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도 황금종려상 받았네... 상 받은 영화랑 친하지 않은데 ㅡ..ㅡ;

아무튼, 낙태 불법시술을 소재로 한 현실감이 좋은 영화다.
OST도 없고, 정적인 화면에 롱테이크까지...
무미건조의 진수다 ㅡ..ㅡ;
아우 퍽퍽해... 지푸라기 씹는 것 같네.

"아가씨, 이거 조심해야 돼요..."
"5개월은 아니에요, 4개월 일거에요. 생리가 불규칙하거든요..."
"달수를 가지고 장난하는군요"
"4 개월이나 5 개월 일수도 있다..."
"이거 알아요? 4 개월 부터는 낙태가 아니라 살인이에요. 5-10 년 형을 받게돼요"

거래는 감정을 절대적으로 배제시킨다.
태아의 권리, 산모의 건강을 위한 대안 없이, 오로지 '상황 논리'만으로 저울질 할 뿐이다.
그녀들이 겪는 고민과 불안의 이면에 숨어있는 '사회적 논리'가 실제 주인공이다. 이것을 알아차려야 하는건 필수.
'낙태'라는 출혈, '돈'을 쫓는 암흑상인, 당대의 루마니아에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난도질 당하는지 '언어'와 '행위'는 날카롭게 후빈다.

인간에 대해 너무나 무책임한 사회권력 그리고 남성.
이러한 착취 구조 속에서 기생하고 순응하는 인간들의 면면을 적나라하게 목격한 여주인공의 감정은 영화만큼이나 말라 비틀어진다. 빠져나온 태아와 뒷처리만큼이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평범함'의 한계를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까.
평론가들이 말한 '충격'이란, 아마도 그것의 범위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아니었음... 뭐 그 정도 가지고 ㅎㅎ)

"내가 임신했으면, 어쩔거야? 그런 생각 해봤어? "

스릴러도 아닌데, (자주) 움찔하게 만드는 연출이 인상적이다.
생각하면 할 수록 대단한 것 같군.


ps. 아무리 영화라지만, 여배우들 챙피했겠다...
어떻게 그렇게 다 보여줘 ㅡ..ㅡ;
요즘 영화들 ... 대담해.. 쩝쩝.   (생물학적으로 어쩔 수 없는 호감 ㅡ..ㅡ; 므흐흐흐)



영화 이해하기 좋은 기사.
동정 없는 시대의 상처투성이 천사 <4개월, 3주… 그리고 2일>   필름 2.0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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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8-03-09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 이 영화에서 낙태하는 여자가 맘에 안들었어요. 친구에게 대단한 민폐를 끼치잖아요. 자신이 할일을 친구에게 모조리 부탁하고 말이죠. 심지어는 다시 모텔로 돌아온 친구에게 "욕실에 있어. 가봐." 하며 자신의 아이까지 부탁하죠.

밑에 인용하셨던 부분
"내가 임신했으면, 어쩔거야? 그런 생각 해봤어?"
는 저도 인상깊었어요. 잊을 수 없는 대사지요.

전 이영화 좋았다, 라고 말하기보다는 슬펐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아마 제가 여자라서 그런걸지도 몰라요.

저도 포스터에 실린 문구처럼 '충격'적이지는 않던데요.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사회란 본디 그런게 아니던가요.

라주미힌 2008-03-09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몸 바쳐'가며 도와준 친구인데 말이죠. 그 당시 루마니아를 겪어보지 않았을 뿐더러 여성도 아닌지라.. 이해하기 참 어려운 영화였어요.

마늘빵 2008-03-0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영화도 보고 싶더라구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봤는데. 요즘 보고픈 영화들이 넘 많아요. 영화를 예전만큼 볼 시간이 없는지라 고프다아.

순오기 2008-03-09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런 영화보면 많이 아플거 같아요. 이제 우리 애들 이야기로 접수되니까요~ㅠㅠ

프레이야 2008-03-0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봐야겠어요, 이 영화.^^

라주미힌 2008-03-09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영화니깐 많이 보셔여 :-)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우리나라에서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열 명보다는 많고, 50명은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가끔이라도 국민들이 <국부론>과 <도덕감성론>이라는 두 책의 관계를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가끔 든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송구스러울 수도 있지만, 많은 경제학 전공자들은 <국부론>이라는 책이 금세기에 출간되었다면, 노벨경제학 대신에 노벨문학상을 탔을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경제학상을 탈 수 없는 이유는, 경제학을 학문으로 만든 이 책에는 수학공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담이지만, 애덤 스미스는 ‘이코노미스트’라는 표현을 ‘경제학자’가 아니라 ‘수전노’ 즉 돈 몇 푼에 손을 발발 떠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 <국부론> 1권 9장에는 세상이 과연 마지막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고민이 나오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임금은 더 오르지 않고, 이윤도 오르지 않고, 나아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상태라도 유지하려면 또 모두 죽도록 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다른 곳에서 스미스는 ‘우울한 상태’라는 표현을 하기도 했고, 후대 경제학자들은 이런 스미스의 이론을 ‘정체상태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오는 이유는 지대 요소, 즉 자연이 더는 커져나간 경제상태에 맞추어 증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고전학파 경제학의 우울한 미래에 대한 예언은 맬서스, 리카도를 거쳐 사실상 고전학파의 막내인 존 스튜어트 밀에게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다만 차이점은, 이 명랑하고도 당돌하며 겁이 없었던 경제학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돈을 더 벌 수 없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문학과 예술, 그리고 역사에 더 많은 노력을 할 것이므로, 이 상태가 우울한 상태가 아니라 ‘조화 상태’(harmonized state)라고 해석하였다.

유가가 오르고, 석유를 대체하기 위해서 옥수수를 연료로 투입하면서, 옥수수의 대체재인 밀과 쌀값이 오르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석유파동 이후, 단일 자원시장에서 ‘갑절’씩 가격이 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 모든 원자재가 두 배를 기본단위로, 기분만 좋으면 세 배든, 네 배든 올라가게 되는 그런 시기를 우리는 맞게 되었다. 이건 국제 자원시장에 선물시장이 도입된 이후 처음 생겨난 변화이고,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미증유의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상태가 올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들은 많았는데, 애덤 스미스가 그랬고 가깝게는 최근에 작고한 로마클럽의 집필자, 도넬라 메도가 이런 상태를 예견했다. 정말 <국부론>과 같은 교과서나 아니면 100년짜리 장기 시뮬레이션에서나 보던 그 상태를 정말로 금세기에 살아서 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이를 요즘 학자들은 ‘희소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한국의 거시경제 기조, 경제정책, 그리고 사회문화적 체계까지 모두 ‘풍요의 시대’에 맞추어져 디자인되어 있다. 돈만 주면 뭐든지 살 수 있고, 또 그런 공산품의 가격도 계속해서 몇 년마다 절반씩 떨어진다는, 풍요 시대의 패러다임 위에 한국이 서 있다. 그러나 지금 이제 우리는 ‘희소성의 시대’로 간다. 바로 <국부론> 1권 9장의 세계가 펼쳐지는 셈이다. 이제 경제학자들은 ‘풍요’라는 70년대 이후의 패러다임을 머리에서 지우고, ‘희소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탑재해야 한다. 아니면, 우리 모두 망한다.


우석훈/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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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idsolution.co.kr

 

현실적이고 절제된 아저씨 취향    

무난하고 보편적인 취향이면서 보수적인 편.
예술보다는 현실을,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

 

현실적이고 절제된 아저씨 취향  

 



당신의 취향엔 쿨하고 냉정한 매력이 있습니다.

당신의 취향은 실용주의, 물질주의, 보수주의로 요약 가능합니다.(문화 예술 취향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정치 사회적으로 보수라는 건 아니죠.) 당신은 "예술이 밥 먹여주니"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실학파'일 수도 있고, "예술보다 밥"이라고 말하는 완고한 보수파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절제된 형태의 표현을 좋아합니다. 슬픔에 흐느껴서도 안되고, 기쁨에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되며, 사랑에 목소리가 떨려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기존의 통념을 파괴하는, 원칙과 질서를 무시하는 철딱서니 없는 표현에도 거부감을 느낄 겁니다.  


당신의 취향은 바로 이런 분위기입니다.
좋게 말하면 냉엄한 사리분별일테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함이라 하겠습니다.

당신에겐 쉽고 간결하며 격식과 모양새를 갖춘 콘텐트가 잘 맞습니다. 그림으로 치자면 사실주의 작품들, 소설로 말하자면 사실주의 문학이 잘 맞습니다. 영화도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건조하고 딱딱한, 하지만 현실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진실된 메시지를 담은 종류를 좋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당신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문화 예술의 발전에 저해되는 사람으로 치부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당신의 취향 중에는 (극소수이긴 하겠지만) 창작의 자유를 해치는 검열주의자, 엄숙주의자,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당신 취향의 상당수는 이것저것 다양한 문화 생활을 즐기긴 하지만 딱 부러지게 좋아하는 것이 없을 겁니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일관된 기준이 없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좋아하는 것
당신은 본론부터 간략히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추상적인 표현도 싫고, 은유적인 표현도 싫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당신 취향에 가장 적합합니다. 가령, 심오하고 추상적인 미술 작품보다는, 아래와 같은 미술 작품이 훨씬 보기 좋다는 것이죠.


하이퍼리얼리즘의 대표작 "John" (Chuck Close)의 제작 과정

저주하는 것
당신은 일단 도를 벗어난, 과격한 것이 싫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 안되는 문학적 예술적 표현도 싫습니다. 쉽게 풀어 얘기를 하면 될 걸 뭐하러 어렵게 꼬아 말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리하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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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08 1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부러지게 좋아하는게 없으시군요 ㅋ
별다섯을 찾기가 어려웠던 건 이런 이유?

라주미힌 2008-03-08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과가 할때마다 달라지네요 ㅡ..ㅡ;
신뢰성이 떨어지넹...

마늘빵 2008-03-08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답습니다. 크크.

웽스북스 2008-03-08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저도 그랬어요
근데 몇번 하다보면 뭘 누르면 뭐가 나올지 대략 알겠달까요 ㅋㅋ

드팀전 2008-03-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한 번은 아방가르드 취향이나오고 한번은 지적인 문학가 취향이 나오고 그러네요.
그런데 둘 다 맞는 것 같아요.이래 저래 흔들리는...
 
















들을 수 없는 부모와 들을 수 있는 딸은 가족이다.
같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같은 세계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보다,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고립감이 더욱 크다하지 않던가.
딸은 고립된 세계의 유일한 입이고 귀가 된다.
소통은 일방적이다. 그리고 왜곡 되어진다.
서로가 공유하는 침묵은 마법의 언어로도 채울 수 없는 간극을 만들어 낸다.
부모가 원하는 딸과 딸이 원하는 부모, 지독한 침묵과 요란한 소음이 마주하려면 서로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음악.
그들에겐 차별이었고, 딸에게는 미래이다.
딸이 저 편의 세계로 떠나지 않을까하는 불안이 부풀어 오른다.
유년의 트라우마 욱신거린다.

"당신 부모가 했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아요."
"무슨 뜻이야?"
"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세요."
"그 앤 내 딸이야."
"하지만 당신 소유물은 아니에요."

눈은 소리없이 내리고, 세상에 고요를 안긴다.
태양은 소리없이 떠올라, 빛으로 세상을 깨운다.
바람은 깃발을 움직여 존재를 알리듯,
들을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의 목소리가 가득한 세상이다.
두개의 세상은 그렇게 문이 열린다.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고...

"그것이 너의 음악이니?"
"그래요. 이해할 수 있겠어요?"
"이해 하도록 노력해 보마. 난 널 잃은 거니?"
"전 태어난 순간부터 아빠를 사랑 했어요. 전 언제나 아빠 딸이에요."


ps.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어둠 속의 댄서"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볼 수 없어도 봐야 할 세상, 들을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세상...
희생과 집착, 구원과 화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빌려 인간과 사회의 근원적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어둠 속의 댄서'가 '악(惡)'으로 해답을 찾오록 유도한다면, 이 영화는 '애(愛)'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마지막은 뻔해도... 그러서인지 찡하다.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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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곽선희니 조용기니 하는 사람들이 문제인 건 단지 그들이 성직자치곤 지나치게 비싼 집과 비싼 차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비싼 집과 비싼 차를 갖는 것이 좋은 삶이자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생각을 세상에 퍼트리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그들은 그 일을 정말 충실하게 수행해왔고 이제 한국 사회는 그런 생각으로 충만하다. 대통령에서 비디오가게 아저씨까지. 그런 의미에서, 그들을 단지 타락한 성직자라고 일컫는 건 그들과 사회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와 싸우는 사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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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드팀전 2008-03-07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건 곽이나 조가 한게 아니잖아요.칼뱅이나 막스 베버를 떠올려 보아요...부가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자본주의와 기독교의 밀월 항목이지 않습니까.김규항이 그걸 모를리가 없을텐데 후훗...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시는 사탄이겠지요.사탄이 없다면 하나님도 없을테니...
사탕이나 먹죠.^^

라주미힌 2008-03-0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기독교(외 꽤 많은 종교)와 자본논리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말이죠.
'김규항씨의 기독교'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
그가 추구하는 세계의 절대자, 그가 원하는 천국, 믿음.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가 유일신 신앙은 아니라고 봐요. 저 같은 무신론자가 얘기할 부분은 아니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