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이벤트는 첨 참가해봅니다.

사실 이런 창작적인 글을 써보는 게 얼마만인지 몰겠습니다.

다른 분들 쓰신 것 다 읽어봤는데 다들 넘넘 기발하고 문학성있는 작품들을 쓰셨드라구요.

뭐, 그 분들을 받쳐드리기 위해 저도 참가합니다.

불끈...동정표라도 좋습니다.

장미 부탁드립니다. ^^;;;

 

바람 속에서

지긋이 눈을 감고

너를 안는다.

 

지난 아픔들

너의 따뜻함 속에

녹아내리고



굳건한 다리

힘찬 발걸음으로

내 나아간다.

 

글자수 맞추는게 예사로운 일이 아니네요.

전 하이쿠를 써보았다는 것만해도 제가 넘 자랑스럽습니다.

오늘 일기장에 꼭 적을거에요, 하이쿠 썼다구...^^ 뿌듯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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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4-1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지막 주자시네요.

라주미힌 <- 저도 일기장에 넣어주세요. ^^;;;


해적오리 2006-04-20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옷...저는 아직 하루가 남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ㅋㅋㅋ 그래도 주인장에게서 꽃을 받았으니 만족할랍니다. ^^
네 님의 이름도 일기장에 꼭꼭 눌러 적을께요.
사진 찾을려고 영화정리하신 데 들어가보니 대단하시드라구요. 종종 찾아뵐께요.

히피드림~ 2006-04-20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엇~ 전 너무 늦게 왔네요. 늦었지만 저도 장미 한 송이 올립니다.^^저도 일기장에 써주세요!


날개 2006-04-2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더 일찍 내셨으면 1등 먹었을 글이군요..!!!^^
지금이라도 장미 드립니다..
@&-- @&-- @&-- @&-- @&--

해적오리 2006-04-2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unk님//어머나..빨간 장미..고마워요. 님은 오늘 일기장에 써드릴께요. ^^

날개님//과찬이시옵니다. 1등 되신거 축하드려요. 장미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

하루(春) 2006-04-20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일기를 쓰시나 보군요. 일기에 적겠다는 님의 댓글 여러 번 본 것 같아요. ^^ 잘 쓰셨군요. 지금이라도 드릴까요? 빨간 장미?

하루(春) 2006-04-2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
@-&-- 내가 만들었지만, 참 예쁘당~ ^^;;


해적오리 2006-04-21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님..빨간 장미 감사합니다.
빨간 장미의 원조에게서 받는 영과을 주시는군요. ^^
일기는 기냥 그날 있었던 중요한 일을 메모로 남기는 거구요 특히 처음 시도해본 일이 있음 꼭 적습니다. 밑줄을 그어서 표시하기도 하구요..제가 변화를 싫어하다보니 삶이 쳇바퀴도는 것 같아서 작은 일이라도 안했던 거 해보는 습관 들일려구요.
 

아침에 활짝 핀 벚꽃들 보며 흐믓해 했는데 말이지...

저녁때 집에 도착하니...

초강력 '강풍'이 불고 있다...

다 떨어져 나간 꽃들...

'초강력 딱풀'로 다시 붙이고 싶구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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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19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인줄 알았어요.

라주미힌 2006-04-1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금연하세용...
근데 왜 이벤트 참여 안해요? ㅎㅎㅎ

마늘빵 2006-04-20 0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벤트 할거에요. 아직 안끝났죠?
 

[무위의 문화산책] "문화의 가치와 문화를 보는 올바른 시각"

굶주림의 계절인 겨울에 태어난 사내아이들은 이웃의 논바닥에 버려지고 여자 아기는 한 줌의 소금에 팔린다. 마을에서 70세가 되는 노인들은 가족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나라야마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한반도에도 있었다는 고려장과 비슷한 풍속이다. 70세가 되어서도 건강한 노인 오린은 자식과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이 죽을 때가 되었을 만큼 쇠약해졌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스스로 이빨을 돌절구에 부딪쳐 깨버린다.

그 해 가을, 마을에 흉년이 들어 식량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도둑질한 사람의 일가를 생매장시킨다. <나라야마 부시코>라는 이 일본 영화는 어찌 보면 잔인하고 어찌 보면 다른 문화권에 내어놓기에는 몹시 수치스러운 풍속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은 이를 소재로 기교를 배제한 채 리얼리즘 기법으로 독특한 영상언어를 펼친다. 이 감독이 20년 동안이나 준비해 왔다는 이 영화는, 작가 후가자와 시치로의 두 작품 '가로 전설'(노인을 버리는 전설)을 토대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와 농촌의 성을 묘사한 <동북의 신무여>을 한데 모아 모자간의 정, 생과 사의 근원을 추구했다.

먼저 이 소재는 1958년에 기노시타 게이스케(Keisuke Kinoshita) 감독이 영화화해 일본내 영화상을 휩쓸었다. 원작이 일본내 영화상을 휩쓸었다면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된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는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데 성공한다. 영화가 나온지 1년 뒤인 1983년 칸느 영화제는 그 작품에 황금종려상을 안긴다.

1997년 영화 우나기로 또 한번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그 연출력이 대단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영화 <나라야마 부시코>가 세계인의 호평을 받을 수 있었던 점은 척박한 환경이 인간들의 가치체계와 도덕율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진솔하게 표현해 내는데 성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것을 그려낸 사람들이 그 나라 사람들에게 비난받아야 하고 또 광화문 현판이 독재자에 의해서 쓰여졌다는 이유로 교체되어야 한다면 중국의 진시황이 민중들의 뼈와 피로 축성시킨 만리장성은 수천 번도 더 허물어져야 했을 것이다.

환경결정론과 인종주의

칼을 강도가 쓰면 마음에 상처를 주는 흉기지만 훌륭한 요리사가 쓰면 사랑의 도구가 된다. 그것이 어느 쪽으로 활용되든지 간에 칼의 생명은 예리함이다. 학문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환경결정론이 나찌나 제국주의에 의해서 인종주의적 차별로 이용되었다고 해서 의미가 없고 또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는 횟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시미 칼이 조폭들의 패싸움에 이용되기도 하는 까닭에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어처구니없다.

나찌가 유태인 학살에 이용한 것은 환경결정론이 아니라 인종주의다. 이에 굳이 결정론의 명칭을 단다면 환경결정론이 아니라 '인종'결정론이나 '혈통'결정론이다. 즉 아리안 족의 피의 순수성을 주창하면서 그 희생양으로 유태인을 학살한 구실은 혈통(lineage)이나 민족의 문제였지 환경결정론이 아니었다.

씨받이와 남성 우월주의

이규태는 한국 사회의 씨받이 문화를 학술적으로 처음 밝혀냈다. 이 풍속은 임권택이라는 명감독을 만나서 씨받이라는 영화를 만드는 훌륭한 소재가 되었다. 87년에 만든 영화 <씨받이> 출연했던 강수연은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획득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는 한국의 영상예술이 세계 문화예술계를 향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다.

영화 <마파도>에도 나오는 씨받이 문화는 사실 우리가 외국에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문화다. 만일 이런 치부를 찾아내서 밝혔다는 이유 등으로 이규태를 비난하고자 한다면 영화 감독 임권택은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을 외국인들에게까지 널리 보여 주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공격을 당해야만 할까? 이규태가 책으로 처음 살려낸 씨받이 문화나 임권택이 만든 영화 <씨받이>의 어느 한 부분에도 '씨받이 문화가 좋다 싫다 또는 옳다 그르다'는 주장은 없다. 그저 이 문화를 기록자로서 또는 리얼리즘에 기반하여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이규태와 임권택의 의의

부계의 씨를 받기 위해 벌어지는 풍습 같은 것을 일일이 연구하여 학문적으로 기록해 냈다고 해서 이규태나 임권택을 남성 우월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런 사람들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씨받이>같은 것은 한국 문화에 깊숙이 뿌리박힌 남성우월주의 문화가 얼마나 비인간적임을 밝히고 있다. 말하자면 이규태와 임권택이라는 두 거장(巨匠)은 이 <씨받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한국과 세계 도처에 있는 남성우월주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타파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셈이다. 이규태를 남성우월주의자로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이규태가 일생을 통해 써 낸 방대한 저술을 보고서 후대의 소설가나 감독이 어떤 영감을 받아 또 어떤 문학 작품과 영상언어를 탄생시킬지는 아무도 모른다.

존재론과 당위론

120여권의 저서 등 이규태가 일구어 낸 방대한 그의 작업에서 일관된 하나의 흐름이 있다면 그건 존재론적 접근이지 당위론적 접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규태의 저술을 직접 읽어 보면 누구나 파악하겠지만 그는 철저하게 '있다. 있었다'라는 Be동사를 사용했지 '해야만 한다(should 또는 ought to)'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방대한 자료를 어디에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이 흉기로 쓰느냐 혹은 풍미로운 요리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데 하는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쉬운 예로 인종주의에 이용당한다는 이유로 유전공학을 공격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 유전공학은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육종의 개량 또는 불치병의 치료 등에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이치도 모르고 이규태를 보고 인종주의자니 또는 남성우월주의자니 하는 폭언을 하는 일은 학문에 대한 몰이해나 지적인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그것도 아니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규태를 음해하려는 '비겁함'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고 목적 달성을 위해서 비겁한 수단에 의지하거나 반칙을 일삼는 사람은 심판에 의해 제재를 받고 심한 경우 퇴장 당해야 하는 것은 고도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합의다. 그가 퇴장을 당하면서 관중들에 의해 조롱을 받게 되는 것은 인과응보에 지나지 않는다.

왜 '환경'가능론인가?

흔히들 블라쉬가 주창한 환경가능론은 라첼이 체계화한 환경결정론에 반대되는 이론으로 알고 있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환경 가능론이라는 용어 자체부터가 환경 결정론에 대항할 만한 이론체계가 아니라 환경결정론의 아류 정도임을 시사하고 있다. 땔감을 구하기 쉽고 관개가 용이한 지역에 촌락이 형성되는 배산임수 등이 환경결정론의 정수라면 환경가능론은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 충분히 환경을 극복하면서 살아 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환경가능론이 주장하는 바가 '환경에 비해서 인간의 의지가 훨씬 중요한 요소다'라는 것이라면 그 명칭은 환경가능론이 아니라 '인간(의지)결정론'이 되어야 더 적합하다. 이게 단순히 번역상의 문제가 아님은 그 학설을 공부하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모호해진 구별과 기회비용

최근에는 학계에서도 이 세 이론의 구별을 점점 모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다. 이런 것도 모르고 필자가 환경결정론이 70% 정도를 차지한다고 말했다고 인종주의자 커밍아웃을 운운하겠다면 차라리 환경결정론을 처음 만들어낸 100% 순수 환경결정론자인 라첼에게 인종주의자라고 공격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이상한 논리라면 자연선택설을 위주로 진화론을 주창한 다윈도 당연히 인종주의자가 된다. 그런데 제 정신을 가진 사람들 치고 그들을 인종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환경 가능론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의지(will)'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기회비용 즉 선택과 효율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자원이 풍부하고 기름진 땅에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는데도 억지로 자원도 없고 척박한 땅에 들어가서 살 이유가 없다. 이건 지구상에서 인구밀집지역과 인구희소지역의 분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능한 좋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전략은 인간이 현명하기 때문이지 인간의 의지가 박약해서가 아니다.

문화와 환경

마지막으로 문화결정론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행정학이나 경영학에서 인사 행정이나 조직론을 논할 때 인간과 조직 이외의 것을 모두 외부환경이라 칭한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인간 이외의 것은 모두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 환경에는 자연환경 뿐 아니라 인간이 타고난 교육환경이나 문화 환경도 포함된다. 즉 문화 자체도 공동체 속의 구성원이 사회활동을 할 때 잠시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외부환경인 것이다. 이와 같이 환경결정론 환경가능론 문화결정론 모두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어떤 논리체계로 다루고 있다. 세 이론 모두 환경이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내가 환경가능론과 문화결정론 모두가 환경결정론의 뿌리에서 나온 한 나무라고 했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론의 유용성을 논하기보다 그 주장이 오래되었다고 고리타분하다고 말하는 것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 고리타분은 패션문화를 논할 때나 써야 제격이다. 물론 패션계에서도 남자가 바지를 주로 입고 여자가 치마를 자주 입는 일이 그 연원이 아무리 오래 되었다 한들 이를 고리타분한 풍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듯 고리타분이란 용어는 그 연원의 길이에 주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사실 인문학에서 대부분의 중요한 이론과 학설은 거의 다 나와 버렸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이론과 학설에 고리타분하다는 말을 쓸 수는 없다.

유전자 결정론

환경결정론과 환경가능론 그리고 문화결정론과 뿌리가 다른 별개의 이론을 찾으라면 인간 자체가 가진 고유의 유전자(gene) 코드에 초점을 맞춘 유전자결정론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이 유전자 결정론은 일부 나쁜 집단에 의해서 정말로 인종주의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환경결정론이 인간의 행동양식을 환경정보의 해독을 통해서 일반인의 이해도를 높여 주었듯이 유전공학도 인간의 각종 질병이나 행동양식을 유전자 정보의 해독을 통해서 그 이해도를 높여 주고 불치병 치료에도 도움을 줄 것이 확실하다.

이규태의 저술

우리가 그 학문체계가 넓고 얇다고 말할 때 프랑스의 J.디드로, 달랑베르. J.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에 의한 백과전서파를 예를 든다. 한국에서 이수광의 지봉유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등이 이런 백과사전류다. 이들은 한 국가나 한 분야가 아닌 전 세계 또 모든 분야를 망라했다. 하지만 이규태는 오직 한국에만 집중했고 더 나아가 문화 분야에만 집중했다. 그러므로 이규태의 저술을 두고 넓고 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이거나 의도적인 폄훼를 위한 조작이다. 오히려 한국의 문화 분야에만 국한해서 평가하면 이규태의 저술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깊다. 이건 그가 그 흔한 결혼식 주례 한번 서지 않고 오직 한 분야에만 집중한 장인(匠人)정신에 투철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설사 넓고 얕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주장을 인정한다고 한들, 단군이래 이 정도의 연구를 해 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정약용의 여유당전서가 500여권에 이른다고 하나 그때의 종이 상태와 이규태 시대의 종이 상태, 그리고 그 종이에 쓰여진 글자의 크기를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면 어느 쪽이 더 방대한 지 능히 짐작할 것이다. 참고로 여유당전서는 1930년 초에 정인보·안재홍이 교열에 참가해 활자본 154권 76책으로 간행되었다. 후세에 누군가 한국의 문화 풍습에 대해서 더 깊은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그는 이규태가 닦아 놓은 길을 거치지 않고는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그의 업적은 대단하다. 실제로 이런 저술은 국립대학교나 정부의 녹(祿)을 받는 사람이 수행했음직 하지만 사기업인 언론사에서 수십 년 동안 지원해서 이루어진 사실도 세계 어느 나라를 보아서도 이례적인 일이라 할만하다.

인샬라와 천황폐하 만세, 그리고 어머니

이규태는 아랍인의 의식구조라는 글에서 비행기를 납치해서 쌍둥이 빌딩을 향해간 아랍인들이 마지막으로 인샬라를 외쳤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이는 2차 대전 당시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이 미국 함대를 향해서 비행기를 몰고 돌진하면서 '천황폐화 만세'를 외쳤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일 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앞의 분석에는 무슬림들의 종교적 색채가 반영되어 있고 뒤에 것은 그 당시 일본에 팽배했던 군국주의 문화를 반영한다. 물론 여기에는 인간이 가진 보편적 속성 때문에 그 마지막 순간에 '어머니'를 말한 사람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이건 문화인류학적인 접근법이 아니다.

또 이런 것은 주로 영화나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이규태 칼럼리스트는 비교문화학자였지 극작가나 소설가가 아니었다. 또한 이런 감상적인 말까지 표현할려면 이규태가 써야 했던 원고지 몇 장 분량의 지면 할애로는 절대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마녀사냥과 명예살인

종교를 이용한 인권학살의 예로는 그 악명 높은 마녀사냥을 들 수 있다. 현재 이슬람 세계에는 중세 마녀사냥 못지 않은 명예 살인이 횡행한다. 명예 살인이란 어떤 여성이 정조나 정절을 훼손하여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남도 아닌 그 여인의 가족이나 친족에 의한 살인을 말한다. 21세기인 현재 한 무슬림 국가에서는 매년 500명 이상의 여성들이 단지 정조(貞操) 문제로 명예 살인을 당한다.

한 무슬림 집안의 딸이 옆집 총각과 눈이 맞아 사랑이 싹텄다고 하자. 그런데 부모들의 허락이 없이는 그 사랑이 결실을 맺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무슬림 문명권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인다. 몇 년 뒤 그녀를 끝까지 쫓아온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그녀의 오빠나 친아버지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자기 딸이나 누이동생을 칼로 찔러 죽이는 일이다. 그리고는 크게 외친다. "이제야 가문의 명예를 되찾았다!" 한반도의 조선시대에도 이런 일은 흔치 않았다. 자식의 행복을 위해 모른 척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슬림 사회에서는 그게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2005년 세계 여성 인권상에 뽑힌 여성은 무슬림 부족에서 집단보복 성폭행을 당하고도 보통의 경우처럼 자살하지 않고 대항했던 한 여성이었다.

이슬람 문명의 문화지체현상

중세에는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종교적 색채가 모든 일상사를 좌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후 기독교는 르네상스와 루터의 종교개혁 등으로 신의 섭리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중점을 두는 방향으로 상당한 진보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슬람은 그러하지 못하여 매우 안타깝게 생각된다. 중세 암흑시대의 장막을 걷어 주고 서구 르네상스의 원동력을 추진시킨 원동력이 이슬람문명이었음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 하다. 이는 거대 문명권에서 발생한 일종의 문화지체현상으로 이해된다. 내가 겪어본 이슬람 율법이란 지배층이 피지배층을 철저하게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작동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루에 5번 하는 기도 같은 것도 교육을 많이 받고 부유층일수록 덜 지키고 가난하고 교육이 낮은 계층일수록 더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다. 이를 여러 번 경험한 우리 회사 여직원들도 이젠 '지금 저 사람이 하는 저 기도는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하는 것' 이라고 한국말로 수근댄다.

소수 과격파

진중권이 말한대로 무슬림들 중 일부 소수만이 과격한 테러분자들일뿐 이라고 하면서 그것의 심각성을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물론 일부 소수만이 그렇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수라고 해서 그런 현상의 심각성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읽는 시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과격분자는 그 사회의 암세포

사람의 몸 전체에서 보면 불과 몇 %에도 못 미치는 암세포 때문에 인체의 모든 장기가 그 순환기능에 문제를 발생시키고 급기야 생명까지 앗아간다. 과격 원리주의자나 테러분자가 그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극소 비율의 암세표가 모든 인체에 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인체에 암세포가 발생하고 그 사회에 과격분자가 생겨나는 이유도 비슷하다. 인체나 그 사회에 어떤 구조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상존하기 때문이다. 암세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음주, 흡연 등 식생활 습관이나 체질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에서 과격 원리주의자들의 점유율을 현저하게 줄이기 위해서는 그 사회 전체의 문화를 재검토하고 올바른 민주주의 양식을 가르칠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의 개선이 따라야 한다.

문명의 충돌과 교육

내가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권의 충돌을 막고 영구 평화와 세계문명의 항구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전쟁보다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설파한 이유다. 그것도 독일식으로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개방되는 교육이 선진 문명국을 위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져할 필요가 크다. 외국 대학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한 많은 이슬람 여성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 돌아가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고 있다. 내가 겪어 본 바로는 이건 여성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을 많이 받은 남성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들이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소수에 불과하다고 예사로 생각하는 과격 원리주의자들의 행동양식에 숨을 죽여야 하기 때문이다. 과격분자들의 조직적인 행동은 그 사회 지성인들의 건전한 내부비판 자체를 봉쇄시킨다. 극소의 비율에 불과한 암세포가 인체의 건강한 순환과 소통을 막아 죽음에 이르게 하듯이 작은 비율에 불과한 과격 원리주의자들이 사회 전체의 건전한 소통을 방해하고 있는 것 또한 치명적인 질병임에 분명하다. 우리는 이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교육과 수양

지하철역이나 광장에서 미친 인간 한 명이 수류탄이나 M16 소총을 들고 "꼼작마라!"를 외친다고 가정해 보라. 그가 공중으로 '탕!'하고 공포탄을 하나 발사하는 순간 모든 문명은 숨을 죽인다. 과격하게 행동하는 소수의 위력은 이렇게 무섭다. 역사 속에서도 과격한 소수파가 온건한 다수파를 이기고 그 문명권의 운명을 주도해간 경우는 너무나 많다. 이를 위해 굳이 소수파인 볼세비키가 다수파인 멘세비키를 이긴 러시아 혁명사를 예로 들 필요조차 없다. 어쩌면 인류가 체계적인 교육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남이 나와 다름을 인용하고 포용할 수 있는 가치관을 광범위하게 유포시켜서 우리 사회에서 이런 과격분자들이 한 명이라도 덜 생겨나게 하는 것이 매우 큰 이유다. 그리고 나 자신 속에 깃든 이유 없는 공격성이 조금이라도 덜 자라도록 제어하는 것 또한 현대 교육의 큰 목표다. 아니 이것은 개인적인 인격 수양의 목표이기도 하다/ 김휘영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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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4-20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격분자는 그 사회의 암세포' 부분이 특히 위험한 발언이군요. 사회의 '체질 자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말도 그렇고...

라주미힌 2006-04-21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어서 아직 못 읽어봤어요... ^^;;
 

라주미힌님, 제 말 오해하지 말고 들어 주세요.

사실은 제가 하이쿠에 강합니다.

'아이쿠가 되어버린 하이쿠'란 카테고리를 만들었던 멍든사과님도 계셨지만,

할머니가 일본에 사시는 덕분에 어릴 적부터 하이쿠를 지으며 놀았답니다.

님의 이벤트에 참가하길 꺼렸던 이유가 바로 그래서지요.

하이쿠가 생활화된 제게 이런 종류의 이벤트는 너무 쉽잖습니까?

아마추어 마라톤 대회에서 은퇴한 황영조가 1등을 하고,

1등 소감을 말하면서 "여러분들 진짜 못뛰더군요. 평소에 연습 좀 하세요."란 말을 했을 때

제가 느꼈던 배신감을 여러분들께 드리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라주미힌님께서 댓글로 네번이나 참가를 종용하시고

평소에 라주미힌님의 미모와 인격을 존중해오던 터라

생활화된 하이쿠가 어떤 건지 보여드리지 않을 수가 없네요.

첫번째 그림.

이봐 원숭아

그만 좀 떨어져라

꺼끌꺼끌해!

 

정말 대단한 하이쿠 아닙니까? 이거 생각하는데 7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번째 그림.

살이 많은 나

뼈만 남은 애한테

미안하구나.

 

자유 부문 그림입니다.

다코타 페닝

웃음 뒤 그늘 있다.

숙제 안해서.

 

놀랍지 않습니까. 생활화된 하이쿠의 진수를 보여주는 제 글 때문에

참가하려던 분들이 포기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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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4-1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간만에 반짝반짝 유머입니다요.

물만두 2006-04-19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1착으로 썼지용^^ㅋㅋ

마태우스 2006-04-19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감사합니다. 근데 유머라...예술로 봐주시면 안되겠니?^^
물만두님/ 먼저 쓰시기/ 잘한 것 같습니다/기죽으셨죠? ^^

라주미힌 2006-04-19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뛰어다니시느라 고생많으시네욤.
ㅎㅎㅎㅎ




하늘바람 2006-04-1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웃었습니다

해적오리 2006-04-19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추...비가 부슬부슬 오는날 원두커피 마시며 마태님의 하이쿠를 감상하니 황홀합니다.

해적오리 2006-04-19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
@-&--
마태님 장미 다섯송이옵니다...

조선인 2006-04-19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헐, 전 장미 안 줄래요. 꽃 알러지가 있는데, 이미 다른 분에게 너무 많이 드려 재채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에취 에취 에에~~~취!!!

비로그인 2006-04-19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마태님에게 추천을~ @-&-- @-&--

날개 2006-04-19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하하~ 너무 재밌군요..!^^
무지 웃어버렸습니다...ㅋㅋㅋ
@-&-- @-&-- @-&-- @-&-- @-&--

마태우스 2006-04-1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늘 감사합니다. 제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장미를....^^
나를 찾아서님/아앗 감사합니다!
조선인님/마음만 받겠습니다^^
해적님/와와 다섯송이나...감사드립니다. 저도 앞으로 잘할께요
하늘바람님/ 생활화된 건 뭐든지 무섭지요^^
라주미힌님/오오 당근.. 제가 젤 .....조아하는......^^

하루(春) 2006-04-1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 웃긴 걸 모르겠는데... 제 유머감각이 너무 떨어지는 건가요? 전 마지막 다코타 페닝 것만 살짝 웃긴데... 암튼... 웃었으니 꽃 드려야죠.
@-&--
@-&--
@-&--
 



따뜻하구나

함께 하는 우리 삶

같이가야지

 

 



혼자만 가면

행복할 자신 있니

삶의 끝까지

닦아내야지

새로 다시 써야 할

우리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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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녀 2006-04-19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뭔소린지 모르겠다...ㅠㅠ

라주미힌 2006-04-1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지막 사진 글귀 어디서 많이 본거네요.. ㅎㅎㅎ

호랑녀 2006-04-19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이 페이퍼 제 페이퍼에서는 못 보나요? 다른 사람 서재에 페이퍼쓰는 건 첨이라서...ㅠㅠ

물만두 2006-04-19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못봐요^^

라주미힌 2006-04-1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홈으로 퍼가시면 됩니다..

마태우스 2006-04-19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게 가장 맘에 와닿네요.

날개 2006-04-19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호랑녀님이 이벤트 참여를 하시다니!^^
@-&-- @-&-- @-&--

하늘바람 2006-04-19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멋집니다

해적오리 2006-04-19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전 왜 세번째 사진이 웃기죠??

호랑녀 2006-04-20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꺼는 주인장꺼 베낀 거여요. 뭐 저한테 창의력이란 게 있어야지 말이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