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이 낮은 사람을 소재로 한 영화는 많다.
대체로 '주어진 환경은 어렵지만, 대단히 행복하고도 인간적인 삶을 살고 있다'라고
항변하는 게  주된 '임무'이다.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조건은 외부가 아니라 자신 스스로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라는 것인데,
이 영화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게다가 그러한 감독의 의도가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어서 불편하다.
보여지는게 아니라 보여준다.

이런 영화를 보는 시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가 궁금해진다.
그동안 받아왔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할 수 있을 수도 있겠고,
값싼 연민의 감정과 동정심 유발 할 수도 있을테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지원을 이끌어 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수평적인 시각이 가장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이 영화는 그게 좀 아쉽다.

똥폼만 잡던 신현준의 연기 변신이 놀랍지만(환영할만한), 너무 연기를 잘해서일까.
영화 내내 기봉이는 '바보'였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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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포터7 2006-07-01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라주미힌님 저두 그게 불만이었습니다. 마라톤을 보고 이것을 봐서일까요 괜히 비교되어지는...그리고 주변인물들 이건 코미디도 아니고 ..감독의 의도는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유발한다는 것이었겠지만 말입니다.

라주미힌 2006-07-0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라톤은 아직 못 봤는데... 봐야겠군용. 흡
 
해방 60년의 한국정치 - 1945~2005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6년 5월
절판


일부 학자들이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보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즉 서구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복지의 축소, 국가책임의 축소로 나타난 반면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의 확대, 국가책임의 확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배경의 차이를 무시한 분석이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위기’ 속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부재’ 속에서 생겨났다. 주목할 것은 이런 역사적 조건의 차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의 복지 확대, 국가책임의 확대라는 것이 사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복지레짐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는 점이다. …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의 복지확대라는 것이 우리의 복지를 신자유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 것이다.-251쪽

복지정책의 경우 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복지정책의 경우 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확대가 필요했다거나, 소극적으로는 복지확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본질적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IMF 등도 이것을 추천했고 김대중 정부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260쪽

이 세상에 좌파정부란 없다. -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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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No

 

 

패턴)

여성 -> 성 -> 이벤트로 얻은 도서 -> 만만한 책 -> 이벤트로 얻은 도서 -> 만만한 책 -> 만만한 책 ->
만만한 책 -> 이벤트로 얻은 도서 -> 현대사 -> 현대사 -> 이벤트로 얻은 도서 -> 노동-> 노동->
만만한 책 ....


 

분석)
경황이 없다.
지하철에서는 500페이지 이상은 금물.
주말에는 영화를 봐야한다.
고민하기 싫다.

 

전망)
연휴, 휴가철에 약간의 패턴 변화를 시도
나머지는 전반기 그대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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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기술이 중요한 이유

김국현(IT평론가)   2006/06/26
웹2.0
이런 말을 들었다.

"이제 더 이상 IT는 기술자의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이제 정말 기술은 자신의 할 일을 다했구나 라는 체념과 이제 기술은 아무래도 좋다는 무관심이 이 사회의 보편적 정서가 되어 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긴 최근의 인터넷 트렌드를 보면 이제 IT에 있어서의 의제 설정 기능조차 이과의 몫이 아니라 문과의 몫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과거의 벤처 창업주들은 기술자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기술이 지닌 사회적 영향력이나 경영을 위한 도구로서의 기술을 고민해 온 비기술자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잘도 뽑아낸다.

실제로 근래 국내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서비스들을 보자. 지식iN과 싸이만 보더라도 이들은 지극히 '휴먼 터치'를 중시한 문과적 서비스들이다. 종래의 IT 피플 들은 알아듣기 힘든 말로 관심 없는 효율화를 이야기하는 동안 '개발자'가 아닌 '기획자'들은 사회를 뒤바꿀 현상을 포착 재빨리 구현해 버렸다.

코드 잘 짜는 능력보다는 미디어의 생리, 경영 전략, 인류의 사회적 특성을 아는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가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은 두 가지다.

① '이상계'라는 세계 건설에는 현실만큼이나 복잡 다단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기술보다는 현실에서의 경험치가 아쉽다.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닌 일을 시킬 사람이 요긴하다.

② 오픈소스와 스크립팅의 대중화로 최소한의 노력과 학습욕만 있으면 전산을 배우지 않은 비전문가도 피상적인 결과는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예 직접 짜거나 기술자가 필요하면 파견 조달하면 된다. 기술 그 자체가 우스워 보이고, 컴퓨터는 알고리즘을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빨라졌다.


이런! 기술이 일용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니콜라스 카르의 "IT doesn’t matter(IT는 중요치 않아)" 논쟁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말 기술은 차별화 요소가 아닐까? 인프라는 얼추 갖추어졌기에 아이디어만 내면 되는 것일까? 기술은 사다가 붙이면 그만인 소모품이 되어 버린 것일까?

아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아니다'라고 믿는 일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바로 이러한 시각의 차이에서 진정한 IT 강국과 그렇지 못한 곳의 차이가 난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민 저널리즘과 소셜 네트워크는 한국이 먼저 선보였지만 그것을 블로그라는 '세계적 구조'로 형성시킬 줄은 몰랐다. 국내 포털은 지도 서비스 등 독특한 서비스를 일찍이 시작했지만 구글 맵스처럼 '매시업'으로 숙성시키지는 못했다. 더 나은 인터페이스를 위해 우리는 급하고 편한 대로 액티브X를 쓸 줄만 알았지 우리에게 주어진 웹표준을 잘 정리해서 'AJAX'와 같은 기술 트렌드로 승화되도록 공론을 모을 줄은 몰랐다.

대형 컴퓨터로 할만한 일은 다 했다 생각할 때 PC가 등장했고, 닷컴은 허상이었다 할 때 구글이 등장했다. IT의 성공 신화는 하나 같이 기술의 역습이었다. 그리고 그 기술을 둘러싸고 생태계가 형성되고 관련 산업이 성장했다. 기술에 의한 경제권을 그리고 생태계를, 이러한 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이가 진정한 IT 강자인 것이다.

이것이 기술의 힘이다. 더 정확히는 기술을 이야기하는 힘이다. 무엇이 이 사회에 옳은 기술인지 이끌어 내는 힘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힘을 이 땅은 잊어 가고 있다. 그나마 있던 기술 벤처들의 수는 갈수록 줄어 간다. 이제 이 땅은 외국 기술의 납품전 시험장, 이노베이션 없는 인해전술의 각축장이 되어 간다. 나는 원천 기술에 대한 낭만적 환상은 지니고 있지 않다. 우리가 냉전 시대의 소련도 아니고 모든 기술을 독자 개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기술에 대해 토론하고 선정하고 발견하는 힘을 간과한 결과를 우리는 오늘날 우리의 IT에서 목격하고 있다.

웹 2.0이라는 논의 자체가 이 땅에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것 자체가 우울한 결과다. 가장 먼저 브로드밴드화가 이루어진 곳이기에 참여니 개방이니 공유니 하는 '이상계 건설 행위'는 이미 시도된 지 오래다. 그러나 '플랫폼으로서의 웹'과 같은 구조를 함께 이야기하고 널리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간과한 나머지, 우리는 웹 2.0과 같이 그 흔한 키워드 하나, 세계를 향해, 아니 우리 내부에조차 뱉어낼 줄 몰랐던 것이다.

그 결과 몇 년이나 지나 미국에서 이야기를 정리해 주어야 이제 겨우 뒷북을 치듯 우리가 이미 다 해 온 일을 그에 맞춰 고쳐 보려 하고 있다. 우리가 더 먼저 했고 더 잘났다고 주장해 봐야 소용 없는 일이다.

웹표준 문제, OS 문제, 액티브X 문제 등등 우리가 고민해 보고 이야기해야 할 것은 너무나 많았다. C++의 아버지 비얀 스트라스트럽의 말마따나 "우리의 문명은 소프트웨어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논의를 게을리했다. 그 결과 넘쳐나는 아이디어만 엮어 놓은 누더기만 양산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우리는 호사롭게 이공계 기피를 이야기한다.

아직은 아니다. 우리는 'IT 강국'이란 자화자찬에 취해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프론티어에 있다.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많은 숙제가 있다.

IT는 결코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다. 음성 인식, 자동 통번역 등등 끝이 없다. 이러한 신 분야에서 엄청난 기회와 패권이 갈릴 것이다. 아직 기술이란 아무래도 좋은, 무관심해도 좋을 만한 토픽이 아니다. 앞으로 나노 기술과 양자 컴퓨터에 의해 세상이 어떻게 바뀔지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21세기를 바꿀 혁명에 동참하는 길. 그것은 기술을 공부하는 일이다. 그렇게도 꿈꿔 온 '과학기술입국'의 희망을 되찾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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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kon Wium Lie ( CNET News.com )   2006/06/22
 
 
오피스 애플리케이션과 브라우저 시장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MS가 OS 시장에서의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보면서도 잘 모르는, 그리고 자주 언급되지도 않는 MS의 독점적인 영역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전 세계 대부분의 웹 페이지에 등장하는 MS의 폰트다. MS에 대한 의존성을 털어버리기 위해 윈도우에서 도망쳤던 리눅스와 맥 사용자들조차도 자신들의 콘텐츠가 대부분 MS 폰트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MS의 폰트 독점은 지난 1996년 ‘웹용 코어 폰트’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Arial, Georgia, Verdana, Times New Roman 등 이미 익숙한 10여개 폰트는 당시 MS가 W3C에서 밝혔던 것처럼 ‘모든 종류의 웹 커뮤니티에서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툴이다.

MS의 폰트는 물론 몇 가지 이점이 있다. 심미적인 측면에서나 웹에서의 상호호환성 측면에서 폰트의 품질이 모두 향상됐으며, 지난 2002년 프로젝트가 종료됐다. 따라서 MS의 폰트는 지금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바뀌지는 않는다. 비서구형 스크립트 지원을 더 많이 추가하는 것은 불법이다.

선택의 폭은 넓다
그러나 이제 폰트 영역에서 MS의 독점을 무너뜨릴 시기가 됐다. 이는 생각보다 더 쉽다. 웹에는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수천 개의 폰트 패밀리가 존재한다.(나는 이 폰트를 웹 폰트라고 칭한다). 예를 들면 지난 2000년 레이 래라비에가 디자인한 우아한 세리프 폰트인 Goodfish가 있다. 이 폰트는 4가지로 표현(보통, 이탤릭, 굵은체, 굵은 이탤릭체)할 수 있으며, 4개의 트루타입 파일로 부호화돼 있다. 압축하면 파일 사이즈는 약 100k 메모리를 차지한다. 이는 작은 사진 한 장의 파일 사이즈에 해당한다.

레이 래라비에는 이 폰트와 다른 폰트를 누구나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다른 웹 폰트 디자이너들도 수없이 많다. 이러한 폰트 중 일부는 이상하게 보이고, 일부는 영어 알파벳을 약간 가공한 수준이다. 그리고 일부는 인쇄나 제목에 더 적합하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폰트는 웹에 대한 어마어마한 미개발 인쇄술을 대표한다.

웹 폰트를 사용하려면 브라우저가 로컬 머신의 외부에서 트루타입 파일용으로 수정돼야 한다. CSS2 스타일시트는 이미 웹 폰트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새로운 표준을 별도로 요구하지 않는다.

브라우저는 웹에서 정보를 찾는데 상당히 유용하며, 리스트로의 폰트 추가는 간단해야 한다. 또다른 이점도 물론 몇 가지가 있다. 폰트 디자이너들은 자신들의 창의성에 대한 배출구를 찾고, 사용자들은 시각적으로 더 풍부한 콘텐츠를 갖게 될 것이다. 또 비 서구적 스크립트도 쉽게 추가할 수 있으며, 웹 페이지 디자이너들이 디자인을 위해 이미지를 가져오는 대신 웹 폰트를 종종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일부에서는 웹 폰트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지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승인을 얻지 않고도 웹에 폰트를 추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이미지의 경우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이미지와는 달리 트루타입 폰트는 승인가능한 사용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다.

이 폰트는 원격 시스템에 이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이 적합한지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이것이 가능하게 해주는 유일한 폰트는 브라우저에서의 사용을 고려해야 한다. 또 폰트가 설치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애플리케이션에서 해당 폰트를 사용하려면 브라우저가 해당 폰트를 설치하지 말아야 한다. 이 폰트는 브라우저에 의해서만 사용될 수 있으며, 폰트에 적극적으로 요청하는 페이지에 대해서만 결과를 보여주게 된다.

웹의 시각적인 모습은 지난 1993년 모자익에 의해 이미지가 소개되면서 완전히 변했다. 그러나 브라우저가 웹 폰트를 지원하기 시작하면 웹은 또다시 변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부분이 웹상의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독점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기업은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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