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다리 할머니 해녀 "다들 노력하며 살잖아..."
[TV리포트 2006-06-16 11:10]    

30년간 한 다리로 바다 속을 헤엄쳐온 해녀가 있다.

SBS ‘세상에 이런 일이’는 15일, 신체적 핸디캡을 딛고 30년째 물질을 하며 희망을 찾고 있는 제주도 해녀 김춘자(55)씨의 사연을 전해 깊은 감동을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를 사용할 수 없는 춘자씨는 목발을 짚고 다닐 정도로 다리가 불편하지만 한 다리로 헤엄치며 30년째 해녀일을 해오고 있다.

건강한 몸으로도 하기 힘든 해녀 일을 한발로 하기란 쉽지 않은 일. 주위에선 이런 춘자씨의 모습을 보고 걱정과 함께 탄성을 내뱉을 수 밖에 없다. 한발로는 중심잡기도 힘든 상황에서 잠수까지 해 다른 해녀들 못지 않게 해산물을 수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춘자씨는 오히려 목발이 필요 없는 물 속에서 더 큰 자유로움을 느낀다며 뭐가 문제냐는 말투다. 다른 해녀들만큼 하려면 몇 배는 더 일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힘든 내색 한번 없어 이미 베테랑 해녀로 인정 받기도 했다.

그런데 춘자씨가 해녀가 된 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고 한다. 스무살 무렵 어린 나이에 두 아이를 낳은 춘자씨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홀로 아이를 키워야 했다. 그 때 다리가 불편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물질`이었던 것.

그 후 해녀로 살아온 30년 동안 건강이 악화돼 힘든 적도 많았지만 자식들을 생각하며 힘들어도 참아야 했다. 남편 없이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터라 해녀로서의 삶을 살며 더 강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장애로 인해 남들보다 배로 힘든 세월을 보내야 했지만 아이들이 잘 커준 것이 마냥 기쁘고 행복하다는 춘자씨.

이제는 장성한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말리고 있지만 30년간 계속해온 일을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없다며 마음을 다잡는다.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서너시간씩 작업을 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지만 그곳에서 자유와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매일 노력해야지. 이렇게 장애인만 힘든 게 아니고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자면 다 힘들어. 다 노력해야 살잖아…”

긴 시간 바닷속 작업을 마치고 물결 위에서 뱉어내는 춘자씨의 ‘숨비소리’는 긴 여운을 남겼다.

(사진 = S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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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데르수 우잘라, 숲이 된 사람

금요일자 한겨레의 책-지성 섹션을 챙겨보는 편인데, 가끔 '아깝다 이책'란에 눈길이 오래 머물곤 한다. 오늘도 그러한데, 작년 11월에 출간된 책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에 대해서 출판사 기획실장 임병삼씨의 글을 읽으면서 '한동안 잊었던 책'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왜 다루지 않았을까 의아한 생각이 드는데, 여하튼 초판의 절반 정도가 창고에 남아있다고 하니까 책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아 보인다. 뒷북치는 기분으로 임병삼씨의 글과 함께 언론의 리뷰 두 편, 그리고 구로사와의 영화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소개 영화평 하나를 차례로 옮겨놓는다. <데르수 우잘라>에 대한 나대로의 '자료집성'이다. 

 

 

 

 

한겨레(06. 06. 16) 전화가 뜸한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부천에 산다는 독자였다. <데르수 우잘라>를 감동 깊게 읽었고 이런 책을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단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다른 책이 국내에 나왔는지, 없다면 갈라파고스에서 낼 생각이 있는지 묻는다. 잠시 머뭇거리자 왜 책이 잘 안 팔리느냐면서 그렇다면 자기라도 열심히 ‘입선전’을 해주겠다고 한다. 이 책을 내고 여러 사람에게서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서점의 어느 독자는 리뷰란에 이 책을 보고 왜 자기가 울었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 방식으로 이 책의 감동을 전하고 있다. 출판동네 15년이 넘지만 낸 책을 잘 보았다는 독자 전화를 받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이쯤되면 행복하고 고마운 일이지 않는가? 하지만 또다른 현실이 나를 슬프게 한다. 창고에 가득 쌓여 있는 책들 때문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초판 2000부를 발행해 반년이 지난 지금, 초판의 반 가까운 부수의 재고가 오늘도 독자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 책에 대해 러시아의 대문호 고리키는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귀하의 책은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토록 중요한 과학적 가치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고, 풍부한 자연묘사와 특유의 표현력에 저는 완전히 반해버렸습니다.… 귀하의 친구였던 데르수는 이제 더는 ‘짐승의 발자국을 뒤쫓는 야만적인 사냥꾼’이 아닙니다.그는 우리가 이룩한 문명에 대한 심판자이며,또한 감히 넘볼 수 없었던 ‘예술의 본질’을 일깨워준 선구자입니다.귀하의 삶에 이런 친구가 있었다는 데 대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책은 광활한 시베리아에서 자연을 존중하며 자연과 교감했던 원주민 사냥꾼 ‘데르수 우잘라'의 삶을 그린 논픽션이다. 지은이 아르세니에프는 러시아군의 극동기지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의용병 부대의 지휘관이며, 러시아 극동 탐험가이자 지리학자이며 작가였다(*사진은 저자인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 우잘라의 초상을 담은 소련의 우표). 당시의 의용병 부대는 수렵과 탐사가 주임무로, 오지를 수색할 때가 많았다. 전투훈련 대신 시호테 알린 일대와 연해지방의 지형 및 도로를 조사했으며, 전시에는 정찰과 길안내를 맡았다. 이 책은 이곳의 원주민이었던 데르수 우잘라가 1902년부터 1910년에 걸쳐 아르세니에프의 탐사대와 함께한 나날들, 그리고 그가 총과 돈을 노린 러시아 사람에게 살해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데르수는 항상 사냥해온 것을 이웃과 똑같이 나눠가졌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고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자연과 하나 되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순수하게 존재할 수 있으며, 소위 문명화된 인간에게 퇴화된 능력을 어디까지 지니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정복과 승리 대신 공존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야생의 삶을 보여주는 이 책은 키플링이 쓴 <정글북> 혹은, 페니모어 쿠퍼의 <모히칸 족의 최후>와 비견될 만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75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데르수 우잘라>를 원작으로 동명의 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과 모스크바 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했다.

-오는 8월 정년퇴임을 앞둔 성공회대학 신영복 교수가 어느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 수업에서 `사회는 우직한 사람들의 선택에 의해 나아간다’는 교훈을 주고싶다”며 “어리석은 사람의 우직함 때문에 세상이 더 나아진다는 가르침을 전해 주려한다”고 말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데르수 우잘라’야말로 신영복 선생님이 말한 그런 사람의 전형이 아닐까. 

동아일보(05. 11. 26) 차갑고 조용한 밤이었다. 데르수는 숲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와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아까부터 뭐라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그는 계곡을 타고 조잘거리며 흐르는 시냇물이 어제 갑자기 불어 닥친 바람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마른 풀은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탄한다고 말했다. 데르수의 모습이 벌겋게 타오르는 불빛을 받아 신비롭게 비쳤다. 어둠 저편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푸른 달빛을 닮아 있었다. 이 야만인은 하늘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무슨 원시적인 종교가 남아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매번 그의 설명은 싱거웠다. 별이 뭘까? “저기 별 떴다. 보면 된다.” 달은 뭘까? “눈 있는 사람. 달 본다. 저게 달이다.” 그러면 하늘은? “환할 땐 파랗다. 캄캄해지면 까맣다. 비 올 때 흐리다….” 무한함 앞에서 느끼는 공포와 허무의식, 그것은 문명인만이 갖고 있는 것일까. 시베리아 우수리 강변의 숲이 된 사람, 데르수 우잘라. 그는 20세기 초반만 해도 태곳적 모습을 간직하고 있던 시베리아의 원주민 고리드족의 후예다. 생명이 생명으로 대접받던 원시의 나날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냥꾼이다.

-데르수는 1902년부터 저자가 이끌었던 러시아 극동탐사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수렵부대의 지휘관으로 있던 저자는 당시 지도상의 빈칸으로 남아 있던 연해주 시호테알린 산맥 중부지대를 훑었다. 저자는 데르수와 동행하며 자연과 더불어 모든 생명체와 나눔의 기쁨을 함께하는 원시인의 삶의 지혜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 책은 그 생생한 기록이다.



-평생을 숲과 함께 살아온 데르수는 아무 욕심이 없었다. 사냥을 하면 이웃과 똑같이 나눠 가졌고, 얼룩바다표범과도 말을 주고받았다. 그는 짐승을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잉크’라는 말은 몰라 ‘더러운 물’이라고 표현했다. 저자는 10년에 걸친 탐사가 끝나자 데르수를 데리고 하바로프스크로 돌아왔다. 그의 몸은 병들어 더는 숲에서 혼자 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자유로운 영혼은 갑갑한 문명을 견디지 못했다. 한번은 수도요금을 계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미쳤다! 물마시고 돈 준다! 강에 돈 안 줬다!” 데르수는 아무르 강을 떠올렸다. “거기 물 많다!”

-그는 도시에서의 삶이 얼마나 각박한지 조금씩 깨달아 갔다. 그는 도시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호랑이가 아닌 사람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그에게는 풍요로운 도시보다는 춥고 배고픈 숲이 더 행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데르수는 아무 말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2주일 뒤 변시체로 발견된다. 강도의 소행이었다. 숲에서 태어난 데르수는 결국 숲에 묻혔다. 커다란 시베리아소나무가 곁을 지키고 있는 그의 무덤가에 어디선가 참새 한 마리가 후르르 날아들었다. “의젓한 사람!” 데르수는 이 새를 그렇게 불렀었다….

한겨레(05. 11. 25)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펴냄)는 1907년 6월22일부터 이듬해 1월4일까지 지도상의 빈칸이었던 연해주 시호테 알린 산맥 동쪽지역을 탐사한 기록이다. 원제는 <우수리 지역의 밀림에서>(*사진은 러시아어 원본). 지은이는 러시아 극동군 소속 정찰부대 지휘관.

-군용 보고서와 별도로 1923년 출간된 이 책은 출간당시 고리키로부터 풍부하고 꼼꼼한 자연묘사와 표현력으로 찬사를 받은 바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1975년, 일본인 구로사와 아키라에게 눈에 띄어 ‘데르수 우잘라’라는 고리드족 출신 원주민 안내자한테 초점이 옮겨와 영화로 만들어진다. 2005년 한국 독자한테도 사정은 비슷하다.

-발자국, 모닥불 흔적으로 그 사람의 나이와 행적을 알아맞힌다든가 달무리나 메아리의 크기로 다음날 날씨를 예견하는 따위는 데르수의 신기한 면모일 따름. 그는 별, 폭포, 강 등 자연물은 물론 물고기, 얼룩 바다표범, 호랑이, 사슴 등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실제로 물고기로부터 그곳에 야영을 하지 말라는 말 뒤에 정체불명의 야수가 스멀거렸다든가, 바다표범이 인간의 머릿수를 세고 있는 것에 분개한다든가, 설득하여 물러가는 호랑이를 쏘아 죽인 뒤 가슴 아파하는 따위가 그것이다.

-그의 진면목은 인간과 자연이 다르지 않다는 인식. 어느 날 저녁, 지은이가 모닥불에 던진 찌꺼기 고기를 끄집어내면서 “우리는 내일 떠나지만 여기에 다른 사람이 온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다른 ‘사람’은 너구리, 오소리, 까마귀, 쥐, 개미였던 것. 금을 찾다가 굶어죽은 밀림속 조선인 인골, 화전과 담비 사냥으로 물레방아와 맷돌을 이용하며 사는 이주 조선인 대목에서는 일제하 유랑했던 윗대의 삶을 엿보게 한다.

 

씨네21(02. 09. 12) 구로사와 낯설게 보기, <데르수 우잘라>

-구로사와 아키라의 65년작 <붉은 수염>은 두 주인공이 영광스럽게 걸어들어가는 진료소의 문을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데, 돌이켜보면 이것은 구로사와의 빛나던 한 시대가 이제 그만 막을 내리게 되었음을 알려주는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후로 구로사와는 결코 짧다고는 할 수 없는 실의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이다. <폭주 기관차>나 <도라! 도라! 도라!> 같은 미국과의 합작 프로젝트가 연이어 불발로 그쳤는가 하면, <붉은 수염> 이후 무려 5년 만에 내놓은 야심찬 ‘실험작’ <도데스카덴>(1970)은 (상업적)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구로사와는 그새 일본의 제작자들로부터 흥행성이 없는 영화감독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그래서 좀체 영화제작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구로사와에게 길을 터준 것이 바로 소련의 영화제작사 모스필름(Mosfilm)이었다. 모스필름으로부터 제작 의뢰를 받은 구로사와는 조감독 시절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프로젝트- 러시아 탐험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이야기를 영화화하겠다는- 를 꺼내놓았다. 그렇게 구로사와의 열망까지 채워주며 그야말로 오랜만에 만들어진 <데르수 우잘라>(1975)는 침체에 빠져 있던 그의 70년대를 그나마 완전한 불모의 시기가 되지 않게 막아주었다고 기록될 만한 영화다.

-영화는 1910년, 아르세니에프(유리 살로민)라는 전직 군인 겸 탐험가가 옛 친구 데르수 우잘라(막심 문주크)의 묘지를 찾아와 데르수와의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1902년 지형탐사차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 온 아르세니에프는 몽골계 사냥꾼 데르수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데르수가 낯선 땅에서 고생하던 아르세니에프 일행의 안내인 역할을 맡으면서 아르세니에프와 데르수는 서로간의 신의를 쌓아간다. 아르세니에프 일행이 탐험 임무를 완수하자 두 사람은 헤어지고 1907년에 재회한다.

-구로사와의 영화들을 어느 정도 본 사람들에게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치고는 아주 ‘낯설다’는 인상부터 주게 될 그런 영화다. 이건 이 영화가 구로사와의 영화들 가운데에서는 유일하게 일본 외의 지역에서 일본인이 아닌 배우들을 데리고 찍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구로사와의 영화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상이한 양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데르수 우잘라>는 구로사와의 영화라고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 특징들, 즉 갈등들이 정묘하게 엮여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치밀한 스토리구조라든가 역동적인 시각적 스타일 같은 것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유의 영화인 것이다.

-단적으로 이것은 여느 구로사와 영화들처럼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는 ‘참여의 영화’가 아니라 관객으로 하여금 한 발짝 물러 선 자리에서 다소 초연한 태도로 보게 만드는 ‘관조의 영화’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비주얼 설계면에서나 연기면에서 과장, 장식 혹은 기교를 거의 배제한 ‘자연스런(혹은 자연주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데르수 우잘라>가 구로사와적인 표지를 완전히 지워버린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증거로 우리는 여기서도 구로사와의 데뷔작 <스가타 산시로>(1943)에서부터 꾸준히 이어져온 사제관계라는 모티브가 여실히 드러나 있음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데르수는 아르세니에프에 대해 확실히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데르수의 자발적인 선의는 아르세니에프의 감탄과 신뢰를 사기에 충분하고 심지어 데르수의 타고난 용기와 총기는 아르세니에프의 생명마저 구해주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붉은 수염>에서 결국에는 완전한 이해에 이르는 스승과 제자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사제관계이다.

-이건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데르수는 ‘자연’의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고(주위의 모든 것, 태양, 달, 바람, 물, 불 등을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반면 측량일을 하는 아르세니에프는 어쩔 수 없이 자연에 문명의 침입을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아르세니에프는 데르수에 동화하기보다는 종국에는 그의 운명에 ‘탄식’을 던질 수 있을 뿐인 것이다.

-여하튼 구로사와는 아르세니에프가 몹시 그리워하는 어조로 “데르수…” 하고 던지는 두번의 탄식을 영화의 도입부와 마지막에 배치해놓음으로써 데르수가 체현하는 그 가치에 대해 끔찍이도 향수를 가지고 있음을 효과적인 방식으로 내비친다. 즉 <데르수 우잘라>는 데르수가 대변하는, 지금은 상실했고 또 사라져버린 어떤 아름다운 세계와 그 가치에 대해 애조띤 밭은 탄식을 던지는 영화인 것이다. 그것이 너무 진부하거나 보수적이지는 않은가는 별개의 문제로 하고 말이다.(홍성남)

06. 0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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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는데,
누군가가 나한테 '설문조사' 비슷한 걸 하려는 듯 다가온다.

"월드컵에 관한 인터뷰 좀 할게요."

월드컵이라... 월드컵에 질려버린 나한테 ㅡ..ㅡ;


카메라를 들이댄다...  헉...
"네 ^_^ "


"프랑스전 보실 건가요?"
"그럴겁니다(글쎄)"

"그럴겁니다는 좀 그렇구요. 편안하게... 다시"

"프랑스전 보실 건가요?"
"10시쯤 자다 일어나서 보고 출근하면 될 것 같네요"

"일어나실 수 있으세요?"
"알람 맞춰놓으면 됩니다"

"그 시간에 못 일어나시면?"
"일어납니다."

"어디서 보실 건가요?"
"TV로 볼겁니다."

"그 시간에 보시려고 하는 이유는?"
"궁금해서요"

상대방 표정이 점점 안좋아진다... ㅎㅎㅎ

"누가 이길 것 같나요?"
"프랑스"

표정이 "이 사람 잘못됐구나" 싶다.. ㅎㅎㅎ

"몇 대 몇을 예상하시나요?"
"3:0"

ㅡ..ㅡ;

옆에 회사 동료가...
"편집 되겠다 ㅎㅎㅎ" 한다.

"방송부적격이겠죠? ㅎㅎㅎ"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네.. ㅎㅎㅎ

KBS1이라는데 정말 공영방송이 할 일이 없나보다... 

 

또 모르지 어느 스튜디오에서 나의 인터뷰 보고 '모바일 화보' 찍자고 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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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1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근데 마지막 멘트는 -_-+

stella.K 2006-06-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우리나라가 이긴다고 하시지...ㅋㅋ
 

연예인 낸시 랭의 함정

패리스 힐튼의 라이벌이 되기 쉽지 않은 예술가 엔터테이너…대중이 볼 일없는 작품으로 끝없이 권위를 창출해야하는 아이러니

▣ 강명석 대중문화평론가

혹시 연예인이 되고 싶은가? 그런데 아무리 홍익대와 청담동을 돌아다녀도 어떤 프로듀서나 연예기획사 관계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가? 그러면 지금부터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준비해라. S라인 몸매와 얼짱 외모. 그것만 있어도 당신은 텔레비전에 출연할 수 있다. 외모와 춤이 되면 SBS <진실게임>에 출연할 수 있고, 인터넷에서 섹시한 춤이나 얼굴로 화제가 되면 SBS <있다 없다>와 문화방송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검색 대왕’에 출연할 수 있을 것이다.


거기서 인상적인 모습만 보여준다면 당신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수도 있고, 인터넷 언론은 바로 그 소식을 다룰 것이다. 그 다음? 아마도 당신은 모바일 화보업체로부터 촬영 제의를 받을 것이고, 모바일 화보업체는 정식으로 보도자료를 돌릴 것이다. 농담이 아니다. 거리에서 춤추는 모습이 찍혀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떨녀’는 이 코스를 그대로 밟아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에도 출연했고, <진실게임>에서 연 4억원을 번다고 해 화제가 된 ‘4억 소녀’와 <있다 없다>에서 단백질 인형 같은 사진으로 출연한 ‘단백질 소녀’도 모바일 화보를 찍었다. 물론 이들이 아직 스타가 되진 못했다. 하지만 거기에 어떤 요소만 더 갖춰지면 진짜 스타가 될 수도 있다.

캐릭터가 컨텐츠보다 먼저인 대중문화

현영을 보라. 현영이 처음에 연예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S라인 몸매를 자랑하는 각종 화보 사진과 오락 프로그램에서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었다. 그는 연예인이었지만 연기자도, 가수도 아니었다. 다만 텔레비전에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현영의 캐릭터가 점차 인기를 얻자 그는 그 캐릭터 그대로 드라마에 출연하고, <누나의 꿈> 같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콘텐츠에서 캐릭터가 생긴 것이 아니라 캐릭터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 그 캐릭터가 되기 위한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느냐가 연예인이 되기 위한 조건이다. 연기와 노래, 뛰어난 말솜씨 같은 전문 분야의 능력은 그중 가장 가지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것일 뿐, 필수 요소는 아니다. 자신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떤 자산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면 유명해질 수 있다. 요즘 슈퍼주니어 같은 아이돌 그룹이 가수로 데뷔했으면서도 각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단 눈길을 끌어 캐릭터를 만들어야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낸시 랭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독특한 자산을 가진 ‘연예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그가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예술가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낸시 랭의 이력이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의 퍼포먼스는 초청받은 것이 아니라 그가 자의적으로 벌인 것이었고, 그의 작품이 현재 어떤 평가를 받고, 어느 정도의 수익을 내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최근 인터넷에는 그의 작품의 완성도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연예인으로서의 낸시 랭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낸시 랭은 예술가이기 때문에 대중에게 알려질 수 있었지만, 정작 대중이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작품보다는 ‘메가패스’ CF나 m.net의 <트렌드 레포트 必> 같은 프로그램을 훨씬 많이 봤을 것이다. 오히려 그가 대중에게 어필하는 건 그가 기존 예술가의 이미지를 벗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다. 앤디 워홀이 무색하게도, 한국에서 현대미술가는 대중에게 머나먼 존재다. 특히 행위예술은 여전히 ‘전위’라는 말과 통한다. 낸시 랭은 그것들을 대중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하는 접점을 만들어 예술가라는 자산을 가치 있게 이용한다. 그가 종종 벌이는 퍼포먼스는 실제로 그것을 본 사람이 얼마 없거나, 그 완성도가 떨어진다 해도 대중의 관심에 좌우되는 매체의 선택을 받을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몸을 거리에서, 각종 행사장에서 노출하고, 비욘세의 를 틀고 자신을 추종하는 ‘리틀 낸시’와 함께 홍대 거리에서 춤을 춘다. 게다가 그는 명품을 찬양하고, 예쁜 옷과 가구를 사랑한다. 즉, 그의 예술행위들에는 포장은 예술이지만 내용물은 사실 대중의 관심을 끄는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들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대중이 좋아하는 소비행위와 대중이 보길 원하는 엔터테인먼트가 낸시 랭을 통해 더욱 고급스러운 의미로 거듭난다.

비엔날레와 의류업체가 주는 신빙성?

그가 진행하는 <트렌드 레포트 必>에서는 연상녀-연하남 커플의 애정행각에 대해 인터뷰하는 것이 전부일 때도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낸시 랭은 인터뷰 등에 담긴 의미를 짚어내거나, 그것을 재료로 어떤 예술적 행위도 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이런 커플을 이루는 남자를 ‘Boy Toy’라고 명명할 뿐이다.


그러면 그게 낸시 랭이란 예술가가 말하는 ‘트렌드’가 된다. 또 연예인이 입는 옷에 관한 이야기도 낸시 랭이 쓰면 꽤나 ‘있어 보이는’ 문화 칼럼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낸시 랭이 예술가의 타이틀을 통해 뻔하고 속물적인 어떤 대중문화들에 ‘있어 보이는’ 이미지를 덧칠하면서 스스로 대중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엔터테이너가 되려 한다는 사실이다. 낸시 랭이 예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술가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예술가 낸시 랭이 하는 것이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낸시 랭의 비교대상은 앤디 워홀이 아니라 그가 라이벌이라고 밝힌 패리스 힐튼이다.

패리스 힐튼은 전문적인 연예계 활동을 거의 하지 않지만, 현재 미국에서 그 누구보다 유명한 인물이다. 호텔 재벌 힐튼가의 자식인 그는 대중이 바라는 억만장자의 모든 이미지를 충족시켜준다. 그는 대중 앞에서 아낌없이 벗고, 망가지고, 놀면서 대중의 부자에 대한 열등감과 호기심을 모두 해소해준다. 대중은 그가 망가지는 모습을 통해 부자도 별거 없다는 만족감을 느끼고, 그와 함께 드러나는 부유층의 사생활을 통해 그들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킨다. 그는 자신의 자산을 정확하게 엔터테인먼트적 가치로 환산하는 능력을 가졌다. 만약 낸시 랭이 패리스 힐튼처럼 될 수 있다면,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예술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패리스 힐튼과 낸시 랭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어지간해선 변하지 않을 부를 가진 패리스 힐튼은 그것을 자산가치 삼아 그의 삶 자체를 엔터테인먼트화했다. 실제로 그를 확실히 스타덤에 올린 리얼리티쇼 <심플 라이프>는 그의 사생활에서 오는 이미지를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로 확대재생산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라는 자산을 가진 낸시 랭은 계속 예술 관련 콘텐츠를 발표해야 하고, 그것이 예술계에서 인정받아야 한다. 그것은 그가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가 예술가의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권위’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나갔다는 사실, 그리고 한 의류업체의 디자이너로 발탁됐다는 사실이 그가 말하는 ‘트렌드’라는 것의 신빙성을 더한다. 실제로 대중이 그가 발표한 작품을 전혀 보지 못하더라도, 그는 계속 예술작품을 만들어내야 텔레비전에서도 활동할 수 있는 아이러니에 빠지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대중문화계의 독특한 상황을 보여준다.

예술가 이미지마저 뒤엎을 순 없나

만약 낸시 랭이 정말 예술가의 자산을 가진 채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생산하고 싶었다면, 그는 자신의 삶 자체로 예술가의 이미지를 뒤엎는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어야 한다. 명품을 사는 걸 좋아하고, 자신이 속물적인 사람임을 숨기지 않는 그는 예술의 의미에 대한 논쟁을 일으킬 수도 있었고, 그가 벌이는 모든 해프닝이 고상한 예술가에 대한 대중의 은근한 반감을 자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명품 핸드백을 사고서 “명품 핸드백을 사는 것은 최고의 예술행위”라며 아무 생각 없는 듯이 웃고 있는 낸시 랭을 생각해보라.


그게 바로 풍자고 엔터테인먼트 아니겠는가. 하지만 낸시 랭이나 그의 예술행위를 두고 진짜니 사기니 하는 평가를 내리는 대중이나 누군가 콘텐츠를 만들지 않고도, 혹은 그 창작행위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는 사실은 부정한다. 심지어 S라인 몸매와 얼짱, 심지어는 4억원을 번다는 사실마저도 연예인 데뷔의 수단이 되는 이 시점에도 말이다. 그래서 낸시 랭의 앞으로의 행보는 한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그가 지금의 방향을 고수하는 한, 낸시 랭은 서울대 중퇴에 사업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됐다가 그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유밀레처럼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는 객관적인 팩트나 평가가 존재하기 어려운 예술적 능력이 자산이기에 유밀레보다는 나은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유명세에 어울리는 평가를 받지 못한다면 사람들은 예술가 낸시 랭뿐만 아니라 연예인 낸시 랭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그가 자신이 가진 예술가의 이미지를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제대로 쓸 수 있다면 그는 작품활동과 별개로 대중이 가지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욕망들을 충실히 채워주고, 패리스 힐튼이 자신의 부유함으로 엔터테인먼트를 보여줬듯 예술가라는 직업만으로도 엔터테인먼트를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낸시 랭이 좋은 예술가인지는 알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중은 이런 것들에 관심조차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다만 그 모든 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그 자체다. 요즘처럼 무엇이든 재밌으면 연예계로 끌어들이는 때는 더욱 그렇다. 누구도 그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예술이건 엔터테인먼트건 ‘있는 척’하는 사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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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 진출하면 방송사 광고수입 1,100억원
16강 이상 진출하면 할증 광고료 붙어…무가지도 환호성

온 나라가 월드컵의 열풍에 휩쓸려 있는 가운데, 언론사들은 한국팀의 경기결과에 따라 큰 폭으로 오르내리는 광고 수입 규모를 따져보기 위해 계산기를 빠르게 두드리고 있다.

일부에서는 ‘스포츠데스크’ ‘축구방송사’이라고 불러야하지 않느냐는 비아냥이 나오고 있지만, 방송사들은 이같은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월드컵 방송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방송사, 4강 진출하면 1,100억 광고 수입 거둬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발행한 월간 <광고정보> 6월호에 따르면, 방송사들은 ‘월드컵 패키지’의 형태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광고정보>는 “월드컵 패키지는 월드컵 기간에 편성되는 경기 생중계 및 녹화 / 재방송/ 하이라이트 등 프로그램의 광고 시간대를 묶음 형식으로 판매하는 것”으로, “한국전 및 16강전, 결승전 등의 포함여부에 따라 1~9억원 가량의 가격대로 형성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5일 광고공사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한국 대표팀 예선전인 토고, 프랑스, 스위스의 세 경기를 비롯해 결승전까지의 실황중계와 재방송 등을 모두 합한 월드컵 특집프로그램의 광고판매액은 740억원으로 나타났다.

   
  ▲ '2006 독일 월드컵 방송광고 판매요금 (생중계의 경우) : 단위 천 원
   -출처 : 월간 <광고정보> 6월호

특히 한국팀의 순위가 올라갈수록 광고에 할증이 붙어 16강에 진출할 경우 60억원, 8강은 80억원, 4강은 90억원의 수입을 추가적으로 거두게 된다. 즉, 4강까지 진출할 경우에는 1,100억원대의 광고수입을 얻게 되는 셈이다.

<광고정보>는 “최근에는 기업들이 철저히 시청률에 기반해 방송사를 선택하고, 방송광고 순서를 지정하는 전술이 일반화되고 있다”며 “월드컵 시청률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는 한국전인가 아닌가와 중계시간, 새벽 경기일 경우 다음날이 휴일인가 아닌가, 그리고 한국전이 아닌 경우 브라질이나 영국 같은 전통 강호들의 빅 매치인가, 그리고 영원한 경쟁자 일본의 경기인가, 국민적 영웅이 된 히딩크 감독의 경기인가 등의 고려요인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광고정보>는 이어 “2002년 월드컵이 거리응원전과 TV의 월드컵이었다면, 2006년은 인터넷과 DMB의 월드컵이라고 특징 지울 수 있다”며 “다음(Daum)이 30억원을 투자해 FIFA의 중계권 판매 대행업체인 인프론트(Infront)사로부터 인터넷/모바일 중계권을 독점”해 선점한 것을 대표적 관련 사례로 꼽았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TV외에도 방송사 인터넷 /DMB/전광판/ 극장 등 가능한 모든 매체를 통한 중계권까지 상품화했을 뿐만 아니라, 실시간 생중계/ 5분, 10분 지연 등의 준 실시간 중계/ 하이라이트중계 등으로까지 세분화하여 독점 방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해 여전히 방송사가 월드컵 중계의 최대 강자임을 말해주고 있다.

무가지의 환호성, 증면에 이어 호외발행까지

이와 함께 무가지 신문들의 반격도 눈에 띈다.  <메트로>과 <데일리 포커스>는 토고전이 개최된 지난 13일 월드컵 특집 호외판 25만부와 30만부를 추가로 각각 발행하고, 서울시청 앞 광장과 상암 월드컵 경기장 부근, 그리고 지하철역에 뿌렸다. 김용태 <메트로> 편집국장은 “토고전은 2002년의 길거리 응원이 완벽하게 재연됐고, 국민적 관심도가 매우 높은 첫 경기였기 때문에 월드컵 소식을 호외판을 발행해 전달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월드컵 특수를 맞은 무가지 신문들은 요즘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메트로>의 경우, 월드컵 전에는 56면이었으나, 월드컵 개최 이후 64면으로 증면했다. 이같은 원인에는 물론 광고량의 증가가 자리잡고 있다. 김 국장은 “월드컵 이전에 비해 광고량이 확연히 늘어났다”며 “월드컵 기간 내내 이같은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메트로>와 <데일리포커스>는 한국전이 개최되는 날에는 호외판을 계속적으로 발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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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6-1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 10분만 봐도 멍청해지는 기분 든다.. ㅎㅎㅎ 시끄러워 죽겠네...
앵커들도 쪽팔린 줄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