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을 비하한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사과하라!”

제주도민들이 뉴라이트전국연합에 공개 사과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 단체가 지난 17일 주최한 ‘제1야당 한나라당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 제성호 공동대표(중앙대 법대 교수)가 한 발언 때문이다. 이날 제 교수는 “4.3은 대한민국 건국을 막으려는 대표적 사건”이라며 “국경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해야 한다”고 ‘국가기념일’ 제정에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4.3사건희생자유족회(회장 김두연)와 제주4.3연구소(소장 이규배)는 21일 낸 성명에서 “4.3 진상규명에 훼방을 놓고 역사의 희생자를 매도해 유족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주기를 반복하는 행위에 대해 엄중히 경고한다”며 “제 교수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4·3유족과 도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제 교수는 제주 4.3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적인 시각의 망발을 해 그동안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눈물겹게 노력해온 백만 내외 제주도민과 유족의 피맺힌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행위를 했다”며 “이 주장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는 제주도민을 몰살해도 좋다’는 58년 전 중앙권력의 제주도민을 무시하고 능멸했던 논리를 떠올리며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4.3 사건이 최근 현대사 연구자들에 의해 유엔의 금지한 한국현대사 최초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밝혀지고 있는데도 제 교수는 ‘국경일 추진’ 운운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추모하는 국가추념일 주장이 잘못된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또 “제 교수는 지난 14일 월간조선의 기고문을 다시 4.3위원회 사이버광장에 올려 교수로서의 반역사적이고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주며 제주도민과 유족들을 우롱하고 있다”며 “4·3은 반 대한민국적인 공산폭동이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의한 엄연한 양민학살 사건이며, 4·3 천인 증언 채록사업 또한 제주도와 제주4·3연구소에 의해 3년째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한 사업”이라고 반박했다.

제 교수는 <조갑제닷컴>(8월14일)에서 김영중씨의 증언을 토대로 “제주 4.3사건은 남로당의 지령 하에 1948년 5.10 제헌의원 선거를 파탄내기 위한 공산폭동 혁명이었다”며 “이를 제주 4.3 ‘민중항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 대한민국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또 “4.3사건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일부 학살되거나 피해를 입었을 수는 있지만, 최소한 3000명은 공산폭도였음이 분명하다”며 “현재 4.3사건 위원회에 의해 피해자로 규정된 자 중에는 남로당원으로 면당위원위 위원장을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고, 월북한 자도 제주 4.3사건 희생자로 인정되어 명예회복 등 구제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법질서를 유지하려 한 군경을 모독하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제성호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강창일 의원(열린우리당, 제주시·북제주군갑)의 국가기념일 지정일 움직임과 관련, 4.3 항쟁이 48년 5월10일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방해하기 위한 폭동이라는 시각이 있기 때문에 (우파의 시각에서 볼 때)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고 인정했다.

제 교수는 “대한민국 정부수립기념일을 제대로 기념하지 않고, 4.3 사건 규명위원회에서도 역사적인 평가를 유보한 상황에서 4.3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지 않느냐”며 “다만, 4.3에 연루된 피해자(양민) 구제나 명예회복은 별개로 볼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다음은 성명서 전문

제주도 4.3사건희생자유족회, 제주4.3연구소 공동성명

제성호 교수(중앙대 법대, 친북반국가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8월 17일 뉴라이트전국연합이 주최한 ‘제1야당, 한나라당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의 토론회 자리에서 제주4·3에 대해 왜곡되고 편향적인 시각의 망발을 하여 그동안 어렵게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 눈물겹게 노력해온 백만 내외 제주도민과 유족의 피맺힌 가슴에 다시 한번 못을 박는 행위를 했다.

그는 한나라당내에 ‘국가정체성수호운동본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제주4·3은 건국을 막으려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따라서 국경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해야한다’고 주문했다. 즉, 최근 4·3진상규명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국가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이 주장을 접하며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서는 제주도민을 몰살해도 좋다’는 58년 전 중앙권력의 제주도민을 무시하고 능멸했던 논리를 떠올리며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이들에 의해 제주도민은 갖은 핍박과 수모를 당해야 했고, 무엇보다 천인공노할 살육이 제주도에서 자행됐다. 이것은 유엔의 금지한 한국현대사 최초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최근 현대사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다. 제 교수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다시 한번 제주도민의 가슴에 비수를 겨누는가?

법학자이기도 한 제 교수에게 묻고 싶다. 법을 무시한 인권유린과 집단학살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털끝만큼한 역사인식도 없으며, 시정잡배보다 못한 ‘안보장사꾼 반공반북사업가’들에게 ‘인권’은 무시되어도 좋다는 말인가?

또 제 교수는 ‘국경일 추진’ 운운하며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경건하게 추모하는 국가추념일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주도민에 대한 학살과 그 희생자를 추념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제 교수는 지난 8월 14일 월간조선의 기고문을 다시 4·3위원회의 사이버광장에 올려 다시 한번 교수로서의 반역사적이고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주며 제주도민과 유족들을 우롱하고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4·3은 반 대한민국적인 공산폭동이 아니라 국가공권력에 의한 엄연한 양민학살 사건이며, 4·3천인증언채록사업 또한 제주도와 제주4·3연구소에 의해 3년 째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한 사업임을 밝혀 둔다.

특히 우리는 4·3을 경험한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채록, 정리하여 역사의 진실을 정리하는 1차사료의 확보에 사업의 중심을 두고 있으며, 군경에 의한 피해자와 산사람에 의한 피해자의 유족을 동시에 채록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대한민국 보수 시민단체를 자임하면서도 본분을 망각하고 4·3진상규명에 훼방을 놓고 역사의 희생자를 매도하고 그 유족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주기를 반복하는 뉴라이트 전국연합 등 극우세력들과 이에 야합하는 제주경우회 등 제주도 내의 보수단체들에게 4·3의 진정한 해원을 염원하는 제주도민과 유족의 이름으로 엄중히 경고한다.

한나라당은 4·3특별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으며, 최근에는 박근혜 전대표 등 지도급 인사들이 4·3평화공원을 방문하여 4·3의 해원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은 주기적으로 4·3의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언동과 극우보수세력들과 야합하여 표리부동한 당파로 각인되고 있음을 밝혀두고자 한다. 자중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역사의 진실과 진상규명·도민명예회복을 방해하는 반 4·3세력들을 늘 경계하며 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제주도민의 자존심을 넘보지 못하도록 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다음은 문제가된 제성호 교수의 <조갑제닷컴>(8월14일)기고

제주 4.3사건에 관한 제주도민의 하소연, “피해자로 규정된 사람 중에는 남로당원도 있어”

제주 도민들 가운데 4.3사건의 왜곡된 진상규명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필자는 지난 3일 제주도에서 황해도 중앙청년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선진화”를 주제로 특강을 했다. 특강을 마친 후 김영중이란 분이 30분간 시간을 내줄 것을 부탁해 필자는 이 분과 잠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이 분은 제주 4.3사건의 진상규명이 정부에 의해 이상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해 분노하고 계셨다. 그 후과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제주 4.3사건을 깊이 연구한 바 없고 이에 대한 전문가도 아니기에 책임있게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여기서는 김영중 선생이 필자에게 전해준 이야기와 관련 자료를 간단히 정리해 소개하기로 한다.

첫째, 제주 4.3사건은 남로당의 지령 하에 1948년 5.10 제헌의원 선거를 파탄내기 위한 공산폭동 혁명이었다. 그런데 이를 제주 4.3 ‘민중항쟁’이라고 칭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한 표현은 결국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 대한민국적’인 것이다.

둘째, 제주 4.3사건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양민이 일부 학살되거나 피해를 입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김영중 선생에 의하면, 최소한 3,000명은 공산폭도였음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 현재 일본에 거주 중이며 4.3사건 주동자의 한 명인 김봉현(당시 민민전 문화부장)이 일본 문예지 『민도』(民濤) 1988년 여름호 특집(제주도 4.3사건 40주년) 제하의 글 속에서 다음과 같은 증언을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사부는 동 당위원회 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정을 하는 것은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조직책인 것입니다. 그 조직책은 어디에서 파견되어 온 것입니까?”라는 물음에 대하여 김봉현은 이렇게 답하였다.

“물론 본토인 남로당 중앙당에서지요. 그 사람의 이름은 ‘고무상’이라고 했지요. … 아무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의 지도를 했던 사람이 이 사람이지요.”

셋째, 현재 4.3사건 위원회에 의해 피해자로 규정된 자 중에는 남로당원으로 면당위원위 위원장을 한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월북한 자도 제주 4.3사건 희생자로 인정되어 명예회복 등 구제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법질서를 유지하려 한 군경을 모독하는,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넷째,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은 편향적으로 이루어졌다. 공산 폭도들이 위해를 가한 피해자 및 희생자, 그 가족들의 증언 청취가 절대로 필요하다. 피해자들이 대략 1,760여명이 살아있다고 한다.

다섯째, 제주도는 지자체 차원에서 4.3사건연구소에 두차례 피해조사 및 증언청취를 위한 지원으로 총 2억 6천만원(처음 1억 6천만원 이후 1억원 추가)을 지원했다. 그러나 좌익 공산폭도들에 의한 억울한 민간 피해자 조사활동에 대한 지원은 없다.

여섯째, 정부가 만든 제주 4.3사건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 특히 피해자 조사 내용을 전면 공개해야 한다. 정부가 더 이상 이를 감추어선 안 된다.

이상의 이야기를 듣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거나 혹은 편향적으로 이루어진 감을 지울 수 없다. 우파진영에서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재조사를 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어왔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작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러하다고 믿는다.

제성호 중앙대 법대 교수/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 및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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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8-26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성호 씨는 가끔 00분토론 같은 데서 보면 젊은 사람이 어쩜 그리
꽉꽉 막혔는지.
제정신 가진 사람 같지가 않아요.
중앙대 학생들 몹시 부끄러워 할 것 같은데.......

라주미힌 2006-08-26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롭죠.
 

세상을 바꾼 사진
페터 슈테판 지음, 이영아 옮김 / 예담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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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랑타령은 식지 않는가② 1980년대~2000년대 대중가요의 시대정신 … 섹스를 스포츠라고까지 역설한 사랑의 춘추전국시대, 시장이 세분화되다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대중가요 속 사랑은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는 삶의 문법, 더 나아가 시대정신까지도 말해주는 은유일 수 있다. 남녀관계의 표현으로 사회가 움직이는 기본 메커니즘을 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남 유흥가 문화’를 찬양·고무하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강남 유흥가가 거대해지고 전국 유흥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면서, ‘강남 파워’는 가요계에까지 밀려들었다.


△ 노랫말은 시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다. <신사동 그 사람> <사랑의 거리>는 1980년대의 강남 유흥가 문화를, <수필과 자동차> <오렌지 나라 앨리스>는 1990년대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담고 있다.

사랑의 슬픔과 한에 관한 한 강남 여인들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니, 그들의 사연을 담은 사랑 노래는 다소 추상적인 가사 표현을 통해 보편적인 설득력을 확보했다. 그건 적나라한 욕망의 긍정이기도 했다.

1983년 김수희의 <멍에>(추세호 작사·작곡)는 “사랑의 기로에 서서 슬픔을 갖지 말아요 어차피 헤어져야 할 거면 미련을 두지 말아요”라고 노래함으로써, 이별을 전제로 한 사랑을 하곤 했던 강남 여인들의 제1순위 단골 레퍼토리로 떠올랐고, 이들의 영향력에 힘입어 남성 고객들의 애창곡으로까지 발전했다.

1985년 주현미의 <비내리는 영동교>(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잊어야지 하면서도 못잊는 것은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인가봐”라고 <멍에>의 사연에 맞장구를 쳤고, 같은 해에 발표된 주현미의 또 다른 강남 노래인 <영동 블루스>(안치행 작사·작곡)는 “사랑이 피어나는 영동의 밤거리”라고 선언함으로써 그간 ‘블루스’의 원조로 군림했던 <명동 블루스>에 정면 도전하고 나섰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수많은 강남 가요들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신흥 강남 가요는 강북에서 강남으로의 권력 이동을 상징하는 동시에 이른바 ‘3저 호황’으로 흥청대는 ‘강남 밤문화’에 낭만의 포장을 씌우는 효과를 낳았다.

1988년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은 그간 부정적으로만 비쳤던 신사동 카바레 문화에 인간적 체취를 부여했다. 1989년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정은이 작사, 남국인 작곡)는 아예 노골적으로 “여기는 남서울 영동 사랑의 거리”라며 “외롭거나 쓸쓸할 때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찾아오세요”라고 권유하고 나섰다.

‘강남 유흥가 문화’가 찬양·고무한 솔직성은 1990년대 들어 신세대의 노래에서 ‘사회비평’의 형식으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탈이데올로기의 시대로 청춘의 비판적 감각은 일상적 삶을 향했고, 이는 사랑을 정밀 분석하는 작업도 포함했다. 정석원의 활약이 돋보였다.

승용차 대중화의 물결 속에서 남녀관계에서도 승용차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졌다. 1992년 015B의 <수필과 자동차>(정석원 작사·작곡)는 “이젠 그 사람의 자동차가 무엇인지도 궁금하고 어느 곳에 사는지도 중요하게 여기네”라고 했고, 1993년 푸른 하늘의 <오렌지 나라 앨리스>(유영석 작사·작곡)는 아예 노골적으로 “그런 작은 자동차 타고 다니면서 내게 감히 말을 건넬 수가 있니”라고 쏘아붙였다.

서태지는 거대담론형, 박진영은 실사구시형

연인의 자동차를 따지게 된 마당에 사랑을 터무니없이 미화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볼 일이었다. 과거엔 기성세대가 도맡아하던 이야기도 이젠 20대의 몫이 되었다. 1993년 이승환의 <사랑에 관한 충고>(정석원 작사·작곡)는 “사람들은 가끔 착각하지 서로의 조건들을 좋아하고선 이게 사랑일 거라고… 우린 어느 정도 현실적인 사람들 서로 그런 걸 이해하면 되는 거야”라고 했다.


△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실 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등을 내놓자 진보진영이 더 열광했다. 진보매체에서는 서태지 비판을 자체 검열할 정도였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한 위장일망정 삶의 동력이었다. 사랑의 환상 없인 살아갈 수 없기에 ‘사랑의 현실화’에 정반대되는 흐름도 동시에 나타났다. 파격으로 일컬어졌던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서태지 작사·작곡)도 가사만큼은 전통 뽕짝의 정신에 충실했다. “제발 이별만은 말하지 말아요 나에겐 오직 그대만이 전부였잖아…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 나는 지금 울잖아요.”

1994년 서태지가 사회 문제로 눈을 돌려 통일을 염원하는 <발해를 꿈꾸며>, 획일화된 교육 현실을 비판한 <교실 이데아> 등을 내놓자 10대보다는 진보진영 일각이 더 열광했다. 일부 진보매체에서는 서태지 비판을 자체 검열할 정도였다.

서태지가 거대담론형 진보파였다면, 박진영은 실사구시형 진보파였다. 1995년 박진영의 <청혼가>(박진영 작사·작곡)는 “그대가 나와 결혼을 해준다면 나는 그대의 노예가 되어도 좋아”라고 했다. 페미니스트들은 박진영이 여자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며 사랑의 남존여비를 깼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1996년 서태지와 아이들은 엄청난 은퇴 파동을 일으키며 사라졌지만, 그 공백은 H.O.T 등 하이틴 댄스그룹이 채웠다. 1996·97년은 고등학생 가수들의 전성시대였다. 이수만이 이끄는 SM기획의 H.O.T 성공에 자극받은 대성기획은 1997년 초 H.O.T와 동일한 콘셉트의 젝스키스를 기획해 성공시킴으로써 이후 대형 기획사의 전성시대를 열게 되었다. SM기획이 1997년 여성그룹 S.E.S를 성공시키자 대성기획은 1998년 핑클을 데뷔시켰다.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10대 시장’의 대공략이었다.

1997년 S.E.S의 (유영진 작사·작곡)은 “나 오직 너를 위해 살고 싶어”라고 했고, 1998년 핑클의 <내 남자 친구에게>(김영아 작사, 김석찬 작곡)는 “솔직히 너를 반하게 할 생각에 난생처음 치마도 입었어… 난 니 거야”라고 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전후로 ‘박정희 신드롬’과 더불어 복고주의 물결이 전 사회를 강타하기도 했다.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는 불황 때문이었을까? 댄스음악이 주춤하고 발라드가 살아나면서 사랑도 복고로 돌아갔다. 진실과 신뢰에 대한 갈증을 호소하는 노래들이 쏟아져나왔다.

명실상부한 사랑의 다원주의, 아니 춘추전국시대가 열렸다.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시장 세분화가 확실해졌다. 핑클은 계속 ‘난 니 거야’ 코드로 밀어붙였지만, 1999년 이정현의 <와>(최준영 작사·작곡)는 “설마했던 니가 나를 떠나버렸어… 늦었어 이미 난 네 여자야 독한 여자라 하지 마 사랑했으니 책임져”라고 앙칼지게 물고 늘어졌다.

섹스의 스포츠화, 싸이 vs 이효리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겪는 과도기적 처방이었을까? 모든 걸 주면서도 겁까지 주는 모드의 사랑 노래가 새 천년을 장식했다. 2000년 이정현의 <줄래>(유유진 작사, 윤일상 작곡)는 “나 오늘은 순결한 백합처럼 나 때로는 붉은 장미처럼 모든 걸 다 줄래”라고 했고, 2000년 박지윤의 <성인식>(박진영 작사·작곡)은 “난 이제 더 이상 소녀가 아니에요 그대 더 이상 망설이지 말아요… 나 이제 허락할래요”라고 했다.


△ 2000년 들어서면서 노골적으로 ‘섹시’를 표방하는 가수가 많아졌다. 핑클의 이효리(왼쪽)는 ‘난 니 거야’에서 ‘넌 내 거야’로 컨셉을 바꿔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싸이는 노랫말에서 ‘섹스는 스포츠’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후 ‘주느니’ ‘갖느니’ 하는 것에 방점이 찍힌 노래들이 많이 등장했다. 소유에의 집착과 더불어 소유 변동도 주요 화두가 되었다. 2001년 이수영의 <사랑은 끝났어>(MGR 작사, 원상우 작곡)는 “당신의 사랑은 떠났어 그 남잔 지금 여기 내 품에 편안히 잠들어 있어요”라고 했고, 2001년 god의 <난 남자가 있어>(박진영 작사·작곡)는 “그대의 남자가 안 온 게 꼭 나쁜 건 아냐 오늘 밤 이 자리에 앉은 남자가 당신 남자야”라고 했다.

아예 노골적으로 ‘섹스는 스포츠’임을 역설하는 흐름도 나타났으니, 그 선두주자는 싸이였다. 2002년 싸이의 <처녀논쟁>은 처녀성을 지켜야 한다는 여자에게 남자 ‘선수’가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 노래였다. “처녀는 몸이 아니라 정신. 못생기고 처녀라 자랑하는 건 병신. 돈을 위한 섹스, 맘이 담긴 섹스, 땀 빼려는 섹스, 모두 숭고한 스포츠.” 그러나 싸이가 늘 그렇게 사나운 건 아니었다. 같은 해에 나온 싸이의 <신고식>은 “너도 원한 걸 해야 그래야 성인이야 오빨 믿고 따라와”라고 꼬드겼다.

싸이의 반대편엔 이효리가 있었다. 이효리는 5년 만에 “난 니 거야”에서 “넌 내 거야”로 돌아섰다. 2003년 이효리의 <10 MINUTES>(Maybee 작사, 김도현 작곡)는 “Just one 10 minutes 내 것이 되는 시간”이라고 장담했다. 이효리는 2006년 2집 앨범 <다크앤젤>에선 10분도 길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대중문화평론가 이승재는 “2집에서 이효리는 ‘적극적인 여자’의 모습을 뛰어넘어 거의 ‘굶주린 암사자’에 가깝”다고 평했는데, 그건 미국의 마돈나를 능가하는 ‘섹슈얼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이었다. 왜 섹스의 쾌락을 남자만 표현해야 한단 말인가?

‘섹스의 스포츠화’는 대중가요의 ‘조작’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홍두승이 경북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연세대, 전북대, 한림대 등 6개 대학 교수팀과 함께 2006년 6월 이들 대학의 학생 554명을 상대로 실시한 ‘2006년 한국 대학생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성관계 경험이 있는 학생은 31.2%로 지난 1994년에 실시한 같은 조사의 14.1%, 1999년 조사의 19.6%에 비해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1994년과 비교해 남학생은 18.2%에서 39.4%, 여학생도 10%에서 22.7%로 늘어나, 남녀별로 증가 추세는 비슷했다. 최초의 성관계 대상자는 남학생의 경우 지난 1994년 조사에선 애인이 44.4%였지만 최근 70.4%로 증가한 반면, 성매매 종사자는 31.6%에서 5.2%로 크게 줄었다. 여학생도 대상자가 애인이 77.8%에서 86.2%로 높아졌다.

여성의 전투성은 이른바 ‘누나 신드롬’으로도 나타났는데, 이 또한 실체적 근거를 갖고 있다. 2005년 결혼한 연상녀-연하남 커플은 전체 신혼부부의 12.2%를 차지했다. 10년 전 8.7%와 비교하면 무시할 수 없는 흐름이다. 2006년 7월 한 결혼정보 업체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응답자 70.5%가 연하남에 대해서, 남성 응답자의 53.8%가 연상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원인은 여성의 사회 진출과 그에 따른 경제력 향상이다.

전위-중간-보수, 불멸의 3각 구도

그 이전에 1990년대의 인구학적 변화가 있었다. 1992년 전체 인구의 26.7%인 1135만3천여 명이 학생이었으며 이 중 중고생이 절반을 차지했다. 이들 ‘1가구 2자녀’ 시대의 10대들은 구매력도 막강했기 때문에 사실상 가요문화의 지존으로 군림했다. 당연히 가요는 이들의 취향을 우선시했다. 이후 등장한 인터넷은 4천억원대 음반시장을 1천억원대로 쪼그라들게 만들면서 ‘음원시장’으로 이동하게끔 몰아붙였는데, 이에 따라 대중의 주목을 쟁취하기 위한 가요의 자극성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변화가 전통적인 사랑 노래가 설 땅을 완전히 없애는 건 아니다. 가요 속 사랑은 ‘전위-중간-보수’의 3각 구도가 서로 밀고 당기면서 시장을 분점하는 형태로 표현됐으며,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불멸의 법칙이다. 물론 그런 가운데 전반적으론 전위 쪽으로 이동하는 흐름은 계속되겠지만 말이다.

가요의 소비 환경도 가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변수다. 한국의 가요문화는 혼자 즐기기보다는 남들 앞에서 보여주는 문화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사랑 표현은 늘 과시적 과장을 범하게 돼 있다. 특히 1995년부터 급속히 늘어난 노래방과 단란주점은 그런 효과를 극대화했다. 한류의 1등 공신을 멀리서 찾지 말라. 바로 노래방이다. 노래방은 의외로 심오한 장소다. 1999년 6월 한국을 방문한 ‘파리의 택시운전사’ 홍세화는 ‘20년 만의 귀국일지’에서 ‘노래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로만 듣던 곳에 들어갔다. 나도 노래를 몇 곡 불렀다. 한국 사회를 알려면 꼭 가봐야 하는 곳. 스트레스를 풀고 신경질을 풀고 불안심리도 풀고 억압감정도 처리해주는 아주 중요한 정신병원. 이 노래방이 없어지면 정신병자가 급증할 것이며, 폭력죄·소요죄·노상방뇨죄·고성방가죄 등의 범죄가 지금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가요 속 사랑과 관련해 더욱 중요한 사실은 노래와 술은 늘 따라다닌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술 한잔 걸치고 마이크를 잡았다. 과장된 사랑 감정이 일지 않는다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다. 당신은 사랑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놓겠다는 의지로 충만하다. 어차피 현실세계가 그러지 못하므로 절규라도 해야 한다.

한국인에게 노래는 발산의 축제다. 안으로 담는 게 아니라 밖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선언의 성격이 강해야 한다. 백화점 쇼핑 행위와 비슷해진 사랑이기에, 구매력 고통을 겪는 사람일수록 목숨 거는 사랑을 절규하는 것으로라도 보상을 받아야 한다. 이 심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가요 속 사랑의 정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탐욕의 화신’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자기 잇속만 챙기는 사람이 노래방에서 사랑 노래를 진지하게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는가? 그 순간만큼은 그를 인간적으로 보고 싶어진다.

전율을 잃은 당신을 위하여

땅 좁고 인구밀도 높고 동질성이 강한 탓에 한국인은 체질적으로 타인지향적 보여주기에 강하다. 그렇게 축적된 저력이 한류를 만들어냈다. <겨울연가>의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제 첫사랑이 저를 다시 부르면 어떡하죠?” 낯간지럽고, 당하는 입장에선 온몸을 부르르 떨어야 할 배신의 멘트지만, 삶의 피곤에 찌들어 전율을 잃어버린 대중에게 뜨겁고 격렬한 사랑은 반드시 창조되어야만 할 영원한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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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아침 8시 조금 넘은 시각, 다들 출근하는데...

뭘 촬영하고 있더라... 스탭들 쫙 있고, 카메라 돌아가고... 촬영하니깐 비켜달라하고...

뭔 장면이냐면...

어떤 여성이 외발자전거를 타는데...

복장이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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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천문연맹(IAU) 총회에 참석하고 있는 천문학자들이 24일 명왕성을 행성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천문학자들은 1주일간에 걸친 천체의 본질을 둘러싼 논란 끝에 지난 1930년 처음 발견된 이래 행성으로 인정돼 왔던 명왕성을 태양계의 행성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했다.

천문학자들이 어떤 별은 행성이고 어떤 별은 행성이 아닌지에 대해 정의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세진기자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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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8-24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금지화목토천해 ....

마노아 2006-08-2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 들어온 것까지 기억하려면 머리 빠개져요. 아마 검색을 하게 될 거야요...;;;

마노아 2006-08-25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사를 보니 새로 들어온 애들도 같이 빠졌군요. 명왕성 덜 섭섭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