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할인, 그 치명적 유혹

미국 항공산업을 일시에 무너뜨린 가격경쟁 전략, 무작정 뛰어들면 파멸로
자신과 경쟁사들의 한계비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보고 합리적인 대책 세워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볼 때마다 새로운 경영학 이슈를 보여주는 기업이 종종 있다. 블루클럽이 그랬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가치혁신으로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있는 미용실이라고 2주 전 소개했던 그 블루클럽을 다시 찾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문제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블루클럽의 커트 가격은 1998년 창사 이래 7년 동안 5천원 그대로다. 그동안 한국 소비자물가는 22%가 올랐는데 말이다. 자장면은 2천원에서 3천원으로, 500원이던 서울 시내 일반 버스요금은 800원으로 올랐다. 블루클럽 점장에게 얼른 물었다. 이래도 장사가 되느냐고. 푸념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어렵죠. 말씀도 마세요. 우리가 자리 잡은 다음에 미용실 사이에 가격 전쟁이 벌어졌어요. 요즘엔 1천원, 2천원에 커트해준다는 집도 나왔다니까요. 그러니 힘들더라도 값을 올릴 수가 없지요.”

최저가 전성시대, 할인의 마지노선은?

문득 블루클럽 창업 초기, 업계 죽이는 저가 정책이라며 목청 높이던 동네 미용실 주인이 떠올랐다. 툭하면 파산했다고 발표하는 미국 항공사들 생각도 났다. 수익성 악화로 고전 중인 한국 신문사들도 겹쳐졌다. 규모와 장소는 갖가지였지만 고생하는 이유가 모두 같았다. 문제는 요즘 할인점,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저가 신드롬’을 가져온, 가격경쟁(price competition) 전략이 가져온 암울한 결과다.

가격경쟁은 기업이 가격 인하를 통해 경쟁하는 전략이다. 이 전략의 비극은 보통 가격 결정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평균비용(average cost)이 가격인하의 마지노선이라는 생각이 대표적 오해다. 정상적으로 경쟁하는 기업이 매기는 가격의 ‘마지노선’은 한계비용(marginal cost)이다.

비용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흔히 원가라고 불리는 평균비용과 한계비용이다. 평균비용은 전체 비용의 단순평균이다. 컴퓨터 10대를 생산하는 데 1천만원이 들었다면, 평균비용은 100만원이다. 한계비용은 마지막 1대를 생산하기 위해 들어간 추가 비용이다. 컴퓨터 9대를 95만원 들여 공장에서 이미 생산하고 있는데 1대만 끼워서 추가 생산하는 데 5만원이 든다고 하면, 컴퓨터 생산의 평균비용은 10만원이지만 한계비용은 5만원이다.


△ 저가 항공사들이 미국 시장에 등장한 뒤 가격경쟁이 시작되면서 항공산업 전체가 흔들렸다. 마이애미 공항의 한 저가 항공사 카운터. (사진/ AP)

컴퓨터 1대의 한계비용이 5만원이라면, 1대에 5만원 이상만 받으면 당연히 남는 장사다. 10만원까지 받는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경쟁이 심하다면 5만원은 웃돈이라고 여기며 포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기업을 하는 사람들조차 가격 결정 요인을 착각한다. 그리고 그 착각이 수많은 기업들이 선뜻 가격경쟁에 나서게 하고 출혈경쟁의 함정으로 몰아넣는다. 경쟁사들이 아무리 가격을 낮춰도 평균비용 아래로는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이다.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는 한계비용이 매우 낮은 산업의 경우에, 섣불리 시작한 가격경쟁이 산업 전체를 무너뜨리기도 한다. 제품 하나를 더 파는 데 추가 비용이 별로 들지 않는 산업의 얘기다.

미용실의 경우를 보자. 미용실은 이미 임대료를 지불했다. 미용사 임금도 지급했고 빗과 가위도 준비되어 있다. 현재 하루 손님이 99명인데, 1명을 더 받는 데 드는 한계 비용은 얼마일까?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 그러니 마지막 손님에게는 단돈 100원만 받더라도 이익이다. 그래서 어느 한 미용실이 작심하고 가격을 내리기 시작해 본격적인 할인경쟁이 시작되면, 단돈 100원에 머리를 잘라주겠다고 나서는 미용실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블루클럽은 가치 혁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지만, 동시에 다른 경쟁자에게 가격경쟁의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오래 지켜진 암묵적 고가 카르텔이 깨지면서 출혈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한계비용 제로, 가격경쟁의 자살폭탄

이는 실제 미국 항공산업에서 일어난 일이다. 항공사가 1명의 승객을 비행기에 태우는 데 드는 한계비용도 0에 가깝다. 어차피 비행기는 정해진 일정대로 운행하게 되니까 말이다. 그래서 저가 항공사들이 미국 시장에 등장한 뒤, 대형사들까지 가격경쟁에 뛰어들면서 모두의 수익성이 악화했고 줄도산을 맞았다. 신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신문 1부 제작에는 인쇄비가 들지만, 거꾸로 광고수익도 들어온다. 두 가지를 합치면 1부 발행의 한계비용은 사실상 마이너스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 신문 구독자들에게 김치냉장고 같은 고가 경품이 주어졌던 이유가 여기 있다. 가격경쟁이 시작되자마자 모든 신문이 잠재적인 무가지가 돼버린 것이다.

가격경쟁은 신규 진입 기업이나 기술 혁신으로 비용 감축을 이뤄낸 기업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순식간에 시장점유율을 올릴 수 있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과 경쟁자들의 한계비용을 과학적으로 따져보지 않고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모두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자살폭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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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망가지지 않은

어느 의대 예과 2학년생들을 상대로 특강을 했다. 나를 부른 교수의 말마따나 “아직은 망가지지 않은 아이들”이다. 계급과 이념에 대해 풀어서 이야기했는데 간간히 웃음도 터트리며 다들 재미있어 한다. 게 중 몇몇은 눈빛이 초롱초롱한 게 잘 잡아주면 꽤 괜찮은 의사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의사 고시 합격률이 95%이니 의대에 들어오면 이미 의사인 셈인데, 의대생에 대한 어떤 사회적 대책이 필요하겠구나 싶다. ‘이미 망가진’ 그들의 선생들과 선배들의 작업에 대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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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5-11-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반가운 글입니다! 오늘 쓰신 글인가봐요 어제까진 아무것도 없었는데^^

마태우스 2005-11-2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의를 하기보다는 애들한테 질문도 하고 그러니까 안떠들고 집중하더이다. 물론 강의 내용이 처음 듣는 거라 호기심이 더 있었을 수도 있구요.

로드무비 2005-11-2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덩달아 반갑네요.^^

라주미힌 2005-11-23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을 위해서 퍼왔지용..
로드무비님/ 절 보고 반가워 하신 줄 알았어요.. ㅎㅎㅎ
 

기생과 매음녀, 그리고 페티시 클럽 여종업원

박노자-허동현 서신논쟁 3부 <5> 매매춘의 변천

허동현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사회 비판적인 발언을 할 때, 그 비판의 대상이 되는 현상에다가 '공화국'을 붙여 일언이폐지의 효과를 얻는 것은 유행이 아닙니까? '골프 공화국', '강남 공화국', '서울대 공화국'…. 비판받아야 할 대상들이 많아선지, 이러한 표현들도 수도 없이 많아 보입니다. 그런데 밤의 거리를 다녀보면 '매매춘 공화국'이라는 말이 왜 많이 쓰이지 않는지 궁금해집니다. '인육(人肉) 장사'에 사회가 이미 하도 익숙해져서 '당연지사'가 된 결과인지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안으로 봐도 성(性)이 주된 거래품 중 하나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부의 통계로 봐도 노무현 정권 시절의 대대적인 단속작전 이전까지 매매춘으로 생계유지하는 여성의 수는 적어도 약 33만 명으로 추산됩니다. 실질적인 숫자가 70만~100만 명 이상 됐다는 것은 관련의 시민단체의 추정이지요. 즉 한국의 성인 여성 15 명 중에서 적어도 1명 정도 매매춘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어떤 매매춘도 여성을 "천천히 죽인다"라고 할 정도로 심신을 피폐하게 하지만 포주들이 부당하게 조작한 빚을 무기로 여성의 인신 자유를 박탈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경제적 착취를 자행하는 사창가의 현실은 여성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로 불릴 만도 하지 않았을까요? 우리로 하여금 늘 소름 끼치게 하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들의 정치범 수용소 이야기지만 인권 유린의 규모로 봐서는 '노예 매매춘'을 하는 업소들을 '민영 수용소'로 부를 만도 하지 않을까요?
  
  물론 '다원적인 시민사회'쯤을 자칭하는 후기 자본주의적 사회에서는 전체 인구의 2% 가까이 '노예'나 '준(準)노예' 일종의 '예속 노동자'로 만드는 이 제도를 가만히 둘 리가 없었습니다. 2000년에 감금당하여 성매매를 강요당한 5명 여성을 비극적 죽음으로 몰고 간 군산 대명동 쉬파리 골목 사창가 화재 사건과, 2002년 14명의 현대판 '성노예'를 희생시킨 군산 개복동 화재 참사 등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비등한 여론에 힘입은 정부는 2004년에 성매매 방지법을 제정하고 성매매 근절 대책들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불금 채무 등을 무기 삼아 업주들이 오랫동안 여성들을 마음대로 혹사하고 폭행했던 그 음습한 곳에 드디어 법망이 닿아 약자에게 '구조'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은, 아마도 한국사상 역사적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쌍둥이'로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라온 '성산업'이라는 괴물이 한국 근현대사상 최초로 그 존재에 대한 어떤 중대한 위협을 느낀 셈입니다.
  
  그런데 청량리와 미아리, 완월동과 자갈마당, 신포동과 학성동, 이 수치스러운 이름들이 서울과 부산, 대구, 마산, 울산의 역사에서 급기야 사라진다는 것은 중도 우파 정권의 업적이라고 칩시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한편으로는 한국처럼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관료 체계를 배경으로 하는 정부는, 이익 단체들의 로비를 뿌리치고 자본 계급의 특수 부문 (예컨대 '포주' 계층)에 대한 대대적 '수술'을 강행할 만큼 '관료적 자율성' (bureaucratic autonomy : 필요할 때 자본 계급의 이익단체로부터 거리를 둘 만한 자율성 즉 공적 행정력)을 확보하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 근현대사에서 자본 계급이 정권을 탄생시켰다기보다는 특히 초기에 외세의 힘을 업은 정권이야말로 대자본을 '적산 불하', 특혜 금융 등의 방법으로 탄생시키고 관리, 감독할 만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한국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여론에 힘입은 정부가 집창촌에 경찰을 대대적으로 보내 엄격한 단속을 집행하는 광경은 별로 놀랍지 않지마는, 의식 있는 동유럽 사람에게는 놀라울 뿐만 아니라 부러울 것입니다. 업주의 상납을 '제2월급'쯤으로 아는 저쪽의 경찰 당국도, 여성의 몸으로 인한 외화벌이를 '성장 견인차'로 여기는-그리고 역시 업주와 '줄'이 닿아 있는 저쪽의 정치권도, 한나라당의 모 의원처럼 "성산업이 없으면 젊은 남자의 정력이 어떻게 분출되는가?"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여론을 왜곡시키는 저쪽의 매체도 성산업을 본격적으로 손볼 만한 '자율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저는 집창촌의 해체가 적어도 표피적으로 성공을 거둘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20~30년이 지나면 반라의 여성들을 상품처럼 전시하는 그 빨간 빛의 쇼 윈도우들이 '20세기의 옛날 현상'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미아리와 청량리의 지옥에서 공권력에 의해 '구출'된 여성들은 정말 인간다운 안락한 생활을 살 것인가요? 굳이 '기분 나쁜 소리'를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하게 의심이 가는 부분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한국의 중도 우파 정권이 비록 자본 계급의 특수 부문('포주' 계층)에게 제지를 당하지 않을 정도로 '관료적 자율성'을 향유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본가 계급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이고,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이윤율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를 신봉, 실시하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의 조건 하에서는 '지옥에서 구출된' 탈(脫)성매매 여성뿐만 아니고 서민층 전체는 점차 중산계층으로 상승할 희망을 잃고 저소득 고(高)불안의 상황에 허덕이게 되지 않습니까?
  
  상당수가 "취직의 길이 막막해서", "동생의 학비/부모님의 치료비가 급해서", "지방에서 마땅히 할 게 없어서 무작정 상경했는데,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은 이것밖에 없어서" '포주'들에게 착취를 당하게 된, 즉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버림 받은 이들에게 지금 정부가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약 1년 전의 여성부의 자료에 의하면, "그래픽운용기능사, 전산회계, 피부관리, 네일아트, 플로리스트(꽃집 창업), 간호조무사, 애견관리 등 직업훈련"을 실시할 예정이고, 창업 지원을 위해 1년 예산 14억 원을 책정해놓은 것이고, 그 훈련 과정에서 소득이 없는 탈성매매 여성에게 월 50만 원까지 지원비로 지급할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포주'의 마수를 벗어나려는 여성에게 사회가 도와주기는커녕 '포주'가 경찰에게 부탁할 경우 경찰이 '도주한 채무자'를 잡아주고 업주에게 돌려주었던 암흑의 과거보다 '지원'이 이루어진다는 그 자체가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국가로부터 법률적 지원을 받는 탈성매매 여성이 선불금 채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치더라도 (업주들의 교활한 '회계' 방법들을 생각하면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솔직하게 부모님의 치료비나 동생의 학비를 고사하고 혼자 한 몸으로 한 달에 50만 원으로 서울에서 살기가 과연 쉽습니까? 영세업체들이 무더기로 도산 당하는 자본의 거대화, 독점화 시대에는, 여태까지 해당 분야에서의 경험이 없었던 탈성매매 여성이 꽃집을 차렸다고 해도 그 생존 확률이 어느 정도 될 것입니까? 간호조무사의 초봉은 수도권은 100만~120만 원이고 지방은 많아야 70~80만 원 정도인데, 가족을 책임질 입장에 있는 여성이라면 그 돈을 가지고 과연 행복한 삶이 될 겁니까?
  
  즉 지금 정부가 계획하는 '탈성매매 지원'은 그 계획대로 잘 이루어진다 해도, 정부의 생각대로 '탈성매매에 성공한' 여성이 저임금과 지속적인 신분 불안에 노출돼 살아야 하는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하층 내지 최하층에 편입되게 돼 있는 겁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자신 내지 가족의 학비, 병원비 등이 급해진 여성이 다시 한번 성산업의 착취 구조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물론 집창촌이 점차 철거돼 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주로 인터넷 등을 매개로 하는 '정보기술 시대다운' 성매매일 것이고, 그러한 종류의 성매매를 경찰이 제대로 단속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결국 이번 중도 우파 정권의 성매매 관련 정책의 실제적인 내용과 영향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그것은 식민지 시대로부터 이어받은 '집창촌형' 성매매 산업의 공간적 해체와 동시에 공권력의 영향권을 벗어난 인터넷 등을 통한 '선진국형 성매매'로의 일종의 '이행'이지 진정한 '탈성매매'는 아닙니다. 명실상부한 탈성매매가 이루어지려면 성매매의 피해자들에게 중산층으로의 신분 상승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사회에서는 탈성매매 여성이든 하층의 어떤 구성원이든 이미 상향 사회이동이 막히고 만 것입니다. 옛날에 마을의 빈농들이 도시에 들어가서 노동자가 됐듯이, 지금 집창촌을 떠나는 여성들의 상당 부분이 탈성매매하는 대신에 '신형 성매매' 산업으로 들어갈 위험이 큽니다. 물론 법률이 엄격하게 집행되고 사회의 성적 풍경이 다양화된 만큼 이 '신형 성매매'도 과거와 달리 단순한 삽입 성교 중심주의를 떠나 '남성의 다양한 성적 판타지 실현'을–요즘의 일본 성산업처럼–지향할 확률이 큽니다. 예컨대 <스포츠한국> 2005년 5월 16일의 '변칙 성매매'에 대한 보도를 보시지요.
  
  "서울 강남역 인근에 문을 열었다는 한 '페티쉬 클럽'이 입소문을 타고 남성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성인커뮤니티에 올라온 경험담을 보면 성매매 특별법 이후 유행처럼 번진 이른바 '대딸방'(여대생이 자위행위를 해주는 곳이란 뜻의 은어)은 아닌 듯싶다. 국내 최초의 '페티쉬 클럽'이라는 I업소는 오히려 일본의 풍속업소인 '이메쿠라'를 한국화 시킨 인상이 짙다. 거실, 자취방, 공부방 분위기로 단장된 작은 방에는 소파와 테이블, 책상 등 평범한 가구 몇 개가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남자 손님이 방으로 안내되고 나면 정장 혹은 특정 유니폼을 입은 여성이 등장한다. 물론 이들은 대부분은 미니스커트 차림이고 스타킹을 신고 있다고 한다. 여성들 역시 페티쉬 마니아라고 하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방에서 마주 앉은 남녀는 적당히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성 취향을 확인한다. 남성들은 대개 '치마 속을 훔쳐보고 싶다' '스타킹 신은 다리를 만지고 싶다'는 욕망을 고백한다. 여성들 역시 '발을 빨아 달라'거나 '성기부분을 짓밟고 싶다'는 색다른 성적 욕망을 드러낸다고 한다.
  
  커플에 따라 가학과 피학적인 역할을 맡기도 한다. 서로의 욕구를 파악하고 나면 속칭 '플레이'에 들어가는데 직접적인 섹스는 없다고 한다. 치마 속을 훔쳐보고 싶은 남성이 있다면 파트너인 여성은 팬티가 보이도록 다리를 벌려주는 식이다. 대부분의 커플은 얌전한 행위에서 시작해 더 과격한 행위로 발전한다.
  
  남성 중 상당수는 스타킹을 찢거나 스타킹 신은 여성의 발을 입으로 애무하며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한다. 여성이 발로 남성의 성기를 애무해 주는 '풋잡'같은 서구의 성 행태도 이곳에서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주목 할 만한 점은 의외로 젊은 직장인이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성들이 여기에 열광하고 있다는 것이다.
  
  '플레이'가 절정에 이르면 서로 자위행위로 마지막 욕구를 채운다고 한다. 성매매 특별법을 교묘하게 피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삽입 성교가 아니기에 이 '변칙 성매매 업자'들을 처벌할 길이 없지만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내재해 있다는 것이 제 느낌입니다. 물론 이러한 산업에 선두를 서고 있는 일본의 업자들처럼 한국 업자들도 "여성 종업원들도 자신들의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니 정확한 의미의 성매매라기보다 성적 교환"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여성들의 욕망의 세계야 저로서 어떻게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들이 비록 과거와 같은 선불금 채무자, 즉 '준(準)노예'가 아니더라도 남성의 성 판타지를 실현시켜주고 금전적 대가를 받는, 그리고 그 대가 중에서 상당 부분을 업주에게 빼앗기는 피(被)착취자들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애당초에 가학적, 피학적 욕망이 존재했다 하더라도 그들이 이 일을 하면서 자신들의 주체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보다는 남성의 욕망을 발견하고, 심화시키고 대리 충족시키는 타율적인 역할에 머물러 있는 것이지요.
  
  그들이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의 세계에서 자신의 가장 은밀한 부분, 즉 성적 상상의 영역을, 돈을 가진 지배자적 남성을 위해 팔아야 하는, 비주체적이며 반(反)주체적인 입장에 있는 것이지요. 제가 두려워하는 것은, 한국에서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정착되면 될수록 이 사회가 돈이라는 무기로 자신의 가장 '엽기적인' 성적 욕구를 다 채울 수 있는 '만족 만점'의 부유하고 안정된 극소수의 고급 화이트 칼러 남성과, 돈을 받고 남의 성기를 밟아주어야 하는 하층 여성이라는 두 극단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일본 사회의 성 풍토를 보시면 제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금방 아실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는 주로 한국 성매매 산업의 현재, 그리고 그 신자유주의적인 재편의 전망을 다룬 것이었는데, 이제부터는 그 역사적 뿌리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량 산업으로 성장된 매매춘이 대다수의 근대 국가에서 번창하지만 우리 '매매춘 공화국'의 경우에는 그 규모(국내 총생산의 4,1%)나 가시성, 일반화의 정도는 유럽이나 미국을 능가하고 '매매춘의 제국' 일본의 수준에 더 가깝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에게 여러 형태의 매매춘의 이미지가 현대사의 여러 페이지들을 쉽게 연상시킨다는 것이겠지요.
  
  전쟁 과부들이 대량으로 사창가로 몰렸던 1950년대, '양공주'들이 "외화 벌이의 주역", "애국자"로 당국의 칭찬을 받고 일반인으로부터 "양놈의 걸레" 소리를 들었던 1960년대, 일본인들의 '기생관광'이 '민족적' 공분을 일으켰던 1970년대, 인신매매의 문제가 신문 지상에 공개되기 시작한 1980년대, 그리고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동남아 '기생 관광'의 주체가 되었던 1990년대…. 현실적인 차원에서는, 한국 공업화 자체도 그랬지만 성산업의 성장도 국가가 계속 주도, 관리해 온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1947년에 일제시대의 공창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고 1961년 11월에 군부 정권이 '윤락행위방지법'으로 여론을 무마시키고 자신들을 "불쌍한 윤락녀의 구제자"로 미화, 부각시켰지만, 또 한편으로는 미군이나 일본 등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외화벌이'형 매춘이 늘 국가의 보호와 장려를 받았으며 국가의 관리 기능까지 전제로 했습니다. '윤락'이 불법화된 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미군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국가가 정기적인 성병 검사를 하기 시작한 것이 아닙니까? 청량리와 미아리의 존재도, 사실상 관할 경찰서의 '이해'와 '협조'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공권력이 전지전능한 규율국가에서는 가능했겠습니까? 즉 2000년대 초까지의 한국의 '성산업화(性産業化)'도 어디까지나 '국가주도형'이라고 분류해야 할 듯합니다.
  
  담론적 차원에서는, '민족'과 '국가'가 신성시되는 상황에서는 성산업에 대해 애증이 엇갈릴 수밖에 없었지요. 예컨대 '민족'의 입장에서는 일본 관광객들이 한국 성매매 여성을 "돈으로 산다"는 것이 참기 어려운 모욕이었지만, '국가'의 입장에서는 '특수 관광'은 "애국적인 외화 획득 사업"이었습니다. 또는 '양공주'나 '일본인 기생 관광'의 이야기가 "민족적 수치"가 되는 반면, '우리'도 외국 여성의 성을 매매할 수 있게 된 1990년대의 풍요에 대한 "민족적 긍지"가 느껴지는 등, 매매춘의 여러 이미지들이 '민족'이라는 근대적 '상상의 공동체'의 집단적 기억 만들기에 아주 다양하게, 그리고 크게 기여합니다. 그런데 일본인을 상대로 하는 성매매여성을 "애국자"로 보든 "민족의 수치"로 보든 남성 주도적인 거대 담론에 여성이 부차적인 일부분이 되고 예속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즉 '국가'가 중요하느냐 '민족'이 중요하냐가 다를 수 있었지만 몸을 팔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구체적인 한 여성의 아픔이 중요시되는 것보다는 그 여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우리'의 테두리가 중요시되었던 겁니다. 집창촌 해체의 하나의 중요한 배경으로 "국제적 이미지 제고", "인신매매 국가 이미지 탈피"가 작용되는 오늘날에는, 그게 과연 크게 바뀌었는가요?
  
  성이 상품화돼도 그 상징성은 어느 상품보다 더 깊기에 성매매의 변천이 역사상의 계승과 두절을 상징하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사실, 성매매 풍토의 엄청난 변화야말로 한국 전통사와 근대사 사이의 두절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두절'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반박할 것 같습니다. 기둥서방(妓夫, 포주라고도 불렀음)에게 손님으로부터 받은 화채를 다 주어야 하고, 기둥서방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속량(贖良)'의 값으로 큰돈을 물어주어야 했던 구한말의 유부기(有夫妓)의 생활을, 그 때도 '노예 매춘'이라고 불렀지요. '포주', '유곽(遊廓)', '화류계(花柳界)' 같은 단어들을, 삼패(三牌)기생들의 매음업과 관련해서 100년 전에 이미 썼던 것이지요. 즉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신 자유의 박탈이나 경제적 착취는–그 규모는 물론 달랐지만–이미 그 때도 행해졌습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일제 시대의 지식인들의 시각으로는, 근대의 매춘과 전근대적 기생 문화는 서로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그 당시 매춘업 상태에 대한 본격적인 탐구의 시도로 불러질 만한 익명의 논설 '경성의 화류계"'(<개벽>, 제48호, 1924년06월, 95-100쪽)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은 관심을 끕니다.
  
  "어제의 기생은 귀족적이나 오늘의 기생은 평민적이다. 어제의 기생은 비록 천한 일을 할지라도 예의염치를 숭상히 여기더니 오늘의 기생은 오로지 금전을 숭배한다. 금전만 주는 이상 예의도 염치도 다 관심 없다. '노래를 팔아도 성을 팔지 않는다(賣唱 不賣淫)'는 말 자체가 이미 없어졌다. 순연히 상품화된 것이다. 속류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도 고상한 시, 시조, 가사를 알지 못하고, 장구나 꽹과리를 잘 만질지언정 거문고, 가야금 줄도 고를 줄 아는 이들은 적다. 반(半)벙어리 일본 노래를 들을 수 있어도 옛날 황진이의 시 같은 것을 볼 수 없다. (…) 어찌 기생의 타락이라 말하지 아니할까?"
  
  이 주장을, 한성 토박이의 옛날에 대한 단순한 향수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전통 시대의 기생의 위상과 근대 매음녀의 위치의 차이를 아주 잘 표현한 듯합니다. 속박과 착취라는 공통점이 있고 늘 남성, 그리고 남성들의 국가의 욕구가 중심에 서 있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전통 시대의 기생 (특히 고급 연예인으로 인식됐던 일패기생)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성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자존심과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문화의 전수자였습니다. 황진이의 시작(詩作)을 다들 알지만, 변방 함경도 경성(鏡城) 출신이라 해도 홍랑 (洪娘, 16세기)과 같은 무명의 기생이 우리의 심금을 지금도 울리는 "묏버들 가지 가려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쇼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나라고 여기쇼서"와 같은 그 애절한 아름다움이 뛰어난 작품을 쓰지 않았던가요? 물론 기생과 시를 교환하고 풍류를 즐기는 것도, 결국 남성 본위의 일종의 "감정적 이용/착취"에 해당될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도 적어도 일패 기생의 경우에는, 청량리, 미아리의 현대판 '성노예'보다는 훨씬 더 많은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듯합니다. 유교 경전, 서화, 행의(行儀)에 능숙했던 전통 시대의 기생들은, 고급 문화의 체화의 수준에서 사대부 정도로 꼽히는 문화의 주체들이었지요. 그런데 일본식 공창 제도가 도입돼 일본인이나 송병준과 같은 거물 친일파들이 뒷배 봐주는 '권번(券番)' 조직들이 유곽의 주인이 된 뒤에 '귀족적이었던' 기생은 하나의 돈벌이 기계, 성욕과 위생 관리와 계몽주의자들의 규탄의 대상물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시작(詩作), 가창, 가무의 고급 기생 문화가 사라져버리고 여성의 몸이 자본의 확대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지금도 근본적으로 그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요. 어떻게 보면 봉건적인 인권 박탈이 그대로 존속된 채 고급 문화를 말살시키고 인간의 몸과 마음을 도구화시킨 근대적 유곽이, 일본과 한국이 대표하는 보수적인 권위주의적 근대화의 모습을 가장 잘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요?
  
  구름이 낀 오슬로에서 박노자 드림.
  
  도움 받은 책들

  
  가와무라 미나토 (川村湊) 저/유재순 역, <기생: 말하는 꽃>, 소담출판사, 2002
  박종성, <백정과 기생: 조선천민사의 두 얼굴>, 서울대출판부, 2003
  문정희 편, <기생시집>, 해냄, 2000.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 민족, 섹슈얼리티, 병리학>, 책세상, 2001.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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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노예인가 성노동자인가?

박노자-허동현 서신논쟁 3부<6> 한 세기 전과 오늘 매춘 여성의 꿈

"강산은 좋은데
이쁜 다리들은
털난 딸라들이
다 자셔놔서 없다." (신동엽, 「발」(『현대문학』1966.3)
  
  1960년대 군사독재에 맞선 반외세·민족 자주를 꿈꾼 저항시인 신동엽은 "털난 딸라"들에게 순결을 앗긴 이 땅의 여성에게서 민족의 종속을 보았습니다. 반외세·민족자주를 꿈꾼 시인에게는 민족이란 거대 담론이 지배적 가치였기에 그의 눈에 여성은 종속적인 존재로 비칠 뿐이었습니다. 반독재·반외세 투쟁의 구호가 계속 울려 퍼지던 1980년대까지도 남성들에게 여성은 주체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누이"이자 "마누라"인 이 땅의 여성들이 "관광기생"과 "양공주"로 외세와 자본과 국가권력에 유린당하도록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던 시인은 자신의 거세된 남성성을 한탄하곤 했습니다. 아래 공광규 시인의 시에서 가부장적 남성 우월의식의 냄새가 느껴진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해서 제국주의 성기가
  누이들의 속살 팍팍 헤집는 신음이
  황홀한 창으로 나와 호수에 빠지는 불빛 보며
  호변 가로등 밑을
  다리 이쁜 여자와 서정시로 껌 씹으며 걸어가다
  이 여자(장차 내 마누라가 될 여자)를
  당당한 중진국 애국 지식인 양심으로서
  외화수입을 위해 옷 벗겨 관광기생으로
  나라에 바쳐볼까 하지만
  
  글쎄
  그럴 때마다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지역 어느 대학 남자 총학생회장에게 보냈다던
  썩은 고구마(어떤 놈은 고추 또는 쏘세지라고도 한다)와 면도칼(어떤 놈은 가위라고도 하고)을 생각하며
  섬뜩섬뜩 가운데 다리를 움켜쥔다
  
  누이들의 몸값으로
  GNP 계산하는 나라에
  세 개의 다리로 서 있는
  불쌍한 나여
  내 나라의 여자도 못 지키는."
  (공광규, 「대학일기 · 4」, 『대학일기』, 실천문학사, 1987)
  
  근대 국민국가에서 여성은 국민이 아니라 비(非)국민이었습니다. 지난 시절 "성공"한 국민국가, 제국(帝國)의 여인들도 군인으로서 남성을 낳고 기르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 현모양처일 뿐이었습니다. 반면 식민지 조선의 여성은 자국의 남성 가부장권과 제국군대의 성 착취라는 이중의 수난을 감수해야 할 피침략 민족 구성원 중 가장 약한 존재였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주변부에 머문 한국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성기"들이 들고 온 달러나 엔과 교환되는 성 노리개이자 "위축된 성기"인 자국 남성의 가부장권 앞에 여전히 무릎 꿇고 있던 소유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왜 신동엽과 공광규 같은 남성 시인들은 외국인에게 유린당한 외국인 상대 매춘여성들의 존재에 절규하면서도 내국인 상대 매춘 여성의 아픔을 주목하지 못했을까요? 이들의 시를 흔들리는 가부장권, 상처받은 남성성에 대한 자기 연민의 넋두리라고 한다면 지나친 논리 비약일까요?
  
  군사독재의 긴 터널을 넘어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여성들도 더 이상 남성들의 "인형"으로 머물려 하지 않았습니다. 매매춘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이자 남성들이 저지르는 비윤리적 범죄행위로 규정한 여성 페미니스트들의 노력으로 2004년 유사 성행위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매매춘을 불법으로 규정해 금지하는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었지요. 여성 여권 운동가들에게 "성매매" 여성은 외세와 그에 야합한 부당한 국가권력과 외국과 자국 남성 모두에게 착취당하고 짓밟힌 희생자로서 구출되어야 할 대상이었으며, "성매매"란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산물로 법으로 막을 수 있는 범죄로 보았습니다. 아래 20여 개의 "성매매" 근절운동 단체들의 연합체로 1986년에 세워진 "한소리회"가 만든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의 시행령·시행규칙 제정에 대한 의견서"의 서두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올해는 일제에 의해 공창제가 시행된 지 꼭 1백 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백 년 동안 우리는 가난을 이유로, 순결한 대다수 여성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심지어는 외화를 벌어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상품화할 수 있고 따라서 여성의 몸도 사고팔 수 있는 것이라는 이유 등을 들어, 가난에 찌들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들을 이 사회의 가장 끝으로 내몰았고 그들의 몸을 이용하고 착취해 먹고사는 수많은 불필요한 사람들과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잔인하고 착취적인 성매매는 즐거움을 위한 또 하나의 서비스업으로, 일정 부분 사회에 순기능을 하는 필요악으로 인식되었고 성매매 피해여성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이 사회의 모든 더러움을 받아내는 자발적 희생양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가난과 차별에 의한 구조적 희생양이며 이들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성매매를 방관하는 것은 사회를 바로 이끌어야 할 사람들의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매매 근절과 성매매 피해여성들의 재활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착취적이며 인권침해적인 성산업의 고리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며 피해여성들이 그 고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옥죄고 있는 포주와 소개업자 등에 대한 엄정하고 준엄한 처벌과, 성매매 피해여성에 대한 사회 적응 훈련과 아울러 이들이 스스로 벗어나기 힘든 차별과 빈곤의 고리를 끊어주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끊임없이 악의적인 필요를 만들어내 성매매를 방조하고 조장하는 이 사회의 구조와 의식에 대한 변화와 구조적 범죄에 편승해 다른 사람의 처절한 빈곤과 차별을 짓밟고 스스로의 즐거움만을 추구하는 성구매자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교정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25일 서울시 미아리 자립지지공동체 소속 여성단체 회원 등 여권운동가들과 춘천시 근화동 인근 성매매 집결지인 속칭 '난초촌'의 성매매 여성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는 신문 보도와 올해 6월 만들어진 "전국 성노동자 연대(전성노련)"과 9월에 평택지역 매춘 여성들이 따로 만든 "민주 성노동자연대(민성노련)"의 작은 외침에 귀를 막기 어렵더군요.
  
  이들은 자신들은 강제적인 인신매매에 의해 착취되는 "성노예"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으로 국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이들 매춘 여성들은 심지어 여권운동가들을 자신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생존권을 위협하는 적대세력으로 보더군요. "전국성노동자 연대" 결성시에 내 놓은 "출범 선언문"을 보시지요.
  
  "한반도에서 역사가 시작된 이래 다양한 이름의 성노동자들이 무수히 존재했지만, 오늘 한국의 성매매 특별법 경우처럼 성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사례는 결코 없었다. 더욱이 성매매 금지주의라는 반인권적인 정책이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노무현 정권에 와서 강력히 시행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 (…) 이 모든 기만적인 정책은 어디에서부터 온 것인가. 그 주인공들은 바로 한국의 여성계 권력자들이다. (…) 이제 여성계 권력자들은 성매매 특별법을 통해 우리 성노동자들을 모두 '성매매 피해여성'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이는 말도 안되는 무지한 얘기다. 성매매 피해여성이라는 개념은 성(性)과 관련한 인신매매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스스로 일하는 성노동자다. 누가 우리를 인신매매 했다는 말인가. 국제사회에서도 '인신매매'와 '성노동'은 엄격하게 구분하건만 한국에서는 배웠다는 사회지도층들이 그 정도 분별력도 없단 말인가. (…)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현행 성매매 특별법 아래서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여기서 우리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단속과 오명과 낙인으로 생존권을 잃고 극도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성노동자들은 엄연히 인간이다. 그리고 노동자고 비정규직이다. 더 이상 이 억압의 굴레에 승복할 수 없다. 우리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자는 우리를 옥죄는 그 지긋지긋한 "가난"을 향해 돌을 던지기 바란다. 우리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성노동을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들이 판단해서 적절한 시점이 되면 탈 성노동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이는 여성계 권력이 법을 매개로 위계에 의해 강요되어질 사안이 아닌 것이다."
  
  박 선생님께서는 성매매 여성들을 "성노예"로 보고,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 중심사회의 구조적 산물이자 희생자로 보는 점에서, 성매매 문제를 보는 시각이 "성매매 방지법"을 시행한 페미니스트들과 비슷한 입장이신 것 같습니다. 허나 저는 선각한 이의 의무로 깨닫지 못한 우중을 계몽하려는 책임을 스스로 떠맡은 페미니스트들의 담론이 깨우쳐 주어야 할 대상을 낮추어 보는 근대 계몽주의자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그들은 여권의 신화화를 통해 여권운동가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매춘 여성을 그 대상으로 나누는 잘못을 범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들의 오류를 지적하는 여성민우회 국제위원인 이성숙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열린 생각에 공감합니다(『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 2002).
  
  "페미니스트 매매춘 정치 이론가들의 가장 큰 오류는 당사자인 매춘 여성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페미니스트들은 섹스 노동자들을 가리켜 여성의 육체를 시장에 내다파는 성노예라고 주장하는 반면, 매춘 여성들은 매춘을 성적 서비스 또는 성적인 친밀성을 판매하는 성노동이라고 주장한다. 매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매매춘 사회와 문화에서 벗어나 있는 제3의 집단인 페미니스트 학자나 이론가들이 남성 주류문화나 기득권에서 정해놓은 개념과 논의들을 답습하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주의를 극복하려 하면서 남성 주류문화의 담론을 그대로 답습해 매춘여성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교화대상으로 낮추어 보고 있다는 점에서 매춘 여성들을 선도하겠다고 나선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시절 현모양처를 강요하던 남성 우월주의자들이나, 약자인 여성을 외세에 의해 순결을 뺐긴 무기력한 존재로 타자화함으로써 주눅 든 남성성의 열등감을 드러낸 권위주의 시절 남성 시인들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또한 저는 페미니스트들이 매매춘의 두 당사자 중 여성의 몸을 돈을 주고 산 남성들만을 범법자로 규정하는 것을 비판해 "매춘 여성을 제외한 남성들을 범법자로 규정하는 역차별은 남녀 평등사회를 요구하는 페미니즘을 여성 지상주의로 오도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이성숙 선생님의 지적에 생각을 같이 합니다.
  
  "여성가족부"라는 정부부서의 영어 이름은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더군요. 그러나 "양성평등과 가족부"로 번역되는 부서명이 훨씬 더 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우리 페미니스트들이 여성 지상주의자라는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세계 기준의 보편성을 보이는 영문명에 준하는 양성평등부로 부서명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저는 양성평등의 사회를 지향하는 이성숙 선생님의 다음과 같은 제안을 마음을 열고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성 중심의 사유체계를 재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듯이, 또한 그러한 능력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은 매매춘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담론을 창출해야 한다. 적어도 매매춘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므로 추방되어야 한다는 기존의 논의 틀에서 벗어나 광범위하고 유연한 페미니스트 매매춘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건전한 매매춘 형성에 필요한 페미니스트 이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매춘 여성들이 성병 감염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남성 고객의 성기를 검사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 남성 고객의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의 강조, 매춘 여성은 성노동자라는 개념 인식, 그리고 섹슈얼리티의 다양성 강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매매춘 이론은 남녀 불평등을 창출하고 견고하게 만든 서구와 남성 중심의 사유체계에 대한 거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 현재 우리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매매춘 그 자체가 아니라, 매매춘을 바라보는 우리의 적대적인 태도이다. 건전한 매매춘을 형성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적대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상을 인정하는 열린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되면 매춘 여성에게 가해지는 여러 가지 폭행과 인권 유린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매매춘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이 완전히 다른 범죄 행위가 될 것이다."
  
  자! 그러면 매매춘 문제에 대한 박 선생님의 생각과 제 생각이 다른 지점 몇몇을 짚어 봅시다. 박 선생님은 조선시대의 기생은 "단순한 성적인 대상물이 아니라 자존심과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문화의 전수자"로서 "사대부에 버금가는 문화의 주체"였던 반면 일본식 공창 제도가 도입된 일제하 기생은 "돈벌이 기계"이자 "자본 확대의 재생산 도구"에 지나지 않는 비천한 존재로 전락했기 때문에 이러한 매매춘의 변천이 "전통과의 두절"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파악합니다. 따라서 박 선생님은 오늘 한국의 매매춘은 일본의 공창제도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보며, 그 유산인 오늘의 매매춘은 근대국가 특히 자본주의 국가들이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병폐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통시대의 기생이 사대부에 필적하는 고급문화의 주체였다는 데 생각을 달리합니다. 몇몇 기생들이 남성 양반들의 지배구조를 조롱하는 시조를 남겼다 해도 그녀들은 사회적 천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당시 기생들은 사대부의 "말귀를 알아듣는 꽃"이라는 의미인 해어화(解語花)로, "누구라도 꺾을 수 있는 길가의 버들과 담장 밑의 꽃"이란 뜻인 노류장화(路柳墻花)로 불린 것이지요.
  
  일례로 성종 임금 때 명기 소춘풍(笑春風)은 임금을 모신 연회석상에서 문반을 치켜올린 시조로 무관의 노여움을 사고 다시 이를 풀어주기 위한 시조로 문관의 핀잔을 듣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맞아 곤혹스런 자신의 처지를 춘추전국 시대 강국 제(齊)와 초(楚) 사이에 끼어 있던 약소국 등(滕)나라의 입장에 비겨 "두어라 누군들 섬기면 임금이 아니겠는가 제나라도 섬기고 초나라도 섬기리라"고 노래하는 기지로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몰락과 함께 양반은 제3인칭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이 양반이… 저 양반이…"하며 시비를 다툴 만큼 양반의 권위가 실추된 일제시대에 "개쌍놈의 아들이라도 황금만 가졌으면 일류 명기를 하루 밤에 다 데리고 놀 수 있게 된 기생의 민중화" 시대가 열렸고, 이러한 세태는 근대주의자들의 눈에 기생은 "노예매매제의 유물"이자 "가정의 파괴자"요 "국민 원력의 소모자"로 철폐되어야 할 "규탄의 대상물"로 비쳐졌지요( 한청산, 「기생철폐론」, 『동광』1931. 12).
  
  박 교수님 말씀대로 기생들은 "보수적인 권위주의적 근대화"에 소리 없이 짓밟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희생자이며. 근대의 매매춘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병폐로 볼 수 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인류 역사의 개시와 함께 시작된 매매춘은 전통시대는 물론 근대 자본주의 국가만이 아니라 사회주의 체제를 갖고 있던 나라에서도 성행하였기에, 매매춘의 존재를 경제적 측면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 박 선생님은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하층 여성들이 주로 매매춘에 나서며,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설사 그녀들이 "탈성매매에 성공"한다 해도 최하층 신분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시는군요. 그런데 저는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부유하고 안정된 극소수의 고급 화이트 칼러 남성들"이 "돈을 받고 남의 성기를 밟아 주어야 하는 하층여성"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심화될 것이라고 본 박 선생님의 진단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가난한 빈곤층 여성들은 모두 매춘부가 되는 것이 아니듯, 박 선생님도 지적한 것처럼 요즘 유행하는 "페티쉬 클럽" "대딸방"의 종업원이 대학생이라면 그녀들을 하층민이라고 볼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실증적인 자료에 의하면 부르주아라 할 수 있는 화이트 칼라 남성들은 교육받은 중간계층 출신의 고급 콜걸을 찾고 오히려 노동 계급의 남성들이 하층민 출신 매춘여성의 성적 서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사실 집창촌을 벗어나 인터넷을 매개로 확산되는 신종 성매매 산업의 주역들은 교육받은 중산층 출신 여성들이 대다수인 것이 오늘 우리 사회의 현실입니다. 또한 호스트바와 남창의 존재도 매매춘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라고 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생각에 반하는 사회현상이지요. 제 귀에는 매매춘에 대한 박 선생님의 비평은 매매춘 자체 보다 어쩌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저는 예나 지금이나 하층민 출신 매춘 여성을 계몽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것에 반대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매춘 여성들이 성노동자이자 시민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으려하듯, 한 세기 전 이 땅의 매춘 여성들도 남성 지배사회와 식민지라는 이중의 질곡 아래에서도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낸 근대 국가 건설을 염원한 국민의 한 사람이자 남녀 동권 운동의 선구였으며, 나아가 대중문화 건설의 새로운 주체로 거듭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들이 국민의 일원이 되려 했음은 국망을 몇 달 앞둔 1910년 5월 대구 기생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학업 발흥과 군사 양성" 둘 중 무엇을 먼저 해야 하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려 했다는 『대한매일신보』(1910. 5. 31)의 보도에서, 그리고 거족적인 민족운동인 3·1운동에 수원·해주·진주·통영 등지의 기생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한 역사적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1930년대 카페의 여급으로 진화한 기생의 후예들은 조선청년들의 가슴 속에 독립 사상을 불질러 준 "불령선인(不逞鮮人 : 독립운동을 하는 불온한 조선인)"이자 "불령스타"로 경찰의 감시대상이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또한 그녀들은 "마음을 파는 신사들보다 살을 파는 기생생활이 못하지 않다"는 자기 정체성을 갖고 "여성의 인간성을 제약하여 남성들의 완구, 씨(받이)통을 만드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에 반항의 기치를 높이 든 주체적 인간들이었습니다(화중선, 「기생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시사평론』, 1923. 3).
  
  이러한 각성은 몇몇 기생들에 그친 것이 아니라 는 점은 "우리도 눈을 떴습니다. 우리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사회적으로 평등적으로 살아보겠다는 부르짖음! 그의 첫 소리가 『장한(長恨)』이란 우리의 기관잡지로 인하야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고 한 기생 김채봉의 「첫소리」(『장한』1, 1928, 1.)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매춘여성이 성산업에 종사하는 성노동자이자 시민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길 꿈꾸듯, 민족과 국가가 최우선 가치이던 한 세기 전 시절 이 땅의 매춘 여성들도 민족과 국가의 동등한 일원이길 꿈꾸었던 것이지요.
  
  어찌 보면, "일본 제국의 온갖 판도와 아시아의 문명도시 어느 곳이든 다 있는 댄스홀"을 서울에도 허용할 것을 촉구한(「경성에 댄스홀을 허하라」,『삼천리』, 1937. 1) 기생 오은희·최옥진·박금도는 그들과 연명으로 글을 쓴 끽다점 "비너스"의 마담 복혜숙, 바 "멕시코"의 여급 김은희, 그리고 영화배우 오도실과 최선화와 함께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 나간 당당한 주체였다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시적으로 볼 때, 일제하 기생들의 움직임도 대중사회의 새로운 문화주체로 거듭 나려 한 신여성들과 그 궤를 같이 합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주체적 문화창조 노력이 모두 모여 오늘의 대중문화라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매춘 여성을 성노예로 보아 이들을 구제하려는 사명감을 갖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나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며 인권과 생존권 찾기에 나선 매춘 여성이나 앞으로 남녀 양성 동권 사회가 도래하길 꿈꾸는 데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소망하는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힘 있는 쪽에서 허리를 숙여 눈높이를 같이해 매춘 여성들의 작고 낮지만 강한 외침을 듣고자 해야 하며, 그렇게 할 때 인류 역사가 열린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매춘 문제 해결을 위한 보다 나은 사회적 처방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도움이 된 책

  
  이경민, 『기생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사진아카이브연구소, 2005.
  이성숙, 『매매춘과 페미니즘, 새로운 담론을 위하여』, 책세상, 2002.
  후지메 유키 저, 김경자 · 윤경원 역, 『성의 역사학--근대국가는 성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삼인, 2004.
  전성노련 카폐 http://cafe.daum.net/uavenus
  민성노련 카폐 http://cafe.daum.net/gksdudus
  성매매 피해여성 자활지원을 위한 다시함께 센타 홈페이지 http://www.dasi.or.kr/

   
 
  허동현/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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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승주나무 > 기형도 내 방식대로 보기
기형도 전집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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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시 연구
-<희미함>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서론


기형도는 암울하고 부정적인 시세계를 갖고 있는 시인이다.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며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상징적인 시는 「나쁘게 말하다」일 것이다.



어둠 속에서 몇 개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렸다
어떤 그림자는 캄캄한 벽에 붙어 있었다
눈치챈 차량들이 서둘러 불을 껐다
건물들마다 순식간에 문이 잠겼다
멈칫했다, 석유 냄새가 터졌다
가늘고 길쭉한 금속을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렸다
검은 잎들이 흘끔거리며 굴러갔다
손과 발이 빠르게 이동했다
담뱃불이 반짝했다, 골목으로 들어오던 행인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저들은 왜 밤마다 어둠 속에 모여 있는가
저 청년들의 욕망은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의 쾌락은 왜 같은 종류인가
「나쁘게 말하다」 전문


필자는 기형도를 관찰하면서 굉장한 답답함을 느꼈다. 그 느낌이 어디서 오는지 고심하던 중 기형도에게 결여된 것처럼 보이는 특징을 보게 되었다. 동양의 시인이면서도 철저히 배제된 동양적 성향이다. 마치 메모나 수기를 적듯이 써 내려가는 문체와 사상은 서구적 허무주의·비관주의와 닮아 있고, 뿐만 그 극단인 죽음에 밀착되어 있다. 그래서 김현은 '누가 기형도를 따라 다시 그 길을 갈까봐 겁이 난'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안정효는 '이제 그의 몸은 냉각된 얼음으로 꽉 차버린 죽음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고 말하며 '죽음이 살다 간 자리'라고 덧붙이고 있으며, 그의 죽음을 시의 마침표가 되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시인의 슬픈 운명이 시의 운명까지도 좌우하는 것이 아니란 점에서 옳지 않다. 문관규는 「植木祭」를 분석하면서 유년 시대의 회상을 통하여 하강의 이미지를 드러내 보이다가, 그것과 결별하고 수직 상승의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고 論究하고 있으며 이 때의 수직 상승의 이미지는 '통과제의를 겪는 시적 화자의 강한 의지를 표상하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때 유년 시절의 회상, 혹은 결별의 이미지는 기형도가 가지고 있는 <여행, 방랑>의 이미지와 한 축을 이루고 있다.
上記한 몇몇 논자가 보여주듯이 기형도는 비관주의의 극단을 추구하다가 생을 마감한 시인이었던가 하는 의문이 필자가 기형도를 이야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의문 속에서 <희미함>의 이미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 그것은 물론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대체로 절망적인 세계에 대한 작가의 觀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에 필자는 <희미함>의 이미지를 <떠남과 기다림>과 <유년·회상>이라는 이미지와 연관지어서 서술하고자 한다.


본론


1. 대체적인 세계의 색깔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기형도는 세계를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주도하고 있다고 보고, 그 안에서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빛의 분위기가 항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항쟁은 실로 아슬아슬한 형상이다. 기형도의 생각처럼 우리의 생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書籍」)이다. 그런데 기형도가 생각하는 생은 어두운 페이지가 전부일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배후에 드러나는 희미한 빛을 위해서 기형도는 성실하게 어둡고 음울한 세계를 그렸다.



노래는 침묵이 없으면 날 수 없는 가냘픈 새이다
-탈레스


이렇듯 시인은 <가냘픈 새>를 보기 위해서 침묵을 끈질기게 추구했던 것이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소리의 뼈」 중에서


침묵의 형태는 죽음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죽음은 `생명적인 것까지도 함축한다. 때문에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안개」)이 걸려 있기도 하고, '낮은 지붕들 사이에 끼인/ 하늘은 딱딱한 널빤지처럼'(「백야」)아무런 웅장함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러나 `생명체는 `생명체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기억을 회상하며 그리움과 기다림을 가지고 있는데, 그 때 `생명체는 생명을 얻게 되며 죽음과 생명의 색깔이 중첩하게 된다. 때문에 기형도에게 죽음이란 '가면'을 벗은 삶인 것'(「겨울·눈·나무·숲」)이다.



어두운 차창밖에는 공중에 뜬 생선 가시처럼
놀란 듯 새하얗게 서 있는 겨울 나무들.
한때 새들을 날려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鳥致院」 중에서

그러나 생명에 대한 그리움은 위태롭다. 죽음과 침묵과 무너짐은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한번 꽂히면 김도, 어떤 생각도, 그도 이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김은,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나는 블라인드를 튼튼히 내렸었다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다, 예정된 모든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오후 4시의 희망」 중에서


대개는 이 <무너짐>의 포로가 되어 승복하지 않을 수 없다. <비탄, 불안, 증오>의 감정을 드러내면서.

-<비탄>의 정서-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여행자」 중에서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오래된 書籍」 중에서
진눈깨비 쏟아진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나는 불행하다
이런 것은 아니었다
「진눈깨비」 중에서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 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중에서
내 苦痛의 비는 어느 날 그칠 것인가.
「孤獨의 깊이」 중에서


-<증오>의 정서-


분노 없이 살 수 없는 이 세상
「비가」 중에서
나는 인생을 증오한다
「장밋빛 인생」 중에서
그대도 알 거야
노을이나 눈[雪] 욕설
바람 부는 것
「어느 날」 중에서
그러나 부러지지 않고 죽어 있는 날렵한 가지들은 추악하다
「노인들 중에서」


-<불안>의 정서-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대학 시절」 중에서
내가 죽으면
내 이름을 위하여 빈 가지가 흔들리면
네 울음 섞이어 긴 밤을 잠들 수 있을까
「가을에」 중에서
쉽게 잠이 오지 않는 축축한 의식 속으로
실내등의 어두운 불빛들은 잠깐씩 꺼지곤 하였다.
「鳥致院」 중에서

이러한 감정들과 어둠, 죽음이 서로 격렬히 엉키면서 기형도의 시는 차라리 처절한 고통의 현장이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 시인이 말하는 기형도의 전모가 아니라 전초전일 뿐이다.

2. <희미함>의 이미지

기형도의 시에서 익숙하게 만나게 되는 이미지는 <弱視>, <간유리> 등의 시어로 대표되는 <희미함>이다. 그것은 上記한 것처럼, 세계가 희망의 가능성을 워낙 조금밖에 보여 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의 눈과 귀는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약시>의 눈이나, <간유리>라는 매개를 통해서 볼 수밖에 없다.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어느 푸른 저녁」 중에서


그렇기 때문에 항상 불안이 따라다니고, <예언, 환상, 동화, 선문답>의 분위기들이 기형도의 시들을 장식한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이며, 자연과는 달리 세상을 살아가고 바라보는 인간의 天稟인 것이다. 즉,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길 위에서 중얼거리다」)할 수밖에 없는 숙명인 까닭에 <그리움>은 耳目口鼻나 四肢처럼 나를 대변하는 특성인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가는 비 온다」)며, 보들레르式으로 표현한다면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사람만이 진정한 여행자'(『꿈꾸는 알바트로스』)이다. 그러한 희미한 인간 조건 속에서 희미한 희망과 생명은 조금씩 움트기 시작한다.


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靈魂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窓門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短篇의 잠 속에서 끼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바람은 그대 쪽으로」 중에서


정채봉의 동화에서는, 인생이 고통 속의 강행군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한 딸이 아버지에게 '왜 삶에는 비오는 날이 이토록 많은가요?' 하고 묻는다. 아버지는 '인생에 햇빛만 비추면 사막이 된다'고 대답을 한다. 반대로 인생에 비만 내린다면 햇빛을 잊어버리는 죽은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그 안에 버티고 있는 中庸이란 빛과 어둠이 반반씩 섞여 있는 어둠침침한 황혼이 아니라, 몸 속에 새벽을 품고도 쉽사리 여명을 내주지 않으려는 칠흑 같은 밤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 어둠 안에 무한한 빛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잠시 후에 내릴 여명이 있더라도, 영원한 어둠으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 빛이 내리기 전에 이미 삶의 거의 전부를 포기하고 마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여기서 <믿음>의 문제가 생긴다. 그 <믿음> 역시 인간의 아슬아슬하고 불안한 天稟을 타고났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희미하지만, 그 자체로 생명을 갖고 있다.


이미 대지의 맛에 익숙해진 나뭇잎들은
내 초라한 위기의 발목 근처를 어지럽게 떨어진다
오오, 그리운 생각들이란 얼마나 죽음의 편에 서 있는가
「10월」 중에서


그 믿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모진 대가가 필요하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의 강렬한 확신, 죽음도 비웃을 정도의 담력과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 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가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갇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 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전문


시의 초반부의 달의 모습은 전에 언급했던 非생명체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뒤에 보이는 달의 모습은 <귀>로 형용된다. 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생한 생명의 한 근간을 이루며 인간과 세계를 연결시킨다. 이렇게 非생명체에서 생명의 즙액으로 化하기 위해서는 고드름 같은 <사나운 영혼>이 필요하다. 이 때의 사나운 영혼은 모순을 몸으로 극복하여 <확신의 즙액>을 가슴속에 고이 담고 있어야 하며, <밤의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기꺼이 매달려 있을 정도로 세상을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나운 모습을 기형도는 순간을 향유하다 사라지는 <고드름>에서 발견한다. 그나마 <고드름>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더 나아가 그것을 신성과 신비가 깃든 환상의 세계로 표현하기도 한다.


저녁노을이 지면
神들의 商店엔 하나둘 불이 켜지고
농부들은 작은 당나귀들과 함께
城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성벽은 울창한 숲으로 된 것이어서
누구나 寺院을 통과하는 구름 혹은
조용한 공기들이 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들어갈 수 없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그 城

어느 골동품 商人이 그 숲을 찾아와
몇 개 큰 나무들을 잘라내고 들어갔다
그곳에는……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본 것은
쓰러진 나무들뿐, 잠시 후
그는 그 공터를 떠났다

농부들은 아직도 그 평화로운 城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작은 당나귀들 역시
「숲으로 된 성벽」 전문


<神들의 商店엔 하나 둘 불이 켜지고>는 노을진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솟아나고 있는 모습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는데, 램프가 지향하는 것은 기다림이다.

창문에 있는 램프는 집의 눈이다. 램프가 창문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램프 때문에 또 집 전체가 기다리고 있다. 램프는 기다림의 커다란 표지이다.

이 <평화로운 城> 안에서는 당나귀, 구름, 공기, 농부가 서로 대화하고 한 식구가 되고 있다. 이것은 <非생명체-생명체-극대화한 생명>의 공동체 과정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것은 안타깝게도 <현실-이상-극단적 이상 혹은 환상>의 과정과 같은 궤를 지닌다. 그만큼 희소하고 희박한 비전이 기형도 시가 보여주는 세계관이며 그 희박한 가능성 안에서 시인은 진솔하게 웃고 또 울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희박한 가능성에 온몸을 걸고 사는 존재들을 기꺼이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사시나무 그림자 가득 찬 세상, 그 끝에 첫발을 디디고 죽음도 다가서지 못하는 온도로 또 다른 하늘을 너는 돌고 있어, 네 속을 열면.
「밤눈」 중에서


그리고 그런 존재들 또는 존재들의 사랑으로 인해 기형도는 <죽음, 고통, 겨울>을 절망의 눈으로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다.


고맙습니다.
겨울은 언제나 저희들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십니다.
「램프와 빵-겨울 版畵6」 전문


그리고 생명에 대한 강인한 확신에 도달한다. 나와 사나운 영혼인 <고드름>과 <밤눈>은 遊離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일부이므로 고드름의 영혼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연히


나는 살아 있다. 解氷의 江과 얼음山 속을 오가며 살아 있다.
「잎·눈[雪]·바람 속에서」 중에서

하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의 희미한 희망은 이미 시인에게 深淵한 실체를 보여준다.


가라, 구름이여, 살아 있는 것들을 위해
이제는 어둠 속에서 빈 몸으로 일어서야 할 때
그 후에 별이 지고 세상에 새벽이 뜨면
아아,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우리는
서로 등을 떠밀며 피어오르는 맑은 안개더미 속에 있다.
「쓸쓸하고 장엄한 노래여」 중에서


그리고 이 재구성된 세계 안에서 우리는 '모두가 위대한 혼자'(「비가2-붉은 달」)임과 동시에 현실세계로 투영된 모습으로 보면 '밤이면 그림자를 빼앗'기는 '누구나 아득한 혼자'(「노을」)이다.

3. <떠남과 기다림>의 이미지

<희미함>의 이미지의 다른 모습은 <떠남과 기다림>의 이미지이며 <유년·회상>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과거의 이미지이므로 희미하고, 갈망의 대상이므로 역시 희미하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떠남>은 <無目的>의 성질을 근본으로 하거나 해야 한다. <그리움(기다림)>은 이별을 전제하며 다시 재회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의 요소를 담지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의 관계가 기형도가 추구하는 리얼리티이다.


아직도 펄펄 살아 있는 우리는 이제 각자 어디로 가지?
「노을」 중에서


이렇게 화자는 자신 속에 있는 넘치는 생명력을 확인하며 떠나려 하지만 뚜렷한 목적 의식이나 목적지가 없는 <떠남>이다. <無目的의 떠남>은 <무책임한 떠남?과는 다르다. <無目的의 떠남>은 <떠남>을 수단으로 하여 어디로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떠남> 자체가 목적이 되는 것이다. 문학이 점점 사회나 정신을 訓育시키는 效用論的인 관점에서 문학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순수주의적 관점으로 옮겨지고 있는 현상과 같다. 일단 추후에 다가올 시간은 잊어버리고, 현실을 강하게 부정하고 거기서 떠나야 할 필요가 있다.


나 그 술집 잊으려네
기억이 오면 도망치려네
「그 집 앞」 중에서


화자는 눈을 감고 억지로 떠나려 하고 있다. 태연히 떠나지 못하고 도망치고 있다. 쉽게 기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훌훌 털고 가볍게 떠나는 자연을 동경한다.


아, 가랑잎 한 장 뒤집히는 소리에도
세상은 저리 쉽게 떠내려간다
「植木祭」 중에서


그런 자연을 닮으려 화자는 자신을 붙잡는 기억 하나 하나를 호명하며 화해를 하고 이별을 하려 한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빈집」 중에서


그런 이별이 여의치 않지만 화자는 자신의 더욱 깊은 기억과 내면을 믿고 있다.


턱턱, 짧은 숨 쉬며 내부의 아득한 시간의 숨 신뢰하면서
천국을 믿으면서 혹은 의심하면서 도시, 그 변증의 여름을 벗어나면서.
「비가 2 - 붉은 달」 중에서


그렇게 하여 떠나지만 슬프도록 그리워하는 대상은 다름 아닌 떠나버렸던 기억의 공간이다. 즉, 자신의 삶을 재구성해서 진정한 기억을 되찾기 위해 거짓되거나 퇴색돼버린 기억들과 결별하는 것이다.


예술은 완성되기 위하여 자기의 유년기로 돌아온다.

지혜는 우리를 유년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이때의 돌아감은 떠났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것이다. 기형도에게 있어서 그리움의 대상은 인물이다. 어릴 적 죽은 누이와, 여자 골목 대장이었던 <도로시, 잠시 머물다 간 집시>, 그리고 <詩人> 등이다. 非생명체로는 <밤눈>과 <고드름>을 들 수 있겠으나 엄밀히 말하면 그것들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경이로운 대상>일 뿐이다. 기형도에게 있어서 그리움은 언제나 인간적인 속성을 갖는다. 기형도는 그리운 사람들을 자신의 生 안에 부활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철저히 화자 자신을 그리워하는 <그리움>의 방편이다. 사실은 화자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다.
때문에 어쩌면 있지도 않았을 인물을 추억 속으로 꾸며서 만들어 내기도 하고, 그리워하던 인물과 실제 재회를 해도 어떤 감흥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완전히 그를 잊었다. 그는 그 해 가을 우리 마을에 잠시 머물다 떠난 떠돌이 사내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그는 우리가 꾸며낸 이야기였을지도 몰랐다.
「집시의 詩集」 중에서

너는 그 머나먼 대륙으로 떠나기 전에 딱 한번 우리 마을에 들렀었다. 가엾은 도로시. 너는 오지 말았어야 했다. 우리는 벌써 네가 필요 없었다. 너는 주근깨투성이, 붉은 머리의 말라깽이 소녀에 불과했다.
「도로시를 위하여 - 幼年에게 쓴 편지」 중에서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서 다시 자신으로 되돌아오는 원 운동을 기형도는 그의 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좀 더 큰 원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 자신이 겪었던 모든 기억들과 인물들을 불러모은다.
<詩人>은 기형도가 그리워하는 대상 중 가장 미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는 「詩人 1」을 통해서 자신이 꿈꾸고 있는 詩人像을 그리고 있다.


나의 魂은 主人없는 바다에서 一萬 갈래
물살로 흘렀다. 一千 갈래는 고기떼로 표류
하였다. 그 중 너덧 마리는 그물에 걸리었다.
한 마리는 물에 오르자 곧 물새가 되어 날아갔다.
부리가 흰 물새는 한번도 울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하늘에 올라가 구름이 되었다. 물새의 魂은
九萬里 공중을 날다가 비가 되었다. 내릴 데
없는 물 같은 비가 되었다.
「詩人 1」 전문


4. 유년·회상의 이미지


기형도의 유년은 그가 표출하는 <기다림>의 원형이다. 그 때부터 그는 숙명적으로 기다림을 업으로 삼을 존재가 될 것임을 인식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의 詩 속에는 그런 원형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엄마 걱정」 전문


여기서도 그리움의 대상은 엄마이지만 엄마로 표출된 화자 자신을 더욱 그리워하고 있다. 이것은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을 통해 더욱 극명히 드러난다.


어머니 무서워요 저 울음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중에서


결론


지금까지 기형도 시에 내재해 있는 <희미함>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기형도가 파악하는 세계에 대한 觀을 고찰해 보았으며, 그것이 <여행, 방랑, 이별, 그리움, 기다림> 등의 불확실성을 갖고 있는 이미지들로 顯現하면서 풍성한 <희미함>의 이미지를 발현하고 있다. 이 때 이별은 자기 자신과 이별함을 뜻하며 여행은 무목적의 여행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위한 여행이었음이 밝혀졌다. 즉, 재창조된 자신으로의 회귀를 말함이다. 기다림 또한 여러 인물들을 기다린다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철저히 자신을 기다리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도 확인하였다. 그것이 유년의 회상일 때는 더욱 여실히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형도를 바라본 모습은 시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세계를 같이 바라보자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시인이 남겨 놓은 것들을 해부하는 선에서 그쳤으니 그것이 아쉬운 점이다. 시는 독자에게서 언제나 시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래서 시를 논하는 사람은 시로써 시를 논해야 한다. 이것이 시 연구가 다른 연구와 차별되는 점이라 생각한다. 시인이 바라보는 광활한 미지의 세계에서 우리가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은 아주 협소하리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죽은 시인과 남겨진 시인 혹은 시 독자들이 지향하는 바는 근본적인 입장에서는 같아야 하며 최소한 시인의 이 고백을 들어줄 정도의 정직성은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맹장을 달고도
草食할 줄 모르는
부끄러운 動物이다
긴 설움을
잠으로 흐르는 구름 속을 서성이며
팔뚝 위로 靜脈 드러내고
흔들리는 靈魂으로 살았다.

빈 몸을 데리고 네 앞에 서면
네가 흔드는 손짓은
서러우리만치 푸른 信號
아아 밤을 지키며 토해낸 사랑이여
그것은 어둠을 떠받치고 날을 세운
네 아름다운 魂인 것이냐

이제는 뿌리를 내리리라
차라리 웃음을 울어야 하는 풀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보자
발을 얽고 흐느껴보자

맑은 날 바람이 불어
멍든 배를 쓸고 지나면
가슴을 올쿼 솟구친
네가 된 나의 노래는 떼지어 서걱이며
이리저리 떠돌 것이다.
「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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