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딸기 > 그만 읽어야겠다.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귄터 바루디오 지음, 최은아 외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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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저 책 한번에 펼쳐놓고 질질 끌며 읽는 버릇이 있기는 하지만, 한번 잡은 책은 (언젠가는) 끝까지 읽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래야 독서카드에 적을 수가 있고, 그래야 내 독서 ‘실적’이 올라가기 때문에라도 끝까지 읽는다. 여러개의 논문이 실린 책이면 골라서 읽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훑는다.

그런데 이 책은-- 포기해야겠다. 따라서 이 글은, 독후감이 아닌 ‘독서중단감’이 되겠다.


증말 웬만하면 참고 읽으려고 했다. 왜냐? 책값이 장난이 아니기 때문에... 2만5000원. 알라딘 할인가격으로 샀으니 2만2500원. 하드커버에 가운뎃줄도 달렸다. 제목도 멋지다. ‘악마의 눈물, 석유의 역사’. 그런 연유로 무려 300쪽까지 읽었다. 이 시점에서 중도포기하다니... 흙흙.


내용 중 전문적인 부분이 많다. 석유의 역사를 꼼꼼이 살펴보는 것은 좋지만 시추공의 종류나 불순물 제거법 같이 내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기술적인 내용이 많다(혹시 이런 부분에 특별한 관심이 있거나 자료가 필요한 분이라면 이 책이 유용할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런 기술적인 문제를 다루면서 초반 상당부분을 독일 사례로 설명하는데 독일이 석유대국;;이었던가. -_- 오히려 독일은 산업화가 늦었던 나라 아니었나.


번역 개판이다. 이슬람 셰이크를 ‘샤이히(독일어;;인 모양이다)’로 쓰고 이오 위성(EO Satellite)은 제멋대로 ‘이오자트(아마도 이오 샛을 가리키는 듯)’라고 써놨다. 이라크 하 ™… 왕조는 독일어식으로 하 셰미텐... 멕시코 ‘골프’와 아라비아 ‘골프’는 코메디다. 포르투갈의 ‘리사본’은 처음엔 실수인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번번이 리사본으로 나온다. 루벤 ‘사데르’ 페레스는 무려 ‘세이더’라고 해놓았다. 조지 솔로스, 프랜시스 푸쿠야마...


번역이 거지같기로는 존 쿨리의 ‘추악한 전쟁’을 따를 자가 없다. 하지만 그 책은 내용이 대단히 훌륭하여,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면서도 결론적으로 무쟈게 재밌게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번역 엉망진창에다가 내용도 황당하다. 선진국들은 석유 파내면서 환경 파괴를 안하는데 성공한 반면 개도국들은 엉망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셸이 석유를 파내고 있고, 인도네시아 아체에서는 엑손이 유전을 쥐락펴락 하고 있다. 그런데도 망발을? 그린피스의 환경보호 시위 때 등장하는 선박 ‘무지개전사’호의 이름은 인디언 설화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저자는 “무지개를 잡으려는 야망의 표현”이라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30년 독재자는 칭찬하고, 이란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던 민족주의자 모사데크(이 책에서는 끝내 모사데그라고 썼다)는 ‘석유를 모르는 자’라고 비하한다. 그러면서 환경 얘기는 아귀 안 맞게 여기저기 얼마나 끌어들이는지... 미국 예찬을 넘어서,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신디케이트를 가리키며 “원래 신디케이트는 가정적이고 화해적인 개념”이라면서 역사를 열어젖혔네 어쩌구 하는데 목불인견이다.


그래서 안 읽기로 했다. 어째서 마이너스 별 칸은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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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03-13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거 왜 퍼오셨어요 ㅋㅋㅋ
 

3918888

 

심심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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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3-13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18889

마늘빵 2006-03-13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18890

반딧불,, 2006-03-1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118890

축하드려요.

2만이 금세군요.(그저 이벤트거리만 찾으며*.*)

 
 전출처 : 딸기 > 꼼꼼히 공부하며 봐야 하는 책.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
루이기 루카 카발리-스포르차 지음, 이정호 옮김 / 지호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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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을 때 매우 찬탄하면서 그 바탕이 된 윌리엄 맥닐의 책과 카발리-스포르차의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나오지 않았거나 절판됐던 두 사람의 책이 작년에 잇달아 출간됐다. 전자는 ‘전염병의 세계사’이고 후자는 바로 이 책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다. 말하자면 이 책들은 세트로 묶어서 함께 공부하면 좋은 것들이다. 맥닐의 책은 다이아몬드가 언급했던 ‘주저(主著)’에 해당되고, 카발리-스포르차의 이 책은 주저라기보다는 강연 원고를 정리한 것이다. 1994년 미국에서 출간됐다는 ‘인간 유전자들의 역사와 지리학’을 읽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 책은 번역돼 나오지 않았으니 그냥 이 책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주저’가 아니라고 했지만 책은 아주 재미있었다. 페이지마다 노란 색연필로 밑줄 그은 부분이 많았다. 그만큼 찬찬히 정리해가며 공부할 것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책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한 현생 인류의 조상들이 지구상으로 흩어져나간 과정(인류의 ‘팽창’)을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분석한다.

유전자 분석이라는 방법론이 등장한 뒤 필드워크를 통해 특정 생물종을 조사하는 방식의 ‘개미 생물학’(에드워드 윌슨 류)은 분자생물학에 주류 자리를 내준 것 같다. 카발리-스포르차는 ABO식과 RH + - 식 혈액형 같은 기본적인 유전적 대립인자에서부터 지중해빈혈증 같은 종양들까지 포괄하는 좀더 복잡한 단백질 대립인자들을 이용해 인류 조상들의 이동 경로를 살핀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초창기 이동 경로를 추측하는 두 가지 축은 유전자와 언어다. 고도의(나로서는 알기 힘든) 수학적 계산을 이용한 ‘유전자 거리’라는 것을 통해 각 대륙 사람들의 유전적 거리와 분기(分岐) 시점을 추정하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특성상 ‘가설’일 수밖에 없지만 가설을 수립해나가는 과정이 구체적이고 재미있었다. 동시에 저자는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유전자 거리를 보완해간다. 고고학에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법의 오차를 나이테 측정법으로 보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를 폭넓게 받아들이고 있다.

눈에 띄었던 것은 인류 팽창 경로를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추적하면서 ‘주성분 분석’이라는 방법론을 도입한 점이다. 예를 들자면 유럽인들의 이동 역사를 살피는 데에는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들이 있다. 가장 먼저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것은 중동(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오늘날의 유럽 대륙으로 농업이 전파되고 인류의 대규모 이주가 뒤따랐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첫 번째 주성분’이 된다. 유럽의 북쪽과 남서쪽을 각기 출발점으로 해서 이뤄진 두 번째 팽창은 ‘두번째 주성분’이 되고, 헝가리에 우랄어족을 형성케한 초원 유목지대(흑해 북부)로부터의 팽창은 세 번째 주성분이 되는 식이다. 이렇게 다섯 개의 주성분을 골라 각각 1번부터 5번까지 순서로 가중치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역자 설명을 보니 카발리-스포르차는 특히 수학적 모델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덕택에 이 책은 역사책이면서 생물학 책이면서 뭔가 멋져 보이는 수학모델들까지 등장하는 알찬 저술이 됐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학제간 연구 방식을 직접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 책에 소개된 연구가 실천적으로는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기 위한 작업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와 일맥상통한다(다이아몬드가 카발리-스포르차의 작업에 워낙 많이 의존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다).


아마도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한 것이 인종주의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적절한 정의일 것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자신들이 속한 인종이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유전자, 염색체, 또는 DNA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인종들에 비해 월등하다는 믿음이 바로 인종주의다. 현재의 미국 상황이 바로 인종주의적이다. 외국에서 미국으로 전화를 걸 때 맨 먼저 국가번호 1을 눌러야 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p.20)


저자는 인종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뭐, 새로울 것은 없다. 뒷부분 미국에 대한 것은 대단히 ‘포괄적인 해석’이며 다분히 시니컬한 풍자의 냄새를 풍기지만 말이다. 저자는 "인종주의를 부추기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자신의 불행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려는 욕망"(p.22)이라고 지적한다.

적어도 서구에서, 최근에는 인종주의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것이 금기시돼 있다. 문득, 어쩌면 지금은 ‘종교’가 이런 ‘불만 떠넘기기’의 도구로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야 아직까지도 ‘근거 없는 인종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근래에는 미국 따라하기가 지나치다 못해 ‘이슬람 미워하기’까지 따라하는 듯하다. 모든 분란의 원인을 특정 종교로 몰아붙이는 행태는 신(新)인종주의 내지는 ‘문명충돌주의’로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구조적인 무지 -대한민국의 서구 추종적 교육에서 유래된-에서 나온 단순한 인종주의도 있지만 말이다.

여담이지만 몇 달 전 아프리카에 다녀오면서 “흑인들은 유전적으로 머리가 나쁘지 않으냐”라는 말을 듣고 기겁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이 생각나서 하는 얘기다. ‘배울 만큼 배운 분이 왜 이러시나’ 싶었지만 대화를 계속하고 싶지 않았던지라 긴 설명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을 했던 분이 우리나라의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겠지만 아무튼 그것이 ‘인종에 무지해 인종주의에 넘어가버린’ 대한민국 사람들의 현실의 일단임은 분명하다.


인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생물학적, 문화적 변이를 거쳐 왔다. 많은 이들이 문화적 변이와 생물학적 변이를 혼동한다. 아프리카의 대학생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해서 미국인들(유전적으로는 참 의미 없는 기준이다)보다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딱 그런 태도다. 인종주의의 첫 번째 징표는 '이러한 우세함이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것’(p.21)이다. 카발리-스포르차는 생물학적 변이 중에도 ‘눈에 보이는 변이와 보이지 않는 변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를 보는 사람들의 시각에도 여러 가지 함정들이 존재한다. 지구는 둥글다. 유전적 변이는 불연속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세상에는 얼굴이 검은 사람/흰 사람/노란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간 정도로 갈색인 사람, 많이 검은 사람, 옅은 갈색인 사람 등등 채도 단계별 색상표처럼 여러 가지 얼굴빛을 한 사람들이 지구를 덮고 있다. 수많은 중간단계들이 이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그걸 무시하고 단순화의 덫에 걸린다.

더욱이 인종주의의 가장 강력한 기준이 되는 피부색과 몸의 크기는 인간 진화 전체에선 아마도 최근에야 진화한 형질로 보인다(p.25)고 저자는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기후의 영향을 변화된 ‘몸 표면’ 만을 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종적 순수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또한 인간은 이형 접합 즉 서로 다른 유전자들이 만나 섞일 때에 질병 감염 위험도 줄어들고 더 강해진다.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학적 복잡성으로 볼 때 ‘인종적 차이들’이라는 ‘몸 표면’의 형질에 관여하는 유전자 수는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저자의 말마따나, 오늘날 인류는 인공적인 기후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피부색쯤이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외국인 노동자들(요새는 이들을 ‘코시안’이라 부른다고 들었다) 차별을 밥 먹듯 하는 이들이야말로, 골치가 좀 아프겠지만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바스크나 베르베르 등에 대한 내용들도 재미있게 읽었다. 바스크라고 하면 아슬레틱 빌바오나 이천수가 뛰었던 소시에다드 같은 축구팀들, 혹은 EPA 폭탄테러 따위 밖에 모르고 있었다. 유전적, 언어학적으로 유럽인들과 그렇게 많이 갈라지는 줄은 미처 몰랐다.


두어군데 앞뒤 표기가 일치하지 않은 것이 나와 ‘쪼가리 번역’을 의심했는데 번역자가 역자 후기에 “학부생들에게 6장 가운데 4장을 애벌번역을 시켰다”고 설명을 해놓았다. 이탈리아 토리노를 영어식으로 ‘튜린’이라 표기한 것을 빼면 대단히 양심적인 번역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번역자는 유전학자라는데 요사이 언론에서 세포주(Cell Line)라고 하는 것을 ‘세포선’이라고 했다. 유전학자인 저자가 기본적인 용어를 몰랐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세포주’라는 말이 일본어 내려받은 번역인지도 모르겠다.

용어 사용에서는 제목의 Popoli(people)를 ‘사람’이라 옮기고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는데 타당한 번역이라고 생각한다. 카발리-스포르차가 다루는 내용은 대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기기도 전의 인류에 해당되는 것들인지라 ‘민족’으로 옮기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ethnography를 ‘인족(人族)’이라 한 것도 눈에 띄었다. ‘민속지학’ ‘민족지학’ 등으로 하는 것이 매번 어색했는데 ‘인족’이라는 말이 쓰여도 괜찮을 듯 하다. group을 ‘모둠’이라 하고 슬기사람(호모 사피엔스) 곧선사람(호모 에렉투스) 손쓴사람(호모 하빌리스) 등의 한글 표현을 고집한 것도 칭찬해주고 싶다. (이왕 애쓰는 김에 번역자 註를 맨 뒤에 몰아넣지 말고 해당되는 페이지 말미에 넣었으면 더 편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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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주민카드는 철밥통
야!한국사회
한겨레
▲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주민증을 바꾼다고 한다. 위·변조 방지를 명분으로 플라스틱 재질로 바꾼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 대형 국책사업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위·변조 방지에다 국민편익 중심의 다양한 부가서비스 기능도 제공한단다.

새 주민증 사업의 핵심은 1998년 정권교체로 포기했던 전자주민카드를 다시 추진하는 것이다. 전자주민카드는 집적회로(IC) 칩이 내장된 스마트카드이다. 전자주민카드가 도입되면 지하철 무임승차 절차의 간소화로 경로, 장애인, 국가유공자 복지 서비스가 증진되고, 도서지역 여객운임 할인을 통한 지역주민 우대 서비스를 실질화하고, 도서대출 등 공공시설물 이용 서비스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건강보험증, 교통카드, 신용카드 등 공공-민간 서비스와도 연계되어 ‘e- 편한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행정자치부의 설명이다.

지난주 행자부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전자주민카드의 필요와 편리를 역설한 한국조폐공사 컨소시엄은 삼성에스디에스 등 대기업이 두루 참여한 업자들의 모임이다. 효용을 과장하기 위해 행자부가 진행한 연구용역의 시행자 역시 그들이다. 사업추진만을 학수고대하는 업자들에게 1억원이 넘는 연구용역비를 선뜻 건네주는 행자부의 내공이 놀랍다.

불편을 호소하는 국민이 없는데도 행자부는 지금의 주민증은 불편하고 위험한 것 투성이고, 새 주민증을 만들어야 편리하고 안전해진단다. 낯빛도 바꾸지 않고,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관료들이 대형 국책사업을 놓칠 리가 없다. 몇조원이 들어갈 사업, 신규발급과 재발급을 포함하면 해마다 200만장쯤은 다시 찍어야 하니, 끊임없이 매출을 일으키는 신통한 요술방망이를 잡은 셈이다.

10년 전 시민사회가 전자주민카드 도입을 반대했던 이유는 간단했다. 관료들과 업자의 요술방망이가 국민에게는 몽둥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카드를 확인하기 위해 별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하는데, 이는 국민의 다양한 정보를 전자적으로 통합관리하는 시스템의 구축을 의미한다. 지하철·버스를 타든, 금융거래를 하든, 등본 한통을 떼든, 국가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든지 언제나 편하게 들여다 볼 수 있게 된다. 감시와 통제의 일상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유출될 때의 위험도 치명적이다.

편리성이 강조되는 이면에는 숱한 불편함이 숨어 있다. 단 한 장의 카드로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그 카드를 잃어버리게 되면 사람 구실이 어려워진다. 이미 시행 중인 경로우대, 도서지역주민 할인, 도서대출 등을 천연덕스럽게 전자주민카드와 연계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지금의 주민증, 주민번호, 지문날인 제도 자체도 반인권적인데 전자주민카드까지 도입하려는 저들의 도발은 무섭기까지 하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관료와 업자의 유착이 풍기는 냄새가 고약한데도 어떤 신문은 똑똑한 주민증이 나온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인권 침해, 예산 낭비, 비효율 등의 비판에도 관료들이 불굴의 의지를 보이는 사안은 한둘이 아니다. 때만 되면 들고 나오는 국정원의 테러방지법이 대표적이다. 염치도 없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세상의 진보를 위해서가 아니라, 퇴보를 막기 위해 싸워야 한다. 새로운 의제와 대안을 만들기는커녕 철없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방을 치워야 하는 것처럼 관료들의 행패를 따라가기도 바쁘다. 이게 노무현 정권에서 인권운동가의 역할이다. 심히 불쾌한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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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계곡 1
차미언 허시 지음, 크리스토퍼 크럼프 그림, 김시현 옮김 / 평사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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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계곡의 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컬어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이 하늘과 땅의 뿌리이며, 이어지고 이어져 영원히 있으니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는다.” <도덕경>

계곡은 구멍을 숨기고 있으며, 모든 물이 흘러들고 흘러나간다는 점에서 만물을 낳되 영원히 낳는(마르지 않는) 대지모신의 상징이다.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 중에서…

주인공이 상속 받은 랜즈버리 홀은 인간사회와 경계를 두른 ‘곳’이다. 선택 받은 인간만이 ‘그곳’에 발을 디디고, 이해하고, 살아갈 수 있는 ‘그곳’은 알 수 없는 존재와 의미로 가득하다. 너무나 비밀스럽고, 은밀한 ‘그곳’. 깊은 비밀이 담겨 있는 ‘그곳’은 바로 생명이었다. 형형색색의 꽃과 식물들, 생명체들.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그곳’은 풍요롭고도 평화롭다. 

‘그곳’은 마치 현실을 부정하듯이 세상의 중심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우리는 ‘그곳’에 초대되고, ‘그곳’을 둘러본다. 소설은 ‘그곳’의 자연을 보고, 듣고, 먹고, 맡고, 만진다. 생명의 호흡이 원래 그러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이 소설은 환상과 미스터리로 가득하다. 모노노케 히메에 나오는 숲속의 정령 코다마로 비유될 수 있는 각종 움프들이 묘한 신비함을 준다. 이야기는 서서히 창을 열어 호기심의 동굴로 독자를 잡아당기며 편안한 생태 탐험으로 이어진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주변을 감싸는 묘한 기분은 뒷일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 준다. 결말은 우리의 현실에 맞닿아 있기에 우울하다.

그 우울함은 우리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상실감에 기인한다. 아마존의 숨결에 지구는 생명을 얻고 생명을 뿌리지만, 그러한 자연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소중한 것은 그 소중한 이름이 사라진 후에 드러나듯이, 우리의 깨달음은 언제나 후회를 동반한다. 그리고 환상이 아닌 현실 속의 우리에게 곧 절실함으로 다가올 것을 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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