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하고 요약본을 읽게 하는 수능의 논술은 사과맛 비타민 알약…책에 질려버린 친구 딸과 7살 꼬마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나, 당분간 책 안 읽을 거예요.”

지난주 수능고사를 친 친구 딸에게 이런 황당한 말을 들었다. 내가 전화해서 시험공부 하느라 애썼다, 이제부터 잠도 실컷 자고 책도 실컷 봐라, 했더니 톡 쏘듯 한 말이다. 나만 보면 무슨 책이 재밌냐고 묻는 이 아이는 평소 책을 많이 읽고 글도 잘 써 논술에 자신 있어 했다. 논술학원 선생님들도 이름만 똑바로 쓰면 무조건 된다고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논술 반영률이 높은 수시에서 줄줄이 낙방하고 말았다. 그래도 그렇지, 시험에 떨어졌다고 왜 책을 안 보겠대?

“아줌마, 무슨 시험 보세요?”

오늘 그 친구네 집에 갔다가 그 이유를 알았다. 거실 소파 위에 눈에 익은 붉은 표지의 <체 게바라 평전>이 놓여 있었다. 그런데 그 책이 아주 가관이다. 갈피마다 각가지 색깔의 포스티잇이 붙어 있고 군데군데 접은 페이지에는 형광펜으로 “★★★★★ 반드시 외울 것”이라고 써 있었다. 밑줄도 총천연색으로 쳐 있었다.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책이 교과서나 참고서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외우고 분석하며 읽어야 하는 건가? 친구 말로는 요즘 논술 공부는 그렇게 한다니, 나라도 이렇게 했다간 책에 대한 순수한 애정이 사라지고 말겠다.


△ 요즘에는 논술을 조기 준비하느라 초등학생에게까지 니체를 가르친다고 한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까. 한 대안학교에서 학생 세 명이 한 권의 만화책을 함께 보고 있다. (사진 / 한겨레 김태형 기자)

아이의 책장을 보고는 더 놀랐다. 루소의 <에밀>과 스피노자, 데카르트 사상 요약 정리본, <폭풍의 언덕> 등 문학작품의 요약본들이 가득 꽂혀 있었다. 그런 사상, 철학서를 논술 필독서로 정한 분들도 다 생각이 있겠지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대학 전공서적에 가까운 책들을 읽을 시간도 사고의 여유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시험에 난다니 학원에서 요약해놓은 자료라도 공부할 수밖에.

더구나 문학작품의 요약본이라니? 문학작품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은 사과 한 알을 오감으로 충분히 음미하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한다. 먹기 전에는 사과의 모양과 색깔과 향기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새콤달콤한 맛과 아삭 씹히는 감촉까지를 고스란히 느끼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반면, 요약본이란 이 소중한 감정들은 무시한 채 그저 사과를 비타민C의 조달처로만 여기며 사과맛 비타민 알약을 먹는 것과 같다고 본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학작품은 절대로 요약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나 그게 논술하고 얽혀 있어 시험을 보려면 줄거리라도 알아야 한다니 차마 요약본 보지 말라는 말을 할 수 없다는 게 속쓰리다. 아무튼 이렇게 정작 사과는 구경도 못하고 지겹게 사과맛 비타민 정제만 먹어야 했던 아이들에게 책이란 그저 논술을 잘 보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몇 달 전 여의도공원에서 이런 일도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6, 7살 정도 된 꼬마가 날 한참 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아줌마, 무슨 시험 보세요?”

“아닌데. 왜?”

“시험도 안 보면서 왜 책을 읽어요?”

“재미있으니까 읽지.”

“네? 책이 재미있어요? 난 하나도 재미없는데….”

“뭐라구?”

“엄마가 읽으라고 해서 읽는 거라구요. (작은 소리로) 이그 지겨워….”

이 아이 역시 책이 이끄는 이야기의 바다에 빠져보기도 전에 책이란 그저 학습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요즘에는 그놈의 논술을 조기 준비하느라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니체를 가르치고 있다니 정말 어른의 한 사람으로서 미안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좋을 것인가. 논술고사의 원래 취지가 이런 게 절대로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다행히(?) 논술이 없을 때 학창시절을 보낸 덕에 독서의 즐거움을 십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그때라고 입시경쟁이 치열하지 않았겠냐만,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경쟁적으로 책을 읽던 여고시절 3년간이 내 독서생활의 든든한 토대를 만든 시기였던 것 같다.

그때는 얼마나 책을 이해하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가 중요했다. 내 친구들은 ‘1년에 100권 읽기’라는 공동목표 아래 각자의 독서목록을 만들어서는 한 권씩 끝낼 때마다 지워나가는 재미로 살았다. 어느 겨울방학인가, 언니들이 사놓은 세계문학전집 20권을 다 읽고 친구들에게 한참을 뻐기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여간 그때 붙은 독서습관이 지금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별건 아니다. 하루 중 책 읽는 시간 확보하기(지금은 지하철 타고 다니는 1시간30분), 읽은 후 책 뒤나 일기장에 한 줄이라도 독후감 쓰기, 그리고 읽고 좋았던 책은 적극적으로 권하기다.

읽고 쓰기보다 재밌는 권하기

사실 책을 읽고 쓰는 것보다 권하는 게 훨씬 재미있다.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면 다른 도움을 준 것보다 기분 좋다. 책 읽기에 시큰둥한 사람을 살살 달래서 좋아할 만한 몇 권을 읽게 한 뒤, 그 사람에게 알고 보니 책도 재밌다는 얘기를 들으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뿌듯했다.

이런 사람이 친구 딸이나 7살 꼬마에게 책에 대한 편견과 악담을 들었으니 얼마나 마음이 무거웠는지 모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미력하나마 이 친구들의 눈높이에 맞는 책을 열심히 권해서 책이란 맛있는 사과 자체이지 그저 몸에만 좋은 사과맛 알약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일 거다. 그런 뜻에서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책 두 권을 종이비행기에 실어 보낸다.

호시노 미치오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청어람미디어), 요절한 사진작가의 아름다운 사진과 글이 늦가을 바람처럼 뼛속으로 스민다. 박경철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리더스북), 이 외과의사, 주식에만 해박한 게 아니라 글도 무진장 잘 쓴다. 하느님이 한 사람에게 재능을 너무 몰아주신 것 같다.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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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엄마 2006-12-0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울 애들은 공부도 뒷전, 시험 앞두고도 책 보고 낄낄~ 거리고 있는데...-.-;;(무.. 물론 별 재미없는 교양서적 말고 만화책이나 재미난 동화책 종류만 본다는...)

이매지 2006-12-05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서점에 갔더니 그런 책들 엄청 많더군요. (고전 요약본들) 그런거 보면서 저걸 본다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책에 질리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던.

라주미힌 2006-12-05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이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우신거겠죠. :-)
크크.. 평가와 요약이라...
그래서 인간도 누군가에게 평가받으려 부단히 애쓰고, 몇 가지의 정체성으로 무자비하게 요약되나 봅니다.

해리포터7 2006-12-06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논술땜에 요약본들이 많더군요..1학년부터 읽어야 할책을 쭈욱 요약해놓았더군요.세상에나....책을 좋아하기까지는 부모의 노력도 많이 필요한거 같아요..부모가 얼만큼 책을 가까이 하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그속에서 아이들은 책은 좋은것이다.재미있는것이다라는걸 알게 되는것 같아요..
 

 

피시를 괴롭히는 악성코드를 치료해준다면서 사실은 악성코드를 퍼뜨리는 업체들이 ‘알바(아르바이트) 누리꾼들’을 동원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불량 악성코드 유포업체들은 주로 피시 사용자들이 자주 드나드는 제휴 마케팅사이트들의 게시판을 통해 ‘알바 누리꾼’을 모집한 뒤 이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 카페나 블로그 등에 악성코드를 치료프로그램과 묶어서 퍼뜨리게 하는 것으로 4일 확인됐다.

‘인터리치’(www.interich.com) ‘애드키’(www.adkey.co.kr) 등 유명 마케팅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요즘 ‘악성코드 및 액티브 설치당 35원의 커미션을 지급합니다’라는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른 바 ‘악성코드 알바’를 찾는 게시물이다. 이런 게시물의 주된 내용은 악성코드가 심어진 치료프로그램을 내려받으면 ‘한건당 30원에서 50원을 준다’는 것이다. ‘아이라이크클릭’(www.ilikeclick.co.kr)이라는 마케팅 사이트는 치료후 결제당 금액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예를 들어, 인터리치(www.interich.com)의 ‘신규 머천트’라는 게시판 등에서 악성코드 알바가 활동하는 방식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알바(해당사이트에서는 ‘어필리에이트’(affiliate)라고 부름) 모집을 위해 떠 있는 10여개의 프로그램을 클릭하면 해당 악성코드 유포업체에서는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는 코드를 준다. 이 코드를 에이치티엠엘(HTML)로 복사해서 악성코드를 배포하고자 하는 사이트를 골라 콘텐츠와 함께 붙여넣는 것으로 알바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 콘텐츠를 보려고 접속한 누리꾼이 보안경고창의 설치에 동의해 ‘예’를 클릭하면 광고 팝업과 인터넷 기본 주소창을 바꾸는 악성툴바가 생성되고 알바는 이 횟수에 따라 돈을 챙기게 된다.

한 사람이 내려받는다고 돈이 바로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유포업체들은 만원 이상의 수익이 발생할 때 월이나 주단위로 정산해서 지급하고 있다. 돈을 받으려면 최소 300개 이상의 게시물을 퍼뜨려야 하는 셈이었다. 하지만 악성코드 묶음을 설치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 정도였다. 안철수 연구소 관계자는 “숙련된 사람이라면 한 콘텐츠에 두세개씩 묶음을 심어서 유포하는 데 몇 초가 채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악성코드 알바로 돈벌이가 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인터넷업계에서는 최근 한 불량 악성코드 치료프로그램 개발업자가 제휴 마케팅사이트 등에서 이처럼 알바를 동원해 불과 몇 달 사이에 100만건이 넘는 다운로드 실적을 올린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악성코드 알바들이 유포장소로 애용하는 곳은 수십만 회원을 두고 있는 콘텐츠 카페나 블로그들이다. 주로 동영상이나 만화 콘텐츠 사이트들이다. 한 유명 동영상 콘텐츠 카페에 들어가면 사이트 상단에 ‘악성코드 심어서 자료 올리시면 강퇴하겠습니다!’라는 공지가 떠 있지만 실제로 악성코드를 심어놓은 콘텐츠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특히 인기 만화콘텐츠 사이트에서는 최근 올려진 콘텐츠 가운데 악성코드가 붙어 있지 않은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악성코드가 심어진 콘텐츠들의 소스를 분석해 보면 대부분 ‘파트너 아이디’를 찾을 수 있다. 파트너 아이디는 알바 누리꾼이 치료프로그램과 악성코드의 묶음을 퍼뜨렸다는 증거다.

보안업체인 비전파워 관계자는 “사용자 제작 콘텐츠(UCC)의 열풍으로 악성코드로 수익을 올리는 악덕업자들도 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관계당국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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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12-05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럴 줄 알았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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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12-0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전 유가가 60불인데 울나라가 버티는 게 마냥 신기합니다..30불에 석유파동을 겪었던 나라가 말이죠

산사춘 2006-12-05 0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에도 이 사진은 너무 멋지군요. 화려쓸쓸한 것이... 바탕화면 변경입니다.

stella.K 2006-12-05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샷 치고는 범상치 않군요!^^

라주미힌 2006-12-05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카메라는 좋아서 걸어가면서 찍어도 별로 안이상하더라구요.
 
레오 스트라우스 - 부활하는 네오콘의 대부
박성래 지음 / 김영사 / 2005년 7월
평점 :
품절


럼스펠트가 짤렸다.
국제사회에서 도륙질을 일삼다가 수렁에 빠진 미국의 외교정책의 숨고르기가 시작되었다.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패함으로써 막가파식 일방주의의 한계와 실패를 거부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판을 갈지 않으면, 아무리 고기를 갈아도 고기는 타게 된다고 외치던 노회찬 의원 말마따나, 사람 몇 명 갈았다고 미국이 변하랴?
하지만, 부시 행정부의 정치 철학과 정책 결정의 책사쯤 되었던 네오콘의 몰락과 국제 정세의 변화는 결코 불가분의 관계가 아님을 우리는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전 세계가 덤벼도 미국을 잡을 수 없는 현실은 깊은 좌절감을 안겨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옛말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일단은 적을 알아야 한대라도 덜 맞을 것 아닌가. (비굴모드)

그런데 네오콘이 뭐야.
신보수주의(neoconservative·)이다.
그런데 보수주의는 뭐고 신보수주의는 뭘까.

미국의 보수주의의 중심적인 특징은 사회적인 책임이 개인 또는 관행과 집단에 있다고 믿으며, 사유재산을 강조하고, 강한 종교적 믿음으로 도적적, 문화적 표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더 세부적으로 보수파를 나누면, 구보수파 또는 전통적 보수파, 기독교 우파, 온건 공화당원, 신자유주의자, 그리고 네오콘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구보수파는 미국 남부의 전통 보수주의 성향이 강하고, 일방적이고 힘을 앞세운다. 딱 부시의 성격이다.(부시는 네오콘이 아니다. 전통 보수주의자다.) 그리고 국제 문제 개입을 꺼리는 고립주의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익이 눈 앞에 있으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거… 온건 공화당원은 실용주의적 중도파이다. (대표적으로 콜린 파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아버지 조지 부시) ‘힘을 사용하지만,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패권을 추구하지만, 동의를 구한다.’는 식이다. 신자유주의자는 시장 경제를 중시하고, 복지국가 해체와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따라서 군비 확대 노선과 전통적 보수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 기독교 우파는 보수적인 기독교 세력이며, 마지막으로 네오콘은 구보수파를 비판하며 등장한 ‘신제품’이다. 미국의 이익을 전 세계로 확대시키고자 등장하였다.
(<미국을 파국으로 이끄는 세력에 대한 보고서> 김지석 지음, 교양인 참고하였음.)

네오콘의 원년 멤버는 트로츠키주의자 같은 좌파에서부터 민주당 지지자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60년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 그들은 레오스트라우스의 사상을 대동맥에 투여 받고서, ‘강력한 질서’를 들고 나왔다. 태생적 배경부터 범상치 않다.(마치 아나킨 스카이워커가 다스 베이더로 전향했듯이) 게다가 오색찬란한 보수파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정신 세계를 가졌다.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네오콘의 사상적 배경을 대중적인 언어로 해부했다는 데에 있다. 행위는 목적을 두고 있고, 목적은 사상에 기반하고 있을 테니까. 그들의 ‘정신적 지주’ 레오 스트라우스의 사상을 엿보는 일은 정말 특이한 경험이다.
 
그들의 사상을 짧게 요약한다면 이렇다.
현대 사회, 문화의 위기는 근대 이성에 있다. 상대주의와 허무주의가 질서를 교란시키고, 세상을 위협으로 몰고 가고 있기 떄문이다. 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도덕적 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은 엘리트의 몫이고, 멍청한 대중은 이들을 따라야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진리가 사라진 세상, 철학자들은 ‘고귀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어 대중이 그것을 믿게 만들어야 한다. 엘리트의 이러한 의무와 권리는 자연권이다. 그런 식으로 탄생한 좋은 레짐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된다.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유용한가이고, 목표는 오직 승리일 뿐이다.

대중의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한다는 이 대단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네오콘이다. 이런 가르침은 플라톤 같은 고대 철학에 담겨 있다고 한다. 플라톤의 말과 글을 네오콘식으로 해석하는 장을 보면 아주 흥미롭다. 거짓말의 원조가 플라톤이다~! 이라크를 침공했던 명분인 대량살상 무기를 발견하지 못했음에도 뻔뻔했던 이유는 다 나름대로의 철학적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사회 통합과 질서 유지를 위해서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생산해내야 하는 그들의 임무는 거룩한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게다가 이들의 믿음은 밀교적인 성향이 있다고 하니 레오 스트라우스 패밀리는 다단계 만큼이나 굳건하다. 세계를 기만할만한 파워를 가졌고, 그런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레짐으로 모든 것을 바꾸려고 한다.
‘레짐 체인지’라는 용어를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한반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으면서도 이것은 국제적인 문제이다. 그들이 원하는 변화는 그들이 변하지 않기 위한 최악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다를 수가 있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가끔은 존재한다.
정권의 정당성이 부족한 부시는 네오콘의 강력한 정치 철학이 필요했고, 네오콘은 권력을 얻었으며, 기독교 우파는 그들의 강력한 지지세력이 되었다. 적(테러리스트)의 편이 될 것인가 그 반대 진영에 설 것인가. 부시의 협박으로 인하여 지구는 고통스럽다.

럼스펠트가 짤렸다.
네오콘 핵심 멤버, 세계은행 총재 폴 울포위츠도 짤렸고, 루이스 리비 전 부통령 비서실장, 더글러스 페이스 국방부 차관 등이 부시 행정부를 떠났다. 그 자리를 대체한 새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와 공동의장 베이커가 아버지 부시의 측근들이라고 세상이 조용해질까…
네오콘 이론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이라크 전쟁 이후로 네오콘을 맹렬하게 비판하고 나섰다고 한다.
미국 대외정책의 대안으로 '소프트 파워'(Soft Power)와 '다다자주의'(multi-multilateralism)를 대안으로 제시했다는데, 과연…. 그것이 진심일까. ‘고귀한 거짓말’일까

그들은 거짓말하는 엘리트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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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 네오콘의 국가철학으로 대접받는 레오 스트라우스는 누구인가
정치는 종교와 도덕을 앞세운 ‘고귀한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

▣ 장정일/ 소설가

네오콘(neoconservative·신보수주의자)이 설명될 때마다 거론되는 인물이 있다. 레오 스트라우스(Leo Strauss). 네오콘에게 그가 끼친 사상적 영향력이 얼마만큼 컸으면, 아예 ‘레오콘’이라고까지 부를까? 박성래의 <레오 스트라우스>(김영사, 2005)를 읽는 중에, 유럽에서 태어난 사탄의 아들 데미안이 미국 대통령의 양자로 입양되는 설정으로 발전됐던 걸작 오컬트 영화 <오멘>(The Oman) 시리즈가 저절로 떠올랐다.

니체를 접하고 혼란에 빠지다

신은 죽었다고 말한 사람은 니체다. 이런 문제가 <도전! 골든벨> 같은 텔레비전 퀴즈 프로에 나오면 누구나 재깍 대답한다. 삶과 문화 전체가 1천년 넘도록 유일 인격신에게 지배돼본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니체의 선언이 얼마만큼 충격적이었는지 가늠하기 힘들지만, 당대의 서구인들에게 그 선언은 또 한번의 지동설이나 같았을 것이다.

1899년, 독일에서 태어난 스트라우스는 20살 때 처음 니체를 접하고서 혼란에 빠졌다. “근대인은 성경의 신앙을 저버리면서도 성경의 도덕을 보존하려고 노력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만일 성경의 신앙이 없어지면 성경의 도덕도 사라져야 하며 근본적으로 다른 도덕이 수용되어야 한다.” 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게 가능한지, 또 신이 사라진 세계의 새로운 도덕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고민한 것이다.

그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뿐이 아니었다. 나치가 등극하기 직전,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을 가졌다는 바이마르공화국의 혼돈은 일부 지식인들에게 ‘신 없는 세계의 당연한 결과’로 비쳐졌다. 때문에 하이데거는 모든 근대 문명과 제도를 공동체와 인간 존재를 파괴하려는 위협으로 간주하고, 나치즘이 제시하는 절대국가를 반기게 된다. 일찍이 스트라우스는 그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민주주의·자유주의·상대주의 등의 지적 조류와 정치 운동 일체를 근대 이성이 불러온 허무주의와 퇴폐주의로 치부하면서, 나치 운동에 호의적이었던 스트라우스는 스승과 달리 나치에 참여하지 못했다.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박해를 받을 게 뻔한 그에게 외국행을 권유한 또 다른 선생이 훗날 나치의 법이론가가 된 카를 슈미트다. 이 사람은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 행위가 곧 정치’라는 주장으로 유명하다. 또 국가의 최고 통치자는 매번의 고비마다 결단을 할 뿐이지 국가적 의제를 의론에 부쳐서는 안 된다는 ‘결단주의’를 주창했다. 당연하게도 히틀러의 제3제국은 의회를 가지지 않았다.

적은 누룩인가? 한알의 밀알인가? 1930년대 말부터 시카고대학에 자리잡은 그는 독일에서 품고 온 불씨를 전파한다. ‘고대 그리스 정치’를 이상으로 삼고서, 대중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훈련된 철학자들이 정치를 관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중은 ‘진리가 없다는 게 진리’라는 것을 견뎌내지 못하며,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세상이 혼란해지므로 정치는 항상 도덕과 종교를 앞세워야 한다. 스트라우스는 그것을 ‘고귀한 거짓말’이라고 가르쳤고, 네오콘들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심어주기 위해서’라고 자국민을 속였다.

“그를 이해하는 건 우리에게도 충차대한 일”

흥미롭게도 이런 거짓말 책략은 마키아벨리의 가르침과 비슷하지만, 스트라우스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을 하수로 본다. 정치와 도덕을 분리한 공으로 마키아벨리는 근대 정치학의 비조로 추앙되지만, 정치가 도덕을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이다. 네오콘이 부시의 재선 전략 가운데 하나로 낙태와 동성애를 부각시킨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바이마르 시대의 독일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히피이즘으로 대표되는 자유분방한 미국의 60년대가 스트라우시언을 낳았다. 애초부터 현실정치에 개입할 목적이 있긴 했지만, 그의 철학이 한동안 지성사에 모습을 보이지 않던 국가철학으로 승격된 것은, 윤리나 도덕 따위로 더 이상 체제 경쟁을 할 필요가 없어진 미국의 패권주의와 상관된다. 저자는 “스트라우스를 이해하는 것은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는 사활이 걸려 있을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일”이라고 썼다. 놀랍지 않은가? 데리다도 푸코도 라캉도 이런 중차대성은 부여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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