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 한마리가 마루를 가로지른다. 마루에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바퀴벌레의 출현에 “꺅~” “으악~” 소리를 지르며 의자 위로 올라간다. 남녀노소 공히 바퀴벌레는 늘 혐오대상 1위다. 메뚜기, 매미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외모에 기껏해야 손가락 길이보다 작은 바퀴벌레가 뭐 그리 무서울까.

그렇다. 바퀴벌레의 공포는 겉모양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바퀴벌레의 공포는 그 끈질긴 생존력에서 비롯된다. 끊임없이 죽여도 죽지 않고 꾸물꾸물 다시 기어 나오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이런 끈질긴 생존력으로 귀찮게 하는 사람을 ‘바퀴벌레 같은 놈’이라고 부른다.

생존력의 대명사로 불리는 바퀴벌레는 물 한 방울 없이 한 달 동안 살아남은 기록이 있다. 공기가 없어도 45분 정도는 버틸 수 있고, 심지어 머리가 떨어져 나간 바퀴벌레가 일주일 동안 움직였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다. 방사선 내성도 뛰어나서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최대 방사선보다 6~15배나 더 강한 방사선에서도 거뜬히 살아남는다. 그러나 바퀴벌레의 생존력을 능가하는 생존의 귀재들이 더 있다.

염전 새우(brine shrimp)는 ‘후손 남기기’ 분야에서 생존의 귀재로 불릴 만하다. 염전 새우는 10mm 정도의 크기에 반투명한 몸을 가졌다. 염분 농도가 높은 연못이나 호수에 사는데 습기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몇 년간 생존할 수 있다.

그런데 염전 새우가 낳은 알은 부모보다 더한 생존력을 갖고 있다.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든 염전 새우의 알은 열대어 먹이로 시판되는데, 이 먹이를 염전 새우가 서식하는 지역 농도의 소금물에 넣어두면 며칠 뒤 부화한다. 염전 새우 알의 가공할만한 생존력을 증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미국 유타주 그레이트 솔트레이크의 1만년 전 지층에서 발견된 염전 새우의 알이 소금물에서 부화한 것이다.

일본에 사는 노란쐐기나방(oriental moth)은 ‘추위 견디기’ 분야의 귀재다. 겨울이 오면 노란쐐기나방은 고치를 만들어 번데기 상태로 겨울을 난다. 이 번데기는 영하 20℃까지 내려가는 일본의 추운 지역에서도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다. 놀라운 사실은 과학자들이 번데기를 영하 183℃의 액체질소에 70일 동안 넣어 두었는데도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노란쐐기나방과는 반대로 ‘더위 견디기’의 귀재는 서관충(tubeworms)이다. 서관충은 산호처럼 군집생활을 하는 생물로 해저 화산 분출구에 산다. 이곳은 80~100℃에 달하는데다가 유독한 황화수소가 올라오는 곳이다. 펄펄 끓는 산성용액에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서관충은 스스로 양분을 얻지 않고 유황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미생물의 도움으로 산다. 극한 환경에 사는 생존의 귀재지만 수명은 38일 정도로 그리 길지 않다. 대신 끊임없이 후손을 만들면서 신선한 화산 분출구를 찾아 이동한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는 제왕이 있는 법. 앞서 언급한 생물들이 나름대로 강한 생존력을 가졌지만 지금 소개할 생물에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지구의 생물 중에 유일하게 우주공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의 제왕’. 그 이름은 가시곰벌레(waterbear)다.

가시곰 벌레의 크기는 약 1.5mm로 매우 작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면 가시곰 벌레는 8개의 발이 달렸고, 꽤 우스꽝스러운 얼굴을 가졌다. 습기가 있는 곳에서 가시곰 벌레는 8개의 발을 사용해서 꼬물꼬물 귀엽게 움직인다.

지구에서 가시곰 벌레가 살지 못하는 곳은 거의 없다. 에베레스트산 정상부터 마리아나해구 바닥까지 어디든 살 수 있다. 단 습기가 있는 곳에서만 움직이고 건조한 곳에서는 동면상태에 들어간다. 일단 동면상태에 들어간 가시곰 벌레는 거의 불사신이다. 밀라노 자연사박물관에서 120년 전에 만든 표본을 꺼냈을 때 가시곰 벌레가 부활해 활동하기 시작한 예가 있다.

학계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가시곰 벌레는 151℃에서 수 분간 살 수 있으며, 영하 272.8도에서도 수 일 동안 살 수 있다. 영하 272.8도는 물리적으로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온도 절대영도(영하 273도)에 해당하는 온도다. 온도뿐인가. 가시곰 벌레는 압력에서도 자유롭다. 진공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고, 수십 기압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최대 방사선보다 1000배 강한 방사선에도 살아남는다. 독성 물질에 대한 내성까지 갖고 있으니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는 존재다.

가시곰 벌레에게 ‘지구를 정복할 욕망’이 없다는 사실이 인간에게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엄청난 생존력을 가졌으면서도 지구의 한 구석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가시곰 벌레.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일인자는 목소리 큰 자가 아니라 숨어 있는 은사이기 마련이다. (글 : 김정훈 과학칼럼니스트 / 사쿠마 이사오의 ‘3일만에 읽는 동물의 수수께끼’, 서울문화사 참조)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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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5-18 2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 제목만 보고 바퀴벌레인줄 알았습니다. :)

프레이야 2007-05-18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염전새우, 가시곰 벌레... 바퀴보다 더 하군요. 생존력이 지나쳐도 징그러운 거에요
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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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5-1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개 정말 터프하군요. 훌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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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책이지만, 선정됐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째질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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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7-05-18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정?? 어디서 외도하고 있었구료

라주미힌 2007-05-18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세지가 날라왔길레 가봤는데 '야심찬 프로젝트' 같던데용.. ㅎㅎ
요즘 밥벌이에만 충실하게 하느라 알라뒨에는 자주 안들어와용 :-)
아.. 피곤하당.

가을산 2007-05-18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바쁘셨군요...
 

씨네21 영화평 흐흐흐

 

누가 제목에 낚일까? - 박평식
코미디의 탈을 쓴 무개념 영화.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 황진미
그녀가 누구와 자든 말든 - 이동진

 

 

제목은 참 마음에 드는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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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장 내일 영국군을 몰아 내고 더블린 성에 녹색기를 꽂는다 해도 사회주의 공화국을 조직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노력은 모두 헛될 뿐이며 영국은 계속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 상권을 통해”


감독의 투쟁적인 메세지가 강렬했다.
마치 영화 속에서의 인물들이 죽음을 앞두고 늘 유서를 써놓듯이
진실을 토해내는 일련의 과정들은 삶에 대한 발악처럼 핏대를 세운다.

 
"아직 안 늦었어, 데미언"
"내가, 아님 형이?"


회유와 변절...
역사는 늘 현실의 한계와 미래의 가능성을 가늠하면서 변명과 당위성을 역설한다.
그들의 역사이면서 우리의 역사인 것을 영화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건 쉽지만,
뭘 원하는지 아는 건 어렵다'


적에게 겨누었던 총,
우리를 겨누었던 총,
배신자에게 쏘았던 총,
형제에게 쏘았던 총,

인간을 설명하기에 한참 부족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통하여 감독이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마도 진실에 대한 갈증과 그것을 해소해 줄 냉수 한 바가지가 아닐지...



감독: 켄 로치 Ken Loach

주연
킬리언 머피 Cillian Murphy :  데미엔 역
 
조연
리암 커닝햄 Liam Cunningham :  댄 역
패드레익 들러니 Padraic Delaney :  테디 역
올라 피츠제랄드 Orla Fitzgerald :  시니드 역
마일스 호갠 Myles Horgan :  로리 역
다미엔 커니 Damien Kearney :  핀바 역



거장의 영화라고 하니 볼만 한데...
황금종려성을 받았더라도...
뭔가 아쉬운 ...
알맹이는 알차도 겉포장은 엉성한.. 뭐 그런 ㅡ..ㅡ;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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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1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다시 봐야겠어요. 전에 볼 때 하도 정신없이(^^) 봐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