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대학교 형들 두 명을 만났다.
회사, 경제, 정치 이런 얘기를 하다가...
비정규직 문제를 얘기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사회가 고용없는 성장, 신자유주의 정책의 최대 희생자들이 비정규직이라고 했고, 그들에게 좀 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 명은 물적자원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소외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이러한 경쟁체제에서 각자가 알아서 살아나갈 수 밖에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 그들은 이 사회에서 죽을 수 밖에 없냐고 물었고, 돌아오는 대답은 우리나라같이 아무 것도 없는 나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라고 했다. 흔한 레퍼토리.. 약육강식의 시대인데 어쩔 수 없다. 라고...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 계속 들었다. 이게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인 것을 어쩌겠느냐라고 한다.
미국식 자본주의말고 유럽식 자본주의가 대안이 될 수 없냐라고 물었지만, 엉뚱하게도 사회주의는 망했다는 소리만 한다. ㅡ..ㅡ; 좌파정부의 결말은 언제나 다 똑같았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도 그랬고, 라틴아메리카도 그랬고... 등등 ㅡ..ㅡ;
노무현 정부가 무슨 좌파정부냐고!!!! 하니깐.. 규제가 많아서 좌파정부라고 한다. 그래서 경제가 더 어려워졌다나...
규제가 많은게 왜 좌파정부냐고!!! 좌파정부라고 판단할 만한 구체적인 정책을 제시해달라고 하니,
'국토균형발전', '개발규제', '기업규제' 같은 것을 말하는데...
규제=균형=평등=사회주의=공산주의=좌파정부=노무현=진보=망한다..
이런 인식을 갖고 있는 듯 했다..
기업이 성장해야지 고용창출이 일어나고, 그래야지 국민경제도 나아진다라는 '보수언론'의 주장을 그대로 얘기하기도 한다.
대기업 위주의 고용은 한계가 있고, 중소기업을 제대로 키워야 고용효과가 크다고 말하니..
대기업이 없으면 중소기업도 없다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대기업 위주의 정책이 대기업을 성장시켰지만, 하청업체들이 죽어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더욱 발전적이지 않나. 그런면에 있어 대기업의 횡포는 너무나 극악하지 않은가?라는 답변은 제대로 못들었다. 그저 반복... 어찌됐던 대기업이 살아야 한다.
그 사람 왈, 고용을 늘리려면 미국처럼 '노동의 유연성'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지 기업에서 짜르고 싶어도 못짜르면 고용이 늘어날 수가 없다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노동자의 입에서 '노동의 유연성'이란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올수 있다니... 그게 바로 고용불안인데, 어떻게 그런 삶을 유지할 수 있냐라고 물었더니, 그게 다 정규직 때문이다. 귀족노조 때문에 비정규직에 대한 대우가 않좋다라는 말을 한다.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라는 그를 보니 '노동자의 적은 노동자'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일본처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별은 없어져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니 '니가 삼성이라면 그렇게 할까? 이윤을 위한 기업인데..불법도 아닌데' 착취의 당위성을 또 다시 강변한다.
자본권력의 착취구조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어떻게 '성장'의 효과를 기대할 것인가?라고 물었지만, 역시 대답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조금씩만 더 나누면 우리 모두가 같이 잘 살 수 있지 않겠냐? 라고 하니... 인간의 욕망을 거스른다라고 한다...
자본주의에 대해 그다지 틀린 말을 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러면 우리가 욕망과 약육강식만을 추구하는 이 세계가 과연 '인간 사회'라고 할 수 있냐?라고 하니.. 또 다시 어쩔 수 없다... 능력 없으면 도태될 뿐이다라고 한다.
나처럼 말빨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장벽을 느꼈다.
다른 한 명은... 비정규직 사람들보고.. 왜 비정규직 하냐?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더욱 열심히 일해서 정규직으로 가야한다라고 했다. 자기계발만이 살 수 있다. 안주하는 삶은 자기손해일 뿐이라고 한다. 자살한 강의교수들을 이해할 수 없다. 자살 할 용기로 더 열심히 살아야지..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모순, 부조리가 그들을 그 상태에 머물게 한다라고 했지만, 역시나 미래는 '자기하기 나름'이라는 긍정론을 폈다.. 나는 저 자리에서도 '네거티브'가 되었다. 사회를 너무 삐딱하게만 본다고...
노력해도 안되는 사회 아닌가?라는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된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라는 말에...
다른 것은 신경쓰지 말고, 네 앞길만 신경써라... 잘 되야 그제서야 신경쓸 수 있는거다... 라는 조언도 들어야만 했다.
사회운동가, 노동운동가들은 자신을 위해서 일생을 던지지 않았다. 그들의 연대와 가치 때문에 우리의 노동환경이 진보하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내 밥그릇만 생각하면서 살 수 있나... 라고 물었지만..
그들 때문에 세상이 바뀐게 아니라, 우리가 바꾼거라는 말을 들었다.
아니... 현실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도 바뀔 수 있나? 라는 고민이 잠시 들었지만...
3시간을 얘기하면서 가끔씩 울컥했다. 뭐랄까... 그들의 고통, 울분, 좌절을 세상이 알아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겠구나... 그들의 모습이 잠시 스쳤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문제 있다라고 쓰는 페이퍼는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일 뿐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생계, 미래를 그 누가 보장해 주지 않는 한,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은 어찌됐던 존중받아야 한다.
그들에게 '책 좀 읽고 얘기하자'라는 오만한 모습을 보인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보다 어쩌면 그들이 말하는 세계가 더욱 절박한 것일 수도 있는데...
독서모임에서 이런 말들이 오간적이 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도 바뀔 것이고, 세상이 바뀔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아니하며, 바뀐다 하더라도 행동한다는 보장도 없다. 세상은 더더욱 그렇다.
막장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종착역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는 행동하며 생각하며 세상을 바꿀 것이다.
그때까지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