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월간 만화지 ‘새만화책’을 창간하고 1호를 선보인 만화 전문 출판사 새만화책의 공동대표 김대중(32·사진)씨. 먼저 ‘만화지’라는 낯선 이름에 대해 물었다.

“흔히 만화잡지라고 하는데 우리는 만화지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문학잡지도 문예지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작가주의 만화를 추구하기 때문에 이름을 차별화시킨 거예요.”

‘새만화책’은 소설같은 만화를 추구한다. 웃음과 재미를 추구하는 주류 대중만화와 달리 삶의 이야기를 좇는다. 형식에서도 드라마 대신 다큐멘터리를 선호한다. 김 대표는 “우리는 작가의 내면이 드러나는 만화,소설처럼 감동적인 만화를 지향한다”고 말했다.

창간호에 실린 작품들은 새만화책의 색깔을 잘 보여준다. 모두 13편의 국내외 만화가 실렸는데 자전적인 작품들이 많다. 김은성의 ‘내 어머니 이야기’는 함경북도 북청에서 나고 자란 어머니와 나이든 딸의 대화를 통해 일제시대,한국전쟁 등 근현대사를 훑어낸다. 또다른 연재물 ‘푸른 끝에 서다’는 작가 고영일의 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 경험과 구치소 수감 생활,석방 후의 IMF 시절 등을 배경으로 한다. 그림들은 예쁘다기 보다는 하나같이 개성이 뚜렷하다.

김 대표는 “만화는 하나의 언어이며 그것도 아주 매력적인 언어”라면서 “만화라는 언어를 통해 다양한 경험과 상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들이 있고,이들에게 활동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새만화책’을 창간했다”고 밝혔다.

만화작가,만화평론가,만화 전시기획자 등 만화와 관련된 이런저런 일을 해오던 김씨가 동료와 함께 만화 전문 출판사를 설립한 것은 2002년. 수많은 만화책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새만화책은 일관되게 작가주의 만화,대안만화라는 출판 원칙을 고수해왔다. 지금까지 낸 책은 ‘꽃 1∼4’ ‘페르세 폴리스’ ‘헤이 웨잇’ 등 모두 40여종에 달한다.

김 대표는 “우리가 일부러 대중성을 회피하거나 예술가인척 하려는 의도는 없다”면서 “다만 주류 만화의 양식화에 갇히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4년간의 경험은 김 대표의 만화에 대한 신념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만화는 소설보다 더 근본적인 형식이며 훨씬 폭넓은 대중들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개성적인 그림과 문학적 깊이를 갖춘 이야기들이 가능합니다. 조만간 소설처럼 만화책을 보며 감동하는 사람들이 늘 것으로 확신합니다.”

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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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만화책하니.. 패르세폴리스2가 궁금하여
새만화책  출판사 블로그에 가봤다.

 

새만화책 6월이 되어 버렸네요. 곧 낸다고 말씀드리곤 했는데, 시간이 이렇게 후딱 가 버렸습니다. 가끔 일하는 게 꼬여서... 변명은 우선 이번 달에 책 내고 하겠습니다. 올해는 책을 많이 못 내고 있네요. -_-; 2006/06/01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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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7-25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4일로 발매일이 늦춰져서 서점 배포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라주미힌 2006-07-25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빠른 소식통이시네욤.
 
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자기계발 서적은 넘쳐 난다.
재테크, 자산 관리, 잠재된 능력 계발, 자신감 고취시키기, 각오 다지기, 구체적인 방안, 성공사례에서부터 뜬구름 잡기식까지 다양한 시도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것은 실용성이란 명목하에 일상의 전장터에서 전투력 배가를 위한 소위 말하는 ‘경제적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비급서’처럼 활용되고 있다. 경쟁적인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목표 없이 살다가 명퇴, 정리해고로 마감되는 인생은 마치 중독처럼 서서히 우리를 잠식한다. 자본주의의 중독은 스스로에게 욕망을 강요함으로써 본인의 의지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위협적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과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지고 하루하루에 탈진한 ‘신인류’의 자본주의 사랑은 ‘안~되요 되요 되요 되요’와 같은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속과 탈피.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심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속적일지라도 잘 적응하기 위해서 또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어찌됐던 알아야 한다. 현실과의 대면, 그것은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이다.

후세에 모범이 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을 고전이라 불렀으니,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성질을 잘 정리해 놓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을 읽고, 체제 속의 인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들이댄다. 노동과 자본, 국가와 계급을 통하여 우리의 위치와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현실적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다.
 
150년 전의 선언이지만, 아직까지도 유효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고도 씁쓸한 맛을 남긴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이 문장의 의미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비정규직과 하도급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노동조건, FTA라는 비밀스러운 협약이 민중의 삶에 미칠 효과를 고려해 본다면 위의 문장은 마치 운명처럼 들린다.

우리의 운명을 자본주의에 맡길 것인가, 포스트 자본주의를 선언할 것인가…
진정한 자기계발은 사회와 자기 자신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고전 읽기의 새로운 시도는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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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7-2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음...땡기네요.^^

라주미힌 2006-07-2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재미나요... 꼭 읽어보세욤.
 
 전출처 : balmas > 테러리스트는 어디 있는가? -정문태의 레바논 현지르포

한겨레

 

[레바논 현지르포] 폭격에 질린 ‘베이루트의 밤’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한겨레
[관련기사]
국제분쟁 전문기자인 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이 23일밤(현지시각)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전란에 휩싸인 도시 한가운데서, 정문태 기자가 보내는 소식은 <한겨레>와 함께 <한겨례21>에 전문이 소개된다.

국경도시 아안잘 ‘유령바람’…북쪽 자흘라도 공습 상흔
꼬리문 피란민 “전쟁 멈춰라”

길, 그 길을 달렸다. 역사가 바뀔 때마다 침략자와 피난민을 교차시켰던 ‘다마스쿠스-베이루트’ 길. 외신이 전하는 것처럼 난민행렬까지는 아니지만, 여느 때보다 서너 배 많은 차량들이 그 길을 통해 시리아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국경 황무지에서 일하던 이들도 손을 놓고 차량 행렬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시리아 국경 검문소 알즈데덴을 지날 즈음,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 말이 라디오 잡음을 타고 흘렀다. “침략이 아니다. ‘테러리스트’ 헤즈볼라의 거점을 궤멸시키기 위한 한시적 점령이다.” 7월22일,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동부 마룬 알-라스를 점령한 뒤였다.

24년 전 1982년6월21일, ‘테러리스트’ 팔레스타인 박멸을 내걸고 레바논을 침략했던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도 똑같이 말했다. “침략 아니다. 레바논을 점령하거나 합병할 뜻이 없기 때문에.”

그러나, ‘테러리스트’는 없었다. 레바논 국경검문소 마스나아를 통해 시리아 쪽으로 쏟아져 나오는 이들은 피난민들일 뿐이었다. 베이루트에서 탈출한 시민 아부 에이헴(48)은 기자를 보자마자 “전쟁을 멈추라! 전쟁을 멈추라!”고 핏대를 올렸다. 이스라엘까지 들릴 리 없겠지만.

레바논 국경도시 아안잘엔 유령바람만 휘몰아쳤다. 살아있는 것이라곤 없었다.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만신창이가 된 1번 고속도로를 피해 곁길로 빠져나오는 피난 차량들만 숨죽여 움직일 뿐이었다. 보통 때라면 베이루트까지 1시간에 닿던 1번 고속도로, 피난민들이 달리고 긴급 구호물자들이 지나야 할 그 길을 이스라엘은 ‘테러리스트’ 박멸을 외치며 가장 먼저 폭격했다.




그리하여, 피난민들 사이에 비교적 안전하다고 알려져 온 북쪽 자흘라로 올라가 비크화야를 거치는 먼길을 돌아 베이루트로 향했다. 그러나 자흘라 언덕길에는 이스라엘군 공습을 받아 뼈대만 남은 구호물자 수송트럭과 승용차가 엎어져 있었다. 레바논엔 이스라엘 폭격으로부터 안전한 곳이 없다는 뜻이다.

“헤즈볼라 궤멸…침략 아니다”
24년전 똑같은 이스라엘 나팔

그렇게, 이스라엘은 피난민도, 길도, 자동차도 모두 ‘테러리스트’라 불러왔던 모양이다.

하늘을 쳐다보며 달린 2시간20분, 베이루트 시가지가 발아래 밀려왔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두 곳이 화염에 휩싸인 베이루트는 한없이 떨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루트에 밤이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그 밤을 노려 무슬림 거주지역인 남부 베이루트에 거대한 폭격을 해댔다.

24년 전, 이스라엘군으로부터 당한 그 학살의 기억을 안은 구급차 사이렌이 다시 2006년 7월23일 밤을 내달렸다. 베이루트는 숨이 넘어가고 있다. 이 기사를 쓰고 있는 동안에도 베이루트는 폭음에 흔들리고 있다.

‘철수할 의지를 지닌 공격은 침략이 아니다!’

1982년 7월9일치 이스라엘 극우신문 <에디엇 아흐로놋>이 베이루트 침략에 광분했듯이, 2006년7월23일 오늘 이스라엘 신문 <아루츠 쉬바>는 ‘이스라엘은 유대의 땅을 모두 지배해야 한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반드시 공격해야 한다.’고 확전 나팔을 불어댄다.

베이루트, 공포에 질린 도시는 묻고 있다. ‘테러리스트’는 어디에 있는가?

베이루트/정문태 <한겨레21>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기사등록 : 2006-07-24 오후 06:45:47 기사수정 : 2006-07-24 오후 07: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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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

 [기고]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 침해

"이 저주받은 나라의 배야, 네 정체는 다 알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에서 바다를 제2의 조국으로 선택한 네모(Nemo) 선장은 노틸러스 호를 공격해 오는 군함에 대해 이렇게 분노를 터뜨린다. 하지만 한국의 법률가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한국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정보공개 거부를 결정했다. 그래서 이 제도가 한미 FTA 8장에 들어 있다는 것밖에는 아는 것이 없다.
  
  미국의 위헌논의와 통상법 개정
  
  그런데 미국의 대표적인 납세자 단체인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한 납세자 연맹(Taxpayers for Common Sense)'은 2002년 5월 미 의회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북미 자유무역 협정(나프타, NA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미국 헌법이 허용하고 있지 않은 권리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고 미국의 납세자들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의 군 협회, 읍 협회, 주의회 협의회, 시 연맹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연대조직들도 같은 달에 의회에 공동 항의서한을 보내 미국 시민들이 미국 헌법 아래에서 누리고 있는 권리보다 더 많은 권리를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부여하지 않는 방향으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2002년 5월 24일 미국 의회는 미국 안의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미국 안의 미국 시민들보다 더 중요한 권리(greater substantive rights)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통상협정을 체결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새 통상법(2102(b) (3)조)에 규정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전개됐던 이런 논의는 한국의 헌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 한국 헌법은 국제조약이나 통상협정에 대해 국내법보다 높은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한미 FTA의 모든 조항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의 위헌심판 대상이 된다. 헌법재판소는 위헌인 한미 FTA 조항들을 무효화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
  
  FTA의 수용보상 조항은 명백한 위헌
  
  우리나라 헌법 23조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질서에 의하면 국가가 국민의 재산권을 수용, 사용 또는 제한하려면 '공공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법률에 근거해야 하며,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한미 FTA의 수용보상 규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한미 FTA의 협상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있으니 나프타의 관련 규정을 들여다보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외국인 투자자의 투자자산을 수용(expropriate)하거나 이와 효과가 같은 조치(a measure tantamount to expropriation)를 취하려면 첫째 공공의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둘째 차별적 조치여서는 안 되며, 셋째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보장을 포함해 국제법과 적법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넷째 수용 직전의 공정한 시장가격으로 지체 없이 완전히 현금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보상해야 한다(나프타 1110조)고 돼 있다. 이러한 나프타의 수용보상 조항이 한미 FTA에도 그대로 반영된다고 할 경우 그것이 우리나라의 헌법 23조에 합치될까?
  
  필자는 헌법 위반의 소지가 많다고 해석한다. 위 조항은 한국 헌법 아래서는 국가에 부여될 수 없는 의무를 국가에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규정된 재산권의 '수용'과 '제한'의 범위를 보자.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국민의 재산을 그 재산 소유자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취득하는 것을 강제수용이라고 본다. 그리고 토지 재산권에 대한 '제한'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그린벨트에 관한 1998년도 판례에서부터 일관되게 토지를 종래의 목적으로도 사용할 수 없거나 더 이상 법적으로 허용된 토지이용 방법이 없어서 실질적으로 사용·수익할 수 없는 경우에만 보상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FTA에 들어가는 수용보상 조항은 이와 다르다. 나프타 체제 아래에서 미국기업 메탈클래드와 멕시코 정부 간에 벌어진 쟁송과 관련해 2000년 9월에 성립된 판례를 보자. 이 판례에 따르면 수용(taking)뿐만 아니라 정부가 의도한 결과이든 부수적인 결과이든 투자자의 자산 사용에 대해 어떤 간섭(interference)이 있고 그 효과로 인해 투자자가 투자자산의 전부나 중요한 부분을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투자자가 투자자산에 대해 합리적으로 기대했던 경제적 이익이 실현되지 못하는 경우에도 정부에 보상의 의무가 있다.
  
  이런 나프타의 판례는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권은 사적 유용성 및 그에 대한 원칙적 처분권을 내포하는 재산가치 있는 구체적 권리이므로, 구체적인 권리가 아닌 단순한 이익이나 재화의 획득에 관한 기회 등은 재산권 보장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판결한 것과 어긋난다. 그래서 한국 헌법에서는 정부에 부여될 수 없는 의무를 정부에 부여하는 나프타의 관련 조항과 같은 조항이 한미 FTA 8장에 들어간다면 그것은 헌법 위반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국민의 평등권, 재판청구권, 재판참여권 침해
  
  아울러 한미 FTA 8장은 헌법 11조가 보장한 국민의 평등권을 침해한다. 한국의 영토 안에서 활동하는 기업들 가운데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들에는 한미 FTA 8장이 당연히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재산권 침해에 대한 보상의 금액과 지급방법에서 한국 기업과 한국인 투자자는 미국 기업과 미국인 투자자에 비해 차별을 받게 된다. 예컨대 미국인 투자자는 한미 FTA 8장에 따라 현금보상을 받게 되는 반면, 한국 기업과 한국인 투자자는 어떤 경우에는 현금보상을 못 받고 채권으로밖에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63조). 여기서는 헌법재판소가 정부의 차별적 조치에 대해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차별의 합리적 이유'를 찾아내기 어렵다.
  
  이런 필자의 논지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와 한국의 국민이나 기업은 헌법 상의 지위가 다르다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헌법재판소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도 헌법 상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외국인 투자자가 직접 한국에서 사업체를 경영하는 경우에 그 사업체는 당연히 이런 기본권의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한미 FTA 8장은 똑같은 기본권 주체들의 일부를 차별하는 것이 된다.
  
  아울러 한미 FTA 8장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에 대한 침해가 된다. 모든 국민은 헌법 24조에 따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헌법은 국가의 안전 등을 해치게 되지 않는 한 재판의 심리를 공개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재판의 결과에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에 대해서는 민사소송법에 따라 재판 절차에 참여하고 변론할 권리가 보장된다. 특히 공공정책이 문제가 되는 행정소송의 경우에는 재판의 결과에 따라 권리 또는 이익을 침해받는 자는 행정소송법에 따라 소송에 참가해 일체의 변론을 할 수 있고, 판결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 항소할 권리를 갖는다.
  
  그러나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가 반영된 한미 FTA가 체결된다면, 미국인 투자자의 선택에 따라서는 한국의 공공정책이 한국의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심사되지 않을 수 있다. 그 대신 국제 중재기관에 소속된 3인의 중재인이 한국 공공정책의 FTA 준수 여부를 심판하게 된다(나프타 1123조). 그리고 심문 절차는 공개되지 않는다.
  
  과연 이런 제도가 한국의 헌법에서 허용되는 제도인가?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법관에 의한 사실 확정과 법률해석 적용의 기회에 접근하기 어렵도록 하는 제약이나 장벽을 쌓는 것은 우리 헌법 상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92헌가11). 이런 해석론에 따르면 한국 국민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공공정책에 대한 심판의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심판 회부권을 갖도록 허용함으로써 한국 국민의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위헌이라고 본다.
  
  개인과 개인 간의 분쟁이나 나라와 나라 간의 국제분쟁은 애초부터 한국 법원에서의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투자자와 국가 간 분쟁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회사에 대한 행정처분에 대해 그 회사의 주주가 행정소송으로 다툴 수 있다고까지 결정한 한국의 판례에 기초해 생각해보면, 한미 FTA의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국민 모두에게 보장된 재판청구권과 재판참여권을 침해하는 것이 분명하다.
  
  국민 스스로가 퇴보하면 자유를 잃을 것
  
  헌법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미국인 투자자에게 특혜를 주는 나프타식 수용보상 제도와 투자자-국가 소송 제도는 한미 FTA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책임감 있는 정부라면 한미 FTA에 위헌의 소지가 있는 조항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외부의 적에 의하여 파괴되지는 않겠지만 미국인 스스로가 퇴보할 때는 자유를 잃을 것이다"라는 링컨의 말이 미국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송기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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