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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한 자루의 여정을 타고, 16시간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은 도시의 어두운 모습을 하나씩 들춰낸다.
마약, 매춘, 아동학대, 스너프 필름 등..
총구에서 그 모든 것들의 역사는 쓰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현장에서 '아이'는 그 모든 것들을 지켜본다.
'층격'이 아니라, '일상'인듯 그것이 현실이듯 바라보는 시선은 서늘하다..
그 모습에서 현대인에게 쏟아지는 지속적인 두려움이 남긴 정신적인 상흔을 엿볼 수 있다.

너무나 담담한 시선...
그 안의 지친 영혼은 누가 보듬어 줄 것인가...


답은????

미국이다.
(갑자기 왠 미국 ㅎㅎ)




이 영화 잘 봐야한다...

감독의 기교가 상당히 많은 영화이다.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을 비교하는 이들도 많은데.. 흐흐 그 정도는 아니고)
복선과 상징이 여기저기서 펼쳐진다.
주인공의 활약, 사건의 시퀀스만 따라가도 적당한 재미를 줄 수 있지만..


무엇이 그 아이를 구하고, 무엇이 그 아이를 위협하는가를 본다면,
영화에 대한 해석은 달라진다.

범죄자들을 보면 이민자들.. 러시안, 라틴, 흑인 계열이다..
그들에 의해 위협을 받는 것은 미국인이고, 미국에 동화될 수 없엇던 자들에 의해
밤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미국의 반 이민정책이 스윽 스치고 지나간다..)

두려움의 원인은 '비 미국적'이어서 그렇다는 거다.
진짜 미국인이라면 '그렇지 않다' 라는 거다...
(주인공 아내의 대사에서도 그런 냄새를 풍긴다..)


정의의 사도 '존 웨인'을 존경하는 러시아 마피아 '앤저 듀크 유고스키'는
(러시아로부터 벗어나) 미국을 찾아왔지만, '비 미국적'인 모습에 충격을 받는다. (존 웨인이 총 맞아 죽는 장면 ㅡ..ㅡ;)
'존 웨인'이 죽지 않는 아동용 영화를 추억하며, 그의 외부는 '비 미국적인 활동' 마약 장사를 하지만,
마지막에 아들을 대신해서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미국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존 웨인 문신을 한 '앤저 듀크 유고스키',
총 맞은게 꼭 피 눈물 흘리는 '존 웨인' 같지 않은가?) 

주인공은 (갑자기) 헐리웃 특유의 '정의의 지팡이'가 되고, 그 모든 문제를 미국식으로 해결한다.
미국에 동화되지 못한 유고스키 부부는 죽고, 그의 아들은
미국의 가정으로 동화된다...

그리고 해피엔딩...

주인공: 넌 미국인이야, 러시아인이 아니고 왜 그런 걸 들어?
꼬맹이 : 엄마가 날 러시아에서 가졌으니까
                 나보고 러시아인이라고 했어요

주인공 : 넌 러시아인이 아니야, 미국인이라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니까 미국인이야. 미국인
              난 미국인이다라고 해봐. 말해봐
              말해, 난 미국인이다
 
꼬맹이 : 미국인


꼬마의 정체성 혼란을 바로 잡아주려는 주인공의 '노력'이 가상하다. ㅡ..ㅡ;

꼬맹이가 보아온 '비 미국적인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서 벗어나 미국적인 사람들에 '포용'된 하룻밤의 사건.

16시간을 탄탄하게 그려낸 스릴러가 맞지만,
총을 잡은 정의로운 미국에 대한 숭배가
찜찜한 여운을 남겨준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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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태화강에서 실종된 주민철(39)씨가 21일 낮 12시20분께 울산 남구 신정동 태화교 아래 하류 방향으로 100여m, 태화강 남쪽 둔치 30여m 지점 강바닥에서 숨진채 특전사 재난구조대원들에게 발견됐다.
  
   특전사 대원들은 스쿠버 장비를 하고 강바닥을 수색하던 중 바닥 펄에 가라앉아 숨져 있는 주씨를 발견, 인양해 인근 병원 영안실에 안치했다.
  
   병원측 검안결과 주씨는 강물에 빠져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진단됐으며,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가 끝나는 대로 가족들에게 인계해 장례를 치르도록 할 예정이다.
  
   울산건설플랜트노조원인 주씨는 지난 6일부터 태화강 둔치에서 파업 농성을 벌이던 중 지난 19일 밤 9시10분께 태화교에서 태화강으로 투신한 20대 여성을 구하기 위해 동료 차동홍(37)씨와 뛰어들었다가 실종돼 그 동안 119구조대와 경찰, 특전사 재난구조대 등 400여명이 노조원들과 함께 태화강 하류 일대를 수색해 왔다.
  
   울산시는 유족 등과 협의를 거쳐 의사상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씨에 대한 의사자 지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2006년07월21일 ⓒ민중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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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죽인 나라 한국, 살린 나라 스위스
[김영호 칼럼] 탈농에 따른 사회정책도 없어, 협상중단이 최상의 방책
 
김영호
 
 1994년 1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출범하자 멕시코는 미국, 캐나다와 함께 선진국대열에 낀다는 꿈에 부풀었다. 그런데 지난 2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NAFTA가 최대쟁점으로 떠올랐다. 선진국의 꿈이 한낱 춘몽이었음을 깨달은 농민들이 집권당인 제도혁명당에 반기를 들었다. 역전 끝에 겨우 0.5%차이로 이겼다. 그러나 좌파인 민주혁명당이 개표불복을 선언하고 나서 정국은 혼미한 양상이다.

 미국의 가장 큰 골치는 멕시코의 불법이민이다. 경제난민의 물결을 막으려고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장벽을 치고 방위군을 투입하고 있다. 1996년 미국내 불법이민은 500만 명이었다. 그런데 무려 1,200만명으로 늘어났다. 그 중 78%가 멕시코와 남미에서 가난을 피해 목숨을 걸고 넘어온 사람들이다. 미국의 값싼 농축산물이 멕시코의 농업을 망쳤다. 도시빈민으로 전락한 농민들이 다시 살길을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멕시코는 남은 농업기반마저 붕괴될 처지에 놓였다. NAFTA에 따라 2008년에는 주식인 옥수수와 콩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한다. 남미국가들이 작년 11월 미국과의 FTA(자유무역협정)를 거절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미국 농업보조금의 삭감-철폐가 걸림돌이었다. 미국은 '2002 농촌법'에 따라 농업에 2486억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그 돈은 주로 초국적 기업농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지난 2월 1일 스위스는 미국과의 FTA를 보류한다고 발표했다. 한미FTA 협상개시가 발표되기 하루 전날이었다. 미국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했고 GMO(유전자변형식품) 표시에도 반대했다. 스위스는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이다. 한국은 70%인데 77%에 달한다. 농업인구비중은 2.9%로 한국의 7.8%에 비해 훨씬 낮다. 농업이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5%로 한국의 3.2%에 비해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과의 FTA를 포기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농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과 FTA를 강행하고 있다. 막연하게 쌀은 지키겠다는 말 한마디로 갖고 말이다. 쌀 시장은 다자간 협상을 통해 국내소비의 8%가 이미 열렸다. 미국이 그 중의 상당량을 할당량으로 가져갔다. 미국은 전략상 끝까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하다 쌀은 다자간 협상에 맡길 줄도 모른다. 선심 쓰는 척하면서 다른 분야와 축산물에서 대폭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서 말이다. 미국은 그것이 더 이익일 것이다. 

 정부가 농업피해액이 9,000∼2조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산출근거가 무엇인가? 제주도에서는 감귤의 피해액만도 10년간 1조원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피해규모를 파악하려면 농업포기→가족해체→도시이주에서 발생하는 간접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 이것은 불가측성의 문제다. 장난 같은 숫자놀음을 그만 두라. 양극화를 해소한다고 큰소리치는데 탈농에 따른 사회정책은 마련했나? 협상중단이 최상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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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저격수’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10년간 경제저격수로 활동한 존 퍼킨스는 1945년 교사인 부모 밑에서 태어나 엄격하지만 자부심 있는 가정에서 자랐다. 생활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우등생이어서 대학도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는 모두 잘사는 부잣집 자재들. 부유층인 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좌절을 맛보다 결국 자퇴했다. 하지만 다시 보스턴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군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국(NSA)에 지원했다.

존 퍼킨스는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에서 관심사항은 남을 앞지르고자 하는 굳은 의지,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외국인과 쉽게 어울리는 재능, 과거 경찰에 거짓말을 하고자 했던 결심 등이라고 꼽았다.

국가안전보장국 면접을 앞두고 주변(사실상 NSA)의 조언으로 평화봉사단에 지원했다. 평화봉사단으로 가면 역시 징집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상 경제저격수 후보로 선발된 것이고 평화봉사단 활동도 그 훈련의 하나였다. 교육을 마친 그는 1968년 에콰도르에서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다. 이때 그는 세계은행의 요청으로 에콰도르와 주변국 사회기반시설 융자 결정 보고서 등을 작성해 보고했다. 그는 경제저격수에 의한 에콰도르 석유회사의 파괴행위를 목격했다.

1970년 NSA와 연계된 국제 컨설팅회사 메인사에 입사한 존 퍼킨스는 본격적인 경제저격수 훈련을 받는다. 그의 임무는 개발도상국에 대형 차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고 차관을 받은 나라가 회사에 대금을 지불한 후 파산토록 유도하는 것이다.

개도국의 주요 업체를 파산시키면 영원히 채무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이 군기지나 유엔 내 투표권 확보, 석유나 천연가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재정의존도가 높으면 미국에 대한 충성도도 높다, 개도국 회사 소유자는 혜택을 보지만 빚은 국민 모두가 떠안게 된다, 빈부의 격차는 더 늘어나지만 통계수치로는 성공적으로 만드는 기술 등을 사용한다, 더구나 이 사업을 개도국의 고속도로, 항만, 발전소를 지어주며 선한 일로 포장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경제저격수로 안 되면 나중에 테러, 군까지 동원한다, 등의 세계에서 활동했다. 그는 사우디 돈세탁 프로젝트, 이란 국왕 축출, 오마르 토리호스 파나마 대통령 사망 등에 관여했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30대에 최연소 경제 및 지역개발팀장이 됐다. 또 고액 연봉을 받으며 언론에 기고하는 등 유명인사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죄책감과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 결국 1980년 45세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후 이런 사실을 폭로하는 글을 쓰려다가 몇 번 좌절한 끝에 2004년 ‘경제저격수의 고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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