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서 문화재 역사학을 공부하는 이지은(30)씨가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에 이어 <아틀리에>(한길아트)를 썼다.

이 책은 클라브생, 파이프오르간, 종, 고가구, 직조, 열쇠, 시계, 과학기구, 인형, 부채, 활판인쇄, 은세공, 상아세공, 귀갑안경 등 15개 분야 장인들의 작업장을 찾아가,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일종의 방문기다.

서른의 젊은 동양 처자가 깐깐한 코쟁이 장인들의 세계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 보았을까. 파이프오르간 제작자 베르나르 오베르탱은 “파이프오르간의 시초는 바람이다. 갈대와 숲을 지나는 바람, 아틀리에의 창에 붙어있는 거미줄을 흔드는 바람이다. 오르간을 만드는 것은 바람이 가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라며 ‘천기’를 누설하고, 활판인쇄장인 프랑수아 다 로스는 “책은 얼마나 신기한지, 몇 세기 전의 책 안에는 글쓴이의 목소리가 오롯이 살아있어, 추상으로 가득한 글자와 글자가 모인 단어와 단어가 모인 문장과 문장이 모인 글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글쓴이와 만날 수 있다”며 몇십년에 걸쳐 깨친 이치를 들려주었다.

“장인들에게 저는 좀 신기한 애라는 인상이 강했던 모양이에요. 마치 우리나라의 장인들이 아르메니아 같은 나라에서 온 학생을 만나는 것처럼요.”

» <유럽장인들의 아틀리에>의 저자 이지은씨.
작업장은 장인은 물론 손님, 제자까지 모두들 분주해 인터뷰를 할 수 없었다. 대개 한달 정도 출석해 얼굴을 익히고 구석에 앉아서 관찰한 다음 의문점을 몰아서 사흘 정도 집중 인터뷰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집중이 중요한 이들은 점심시간, 일을 마친 저녁 등 비는 때를 활용하고 움직이는 이들은 그 경로를 따라다녀야 했다. 세심하고 깐깐한 이는 이야기를 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일단 터놓게 되자 스스럼없이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이 책에 소개된 장인들은 인형장인만 빼고 전통기술을 바탕으로 작업을 해나가는 장인들이에요. 메이에의 상아 돌려깎기 기술은 르네상스 시대에 태어났어요. 시간을 관통하여 지금까지 내려오는 기술이죠. 고가구를 복원하는 브라제 아틀리에의 장인들은 지금도 달랑베르 백과사전의 장인들과 똑같은 포즈로 일해요. 저에게 그들은 그래서 시간을 초월한 기술의 메신저들이에요. 17세기 장인들이 맡았을 똑같은 풀의 냄새를 21세기에도 맡을 수 있다는 것. 옛날 장인들의 자세를 지금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비롭고 놀라웠어요.”


이씨가 아틀리에 순례에 나선 것은 앤티크를 공부하면서 그 뒤에 있는 사람들, 즉 그것을 만들고 이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앤티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지 않겠는가. 디드로와 달랑베르 백과사전을 끼고 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채언어’를 알게 된 것은 덤이다. 접어서 오른쪽 뺨에 대면 ‘따라 오세요’, 둥글게 펴 오른쪽 뺨에 대면 ‘당신을 사랑해요’, 위쪽을 왼쪽 귀에 대면 ‘나를 내버려 둬요’, 손잡이부분을 오른손에 대고 꽉 쥐면 ‘당신이 싫어요’ 등등. 이씨는 18세기 그림 전시장에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초상화속의 말없는 여인들이 부채로써 말을 걸어오더라는 것.

“유럽 장인들이 살아 숨쉬는 것은 다변화한 문화의 덕택도 큽니다. 유럽은 개개인의 관심사가 굉장히 분화되어 있어요. 주말마다 시계페어를 찾아다니면서 옛날 시계를 모으는 콜렉터나 은 그릇을 사모으는 주부, 아이의 생일을 맞아 활판인쇄 카드를 주문하는 아버지들이 있으니까요. 장인들의 작품에 대한 수요가 있고, 그 수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기업들이 있다는 것이 장인들이 살아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조건입니다.” 게다가 많은 성, 그림, 가구 등을 복원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장인이 없었다면 베르사유나 루브르는 지금의 모습일 수가 없다. 결국 유럽이 수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힘에는 이들 장인들의 역할이 들어있다는 것이 이씨의 생각이다.

장인들을 만나고 돌아오면 기가 충전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이씨는 쉰살쯤 돼 더 성숙한 뒤에 이들을 다시 만나서 또다른 책을 쓰고 싶다며 이씨는 이메일 속에서 호호 웃었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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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인터뷰 / ‘차별에 저항하라’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펴낸 김도현씨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일반버스 타기 어렵다. 바닥을 낮게 만든 저상버스라면 타고 내리는데 문제가 없다. 지하철도 그 많은 계단들을 장애인들이 오르내리긴 거의 불가능하다.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면 된다. 요컨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메이데이)라는 책은 다음과 같은 항목들로 시작한다.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으로 규정된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 ‘차별에 저항하라’
한겨레신문사 방문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쪽 수십 계단을 올라온 뒤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 인터뷰 장소로 온 저자 김도현(33)씨. 역시 몸에 밴 운동가였다. “오면서 계단에 ‘몸이 불편하신 분은 경비실에 연락해주세요’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는 걸 봤다. ‘몸이 불편하신 분’이 아니라 ‘계단 이용이 불편하신 분’으로 고쳐야 한다. 엘리베이터 등의 편의시설이 설치돼 있으면 몸이 불편할 리 없다.” 한겨레 1층 엘리베이터는 ‘저 안쪽’ 돌아간 곳에 따로 있다.

지난 20일 장애인의 날에 맞춰 또 한 권의 책 <차별에 저항하라>(박종철출판사)도 함께 나왔다. ‘한국의 장애인 운동 20년 1987~2006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정태수 열사 추모사업회’가 2005년 12월 “현장 대중투쟁과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관점에서 장애인운동의 역사를 정리한” 자료집 <한국사회 장애민중운동의 역사: 그 투쟁의 기록과 평가>를 냈는데, 그때 김씨가 책임연구원격으로 대표집필을 했다. 이번 책은 그 자료집을 일반대중용으로 그가 바꿔 쓴 것이다. 이런 장애문제 개설서·입문서조차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비장애인’이다. 1980년대 말 서울사대부중에 다녔는데 교생실습들을 많이 나왔다.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1996년 늦깎이로 대학 특수교육과에 입학했다. 그 해에 평택의 장애인 사회복지법인 에바다복지회에서 수용 원아들을 농락한 비리가 들통나 사회적 논란거리가 됐다. 그럼에도 원장만 처벌받고 그 일가의 족벌운영체제는 계속됐다. 1997년 이를 바로잡으려는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가 결성됐고 그는 창립멤버가 됐다. 그가 오늘까지 오는데 그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금 노들장애인 야간학교와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운영위원이며 8월에 출범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조직 정책국장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는 “주체가 아니라 내부 연대자”일 뿐이다. 운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장애인들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 저자 김도현씨
2005년도 장애인실태조사를 보면, 우리나라 장애인수는 전인구의 4.59% 정도며, 장애인의 45.2%가 초등학교 졸업이하의 학력이다. 각국 인구의 10% 정도를 장애인으로 보는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에 따르면 그 수가 500만에 가깝다. 그들의 70%가 실업 또는 반실업 상태다. “문화적 편견, (자본주의의) 경쟁·효율 제일주의, 물리적 장벽들이 그렇게 만든다. 우리사회 노동패턴도 건장한 남성 비장애인이 아니면 무력감이나 장애를 경험할 수밖에 없도록 짜여져 있다. 장애인에게 거의 적대적인 도시설계를 보면 그게 문명 전체에 녹아 있다는 게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사회 인식은 그래도 많이 바뀌었다. “산 아래에 들이 있고 그 끝에 강이 있는데, 예전에는 비장애인이 이미 강가에 도착해 있는데도 장애인은 여전히 산 위에 있는 형국이었다면 이제는 장애인들이 강가의 비장애인들 끝머리에 줄을 서 있는 정도는 된다.”


그는 웬만한 사회문제는 시시콜콜 토론프로에 올리는 텔레비전이 왜 장애인문제는 외면하는지 괴이하게 생각한다. 진보적 인사들 중에도 장애문제를 파고 든 사람은 찾기 어렵다. “장애인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그 사회의 진보 정도를 재는 척도”라는데. 장애인운동도 여전히 ‘주변부’를 벗어나지 못했다. 거기엔 내부요인도 적지 않다. 유동철 동의대 교수가 “장애인운동이 장애인운동산업이 돼버렸다”고 개탄했듯이, 운동이 회원이 아니라 단체나 조직의 간부들 돈벌이나 권력추구에 이용되고 있다. 운동 주류가 그런 실정이다. 그가 ‘진보적 장애인운동’에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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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관장 권경상. www.nl.go.kr)이 인터넷교보문고와 손잡고 10일부터 품절, 절판, 미등록 등의 이유로 사라진 도서를 찾아주는 무료 서비스를 시작한다.

이 서비스는 교보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거나 검색이 불가능했던 도서들을 인터넷교보 화면상의 지정된 코너를 통해 검색하면 바로 중앙도서관 데이터베이스와 연결시켜 전국 어느 도서관이 해당 도서를 소장하고 있는지 알려준다.

현재 시행되는 품절, 절판 도서 검색 서비스는 다른 인터넷서점이나 한정된 특수기관의 데이터베이스만을 활용하는 데 반해 이 서비스는 국내 최대의 도서 데이터베이스인 국가자료 공동목록 시스템과 연동함으로써 검색의 양과 질이 크게 개선된다. 국가자료공동목록 시스템은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해 전국 526개 공공도서관이 자료를 올려, 서지 데이터베이스 540만건, 소장 데이터베이스 2000만건을 담고 있다.

검색 및 사용 방식도 도서명, 저자명, 출판사명 등 어려운 검색 조건 없이 한번의 키워드 검색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검색 결과가 없거나 품절 또는 절판일 경우 재검색 절차 없이 클릭 한번으로 국가자료 공동목록 시스템의 검색 결과를 제공받도록 개선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또 국가자료 공동목록 시스템을 기반으로 전국 어느 곳에서나 원하는 자료의 소장처, 대출 여부 등에 대한 온라인 접근을 지원하고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 사이의 자료를 공유하여 대출해주는 ‘국가표준 상호대차시스템 구축 사업’도 내년 상반기 개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교보문고를 통해 검색된 품절, 절판 도서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변환하여 영구 보존 및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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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나 파블로바. <북폴리오> 제공
안나 파블로바 = 안나 파블로바가 리허설이 끝난 뒤에 휴식을 취하고 있다. 발레리나 파블로바는 미하일 포킨의 작품들, 특히 「죽어가는 백조」에서 맡은 배역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낙엽」을 포함해 10여 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했다. 처음으로 순종 불독을 러시아에 들여왔으며 종종 그 녀석들과 사진을 찍었다.

» 자연주의 화가 일랴 레핀. <북폴리오> 제공
자연주의 화가 일랴 레핀 = 1910년 아동작가 코르네이 추코프스키가 초상화 제작을 위해 앉아 있는 동안 레핀이 톨스토이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를 읽고 있다. 톨스토이와 그 부인을 그린 유명한 레핀의 초상화가 이젤에 놓여 있다. 혁명 이후 스탈린은 추코프스키를 보내 핀란드에 있는 영지에서 돌아오라고 레핀을 설득했으나 레핀은 거절했다. 레핀은 도저히 편지 봉투에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신 레닌그라드라고 쓸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에게 보낸 편지 중 어떤 것도 배달되지 않았다.

» 톨스토이. 사진/K. 불라. <북폴리오> 제공
톨스토이 = 톨스토이는 농민 복장을 좋아했지만 철두철미하게 귀족이었다. 또한 이 위대한 소설가는 군인이자 지주이며 철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다. 그는 19세기 중반 팽창주의적인 러시아가 카프카스로 밀고 들어가던 포병 장교 시절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크림 전쟁에서 포대 지휘관이었고 그 후 툴라 주의 야스나야폴랴나에 있는 대가족 영지에 정착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이후 톨스토이는 악에 대한 무저항에 바탕을 둔 자신의 윤리를 설파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 막심 고리키와 위대한 가수 표도르 샬리아핀. 밑바닥 인생의 산물인 두 인물이 1900년 얄타에서 과장된 몸짓을 하고 있다. 샬리아핀은 1920년대에 프랑스로 도피했다. <북폴리오> 제공
» 안톤 체호프. <북폴리오> 제공
안톤 체호프 = 극작가이자 의사인 안톤 체호프가 멜리호보에 있는 자택 계단에서 애견 히바와 자세를 취하고 있다. 체호프는 자신이 찬양해 마지않던 작가 막심 고리키가 좌파적 관점을 가졌다는 이유로 차르에 의해 추방되었을 때 모스크바 학술원을 탈퇴했다. 『벚꽃동산』을 쓴 1904년 결핵으로 사망했으며, 당시 그의 나이 마흔넷이었다. 고리키와 샬리아핀이 장례식에 함께 참석했다.

»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이사도라 덩컨. <북폴리오> 제공
시인 세르게이 예세닌과 이사도라 덩컨 = 1922년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이 미국인 무용가는 고대 그리스의 꽃병에 있는 형상들로부터 영감을 받아 개발한 물 흐르는 듯한 춤 스타일을 가르치기 위해 모스크바에 학교를 설립했다. 외국인 부인보다 열일곱 살 연하인 예세닌은 1925년에 자살했다. 이사도라 덩컨은 2년 뒤 스카프가 자동차 바퀴에 끼는 바람에 질식해 숨졌다.

»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북폴리오> 제공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 미래파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풍자작가인 마야코프스키. 차르 체제 말기의 앙팡 테러블(무서운 아이-옮긴이)이었던 그는 볼셰비키의 집권을 반긴 몇 안 되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직접 ‘카니발 오렌지’색을 칠한 모스크바의 “시인들의 바”에서 마야코프스키는 손님들에게 “오늘날 우리 코트의 마지막 단추에 이르기까지 삶이 새로워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전 당시 그는 비어 있는 상점 창문에 붙일 선전 포스터들을 디자인했다. 그는 당 노선을 따랐고 다른 예술가와 작가에 대한 악의적이고 경솔한 공격으로 유명해졌다. 그러나 볼셰비즘의 관료제와 무분별을 혐오하게 되면서 볼셰비즘으로부터 점점 멀어졌으며 1930년 자살했다.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북폴리오> 제공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1958년 10월 노벨상 수상을 자축하고 있다. 그해 출간된 혁명 대서사 『닥터 지바고』는 정치적 폭발을 가져왔다. 소설은 금지되었으며, 그도 “비열한 자”로 묘사되어 작가동맹에서 쫓겨나고 노벨상을 거부해야만 했다.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북폴리오> 제공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1946년 제크로서, 수용소 군대의 기록자. 전시에 포병 장교로 복무하는 동안 반스탈린 발언 때문에 체포된 그는 “악의적인 중상모략” 혐의로 재판 없이 8년 동안 수용소형에 처해졌다.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인 이 노벨상 수상자는 1974년 수갑을 찬 채 스위스행 비행기에 강제로 태워져 트로츠키 이후 소련에서 추방된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 그는 버몬트에 정착했는데 그곳의 길고 추운 겨울은 러시아를 떠올리게 했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북폴리오> 제공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 1908년 소년 시절에 나비를 예찬했던 그는 나중에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소설인 『롤리타』를 썼다. 나비에 대한 그의 유명한 열정은 러시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이미 싹트고 있었다.

<북폴리오> 제공

중국과 영국에 이어 지난 20세기 러시아 역사를 생생하게 기록한 <20세기 포토다큐 세계사 3-러시아의 세기>(지은이 브라이언 모이나한)를 연재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무도회에서 1917년 혁명으로, 스탈린의 잔혹한 시대에서 냉전의 시대로, 글라스노스트에서 1993년의 제2차 혁명으로, 그리고 현대 러시아의 혼란의 현장으로 안내한다. 솔제니친,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등 그들의 놀랍고도 극적인 모습들이 실려있다. 여기 대부분의 사진은 공개된 적이 없는 것으로 생생한 현장감이 살아있다. 이번에도 출판사 ‘북폴리오’의 도움을 받았다.

러시아의 세기는 모두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순서는

1. 로마노프 왕조의 나라 2. 붉은 혁명 3. 볼셰비키 4. 예술의 꽃 5. 노동자의 삶 6. 사회주의의 죽음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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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사진/ I. 가브릴로프. <북폴리오> 제공
체르노빌의 노동자들 = 1986년 체르노빌이 폭발 사고로 황폐화된 지 8일이 지난 뒤 노동자들이 핵발전소의 파괴된 원자로에서 자신들을 밖으로 실어 나를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수습팀이 훈련도 받지 않고 허술한 얼굴 가리개만 쓴 채 체르노빌에 투입되었다. 방사능 수준이 너무 높아서 버스 운전사들은 발전소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수습팀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위험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들이 고향지역으로 돌아와 아파 드러누웠지만 연락이 잘 안 되어 지역 병원들은 자신들이 방사능 오염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 소년 피오네르들. <북폴리오> 제공
소년 피오네르들 = 이들은 “콜호스 수확의 최우수 전사”가 되어 부상으로 배지를 받았다. 당은 예전에 교회가 그랬듯이 아주 어린 아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볼가 강의 짐꾼들. <북폴리오> 제공
볼가 강의 짐꾼들 = 볼가 강의 짐꾼들이 차와 빵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차는 각설탕에 적셔 빨아 마셨다. 전쟁 전 차르 시대의 기준에서 볼 때 음식과 신발이 형편없던 이들은 볼셰비키 체제하에서 이와 같은 배급품을 받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일인당 곡물 생산은 1960년대 중반에 이르도록 1913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 바쿠 유전지대. <북폴리오> 제공
바쿠 유전지대 = 1933년에도 지금처럼 환경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스탈린은 외국 석유회사들이 이권을 착취하던 제1차 세계대전 전에 바쿠에서 볼셰비키 선동가로 활동했다. 이 나라의 거대한 석유 및 광물 자원은 당에게 이익을 가져다주었다. 이후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석유와 가스 생산국이 된다.

» 아버지와 아들. <북폴리오> 제공
아버지와 아들 = 러시아의 지방 거리에서. 지방에서는 달 표면처럼 어떤 사건이나 변화도 없었다. 봄이나 가을에 진흙을 피하려고 깔개를 깔았다. 여름에는 모든 행인들이 뒤에 작은 흙먼지 구름을 달고 다녔다. 겨울이면 거리는 온통 얼음투성이었다.

» 여성 농민. <북폴리오> 제공
여성 농민 = 경제가 붕괴하면서 식량을 찾아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많은 여성들 중 한 명. “해방자” 차르 알렉산드르 2세는 1861년 농노를 해방했다. 70년 뒤 스탈린이 새로운 형태의 농노제를 도입했으며, 이에 따라 러시아 농촌 여성은 “노예의 딸, 노예의 어머니, 남편의 노예라는 삼중 노예 상태”의 전통적인 운명을 다시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집단농장의 점호. <북폴리오> 제공
집단농장의 점호 = 모스크바지역의 한 농장. 집단농장들이 과학적으로 경영되고 고도로 기계화되었다고 선전했지만 실제로는 착취당하는 여성 농민들의 원시적인 힘에 의존했다.

»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사진/F. 구바예프. <북폴리오> 제공
낙천적인 러시아인들 = 러시아인들이 결혼식 피로연에서 집에서 만든 보드카로 미래를 위해 건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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