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이리스 >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편집자 집요함 꼼꼼함 없으면 책도 없다”
[한겨레 2006-04-19 23:18]    

[한겨레] 지은이들이 편집자 위해 마련한 ‘특별한 출판기념회’

“이진경 선생님 원고를 읽는데 문장 하나가 두가지 뜻으로 읽히는 게 있었어요. 저 혼자 1시간 넘게 낑낑대고 고민하다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려서 무슨 뜻인지 물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응, 그거 그냥 빼버려’ 하시는 거에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18일 저녁 7시, 종묘 뒷담 골목속 자리잡은 ‘연구공간 수유+너머’ 강의실. 출판사 그린비의 김현경 편집주간의 이야기에 청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옆에 앉은 지은이 이진경 교수도 함께 웃었다. 하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이 이야기속에는 편집자들의 집요함과 고생스러움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아니, 편집자는 어떤 사람들인가?

책을 직업적으로 접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일반 독자들에게조차 편집자는 낯선 존재들이다. 그 이름은 책의 앞이나 맨뒷장 서지사항속 조그맣게 ‘편집 아무개’라고만 적힐 뿐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이마저도 적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편집자는 뒤로 숨는다.

하지만 책에 있어서 편집자의 존재는 저자 못잖다. 때로는 저자 이상일 때도 있다.

지은이가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면 그 원고를 읽기 좋게 가다듬고, 보기좋게 모양새를 잡고, 그리고 제목을 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편집자의 몫이다. 오탈자를 잡는 교열, 교정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는 기본 일거리다.

책 자체를 기획해서 걸맞는 저자를 선정할 경우 그 책은 저자의 것이기 이전에 편집자의 것이다. 걸출한 편집자는 세상을 제대로 읽고, 그런 세상 흐름을 반영하는 책을 기획한다. 책이란 것에는 오롯이 지은이의 창의성과 노력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은이의 책’이 있는가 하면, 출판사 대표가 탁월한 교섭력을 발휘해서 유명한 필자와 출판계약을 따내 성공하는 ‘펴낸이의 책’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편집자의 책’이 있다. 꼼꼼한 편집과 세밀한 정성으로 만들어내는 책이다. 처음 책을 접어들 때는 알아차리가 어렵지만, 읽고나면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을 긁어주듯 다양한 배려를 담뿍 담아놓은 책. 바로 그런 책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출판계의 주인공들인 편집자들은 관심의 바깥에 있다. 책이 성공하면 관심은 온통 지은이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책이 성공하면 벌어들인 수익은 출판사로 돌아간다. 그 사이에서 편집자들은 분명 ‘푸대접’을 받고 있다. 아무리 눈밝은 독자라도 편집자까지 확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좋은 책의 뒤에는 반드시 편집자가 있다. 다만 드러나지 않을뿐이다. 편집자들은 조용히 책 뒤에서 책의 성공에 감격하고, 책의 실패에 눈물흘린다.

18일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출판기념회는 그런 점에서 무척이나 특별한 출판기념회였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의 새 책 <미래의 맑스주의>(그린비 펴냄)와, 인문학 연구자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휴머니스트 펴냄) 출판기념회로, 두 사람이 함께 몸담고 있는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출판기념회라고 하면 으레 지은이가 평소 친한 이들에게 익숙한 감사말을 하며 식사를 대접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날 출판기념회는 달랐다. 두 책을 편집한 편집자들인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과 선완규 휴머니스트 편집주간이 함께 주인공으로 참석했다. 지은이 두 사람이 “나는 이렇게 책을 썼다”고 설명하고, 편집자 두 사람이 “나는 이 책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출판기념회였다. 책의 숨은 주인공 편집자가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출판기념회였다. 실제 이날 출판기념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두 편집자였다. 그리고 편집자는 무엇으로 사는지, 그리고 어떤 존재들인지를 청중들에게 보여주었다.

첫 발표자는 <미래의 맑스주의>를 쓴 이진경 교수. 이 교수는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와 혁명을 어떻게 다시 사유할 것인지, 그리고 마르크스의 기본 가정들이 될 공리들을 다시 살펴보고 마르크스주의의 경계를 넘어섬으로써 그 경계선을 확장시켜 보려했다”고 책의 집필 취지를 설명했다. 그리고 ‘휴머니즘’에 대해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휴머니즘이란 것은 무서운 것, 끔찍한 것이다. 인간이 존엄한만큼 인간이 아닌 모든 것의 존엄함이 망각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나타나는 휴머니즘의 이런 지점들을 넘어보려 했다.”

이는 곧 새로운 세상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재정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설명했다. 미래사회 등장할 로봇이 인간이란 주인에게 지배받고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고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위해 실험되고 희생되며 착취당하는 동식물들도 마찬가지로 넓은 의미, 새로운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트란 것이다.

이 책을 편집한 김현경 주간은 “편집자가 만나는 책에는 크게 두가지가 있는 것같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하나는 ‘편집자가 저자의 원고에 깊숙이 개입해 전체 구성부터 세세한 원고 배치와 부속물까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책’, 또다른 하나는 ‘구성과 내용에 깊이 관여하기보다는 그 원고의 내용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정확하고 보기 쉽게 전달해줄까에 초점을 맞추는 책’이라는 것이다. 고미숙씨의 책 <나비와 전사>가 전자에 가깝다면, 자신이 편집한 이진경 교수의 <미래의 맑스주의>는 후자에 가까운 책으로 정의했다.

김 주간은 <미래의 맑스주의>가 쉽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타일의 글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아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게 하기 위해 여러가지 신경을 썼다고 밝혔다. 그가 밝힌 다음 네가지 편집적 연출은 10년 이상 편집에 종사한 베테랑이 책을 만드는 요령이란 점에서 후배 편집자들이 귀담아들을만한 ‘노하우’이기도 했다.

우선 원래 원고의 각주에는 인용주와 내용주의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내용주는 본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했기 때문에 각주처리를 했고, 인용주는 시선을 분산시켜 읽어나가는 흐름을 방해할 우려가 있어 후주처리를 했다고 한다.

두번째로는 앞으로 이 책이 연구자들에게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보아 저자 원고에 따로 정리되어 있지 않던 참고문헌 목록을 인용주들과 본문에 언급된 책들 모두를 뽑아 정리해 뒤편에 실었다고 한다.

세번째로는 이 책이 저자의 사유를 집중해서 따라 읽어가는 것이 좋다고 보아 본문 안에 그림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림이 너무 없으면 독자들이 책에 담긴 강한 사유를 쉴틈없이 맞닥뜨려야하기 때문에 쉴 여유공간을 두려고 각 장의 시작 부분에 그림을 넣고 각장의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문장을 지은이에게 부탁해 수록했다.

네번째는 정확한 정보전달을 위해 책 본문에서 인용하는 책들을 모두 구입 내지 입수해서 모든 인용구를 대조했다고 한다.

이날 이 네번째, 책 본문에 인용되는 모든 책을 실제 구입내지 입수해 대조했다는 대목은 청중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편집자가 얼마나 꼼꼼하고 수고스러운 일을 하는지 극명하게 보여준 작업이기 때문이다. 김 주간은 인용되는 책들 가운데에는 절판된 것들도 많아 온 출판사 직원들의 친구며 후배며 동생을 동원해 각 대학 도서관을 샅샅이 훑었다고 한다. 김 주간은 “책을 기획하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지만, 교열과 교정은 고된 노동이자 글자 하나, 문구 하나하나와 대결하는 전쟁”이라고 비유하고, “좋은 원고를 만나면 고정교열이란 노동은 어느새 나 자신을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는 마주침과 생기넘치는 활동이 된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불온한 사유와 만나 그것을 독자들이 가장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바로 편집자로서의 제 꿈이고, 역할이고 행복입니다.”(당연히 터져나오는 청중들의 박수)

다음은 또다른 책 <나비와 전사>의 지은이 고미숙씨의 차례였다.

고씨는 책의 편집자 선완규 주간의 ‘지독함’을 ‘까발리는 것’으로 감사의 말을 대신했다. “선완규 주간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가장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안보낸 원고도 자기가 입수해서 밑그림을 그려서 보내줘요. 원고를 보내주고 나면, ‘이 부분은 에전 선생님이 쓴 다른 글과 비슷하다’며 일일이 다 지적해서 다시 연락이 와요. 그러니 이러이러한 내용을 덧붙여 달라, 여긴 이러면 좋겠다… 그런 주문이 이어지는거지. 그래서 원래 1500매였던 원고가 2000매로 늘어났어요.”

고씨로부터 ‘집요한 편집자’란 애정어린 힐난을 듣고 발표에 나선 선 주간의 설명은 고씨의 말이 오히려 선씨의 집요함을 덜 표현한 것임을 느끼게 만들 정도였다.

선 주간은 이 책 <나비와 전사>가 “5년을 기다린 끝에 나온 책”이라고 설명해다. 그리고 2001년 6월12일자로 작성한 애초 출판기획안을 직접 가져와 이번 기획안과 함께 보여주기도 했다. 선 주간이 이 책을 기획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너머에서 열린 고씨의 강연을 들었던 것이 계기였다고 한다. 당시 ‘한국의 근대성’이란 주제의 강연을 듣고 책으로 펴내면 좋겠다고 느낀 고씨가 강의안을 토대로 기획안을 작성해 고씨에게 보냈고, 책을 펴내기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고씨의 바쁜 일정 때문에 책 출판은 계속 늦춰졌다고 한다.

책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선 주간은 원래 강의때 고씨가 한 말들을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것을 활용해 원고에 빠진 내용이 있으면 연락해서 집어넣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역시 이 대목에서 청중들 박수.

선 주간은 “책은 어느 한 사람의 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발표를 마쳤다.

지식인들이 책을 써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할 때 가장 중요한 파트너가 바로 편집자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 때문에 두 편집자 모두 이날 행사에 자신을 초청한 연구공간 수유쪽에 무척이나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이처럼 저자와 편집자가 함께 책을 설명하는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연구공간 수유만의 성향탓일 것이다. ‘대학’으로 대표되는 기성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도발적이고 새로운 사유의 모험을 떠난 젊은 연구자들의 코뮨이자, 가장 왕성하게 대중적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는 저술가들이 대거 참여한 수유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획이었다.

고병권 수유 대표는 “올해는 수유의 여러 회원들의 책이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들이 과연 어떤 편집자들과 만나 대중들의 곁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글·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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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0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출처 : 딸기 > 나스카 그림 또 발견.


인류의 미스터리로 꼽히는 페루 나스카의 거대한 그림들이 또 발견됐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은 19일 야마가타(山形大)대 문화인류학부 사카이 마사토(坂井正人) 교수가 이끄는 발굴팀이 나스카 남서부에서 사람 혹은 동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지상 그림들과 도형들을 새로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사카이교수 팀은 2004년 가을 위성사진을 분석하다가 구릉지대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도형 형상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발굴에 착수했다. 발굴팀은 현지 조사에서 동서 20㎞, 남북 15㎞에 걸친 지역에 100여개의 그림이 분포하는 것을 새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드러난 것 중 가장 큰 것은 길이가 60m에 이른다.

페루 남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사이에 위치한 나스카는 건조한 평원지대. 대지 위에 돌무더기로 선(線)을 만들어 인간 형상과 동물을 묘사한 거대한 그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스카 그림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돼 있지만, 아직까지 누가 왜 이런 그림들을 남겼는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고 있다. 공중에서 보아야만 구별할 수 있는 거대한 그림들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6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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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무대 위에 있거나 카메라 앞에 있을 때만 배우여야 해요. ‘나는 배우야’ 하면서 으스대는 건 배우도 아니에요. 배우의 ‘끼’요? 나이트클럽 가고, 여자 꼬시고, 시도 때도 없이 울고 하는 게 끼가 아니에요. 그건 객기죠. 배우로서의 끼는 자기 안에 묻어두는 겁니다. 참고 기다리는 거죠. 작품이 올 때까지. 그거 못하면 ‘븅신(병신)’이에요.”

“철저하게 이야기가 맘에 드는 영화를 해요. 내 배역이 주연이든 조연이든 상관 안 해요. 사람 냄새 나는 얘기를 일단 고르면, 그 안의 인물과 역할은 저절로 뜨는 거예요.”

“아내와의 산책을 가장 좋아한다”고 답했다. 가장 싫어하는 것은 ‘생일 파티’였다.
“내가 케이크의 촛불을 끄기를 기다리며 사람들이 날 쳐다보는 순간이 너무 불편해요. 난 불편해요, 주목받는 건.”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그가 이렇게 대단한 배우였을 줄이야...

삶을 느긋하게 봐야겠다. 누가 알어.. 사람의 앞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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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04-20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배우....

울보 2006-04-20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722822

릴케 현상 2006-04-21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누구였죠? 팔 부러진 애?

라주미힌 2006-04-21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기억은 안나는데, 자기가 좋아하던 여자를 빼앗기지 않았던가요? ㅎㅎㅎ
그리고 밴드에서 나갔던 것 같아요.

릴케 현상 2006-04-2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럼 팔부러진 애 말고 나머지 애^^ 와~ 넘 멋지다
 

 

김길원 기자 = 건양의대 김안과병원(원장 김성주)과 사단법인 전국저시력인연합회(회장 미영순)가 제26회 장애인의 날을 맞아 실시한 `마음으로 보는 세상' 글 공모 시상식이 19일 오후 병원 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행사는 시각장애인 부문과 시각장애인의 가족, 친지, 친구 등 비장애인 부문으로 나눠 진행됐는데 장애인 32편, 비장애인 24편 등 총 56편의 수기가 응모됐다.

응모작에 대해서는 `우담바라', `욕심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등을 쓴 소설가 남지심씨가 심사위원을 맡아 수상작을 결정했다.

병원측은 수상자는 일반, 장애인부문 모두 대상, 우수상, 가작 각 1명을 선정키로 했으나 장애인 부문은 글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 가작을 2명 뽑았다.

특히 이번에 비장애인부문 대상을 받은 조은경(22)씨는 시각.청각 1급 장애인인 언니의 사연을 소개했는데 수상 통보과정에서 본인도 2급 청각장애인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고 한다.

김안과병원의 협조를 받아 조씨의 수기를 원문 그대로 소개한다.

 

『나의 사랑하는 언니는 시각장애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시각.청각 1급 장애인이다. 언니의 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였다. 원인을 모른 채로 두꺼운 안경을 쓰고 살아왔던 언니였지만 또래에 비해 공부도 잘했고 성격도 활발한 언니였다.

세 살 터울로, 바쁜 어머니 대신 늘 나를 돌봐주었던 언니였기에 나는 그런 언니가 있어서 참 좋았다. 그런 언니에게 불행이 닥쳐온 건 언니가 고등학생 일 당시였다. 언제부터인가 언니는, 시력 뿐만이 아닌 청력마저도 잃어가기 시작했고 길을 걸을 때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려 넘어지기 일쑤였다.

많은 병원을 전전했지만 모두 특별한 원인을 찾을 수 없다고 진단 내리던 중 보건소의 소개로 찾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의 사랑하는 언니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그것도 한참이나 진행된 뇌종양. 다행히 비악성이었지만, 수술은 위험했고 만일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언니는 평생을 누워서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수술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3개월 이상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마치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어 버린 것 같았다.

갑작스러운 사형선고 앞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폭력을 못 이겨 헤어지신 어머니 옆에서, 아버지의 빈자리까지 채우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오며, 나이에 맞지 않게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려 마음 아픈, 나의 사랑하는 언니의 삶에 대한 보답은 너무나 터무니없었다.

가난도, 불행도, 세상이 주는 차별과 냉대에도, 그 어떤 서글픔도, 무엇도 감히 헤치지 못했던 언니의 죽음이, 바로 코앞에 와 있었다.

진찰을 하셨던 교수님은 왜 이렇게 늦게 왔느냐며 안타까워 하셨고 어머니와 나는 진료실을 나와, 세상과 동떨어진 듯한 외로움과 설움에, 한참을 울어야 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며 수술결정을 내리지 못했던 어머니와 나였지만 언니의 결심을 확고했다.

어떤 결과에도 침묵할 테니 꼭 수술을 받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머리를 깎고 이른 새벽 수술실로 들어간 언니는 정확히 24시간 후에야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마치 거짓말 같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내 생에서 가장 긴 하루이기도 했다.

피가 다 빠져나가 하얗게 질린 채로 중환자실로 옮겨지던 언니를 보며 나는 끝내 펑펑 울고야 말았다. 며칠 후 면회시간이 되어 중환자실로 들어갔을 때 언니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말했다. "엄마, 사랑해"라고.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은경아, 사랑해"라고.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다시금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매 순간순간,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렇게도 너무도 눈물겨울 수 없었다.

오랜 입원기간을 끝내고, 언니는 무사히 퇴원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사랑하는 언니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청력은 완전히 잃었고, 시력은 희미한 빛만 남아있었다.

사람의 얼굴과 몸을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 정도의 빛이었다. 게다가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어 거동조차도 힘겨웠다. 분명 새로운 삶을 선물 받은 언니였지만, 언니는 예전과는 달리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그렇게도 외출을 좋아하고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던 언니였지만 외출도 꺼려했고, 집으로 손님이 오는 날은 방으로 숨어버렸다. 가끔 휠체어를 타고 외출을 하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손가락질에 받은 상처가 너무 큰 것 같았다.

비장애인들은 그걸 몰랐다.

별생각 없이 쳐다보는 눈빛이 누군가에게는 칼이 되어 꽂힐 수 있고 가벼운 손가락질에 어떤 사람은 크게, 크게 울며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도 있다는 걸 어떤 날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방바닥에 가위와 머리카락이 너부러져 있고 어머니와 언니가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언니가 머리카락을 마구 자르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울부짖었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다리가 풀려 주저 앉고 말았다.

그리고 어떤 날은 뇌수술 후에 먹고 있던 항경련제를 과다복용해서 응급실로 실려간 일도 있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언니는 수면제를 사러 나갈 수가 없었기에, 먹고 있던 항경련제를 과다하게 복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고생해서 찾은 목숨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을 만큼 세상은 언니에게 가혹했던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언니는 그렇게 슬프게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머니와 내가 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언니가 스스로 이겨내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던 언니가 다시 변하기 시작한 건, 평소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에 취해 들어오신 어머니의 모습을 본 이후였다. 그래도 어떡하겠느냐고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사는 날까지는 살아보자는 어머니의 말씀을 언니의 손바닥에 적어내며, 제발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빌며 한참을 울어야 했던 그날 이후로 나의 사랑하는 언니는 다시 변하기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외출하러 가자는 말도 먼저 했고, 집으로 손님이 와도 자리를 지켰다. 자주 공중목욕탕에 다니고 싶어했고, 사람들의 시선 따위도 의식하지 않았다. 거동은 여전히 힘겨웠지만 집안 청소도 했고, 삐뚤삐뚤한 글씨지만 가끔은 글을 써내려 가기도 했다.

그렇게 살아온 시간이 벌써 6년도 더 넘어가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언니는 요즘도 너무나 부지런하다. 방청소를 비롯 설거지도 하고 엉성하긴 하지만 최고로 맛있는 요리도 한다. 한번도 사회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해 가끔은 어린 소녀 같은 모습이 보여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어린 시절에 내가 받았던 나의 사랑하는 언니의 그 큰 사랑에 보답할 기회를 하늘에서 주신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건, 그렇게 변하기 위해 애쓴 언니의 노력이 세상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도 언니와 함께 외출을 하면 사람들은 언니를 쳐다보며, 수근거리며 손가락질을 해댄다.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던 나의 감정도, 이제는 안타까움이 되어버렸다.

아름다운 세상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것, 그게 진짜 아름다운 거였다.

왜냐하면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보호 받고 사랑 받으며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하얗고 눈부신 세상은 다가오는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언니를 위한 눈빛(雪色)나는 세상을 오늘도 나는 꿈꾸어 본다.』

http://blog.yonhapnews.co.kr/scoop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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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에 온기가 퍼지듯 후끈해진 이벤트 참여 열기에 안습(안구에 습기)이 찹니다.  허흑.. ㅎㅎㅎ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진들이었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새끼 나무늘보가 안고 있는 것은 사라져야만 하는 슬픈 운명이겠죠.
자신의 몸무게로 식량의 무게를 재야 하는 아이의 위태로운 모습에서는 영혼이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합니다.
이번 이벤트는 그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자는 의도가 있었는데요.
알라디너님들이 내고 싶어하는 세상과의  진솔한 소통의 몸짓에서
감동과 감흥을 한아름 얻었습니다.

짧은 글에 담긴 개성과 유머 또한 유쾌했구요.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신 분,
사랑을 전해주신 분,
슬픔을 속삭이신 분...

사진과 글... 하나하나에서 우리의 삶을 꿰고 보듬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좋게 하네요.
아름다운 글... 감사합니당. 
 

상품은 장미 41송이를 받으신
날개님께 보내드릴게요...   (읏.. 날개 하나가 없다 ㅎㅎㅎ)



주소 이름 번호 남겨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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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지 2006-04-19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축하드려요 ^^
전 머리만 굴리다가 끝나버렸군요 ㅠ_ㅠ

Koni 2006-04-20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라주미힌 2006-04-20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매지님의 작품은 비밀로 남기는 건가요?.. ^^

해적오리 2006-04-20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축하드려요.^^ 저의 장미도 한 몫 했슴돠.^^

아영엄마 2006-04-2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에 빨간 색 넣으니 정말 장미같아 보이는군요~ 날개님 축하드립니다!!

라주미힌 2006-04-2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나리님, 아영엄마님도 받으세요
@&--  @&--


승주나무 2006-04-20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저런 사진도 있었군요^^

마늘빵 2006-04-20 0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머지 끝난건가요. ㅡㅡ;;; 이런. 날개님 축하드려요. @&--

chika 2006-04-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날개님. 축하드려요. 사진을 이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신 것, 충분히 감동적이었어요. ^^

흠흠,, 글고 라주미힌님/ 아시죠? 이벤트 참가는 '우정'으로 하는 거란 거. 우호홋~^^

라주미힌 2006-04-20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네.. 엽서에 쓸 사진 고른고 있답니다.. ㅎㅎㅎ

물만두 2006-04-20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울보 2006-04-2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해요 날개님,,

stella.K 2006-04-20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날개님 축하드려요!^^

2006-04-20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날개 2006-04-20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꺄아아아악~~~>.< 감사합니다..!!!!!!
이 모든 영광을 제게 장미를 주신 분들께 돌립니다.. 그리고, 추천해주시고 축하해 주신분들도 감사드리구요.. 무엇보다 이벤트를 열어주신 라주미힌님꼐 특히 감사드립니다....^^*

흠흠... 수상소감이 그럴듯 한가요? 흐흐~
너무 오랜만의 이벤트 참가에다 오랜만의 당선이네요..
재미있는 이벤트였구요... 쯔비벨 무스터 접시를 받게 되어서 무지하게 입이 찢어지누만요...헤헤~

날개 2006-04-20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참.. 그림도 넘 근사합니다..^^ 제게 어울리는 그림을 찾아주셨군요...

2006-04-20 1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선인 2006-04-20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축하드려요. 라주미힌님도 축하드리고요. *^^*

라주미힌 2006-04-20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친절한 배송 약속드리겠습니다. ㅎㅎㅎ

하늘바람 2006-04-20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축하드립니다. 라주미힌님 멋진 이벤트였어요

하루(春) 2006-04-20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축하합니다. ㅋㅋ~ 라주미힌 택배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