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주… 알고 보면 쓰레기 더미?
지구주변 우주쓰레기 9000개 둥둥
2006년 02월 03일 | 글 | 김훈기 기자ㆍ wolfkim@donga.com |
 
지구 ‘주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상 200∼2000km 고도에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과 그 파편들 때문이다. 1957년 10월 옛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이후 매년 발사되는 우주선의 수는 평균 75개 정도. 이들 대부분이 지구 주위를 돌며 정찰하는 인공위성이므로 현재 지구 주변에는 수명을 다한 것을 포함해 3000여 개의 인공위성이 돌고 있는 셈이다.



초속 10km… 총알보다 10배나 빨라

문제는 퇴역 인공위성이 폭발해 생긴 잔해나 우주선에서 분리된 로켓 등 다양한 ‘쓰레기’들이 인공위성 수보다 훨씬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의 제이 류 박사는 지난달 20일자 ‘사이언스’에서 길이 10cm 이상의 물체가 9000개 이상 떠돌고 있다고 밝혔다. 3000여 개의 인공위성을 빼면 6000여 개의 쓰레기가 지구 주변을 오염시키고 있는 셈. 물론 퇴역 위성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늘어난다.

우주 쓰레기가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의 폭발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그룹장 최기혁 박사는 “인공위성이 태양을 향하고 있는 면의 온도는 영상 120도이고 그늘 쪽은 영하 180도에 달한다”며 “평소 인공위성은 통닭처럼 빙글빙글 돌거나 냉각수 파이프를 이용해 온도를 골고루 분산시킨다”고 말했다.

만일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해 가동을 멈추면 양쪽 면의 극심한 온도 차로 깨져버리고 배터리나 남아 있는 추진체가 폭발하게 된다. 우주 쓰레기의 40%가량을 차지하는 파편들이 여기서 발생한다.

문제는 이들의 놀라운 속도. 총알보다 10배 빠른 초속 10km 정도로 날아다닌다. 인공위성은 물론 우주인이 맞기라도 하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우주 쓰레기가 빨리 날아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인공위성은 초속 7∼8km의 속도로 지구 주변을 돈다. 지구의 중력에 못 이겨 대기권으로 빨려들어가지 않으려면 이 정도 속도로 비행해야 한다.

만일 인공위성이 폭발하면 이때 발생하는 힘을 받아 파편들의 운동속도가 인공위성보다 더 빨라지게 된다.

사이언스 발표에 따르면 우주 쓰레기의 대부분은 인공위성을 쏘아올리는 고도 800∼1000km에 몰려 있다고 한다. 새로운 인공위성을 발사할 때 쓰레기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행히 최근까지 인공위성의 기능이 손상될 정도의 충돌 사고는 없었다.




인공위성-우주인 맞으면 치명적

또 고도 350km 상공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ISS)이나 400∼600km에서 비행하는 유인우주왕복선에는 당장은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사고는 늘 예측할 수 없는 법. 최 박사는 “쓰레기들이 모기떼처럼 모여 돌아다니기도 한다”며 “ISS의 경우 지상 레이더로 ‘쓰레기 더미’가 가까이 다가올 조짐이 관찰되면 ISS의 고도를 수시로 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주 쓰레기가 지상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NASA에 따르면 지구를 향해 떨어지는 우주 쓰레기는 하루에 1개꼴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대기권에서 마찰을 일으켜 타 없어진다. 대기권을 거쳐 지상까지 도달해 인간을 맞힐 확률은 1조분의 1.


대기권으로 끌어들여 자폭 유도

하지만 뜻하지 않게 대형 쓰레기가 떨어질 경우 지상에서 위치를 조정해 바다나 사막 등으로 떨어지게 한다. 미국산 델타2 로켓의 연료탱크(250kg)가 1997년 미국 텍사스와 200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떨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주 쓰레기를 없애는 뾰족한 방법은 현재로서는 없다.

NASA 자료에 따르면 고도 800km에 떠 있는 1∼10cm 길이의 쓰레기를 지상 레이저포로 없애려면 2년간 무려 8000만 달러(약 800억 원)가 소요된다. 10cm 이상의 쓰레기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다.

한 가지 대안은 향후 발사할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할 즈음 지구 대기권으로 유도해 태워버리자는 것.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쓰레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일정 궤도를 돌고 있는 인공위성을 지구 대기권까지 ‘억지로’ 끌어들이려면 별도의 추진로켓과 연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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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6-02-04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놈의 쓰레기 문제는 이제 아예 지구밖을 벗어나는군요. 저 인공위성으로 말할 수 없는 혜택을 받으면서 살면서 불평하면 안될려나? 에고....ㅠ.ㅠ
 

 

    '사람 잡는 정체성'  이론과 실천
    '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사계절

 



내가 누구인지 규정하지 말라

 

사람 정체성은 어디서 어떤 핏줄로 태어났나가 아니라
삶의 역정, 신념, 감수성이 뒤섞여 만들어지는 것
친북좌파니 영남출신이니 하나의 소속에만 환원시키는 것
부당한 폭력이자 학살자를 만들어낸다

반미냐 친미냐, 반북이냐 친북이냐, 좌파냐 우파냐, 영남이냐 호남이냐, 여당이냐 야당이냐, 친박이냐 반박이냐, 서울이냐 지방이냐, 명문대냐 비명문대냐, 남자냐 여자냐, 진보냐 수구냐, NL이냐 PD, 노빠냐 노까냐, 황빠냐 황까냐. 이런 류의 이분법적 대립항 설정 자체의 타당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곧잘 자신이나 주변의 누군가 그 어느 한편과 동일시되고 그 때문에 배척당하는 현실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일단 한번 그렇게 ‘찍히면’ 거의 속수무책이다. 부인은 오히려 혐의를 짙게 할 뿐. 이른바 ‘남남갈등’ 따위의 언표들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과 타자 배제의 완고성을 드러내주는 이런 양자택일식 타자 규정의 천박성과 그 절망적인 위력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서 극에 달한다. 조선족이나 동남아 이주노동자 등 외부에서 온 구성원들, 특히 ‘부족적’ 친연성이 없는 외부인 약자들에 대한 배타성은 가히 폭력적이라 할만하다.

<사람잡는 정체성>(이론과 실천 펴냄)의 저자 아민 말루프도 그런 일로 숱하게 시달린 모양이다. 서문 첫 문장을 “…나는 나 자신이 ‘프랑스 사람’과 ‘레바논 사람’ 중 어느 쪽에 더 가깝게 느끼느냐에 대해 여러번 자문해 보았다”로 시작하는데, “양쪽 다!”라고 자답해 놓고도 찝찝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런 식의 대답에는 으레 “에이, 그러지 말고 진짜는 어느쪽? 마음속 깊은 곳에선 누구라고 느끼냔 거죠” 따위의 다그침이 뒤따랐던 듯, “이 집요한 질문”을 오랫동안 받았다고 실토했다.

▲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마셜 호지슨 지음. 에드먼드 버크 3세 엮음. 이은정 옮김. 사계절 펴냄. 2만8000원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등을 통해서도 알려진 말루프가 “오늘날 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종교적·인종적··민족적 혹은 기타의 정체성의 이름으로 범죄를 저지르는가”를 화두로 삼은 출발점은 바로 그 자신의 정체성 문제였다. 1949년 아랍 남부지역 출신 집안에서 태어나 레바논 산간지역에서 자란 말루프는 아랍출신이면서도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멜키트 종파)를 모태신앙으로 이어받았다. 베이루트 대학을 나와 12년간 일간지 기자로 일하다 27살 때 종교분쟁에 휩싸인 조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갔다. 6백만-7백만명에 이른다는 프랑스내 이슬람계 가운데서 그는 모국어가 아랍어지만 기독교도에다 주로 프랑스어로 생각하고 쓰는 이질적인 존재다. 이 책 출간시기가 1998년이니 ‘아랍인과 이슬람 문제’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2001년 9·11동시테러를 내다보기라도 하듯 그때 이미 문제의 절박성을 감지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9·11 테러 미리 내다본듯한 저작

사람의 정체성은 어떤 땅에서 어떤 핏줄을 받아 태어났느냐로만 좌우되는 것이 아니고, “자유스러운 한 인간의 역정, 확고한 신념, 고유한 감수성, 그 사람과 관련된 것들과 그의 삶 등등”, 달리 말하면 “언어, 신앙, 생활방식, 가족관계, 예술적 취향, 음식 취향…”과 뒤섞여 만들어진다. 그 다양성의 총합이 정체성이다. “인간은 그 아버지의 자식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의 자식이다”라고 한 역사가 마르크 블로흐의 말과도 상통한다. 요컨대 어떤 사람을 친북좌파니 영남출신이니 황빠니 하는 한두마디로 규정하는 건 부당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광신자들이나 외국인혐오자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주변의 개개인들조차 뿌리깊이 박힌 편협하고 배타적인 사고와 표현의 습관들 때문에 “한 사람의 정체성 전체를 단 하나의 소속에만 환원시키라고 격렬히 부르짖고”, 그것이 “학살자들을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절규한다.


모두 ‘완전한 시민’으로 취급받아야

▲ 지난해 11월12일 프랑스 이주민들의 소요사태가 2주를 넘긴 가운데 남서부 툴루즈의 주민들이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펼침막을 앞세우고 도심 평화행진을 벌이고 있다. 타자 배제 및 차별로 이어진 이주민 정체성 문제가 자동차 방화 등 소요사태를 불렀다. 툴루즈/ AP 연합
저자가 특히 관심을 쏟은 이슬람에 대한 편견, 즉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여성의 권리, 근대성과 얄립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은 어떻게 형성됐나? 적어도 18세기 말까지 이슬람은 기독교에 비해 타종교나 문화에 대해 훨씬 관용적이었다. 그 무렵부터 소외 및 서양과의 격차를 의식하기 시작한 이슬람세계는 서양의 학살과 약탈, 노예화 행각에 한을 품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아랍세계의 서구화 노력을 주도한 세력은 이슬람 종교가 아니라 나세르 등 민족주의 세력이었으나 그들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사회·공산주의에 대한 기대마저 물거품이 된 뒤 이슬람 신앙이 복권됐다. “아랍 인구의 상당수가 종교적 극단주의에 귀를 기울이고, 1970년대부터 얼굴을 가리는 두건과 항의를 상징하는 수염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나세르를 필두로 하는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잇따른 군사적 실패와 경제적 후진성에 관련된 문제를 풀 수 없는 무능력 때문에 막다른 길에 도달한 이후였다.” 차별과 빈곤·실업, 범죄·마약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서구모델의 실패, 세계화와 통신혁명 등이 이에 박차를 가했다.

저자는 ‘표범(정체성)을 길들이는 방법’은 “각 시민이 어떠한 소속을 지녔던 간에 하나의 완전한 시민으로 취급받게끔 하는 일”이라며, 절망을 깔고 앉은 근본주의적 태도에는 반대한다. “그것은 고통과 거부와 수동성 속에 틀어박히는 태도로 거기에서 나오는 방법은 자멸적인 폭력밖에 없다.”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사계절 펴냄)은 근대 유럽이 철저히 찌그러뜨리고 왜곡해 놓은 이슬람 역사 복원을 통해 서구 우월주의와 서구중심 역사관의 패러다임을 흔들어놓은 중량감있는 고전이다.

이슬람 역사 전문가 마셜 호지슨(1922-1968) 전 시카고대학 교수의 글을 캘리포니아대학 산타크루즈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에드먼드 버크 3세가 엮고, 마지막에 자신의 글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마셜 호지슨과 <이슬람의 모험>’을 결론삼아 보탠 이 책은 <사람잡는 정체성>에 담겨 있는 이슬람 역사에 대한 시각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또 기성관념과 사고의 전환을 꾀한다는 점에서도 두 책은 일맥상통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처음 일어났다고 해서 유럽의 역사를 영국사로 환원시킬 수 없는 것처럼, 산업혁명이 처음으로 확산된 지역이라고 해서 세계사를 유럽사로 환원시킬 수 없다”고 한 호지슨의 발상은 서구 중심사관이 당연시되던 반세기 전에 이미 근대성 전개를 전지구적 과정으로 보고 유럽 독주론을 부정하는 21세기적 지평을 선취하고 있다. 그는 유럽은 1500년 무렵 르네상스기가 돼서야 겨우 지구상 다른 문명 수준에 도달할 만큼 뒤처진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고 봤으며, 유럽과 북반구 면적이 실제보다 부풀려진 세계지도의 메르카토르 도법을 ‘인종차별적인 투영법’이라고 불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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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우석 교수 연구팀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실험실 안의 속임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저명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 교수(영국 카디프대학)가 황 교수 사태를 지켜보며 <한겨레>에 장문의 원고를 보내왔다. 카디프대학에서 지식·전문기술·과학(KES)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콜린스는 사회학의 시각으로 과학을 이해하는 과학사회학 분야의 권위자다. 여러 나라에서 널리 읽힌 <골렘> <닥터 골렘> 등을 저술했다. 그의 글은 황 교수 사태를 바라보는 해외의 시각, 과학 활동을 바라보는 사회학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과학 실험이 까다로운 일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끓는 물에 담근 온도계는 물이 순수하게 정제되고 대기압이 표준상태에 있을 때에만 정확히 섭씨 100도를 나타낸다. 이런 실험을 학교에서 할 때 온도는 섭씨 1도나 2도 정도 차이가 날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학생들에겐 결과값이 100도임을 스스로 증명했다고 얘기해준다. 그러니까 바로 시작부터, 실험은 실제 그런 것보다 더 쉬운 일이라 생각하고, 소소하게 속여 보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천재 부각 수십년 노력 묻혀


교과서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자 집단을 상대로 규명하고 입증하기까지 50년이나 걸린 성가신 연구결과가 마치 천재 한 명에 의해 한두 달이면 끝나는 것처럼 묘사된다. 나의 공저 <골렘>에서, 우리 공저자들은 이런 점을 다 설명했지만 과학에 대해 널리 퍼진 이미지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뛰어난 개인들은 결정적 요소로 여겨지며, 더 큰 집단 안에서 합의를 구축하려는 오랜 각고의 노력은 결정적 요소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속임은 별 생각없이 시작될 수 있다. 교실에서 그리고 교과서에서 속임은 단지 무엇을 단순화하는 것 이상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큰 팀들로 이루어진 생명과학계에서, 부하 연구원들이 당신이 듣고 싶어하는 바를 당신한테 말할 때 단지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 그 연구원들이 내놓은 결과물들을 따져보지 않는 것이 바로 속임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 가장 유명한 실험들 가운데 하나인 밀리칸의 전자 연구(1923년 노벨상 수상)는 결과에 대한 ‘자유분방한 해석’과 관련된 것이다. 밀리칸의 실험노트를 보면, 그의 발견과는 배치되는 데이터도 일부 나타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무시했다. 밀리칸의 경우, 그가 했던 일은 지금에 와서 뛰어난 과학적 선견지명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과학자 집단은 결국에 그가 옳았음을 입증했기에 말이다. 완두콩의 형질 유전에 관한 멘델의 선구적 연구도 이와 비슷하다. 멘델은 그가 성취했노라고 말한 연구결과(그것은 너무도 그럴듯해서 진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지경이었다)를 아마도 성취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시된 바 있다.

멘델과 밀리칸의 데이터에 나타난 모순은 그들이 숨지고 오래 지난 뒤에 역사학자들이 그들의 실험노트를 다시 살피기 시작할 때까지 드러나지 않았다. 황우석 교수의 속임수는 곧바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황우석 사태가 과학의 실패를 보여주기보다는 과학의 성공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황우석 사태는 현대 과학이 훌륭하게도 자기 규율하는 활동임을 보여준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제 좀더 자세히 그것이 진실인지 살펴보자.

멘델도 숨지고 오랜 뒤 검증

널리 알려진 미디어 과학자들, 정부 자문인들, 학술저널의 편집자들 같은 과학의 ‘대변인들’은 종종 두 가지의 주요 메커니즘이 과학적 결과를 보증한다고 말한다. ‘동료심사’와 ‘실험결과의 재현’이 그 두 가지다. 그러나 여기서(황우석 사태에서) 우리는 동료심사가 작동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가장 엄격한 동료심사 체제 가운데 하나를 갖춘 최고의 국제 과학저널 <사이언스>는 황 교수의 논문을 출판했고,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그를 옹호했다. 마침내 사기가 인정됐을 때, 동료심사 체제가 사기를 막아줄 방어수단이 될 수 없음도 함께 인정됐다. 동료심사는 실험실의 실험노트를 재분석하는 것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일 테니까. 확실히, 동료심사는 다른 사람들의 실험실 방문이나 연구 보조원들의 상호검증, 또는 법정에선 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질 어떤 절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 동료심사는 준사법적 행위들에 관여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치러야 할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너무도 서투를 수 있기에, 과학을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분명하게 문제의 실험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설사 실험실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실험이 때때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 이상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방문자가 현장에 있는 그 날이나 그 주에는 실험이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심사자들은 검증해야 할 제출논문에 대해 요약되고 간추려진 설명밖에 들을 수 없고, 자신들이 진실을 판독하고 있는 것인지, 또는 누군가가 연구성과를 교묘하게 조작했는지 말할 수 없다.

또한 실험 재현을 통한 연구결과의 검증은 수십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실험을 하려면 자원이 필요하고 엄청난 기술이 필요하다. 자원들을 갖출 수 있다 하더라도 연구결과를 확인하는 데 실패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그 실험자들이 올바른 기술이나 적절한 행운을 지니지 못했을 거라는 추정을 한다. 과학자들은 그들 중 일부만이 ‘황금 손’을 지녀 실험을 성사시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유명한 이론물리학자 볼프강 파울리 같은 일부 과학자들이 단지 실험실에 나타나는 것만으로 모든 실험 진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점을 기꺼이 인정한다. 그것은 왜 빛 속도의 불변성 같은 ‘단순한’ 발견들이 과학자 집단에 수용되기까지 거의 반세기 가까이 걸렸는지를 말해준다. 과학자들이 서로 다른 이들의 실험에서 결함을 발견하고 그 주장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여지는 끝없이 존재했다.

비록 황 교수의 속임수가 곧바로 드러났지만 그것은 동료심사 덕분도 아니었고 실험의 재현 시도 덕분도 아니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게 아니다. 그가 발각된 이유는 그 자신의 실험실에 있던 누군가가 그 사실을 대중에 알렸기 때문이었다. 황우석 사태는 사회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바를 보여준다. 즉, 과학적 성공의 결정적 요소는 ‘신뢰’라는 것이다. 신뢰가 없다면, 모든 실험자들은 자신이 들어온 모든 것들이 진실임을 확신하려면, 과학 역사 전체를 처음부터 다시 되풀이해야만 할 것이다. 신뢰가 없다면 과학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멘델과 밀리칸으로 되돌아가 생각할 때에, 황 교수는 아마도 자신의 일이 발각되기 전에 그나 (연구팀의) 다른 이가 복제를 완수하리라는 확신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내부 제보자가 없었다면 황 교수 자신이 그 결과를 성취했든 못했든 아마도 그는 여전히 개척자로 여겨졌을 것이다.

과학자는 ‘스타’ 꼬리표 떼야

아직도 남은 수수께끼는 왜 황 교수처럼 이미 유명한 과학자가 그런 엄청난 방식으로 도덕적 규율을 깨뜨리고자 했는가다. 과학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신뢰 구조에 그는 왜 노골적으로 모험을 걸었을까. 참된 발견을 이루는 짜릿함이 있기에 과학은 가치있는 직업이 된다. 데이터를 단지 날조해내기만 해서는 그런 짜릿함을 결코 맛볼 수 없다.

▲ 해리 콜린스/영국 카디프대학 교수·사회학
그것이 바로, 비록 소규모의 진실 왜곡이 널리 퍼져 있고 때때로 그것이 사태 진전에 보탬이 된다면 용납되기도 하지만, 대규모 사기극은 여전히 과학계에서 드문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날 생명과학에서 선도적 과학자들은 팝 스타들처럼 대접받는다. 스타가 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보다 중독성이 더 큰 모양이다. 우리는 과학자를 훌륭한 직업을 지닌 전문가로 여기고 그들한테서 유명인사 목록은 떼어내는 예전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방식의 사회구성이 신뢰를 제대로 평가하고, 다른 모든 고려사항들에 앞서 일을 잘 한다는 내적 만족에 이르게 할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과학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복제된 세포들보다도 훌륭한 삶의 본보기일 것이다.

번역 오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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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무가지 줍는 할아버지·할머니들

주름이 팬 손은 쉴 틈이 없다. 아침 6시30분부터 유아무개(84)씨는 지하철 1호선 선반 위를 훑으며 승객들이 놓고 간 무가지와 신문지를 줍는다. 7시가 되면 이미 1호선 서울역은 출근 인파로 몸조차 움직이기 쉽지 앟다. 승객들 틈바구니를 뚫고 다니다 보면 어느새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송 맺힌다. 그렇게 서울역에서 청량리역을 오가는 3시간 동안 유씨는 자리에 앉는 법이 없다.

오전 11시, 유씨는 집 근처인 부천 중동역으로 돌아온다. 폐신문지를 가득 담은 30㎏짜리 마대자루는 팔순 노구가 지고 나르기엔 벅차기만 하다. 하루에 모은 세 자루를 옮기는 데만 30분, 쉬어가며 해도 마지막 자루를 나르고 나면 진이 빠진다.

오후엔 6시간 상자 모아 2800원

유씨가 이렇게 온종일 모으는 폐지는 1㎏에 80원을 받는다. 하루 90㎏을 모으면 7200원을 손에 쥔다. 아침 내내 지하철 폐지를 모은 뒤, 유씨는 다시 오후 6시까지 거리에서 종이상자를 줍는다. 하루에 모으는 상자는 50㎏ 정도. 상자값은 신문의 절반이어서 1㎏에 40원이다. 그렇게 하루 11시간 종이를 모아 1만원을 번다.

2002년부터 무가지가 등장하면서, 유씨처럼 버린 무가지를 줍는 노인들이 지하철로 몰리고 있다. 다른 돈벌이 수단이 없는 60대와 70대, 심지어 80대 노인들까지 폐지 줍기에 나서는 것이다. 6~7종의 무가지가 하루 300만부 이상 뿌려지는 수도권 전철과 지하철 노선에서는 용산역~청량리역 구간에만 수백명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추정된다. 종로3가역 역무원 장세봉씨는 “무가지 줍는 노인들이 2년 전보다 몇 배는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폐지수집 노인들이 늘어나는 것은 ‘진입장벽’이 없기 때문이다. 만 65살 이상이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자본이나 기술도 필요없다. 키가 작은 이들은 갈고리로 선반 위를 훑기도 한다. 유씨는 사업에 실패한 두 아들과 연락이 끊긴 뒤, 위암 수술을 받아 거동이 불편한 부인(71)과 월세 25만원짜리 단칸방에 산다. “나라에서 한 달에 30만원을 주는데, 그걸로는 월세에다 공과금을 내기에도 모자라”서 이 일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그래서 더 벌이도 팍팍하다. 경쟁자가 늘어날수록 폐지 값은 떨어진다. 2년째 무가지를 줍는 서아무개(80)씨는 “2004년에는 ㎏에 110원이었는데 이젠 80~95원밖에 안된다”며 “처음에는 이 일 하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도 건넸지만 요즘엔 분위기가 삭막하다”고 말했다. 간혹 전동차에서 폐지 자루를 잃어버리거나 종종 승객들과 부딪혀 시비가 생기는 것도 고충이다.

1호선 구간에만 수백명

노인들은 보통 집 근처 고물상에 폐지를 넘긴다. 하지만 폐지 값이 떨어지면서 한푼이라도 후하게 쳐주는 곳을 찾아 멀리 가는 이들도 많다. 최아무개(66·서울 용산구 서빙고동·?5c사진)씨는 자기 키보다 큰 자루에 폐지 100㎏을 눌러 담아 인천까지 가서 넘긴다. “이 일말고는 내 나이에 할 일이 없어. 10원이라도 더 받으려면 멀어도 가야지 ….”

 

이본영 전진식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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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Terdiman ( CNET News.com )   2006/02/02  

 

오랫동안 게임을 했던 사라 앤드류는 자신이 속해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길드에 길드원을 모집한 행위가 이 정도로 소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 그 길드는 대부분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로 구성돼 있다.

그녀가 와우(WoW:World Of Warcraft)에 게시한 모집광고문의 내용은 "GLBT(주: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의 약자- 이하 GLBT)뿐만 아니라 GLBT에 대해 열려있는 사람을 모집 한다는 것"이다.

와우를 서비스하는 블리자드는 앤드류의 행동을 도가 지나친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게임 운영자중 한명인 캘리포니아의 어빈은 그녀의 모집광고는 게임의 따돌림 예방책(특히 사람의 성적 성향에 대해서)을 위반했다고 말했다. 앤드류는 바로 게임 내에서의 모집광고를 멈춰야 하고 게임포럼에서도 모집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경고성 이메일을 받았다. 또, 이 이메일에는 그녀가 게임 내에서 그 같은 행동을 계속 할 경우 게임에서 추방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따돌림 예방책 위반 경고가 발단
본질적으로 앤드류와 동성애 권리 옹호자들은 블리자드는 따돌림을 조장하는 플레이어를 추방해서 게임 내에서의 따돌림을 숨겨왔다고 비난했다.

유비소프트(Ubisoft)와 데어닷컴(There.com) 같은 회사에서 커뮤니티 관리자로 일했고 오랫동안 가상세계 컨설턴트로 일한 론 마이너는 "블리자드의 성명은 GLBT 커뮤니티를 교묘하게 금지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블리자드도 원칙적으로 GLBT 길드를 금지하길 원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도가 지나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앤드류는 블리자드와 작은 분쟁에 대하여 판단하거나 게임플레이를 관리하는 회사 직원인 게임마스터가 공평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따돌림 예방책은 특히 "사람의 성적 성향에 관하여 모욕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모두 금지한다. 앤드류는 자신을 모욕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따돌림 예방책을 왜 적용하고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앤드류는 "나는 처음에는 블리자드가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몰랐다. 이 일이 서투르게 처리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우는 2004년에 시작한 이후로 550만 이상의 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긴다. 와우는 어쩌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온라인 판타지 게임이다. 그래서 와우는 게임 규칙을 어떻게 정의하고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 넓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와우는 다른 가상 커뮤니티에도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블리자드의 한 대변인은 단지 따돌림으로부터 모든 와우 게이머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뿐이고, 게임 내에서 많은 플레이어는 젊고 남자이고 남을 모욕하기 쉽기 때문에 회사는 상식선에서 잠재적인 문제까지 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블리자드는 "우리는 비슷한 흥미를 지닌 플레이어끼리 커뮤니티를 만들게 하고 길드가 커뮤니티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종교, 성, 정치에 대한 성향처럼 실세계에 민감한 주제는 플레이어 사이에서 종종 누군가를 따돌려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어 왔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CNET 뉴스닷컴의 인터뷰에서 블리자드의 홍보부장 길 쉬프는 회사가 따돌림 예방책을 재검토하고 있고 머지않아 수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쉬프는 이 정책이 금지된 언어를 제한하는 것뿐만 아니라 누군가에게 모욕을 줄 수 있고 "플레이어들이 누군가를 따돌리는 논쟁이 될 수 있는 모든 말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장될 것 같다. 이것은 바로 게임에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엔드류는 자신의 취향을 키보드를 이용해 문자로 이야기하는 게임에서 블리자드의 태도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앤드류는 "그들은 사람들이 서로 해코지 할 것이 두려워서 그들의 게임에서 성적인 언급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이미 그들이 했던 것처럼 이 정책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와우같은 온라인 게임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블리자드가 따돌림 예방책을 되돌리려는 앤드류에게 경고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마이너는 "커뮤니티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매우 어렵고 나는 그들이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하게 말해서 커뮤니티는 좀 더 어려운 개념이기 때문에 이 주제는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그 커뮤니티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떤 동성애 인권 옹호자들은 동성애자 그룹에 스스로 따돌림을 조장할 것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블리자드의 이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유사한 길드 수두룩, “형평성 어긋난다” 주장
GLBT 커뮤니티의 인권을 증진하는 기관인 람다 리걸(Lambda Legal)의 변호사 브라이언 채이스는 "우리는 따돌림을 멈추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동성애자들을 따돌리는 것을 멈추는 방법은 동성애자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따돌리는 것을 멈추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앤드류의 길드 오즈는 특별히 와우에서만이 아니라 온라인 게임의 넓은 세계에서 유일한 동성애자 길드가 아니다.

블리자드와 싸운 앤드류에 대해 처음으로 GLBT 시사주간지 뉴스위클리에 기고한 알렉산더 슬리윈스키에 따르면 와우에만 GLBT 길드가 8개 있다고 한다. ‘에버퀘스트(EverQuest) II’, ‘시티오브히어로(City of Heroes)’, ‘파이널 판타지(Final Fantasy) XI’와 같은 다른 온라인 게임에도 역시 GLBT 길드가 있다.

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의 에버퀘스트 II의 홍보지원팀장인 크리스 크래머는 플레이어들은 회사의 운영 규칙을 따르면서 "어떤 종류든 좋아하는 사회 모임이나 단체를 형성한다"고 말했다.

이 규칙은 플레이어들이 "불법적이고 유해하며, 위협적이고 공격적이며 남을 괴롭히고, 명예를 훼손하고, 상스럽고, 저속하고 남을 비방하고 개인적으로나 공개적으로 남의 권리를 침해하고, 불쾌하고 인종적이거나 민족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대립될 수 있는" 말을 전송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앤드류같은 경우에 그런 표현의 의미를 해석하는 문제를 게임 관리자 개개인의 판단에 많이 남겨두었다.

물론 블리자드는 다른 사람을 따돌리는 것에서 모든 플레이어와 그룹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려는 것뿐이고 앤드류가 게임에서 길드원 모집광고를 중지하라고 경고 받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마이너, 채이스, 샌 프란시스코 변호사 제이슨 슐츠같은 사람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슐츠는 "나는 블리자드가 정한 '따돌림 예방책'에 의해 차별받은 바로 그 사람들을 블리자드가 처벌한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항상 스스로를 숨기라는 말을 들었고 실세계에서도 정말 숨겼다. 나는 이 새로운 온라인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정직한 것 때문에 처벌받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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