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 반대편에 처음 가봤다. ㅡ..ㅡ;

이런게 있었구나.. 흠.. 이건 모야.. 오.. 흠...

갈 일이 없었지... 출퇴근 길만 왔다리 갔다리...

 

처음 이사 왔을 때는 잠깐 슈퍼 찾으러 갔다가

경비 아저씨들한테 '우리 집 어디에요?' 묻고 다녔었다...

공간 감각 증진을 위한 '3개월 완성'  이런거 뭐 없나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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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5-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같이 들어요.

하이드 2006-05-23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씨, 너무 슬프다. 훌쩍 ㅜㅜ

ceylontea 2006-05-23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우리 집이 어디예요.. ^^
기운내세요.. 추천입니다.. 흐..

하늘바람 2006-05-23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한 이년살아야 동네 익숙해지죠
 

다들 일어나서 인사를 한다...

 

아침에 아무도 없을 때 가서 그런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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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2006-05-23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하... 그 상황 떠올라요!!^^
저도 그런적 있는데 깜짝 놀랜거 있죠. 들어가는 순간 어서오십시오~ 하는데..화들짝! 괜히 얼굴 붉어졌어요.^^

라주미힌 2006-05-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머리 긁적긁적...

ceylontea 2006-05-2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IP고객인줄 알고 인사를 하지 않았을까요? ^^==3==3

마늘빵 2006-05-23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이 돈 좀 있게 생기셨죠 ㅋㅋㅋ
 
 전출처 : balmas > 여성총리시대는 다른가?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여성총리시대는 다른가?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해

조이여울 기자
2006-05-17 17:11:24


<이 글은 이대대학원신문 52호에 기고한 글을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게 된 사실이 갖는 의미에 대해 많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맞물린 질문입니다. ‘이미지 정치’에 휘둘려 온 역사가 깊기에, 이 사안에 대해 합리적이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 사안은 잠시 우리의 눈과 귀를 잡아 끈다고 하여 섣불리 판단할 일이 아니라, 솔직하고 공정한 평가를 내려야 합니다.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으로 한명숙씨가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연합, 그리고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는 한명숙씨가 “새로운 여성정치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며 총리 임명을 “희망”하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명숙씨의 정치적 소신이나 지금까지의 정치활동에 대해 “새로운 여성정치의 전형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릴 근거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여성단체들이 책임지지 못할 주장을 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됐습니다.

여성단체뿐 아니라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언론들이 여성총리의 탄생을 여성의 정치세력화와 연결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여성정치세력화에 대한 인식의 수준과 관심의 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라 짐작해봅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성총리의 탄생과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과연 여성정치세력화와 어떤 연관이 얼만큼 있는 것인지 조금만 깊이 들어가보자고 제안을 해보고 싶습니다.

애초 이해찬 전 총리의 후임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누구를 지명할 것인가의 문제에 있어서, 한나라당은 여성총리를 지명하라고 제안한 바 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은 “당 대표가 여성인 한나라당은 이 문제를 말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노무현 대통령은 한명숙 열린우리당 의원을 새 총리로 발탁했고 국회의 비준도 무난히 거쳤습니다. 한명숙 총리는 취임 직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만나 여성들의 정치 참여에 박 대표가 “개척자 역할”을 해주었다고 말했지요. 인사성 멘트라고 하기엔 과도한 발언이었습니다. 박근혜씨와 ‘박씨 이외의 모든 여성들’의 정치참여 조건은 너무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성총리의 탄생은 이제 대한민국이 여성총리를 낼 때가 되었다는 정계의 합의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면을 읽어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정치세력화를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입니다. 총리를 만드는 권력이 누구에게서 나왔는가를 살펴보았을 때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여성이 총리 자리에 앉는 것에 대해 거대 야당도, 여당도, 대통령도, 그리 불편해하거나 크게 다툴 소지가 없었습니다. 생활의 장에서, 지역 사회에서, 정당 내부에서 여성의 정치세력화가 높은 벽에 부딪히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여성총리의 탄생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그 과정에서 어느 쪽도 이해관계에 있어 손실을 입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총리를 기용한 것이 ‘이미지 정치’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혹은 우려가 총리 취임 이전부터 제기되어 온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재야운동권 출신이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여성부,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한명숙 총리에 대한 평가는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지만 주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온화한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국정홍보처장이 정부 각 부처 별로 ‘한명숙 총리의 대외적 이미지를 올릴 수 있는 방안을 만들라’고 지시한 사실이 모 일간지에 보도된 바 있지요. 한 총리는 스스로 “얼굴마담”은 되지 않을 것이라 공언했지만, 총리가 여성이라는 점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이미지 공략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됩니다.

한명숙 총리와 여성정치세력화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정작 주요하게 물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우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여성총리에게 거는 기대, 혹은 여성총리를 낸 정치권에 거는 기대는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철도공사가 KTX 여승무원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것인가요, 나아가 여성의 빈곤화와 맞물린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해나가는 것인가요, 참여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방향타를 여성인권의 관점으로 돌려놓는 것인가요, 이번 지방선거에서 있어서 여성들의 공정한 정치참여가 가능하게 만드는 것인가요, 제2의 황우석 사태를 예방하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인가요, 쏟아지는 개발국책사업을 막고 생태계와 우리의 미래를 지켜내는 것인가요.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동맹관계 속에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하고 인권과 복지에 쓰일 예산을 확보하는 것인가요.

여성총리의 탄생 ‘의의’가 무엇인가는 이러한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았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여성총리의 탄생과 관련해 그저 여성이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 이외에 구체적인 어떤 변화도 기대하지 않았다면, 혹은 남성총리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들을 여성총리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과연 여성총리의 탄생이 여성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반대로 우리가 여성총리 시대를 맞아 평등과 평화,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해 위에 열거한 바와 같은 구체적인 실천과 변화의 조짐을 기대했다면, 지금 한명숙 총리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과 그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은 상당히 우려되거나 벌써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이상이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첫 여성총리가 탄생하게 된 사실과 여성정치세력화와의 연관성에 대한 솔직한 평가와 생각들입니다. 여성정치세력화의 목적은 여성들에게 공정한 정치를 실현시키는 것에 있으며, 결코 소수 여성들이 정계에 진출하여 성공하는 정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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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신청한다...
 
성석제의 '소풍'
 
 
 
 
소풍의 절정은 소풍가기 전날 밤이죠..
 
주섬주섬 담아 놓은 '먹을 것들'은 가방에 가득한데,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내일은 느릿느릿 다가옵니다.
설레임 반, 기대 반으로 설레발 치다가 잠들어 버리고,
김밥냄새가 깨우는 분주한 아침의 모습은 영원히 그리운 기억입니다.
 
소풍이 사라진 세대...
일상에서 한 걸음 벗어나 다른 공간에 이르고자
하나같이 동심을 염원합니다.
 
친구와 자연과 먹을 것
성석제의 입담은 아마도 우리를 저 먼 곳으로 데려가 줄 것 같습니다.
즐거운 여행이겠지요.
 
 
성석제 좋아합니다.
 
 
 
 
뽑힐라나...
옥루몽도 있던데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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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스 2006-05-23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뽑히시길.. ^^;;

stella.K 2006-05-23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물넷 저도 회원신청 할까 봐요. 안하고 버텨봤는데 잘 하면 그 쪽으로 이사할까 합니다. 알라딘은 노출이 너무 많이 되서 숨어있을 때도 없어요. ㅜ.ㅜ
 

관찰 순간 대상은 사라지고 선택만 남는다

글 | 이기우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ㆍ

상상 속의 ‘초고성능 현미경’을 통해 원자 이하의 세계(예컨대 전자)를 들여다본다고 치자. 이때 우리는 현미경에 감마선을 쏘아야 한다. 전자보다 파장이 긴 일반광선으로는 전자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마선은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다는 게 문제다. 감마선이 전자를 때리면 그것은 그 전자의 존재는 밝혀내지만 불행히도 전자를 제 궤도에서 쳐내어 그 방향과 속도(운동량)를 변화시키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감마선 대신 에너지가 약한 빛을 쓴다면 그 빛은 파장이 너무 길어 전자가 어디 있는지 보여 주지 못한다. 우리는 움직이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길이 없다! 아원자(亞原子·원자 이하)의 세계에서는 대상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현실을 관찰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게 불확정성원리의 제1차적 의의다.

동양사상에 정통한 미국의 과학이론가인 게리 주카브는 1979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춤추는 물리’(범양사)에서 하이젠베르크의 경이로운 발견을 이렇게 풀이한다.

“움직이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결정할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운동입자를 결코 ‘실제 모습대로’ 볼 수 없으며, 오직 우리가 선택하는 데 따라 그 대상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철학적 함의는 현란하다. 인간은 이 세계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실상 그 현실을 창조한다! 인간이 스스로 측정할 속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 속성 자체를 지어 낸다고 해야 할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자들은 묻고 또 물었다. 우리가 운동량 측정 실험을 하기 이전에 운동량을 가진 입자가 존재했던가? 우리가 위치 측정 실험을 하기 이전에 위치가 있는 입자가 있었던가? 우리가 입자에 대해 생각하고 측정하기 이전에 도대체 입자가 존재했을까? 지금 우리가 실험하고 있는 입자들을 우리가 지어 낸 것은 아닐까?

과학자들만이 이런 의문을 좇았던 것은 아니다. 2000년도 훨씬 전에 수많은 힌두교도와 불교도도 같은 문제를 궁구했다. 혜능선사의 저 유명한 ‘풍번문답(風幡問答)’을 보자.

바람이 불어 깃발이 나부끼자 두 승려가 입씨름을 벌였다. 한 승려는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 했고 다른 승려는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라 맞섰다. 혜능이 나아가 말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움직이는 것은 너희 마음이니라….”

데모크리토스와 탈레스, 피타고라스의 학문적 후예들이 도달한 현대물리학의 자연관이 인더스와 갠지스, 그리고 양쯔와 황허 강 유역에서 태어난 주관주의 사유의 우주상과 만나고 있는 게 아닐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객관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주카브는 우리와 분리돼 ‘저 바깥(out there)’에 존재하는 외부세계란 관념에 불과하다고 자른다. 심리학자 융의 주장대로 이 세계는 우리의 내면이 연출한 것일까?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파울리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psyche)이 외향성을 띠고 바깥, 즉 물리적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원자 이하의 차원에서 객관과 주관의 구분은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우주의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 우주가 그 스스로를 드러내는 문이 되었다.

양자역학은 20세기의 선문답을 던진다.

새로운 물리학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했느냐? 우리를 우리 자신에게로 회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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