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첫날인 7월1일,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였다. 6월30일 시작된 파업은 1300여 명의 참여로 격렬하게 진행됐다. 매장 점거농성→공권력 투입→매장 재점거 농성→공권력 재투입으로 노사(勞使)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극한 대결은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 실천한다는 회사가 직원을 배신”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서 기절할 뻔했는데, 가을이 되니 오히려 추워져서 걱정이네요.”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근로자가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한 지 123일째인 10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김정애(45)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밤 이곳에서 홈에버 동료 25명과 노숙했다. 소슬바람은 으스스했다. 이불과 두꺼운 재킷, 종이박스, 비닐장판을 준비해 왔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밤새 뒤척였다.
“우리 아들이 스무 살이거든요. 지키고 있는 전경 애들 보면 우리 아들 고생시키는 것 같아 안쓰럽죠. 고생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죄 없는 애들만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는 까르푸 시절인 2003년 홈에버에 입사했다. 분식집, 정육점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아온 그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힘겨워하던 상황에서 “까르푸 같은 좋은 일터에 취직했다”는 것이 더없이 기뻤다고 한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남편과 고등학생 두 아이를 두고 빠듯한 살림을 꾸려오던 그에게 월급 80여만 원은 값진 돈이었다.
“이런 데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까르푸에 들어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샐러드바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즐거웠고, 축산 파트로 옮긴 뒤에는 “장사만은 자신 있다”며 부지런히 일했다. “보너스가 없어 서운한 적은 있지만 비정규직이란 말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이랜드그룹이 까르푸를 인수해 홈에버 소속이 됐을 때는 자신처럼 “하나님을 믿는 회사”라 내심 기뻤다.
이랜드그룹은 김씨의 말마따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으로 알려져왔다. “기업 활동에서 벌어들이는 순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내부 시스템을 갖춰놓았으며, 매년 100억원 넘는 예산을 ‘사회복지 기관, 시설 지원’ ‘북한 주민 돕기’ 등에 사용하고 있다.”(‘한경비즈니스’ 6월19일자)
김씨의 종교적 친근함이 실망감으로 바뀐 것은 그의 소개로 2005년 까르푸에 들어온 친언니와 몇몇 동료가 해고당한 올 2월부터다. 친절사원으로 뽑힐 만큼 열심히 일했던 언니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눈물을 보이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이 컸다”고 한다. 그 후 ‘파업투쟁’에 참여했고 어색하기만 하던 시위현장도, 민중가요도 익숙해졌다.
“파업이란 것도 처음 해봤고 경찰서에 연행된 것도 처음이에요. 남편은 난리가 났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들었고요. 텔레비전에서 데모하는 거 보면 왜 저렇게 거칠게 싸울까 했는데, 그동안 겁도 없어진 것 같아요. 처음엔 며칠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가고 보름이 가더니 어느새 넉 달이 지났네요. 무슨 꿈을 꾼 것 같아요.”
이랜드그룹은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워왔다. 현재는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32위(공기업 포함)의 기업집단으로, 모태는 박성수 회장이 1980년 서울 신촌에 꾸린 2평짜리 옷가게다.
박 회장은 기독교 장로로,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청교도적 기업가로 알려져왔다. 그는 신앙생활과 근면·검약 정신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업문화를 구축해 ‘구멍가게’를 26년 만에 매출 2조6000억원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부(富)의 사회 환원을 강조해왔으며 인수합병도 선교의 일환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회장은 노조에는 차가웠다. 2005년 5월 삼일교회의 간증에 참석해 ‘직업(job)이냐, 소명(calling)이냐’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근로자들이 ‘일’로서가 아니라 ‘소명’으로서 회사에 다니기를 바라는 듯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엔 ‘소명 의식’을 가진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가 비정규직 대량해고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해요”
통계청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35.5%인 546만여 명(2006년 현재)이 비정규직이다. 임금 노동자 10명 중 3.5명꼴인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2.8%에 그친다. 한 대기업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김모(25) 씨는 “똑같은 일을 직영(정규직)보다 2배, 3배 더 하고도 월급은 절반조차 안 되는 생활을 이젠 그만 접고 싶다”고 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맞춘 이랜드그룹의 대량해고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가슴에 맺힌 한을 자극한 측면이 크다. 이인숙(42) 씨는 2006년 4월부터 뉴코아 강남점 킴스클럽에서 일했다. 뉴코아는 결혼 후 2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의 첫 직장. 남편이 지난해 대장암 선고를 받은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라도 벌고자” 수납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주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까 몇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참을 때가 많았어요. 비정규직은 휴무도 주말에는 못 내요.”
정규직 근로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씨는 4월 중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두 달 전 10개월 연장 재계약을 체결한 터라 부당 해고라며 회사에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홀로 점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중에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제야 ‘계약서가 잘못됐다, 복귀하라’고 하더군요. 살아오면서 부당하게 차별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정말 화가 났어요.”
그는 이후 노조의 파업에 동참했다. 급여를 받지 못하다 보니 생활을 꾸려나가는 게 시급한 문제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가정형편상 운동을 그만둘 것을 호소했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들이 월급도 안 주는데 왜 매일같이 나가냐고 물어요. 그럼 ‘이 엄마가 처음으로 직접 번 급여로 네 회비 낼 수 있어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는데, 그렇지 못해 속상하다’고 설명하죠. 생계 때문에 시위를 그만두는 분도 많은데, 이제부터 저도 저녁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생계문제는 거리로 나선 ‘아줌마 근로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이고, 개중에는 남편 대신 생활을 꾸려야 하는 가장도 적지 않다.
“아까 은행에 다녀왔는데,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서 주변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더라고요.”
7년간 홈에버 면목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해온 L씨(40)는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초등학교 6학년 딸과 3세 아들을 둔 그는 몸이 안 좋아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실질적 가장이다. 정규직으로 파업에 참여한 그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12세 딸에게 “친구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아닌데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만,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2004년 남편과 사별하고 초·중·고생 세 아이를 키우는 C씨도 ‘내 옆에 있던 동료가 안 보이고, 차별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파업에 참여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빨리 정상적으로 돌아가서 근무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도 이랜드그룹 성토 빗발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넘게 고용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고, 같은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할 수 없게끔 돼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살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분리직군제를 도입해 고용을 보장하고 복리후생을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한 기업이 적지 않다.
‘이랜드그룹 사태’는 사측이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해지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사실상 해고하고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촉발됐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은 백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단체협약을 어기는 등 ‘명백한 잘못’도 저질렀다. C씨가 국회 앞에서 불안한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국회 안에선 이랜드그룹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10월23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랜드그룹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한선교 의원(한나라당)은 백지계약서와 관련해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계약서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계약서의 문구를) 화이트로 지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고 우원식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했다. 그건 사문서 위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종길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파업으로 조합원이 빠진 계산대에 (월 30만원의 연수비를 받는) 청소년 직장 프로그램 연수생들을 배치했다(대체근로는 불법이다)”고 주장했으며, 조성래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외국 출장을 구실로 박 회장이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은 까닭”을 추궁했다. 홍준표 위원장(한나라당)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랜드그룹 경영진을 질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마음대로 경영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노동권은 기업경영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기본권’이다. 11월2일 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하라고 박 회장에게 전하라. 출석하지 않으면 고발할 것이다.”
오상흔 이랜드리테일(홈에버) 대표이사, 최종양 뉴코아 대표이사가 국회에서 진땀 빼고 있을 때 김민자(33) 씨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국회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이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주변에서 말려도 집에서 쉬고 있으면 답답해 현장에 나온다”고 했다.
이랜드그룹 사태의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은 김씨 같은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후 첫 분규는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힘 겨루기’로 비화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 등 비(非)이랜드그룹 노조원이 ‘불법 점거농성’ 등에 뛰어든 것. ‘아줌마 조합원’들의 생존권 투쟁이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에 이용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그룹 사측은 “노조가 교섭에 나서려 해도 민주노총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제삼자인 민주노총이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가계에 보탬이 되려 일터에 나온 아주머니들이 영업장을 무단 점거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랜드 파업사태는 개별기업의 노사문제로 다뤄졌다면 이렇게 오래 끌 일도 아니었다”(박종남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는 주장도 나온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법안 상정 후 2년여의 논의 끝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이 법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동계의 반발이 경영계보다 좀더 강한데, 기업의 집단해고와 외주화로 고용안정이 오히려 약화된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동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거꾸로 실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랜드 사태 장기화 민노총·노동부는 책임 없나
즉각적인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정규직 근로자가 ‘특정 이유’로 일을 못할 때만 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계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경영계는 일단 비정규직법을 안착시킨 뒤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주장이다(한국노총, 노동부의 견해는 경영계와 비슷하다).
홈에버, 뉴코아 노조의 ‘아줌마 조합원’들은 이튿날 오후 종로에 다시 모였다. 노사 협상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조합원들은 종각에서 세종로 네거리까지 3보1배를 했다.
홈에버 상암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하던 J씨(52)는 “7시간 넘게 계산대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일하고, 과잉친절이라 할 만큼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려 했다”며 “점거농성을 하면서 썩은 계란이나 물대포를 맞을 때 내가 몸바쳐 일한 회사가 이런 수준이었음을 생각하고 쓸쓸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웬수 보듯” “때려잡듯” 한 회사에 원망이 크다. 일터로 복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9월에는 회사로부터 사정이 어렵거나 비교적 온건한 일부 조합원에게 “추석 전까지 복귀하면 조건 없이 받아주겠다”는 연락도 왔다고 한다. 생계 또는 다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복귀해야 하는 이들의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조합원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하나 들어가면 하루가 늦춰지는 것 같고, 둘이 들어가면 이틀 늦춰질 수 있으니까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들어간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죠. 들어갔다가도 얼마 안 돼 그만두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것은 점거농성을 가서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싸워야 할 때예요. 회사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싸움 붙이는 격이죠.”
“결혼한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건 보험영업, 식당 서빙, 유통업이 전부예요. 여길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도 비정규직으로 잘릴 상황이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런 나쁜 기업은 망해야 앞으로 우리 같은 피해자가 안 생기죠.”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2008 기업환경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용환경을 세계 131위로 평가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은 외국자본의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다.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비정규직을 통해 풀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합리적인 노동운동과는 거리가 먼 노조의 ‘떼법’으로 사회가 지불하는 코스트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은 국정감사에서 “악덕 기업주”(우원식 의원)라는 소리까지 들을 만큼 부도덕한 면이 많았다. ‘이랜드 신화’의 축이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 ‘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물거품이 됐으며 ‘돈보다 일, 일보다 사람’이라던 기업정신도 머쓱해졌다. 이랜드그룹의 사례에서만큼은 ‘위선(僞善)’이 ‘떼법’보다 훨씬 커 보인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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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언제 이런 법을 만들어달라고 했습니까?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에 오히려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는데, 이상수 장관님은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실 수 있나요?”(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김소연 분회장)
10월11일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100일을 맞아 노·사·정 대토론회가 열린 서울 중구 서소문 올리브타워 20층.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주최한 이 토론회는 발제자 3명이 연단에 오르기도 전 무산됐다. 기륭전자, 코스콤, 이랜드그룹(뉴코아, 홈에버)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산발적인 항의와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회 취지는 “비정규직의 고용 개선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왜 이들은 자신들의 고용문제 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파행으로 만든 것일까.
이상수 노동부 장관의 격려사 도중 시작된 이들의 ‘고함’은 2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비정규직의 시위로 방에 갇혀 있다 경찰보호를 받으며 토론회장을 빠져나간 이 장관의 모습은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갈등의 현장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업무 통째 아웃소싱 추진하기도
이랜드그룹이 경영하는 대형 유통업체 홈에버에서 계산원으로 일했던 호혜경 씨와 보라매서울대병원 영양실에서 일해온 김은희 씨, 우리은행 창구 텔러로 근무했던 김은미 씨(가명)의 사례를 살펴보자.
이들은 모두 일하는 곳만 달랐을 뿐 여성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똑같았다. 하지만 올 7월 이뤄진 정규직과의 차별시정과 2년 고용 후 정규직 전환을 골자로 한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전후로 이 세 사람 앞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호혜경 씨와 김은희 씨는 회사로부터 각각 4월과 7월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일터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김은미 씨는 분리직군제 도입을 통한 무기계약 근로자로 전환됐다.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과 차이났고 승진 기회도 없지만 고용만큼은 안정된 것.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당사자인 비정규직의 ‘운명’이 확연하게 엇갈리고 있다. 일부에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소식이 들렸으나, 기업이 법망을 피해가기 위해 비정규직을 계약해지하거나 업무를 외주화(아웃소싱)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랜드 사태를 들여다보면 일부 기업의 행동 패턴을 읽을 수 있다. 뉴코아는 외주화를 선택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계산대에서 일해온 이 회사는 정규직을 다른 업무로 전환배치하고 계산 업무를 통째로 외부 업체에 맡기는 아웃소싱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근로계약 기간을 명시하지 않는 백지계약서가 등장해 노동부로부터 시정명령을 받기도 했다.



공공기관 · 공기업도 대량해고 마찬가지
홈에버는 기존 비정규직 근로자를 계약해지하고 새 사람으로 그 자리를 채워넣는 방식을 택했다. 홈에버 방학점에서 비정규직 계산원으로 4년째 일해온 김미희(45·가명) 씨는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앞두고 느닷없이 계약서를 다시 쓴다느니 계약기간을 변경한다느니 하며 신경전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1월부터 5월까지 계약해지된 비정규직은 홈에버 사측에 따르면 모두 350명이다. 이 가운데는 까르푸(홈에버의 전신) 시절 체결돼 현재까지 유효한 단체협약에서 계약해지를 금지하고 있는 18개월 이상 근무자도 있었다.
대량해고가 이뤄진 것은 공공기관이나 공기업도 마찬가지였다.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은 지난해 말 비정규직 200여 명이 담당하던 새마을호 승무업무를 외주화했다. 송파구청도 비정규직 195명 가운데 35명을 법 시행 하루 전날인 6월30일자로 계약해지했다.
2000년부터 증권선물거래소의 전산업무 자회사인 코스콤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해온 정인열 씨는 “나는 협력업체 직원이었지만 도급이나 파견 같은 단어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동고동락하던 동료들과 월급봉투 두께는 달랐지만 배우는 과정이라 여겼을 뿐이었다. 그런 정씨는 현재 증권노조 코스콤비정규직지부의 부지부장으로 한 달 넘게 파업을 이끌고 있다.
이랜드그룹 비정규직도 마찬가지다. 홈에버 목동점에서 일해온 황명희 씨는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까 싶어 다녔던 직장일 뿐 ‘투쟁’이라는 단어는 들어보지도 못했다”며 “매일 집과 회사만 오가며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엄마들이 비정규직보호법이 뭔지나 알았겠느냐”고 반문했다. 무슨 내용이 들어 있는지도 알지 못했던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을 계기로 그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이렇듯 최근 벌어진 비정규직 노사분규는 대부분 우리 주변의 평범한 직장인, 아주머니들이 주인공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을 피해가려는 일부 기업들의 ‘선택’이 이들에게 머리띠를 묶게 한 것이다. 도급업체나 파견업체에 소속된 간접고용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 및 보호장치가 빠진 비정규직보호법의 허점을 일부 기업들이 악용한 결과다.



여정민 프레시안 기자 ddonggr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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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KTX와 이랜드 사태 등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하나의 추세가 가져온 부작용과 사회적 반감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했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웃소싱’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많은 ‘내부 과정’을 외부화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한국 경제가 197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는 이른바 ‘영광의 30년’ 동안 유지해온 일본식 연공서열제가 해체됐고, 비정규직 일반화의 시대가 열렸다.
비정규직에 관해서는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공식 통계가 존재하지 않지만, 급속도로 증가하는 비정규직은 20대와 50대에 집중되는 쌍곡선 형태를 보이고 있다. 다시 말해 연공서열제의 경향이 남아 있는 30대와 40대가 대부분의 정규직을 차지하고 있는 데 반해, 20대와 50대에서 비정규직 비율이 월등히 높다. 게다가 여성, 지방대, 고졸 등 한국 경제의 ‘마이너리티’에 속하는 사회적 핸디캡이 결합되면 비정규직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경제 주도권 가진 40, 50대에 의한 세대계층화 진행
비정규직 문제로 가장 먼저 부각된 KTX 여승무원이 20대 여성들이었고 다음이 40, 50대 여성들이 주축을 이룬 이랜드 사태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두 사건은 단번에 수습될 수 있는 성격의 사안이 아니며, 앞으로 점점 일반화돼 사회적 위기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장기적으로는 상대적 소수만이 ‘우아한 직업(descent job)’을 갖게 될 현재의 20대에서 이런 불균형이 극단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기업과 비정규직은 일종의 ‘빈곤의 악순환’ 관계다. 기업은 경영이 어려워질수록 인건비 절감을 위해 더 많은 내부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데, 이에 따라 ‘포스트 포디즘’이라 불리는 지식경영에 적합한 내부 혁신의 가능성도 줄어들게 된다. 노동은 갈수록 표준화된 기계적 노동으로 바뀌지만 다품종 소량생산 체계에서 기업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고, 이에 따라 외부화가 필요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화가 시장의 기계적 조정장치에 의해 정규직 체계로 돌아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20대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현재 한국에서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119만원 정도인데, 여기에 20대의 평균임금률인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 이들은 외환위기 때 10대를 보냈고 사회에 진출할 즈음 비정규직 일반화가 진행되면서 상대적 소수만이 ‘튼튼한 직장’을 가질 수 있는, 비정규직화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무엇보다 20대는 ‘승자독식 세대’로서 경쟁을 자연스럽게 체화했지만 연공서열제 종료 이후 사실상 세대간 경쟁에 들어간 셈이다. 하지만 경제기득권을 확보한 386세대와 유신세대에 밀린 20대의 경제적 조건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한마디로 40, 50대에 의한 세대 계층화가 구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지금의 10대가 독립할 즈음에는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경제 주체의 관점으로 볼 때, 이런 식으로 장기간 작동할 수 있는 국민경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수요 부족으로 공황 국면을 맞거나 기업 경쟁력 약화에 따라 경제 부가가치가 질적으로 떨어지는 등 몇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볼 수 있다.

스웨덴식 사회대타협·일본 연공서열제 복귀 등 대안
문제는 이러한 세대간 불균형 문제가 완전고용 상태에서 지난 30년간 운용돼온 한국 경제엔 낯선 일이라는 점이고, 이에 대한 인식은 물론 이론적 대응 수준도 낮다는 점이다. 100개의 이랜드 사태가 동시에 벌어진다고 생각해보라. 이 정도의 사회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화 절차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극단적으로 달러화 약세에 따른 세계경제의 위축이나 제3차 석유파동 등 외적 요인이 겹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공황이 도래한다고 가정할 때 한국 경제가 자랑해온 내적 응집력과 역동성은 타격받을 수 있다. 계급 갈등은 임금비율 조정을 통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극복할 수 있겠지만, 특정 세대에 집중된 재생산 문제는 단기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노동 유연성을 보장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스웨덴식 사회대타협이나 3년 전부터 일본이 선택한 연공서열제로의 복귀, 임금을 낮추며 일자리를 늘리는 볼보주의식 ‘일자리 나누기’ 등의 대안이 논의될 수 있다. 기타 세대기금이나 중소기업 강화처럼 충격을 완화하는 다양한 옵션이 디자인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세대 불균형이 국민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이 낮다는 점이다.
이랜드 사태는 다분히 우연적인 요소가 결합된 우발적 사태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일반화되는 비정규직화가 빚어낼 ‘88만원 현상’은 좀더 구조적이며, 거시경제에 위협요소가 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세대간 불균형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이는 ‘분배냐 성장이냐’라는 해묵은 논쟁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민경제 주체를 어떻게 재생산할 것인가’라는 거시경제 운용의 기초에 관한 질문이다. 이제라도 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경제학

 

 

읽으면서 정리 참 잘했네 라고 봤더니.. 우석훈씨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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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그동안 몸 담았던 한나라당을 떠나 이번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번에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반드시 좌파정권을 바꿔야 한다"

 - 이 회창 선언.

 

노무현이 뭘 했길레 좌파정권이라 하는걸까.....
조봉암이 부활해서 대통령이라도 했나..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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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1-07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망이예요.

비로그인 2007-11-07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허허 부친은 친일파 아들은 군대 안보내고 뺴돌려.. 육군상병 노무현한테 왜 졌는지 아직도 못 깨달은 걸까요..

마늘빵 2007-11-07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없는걸 있다하고 아닌걸 그렇다고 하니 거참...

프레이야 2007-11-08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재수 빵이에요..
 

삼성 무섭다 ㅡ..ㅡ;

마피아랑 별반 차이없구만.

검찰쪼가리들이 제대로 수사할리 없을테고, 하더라도 법원과 청와대가 뒤 봐주고,
언론에서 지원사격 나가면...

김용철씨만 죽을거 같음.

이 나라, 정말 대책없음.

 

 

정말 용기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될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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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7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늘 읽었는데 음... 생각 이상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