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나는 과학과 언어에서 뛰어났습니다. 학교 합창단과 공연팀에서 활동하던 밝고 활발한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2000년 가을부터 시무룩하고 생기 없는 아이로 변하더니 다리가 뒤틀리고 근육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안나는 치매현상을 보이고 마침내는 튜브로 음식을 투입하고 공기흡입기로 호흡을 보조해야만 하루하루 생을 지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2003년 1월 1일에 16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인간광우병'에 걸린 딸 조안나의 고통과 사망 과정을 지켜봐야 했던 어머니 자넷 깁스 씨(영국)는 23일 민주노동당이 주최한 광우병 증언대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깁스 씨는 정부의 외면과 국민들에 대한 기만이 광우병의 확산을 불러왔다고 확신했다. 그는 특히 1990년 5월 농림부 장관이 TV에 출연해서 조안나에게 쇠고기 버거를 주면서 '광우병 위험은 없단다'라고 말했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깁스 씨는 "국민의 안전보다 상업적 이유를 우선하는 정부의 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면서 한국인들을 향해 "일부 전문가 의견에 의지하지 말고, 확실하다는 착각을 주는 통계에 속지 말라"고 충고했다.
  
  "극소량만으로도 광우병은 발생한다"
  

▲ 생기넘치던 13세의 딸이 인간광우병에 걸려 3년 동안의 고통스런 투병끝에 사망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자넷 깁스 씨는 한국인에게 '통계에 속지 말라'고 충고한다. ⓒ프레시안

  이날 증언대회에 참석한 마이클 핸슨 박사((의사, 미국소비자연맹 대표)는 깁스 씨의 주장을 실증적으로 뒷받침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포유류의 고기와 뼈를 사료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광우병에서 안전하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핸슨 박사는 "반추동물(소, 양, 염소 등)을 다루는 기계에 묻어 있던 성분이 다른 동물 사료를 가공할 때 섞이는 정도의 양, 혹은 반추 동물을 이용한 사료를 먹은 돼지나 조류의 내장에 들어있는 정도의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광우병을 일으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핸슨 박사는 또한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30개월 이상 된 소의 뇌와 척수만을 동물 사료에서 제외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광우병을 예방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미 영국의 사례로 입증됐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이미 1990년에 영국은 6개월 이상 된 소의 뇌와 척수, 비장, 창자, 편도 등을 동물사료에 금지토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현재의 미국 FDA보다 상당히 엄격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이 조치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광우병은 계속됐다. 1600건이 넘는 광우병 발생 사례를 겪은 뒤 마침내 영국 정부는 1996년 3월에 동물사료에 포유류의 살코기와 뼈를 일절 포함시키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시행했다"고 핸슨 박사는 밝혔다.
  
  게다가 핸슨 박사에 따르면 지금 미국에선 부실한 FDA 조치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반추동물의 육류가 동물 사료로 쓰일 경우, 그저 '소와 기타 반추동물에게 먹이지 마시오'라는 표시만 있으면 되고, FDA가 금지하는 물질을 다루는 2481개의 회사 중 28%는 그나마 지정된 공지조차 표시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핸슨 박사는 "수출되는 사료에는 아무런 경고도 붙어 있지 않다"면서 "그 결과 금지된 사료가 미국으로 재수입될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핸슨 박사는 이어 "FDA는 포유류의 혈액이나 조류의 배설물을 소에 먹이는 것을 금지토록 하고 있지만, 소의 혈장이나 적혈구는 송아지에게 먹이는 우유 대용물로 사용되고 있고, 조류 배설물인 닭장의 바닥 폐기물은 연간 20조 파운드 가량이 소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고발했다.
  
  미국 소가 안전하다고?
  
  한편 동경의대 교수이자 일본의 광우병 심사위원장으로 재직 중 일본 정부의 처사에 항의해 사임한 가네코 기요토시 씨는 "20개월이 안된 미국 소는 광우병에서 안전하다"는 주장의 허구를 들췄다.
  
  그에 따르면 일본에서 광우병 대책을 실시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10월부터. 일본 당국은 사료규제, 특정 위험부위 제거, 광우병 검사 등의 단계를 거친 3년 뒤 실시한 검사를 토대로 '일본에서 태어난 20개월 미만의 소는 광우병에서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왜곡해 '20개월 미만의 미국 소도 안전하다'고 결정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고 한다.
  
  기요토시 씨는 "미국이 일본과 같은 기준의 사료규제와 특정위험부위 제거 작업을 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20개월 미만의 미국소가 안전하다는 결론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 기요토시 씨가 광우병 심사위원장 직을 내던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이날 행사를 주최한 심상정 의원은 "정부는 제대로 된 검역장비조차 갖추지 않고 미국 쇠고기 수입을 재개했다"면서 "국민 77%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걱정하고 있고, 국내외 전문가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는 만큼 정부는 국민의 불안을 풀어줄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사에 앞서 소비자시민모임은 성명을 발표하고 △20개월 미만 소의 살코기만으로 수입 제한 △수입 소에 대한 전수 조사 △동물성 사료를 금지할 때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중단 등을 요구했다.
   
 
  권태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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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 사탕과 콜라를 함께 드시면 안되겠습니다. 특히 어린이의 경우 위나 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고 합니다.

베이징 김민표 특파원입니다.

<기자>

콜라병 안에 박하사탕 몇 개를 떨어 뜨렸더니 콜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옵니다.

박하 사탕에 들어있는 아라비아 고무 성분이 순식간에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탕중리/충칭 티에루 중학교 교사 : (박하사탕과 콜라에 들어있는 첨가제가 반응해) 순간적으로 많은 이산화탄소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이런 원리를 이용한 이른바 콜라 분수 놀이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박하 사탕과 콜라를 먹은 뒤 멀리 내뿜기 시합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대학생 : (콜라와 박하사탕을 동시에 먹으면) 맥주를 많이 마셔 토하고 싶은 느낌보다더 고통스럽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이런 놀이가 위나 장에 치명적인 손상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꿔중제/충칭 신차오 병원 의사 : 급성 위확장을 일으킬 수도 있고 위궤양이 있는 경우라면위천공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특히 어린이의 경우 위의 점막이나 근육이 약해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며 부모들의 주의를 당부했습니다.

김민표 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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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11-25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누가 박하사탕이랑 콜라를 같이 먹는 사람이 있나요? ㅜ그런 친구는 아직 한명도 못 본것 같은데;;;

라주미힌 2006-11-2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하사탕 주는 음식점들 많잖아요.. 먹고나서 자판기에서 콜라 먹으면... 부글부글.. 거릴수도 흐흐...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손자를 잃은 팔레스타인의 60대 할머니가 폭탄을 몸에 지닌 채 이스라엘군에 뛰어들었다.

가지지구 북부 자발리야에서 23일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살폭탄 공격을 감행해 본인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이스라엘 병사 3명이 다쳤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이스라엘군은 수상한 여성이 폭발물을 갖고 접근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를 기절시키기 위해 섬광수류탄을 발사했으나 자폭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하마스 계열 무장조직인 이제딘 알 카삼 여단은 자체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임을 주장하면서 자살폭탄을 감행한 여성은 64세인 파티마 오마르 마흐무드 안 나자르라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손자를 잃은 절망 때문에 테러를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이스라엘군이 그의 집을 폭격, 손자 한 명은 사망하고 또다른 손자는 다리를 잃어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큰딸인 파세야는 “3주전 어머니와 함께 모스크(이슬람 회당) 집회에 참가하면서 순교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번 할머니 자살폭탄 테러는 최근 이스라엘의 공습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인간방패’로 맞서는 등 가자지구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발생했다.

하지만 할머니까지 테러에 나선 데는 절박한 사정도 있지만 여성의 희생을 통해 테러의 효과를 높이려는 충격요법 전술도 한몫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부 오베이데흐 하마스 대변인은 할머니 폭탄테러 직후 “우리는 이미 적들에게 ‘놀라운 충격’을 접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며 “이번 사건 역시 전략의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6일에는 18세의 팔레스타인 소녀가 가자 북부의 베이트 하눈에서 침공작전을 벌이던 이스라엘군에 접근, 허리에 차고 있던 폭탄 띠를 터뜨려 자신은 죽고 이스라엘 병사 1명에게 가벼운 상처를 입혔다. 베이트 하눈에서는 망토와 히잡을 쓴 여성 수백명이 모여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이다 2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6월 팔레스타인 민병조직이 자국 병사 1명을 포로로 잡아간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에서 대대적인 침공작전을 벌였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 400명 가까운 팔레스타인인이 숨졌다. 하마스는 지난 8일 휴전 종료를 공식 선언, 양측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박지희기자 viole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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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지와 함께 '청순가련형' 가수의 대명사로 인기를 얻었던 하수빈이 내년 음반을 발표하고 14년 만에 컴백한다.

하수빈 소속사 측은 "내년 2월 하수빈이 새 앨범을 내고 가수로 컴백한다"고 밝혔다.

1992년 '노노노노'가 수록된 데뷔앨범 'Lisa In Love'를 발표한 하수빈은 앞서 데뷔한 강수지와 함께 청순하고 가냘픈 여성의 이미지로 뭇남성팬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이듬해 2집을 발표한 하수빈은 더이상 가수활동을 하지 않아 팬들의 아쉬움을 사왔다.

하수빈은 그러나 작사가와 음반 프로듀서로 꾸준히 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소속사 측에 따르면 하수빈은 '리사'라는 필명으로 가사와 곡도 쓰고 남성그룹 엠스트리트와 비욘드의 음반도 프로듀싱도 해왔다. 또한 한국과 캐나다를 오가며 음악공부와 패션 브랜드 사업도 벌여왔다.

지난달 음반기획사 '라 스텔라'를 설립한 하수빈은 본명으로 더 필름이라는 가수의 음반을 제작해 음반제작자로 변신했다. 내년 2월에는 14년만의 새앨범인 3집을 발표할 예정이다. 하수빈은 청순한 미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했으며 미혼이다.

한편 하수빈이 제작자로 변신해 처음 선보인 더 필름은 '난 A형이잖아'로 활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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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11-25 0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다들 컴백이군요
 

▲몽타이유…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길

전세계적으로 지난 20세기의 역사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학파를 하나 꼽으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선뜻 아날학파를 지목하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거기에 속하는 역사가들은 양과 질에서 모두 풍요로운 업적을 산출하며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역사학의 영토를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력을 반영이라도 하듯 우리나라의 출판계에서도 아날학파의 거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역사가들의 저작을 앞다투어 번역 출간했다.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 페르낭 브로델에서 자크 르 고프와 조르주 뒤비를 거쳐 마르크 페로와 로제 샤르티에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날학파 역사가의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지적 호기심과 열의를 가진 독자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제외된 한 공백이 있으니 그가 엠마뉘엘 르루아 라뒤리이다. 게다가 그는 한 점 공백이라고 말하기에는 아날학파 내에, 더 나아가 사학사 전반에 너무도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1973년 그가 브로델을 계승하여 99년까지 사반세기에 걸쳐 명성 높은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근대사를 담당한 교수였다는 사실은 그의 중요성을 말해주는 한 지표에 불과하다. 66년에 책으로 출간된 그의 박사학위 논문 ‘랑그독의 농민들’은 15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 프랑스 남부 지방의 토지대장에 수록된 방대한 양의 계량적 정보를 분석하여 농업의 성장과 쇠퇴에 거대한 주기가 있음을 밝힌 연구서이다. 토지는 여러 가지 구조적 요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집중되고 분할되는 주기가 있지만, 그 변화는 극히 완만하여 랑그독의 역사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 역사’였다는 그의 결론은 초기 아날학파 연구 방법론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실로, ‘움직이지 않는 역사’라는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취임 강연의 제목은 (최소한 초기) 아날학파의 특징인 구조주의 역사학의 면모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구호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그런 라뒤리에게 국제적으로 가장 큰 명성을 안겨준 책이 바로 ‘몽타이유: 중세 말 남프랑스 어느 마을 사람들의 삶’이다. 본디 75년에 발간되었던 책이 30년도 넘어서야 우리글로 소개되니 늦어도 한참 늦은 셈이지만, 최선의 번역자와 출판사를 만나기 위해 걸린 시간이라 자위하며 그 간행을 반긴다. 더구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저서의 실제 내용은 알 수 없는 공백으로 남아있던 아날학파의 한 핵심 인물의 저작을 통해 아날학파의 계보를 실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도 기쁨을 더해준다.

중세말 기독교의 이단으로 탄압 받았던 몽타이유 마을. 지금은 평화롭기만 한 시골마을이다.
그뿐 아니라 이 책은 아날학파를 넘어서는 중요성을 갖는 것으로 인정 받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피터 버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 책이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와 함께 ‘미시사’를 지식의 지도 위에 올려놓은 저작으로서, 물질문화와 망탈리테(집단무의식)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문화사에 크게 기여했다고 칭찬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여류 역사가로 여러 면에서 유럽 중세와 근대 초의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꼽히는 나탈리 데이비스는 자신의 학문 여정을 회고하는 연설에서 자신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이라는 저작을 쓰게 된 계기의 하나가 ‘몽타이유’라는 미시사의 저작이 거둔 성공에서 얻은 자극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책은 1294년부터 1324년까지 프랑스의 남쪽 랑그독 지방 피레네 산맥의 1,300m 고원 지대에 자리한 몽타이유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연구서이다. 이 시기에 몽타이유 마을은 카타르파 이단에 물들어 있었다. 카타르파는 물질계를 사악한 신의 피조물인 것으로 간주하는 기독교의 극단적인 이단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빵을 통해 우리 몸에 임한다는 성체성사의 핵심적인 교리마저 부정했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이들을 척결하기 위해 1244년에 십자군을 파견했고, 그 이후 생존한 카타르파의 일부가 피레네 산간 지방으로 도피하여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후에 교황 베네딕투스 12세가 된 자크 푸르니에가 1317년 몽타이유 마을 근처의 파미에 교구에 주교로 부임했다. 그는 이단재판관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을 피의자로 소환했다. 그는 마을의 모든 비밀을 꼬치꼬치 끈덕지게 심문하여 그 내용을 양피지에 정서했다. 라뒤리는 그의 기록을 이용하여 몽타이유 마을 사람들의 물질 세계와 정신 세계 모두를 생생하고 정교하게 되살려놓았다. 농경 방식, 집, 다른 마을과의 관계, 세속 권력이나 교회 권력과의 관계와 같은 물질 세계와 신, 운명, 삶, 죽음, 마법, 공간, 시간, 구원, 성(性)과 같은 정신 세계의 모습이 복원된 것이다.

그렇게 복원된 이 마을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세 기독교 사회의 엄격한 행동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마을 사람들의 자유로운 성 관념과 느슨한 성 풍속은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14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기독교의 윤리관은 아직 민중 문화에 깊이 침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몽타이유’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랑그독의 농민들’ ‘로망스의 사육제’를 비롯하여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그의 저작들을 더 많이 접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조한욱|한국교원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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