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인터넷에 아기보다 작은 말 사진(오른쪽 위에서 두 번째)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 속에서 망아지는 4개월 된 아기보다 작아 보인다.

실제로 이렇게 작은 종의 말이 존재한다. 가장 작은 것으로 알려진 말의 이름은 “작은 호박”.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목장에서 길렀다는 이 말의 키는 35.6cm 이고 무게는 9kg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실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는 최소형 말의 이름은 “검은 미녀”. 노스캐롤라이나 키트랠의 도날드 버리슨이 주인이며, 1996년 태어난 말의 키는 47cm이고 무게는 18.8 kg이다.

한편 가장 키가 큰 말 ‘레이다’는 키는 202cm이고 무게는 1090kg이다. 미국 아이오와에서 1998년에 태어난 이 말은 거구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곡물과 건초를 26kg, 그리고 75리터의 물을 마신다. 레이다는 2005년 기네스북에 올랐던 골리앗보다 6cm이상 크다.

역사상 가장 큰 것으로 기록된 말은 ‘삼손’이다. 1850년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삼손은 215cm 키에 1524kg의 체중이었다.

사진 오른쪽 가장 아래는 1930년 최장신 말로 통하던 ‘브루클린 슈프림’으로 키는 195cm 무게는 1450kg에 육박한다.

(사진 : 사진 왼쪽 가장 위와 두 번째가 최소형 말 검은 미녀, 오른쪽 가장 위가 현존하는 최장신 말 레이더. 그 아래가 인터넷 화제로 떠오른 아기와 소형말 사진.)

김건 기자 (저작권자 팝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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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10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말은... 북두신권의 권왕이 타고 다니던..
 
 전출처 : emhy311 > 한줄, 한폭의 예술적 감흥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 그  일본의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며 관심은  어쩔 수  없는 일인데 , 일본이 보여주는   갖가지 망언이나  정치적  행동들은   몹시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어서  정을  주고 가까워져 질 기미만 보이면  어느 결에 멀찌감치 도망 쳐버리는  형상이니  안타까운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에 들었다 안 들었다하는,  정이 갈 듯 말 듯한  나라 일본이지만   한때 자포 니즘의 유행으로까지 불릴 정도로   19세기에 멀리 유럽까지  번져나간  도자기의  포장지로 , 본체인 도자기보다 더 유명하여  인상파 화가인  마네나  반 고흐등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바 있는  우키요에에 관한  탐구와 감상은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 되고도 남는 일인데  마침 그런 욕구를 충족 해줄 만한  좋은 책이  선보였다.

5,7,5 조의 17자의 음수율로 간결하게 표현하는 짧은 정형시인  일본 전통의  하이쿠와 함께  에도 시절에 꽃 피웠던 유명한 판화 형식의 우키요에의 그림들을 한데 모아 감상 해 볼만한 기회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 , 고흐가 사랑했고 모네가 꿈꾸었던 일본 미술 우키요에와 서정미가 그윽한  일본 전통의 하이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수 있는 신선한 기획의 미술 교양서가 있어서 반가운  책으로  여겨진다.

하이쿠와 에도 미술인 우키요에 의 특별한 만남을  절묘하게  연출해낸  저자의  뛰어난 안목으로 제대로 된 도판 하나 얻기 힘들었을 텐데 시원스런 화면으로 깨끗하고 선명한 색채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되어, 함축미 있게 표현되어 있어서  마치 칼날같이 시린 맛이 느껴지는 하이쿠와의  절묘한 매치가  책을 보는 내내  감탄의 탄사를 부르도록 아름답게 엮어 냈다

하이쿠에 대한 의미와  유래 등을  전문가의 자세한 해설로 곁들인 것과 아울러  에도시대의 시대적 배경과 미술 전반에 대한 전문가의 도움말이  감상에 많은 도움을  주는 글로 실려있으며 , 전체적으로 봄여름 가을겨울의  4계절로 나뉘어서 약 100여수의 서정적인 묘미가 다분한  작품들의 시와 걸 맞는 우키요에의 잘 어울려진  모습으로 이루어진 올 칼라로 인쇄된  소장하고 싶게끔 만드는 정성이 가득 담겨져있는  멋지게 만들어 진 책이다.

하이쿠의 3 대 기인으로 알려진 ,바쇼 ,부손, 잇사의 뛰어난  하이쿠가 특히 눈에 띄는 작품들이며 바쇼의작품 중에서,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드는  젖은 물소리

 

라는  시구에서 연못에 첨벙 뛰어드는 개구리 모습의 일차적 감상이라면  좀더나아가  작가 바쇼의 내면적 감상을 들여다보면 ,개구리가 만드는 파문을 보며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로 감상의폭을 넓히는데 , 우리 인간사에도 개구리처럼 무심코 한 행동이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관계의 사람에게도 파문을 던지게 된다는 큰 뜻이 숨어 있는 것처럼 하이쿠는  결코 짧다고  얕볼 수 없는 깊은 의미들이  깃들어 있는 점이 예술적  감흥을  돋게한다.

 


그러기에  "한 줄도 너무 길다는 " 말로  류시화 시인이 소개했던 하이쿠의  함축미는 말할 필요도 없지만  한 수 한 수  읽어 볼 때마다 느껴지는 감흥이 음미하면 음미 할 수 록 지적 세계와 사고의 세계가 한층 풍요로워짐과 아울러, 그래도 미운 듯 정이 가는 일본인의 심층적인 정서를 조금이나마 알게되고 점차 우호적인 마음이 들게 하는 효과도 기대해 볼만하다.


우키요에도 , 봄 편  마지막에 소개된 가츠시카 후쿠사이의 작품인  후카구 36경중 가나가와  앞 바다의 큰 파도라는  그림에서 보여지는 실감나는 파도의 표현은 ,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보면 볼수록 일본인이 자존심처럼 여기는  후지산을 뒤로한  집 체 만한 파도의 표현이 기억에 오래 남을만한 그림으로 꼽혀지는데 그래서 남미 어느 음악가의 앨범  자켓 그림으로 선택 될 정도가 될만하다는 생각이다.


유독 상업성이 강한  일본인들은  그 특기를 십분 살려 옛 에도 시대의 작품들의 우키요에의 특성을  유지 발전 시켜서 급기야 에니메이션의 왕국으로 자처하게끔  발전시키는 눈부신 결정을  보여주는 데 반하여 , 우리에게도 비슷한  민화라는 좋은 발전 동기가 됨직한 요소가 있는데도 아직 까지는  아쉬움이 있는 면이 보이는 분야로 생각되게 하는 계기를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갖게 되어서 이제는 우리도   아름다운 옛 시조의  전통 계승과함께  더욱  활발한 민화의 발전 추구에 많은 관심을 쏟아야 할 때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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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그녀에게 전화왔다...

친절함, 상냥함이 늘 베어있는 그녀.

봄볕같은 싱그러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KTF 고객 서비스... 강가영....    만조쿠데쓰.

 

친절은 사람을 녹인다... 사르르르르....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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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걸어서 바꿔달라고 하세요. ㅋㅋ

라주미힌 2006-04-10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은 스치는 향과 같을 때 더욱 깊게 패이는 거에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레요 ㅎㅎㅎㅎ

stella.K 2006-04-10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라주미힌님 그런 게 용기가 없어서야...올 여름엔 손에 땀이나도 좋을 애인하나 만드셔야죠.^^
 

 

[마이데일리 = 박은정 기자] 완연한 봄을 맞아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더욱 짧아지고 있다. 미니스커트의 인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예년에 비해 확연히 다른 점은 총 길이 25cm 이하의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열풍 거세다는 점.

온라인 쇼핑몰 동대문닷컴(대표 장호)에서는 과감한섹시 스타일의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가 최근 하루 평균 약 5,000장씩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동대문닷컴이 4월 미니스커트와 핫팬츠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발랄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동시에 연출할 수 있는 패션 아이템 미니스커트와 핫팬츠의 판매량이 전월 대비 2배 이상 급증 했으며, 이 중 총 길이가 25cm이하인 2부 3부의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판매량이 80% 이상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는 낮 평균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라가는 등 본격적인 봄 날씨가 이어지면서 여성들의 노출심리와 초미니스커트, 핫팬츠를 한 여름까지 활용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것.

특히 지난 달부터 불어 닥친 이효리 등 섹시 스타들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젊은 여성들의 클럽룩 유행이 본격화됐고, 레깅스 반양말 부츠로 부담스러운 다리를 커버할 수 있는 상품도 다양해진 점이 어느 해보다 초미니, 핫팬츠가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다.

스포티한 이효리 스타일의 초미니 아웃포켓 스커트는 패션소품 코디에 따라 섹시함, 발랄함 등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어 10대~20대까지 선호도가 높다. 또 트레닝복 스타일의 편안한 초미니스커트와 핫팬츠, 미니스커트의 여왕 청치마도 초미니가 대세다.


동대문닷컴 의류카테고리매니저 장기진 팀장은 "새봄이 예년보다 1~2주일 빨리 찾아오면서 노출패션의 대명사인 미니스커트의 유행도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면서 “스타일리쉬한 패션 아이템 초미니와 핫팬츠 열풍은 한여름까지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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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1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경제가 어렵군요.

마늘빵 2006-04-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진을 기대하고 왔는데 없군요. 아쉬워라.

라주미힌 2006-04-1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네이버 친구가 있잖아요. 검색하세요~! ㅎㅎㅎ

마늘빵 2006-04-10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이매지 2006-04-10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원갈 때마다 제 옆에 있는 놈은 입이 귀에 걸립디다.
터져나오는 웃음을 차마 참지 못하고 히죽히죽.

stella.K 2006-04-1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에 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여자애들 치마 밑으로 팬티 보이는 그런 게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어요. 나름대로 앙징맞고 귀여우라고 엄마들이 그런 옷을 입혔을지 모르겠는데 전 차마 용기가 안 나더군요. 울 엄마도 언감생심이었구요. 아마도 그걸 다시 볼 날이 조만간...=3=3

마태우스 2006-04-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안은 보수적이라 치마가 길답니다^^
 

조선일보의 논객 이규태와 진중권 효과
[쟁점] 진중권식 글쓰기 '파시즘 분쇄효과' Vs '문명과 문화 퇴행' 현상

깊은생각/무위

* 무위의 "이규태와 진중권: 장인정신과 멧돼지정신의 충돌"이란 기사에 대해 대자보 독자이신 '깊은생각'님이 이규태식 글쓰기의 한계와 진중권식 글쓰기의 의의를 제기하며 반론했고, 이에 무위의 재반론 등이 이어졌습니다. 본문에 대한 독자여러분들의 다양한 평가와 토론을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조선일보식 글쓰기 이규태와 진중권 효과 / 깊은생각

이규태씨가 거의 20여년 '이규태 코너'를 연재한 신문이 조선일보라는 점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도 하나의 주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사실을 '주장'에 맞출때 문제인데, 제가 보건데 고 이규태씨도, '지하 서가'를 마련하고 엄청난 자료를 읽으면서 '행복한 글쓰기'를 한 '대단한 분'이라는, 고 이규태님의 '권위'에 대한 또 다른 무위님의 '논증'에도 불구하고, 그의 짧은 글 조차 조선일보식이라는 것이기에 생명이 길게 이어졌다고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분 스스로 조선일보의 편집위원이기도 했지만, 요컨데 요즘 유모 논설위원처럼 현 정부의 말만 요란한 '양극화 극복' 방책이 무슨 좌파정책인양 '오렌지색 정책'으로 색칠하는 그럼 사람아니었나 하는 것입니다. 안그랬다면 조선일보에 계속 글을 쓸 수 없지 않았겠습니까?
 
제가 보는 이규태 코너의 문제점은 바로, '넓고 얕게 자료수집에 바탕한 글'이면서 조선일보식의 사고방식에 '딱 들어맞는' 글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건 이를테면 '한국사람은 엽전이다'라는 식의 사람들속에 마치 전통상식처럼 떠내려오는 것들을 건져올리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아랍인들은 일반적으로 테러기질이 있다'이런 테제를 입증하는 글을 쓰는 것입니다.
 
거꾸로 말해서, '앵글로 색슨과 유태인은 날때부터 전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 과연 '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역사적 사실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드는게 사실입니다. 탱크와 전투기와 소총 등을 배에 잔뜩 싣고와서 나라의 시작을 '전쟁'으로 치루어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 아니었나요? 그때 그 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들이었고? 마찬가지로 '원주민의 땅' - 원래 땅주인을 백인들은 인디언이라고 하는데 적절한 이름은 아니죠 - 을 이런 저런 수단으로 - 때로는 돈과 물건 근본적으로는 기병대를 동원한 점령 - 의 방식으로 차지한 사람들이 북미에 이주한 '백인'들 아니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그 사람들은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것처럼 쉬운 것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특정 지역과 사람들에 대한 '딱지붙이기'가 성행하는 것 아닙니까? 가령 히틀러가 게르만의 우월성을 내세워 '유태인과 슬라브인 박멸, 그들의 땅에 게르만 거주지 건설'을 말했고, 남의 나라 얘기할 것 도 없이 훈요십조의 '왕건'은 '호남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말해 놓지 않았습니까? 요컨대 특정한 목적에 의해 '조작된' 이데올로기를 무슨'원래 그런' 진리처럼 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최소한 글을 쓸 때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 또는 남방불교식으로 말해, '선법'을 키우고 증강하는 방향으로 세워나가야 하죠!
 
남을 해치려는 마음, 적대감, 편견, 비하, 우월감의 과시 이런 것들을 드러 내는 글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테러리스트' 기질은 아랍사람들만 있는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내재된 '원래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교육'을 하는 까닭은 그와같은 '내재된 속성'을 바꾸거나 지우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요즘 이스라엘 대사가 연세대 강연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말해서 물의를 빚고 있다죠. 그 이스라엘 사람들, '유태인들 내부의 민주주의'는 정말 철저히 잘 제도화 시켜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들에 대하여 '비민주 테러리스트'라고 말하는 것 참 쉽겠죠.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히틀러'가 웃을 것입니다. 너희들, 내 욕하더니 결국 '나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지 않니. 봐라, 그게 원래 그런것 아니니. 이런 생각을 '진리'로 품고, 다른 가치 지향들을 '도덕 교과서속의 헛소리' 쯤으로 여기는 '세계관'이 다위니즘이라고 저는 이해합니다. 바로 이 지점! 다위니즘적 관점에 서면 '윤리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 쓸데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진중권의 글쓰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두가지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다름아닌 잘못 조형된 이데올로기의 '해체' - 이는 시민적 상식의 재건축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죠. 둘째는 '시민적 윤리성'의 새로운 확립. 이런 지점에서 이규태와 진중권을 '장인정신과 멧돼지 정신'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규태'의 장인정신이 20여년 이상 '아무탈'없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만큼이나, '진중권'의 멧돼지 정신이 왜 '필요했는지'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죠. 이규태의 '장인정신'은 그의 시대 - 1983년부터라니까 정확히 '신군부의 독재'시대 - 와 아무런 '불화'도 없었던게 틀림없습니다. 심지어 '민주화 시대'에도 그랬겠죠. 이 지점 바로 보아야죠. 아니, 더 알아 보아야 하겠지만, 어쩌면 '민주화 시대'에 아주 약간의 '불화'를 겪지 않았을까요.
 
요컨대 이규태님의 글 자체는 글자 그대로 '민속학지'만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이데올로기'에 딱 맞는 그런 것이었다면 지나친 얘기인가요? 이 때문에 '학계'에서 그의 글을 그냥 '그러려니'하고 '연구대상'으로 여기지 않은 것 아닐까요?
 
무위님. 그 '많이 읽은 책들' 인용해서 긴 글 써 보아야 읽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요컨대 진중권이 '무엇을 목표로 왜 그런' 글을 쓰는지 알아야 '멧돼지 정신'이라고 딱지 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처럼, 이규태씨가 왜 그런 글을 그렇게 오래도록 '시대와의 불화'따위 없이 '조선일보'에 세상을 떠나기 사흘전까지 쓸 수 있었는지 알아야 그것에 대하여 '장인정신'이라고 '높이 평가 할 수 만은'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위님의 이번 글은 결국 '나도 진중권 당신 만큼 많이 알아' '당신의 이규태 비판은 멧돼지 처럼 달려들어 물어 뜯는 것 뿐이네' '이규태님은 그런 당신의 돌격에 닿지 않는 장인정신 속에 고고하시다네' 이걸로 끝납니다.
 
무위님의 글은 '경제를 심리로 환원하는 최용식씨과 참여정부'에 대한 인식비판에서 아주 빛났습니다. 이번 글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진중권 현상은 문명과 문화의 퇴행 / 무위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또 달라야 합니다. 제가 오랜 짐을 덜어냈다고 표현했듯이 진중권이 이규태를 공격한 글을 읽자 마자 바로 가지게 되었던 내 마음의 짐이 이제야 움직임을 보이게 된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이규태님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큰 이유가 되었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문가를 비방하고 마음대로 말하면서 폭언을 일삼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진중권 현상>이라 명명하고 싶습니다. 일종의 문명과 문화의 퇴행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남의 눈에 든 티는 보면서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잘 못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이번 글을 다 퇴고 하고 나면 더 이상 진중권에 대해서 쓰고 싶은 생각이 안 생길 지도 모릅니다.
 
몰라, <진중권과 파시즘>이나 <욕설의 경제학, 욕설의 미학>이란 글이 완성되면 진중권이란 이름이 몇 번 정도 더 등장하게 될지도 모릅니다만 하여간 <진중권 현상>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그 주역인 진중권을 거론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규태의 글쓰기는 정치적인 글쓰기가 아닙니다. 20년이나 넘게 비정치적인 글쓰기를 해 왔다는 것은 어쩌면 기회주의적인 속성이라고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보고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도 일종의 파시즘입니다. 정치적인 것은 십년을 못가지만 문화적인 것은 100 년을 넘어 영원히 갑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규태의 가치가 새록새록 새싹 돋듯이 돋아서 큰 나무로 자라날 것은 확실합니다.
 
이규태의 글 쓰기는 아래에 제가 가지고 온 딱 이 수준입니다. 검색창에 '개고기'라고 쳐 보면 나옵니다. 자료와 방증에 치밀하고 가급적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선동식의 글쓰기보다 이런 글의 가치가 훨씬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규태가 세월이 지나도 살아 남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말미에 그냥 이렇게 툭 던져놓고 황급히 끝맺고 있음은 아마 할당된 원고지 제한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에 브리지트 바로도가 한국인이 개고기를 먹는 풍속을 보고 뭐라고 하는 것은 문화 제국주의의 횡포다, 또는 한국 사람들의 개고기 먹는 풍속은 야만적이다. 이런 표현이 어디에도 안나옵니다, 이건 진중권이 폭력으로 인종주의 망언 운운했던 그 글 또한 이런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
 
이규태 [바르도와 개고기] 조선일보 2001년 12월5일 ===== 개고기의 유래
개는 인간이 사육한 최초의 가축으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유물에서 개 뼈가 출토되고 있다. 본초강목에 나오는 6畜은, 소, 말, 양, 돼지, 개, 닭 6가지를 나타내며 이것은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고, 우리 나라 에서도 개는 6축의 하나로 선사시대부터 가축으로 길러 고기를 취하였다. 고구려시대 에는 매적이라는 불고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하여 육식을 멀리 하였으나 몽골 침략의 영향으로 다시 육식이 성하였다. 조선조에 이르러 개고기를 먹은 공자의 영향으로 선비들도 개고기를 마다하지 않게 되어 개고기 식용에 대한 기록이 매우 많다.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개고기를 먹었고, 어느 푸줏간에서나 개고기를 팔고있었다. 현재 보신탕 집에서 팔고있는 메뉴는 보신탕, 수육, 전골, 무침, 두루치기 정도이다. 다른 음식은 거의 없어졌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한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개고기라한다. 북한에서는 개고기를 대중적인 음식으로 장려하고 있다고 한다.
 
왜 하필이면 복날에 개고기는 다른 고기들과 달라 기후 절기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프랑스에서도 1692년부터 3년 여간 지속된 이상기온 때 수많은 이들이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의 파리 푸줏간에는 개고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이규태[바르도와 개고기] 조선일보 2001년 12월5일 끝
 
저는 개고기를 입에도 대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이 불교를 믿는 관계로 개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개고기를 매우 즐기는 데 몇 번이고 개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유혹했고 따라가서 침까지 꼴깍 넘어 왔지만 먹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효자라거나 개고기 먹는 것을 야만적인 풍속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그저 일생에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서 개고기 하나 정도는 안먹고 살아도 큰 손해나 억울함이 아니고 어머니도 싫어하는데 뭐하려고 굳이.... 정도의 생각이 전부 입니다. (참고로 전 거의 모든 음식에서 가리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잘 먹고 또 대식가입니다) 단 개를 잡을 때 맛을 낸다는 이유로 패는 풍속은 우리 인간의 잔인성을 표출한다는 측면에서 반대합니다만.<=== 이 내용은 진보누리에 쓴 적이 있습니다. 요즘은 전기 쑈크로 죽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나도 진중권 당신 만큼 많이 알아'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현 상태로는 절 모독하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저 말고도 그런 말을 들으면 화가 날 사람이 국내에도 매우 많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해 온 목적이 고작 저 수준이 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계속 발전하기에 10년 후 20년 후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지금은 아닙니다. 전 인간의 지능은 20대 중반에 가장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폐활량이 높아서 산소가 뇌게 가장 많이 공급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감각이 종합적으로 반영되는 영화에서 세계 명작 영화는 대개 20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멋대로 살아라'라는 영화도 그렇다고 하더군요.
 
진중권이 극우 멘탈리티를 연구하고 파시즘을 연구했다고 하는데 욕하면서 닮는다는 말대로 진중권의 과거 행적은 파시스트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파시즘의 기본 속성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파시즘의 근본 속성과 핵심은 '분리와 차별'에 있습니다. 어떤 집단을 분리시켜 우월과 열등, 선악으로 분리를 시킨 후 차별이라는 폭력을 행하지요. ( 물론 이건 어느 책에서도 보지 않은 순수한 제 생각이니 동의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만 ) 나라마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히지만 거기서 분리와 차별을 빼놓으면 파시즘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이 이야기는 책에서 해야 하는데 님이 진지하게 나오시길래 미리 밝히는 겁니다 )
 
분리한 집단에 폭력을 가하기 위해서 이름(딱지라고 하나요)이나 이유를 갖다 부치지요.
 
진중권이 그간 해 온 행적을 보시면 딴나라빠 열우빠 민노당 황빠 황까 망언 기타 온갖 명명을 해 왔지요. 그러면서 온갖 언어 폭력을 가하지요. 그런 폭력을 행하는 방식도 논리와 이유가 아닙니다. 그저 그건 극우고 파시스트고 망언이고 정신병원에 가야 할 사람이고 ..... 네오파시즘이고 구술문화고......솔직히 너무나 한심하지 않습니까?
 
제 글에는 특별한 정치적인 목적이 없습니다. 전 독자보다는 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서 글을 씁니다. 물론 한 명이라도 제 글이 더 읽혀져서 우리 사회가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간절합니다.
 
앞으로 2-3년 후면 한국의 모든 종이 신문의 총 매출액이 100억 남짓 해 질 것으로 예상한답니다. 과거 수년 전만 해도 메이저 신문 하나의 매출액이 1000억을 넘었다 하더군요. 안티조선 운동 때문이 아닙니다. 인터넷 포탈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때문입니다. 이제 종이 신문에서 다른 미디어를 견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약자를 괴롭히는 것은 '잔인함'이지 건전한 시민 운동이라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은 아직은 강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제 정말 순수한 사람들만 소수로 남고 정치꾼들은 전부 빠져 나갔으면 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편집인들 중 가장 비정치적이었던 이규태까지 어떤 정치적인 목적으로 공격한 것은 야비한 일입니다.
 
상당한 문필력이군요. 님이 진지하게 물음 주셔서 저도 최대한 진지하게 답변해 드렸음을 밝힙니다. 건필하십시오.
 
진중권, 한국적 파시즘 깨기에 여전히 유효 / 깊은생각
 
논쟁은 필요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님의 글 여러곳에서 잘 읽어서 바탕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잘 압니다. 특히 경제를 '경세제민'으로 해석하시는 것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정책을 구사하는 분들이 항상적으로 명심해야 할 진리이죠.
 
그리고, 자기 주장의 '과잉현상' 그거 공감합니다. 이번 '황우석 사태'속에서 그것은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됩니다. 그리하여 '방송' 안되면 '자살'하겠다는 피디가 나타날 지경에 이르러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아마추어리즘'과 결합해 있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는 프로 '지식인 전문가'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습니다. 요컨대 '뭐 좀 안다는 분들'이 하는 행태에 더 이상 못참겠다는 것이죠! 가령 황우석에 대하여, 경기고와 서울고를 거친 '성골' 주류 엘리트는 아니지만, '비주류' 수의학을 전공하고 아주 부지런히 노력하여 스스로 '기술'을 확립한 인물로 칭송하죠. 그 반대편에는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면서 '학력과 학벌' 풍토에 기대어 '전문가의 권위'를 내세우는 전문적 지식권력에 대한 무언의 항거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례로서 서울대 '조사위'를 '조작위'로 폄하하는 것도 있습니다. 또 서울대 본관정문으로 '난입'을 시도한 그 코란도 찦차의 사진도 있죠! 이런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분들이 '인터넷'으로 정보를 공유하고 또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면서 하나의 흩어지지 않는 '유기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과연! 님 말씀하신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 사례가 된다고 봅니다. 민주화와 인터넷 언론의 엄청나게 빠른 '정보생산 기능'과 '정보공유 기능'이 결합한 결과이겠죠! 그런데도 한국의 지식인 지도층은 여기에 대하여 여전히 '계몽'의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마추어리즘과 '사실관계'를 무시하는 한국적 언론풍토가 맞물린 극단적 사례가 '두번'인가 방송하고 사라진 케이비에스의 '시사중심'일 것입니다. 그 프로그램의 피디는 '맹목적 팩트주의'라는 말로, '음모설'을 공영방송 프로그램에 끌어 들어는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 만약 님이 진중권 글의 '이데올로기 효과'로서 '아마추어리즘의 과잉 자기주장'을 조장하면서 '안티문화 확산'에 큰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서 그런 글을 쓰시는 것이라면, 진중권의 글을 더 읽어 보아야 할 것이라고 보입니다.
 
오히려 진중권의 이번 글은 한국 사람들의 '편견'-맹목적 팩트주의 보다 강한것에 대한 숭상에서 일방적 사실의 조립으로 만들어진 편견-을 벗겨내는 글 아닐까요? 그리고 진중권은 일관되게 독일의 '파시즘 미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에 기대어 '한국적 파시즘' 문화에 대한 분석적 비평적 해체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 '긍정적 효과' 또한 상당한 것입니다. 반면 이규태님의 '무슬림'에 대한 글은 한국인의 '팩트를 무시한 편견'을 늘리는데 기여한 글 아닙니까?
 
할리우드 영화건 어디건 무슬림은 거의 대부분 '호전적'으로 묘사되면서 '지하드'를 칭송하는 '테러기질의 사람들'처럼 이야기되는데, 이런 것은 '반대쪽의 정보들'도 충분히 제공되는 가운데 형성된 '견해'가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죠. 말하자면 '맹목적 팩트주의'를 아예 저버린 한국 언론 자체의 '언론 플레이' 습성에서 조형된 것이라는 생각인데, 이 속에서 형성된 한국 보통사람들의 '상식'이 지금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으로 반격하는 것이라면 지나칠까요?
 
이런 현상은 한국의 '지식인 지도층'이 잘못 역할한 때문이라 봅니다. 제 견지에서, '진중권'은 안티조선 운동에서 시작하여 강준만 교수와 갈라지면서, '시민적 상식'에 주로 독일식의 파시즘 부활을 경계하는 '정치적 진보성'을 결합하려 나름대로 애써 왔습니다. 이 지점에서 주류 지식권력과 전혀 다른 작업을 수행했고, 강준만 교수도 마찬가지죠. 요즘은 님 말씀대로 그런 제 기능 못하는 주류를 향한 '안티'가 부작용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나가있다고 여기며 이 지점에서 '아마추어리즘의 과잉주장'에 대한 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과도한 '안티'의 시대는 이제 접을 때가 되긴 했지만, 어쨋든, 고 '이규태님'의 장인정신이 그 날짜의 어떤 기사와 결합되면 보통사람의 마음에 '편견'을 새겨내는 '편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섬진강'의 시인이 있습니다. 이분의 깨끗함이 '조선일보'의 '편집기술'과 만날때 어떤 효과를 내 왔는지? 가령 '우리안의 파시즘' 을 꺼내든 임지현씨가 '체게바라 전기'를 조선일보 문화면을 온통 차지해가면서 글들 썼을때 어떤 효과를 내 왔는지? 바로 이런 것들을 '해체'하는 일에 뛰어든 분들이 안티조선 했던 분들이었고, 그 중에 진중권씨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여전히 '황우석 사태'때 비추어진 한국 언론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끌 국민을 만들기 보다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과잉담론'이 펼쳐질 조건을 만드는데 기여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팩트'와 '주장' 양면에서의 거대한 실패사례였다는 것이며, 이 두가지를 저는 '브릭'과 '과갤'의 젊은 과학자들의 글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아직' 진중권의 작업이 의미가 있는 것이며, 이규태님의 '장인정신'이 옳게 평가 받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 지점에서, 님의 글은 너무 빨랐다고 생각하며, 진중권의 작업 전체에 대한 '조망'이 미흡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규태씨의 엄청난 글을 읽는 것 만큼, 진중권의 다른 글도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님의 글이 진중권에게 전하는 메세지는 이제 좀더 '진지모드'로 전환하되, '안티적'이지 않은 글을 쓰는게 낫다 정도로 의미있게 정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나 진중권보다 더 잘 알아'라고 쓴 것에 대하여 '과도한 행간읽기'로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 무위

언론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군요. 무슬림에 대한 님의 생각도 맞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전 미국인들 보다는 무슬림을 훨씬 좋아합니다. 하지만 무슬림의 율법보다는 그들이 경멸하는 American Way 가 있는 나라에서 제 소중한 딸을 키우고 싶은 것은 사실입니다. 중1인 제 딸이 나이 18세 이상이 되어서도 야한 비디오 하나 못보는 나라에서 키우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네델란드의 이민 정책이 일면 수긍이 갑니다. 생각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제 딸이 살게 하고 싶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남을 이지매하는 나라는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부시나 네오콘도 사실은 아랍인들을 더 잘아야 합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부시가 대통령에서 물러 난 후에 철저한 경호원이 없이는 밖으로 잘 다니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아는 이슬람 율법은 사실상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철저하게 지배하고 착취하기 위한 용도로 이용되고 있더군요. 원래 목적은 절대 그것이 아니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만.
 
전 진중권이 황우석 박사 일로 크게 이지매 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진중권의 표현이 약간 과격한 점이 있다고 해도 지금 네티즌들이 너무하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런 점을 진중권이 과거 행적에서 불러온 이유도 있지만 하여간 자유롭게 의견이 나오고 그 의견으로 공격당하는 세상은 질식할 것 같은 세상임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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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글이군요. 이거 퍼갈게요. 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