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dnet.co.kr/itbiz/column/anchor/goodhyun/0,39030292,39150496,00.htm
와이브로와 HSDPA로 읽는 전파 기득권의 미래
전파는 권력의 것이었다. 전파란 희소성이 있는 공공 자원이기 때문이다. 전파가 효율적으로 그리고 공정히 활용되도록 관리 육성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 방송과 통신의 역사는 이러한 책임하에 허락된 장치 산업, 이권 산업의 역사였다.
그런데 이 산업들이 지금 대풍랑 앞에 놓여 있다. 그것은 인터넷이란 대풍랑. 방송은 IPTV라는 풍랑 앞에서 떨고 있고, 통신마저 대풍랑 앞에 놓여 있으니, 그 것은 휴대인터넷, 와이브로라는 풍랑이다.
목소리 전달로 시작한 1세대의 무선 통신은 디지털화를 거쳐 초고속 이동 통신의 3세대로 접어 들었다고 말들을 한다. 이동통신 업계는 세대라는 말을 써 가며 자신만의 로드맵을 그려 가는데, 이 세대 구분의 주역은 ITU(국제전기통신연합)라는 UN 산하의 전문 기구.
그렇지만 세계 표준화를 꿈꿨던 3세대 IMT-2000은 결국 2.5G니 3.5G니 소수점 단위의 세대론으로 분할되며, 많은 국가에서 계륵이 되어 버렸다. 유럽의 주파수 경매 후유증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최근 LGT의 IMT-2000 주파수 반납 소동을 보면 '닷컴 버블' 못지 않은 총체적 ‘삽질’이 엿보인다.
신기루와 같던 3세대 IMT-2000은 와이브로에 놀라 3.5G HSDPA로 업그레이드하며 뒤늦게 분발하고 있지만, 통신을 국가와 국가가 낙점한 기업만이 수행할 수 있었던 시대의 중앙 집권 기술 정책의 잔상을 보는 듯만 하다.
어쩌면 와이브로는 이 상황에 대한 반기다. 최근 미국 스프린트가 4G 기술로 삼성, 인텔, 모토로라가 미는 모바일 와이맥스, 즉 와이브로를 채택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지면을 장식했다. 이 뉴스는 기존 ITU 주도의 이동 통신 패권에 대한 쿠데타가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여기서 묘한 데자뷰를 느끼고 마는데, 인터넷 혁명이 전화국이나 정부와 같은 공공의 힘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썬, 시스코 등등 민간 기술 기업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추억 탓인 듯싶다.
우리는 이미 통신 정책과 무관하게 인허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 주파수 대역에서 무선랜을 활용, 인터넷과 웹을 누비고 있다. 인터넷은 공적인 국제 기관 없이도, 비영리기관 IEEE에서 랜 규격을 정하고, W3C에서 웹표준을 만들며 기술 기업의 리더십에 따른 열린 표준을 성공적으로 구현해 온 것이다. ITU는 IEEE 안에서 정리되고 있던 와이브로를 눈치 빠르게 이미 4G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 놓았지만, 삼성과 인텔이라는 뜻밖의 기술 기업들이 유비쿼터스식 이상계를 나름대로 시작해 버린 쿠데타라는 점에는 변함 없다.
이들 혁명가들이 꿈꾸는 미래의 무선 네트워크란 IP, 즉 인터넷 프로토콜 기반의 보편적 인프라다. 무선랜처럼 보편적인 열린 표준이 그 이상인 것. 규제된 음성 통신의 부가 서비스로 데이터 통신이 올라 가는 것이 아니라, 열린 데이터 통신의 부가 서비스로 음성 통신이 올라 가는 역전 현상에 와이브로의 혁명성이 있다.
All IP化, 즉 Everything over IP의 이상계 혁명은 바로 통신 인프라와 그 위의 콘텐츠를 분리하는 숙청 작업을 불러 올 것이다. 무선 단말마저 인터넷이라는 인프라로 완전 통합된다면, 이동통신 네트워크 온실 속에서 온존하던 네이트, 매직앤, 이지아이 등은 그 윤기를 잃어 갈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웹 접속이 되니 네이버, 구글, 야후를 쓰면 그만이다. 심지어 음성 통화마저 인터넷 위의 하나의 응용 분야로 전락한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폰을 쓸 수 있는 정액 요금제 단말을 들고 다니면, 종래의 핸드폰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의 이동통신사업자들과 같이 콘텐츠와 인프라를 수직 통합하고, 자기 스스로에게 기회를 우선 배정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빨려 들어간 이상계에서는 기능부전에 빠지고 말 것이다.
와이브로에도 딜레마는 있다. 종래의 이동통신이 향유했던 수직 통합에 의한 여분의 수익이 차단된 채, 인프라에서만 수익을 내야 한다면 벌이가 신통치 않을 것. 결국 자연스레 종량제를 노리게 된다. 정액제만으로 전국망의 설비투자에 대한 동기부여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량제란 고삐가 묶인 상태에서라면 이상계 혁명은 요원한 꿈이다.
이제 우리는 이동통신의 이상계 혁명이란 브로드밴드의 이상계 혁명이 이미 겪었던 두 가지 조건이 해결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아니 그 조건의 충족이 목표임을 깨닫게 된다.
① 콘텐츠와 인프라의 분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 네트워크는 각각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선택된다. 가장 좋은 망사업자와 포털과 OS와 장비를 고를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② 인프라의 정액제화. 현실을 잊고 이상계에 빠져 들 수 있어야 할 텐데, 만약 우리의 인터넷이 종량제였다면? 긴 얘기가 필요 없다.
와이브로는 분명 혁명적 사건이다. 그러나 이 기술을 도맡게 된 사업자가 위의 두 가지 조건을 이루어내는데 주저하지 않아야 비로소 가능한 혁명이다. 기술을 만든 자와 사업을 해야 하는 자는 입장이 다르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와이브로인지 HSDPA인지 그 기술 규격이 아니라, 어느 사업자에게 이상계 혁명을 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동통신사업자가 음성 위주 폰의 굴레를 벗어나서 인터넷과 웹이란 이상계를 한껏 껴안는 단말을 통해 위의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면, 적어도 인프라의 패권은 그들이 수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 지 지켜보고 있다.
신문의 몰락에 놀란 방송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IPTV를 막아 보려 하는 심정을, 이제 이동 통신도 조금씩 느끼게 될 것이다. 인터넷에 의해 인프라를 빼앗기는 심정을. 어쩌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MP3를 막아 보려는 음반업의 심정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 이동통신사업자들은 종량제의 기득권에 안주하며 콘텐츠와 인프라를 하나로 수직 통합하려 했던 선배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PC통신이라는 선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