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주의 혁명 종말 ‘美는 어디로 가는가’
입력: 2006년 11월 23일 18:27:57
 

미국은 어디로 가는가.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에서 꽃을 피운 미국의 보수주의 혁명은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며 종말을 맞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12년 만에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되찾은 민주당이 미국사회의 새로운 지표를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는 징표는 아직 없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기존의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막연한 공감대만 형성돼 있을 뿐이다.

미국 내에서는 이념으로서의 보수와 진보의 경계가 갈수록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지난 7일 중간선거 이후 미국사회의 향방을 가름하는 논의가 한창이다. 새로운 정치실험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에서다. 미 온라인 정치평론 매거진인 ‘슬레이트’ 편집장 제이콥 와이스버그가 23일자 파이낸셜타임스에 기고한 ‘방향을 모색하는 미국 정치’ 제하의 칼럼에서 부시 행정부에 들어 보수혁명은 종말을 고했다고 분석했다.

부시 행정부 출범과 함께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 전위에 나서면서 보수혁명은 변질됐다. 하지만 보수 혁명의 맹아는 지난 64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 캠프에서 싹텄다는 게 정설이다.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신앙부흥운동과 맥을 같이하며 등장한 뉴라이트(신우파)가 1차 꽃을 피운 것은 레이건 행정부 시대다. 작은 정부와 낮은 세금 및 안보를 중시하며 ‘악의 제국’인 소련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대외정책을 펼쳤다.

사회정책에서 개인의 책임을 중시했고 당연히 강력한 범죄소탕으로 이어졌다. 공립학교에서 기도 허용을 확산하기도 했다.

보수의 큰 흐름은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첫 임기 2년 동안 짧은 휴지기간을 거쳐 94년 공화당의 상·하 양원 장악과 함께 변화의 중심에 섰다. 공화당 하원의장의 이름을 딴 이른바 ‘깅리치 혁명’이 뉴라이트의 두번째 점화인 셈이다. 클린턴 스스로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면서 보수주의와 가치와 정책을 섞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당선 이후 스스로 보수주의의 가치들을 훼손했다는 게 와이스버그의 진단이다. 부시 대통령은 무엇보다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성탄절 양말을 돌리듯이 무절제한 예산집행으로 재정·무역에서 역사상 최고 호황을 누렸던 클린턴 시대를 닫았다. 재정적자는 쌓였고 늘어난 정부지출은 ‘작은 정부’의 명분을 무색케 했다.

사회정책에서 부시는 더욱 오른쪽으로 전환, 비종교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공화당원들과 거리를 뒀다. 이라크 침공으로 대표되는 부시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군사개입은 국내에선 신뢰를 잃었고 국외에선 ‘슈퍼파워 피로증’을 낳았다. 부시 행정부 집권 6년 동안 보수연합은 깨지고 에너지는 소진됐으며 핵심 가치는 보수의 품을 떠났다는 것이다.

물론 중간선거 결과를 좌우한 것은 민주당이 잘했다기보다는 공화당이 못했다는 설명이 주류다.

이라크전쟁과 함께 공화당 및 정치권의 부패, 갈수록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중산층의 실망이 어우러져 빚어진 것인 만큼 보수시대가 끝나기는 했지만 새로운 시대는 앞이 안보인다.

향후 미국의 진로에 대해 와이스버그는 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우선 새로운 진보주의의 출현 가능성이다. 민주당이 내친김에 2008년 대선까지 승리로 이끌고 의회 지분을 더 늘릴 경우 지난 93년 클린턴 행정부가 중단했던 짧은 ‘진보실험’이 새로운 형태로 시작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 핵심은 세계화의 폐단에 대한 수술작업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임금적체와 벌어지는 빈부격차, 중산층의 불안정에 대한 대책 마련이 주 내용이다.

민주당 존 에드워즈와 앨 고어 전 부통령, 바락 오바마가 이런 성향의 정치인으로 지목된다.

두번째는 클린턴주의의 부활 또는 뉴클린턴주의다. 이는 온건한 공화당원과의 적극적인 공조를 통해 중도세력의 폭을 넓혀나가는 시나리오다. 클린턴이 실패했던 의료보험개혁을 다시 추진하는 등 점진적인 개혁을 지향하는 이런 경향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세번째는 ‘혼동의 중도’로 당분간 특별한 정치적인 지향점이 없는 시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사회·경제적인 불안정을 완화하되 미국내 점증하는 경제적 포퓰리즘과 맞물려 좋게 말해 양당정치의 부활이지만, 굵은 흐름을 찾을 수 없는 상태다. 공화당의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과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아널드 슈워츠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 및 조지프 리버만이 대표한다.

마지막으로 ‘부시 없는 부시이즘’의 출현 가능성이다. 부시는 갔지만 그가 내놓았던 감세와 안보지상주의의 명제가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과 사법 보수주의는 계속될 것이며 경제적으로는 다소 규율이 잡힌 레이거노믹스의 부활이 예상된다.

예산낭비를 혐오하고 비종교적인 세속정치적인 개혁을 주창하는 공화당의 차기 대선주자 존 매케인이 대표주자다. 그는 이라크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죽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압도적인 승리만이 결론이라고 주장한다.

와이스버그는 마지막으로 이도 저도 아닌 새로운 정치형태가 출현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이 어떤 길로 접어들지 점치기 쉽지 않은 국면이라는 얘기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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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녹취록인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MBC 이상호 기자에게 항소심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죄를 인정해 논란이 예상된다.

서울고법 형사9부(김용호 부장판사)는 23일,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MBC 이상호 기자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6월에 자격정지 1년형의 선고 유예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행위도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 행위, 즉 정당행위로 취급되면 벌하지 않는다’는 형법 총칙을 따를 수 있으나 피고의 보도 행위는 사회상규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안기부 X파일 내용이 국가의 불법행위의 산물이며, 재벌과 언론사주가 8년 전 대선자금을 상의하고 일부는 실제로 집행됐다는 의심이 들기 때문에 공적 관심의 대상이 될수 있다. 그러나 대화 내용을 국가 안전보장, 사회질서 수호 등을 위해 부득이 보도할 수밖에 없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보도 행위가 당순히 추상적인 내용을 넘어 X파일에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을 밝힌 것이나 등장 인물의 실명을 밝힌 것도 용인될만한 수단의 상당성을 일탈한 것이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통신비밀보호법이 특별히 위법성 조각 조항을 두지 않고 침묵하는 이유는 개인을 발가벗겨 수치를 드러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통비법은 엄격한 ‘법의 울타리’를 쳐주고 있다. 이 울타리 안에서 때로 부끄럽고 추잡한 대화가 오갈지도 모른다. 그러나 쉽게 위법성을 조각해 이 울타리를 열어놓는다면 권력은 울타리를 넘어 ‘독과’(毒果)를 따 타인의 비밀을 쉽게 알아내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해야 하는 게 옳지만 보도의 정당성과 개인의 의사가 아닌 방송국의 의사결정 체계를 통해 보도가 된 점 등 정상을 참작해 형의 선고를 유예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법원이 매번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놔 당혹스럽다”며 “기소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자본 논리에 의한 삼성의 국권 찬탈에 대한 보도의 정당성을 알리고자 재판에 참여한 만큼 대법원에 상고해서 보도의 정당성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함께 기소된 김연광 월간조선 편집장의 경우 검찰과 피고인의 항소를 모두 기각, 원심의 선고유예를 유지했다.

<미디어칸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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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있는 모병원에서 받았다.

심전도 검사, 초음파 검사할 때
아무나 볼 수 없는 나의 가슴을 보여줘야 해서 좀 민망했다 :-)
(난 가슴에 털도 있단 말야.. ㅡ..ㅡ;)
집게로 여기 저기를 집어대고, 배를 더 드려내려고 바지를 살짝 내리는데..

으미..... 야릇한... ㅡ..ㅡ; 

으미... 내 뱃살...

차가운 걸로다가 가슴 여기저기 문질러대고...

으미...

근데 청력검사가 야리꾸리했다.
모기 날개짓 소리보다 작은 소리가 들리는 듯 마는 듯...
심지어  '환청'까지 들리는 듯 했다.

무슨 청력검사를 5분을 해 ㅡ..ㅡ; 내 귀가 이상해요?라고 물으니까... 아니라고 한다.
아무래도 나의 가청 주파수가 '고래'의 언어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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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1-2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음파 검사할 때 야릇한 느낌을 갖는 분은 라주미힌님이 첨이 아닌가 싶네요^^

라주미힌 2006-11-23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든데.. 슥슥 문지르는게... :-)
간호사, (여)의사는 다 한 미모하시는 듯... 병원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임다. 므흣.

마노아 2006-11-23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들은 더 민망해요. 앞판이라구요. 무려..ㅡ.ㅡ;;;;

마늘빵 2006-11-24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흐흐. 야릇.

산사춘 2006-11-24 0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남자친구는 나이도 엇비슷해보이는 여의사가 항문에 손가락 집어넣어서 정말 죽고 싶었대여. ㅎㅎㅎ

라주미힌 2006-11-24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 좋아서??? 흐흐... 흐흐...
 

미친소 꺼져라!
[프로메테우스 2006-11-22 18:45]    
△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퍼포먼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한미FTA 저지 범국민총궐기대회

[프로메테우스 김유미/유정우 기자]

22일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FTA범국본)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1만 여명이 모인 가운데 ‘노동기본권 쟁취, 사회양극화 해소, 한미FTA 저지 범국민총궐기 대회’를 진행했다. 이밖에도 서울을 포함한 전국 13개 도시에서 민주노총 파업결의 대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연가투쟁 집회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동의없이 졸속적인 한미FTA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며 농민과 민중에게 재앙이 될 한미 FTA 협상을 반드시 중단시키기 위해 강력한 연대투쟁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한편 FTA범국본은 이번 범국민 총궐기투쟁이 22일, 29일, 12월 6일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제 5차 한미 FTA협상이 열리는 시기에 미국원정투쟁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유미/유정우 기자(prometheus@prometheus.co.kr)

- ⓒ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한미FTA저지 범국민총궐기대회 참석자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 남윤인순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와 영화 괴물의 봉준호 감독이 총궐기 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 프로메테우스 유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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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1-22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로드무비 2006-11-23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라 님도 올리셨던데.......
특히 화가들의 활약이 눈부십니다.
 
 전출처 : 로쟈 >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지난주에 장정일의 신간 <장정일의 공부>(랜덤하우스, 2006)에 대한 소개 페이퍼를 올리면서 인터뷰기사 한 꼭지를 옮겨놓았었는데, 내친 김에 북데일리에 실린 인터뷰 또한 옮겨놓는다. 대충 읽어보고 말 생각이었지만 이 인터뷰 기사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장정일만큼 책을 읽는 건 아니지만 나도 책에 대해 아는 체를 많이 하다보니 간혹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것으로 오해받곤 한다. 그런 기대와는 반대로 평소에 나는 책을 너무 안 읽는다고 자책하며 사는 편이다(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정하는 게 사실은 더 많지만). 마일리지도 쌓인 김에 이번에 <장정일의 공부>와 함께 몇 권의 책을 더 주문했는데(책은 이미 학교로 배달되었지만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분량상 <공부>를 제외하면 내가 빨리 완독할 수 있을 책은 <언어학과 정치>(역락, 2006) 정도이겠다.

 

 

 

 

거기에 현재 읽고 있거나 대출해놓은 책들이 10여권. 강의준비나 필요 때문에 읽어야 하는 책들이 또 두서없이 그만큼이다. 지난 주말부터 가방에 들어가 있는 책은 아이리스 장의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미다스북스, 2006)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중앙, 2006)이고, 집에 와서 잠시 펼쳐본  책이 <계몽의 변증법>(문예출판사, 1995), 그리고 엊그제부터 행방을 찾고 있는 책이 비릴리오의 <정보과학의 폭탄>(울력, 2002)이다(나는 국역본과 함께 러시아어본을 갖고 있는데, 최근에 영역본도 구했다).

 

 

 

 

전업작가라면 나름대로 책읽기에 질서를 부여해서 '로쟈의 공부'라도 내놓을 준비는 돼 있지만 장정일만큼 쌓아놓은 공덕이 없기에(내가 읽은 '장정일' 가운데 베스트 네 권이다. 나는 그의 <삼국지> 등을 읽지 않았다) 그럴 경우 생계를 책임질 수 없다. 그러니 울적하다. "다 읽으면 굶기 때문이죠." 더불어 아무리 부지런히 읽는다고 해도 이젠 책들을 다 읽을 수 없다. 그러니 막막하다. "다 읽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말하건대, "저, 독서광 아닙니다!"

북데일리(06. 11. 20) "저, 독서광 아닙니다, 다들 안 읽기 때문이죠"

지난 2월.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소설가 장정일(45)이 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초빙교수로 임용되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학교 측은 “교육부 학력 규정상 장 씨를 전임교수로 임용할 수 없어 초빙교수로 채용했지만, 임기를 마치면 발탁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음란물 비시에 휩싸여 구속되기도 했던 ‘화제의 작가’ 장정일. “나는 문학이 직업이 아니라면 구역질이 난다”라고 스물한 살 일기장에 그렇게 적었던 그는 시인도 됐고, 소설가도 됐고 교수까지 됐다. 모두 ‘책’ 덕분이다. 밤낮으로 읽은 책 이야기. 그가 쓴 6권의 <독서일기>는 독서광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전설적인’ 책이다. 책 전문 프로그램 ‘TV 책을 말하다’의 진행자로 발탁 되었을 때 그의 어눌한 말솜씨에 불만을 갖던 사람들도 “그럴 만하다”며 독서력만큼은 인정했다.

학교에 ‘덜’ 다닌 대신 ‘더 많이’ 읽은 장정일. 그가 <장정일의 공부>(이하 '공부')(랜덤하우스코리아. 2006)라는 책을 펴냈다. 이번에는 읽은 책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뾰족한 일침까지 던졌다. 관심분야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책에 미쳐있는 그를 간곡한 설득 끝에 ‘어렵게’ 만났다. 정면의 시선을 던지지 못하는 그의 수줍음 사이로 마흔 다섯 해의 기나긴 책의 역사가 사라졌다 피기를 수 없이 반복했다.

- 시인, 소설가로 살다가 직장인이 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백수로 있는 것만 못 하죠. 작가는 24시간 365일이 자유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학생들을 위해 내 삶을 쪼개야 하니까 작가가 낫지요”

- 그 좋은 자유를 포기한 것이나 나고 자란 대구를 떠나 서울 살이를 시작한 것이나 자신에게는 큰 변화일 텐데요. 대구와 서울을 비교해 보면 어떻습니까.

“서울은 재입성이에요. 90년도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사 왔다가 96년도에 다시 대구로 내려갔죠. 그리고 10년 만에 올라 온 거에요. 대구와 서울을 굳이 비교하자면 도시와 지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사회에서는 ‘은거’ 에 비할 수 있는 지방생활이라는 게 별 의미가 없어요. 인터넷, 신문. 아무것도 없는 ‘은거’가 불가능한 시대죠. 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면 꼭 서울살이를 해보라고 해요.

사실, 대구에 가도 서울 생활하고 비슷하거든요. 그럴 바에는 대도시에서 부대끼며 살아보는 게 경험상 낫다는 거죠. 젊은 작가라면 특히, 대도시 생활을 겪어 봐야 해요. 촌으로 가겠다는 젊은 작가들한테는 나이 50, 60되서 가도 괜찮으니까 지금은 대도시에서 생활해 보라고 말해요. 대도시 문명과 호흡하면서 글감과 문젯거리 같은 것들을 만나봐야 해요.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외국 생활도 좋은 경험이 될 거에요. 누구든 문명에 노출 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은거의 장점도 살리지 못할 바에야 중소도시 보다는 대도시에서 살아 보는 게 경험상 좋다는 거죠”

“지금은 민주주의 아닌, 과두제”

- <독서일기>와 <공부>의 공통점이 있다면 역시, ‘책’입니다. 책읽기라는 것은 마흔 다섯이 된 지금의 자신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독서일기>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이야기 했다면 <공부>는 ‘책 속에는 길이 없고, 책과 사이사이에 난 길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 책입니다. 사실, 책은 아무 것도 가르쳐 주지 못해요. 만약 길이 있다면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이겠죠. 길은 스스로 만드는 거에요. 텍스트를 가지고 콘텍스트 속에 스스로 길을 만드는 겁니다. <독서일기>는 책이 먼저 독후감이 뒤에 있는 책이지만 <공부>는 반대로 관심 있는 테마를 정한 후 관련된 책을 읽은 것 입니다. 책이 먼저가 아니라 뒤에 선택 된 거죠. 그게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책을 읽는 이유를 물으면 저는 늘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 책을 읽는다’고 말합니다. 반대로 말하면,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교양이 모자란 사람이 아니라, 나쁜 시민이라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공부’하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는데 너무 입시위주의 공부를 해서 그런 거고, 공부는 평생 함께 가야 할 좋은 친구입니다. <공부>는 나이 마흔 다섯 된 제가 공부라는 게 참 재미있다고 말하는 책이에요”

- '책 읽기를 통해 스스로 길을 만든다'는 말씀에서 ‘길’이 의미하는 것은 다른 텍스트로 옮겨 가는 길이 아니라 사회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같습니다. '비행기의 1등석에 탈 수 있는 사람에게는 국경이 없지만 3등석 밖에 탈 수 없는 사람들에게 국경의 벽은 높다'며 현 사회를 ‘과두제’에 빗대는 등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도 쏟아 내셨는데요.

“지금은 민주주의 시대가 아닙니다. 이미, 과두제에 들어갔죠. 미국도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과두제란 특권층을 의미합니다. 그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나눠 갖는 시대죠. 프랑스 혁명 이후 세금 내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잖아요. 지금이야 형식적으로 1인1표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돈 있는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선거비용을 많이 낸 사람이 당선확률이 높고, 돈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만들어 내고 결국 그들이 법을 만듭니다. 그러니 민주주의에 살고 있다는 생각은 큰 착각이죠.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겁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속게 되죠. 정치권력, 자본주의에 휘둘리기 쉬운 사람, 만만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단돈 몇 천원만 사기 당해도 속았다고 분해하면서 책을 안 읽는 다는 건 문제죠. 엠마뉘엘 토드, 촘스키 모두 ‘책 읽는 능력이 민주주의를 지킨다’는 말을 했습니다. 책읽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고 보다 철저히 기업과 정치를 감시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소수종파의 문제 아니다”

- 아직도 여호와의 증인을 믿고 있는지요. 본문에 보면 '학력이 중학교 졸업밖에 되지 않는 것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서 당시에 치러지던 고등학교의 군사훈련(교련)을 피하고자 진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1만 명의 신도를 감옥에 보내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해온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 유일하다'고 밝히셨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사이비로 지탄 받아온 것. 대체복무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특혜시비라고 지적한 개신교에 대해서도 분노를 표하셨습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까?

“지금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18세에 신앙을 버렸어요.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양심적 병역 문제가 중요한 게 아니고요. 어느 종교든 간에 살생, 살인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종교는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아요. 이는 한국 종교의 현 위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신앙인이라면 ‘나는 양심에 의해 살인은 못하겠다’고 하고 ‘그러니까 양심적 병역대체를 하게 해다오’라는 문제의식을 갖는 게 당연 한 건데. 우리나라 종교는 그렇지가 않아요.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이 소수종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 겁니다. 또 불합리 한 건 종교 안에도 계급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군대나 살인문제에 대해 평신도가 고민을 하면 감옥에 가고 성직자는 면죄가 된다는 거에요. 성직자라면 평신도를 위해 발언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그 고민에서 벗어나 있어요. 성직자라고 면죄 되어서는 안 되죠”

- 40년간 문학을 한 편도 읽지 않았다는 일본의 저널리스트 다치바나 다카시를 향해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한 동문 오에겐자부로에 대한 열등감을 표출한 것은 아닌지’라는 반문을 던지셨습니다. 문학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인문, 교양 분야의 책들로 포진되어 있는 <공부>를 보면 스스로도 문학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다치바나 다카시와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최근 20년간 문학작품을 안 읽었다고 합니다. 다카시는 21세기 교양의 총체는 자연과학으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문학은 늘 사회 현실과 조우했지만 어느 날 그게 “끊어졌다”고 말합니다. 일본 문학이 언젠가부터 자아나 내면도피로 방향전환을 했다는 거죠. 그래서 문학을 안 읽는다고 해요. <문학의 종언>에서 하는 얘기가 그런 겁니다. 작가들이 점점 사회와 괴리 될 때 문학도 독자와, 사회와 끊어진다는 거죠.

문학이 살아나려면 내면에서 벗어나 사회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옛날 시인, 소설가들에게 사회는 “여기 앉으세요”라며 자리를 마련해 줬습니다. 그건 문학하는 사람들에게 “당신 말을 듣고 싶다”는 뜻이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아요. 그건 작가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작가도 한국사회에 대해서 발언하지 않죠. 이렇게 사회에서는 멀어지고 내면 도피나 자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니까 ‘미래파’라는 시가 나오는 겁니다. 작가들도 내면 도피에서 벗어나서 사회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저는 종종, 작가들은 ‘야반도주’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야반도주’는 내면 도피 문학을 말합니다. 작가는 사회에 빚이 많습니다. 그러니, 빚지고 도망가서는 안 된다는 뜻이죠”

“책은 반드시 도서관에서 읽은 후 구입”

-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다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아무리 빌려 읽는다 해도 워낙 오래 된 책탐이니 모은 분량이 엄청나겠습니다.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 읽습니다. 책은 꼭 도서관에서 읽어보고 사요. 신간은 도서관에 늦게 도착하기 때문에 3달 정도 늦게 사게 되지만 그래도 읽어 보고 삽니다. 이런 구매법을 권해주고 싶습니다. 도서관, 출판계 모두를 활성화 시킬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소장권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5년 전에 중학교 때부터 모았던 책을 헌책방에 모두 내다 버렸거든요. ‘나는 왜 이렇게 살까’라는 자책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그건 아마 모든 수집광, 마니아들이 한번쯤 겪는 관문일 거예요. 다 내다 버리고 ‘재생의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에 집에 쌀이 떨어졌는데 한 선배가 라면 사라고 돈 3만원을 줬어요. 그런 선배를 참 좋아 하는데 “지금 무슨 글 써?”라고 묻는 선배보다 “너 요새 먹고는 사나? 돈은 있나?”라고 묻는 선배가 정말 좋은 선배에요. 글이야 다 알아서 쓰니까. 아무튼 그 선배가 준 돈 3만원으로 쌀을 안사고 교보문고 가서 책을 사버렸죠. 그러면서 자책했어요. “나 정말 왜 이러고 살까” 결혼기념일에 아내 선물 사줄 돈으로 책 사버리고. 그러면서도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귀한 책도 많았고 도서관이 안 부러울 만큼 갖고 있었는데 그런 내가 싫어서 다 갖다 버렸어요. 결국 재생의 길을 걷지 못한 거죠. 지금 다시 사 모으고 있으니까“

- 아직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으니 저는 아직 그 수준이 되려면 먼 것 같습니다. 책 읽기 전에 손을 씻는다고 들었는데요. 다른 특별한 버릇 같은 것이 있나요. 접는다거나 줄을 친다거나 포스트잇을 붙인다거나....

“그런 시기가 마니아들에게는 꼭 한 번씩 온다니까요. 그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웃음) 시기야 다 다르겠죠. 책은 사면 커버부터 버려요. 책 읽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책은 이방 저 방에 두고 오가며 읽어요. 한 가지 테마를 정해 놓고 10권 정도를 동시에 읽는 편입니다. 그래야 시너지가 생기거든요. 관심 있는 싶은 주제는 그렇게 접근해요. 접거나 줄치지는 않아요. 읽으면서 파악하려고 노력해야지 줄을 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면 거기에 묶이죠. 두 번, 세 번 다시 읽더라도 그건 좋은 독서법이 아니에요”

- 독서광들이 정말 어려워하는 질문이지만, 빼놓고 싶지 않은 질문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큰 감동을 준책이 있다면.

“책 많이 읽은 사람들은 그 답을 뽑아 낼 수가 없어요. 그래도 말하라면 카프카에요. 젊은 시절 무척 좋아했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에는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을 권해주고 싶고....또....아! KBS 박성래 기자가 쓴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 2005)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에요. 제가 한겨레21에 그 책 서평을 쓰면서 “이 책을 읽거나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 아는 것은 독도를 얻는 것과 똑 같다”고 했어요. 레오 스트라우스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합니다. 그가 쓴 <마키아벨리>(구운몽. 2006)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에요”

 

 

 

 

- 소설 집필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부>를 바탕으로 2003년 대선 이후의 한국 풍속을 다루는 이야기를 쓸 예정입니다”

- 시인으로 데뷔해 교수의 자리에 오기까지 글쟁이로, 독서광으로 20년을 보내셨습니다. 꿈을 이룬 지난 시간 동안 행복했나요.

저는 독서광이 아니에요. 사람들이 너무 안 읽으니까 그런 말을 듣는 것뿐이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한 달에 10권 읽는 건 기본 아닌가요. 저는 조금 더 읽었을 뿐이에요. 모두가 그렇게 읽었다면 제가 독서광이 될 이유가 없었겠죠. 행복요? 음....행복했죠. 지금도 행복하고. 정규교육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는데 그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했어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땄다면 세상을 뀄다는 자신감에 아마 책을 안 읽었을 거예요. 조금 배웠기에 많이 읽어야 했고, 덕분에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언제나, 행복했습니다”(김민영 기자)

06. 11. 20.

P.S. 결론은 이렇다. "기본을 갖추자!"

P.S.2. 생각이 난 김에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도 다시 읽어보록 한다. '정규교육'을 못 받은 그에게 삼중당문고는 그의 '학교'였고 '교사'였으며 또한 '친구'였으리라.

삼중당문고

열 다섯 살,
하면 금세 떠오르는 삼중당 문고
150원 했던 삼중당 문고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두터운 교과서 사이에 끼워
읽었던 삼중당 문고
특히 수학시간마다 꺼내 읽은 아슬한 삼중당 문고
위장병에 걸려 1년간 휴학할 때 암포젤 엠을 먹으며
읽은 삼중당 문고
개미가 사과껍질에 들러붙듯 천천히 핥아먹은 삼중당문고
간행목록표에 붉은 연필로 읽은 것과 잃지 않은 것을
표시했던 삼중당 문고
경제개발 몇 개년 식으로 읽어 간 삼중당 문고
급우들이 신기해 하는 것을 으쓱거리며 읽었던 삼중당문고
표지에 현대미술 작품을 많이 사용한 삼중당 문고
깨알같이 작은 활자의 삼중당 문고
검은 중학교 교복 호주머니에 꼭 들어맞던 삼중당 문고
쉬는 시간 10분마다 속독으로 읽어내려 간 삼중당 문고
방학중에 쌓아 놓고 읽었던 삼중당 문고
일주일에 세 번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는다고 교장실에 불리어가,
퇴학시키겠다던 엄포를 듣고 와서 펼친 삼중당 문고
교련문제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을 때 곁에 있던 삼중당 문고
건달이 되어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와 쓰다듬던 삼중당문고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
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
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
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흙 묻은 채로 등산배낭에 처넣어 친구집에 숨겨둔 삼중당 문고
소년원에 수감되어 다 읽지 못한 채 두고 온 때문에
안타까왔던 삼중당 문고
어머니께 차입해 달래서 읽은 삼중당 문고
고참들의 눈치보며 읽은 삼중당 문고
빳다맞은 엉덩이를 어루만지며 읽은 삼중당 문고
소년원 문을 나서며 옆구리에 수북이 끼고 나온 삼중당문고
머리칼이 길어질 때까지 골방에 틀어박혀 읽은 삼중당 문고
삼성전자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문흥서림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레코드점 차려놓고 사장이 되어 읽은 삼중당 문고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고시공부 때려치우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공부를 하면서 읽은 삼중당 문고
데뷔하고 읽은 삼중당 문고
시영물물교환센터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박기영형과 2인 시집을 내고 읽은 삼중당 문고
계대 불문과 용숙이와 연애하며 잊지 않은 삼중당 문고
쫄랑쫄랑 그녀의 강의실로 쫓아다니며 읽은 삼중당 문고
여관 가서 읽은 삼중당 문고
아침에 여관에서 나와 짜장면집 식탁 위에 올라 앉던 삼중당 문고
앞산 공원 무궁화 휴게실에 일하며 읽은 삼중당 문고
파란만장한 삼중당 문고
너무 오래되어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
어느덧 이 작은 책은 이스트를 넣은 빵같이 커다랗게 부풀어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네
집채만해진 삼중당 문고
공룡같이 기괴한 삼중당 문고
우주같이 신비로운 삼중당 문고
그러나 나 죽으면
시커먼 뱃대기 속에 든 바람 모두 빠져나가고
졸아드는 풍선같이 작아져
삼중당 문고만한 관 속에 들어가
붉은 흙 뒤집어쓰고 평안한 무덤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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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6-11-21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기사네요~ 퍼갈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