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키노 > 칸 영화제, 한국 스크린쿼터 공식적 지지 발표

제59회 칸국제영화제가 한국의 스크린쿼터에 대해 공식적인 지지를 발표했다. 5월 21일 질 자콥 칸영화제 집행위원장과 프랑스 문화부 장관 등이 배석한 연례 이사회를 가진 칸영화제는 20명 위원 전원 찬성으로 지지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선언문을 작성했다. 이는 문화침략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연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 감독협회가 스크린쿼터 공식 지지를 제안한 결과. 이사회에 참석했던 프랑스 감독협회 부회장 뤽 르클레르 드 사블롱은 “국적에 관계없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지지했을 것이다. 국가가 창작의 권리를 수호하지 않는다면 예술은 존재하지 못한다”고 연대와 지지의 이유를 설명했다.

15일 칸에 도착한 대책위는 칸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발 부근에서 촛불시위와 영화인 1인 시위, 선전전 등을 벌여 왔다. 양기환 대책위원장 등과 함께 칸을 찾은 홍보대사 최민식은 “칸영화제가 다양한 영화를 존중하는 정체성과 균형감각을 잃지 않은 결과다. 프랑스 감독협회와 칸영화제에 감사한다”고 말하면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지만, 우리 앞에는 길고 험한 여정이 놓여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신작 <괴물>이 감독주간에 초청돼 칸영화제에 참석한 봉준호 감독도 “한국의 젊은 영화감독으로서, 우리에게 비전을 제시해준 오늘을 기쁜 날로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칸영화제가 발표한 선언문 전문이다.

칸 영화제가 공식 발표한 한국 스크린쿼터 지지 선언문 전문

프랑스문화다양성연대를 지지하는 칸영화제는 2006년 5월 21일 일요일 이사회를 소집하여 한국의 스크린쿼터 파괴를 막기 위해 투쟁하는 문화침략저지 및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에게 지지를 보낸다.

93년부터 발현되기 시작한 스크린쿼터는 칸영화제가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원적인 영화의 발전을 가능하게 했다. 스크린쿼터 축소는 문화적인 예외성을 만드는데 있어서 본래 기능을 충실하게 보여주었던 영화공공정책의 기반을 흔들게 될 것이다. 세계는 획일화의 위험 앞에서 모든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진정한 문화다양성을 필요로한다. 21일 일요일 이사회는 만장일치로 이 선언을 채택한다.

글: 김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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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자꾸...
어떤 여성을 소개해 줄라고 하는데...
극찬을 늘어놓으신다...  '천상 여자야, 상냥하고 이쁘고.. '

 

ㅎㅎㅎ..

나도 숫컷인지라... 귀가 솔깃~
나 싫어하면 어쩌지.. ㅡ..ㅡ;
자신감 어디로 도망갔나...

드라마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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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5-2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이기는 척하고 만나보세요~^^ (흠.. 이미 만나기로 하셨남? 흐흐~)

라주미힌 2006-05-22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워요 므흣.

릴케 현상 2006-05-2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물만두 2006-05-22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이미지가 너무 좋으십니다~ 딱이시네요^^

비로그인 2006-05-2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컷..ㅎㅎㅎ
여성분도 좋아라하실거에요. 자신감을~~~

비로그인 2006-05-22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지...

저의 부모님은, 특히 아버지께서... 제가 내세울 게 전혀 없음에도 눈만 높으셔서;;;
한참 전에 저보다 두살 많은, 강남에 어마어마한 부자(이 남정네 앞으로 강남 30평짜리 아파트가 2채 있다고-_-), 하지만 공부는 하기 싫었던지 학력이 고졸인 남정네를 엄마 친구분이 저에게 소개 시켜줄까 잠깐 마음을 먹으셨다가 제 학력을 보고는 바로 포기하셨다고-_-;;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버지의 반응, "도둑놈!" 이었다지요;;; 만약에 부모님이 오케이 하셨더라도 대인기피증이 심한 저로서는 100% 거절했겠지만;;;

마늘빵 2006-05-2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흐 하세요.

실비 2006-05-2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나시고 나중에 후기 꼭 올리시는거 아시죠?^^

울보 2006-05-2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분 만나세요,,

라주미힌 2006-05-22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전차남 분위기...
전화해서 만납시다~! 이래요? ㅎㅎㅎ
못해~~~~~~
야심만만 봐야지. ^^;

하늘바람 2006-05-23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전 남자들은 다 잘하는 줄 알았어요 ㅠㅠ 광태형 광식이 빼고

bonnie11 2006-05-23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걍 자리 마련해 달래서 만나시고, 맘에 드시면 꼭 전화하세요..문자하시지 말고요..^^(<-저는 '자기만의방'입니다...ㅋㅋ저번에 뵈어서 반가웠어요)

라주미힌 2006-05-23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자기만의 방님 ^^;;; 얘기도 별로 못 나누고... 아쉬워용
RG에 자주 들르시면 RG만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어요~~~ 자주 뵈요.
 
 전출처 : mannerist > 마태우스님께: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

관련 페이퍼: http://www.aladin.co.kr/blog/mypaper/880965

제 댓글의 핵심은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의 확립'을 외쳐온 노빠들이 승리 지상주의, 그것도 본질의 변화 없는 껍데기에 대한 숭상, 눈가리고 아옹으로 다시 한 번 속아달라고 호소하는 데 있습니다. 이미지정치에 대한 흐름의 지적은 인정하다 치더라도 그 이미지를 뒷받침할 정책집 자체가 전문지식이 전무한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단언컨데, 둘은 오로지 카메라 앞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있다면 대한민국 1%의 집단과 10%의 집단간의 차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90%에게는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디테일하게 하나하나 따져보겠습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감세 정책 하나만 논해봅시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TV토론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에게 법인세 인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이회창의 적극 찬성에 반하여, 한국 최상위층 대기업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법인세 감세에는 적극적으로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이제 시간을 1년 뒤로 돌려보겠습니다. 2003년 8월  한나라당은 '27%~15%'였던 당시 법인세율을 '26~13%'로 각각 1%P, 2%P씩 인하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을 제출했습니다. 저 비율을 나누는 기준이 아마 1억일겁니다.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해도 모자랄 판에, 그해 12월 재경부 출신 여당 의원들의 적극적인 공세로 25~13%로 법인세율을 인하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과세표준 1억 이상 대상에 있어 한나라당보다 1%더 나아간 안건입니다. 노통은 이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감세된 돈의 대부분은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돌아갔고 2조가 넘는 그 돈은 서민들 삥 뜯어 채웠습니다.

2004년의 소득세와 특소세 감세를 이야기해볼까요? 다시 감소된 소득세 1%를 뜯어보면 자영업자 상위 10%가 세금 감면액의 70%이상을 가져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소세 물품 24개 종목, 골프채나 PDP같은 제품들 특소세 감면과 월소득 200 ~ 300만원의 서민 경제 활성화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저는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부동산 대책도 한 번 이야기해봅시다. 아파트에 규제를 하면 주상복합을 풀어주고 주상복합을 규제하면 재개발을 풀어주는 등, 투기처 잃은 돈의 사용처를 정책으로 지적해 가며 풀어준 건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참여정부입니다.

외평채 문제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대기업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팔아치울때마다 떨어지는 환율을 방어하려고 원화 풀어놓고, 그렇게 달러가 방어되면 다시 대기업들이 달러 팔아치워 자사주 매입하고, 그렇게 떨어진 환율 다시 원화 풀고... 이런 악순환을 계속 하는 동안 현재 외평채가 30조원인 걸로 압니다. 2000년의 자그만치 다섯 배인가 여섯 배인가 그럴겁니다. 감이 잘 안오실지 모르니 쉽게 이야기해서, 국민들 세금 빨아내서 대기업 수익 채워주는 보조로 쓰인 돈이 2000년에 비해 다섯 배인가 여섯 배가 늘었다는 이야깁니다. 그렇다고 대기업의 고용 효과가 그렇게 늘어나지도 않았습니다. 기술집약적 사업, 비용 절감 등을 통해 고용창출 효과는 전시대에 비해 미미한 수준입니다.

FTA? 자신감 운운하며 재경부 관료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귀 막고 있습니다.

국보법 폐지 못했습니다.

사학법 절름발이 만들어놓고 그나마도 못하겠다고 '협의의 가능성'을 열어놓겠다고 합니다.

민주노동당과 협의해서 처리한 것이라고는 최근의 국민소환제 뿐입니다. 그나마도 하다하다 막판에 울며 겨자먹기로 생색낸 흔적이 역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입만 열면 개혁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정적인 국면에서는 한나라당과 손을 잡거나, 그보다 더한 일을 벌이는 열린우리당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대놓고 자신들의 욕망을 부르짖는 한나라당보다, 개혁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뒤에서 저런 짓을 벌이는 데 한나라당보다 더한 비난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태우스님께 감히 여쭙습니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치적 차이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개별 정책과 노선에 대해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신문지상에 오르고내리는 말잔치 말고, 실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보인 행보가 무엇인지 말입니다. 결과가 없는 수사란 정치적 책임의 소재일 뿐입니다.

 

제가 열린우리당과 강금실을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개혁 팔아 자신들의 권력과 잇속 챙기는 것 말고는 철저한 무능력과 구태를 보인 집단이, 반성 없이 얼굴마담 내세워서 면피해보려는 모양새를 또 보이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강금실의 비정치적 장점은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선거 승리를 위해 모인 비한나라당 잡색군)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노무현에 대한 비판적 지지의 결과를 되새겨보고도 얻는 게 없다면, 다시 한 번 어리석음을 범하는 일일지 모릅니다.

 

일단 제 댓글의 핵심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별 차이가 없다는 제 주장에 대해 충분히 논증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는 퇴근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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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드무비 > 끝전 몇 닢 - 이병훈 詩

천 년을 이어온 봄도

가난한 자의 마당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작아진다

울타리 말목 끝에 참새 지저귀다가

가곤 없었고

두꺼운 흙을 열고 나타나는 애기상치도

금새 뽑혀가곤 없었다

둥우리에서 막 기어나온 병아리가

걷기 시작하자

장바닥에 팔려가곤 없었다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가난한 자에 이르러서는

끝전만 돌아왔다


                               -- 이병훈 시인(1925년~ ), 도서풀판 b <한국대표노동시집>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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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상치도 병아리도 미처 자랄 새가 없는 가난한 자의 마당.
탄식하지 않고 하소연하지 않고 가난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목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끝전만......

이런 시를 만나면 시인들이 몹시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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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네 권

데이비드 크리스털(지음), 권루시안(옮김), <<언어의 죽음>>, 이론과실천, 2005.
다니엘 네틀/ 수잔 로메인(지음), 김정화(옮김), <<사라져가는 목소리들>>, 이제이북스, 2003 초판 1쇄, 2006 초판 2쇄.

두 권의 책 모두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언어의 소멸을 다루고 있으나 그 범위는 다르다. 데이비드 크리스털의 책은 '언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언어의 죽음이 우리와 무슨 상관인가', '언어는 왜 죽는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목차 구성을 보아도 언어 그 자체에 머무르고 있음이 확연한 반면, 뒤의 것은 언어는 물론이고 그것과 연결된 생태 세계까지도 자신의 범위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문화로서의 언어, 인간 존재의 일부로서의 언어에서 생태계와 환경보존으로, 토착어와 지배적인 국제어들의 관계에서 정치.사회.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형성되는 구도로, 신석기 농업혁명과 유라시아 세력의 확산 및 신세계의 식민화에서 선진국 주도의 경제개발과 그 파장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문화-언어적 다원주의에서 농촌의 보호와 발전 및 지속가능한 개발까지 그 범위는 전 지구적이어서 대이론을 즐기는 심성을 충족시켜주나 그 논증의 치밀함에 대해서는 판단할 수 없다.


폴 비릴리오(지음), 이재원(옮김), <<속도와 정치>>, 그린비, 2004.
배영달(옮김), <<정보과학의 폭탄>>, 울력, 2002.

우리는 책이 보편적 상황에서 쓰여지고 독자 일반을 대상으로 하며 보편언명으로 가득차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히려 저자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독자를 향해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책을 쓴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세팅을 찾아보는 것이 어쩌면 책의 이해에 요구되는 필수조건이 될지도 모른다. 이는 넓은 의미로는 콘텍스트에 속하지만 정확하게는 개별적 세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좀처럼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는 시대정신을 공유하였다고 믿어지는 과거의 저자들과는 달리 현대의 저작에서 더욱 더 긴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의 저자들은 '현대'라는 동일한 상황 속에 처해있는 듯하나 각각이 받아들이고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는 핵심 부위는 각자 다르다. 저자의 처지, 책에 대한 태도, 구체적인 목표 또한 아주 다르다. 거기에 덧붙여 책이 하나의 상품으로서 만들어지는 상황에서는 독자가 고려해야 할 것들이 더욱 많아진다. 독자를 감안한 -- 엄밀하게는 판매를 계산한 -- 출판사의 요구, 편집자의 개입이 책 어딘가에 분명히 들어있을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은 저자의 이름 아래 감추어 있기 때문에 어떤 책을 들었을때에는 '과연 이 책이 온전하게 철두철미 저자의 노고의 산물인가'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내가 이러한 의문을 떠올린 것은 비릴리오의 책을 읽으면서 그의 individual setting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비릴리오가 자신의 일상에서 경험하는 '당대'와 '사회'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또는 그가 은둔하고 있다는 프랑스 서부의 항구 도시 라로셀, 그리고 그가 교수로 재직하였던 파리의 건축전문학교에서의 경험들은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것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 -- 이러한 궁금증은 연예인에 대한 호기심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이다 -- 그의 저작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1932년 생인 그의 삶과 그것으로부터 길어 올려진 그의 이론을 "히틀러가 낳은 전격전의 아이"라는 말로 압축하는 것이 과연 제대로 된 것일까, 더 나아가 당대의 사회에 밀착해 있는 그의 이론들은 그의 이론을 낳아놓은 토대로 추측되는 그의 경험들 -- 전격전, 68혁명 등 -- 을 전혀 공유하고 있지 않은 한국의 독자에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아니 이해될 수조차 있는가, 그것은 차치하고라도 <<속도와 정치>>의 번역자가 시도하고 있는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과 비릴리오의 저서를 비교해" 보려는 것은 두 저작의 저자들 모두의 individual setting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일종의 지적 폭력 또는 지적 어거지는 아닐까? 쓸데없어 보이는 생각이다.

논증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 <<속도와 정치>>의 내용 자체의 이해를 위해서는 앞 부분에 붙어있는 존 아미티지의 서문 "폴 비릴리오의 정치이론"을 읽어 정리한 뒤, 그것을 비릴리오의 본문 내용과 대조해 보아야 하나 내게는 진척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미티지는 비릴리오 이해의 비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까닭에 아미티지의 정리에서 몇가지 명제들을 떼어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아미티지에 따르면 비릴리오의 이론은 근대도시의 성장과 인간 사회의 진화를 상당히 설득력있게 설명해주는 전쟁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들어 요새화된 도시는 부동의 전쟁 기계이고 거주의 관성이 지배했던 정치적 공간이자 정치의 특정한 배치이며, 봉건제 시대의 물질적 토대이다. 그러므로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은 경제적 변화였다기 보다는 군사적.공간적.정치적.기술적 변형이었다. 마르크스가 유물론적 역사개념을 쓴 곳에서 비릴리오는 군사적 역사개념을 쓰고 있는 셈이다.

아미티지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군사전략, 공간 계획 등이 비릴리오의 정치이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주요 참조점이며, 근본적으로 그는 기술에 대한 인식을 통해 모더니티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비릴리오는 현대의 군국주의와 영토의 공간적 조직화 밑에 깔린 정치적 논리를 이론화하면서 21세기의 질주학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을 조망하고, 군사적 역사개념과 과학기술을 활용한 인간 신체의 내부 식민화라는 개념을 통해 모더니티를 재해석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미티지에 따르면 인간 신체의 내부 식민화는 '이식혁명'으로 집약할 수 있겠는데, 이는 인간의 신체와 기술을 구분해주었던 경계가 거의 완전히 붕괴된 상황으로서 인류는 사물 자체 혹은 인간의 삶을 포함해 모든 것을 탈산업적 과학기술 생산과정의 원료로 만들어 버리는 세계에 종속된 기계적 존재가 되어가는 것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태를 현대 인류의 신기원의 출발점으로 여겨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사례를 어디선가 본 듯도 하나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나는 비릴리오의 주장의 구체적 사례를 찰머스 존슨의 인터뷰에서 발견한다.

본래는 1977년에 나온 <<속도와 정치>>에 비해 한참이나 나중에 출간된 <<정보과학의 폭탄>>(1998)은 '질량전쟁', '에너지 전쟁'에 이은 '정보전쟁'에 관한 단상 묶음이다. 이 책은 <<속도와 정치>>에 비해 독서가 수월했으나 다음 몇 가지 주장 외에는 거의 동어반복들이었다.

역사의 종말 대신에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지리의 종말이다.
시각적 연속성이 국가 간의 영토적 접근성을 대신한다.
수송과 전달의 시간적 압축에서 생겨나는 극단적인 거리의 축소는 원격감시의 일반화를 불러온다.
인간 종의 인위적 선택은 새로운 우생학을 낳아 놓았다.
생명공학의 절차에 의해 생물을 산업화하려는 것은 프로메테우스적인 제조를 끝내는 것이다.

 

출처 : http://armarius.net/ex_libris/archives/0007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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