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한비야가 아픈 이유
한겨레
» 이길우 선임기자
  기획연재 : [사내] 아침햇발
“나 지금 베이징 기차역이에요.”

여전히 활기찬 목소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만사 제치고 베이징역으로 달려갔다. 중국 대륙을 횡단하기 위해 야간 기차를 타고 시안으로 가는 길이란다. 기차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역 안의 한 카페에서 간단히 맥주를 나누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그는 자신보다 갑절쯤 큰 배낭을 등에 멘 채, 또 하나의 보조 배낭을 앞에 메고 낙하하는 특전사 요원처럼 씩씩하게 개찰구를 빠져나갔다.

‘바람의 딸’ 한비야(48)씨는 기자가 10년 전 베이징 특파원으로 근무할 당시 그렇게 거침없는 모습으로 대륙에 스며들어갔다. 그 이전 한씨가 홍보회사에 근무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기자는 북한산 ‘청심환’을 비상약품으로 쓰라고 주었고, 한씨는 중국 내륙에서 배탈이 나 고생하던 아이에게 그 약을 줘 큰 인심을 얻었다고 했다.

자신의 뜨거운 피가 향하는 대로 7년간 세계의 오지를 경험하며 거침없는 삶을 살아온 한씨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책으로 청소년들에게 넓은 세상을 향하는 꿈을 심어주었다. 5년 전부터는 월드비전에서 긴급구호팀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전쟁과 재난 지역에 뛰어들어가 인류애를 심어주는 일을 하며 또다른 감동을 선사해 왔다. 그런 한씨가 아프다.

지난해 10월부터 어지럼증이 계속되더니 얼굴 한쪽 근육과 손에 마비 증세까지 왔다. 병원에서는 과로에 따른 뇌혈관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고, 한방에서는 정신적으로 충격이 쌓여 생긴 ‘화병’이라는 진단을 내렸다고 한다. 한씨는 지금도 이런저런 악몽에 지속적으로 시달리고 있다.

“이란 지진 현장에서 구호활동을 하다가 건물이 무너져 땅속에 묻혔어요. 살려달라고 소리쳐 구호요원이 다가왔어요. 구호요원이 손을 잡아 끌어내려는 순간, 누군가 밑에서 발목을 잡아 끌어내려요.” “이라크 전쟁에 투입됐는데, 안전요원이 즉시 철수하라는 명령인 ‘코드 블랙’을 외쳤어요. 짐을 챙겨 간신히 사무실을 빠져나오는 순간 시커먼 폭탄이 날아들었어요. 친한 동료의 몸이 두 동강 나는 거예요.”

이런 꿈을 꿀 때마다 한씨는 속옷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을 흘린다.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본 수많은 끔찍한 광경을 괴로운 표정으로 설명한다. “2004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쓰나미) 현장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어요. 하루 수천 구의 사체를 봤어요. 배에 가스가 찬 사체는 끝내 터져 내장이 널브러졌어요.”

한씨는 이 병의 원인이 자신 탓이라고 한다. 구호활동 뒤에는 꼭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로부터 ‘디브리핑’(debriefing·복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겪은 일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정신적인 충격을 치유받아야 하는데, 그는 되레 재난지역 청소년들의 ‘정신적 외상’(트라우마) 치유에만 힘썼지 정작 자신은 돌보지 않다 이런 일까지 겪게 된 것이다.

“쓰나미에 자신이 붙잡고 있던 여동생을 놓쳐버린 8살 난 인도네시아 소년에게 ‘그 파도는 네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엄청난 자연재해야. 동생이 죽은 것은 결코 네 탓이 아니야’라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했어요.” 디브리핑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가 심각할 경우 의사는 일정 기간 모든 구호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명령’할 정도로 이 치료 과정은 중요하다고 한다.

자신의 안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곤경에 빠진 타인의 삶을 구원해온 한씨가 하루속히 회복돼 오늘도 불타고 있는 베이루트 폭격 피해자들 곁으로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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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607311809051&code=970209

레바논 남부 카나에서 평온한 휴일을 덮친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가족과 친척을 잃은 레바논인의 슬픔이 거리를 뒤덮고 있다. 희생자 대부분이 미처 대피하지 못한 어린이·여성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이스라엘의 첫번째 미사일이 카나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 지난달 30일 새벽 1시무렵. 귀를 찢을 듯한 소리에 놀란 모하메드 쉘호우브(38)는 바로 현관문을 열었다. 그가 서둘러 2살부터 12살까지 다섯명의 자식과 아내, 장모와 10살난 조카를 데리고 건물 밖으로 피신하려 했을 때 두번째 미사일이 그들을 덮쳤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부부를 제외한 가족 7명이 사망한 뒤였다.

이스라엘 군은 건물이 아침까지 붕괴되지 않고 있었으며, 건물 내부에 있던 폭약으로 인해 붕괴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입주자들은 첫 미사일 폭발 이후 벽과 천장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쉘호우브의 부인은 “의사가 내 가족들이 건물에 깔려 숨졌다고 말했다”며 “그들이 말하려는 것은 내 가족이 벽돌과 모래 때문에 숨졌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다른 세명의 생존자와 함께 나무 아래서 머리 위로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를 들으며 공포의 밤을 보내야 했다.

이스라엘은 카나에서의 민간인 희생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으나, 이미 충분히 군사 공격에 대한 경고를 내린 뒤였다며 발뺌했다. 그러나 현지 레바논인들에게 있어 피난은 꿈도 못 꿀 일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경제적 형편이 여의치 않은 데다 이슬람의 전통적인 대가족이 대부분이라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사일을 정통으로 맞아 붕괴된 대피소 건물에 피신해 있다 대부분이 사망한 한 친척 일가는 이미 2주전부터 피난을 계획해 왔다. 그러나 담배공장과 건설현장에서 일한 돈으로 먹고 사는 그들에게 북쪽으로 향하는 택시 비용 1,000달러는 너무나 큰돈이었다. 또 95세의 휠체어 탄 노인과 수십명의 아이를 이끌고 가기에 이 가족은 너무 거대하고 약했다.

장애를 겪는 어린이도 있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이날 사망한 어린이 가운데 15명은 정신적·육체적 장애를 가진 어린이였다. 남부 레바논을 통솔하는 바히라 하리리는 “이스라엘의 공격이 점점 심해지고 있어 이 지역의 피난민들을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싶었으나 이들은 방공호와 이슬람 사원이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피난길마저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달 15일 픽업트럭을 타고 피난길에 올랐던 21명이 이스라엘 공격으로 전원 사망했다. 지난 주말에는 미사일이 적십자 응급차량 2대를 공격, 6명이 부상했다. 30일 카나에서도 미사일이 응급차량을 타격했다. 미사일 공격으로 부상해 티레의 병원에 입원 중인 자이네브 샬호우브(22·여)는 “이스라엘 군이 적십자마저 공격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어린 아이들과 피난을 갈 수 있겠는가”라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구조대가 닿지 않는 마을의 건물 더미 밑에는 수많은 시체가 그대로 남겨져 있어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 마을의 야채가게 주인인 핫산 파라는 “헤즈볼라 전사들이 아직 카나로 오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은 강력하게 그들을 지지할 것”이라며 반 이스라엘 감정을 불태웠다.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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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영화가 잔인해서 놀랐다.

돼지같은 아이가 초콜릿 재료가 되고, 거대한 블루베리가 된 아이는 즙을 짜내야  하고,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아이는 언제 소각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TV 속으로 빨려들어가서 작아진 아이를 기계로 늘려야 한다니...
하지만, 진짜 잔인하게 느꼈던 이유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다들 '침착'하다는 것이었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느긋이 바라보는 인간들에게서 인간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러한 느낌은 호러영화에서나 자주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원작을 안 읽어봐서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모르겠다.
상상, 풍자, 교훈 뭐 그런것들이 있는 것 같은데, 이미 배치된 상황과 결과가 너무 작위적이다.
내가 상상이 빈곤해져서 그런지 몰라도 초콜릿 강이나 환상적인 공간들을 보고 '감탄'할 만한 건더기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회 비판적인 성향이 있어 보였다.
자본주의 체제속에서 탐욕에 찬 특권층, 오만한 지식인, 허영심이 가득한 자들을 '어린이'로 비유하여 일종의 '처벌'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가난한자들(어린이)에게 영원히 먹을 수 있는 '사탕'을 개발한 '웡카'는 로알드 달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웡카의 초콜릿 공장은 '이상' 세계를 꿈꾸는 자들을 위한 곳이였고, 그곳은 이 시대의 평범한 계층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순수성 회복을 말하기 위해 로알드 달은 공장을 지었고, 세상 사람들의 5 부류를 초대했고,
따끔한 충고를 했다고 본다.

재미는 없다.


헉 아니다... 그 공장 자체가 자본주의 체제라는 느낌이 갑자기 퍽 든다.
제3 세계에서 끌어 온 움프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초콜릿이라는 달콤하지만 칼로리만 높은 것으로 세인들을 중독시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웡카~!

생체실험도 움프들을 상대로 막 하고 말야.. 뭔가 냄새가 나...
이상한 가족주의로 포장을 했지만, 시커먼 냄새가 나...

암튼 로알드 달은 뭔가를 숨겨놓긴 한 것 같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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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7-30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 동화는 재밌었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어요. 인기 좋았던 것 같은데 선뜻 봐지질 않더라구요.
 









(바람의 검신 켄신 같구만...)





일본 특유의.. 칼질 '스윽'  우수수 쓰러지기.... ㅡ..ㅡ;




(사와지리 에리카의 죽음... 뜨어...  대사도 별로 없고... ㅡ..ㅡ;;)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로운 시대가 온다.
살인 병기들(닌자)의 입지는 약해지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이들의 '술법'과 '무공'이 두려워
'이가'와 '코가'  두 닌자 가문의 공멸을 꾀하여, 두 가문의 결투를 종용한다..
각 가문의 뛰어난 전사 5명씩 맞짱을 뜨라고 하는데...
그러나 각 가문의 두령급 남녀(오자기리 조와 나카마 유키에)는 사랑에 빠져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 내용...


일본판 로미오와 줄리엣 같으나...
일본의 '사무라이 정신'이 역시나 거슬린다..
주군께 목숨 받쳐 충성하고, 개인보다는 집단을 위해 '엄청난 희생'을 약속하며,
흐흐.. 마지막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앞에서 넙죽 엎드리고, 평화를 구걸하는 것으로 끝난다.

중간 중간 액션이 살짝 볼만 했다가, 이상한 멜로가 껴들고, 마지막의 '낯선 사상'에
두드러기가 난다. 흐흐...

'박치기'에 나왔던 사와지리 에리카가 대사 몇마디 날리고 죽어서 더욱 안타깝다 ㅡ..ㅡ;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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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h21.hani.co.kr/section-021093000/2006/07/021093000200607260620051.html

스크린쿼터 집회 단골손님으로 나서며 비아냥에 시달렸던 그의 진심과 논리…“몸으로 민주화 이해하는 영광, 소중한 자산을 하나하나 내 영혼에 축적중”

▣ 오지혜 / 영화배우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이미 최민식 선배에겐 고백을 했으니 편하게 말하자면 난 사실 그동안 스크린쿼터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관련된 각종 시위에 나타나는 그의 모습에 일반 네티즌들과 다를 바 없이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한마디로 하자면 “어우… 저거 오버야. 저 양반 왜 저래?”였다. ‘쌀과 영화’라는 문화제 때 농민들에게 큰절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새삼스럽다,


언제부터 영화인들이 그렇게 농민들에게 관심 있었냐 등등의 반응을 보일 때 스크린쿼터는 반드시 필요하며 FTA 역시 반드시 다시 얘기돼야 한다고 믿는 나도 사석에서 최민식 선배 얘기가 나오면 “어유, 그 양반 한 손엔 필름 들고 한 손엔 쌀포대 들고 당장 미국으로 달려갈 기세던걸?” 하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 최민식 선배뿐만이 아니라 그런 감정적인 모습만 자꾸 언론에 노출시키는 스크린쿼터 투쟁본부의 전략 전술에도 좀 짜증이 나 있던 참이었다.

‘양아치 치부’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

한데 얼마 전 난 내가 패널로 참여하는 한 TV 인터뷰 프로에서 게스트로 나온 그를 만날 수 있었고 언론이라는 필터를 걷어낸 그의 ‘쌩얼’과 ‘쌩마음’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프로그램엔 그전에도 스크린쿼터의 필요성을 부르짖는 배우들이 몇 번 나왔지만 내가 시청자라고 생각하고 보고 들어보니 그닥 설득이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한데 최민식 선배의 순도 100% 진심을 바탕으로 한 기대를 한참 뛰어넘는 ‘논리’에 나를 비롯한 많은 시청자들이 영화인들의 진심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훈장을 반납하고 농민에게 절을 하는 행동들이 그것을 하나의 ‘이벤트’로 소개한 언론들이 반성해야 할 정도로 실은 순수한 진심이었다는 거, 그리고 그만큼 절실했다는 게 확 와 닿으면서 그동안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같은 편’이어야 하는 내가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 너무도 죄송해서 녹화가 끝난 뒤 사과와 존경을 드리는 쪽지를 그에게 건넸드랬다. 그리고 얼마 전. <씨네21>에 안성기 선생과 현안에 대해 대담한 기사를 보고 내 사과와 존경의 마음을 달랑 쪽지 하나로만 전한 것이 아무래도 너무 알량한 거 같아 다시 그를 만났다. 사죄하는 마음과 반성하는 마음으로.

오지혜 : 오버한다고 비아냥거리는 반응들에 섭섭했지?

최민식 : 첨엔 조금 그랬지만 금방 잊었다. 왜냐면 남을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해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출발이 개인적이었다는 얘기다. 정부가 스크린쿼터 운동을 하는 우릴 조직적인 집단이기주의라고 폄하한 것이 너무 자존심 상하고 불쾌했다. 시민의식도 없는 양아치들로 치부해버리는 데에 모욕을 느꼈다. 가만히 있으니까 바보로 아는 거 같아 참을 수 없었다.

오지혜 : 정부가 최 선배를 투사로 만들었네? 하긴 버스에 탄 승객들이 첨엔 그냥 가만히 앉아서 갔는데 기사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핸들을 확 틀면 승객들은 자동으로 왼쪽으로 몸이 휙 돌아가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최민식 : 하하하… 그 말이 맞다. 나도 딱 그랬다.

오 : 근데 사람들이 우리 딴따라들을 무시하는 거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우리 선배들이 예전에 공동체 사회에 관심 있어하거나 힘을 보태주는 일이 많지 않았잖아?

최 : 연예인들이 자기 생각을 얘기하는 게 현실적으로 참 어렵다. 그리고 꼭 거리로 나가 시위를 해야지만 현실에 대해 관심 있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스크린쿼터 투쟁을 정부는 집단이기주의라고 폄하했는데 그건 내가 보기에 연예인들이 갖고 있는 프로파간다의 힘을 미리 간파했기에 선제공격을 해서 치사하게 조진 거다.

(프로파간다라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난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걸 묻는다.)

언제 이렇게 빡세게 ‘학습’이 됐지?

오 : 스크린쿼터본부에서 언론 플레이를 잘하려면 사진 찍히는 데 배치할 ‘얼굴조’와 관료들과의 만남이나 기자회견 때 배치할 ‘논리조’를 잘 짜야 한다고 농담처럼 얘기들 하는데 내가 알기론 최 선배는 ‘얼굴조’로 알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 이렇게 빡세게 ‘학습’이 됐지? 20대 때도 선배 얘긴 전설적인 연기나 인간성 좋은 선배… 모 이런 얘기만 들렸지 ‘논리’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이번 인터뷰 프로 때랑 <씨네21>에 실린 대담 기사 보고 깜짝 놀랐다. ‘배후’가 누구냐?


△ 투쟁하는 최민식. 민주노총 주최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영화인 대표로 참석한 모습(맨 왼쪽). 지난 2월7일 정부의 스크린쿼터 축소 방침에 항의해 정부에서 받은 옥관문화훈장을 반납하고 있다(왼쪽).

최 : (씩 웃으며) 이번에 정부 태도에 열받아 스스로 운동에 참여했다가 많이 공부했다. 내가 뭐 하나에 열중하면 머리가 나빠서 다른 걸 동시에 하지 못하고 올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2년 가까이 이 문제에만 올인했으니…. 아, 그리고 지혜씨도 알다시피 연기 공부가 곧 세상살이 공부 아니겠는가. 세상을 알아야 인간을 이해하고 그래야 연기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었다.

오 : 배우로서 이미지가 고정되는 거 걱정 안 되나? 명계남은 이제 누가 자기를 배우로 보겠느냐며 속상해한다. 캐스팅되지 않을까 두렵진 않나?

최 : 어차피 그동안도 이미지 관리에는 당최 관심이 없었다. 근간에 언론에 비친 내 모습에 팬들이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 하지만 후회 안 한다. 내 자신에게 솔직했고 꼭 해야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모양새가 세련됐건 아니건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그리고 난 정치판에 들어간 게 아니었으니까 두렵지 않다. 민주노동당 공천 해프닝도 그렇다. 민주노동당은 우리 영화인 싸움에 유일하게 함께해준 정당이라 그저 고마울 뿐인데 오히려 내가 미안하더라.

오 : 반납한 훈장은 지금 어디에 있지?

최 : 글쎄 모… 문화부 책상서랍 속에 있겠지. 나중에 다시 준다고 해서 “됐다” 그랬다.

오 : 대중을 향해 너무 많은 얘길 해서 속이 허하지 않나?

최 : 왜 안 그러겠나. 요즘의 나를 가끔 객관적으로 볼 때가 있는데 어쩌다 내가 이 지경까지 왔나 하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로 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 일이 내 연기에도 도움이 되겠지.

오 : 예를 들면 어떤 점이?

최 :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내가 언제 농민의 거친 손을 직접 잡아보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으며 민주화를 몸으로 이해하는 영광을 어찌 누렸겠는가. 학생 때 구경한 싸움이랑 중늙은이가 돼서 직접 거리에서 싸우는 거랑 너무 다르다. 하나하나 내 영혼에 축적하고 있는 중이다. 소중한 자산이 돼가고 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다.

“몸싸움만은 제발 참아주세요”

오 : 아내의 반응이 궁금하다.

최 : 속상해하지. 왜 하필 당신이어야 하냐고 묻더라. 책(시나리오)이 들어오면 그냥 건네주기만 하던 사람이 요샌 답답한지 자기가 먼저 읽어보고 이거 해라 저거 재밌더라 그런다. 그런데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당분간은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못하니까.)

오 : 싸움이 너무 길어지거나 절망적인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지? 넘 허탈하지 않을까?

최 : 아니, 전혀.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 없다.

오 : 광고하는 데엔 지장 없나? 회사 반응은?

최 : 광고할 땐 오히려 내가 먼저 물어본다. 나 최민식인데 괜찮냐고. 그러면 그들이 그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것도 아니니까 괜찮다고. 회사에서도 대표가 연극했던 사람이라 마인드가 잘 통해서 문제없다. 대표 왈, “형이 옳습니다. 다만 거리에서 몸싸움만은 제발 참아주십시오. 얼굴 다칠까봐 조마조마합니다”.

오 : 하하하…. 대표 심정 이해하겠다. 정말 조심하셔라.

(이쯤에서 인터뷰를 마칠까 하다가 혹 이번 일과 관련한 인터뷰 중에서 사실이 왜곡됐거나 상처받은 적은 없는가를 물었다가 인터뷰 2라운드가 펼쳐져버렸다. “쿼터와는 직접적으론 상관없지만…” 하면서 운을 뗀 그는 지금껏 그 어떤 심각한 이야기에도 차분하게 얘길 나누던 모습과는 다르게 얼굴이 붉어지고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한동안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우석 감독의 배우 출연료 과잉설을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 대한 얘기였다.)


△ 오지혜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최민식씨. 그는 “당분간 투쟁에 올인하겠다”고 밝혔다.

최 : 그때 내가 왜 요즘처럼 논리적이지 못하고 흥분만 했나 후회된다. 너무 화가 났다. 일차적으론 정작 물의를 일으키는 연예인들 놔두고 나와 (송)강호를 지목한 강 감독에게 섭섭했지만 그걸 보도하는 모든 언론들의 태도에 억울해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밤을 새워야 하지만 몇 개만 얘기해본다면 델몬트 광고 할 때였다. 모 인터넷 신문에 제주감귤 농사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객원기자의 볼멘소리가 기사로 떴다. 그 사람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편집 의도가 괘씸했다. 한 TV 방송 프로그램에선 강호와 내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화면에 떠 있고 진행자가 막대기로 우리 얼굴을 가리키며 이 사람 이 작품에서 얼마를 받는다, 자 그럼 이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의 출연료를 보겠다, 이러는 거다. 하루아침에 우리 둘은 가난한 스태프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가 돼 있더라. 우리가 받은 인권침해는 누가 책임지나? 우리가 사기를 쳤나? 스태프들 착취당하는 게 어떻게 내 책임인가? 구조적인 문제이고 다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닌가.

심각한 건 이 사건이 스크린쿼터 싸움을 하는 데 교묘히 이용되고 있다는 거다. 바로 ‘외제차 타고 다니는 니들이 문화주권을 얘기하냐?’라는 건데 미국의 독점을 막자는 거지 우리 것만 봐달라는 게 아닌데도 정부가 이 주장을 마치 비장의 카드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거 같다. 너무 억울해서 없던 주사가 다 생길 지경이었다. 그렇게 경직된 사고로 어떻게 진보를 이야기할 수 있는가.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받는 기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외로웠다. 가난한 스태프들의 존재를 인정 안 하는 거 아니다. 단지 주범처럼 매도된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한쪽에선 시장논리를 얘기하더니 다른 한쪽에선 반시장 논리를 얘기하냐고 욕들 하는데 난 결코 국제시장에서의 반시장 논리를 펼친 적 없다. 다만 ‘공정한’ 시장을 주장했을 뿐이다.

쓰려다가 주변의 만류로 포기한 글

한번은 한 영화과 교수가 어느 게시판에 ‘러닝개런티를 받는 최민식씨께’라는 글을 썼는데 만약 영화가 망하면 출연료를 뱉어낼 수 있느냐고 묻더라. 내 눈을 의심했다. 그게 영화를 가르치는 선생이 할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곧 ‘그럼 당신은 학생들이 취직을 못하면 교수 월급 뱉어낼 거냐’고 쓰려다 동료와 선배들이 하도 말려서 참았던 적도 있다.

오 : 쓰시지. 재밌었을 텐데…. (웃음)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은?

최 : 내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사람들)에 관심을 갖자. 공동체에 관심을 갖자.

그는 이 인터뷰 자리도 언론노조에서 여는 반FTA 집회에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당분간 싸움에만 올인할 거라는 그를 보내면서 한 얘길 또 하게 해서 미안하다 했더니 오히려 자기 얘길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한겨레21>에서 아예 책 한 권을 한미 FTA 특집으로 낼 거라는 말에도 ‘고맙다’고 했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술이랑 사람이랑 연기밖에 모르던 사람을 이렇게 투사로 만든 이 나라가 원망스러웠다. 그는 또 ‘민주화를 몸으로 이해하는 영광’을 누리기 위해 길거리로 나설 것이다. 중늙은이 배우 최민식, 중늙은이 투사 최민식. 그가 내 나라 배우인 것이 참 자랑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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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7-30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과 사가 교묘하게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데... 그게 오히려 인간적으로 보이게 하는군.

로드무비 2006-07-30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좀 오해했는데.....
멋지군요.^^

라주미힌 2006-07-30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참 영화 찍을 때에 길거리로 나서야 한다는게 씁쓸해요. 놈현 똥물에 코나 박아라~!!

가을산 2006-07-30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버스 승객 비유 참 그럴 듯 하네요.

balmas 2006-08-01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얘기도 좀 물어보지. 사채 광고는 어떻게 찍게 됐는지 ...
저는 그 문제가 해명되기 전까지는 최민식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라주미힌 2006-08-01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저도 그게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