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아무리 눈에 콩깍지가 씌어도 이런 사람은 만나지 마세요.’흔히들 ‘사귀어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하지만 남녀관계에서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안배경, 학벌, 재산 등 이른바 ‘조건’을 떠나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화려한 작업능력 속에 가려진 ‘나쁜 남자’‘나쁜 여자’를 어떻게 가려내야 할지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 봤다.

지금 사귀고 있는 남자가 당신에게 너무 무관심해 불만인가. 그녀가 당신의 사정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투정만 부려 짜증스러운가. 그렇다면 아래 세 사람의 기구한 연애사를 들어 보라. 그리고 애인에게 당장 전화해서 “당신만한 사람 없다.”고 사랑스럽게 속삭여 보라.

A(30·여)가 더 이상 남자를 안 만나겠다고 결심한 것은 한두번이 아니다. 그가 겪은 이성들은 하나같이 ‘나쁜 남자’들이었다.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사귄 학과 선배. 모든 사람들이 졸업하면 둘이 결혼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선배는 “미안해. 다른 여자가 생겼다.”라는 말만 남긴 채 떠나갔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다 우연히 동창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양가 상견례까지 마치고 한창 결혼준비를 하던 중 예비 시댁에서 지나친 혼수를 요구했다. 파혼, 그리고 A는 독신을 선언했다.

집에서는 A를 가만 두지 않았다. 결국 맞선을 본 사람과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결혼했다. 신혼초 행복도 잠시,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다. 이혼을 하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취직했다. 여기서 한 남자를 알게 됐고 동거까지 했다.‘조건’을 따지자면 별 볼일 없는 사람. 그래도 진실된 모습이 좋아 결혼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자 집안에서 이혼경력을 문제 삼았고 결국 남자는 떠나갔다.A는 진절머리나는 ‘잔혹 연애사’를 잊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B(26·여)도 대학 새내기 시절 만난 남자로부터 호되게 당했다. 지방 출신으로 혼자 자취하는 그를 위해 매일같이 찾아가 밥해 주고, 과외해 번 돈으로 용돈까지 대줬지만 그는 B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주먹까지 휘둘렀다.

3년 연애 끝에 굳은 마음으로 이별을 고했지만, 그는 절대로 안된다며 도서관, 강의실 앞에서 기다리며 B를 스토킹했다. 그러다 갑자기 한달이 넘게 연락이 끊겼다. 술 마시고 함께 잠자리를 한 후배가 임신해 집안에서 억지로 결혼시키게 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그는 “나야 잘 됐지만 결혼한 여자가 불쌍하다.”고 혀를 찼다.

올해 서른둘인 C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회사에 들어간 직후였다. 첫눈에 반한 C는 갖은 정성을 다해 그녀에게 대시했다. 그녀 역시 그가 싫지 않은지 말로는 관심 없다면서도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가 하면 영화를 보다 먼저 손을 잡기도 했다. 드디어 멋지게 프러포즈를 하는 날, 그녀는 “누가 당신 같은 사람 좋다고 했느냐. 혼자 오버한 것 아니냐.”는 싸늘한 대답이 돌아왔다. 알고 보니 그녀에게는 대학시절부터 사귀어 온 남자친구가 있었다.C는 “반년 넘게 좋은 시간을 같이 보냈는데 한순간에 그 여자의 놀림감이 돼버렸다. 이제 다시 여자를 만나도 또 그런 사람일까봐 두렵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지혜 나길회기자 wisepen@seoul.co.kr

[서울신문 2006-03-2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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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3-2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연애하기 쉽지 않겠어요.ㅋㅋ

마늘빵 2006-03-29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입니다. 이런 남자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라주미힌 2006-03-29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세도 뭐 건데기가 하는건데... 저도 해당 없어요 ㅎㅎㅎ

릴케 현상 2006-03-29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4,5에 해당=3=3=3
 


검은솔나리 산지에서 자라며, 가늘고 단단한 줄기가 높이 70cm 정도까지 자라난다. 7-8월에 1-4개의 꽃이 밑을 향해 핀다. 꽃의 빛깔은 검은빛이 감도는 홍자색이며, 화피가 뒤로 말린다. 비늘줄기는 약용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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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의 눈] 작품마다 담론의 영역에서 실종된 하층민의 삶 조명

 

"공선옥의 소설은 담론의 영역에서 실종된 사회하층민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들은 한번도 스스로의 입으로 자신의 상황을 발화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세상을 향해 내던질 말의 내용은 있지만, 그 말하는 방식을 찾을 수 없는 존재들이 공선옥의 소설에는 흔히 등장한다. 공선옥의 소설쓰기가 오늘날의 현실에서 대단히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 것은, 그가 제 목소리를 갖고 있지 못한 이 민중들 혹은 하위주체들의 '아가리'를 대신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의 평론집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새움, 2005)에 실린 공선옥 소설에 대한 평이다. 공선옥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그들의 고통스런 삶, 그리고 그 안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어미마음(모성)'을 이야기한다. 아니, 이명원의 말처럼 그들의 '아가리'를 대신 열어주고 있다.

등단할 때부터 그는 줄곧 가난하고 소외 받은 이들의 목을 틔워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는 공선옥의 펜을 통해 그들을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질릴 만도 하건만 공선옥은 지금껏 그 역할을 자임해 왔다.

2006년 1월 공선옥을 비롯한 소설가·시인 4명과 10명의 사진작가들이 내놓은 인권 사진집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현실문화연구)도 그런 얘기다. 이 책에서 공선옥은 <엄마, 저 오네>와 <촌아, 울지마> 등의 사진에 글을 보탰다.

공선옥은 1991년 {창작과 비평}에 중편 [씨앗불]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 이전에 그의 삶은 신산(辛酸)했다. 공선옥은 1963년 전남 곡성에서 가난한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그 시절, 공선옥은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글에 목말라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노트에 쓰기도 했고, 벽지로 발라놓은 신문이며 누에를 키우기 위해 가져온 헌 신문지를 샅샅이 읽기도 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너무 슬프고 힘든 일이 많으니까 어떤 통풍구가 심리적으로 필요했거든요. 살고 싶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글이었던 것 같아요."

1983년 전남대학교 국문학과에 들어간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게다. 그러나 아버지가 키우던 소들이 병들어 죽고 가계가 몰락하자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공선옥은 1학년 1학기에 대학을 중퇴하고, 언니를 따라 서울로 올라가 버스 안내양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버스 안내양으로 구로공단의 공장노동자로 전전하며 생계를 위해 그 자신의 말에 따르면 "막장과도 같은 현실에서" 살았다. 그 사이 결혼도 했지만 사는 것은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글 쓰는 것은 하나의 위안이었고, 우연찮게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무렵 쓴 글로 등단하게 됐다. 공선옥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나 자신이 소설가로 살아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80년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나에게 광주의 비극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가계의 몰락 앞에서 다니던 대학을 1학년 1학기에 중퇴하고, 버스 안내양으로 시작, 구로공단의 공장노동자로 생계를 영위해야 했던 막장과도 같은 현실에서, 소설쓰기란 내게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광주항쟁 당시 시민군이었던 남편의 고통을 뼈아프게 지켜보면서, 광주 이후에도 세상이 아무런 문제없이 너무나 평화롭게 흘러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어느 날, 나는 그것이 소설인지도 모르고, 지나온 내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노트에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다 쓰고 보니, 사람들이 그것을 소설이라고 말해주었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소설가로 등단하게 되었던 것이다."

1991년의 [씨앗불] 이후 공선옥은 글로 먹고살겠다고 작정하고, 끊임없이 작품을 내놓았다. 그렇게 내놓은 작품이 장편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1993)과 소설집 {피어라 수선화}(1994), 장편 {시절들}(1996), 소설집 {내 생의 알리바이}(1998),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2000), 장편 {수수밭으로 오세요}(2001), 소설집 {멋진 한 세상}(2002), 장편 {붉은 포대기}(2003), 산문집 {공선옥, 마흔에 길을 나서다}(2003), 소설집 {유랑가족}(2005), 산문집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2005) 등이다.

이런 작품을 내놓는 사이 공선옥은 1995년에 신동엽 창작기금을 받았고, 2004년에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2005년에는 올해의 예술상을 받았다. 2001년에는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 후보로 추천됐으나 공선옥은 이 상을 거부했다. 그는 후보자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글을 쓰게 하는 {조선일보}의 행태를 "상금 5,000만원을 미끼로 작가들을 줄 세우기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기자한테 그랬다. 나 솔직히 돈은 탐난다고. (내가 거부한다고 하면) 비웃을지 몰라도 돈 때문에 떨어지는 감 받아먹으려고 한 줄로 나란히 서서 입 떡 벌리고 있긴 싫다. 작가가 작품으로 말했으면 됐지 구구절절이 뭘 더 말하라는 건가."

작가적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는 얘기다. 공선옥이 생각하는 작가는 이런 사람이다.

"작가는 '안다'는 사람들 아닌가. 지금 우리 사회는 질곡에 빠져 있다. 질곡이란 운신이 힘들다는 거다. 그렇게 단칸방에 사는 사람들의 숨통을 조금이라도 터주는 게 작가 역할 아닐까."

* 월간 인물과 사상 2006년 3월호에 발표된 것으로 웹진 <인물과 사상>(www.inmul.co.kr)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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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3-28 1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그 잡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훌륭한 작가입니다만, 독자들에게 좀 아쉽습니다. 공선옥이 조선일보 거부했을 때 안티조선 5천명이라도 한권씩 책을 사줬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런 정도의 보상도 없으면 누가 감히 조선일보를 거부하겠습니까.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성석제가 동인문학상 타니까 뭐라고 하고, 그런 무책임한 비난이 참 싫더라구요...

라주미힌 2006-03-28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일이 있었군용... 책 잘들 안 읽잖아욤.. ㅎㅎㅎ
게다가
국민의 반은 안티조선이지만, 또 반은 좋아하는게 현실이니 ㅎㅎㅎ

포월 2006-03-29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삼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나 더 붙이면 공선옥은 '아가리'를 열어주지만 그 아가리를 표나게 연구하는 무슨 식민론자들은 공선옥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는 거죠. 아가리에는 관심이 있지만 아가리 속에 뭐가 있는지는 별 관심이 없는거겠죠.
 

 

사진 제공 농림부

평생 13만 kg이 넘는 우유를 짠 ‘슈퍼 젖소’가 국내에서 처음 나왔다.

농림부가 전국 젖소의 우유 생산 능력을 검정한 결과 경기 양주시 은현면 연산목장에서 1993년부터 키운 젖소(사진)가 지난해 말까지 13만8978kg의 우유를 생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기준으로 전국 초등학교 1학년생 전원인 62만6000명에게 200mL짜리 우유를 1팩씩 주고도 6만9000개가 남는 양.

농림부는 “이 젖소가 선천적으로 우유를 많이 생산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데다 농가에서 영양이 풍부한 사료를 제때 먹였기 때문에 생산량이 많았다”고 밝혔다.
종전 최고 기록은 2004년 말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농도원목장의 젖소(1991년 출생)가 세운 11만9206kg이었다.

국내 젖소 한 마리의 지난해 우유 생산량은 평균 9014kg. 국제가축기록위원회(ICAR) 45개 회원국 중 이스라엘(1만575kg), 미국(9632kg), 일본(9178kg)에 이어 4번째로 많다

 

 

 

거의 공장 수준.. ㅡ..ㅡ; 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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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500년이 지나도 그 화려함이 가시지 않은 책들이 있다.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진귀한 보물, 수서본은 시간마저도 부정하듯 이 책 곳곳에서 위용을 과시한다. 마치 옛 소유주의 분신인 것처럼 화려한 색채와 문양이 책 전체를 휘감는다.


 


화려할수록 그 가치를 인정 받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보아 왔고, 그 화려함 때문에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값비싼 보석, 흉내낼 수 없는 장인의 유려한 솜씨, 무엇보다도 그것을 제작하는데 들인 공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또한 커지기 마련이다. 욕망하는 자, 그의 이름은 부와 권력이니, 그것 자체가 주는 기쁨보다 그것을 소유함으로서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부와 권력을 노출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 책인 것이다. 수많은 인간들 틈 속에서 자신의 존재성에 특별함을 부여하기 위하여, 물질의 희귀성에 의지하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의 역사이면서, 그들이 남긴 역사를 보여준다.


 


수서본은 그 제작과정과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신구약성서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 200마리를 잡아야 하고, 채식사, 필경사들의 작업, 온갖 장식을 하는 데에 그 비용은 장원의 수입에 맞먹는다 하니, 집 팔아도 10권도 못 사는 사치품 중의 사치품이었다. 책은 정신적인 재화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재화였다 (자크 르 고프). 게다가 당시의 뛰어난 화가들이 그림을 그렸기에 책이면서도 예술품에 가까웠다.


 


무엇이 책에 그러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만들게 했을까. 이 책에 따르면 기독교의 영향으로 성서라는 한 권의 책에 의한 신의 계시와 믿음의 세계 속에 있었고, 고대 문화에 대한 경외감이 책의 경외감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수서본에는 바로 중세의 망탈리테가 스며있고,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의 수 많은 유물이 그 시대를 이야기 하듯이 수서본은 그 시대의 욕망을 말한다.


 


책 자체의 아름다움, 책 속의 권위에 반해버린 사람들, 중세의 열정의 독특함과 황홀함을 맛보기에 괜찮은 책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오늘날에 있어서 정보의 접근성이 낮아지고, 범람하는 정보, 인터넷 같은 매체의 반격에 추락한 책의 지위와 가치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그의 빛 깊은 곳에서 나는 보았노라. 우주에 흩어진 모든 것이 사랑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진 것을 <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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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9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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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1 0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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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0 1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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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0 1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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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31 13: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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