관점은 단지 1970년대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1987년 노동자대투쟁,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재생된 여성노동에 대한 ‘특정한 담론’이 만들어낸 효과라고 본다. 여성노동을 둘러싼 담론 분석을 통해 노동운동과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 안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는 ‘남성주의’를 폭로, 해체하고 싶었다.”

'격하'와 '신화화'는 동전의 양면


그의 목소리는 한 단계 올라갔다. 그러면서 이제껏 그 누구도 ‘감히’ 칼을 들이대지 않았던 70년대 여성노동자의 투쟁에 날카로운 지적을 가한다.

“또 다른 하나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들의 노조운동을 ‘신화화’ 시키는 지배적 담론을 비판하고 싶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그간 노동문제 연구자와 활동가들은 70년대 여성노동의 저항을 ‘경제투쟁 혹은 조합주의적 투쟁’으로 격하시켰다. 이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의 저항, 노조운동을 무모순적인 것으로 신화화 했다. 이것이 여성노동운동에 지배적 담론이 됐다.

결과적으로 70년대 여성노동운동의 내적인 모순과 한계는 지속적으로 은폐됐다. 저항과 운동의 역사에서 투쟁 주체들의 헌신과 희생은 존중되고 역사적 의의로 간직돼야 하지만 역사는 장밋빛 과거만 기록할 수 없다. 그 안에 아로새겨진 모순과 균열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운동사의 모순과 균열을 감추려는 지배적 이야기가 있다면 거침없이 그 껍데기를 벗겨내야 한다.”

이러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민주노조 신화 ‘뒤집어 보기’, 종교단체와 여성노동자 간의 숨겨진 비밀들 등의 주제로 책 속에 낱낱이 소개돼 있다.

남이 가지 않던 길을 만들어서 가는 길은 그만큼 고된 작업이다. 주류 사회에 저항도 이겨내야 하고 내가 가는 길이 맞기는 한 것인가 의구심도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논문과 책 발간까지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어려움이라면 여공담론을 둘러싼 지배적 시각이나 담론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지식사회 내 움직임이다. 대표적인 예로 운동권 비판은 ‘적’을 이롭게 한다는 식의 반응이다. 또는 ‘왜 남성이 여공에 대해 연구했는가’ 등의 시각이다. 이는 여전히 한국 지식사회가 폐쇄적이며 개방적인 학문공동체로서 기본적 전제조건이 결핍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학문적 영역이 마치 미식축구의 ‘땅뺏기’처럼 인식되고, 서로의 독창적인 연구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비판하기보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풍토는 아직 한국 지식사회는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김원 교수의 ‘주류 비판하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99년 주류 학생운동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 <잊혀진 것들에 대한 기억>으로 김 교수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진보적 소장학자의 운동권 비판은 보수학자들의 그것과는 강도가 달랐다. 이처럼 김 교수의 날카로운 지적은 운동 내부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내리꽂기 때문에 그를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

“전공은 한국정치를 했다. 하지만 늘 ‘과연 나의 학문적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하곤 한다. 정치학, 역사학, 사회학, 여성학, 문학 등에 걸쳐 있는 제 연구는 주류 학계의 흐름이나 질서와는 한 걸음 떨어져 있다. 지배적인 해석과도 거리를 두고 있어 읽은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생각한다. 하지만 이제 막 연구를 시작한 학자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은 글쓰기, 그리고 주류적인 것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것이 저 나름대로 ‘세상에 말을 거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잊혀진 개인과 집단들을 불러내는, 다시 말하자면 세상이 잊어버린 그들과 세상이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제 연구의 목적이라는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산별로 변해도 안 바뀔 것"


내친 김에 그에게 불편한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젊은 소장학자 입장에서 노동운동에 대한 ‘쓴 소리’를 부탁했다. 물론 최근에는 너무 많은 쓴 소리 때문에 노동운동이 ‘고초’를 당하고 있지만 김 교수의 생각이 궁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민주노총이 과연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대표체’로 현재 기능하며 그럴 의지가 있는지 매우 회의적이다.” 처음부터 강도가 세다.

“물론 활동가들의 실천상 어려움이나 개인적 고뇌와 희생을 내가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특정 분파의 이익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민주노총은 현재도 위기지만 반복적인 위기와 와해를 맞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일부에서 지겨울 정도로 이야기하는 산별노조로 조직이 변해도 안 바뀔 것이다. 노동운동은 그 탄생부터 직종, 성별, 지역 등을 넘어선 ‘연대’를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 연대를 포기한 혹은 운동적 레토릭(수식어) 정도로만 인식하는 노동운동은 ‘죽은 노동운동’이다. 주변계급과 집단을 조직대상으로 진정하게 여기고 그들과 연대하려는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기 전에는 민주노총은 앞에 수식어 ‘민주’자를 떼어야 할지도 모른다.”

노동운동에 애정을 갖고 있지만 애정 어린 말보다 근본적인 비판은 해야 할 것 같다며 김 교수가 던진 말이다.

이 책을 쓰면서 김 교수는 스무살 당시 철거민촌 ‘봉사활동’에서 만난 어린 소녀 민정이와 연수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한다. 이 책이 널리 알려져 지금은 20대 후반이 됐을 두 소녀들이 책을 읽어준다면 더 없이 기쁠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 책에 쏟은 김 교수의 열정이 두 소녀에게도 부끄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주류 거리두기’ 행보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김 교수의 머리 속에는 무궁무진한 연구과제들이 담겨 있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가 주변부를 철저히 외면한 결과다.

“앞으로 1960~70년대 주변계급의 역사와 지성사에 대해 연구할 예정이다. ‘여공 1970’의 연장선상에서 저항의 흔적이 없다며 역사에서 지워졌던 산업화 시기 집단과 개인의 삶, 혹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구할 생각이다. 이와 함께 산업화 시기 그리고 1980년대 지식의 역사를 연구할 계획이다. 특히 민주주의, 민주회복, 노동해방, 민족해방 등으로 대표되던 당시 저항적 지식·담론의 역사와 구성을 살펴보고 싶다.”

물론 김 교수의 연구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는다. “또다른 측면에서 제가 연구하고자 하는 것은 산업화 이후 최근까지 ‘주변부 집단’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구조 문제다. 산업화 시기 여공과 함께 현재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시기는 다르지만 사회와 사회운동에서 ‘타자’이자 ‘주변집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이주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성노동자들은 사회운동과 민주화 됐다고 자부하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보여주는 신자유주의 시대 여공의 다른 이름이다.”

주류와 ‘거리두기’를 통해 세상에 말을 거는 김 교수의 발길이 앞으로도 상당히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그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이 무엇일지 사뭇 궁금해진다. 어떤 잊혀진 것들이 다시 현재에서 부활해 세상과 소통하는 기회를 얻을지 기대된다.
 
김소연 기자  dandy@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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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3-05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가는 책이네요. 보관함에 넣을게요.

비로그인 2006-03-06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요.
 

경기도 양평에 400여명 집결, "외주위탁 철회까지 무기한 파업" 선언

KTX 승무원들이 외주위탁이 철회될 때까지 파업투쟁을 지속키로 했다.
전국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 서울 KTX 열차승무지부(지부장 민세원)와 전국철도노동조합 부산지방본부 부산 KTX 열차승무지부(지부장 정혜인) 조합원 350여명은 5일 오후 2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양평 VIP레저타운에서 승무원 파업투쟁 결의대회를 갖고 외주위탁이 철회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을 벌이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 KTX 여승무원들이 찰도공사 위탁철회가 이뤄질 때 까지 무기한 파업투쟁 할 것을 결의했다.     © 대자보

5일 오후 6시 민세원 서울 KTX열차승무지부 지부장은 전화를 통해 “우리의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파업투쟁을 벌이기로 했다”며 “파업장소 등 향후 투쟁계획을 오늘 저녁 투본회의에서 논의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4일 밤 부산 KTX 승무원 100여명이 전세버스를 타고 농성장인 이곳 VIP레저타운에 합류했고 서울 승무원을 포함해 350여 승무원들이 파업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KTX열차승무원지부 조합원들은 5일 오후 성명서를 통해 “감사원이 매각청산대상으로 판정한 KTX 관광레저 외주위탁을 철회할 때까지 파업을 멈출 수 없다”며 “저희들의 투쟁에 함께해 주시고, 힘이 돼 준 철도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동지들과 자랑스러운 전국철도노동조합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또 “ 외주위탁의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동안의 설움과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며 “전국 철도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차별과 저임금,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한 이정표를 세운 투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3월 4일 오후 7시를 기해 파업에 참여한 철도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했다”며 “하지만 저희들은 파업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엄중한 현실에 처해 있다. 철도공사는 여전히 ‘KTX 관광레저’라는 부실기업에 저희들을 보내려 하고 있다. 승무원 운용경험이 전혀 없는 회사, 철도공사 퇴직인사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 감사원으로부터 부실,매각·청산대상으로 판정받은 회사에 왜 KTX 승무원들이 가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KTX 승무원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지키는데 앞장선 동료들을 해고하려는 음모에 끝까지 맞서 저항할 것”이라며 “400여명 승무원들이 하나가 되어 흔들림 없는 파업투쟁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서> 감사원이 매각·청산대상으로 판정한 KTX 관광레저 외주위탁을 철회할 때까지 KTX 승무원들의 파업을 멈출 수 없습니다.

 
오늘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정부와 철도공사의 강력한 탄압에 밀려 파업을 풀었습니다. 철도노동조합의 파업은 국민의 발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철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정부책임인 철도적자를 노동자들과 승객에게 전가하려는 정부와 공사 경영진의 잘못된 정책에 맞서는 투쟁이었습니다. 그러한 일들을 위해 앞장서 싸우다 해고된 우리 동료들을 복직시키기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전국 철도노동조합의 파업투쟁은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차별과 저임금, 그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한 투쟁이었습니다. 이러한 투쟁에 함께 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외주위탁의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그동안의 설움과 고통을 잊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어깨를 나란히 하여 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의 정신을 확인한 가슴 벅찬 4일이었습니다.
 
3월 4일 17시를 기해 파업에 참여한 철도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파업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엄중한 현실에 처해 있습니다. 철도공사는 여전히 ‘KTX 관광레저’라는 부실기업에 저희들을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승무원 운용경험이 전혀 없는 회사, 철도공사 퇴직인사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 감사원으로부터 부실,매각·청산대상으로 판정받은 회사에 왜 KTX 승무원들이 가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습니다.
 
관리 인력을 파견해 주고, 승무원들을 강제로 보내고, 물품판매를 시키고, 그 사업권을 안겨주고, 1인당 계약에서 토탈계약으로 적자를 보전해 주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철도공사가 왜 이렇게 KTX 승무원들을 탄압하려 하는지, 모든 열차 승무원들이 철도공사 소속인데 왜 KTX 승무원들만 물건처럼 이리저리 보내져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2만 5천명 조합원들이 다 함께 하는 준법투쟁지침(사복근무)을 이유로 승무정지 조치를 당했습니다. 새벽 세시에, 한밤중에 출근하고도 결근처리를 당했습니다. 이런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승무원 없이 KTX가 운행하는 사태를, 사업권을 반납했다고 하는 철도유통이 저질렀다고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온갖 해명자료와 보도자료를 철도공사에서 도맡아 내는 현실에서, 왜 언론이 KTX승무원 탄압의 배후인 철도공사와 경영진을 밝혀주시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KTX 승무원들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전히 부실 자회사인 KTX 관광레저 가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복근무와 파업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승무원들이 직위해제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철도공사경영진의 부당한 처사에 굴복한다면 제2, 제3의 KTX 승무원들이 불법부당한 처사에 신음하게 될 것입니다.
 
KTX 승무원들은 끝까지 철도공사 경영진의 탄압에 저항할 것입니다. 철도공사 경영진의 잠들어 있는 양심을 흔들어 깨울 때까지, KTX 승무원들의 양심이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KTX 승무원들에게 물품판매를 시키고, KTX 승무원들의 생존권과 인권을 지키는데 앞장선 동료들을 해고하려는 음모에 끝까지 맞서 저항할 것입니다. 400여명 승무원들이 하나가 되어 흔들림없는 파업투쟁을 지속할 것입니다.
 
온갖 인권유린을 자행해온 한국철도유통과 이제 새로운 위탁도급 자회사가 되어 KTX 승무원들에게 전원 해고위협을 서두르는 KTX 관광레저, 그리고 배후에서 이를 지휘하고 있는 철도공사의 경영진에 맞서 저항하는 KTX 400여명 승무원들의 외로운 투쟁에 시민 여러분과 철도 고객 여러분의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호소 드립니다.
 
끝으로 저희들의 투쟁에 함께해 주시고, 힘이 되어 주신 철도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동지들과 자랑스러운 우리 전국철도노동조합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2006년 3월 5일
전국 철도노동조합 산하 서울,부산 KTX 400여 승무원 일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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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3-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970 여공이 생각나네...
노동권이 30년 후퇴한거니? 아니면 여전한거니?
 

결혼 했구나..

 

 

심은하, 자연분만으로 3.2Kg 딸 출산

[마이데일리 = 안지선 기자] 만인의 연인에서 한 남자의 아내가 된 톱스타 심은하가 결혼 5개월 만에 공주님을 출산했다.

심은하는 3일 오후 7시 40분쯤 서울 강남에 위치한 모 산부인과에서 여자 아이를 출산했으며, 현재 이 병원 특실에 입원 중에 있다.

 

 

요즘 아이들은 금방 나와요...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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