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1949년 38선 충돌 통해 형성됐다"
 

 

[화제의 책] 정병준의 <한국전쟁>, 25년 만에 '커밍스 아성' 허물다

미국 워싱턴 근교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가면 세계적 자료수집가이며 국보급 연구자인 재미 사학자 방선주(73) 박사를 만날 수 있다. 깡마른 체격에 평안도 사투리가 인상적인 노인이다. 평소 방 박사와 같이 문서 속에 파묻혀 정년 없이 연구하고 싶은 것이 필자의 소원이었는데 언제나 실현이 가능할지 꿈만 꾸면서 게으름을 탓하고 있다.
  
  방 박사는 한국 현대사의 수준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려놓는 데에 기여하신 어른이다. 이번에 간행된 노작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돌베개 펴냄)을 지은 정병준 목포대 교수도 방 박사의 노고와 인도가 없었다면 아마 이러한 역작을 산출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25년 만에 '커밍스의 아성'을 무너뜨리다
  

▲ <한국전쟁 : 38선 충돌과 전쟁의 형성>(돌베개 펴냄) ⓒ프레시안

  한국전쟁 연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외국학자를 들라면 단연 브루스 커밍스 교수를 첫 손가락에 꼽을 것이다. 1981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출판부에서 간행된 <한국전쟁의 기원> 제1권은 국내의 연구자들이 오를 수 없는 거대한 성벽이었다. 식민지 시대와 광복 직후의 혁명적 상황을 연결시킨 탁견이나 인용한 자료들의 방대함을 보면서 경탄해 마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0년대에 비밀 해제된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소장 미국 문서뿐만 아니라 북한 노획 문서까지 폭넓게 활용하여 자료에 목말라 있던 1980년대 국내 연구자들에게 연구의 전범으로 간주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의 연구에서도 당연히 허점은 있었다. 사료는 누구보다도 많이 보았다지만 이를 하나의 시각으로 재단하면서 취사선택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1981년의 시점에서 이렇게 훌륭한 저작을 내놓았다는 점에 그 허점들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었기에 오랫동안 최고의 권위를 지켰다. 그러다가 1990년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을 역시 프린스턴대학교에서 간행하면서 그의 명성이 무색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정병준 교수의 최신 저작에 의해 그의 아성이 완전히 무너졌음을 선언해도 될 듯하다.
  
  정병준 교수는 커밍스 교수가 1990년대 중반에 비밀 해제된 구소련 문서를 연구에 반영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그 이전에 간행되었으니 당연한 이런 한계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에서 한국전쟁과 관련된 소련의 입장과 역할에 대한 큰 공백으로 남았다. 정 교수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에 대해 "미국의 역할과 입장에 대해서는 가설-추정은 물론 심지어는 모자이크까지 동원하여 규명하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입장과 역할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북한에 대한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구소련 문서는 그간 은폐되어 왔던 김일성의 남침에 대한 스탈린(과 모택동)의 승인과정에 대해 밝혀주고 있다. 물론 구소련 문서는 김일성의 역할을 과장하고 스탈린의 역할을 회피하려 했지만 행간에 숨어 있는 소련의 개입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었다. 스탈린은 김일성의 도발을 제어했으며 마지막 단계에서는 김일성의 전면 남침을 승인하여 최종 결정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도 개입을 철저히 은폐하는 데에 성공했다.
  

  남이 북의 남침을 유도했다?…"사료에 근거 두지 않은 부실한 주장"
  
  정병준 교수는 "남이 북의 남침을 유도했다"는 커밍스 교수의 또 다른 핵심 주장도 반박하고 있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에서 김백일과 백인엽이 '반격'이 아닌 '점령'을 목표로 1950년 6월 24~25일 저녁 해주를 공격했다는 추정을 주장의 근거로 제시했었다. 남한의 정보당국이 늦여름 북의 기습 공격을 인지하고, 국경선을 침범해 북의 기습 공격을 앞당기는 한편 한국군의 신속한 철수를 꾀했다는 것이다. 즉 선제공격으로 북한군을 끌어들인 후 신속하게 군대를 철수하고 미국의 개입을 획득하려 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정병준 교수는 "문서를 통해 보건대 당시 남한은 자신의 공격 의도에 스스로 오도됨으로써 북의 대규모 공격 징후를 무시했다"며 커밍스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남한은 신속하게 철군을 하기는 했지만 선제공격을 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공격을 유도함으로써 미국의 개입을 획득할 만큼 명민하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정병준 교수에 따르면, 당시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남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해 결국 정보부서의 수많은 남침 경고를 무시하는 우를 범했다. 또한 1949년 1월부터 7월까지 군사력 면에서 북에 비해 우위에 있던 한국군은 38선에서 북을 자주 공격했으며 따라서 그 관성 때문에 북의 남침 징후 역시 무시했다.
  
  정병준 교수는 "커밍스가 핵심적인 주장을 가설, 잘못된 자료 인용, 오독에 기반을 둔 추정에 의지했다"고 평가했다. 커밍스 교수는 그간 남한의 공식 전쟁사를 진실을 왜곡한 엉터리라고 비웃었지만 정작 커밍스 교수의 남침 유도설 역시 그것을 지지할 만한 사료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소련 문서, 선별노획문서 등을 접할 수 없었던 커밍스 교수의 근본적 한계에서 비롯됐다.
  
  방선주 박사의 기여가 빛을 발하는 것도 이 대목이다. 정병준 교수는 미국 문서와 소련 문서는 물론 방 박사에 의해 1990년대 초 발굴된 신노획문서(선별노획문서)까지 포함한 북한노획문서를 다각적으로 광범위하게 활용해 균형 잡힌 서술과 평가를 기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커밍스 교수의 권위를 일거에 무너뜨리며 "1949년 38선 충돌이 전쟁을 형성했다"는 주장에 이르게 된다. 그럼 1949년 38선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가?
  
▲ 국방군 포로수용소포로병 궐기대회 ⓒNARA

  1949년 38선 충돌이 전쟁을 형성했다
  
  1949년 1월부터 7월까지 병력과 무장력 면에서 앞서 있던 남한은 38선에서 주도적으로 공격했으며 북한은 비교적 소극적으로 응전했다. 1월부터 4월까지는 소규모의 병력이 충돌했으며 5월부터 7월까지는 연대급 전투도 발생했다. 1월 15일 시작된 남한의 초기 공격에 대해서 당시 주한미군 정보당국은 당시 방한한 유엔한국위원단과 세계 앞에 북한의 호전적 대응을 노골적으로 유도해 주한미군 철수를 반대하고 미국의 지원을 유지·확대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이 대규모 북침을 계획했다는 근거는 없다.
  
  1949년 6월 미군이 철수하자 완충지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1949년 7월 남한의 대북 공격설이 유포되었고 북한은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7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소위 7월 공세와 9월 공세라는 대규모 무장 유격전을 전개했다. 이러한 무장유격전은 민중봉기를 유도하는 한편 정부병력을 공비준동지역에 고정배치토록 함으로써 38선 지역의 국군병력이 약화되도록 하려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내부 전복을 위한 게릴라였던 것이다.
  1949년 8월 북한이 대한민국과 병력 및 장비 면에서 대등한 수준에 이르자 38선 부근에서 주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수세적 입장에서 공세적 입장으로 급격하게 변화된 것이었다. 이때부터 남한의 북침 가능성과 공격 징후에 대한 소련의 보고는 뚝 끊겼다. 8월 4일 북한은 3개 대대 병력을 동원해 옹진을 공격했으며 대한민국 국군은 옹진에서 궤멸 직전까지 몰렸다.
  
  소련은 평양 주재 슈티코프 대사를 통한 김일성의 8월 12일자 개전 요청에 대해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차원에서 심각하게 검토했다. 9월 24일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현 시점에서의 남침을 승낙하지 않으면서 북한 인민군을 강화시킬 것을 지시했다. 이에 슈티코프는 10월 4일 김일성-박헌영에게 이런 결정을 통보했으며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가 북의 전쟁 개시에 대해 검토할 정도로 사안이 구체화되기는 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북한은 1949년 10월 38선 이북에 있는 은파산 탈환에 나서는 등 이 지시에 완전히 복종하지는 않았으나 미-소 양국의 강력한 제어로 인해 더 이상 확전되지 않았으며 1949년 12월부터 1950년 5월까지 중대급 이상이 동원된 충돌은 없었다. 1950년 3월부터 38선 분쟁이 재개되었고 5월 5일부터 6월 16일 사이에 주당 평균 약 14건의 충돌이 있었으나 회수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충돌은 없었다.
  
  1950년의 38선 충돌은 대부분 정찰과정에서 일어난 소규모 충돌과 총격전 수준이었다. 따라서 국군은 38선 충돌이 소강 상태에 들어갔던 6·25 직전까지 남한 내부의 게릴라 소탕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반면에 1949년 5월부터 8월까지 38선 무장 충돌은 실질적으로 '작은 전쟁' 수준까지 고조되었다. 중대급 이상의 38선 충돌이 잠시 주춤하여 전쟁으로 바로 직결되지는 않았지만, 북한은 소규모의 38선 충돌 지속을 통해 병력 증강, 실전급 훈련, 무장 강화를 이루었으며 웅진 반도에서의 전투 경험을 토대로 '도발 받은 정의의 반공격전'이라는 개전 형식을 창출하는 등 핵심적인 전쟁 계획과 전쟁관을 수립했다. 따라서 6월 25일 북한의 공격은 38선 충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 노획된 북한군의 T-34형 탱크 ⓒNARA

  소련의 깊숙한 개입 증명한 부분 백미…한국전쟁 연구의 한 귀결
  
  이 책의 압권은 북한이 전쟁 직후 공개해 선전에 활용했던 '경무대에서 노획한 문서철'과 북한의 공격 명령서 수 종류를 한 곳에 모아놓고 분석하면서 북침이 아닌 소련의 깊숙한 개입을 증명한 부분이다. 소련이 작전 명령을 직접 작성하면서 한국전쟁에 깊숙이 개입한 것을 매우 균형 잡힌 분석으로 만 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한편 정병준 교수는 그간 국내의 다른 한국전쟁 연구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커밍스 교수의 연구 성과를 넘어섰다고 주장해 온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나남 펴냄)에 대해서 "전통주의에 입각해 결론을 맞추고 사실을 분석했으며, 정보 자료를 다루면서 정보원의 가치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등 자료를 다룬 방법과 태도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김영호 교수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전개과정>(두레 펴냄)이 미국의 대외정책을 인식하는 데에 사용되어 온 '롤백'이라는 개념을 스탈린의 대한정책-대미정책에 적용한, 설득력 있고 독특한 연구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정병준 교수 본인의 연구에는 약점이 없는가? 자료에 의해 치밀하게 논증되다 보니 이 책에는 허점이 거의 없다. 전통주의나 수정주의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았으니 더 이상 이념 논쟁의 대상이 될 여지도 거의 없어 보인다. 단지 미국 고위 당국자가 남침 정보를 무시한 것이 음모가 아니라 오판이며 결국 북한에 의한 불의의 기습 남침으로 이어져 미국의 '정보의 실패'가 초기대응 실패로 귀결되었다는 부분은 음모설과 마찬가지로 자료적 근거가 확고하지는 않으며 역시 추론에 불과한 측면이 있어 더 세밀한 논증이 필요하다.
  
  정병준 교수는 특정 이론이나 가설, 방법론보다는 자료에 근거해 사실을 규명하는 데에 주력하고 있다. 이론과 자료에 오도되거나 미혹되지 않고 역사적 진실 규명을 최우선에 둔 것이다. 빛바랜 자료들에서 역사의 진실을 추구하는 정 교수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1950년 한국의 비극을 느끼면서 잠 못 이뤘다는 정병준 교수의 노작을 읽으며 이제 독자들이 불면의 밤을 보낼 때다. 지금 우리는 이러한 불면의 밤을 통해 역사를 재평가하고 과격한 행동가나 무고한 희생자 모두를 한 곳에 모아 해원해야 한다.
   
 
  이완범/한국학중앙연구원

 

근데 이게 새로운 이야기인가?
노무현 / 2006-06-23 오후 9:17:42    
추천 6,    반대 0  
이미 커밍스이론은 90년대에 옐친과 영삼이가 손 잡은 시점에서 유효기간이 지났다. 그 때로부터 10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아직 정병준씨의 해당 저서를 읽지 못하고 여기에 글을 쓴다는 것이 약간 무안하지만, 위에서 언급된 주장들의 골자는 이미 신복룡 교수 등에 의해 몇 차례 제기된 것들이고 저서로도 적잖이 나와있다고 본다.

사료가 많이 보완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논점이 부각된 것인지..
적어도 위에 나온 내용들만을 놓고 본다면 새삼스럴게 없다는 느낌이다.

해원이라니, 노무현 따라하니?
회색분자 / 2006-06-23 오후 10:34:22    
추천 2,    반대 2  
서평 잘 쓰다가 끝에 가서 갑자기 해원 얘기는 왜 하는가?
노무현이 해원 얘기하면서 과거사 파헤치니 거기에 영합해서 감투라도 하나 쓰고 싶은가?
그러니 인식과 재인식 사이에서 박쥐 같다는 소리나 듣지?
반성해라, 무소신 학자여!
보위부 문서가 다 밝혀져야지
타공 / 2006-06-23 오후 10:13:33    
추천 3,    반대 0  
보위부 문서에 당시 누가 간첩이고,
지금도 그런지 써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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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6-06-24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릴케 현상 2006-06-24 0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박태균씨 한국전쟁 읽었는데 굳이 또 읽을 필욘 없겠죠^^

balmas 2006-06-24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껏 퍼왔는데, 벌써 여기 있었네 ... -_-;
 

에니메이션 보는 것 같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 (이 정도면 성공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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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6-23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지금 읽고 있는거 끝내고 읽어야죠. ^^
아직 시간이 많으니깐 머.
 

헬리콥터의 원리를 이용한 독특한 항공기 비상착륙 시스템이 개발됐다고 영국의 과학잡지 뉴사이언티스트 20일자 인터넷판이 보도했다.

태국 방콕에 사는 폴차이 파눔파이라는 발명가가 고안한 이 방식은 비상 착륙 직전 비행기의 날개 하나를 부러뜨려 몸통과 남은 날개 하나의 회전력으로 착륙하는 새로운 비상 착륙 기술이다.

마치 헬리콥터의 로터나 부메랑처럼 몸통과 날개가 회전하면서 생기는 ‘순간상승력’을 이용해 땅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다는 게 발명가의 설명.

이 발명자는 실험용 항공기에 탑승할 지원자를 간절히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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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6-06-24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발명가 자신이 타면 안되나요? ^^
 


다르지만 닮은 이마트와 월마트

잡화·의류 위주의 월마트에 비해 식품 등 다양성 갖춘 ‘하이퍼 마켓’… 재래시장 죽이기나 남품업체 압박, 저임금 구조 등 그림자는 닮은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다. 이름부터 비슷하다. 브랜드명의 뿌리가 창업자에 닿아 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은꼴이다. ‘월’마트는 창업자 샘 ‘월’턴에서 따왔고, ‘이’마트에는 (주)신세계 대주주인 ‘이’명희 회장의 이름이 녹아 있다. 이마트 사업 초기 신세계 쪽의 공식 설명은 ‘이코노믹’(economic)에서 따왔다는 것이었지만, 당시 신규사업팀을 이끌었던 정오묵 신세계 부사장(이마트부문 판매본부장)은 대주주의 이름을 반영했다고 밝힌다.

미국과 한국에서 절대강자 군림

월마트는 미국을 터전 삼아 세계 1위의 유통기업을 일궜다. 미국을 비롯해 전세계 10여 개국에 5천 개 안팎의 매장을 갖추고 있다. 한 해 매출 규모는 300조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라퀸타시의 월마트(위)와 한국 동해시의 이마트(오른쪽). 이마트는 한국형으로 진화했지만 상권파괴·저임노동 문제 등은 그대로 가져왓다. (사진/ 좌- REUTERS/ NEWSIS/ REPORT GALBRATH/ 우- 윤운식 기자)

월마트의 힘에 눌려 미국의 제조업체들은 납품 가격을 내리거나 최저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월마트의 저가 납품 요구에 맞추기 위한 비용 절감 노력은 미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을 듣는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경영대의 제임스 스미스 교수는 이를 두고 ‘월마티제이션’(미국 경제의 월마트화)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이마트의 기세도 월마트 못지않다. 적어도 국내에선 유통업계의 절대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해 기준 이마트의 매출은 8조1천억원에 이른다. 할인점 업계 2위인 삼성테스코(홈플러스) 4조6천억원, 3위인 롯데마트 3조3천억원을 합해도 이마트에 못 미친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지난해 매출 8천억원) 인수를 앞두고 있는 걸 감안하면 이마트의 존재는 더 도드라진다. 월마트코리아와 이마트 부문, 광주신세계를 포함한 신세계의 총매출은 10조1천억원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유통 강자 롯데의 유통 3사(롯데쇼핑·롯데미도파·롯데역사) 매출 9조9천억원을 웃돈다. 이마트의 활기에 힘입어 신세계가 숙적 롯데를 추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국내 유통업의 중심축이 백화점에서 할인점으로 바뀌었다는 뜻도 담겨 있다. 가히 ‘이마티제이션’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월마트, 이마트 모두 핵심 구호는 ‘Every Day Low Price’다. ‘매일매일 항상 싸게 판다’는 뜻으로, 대량 구매를 통해 최저 가격으로 제품을 공급해 고객들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월마트의 EDLP 슬로건은 초창기 이마트 사업에서 그대로 차용됐다. ‘이’마트 브랜드명에도 이 구호는 일부 담겨 있다고 신세계 쪽은 설명한다.

이마트는 월마트와 닮았으되 다르다. 전면에 내세운 구호나 한 나라 유통업의 절대 강자로 자리매김한 겉모양을 벗겨내고 나면 질적인 몇몇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점인데 월마트에는 식품 코너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의미 없는 비중이다. 이마트 매장에선 채소를 비롯해 식품 비중이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것과 큰 차이를 띠는 대목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부)는 “이마트는 월마트 같은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아니라 ‘하이퍼마켓’에 가까운 한국형 할인점”이라고 말한다. 하이퍼마켓은 슈퍼마켓보다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추고 저렴하게 파는 ‘더 높은 단계’(하이퍼)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형 할인점인 디스카운트 스토어가 잡화·의류를 중심으로 한다면, 하이퍼마켓은 거꾸로 1차 식품류 위주에 잡화·의류로 상품 구색을 맞춘 업태다. 하이퍼마켓의 대표 격은 프랑스계 다국적 할인점인 까르푸다. 서 교수 진단에 따르면 이마트는 초창기 상품 구색에서부터 월마트와는 아주 달랐던 것이다.

최저가 탈피한 백화점 이미지

월마트와 다른 이마트의 상품 구색은 우리의 생활 문화를 반영했다는 게 신세계 쪽의 설명이다. “외국계(월마트)는 소싱(제품 조달)을 외국에서 하다 보니 장기 보관할 수 있는 냉동식품을 주로 취급한다. 이마트는 야채나 과일, 수산물 같은 신선식품에 비중을 많이 두는 차별화를 꾀했다.”(김대식 신세계 홍보실 과장) 김 과장은 “한국의 주부들은 식사 준비를 위해 좋은 식료품을 갖춘 데를 먼저 찾고, 그날그날 장을 보는 경향이 강하다”며 “주말에 한두 번 할인점에 들르는 외국의 구매 패턴과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오묵 부사장은 “할인점에서 신선식품을 취급하는 건 어렵다는 전제가 있었지만 (주요 구매층인) 주부들을 오게 하려면 야채나 채소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월마트를 본보기로 삼되 그대로 따라하지는 않는 ‘한국형 전략’을 추구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인의 기호, 체형, 눈높이에 맞게 판매대를 짜고 구성했다는 점도 같은 맥락이다.

취급 물품의 가격대에서도 이마트는 월마트와 차이를 보인다. 월마트는 ‘everyday low price’라는 구호에서 드러나듯 미국 내 유통업계에서 가장 낮은 가격대에서 제품을 공급하는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시어스 등 백화점은 물론 K마트 같은 다른 할인점들보다 낮은 가격대로 자리매김돼 있다. 이마트는 최저 가격대로 여겨지기보다는 중저가 백화점 수준의 이미지를 띠고 있다. 백화점과 큰 차이 없는 매장 인테리어는 외국계의 창고형 할인매장과 뚜렷이 대비된다. 월마트와 달리 이마트의 영업점들에는 어린이 놀이시설이나 문화센터 등이 들어서 있는 것도 최저가 이미지를 떨쳐내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마트와 월마트는 그래도 닮았다. ‘소비자 지상주의’라는 명제 아래 극도의 가격 효율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산물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다. 재래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전통적인 유통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그 하나다. 또 고용을 창출한다는 자랑은 비정규직 양산이란 비난에 맞닥뜨리고 있다.

월마트는 미국 내에서만 13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고 자랑스레 밝혔지만, 대부분 유색인종·여성·비정규직으로 이뤄진 월마트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은 9달러 수준으로 조사돼 있다. 미국 통계청 조사에서 나타난 전체 산업 평균 임금(시간당 22달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월마티제이션’이라는 말에는 이런 어두운 면이 내재돼 있다. 이마트 노동자들의 절대 다수도 비정규직이다.

‘화해 프로그램’으로 화해되나

월마트와 이마트는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힘에 바탕을 두고 납품업체들에 가혹한 수준으로 납품가를 낮추도록 압박한다는 비난을 피해가지 못한다. 납품업체들에 대한 압박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사이판 소재 의류공장의 여성 노동자들이 미국 유명 업체 18개사의 하청업체들로부터 구타, 감금 등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다며 10억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을 때 월마트 이름을 앞자리에 올린 건 이런 연쇄고리에서 비롯됐다. 이마트를 둘러싼 납품가 구설도 잦다. 이마트가 월마트코리아 점포 16개를 인수함에 따라 납품업체에 대한 구매교섭력이 더욱 커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정은 더 나빠질 수 있다.

물건을 싸게 공급하는 경제적 효율성이란 밝은 앞면이, 어두운 뒷면과 나란히 짝을 이루고 있다는 자각 때문일까. 이마트는 나름대로 지역 사회와 ‘화해’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점포별로 지역의 하천이나 산, 강을 한 군데씩 지정해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환경친화적 경영을 도입하고 있으며, 판매액의 0.5%를 지역단체에 환원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이런 화해 프로그램이 밝은 면에 가려진 뒷면의 암도를 얼마나 묽게 할지는 미지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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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6월2일 서울 용산구 녹색소비자연대의 상담실. 초여름 날씨 속에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주부 상담원들이 전국에서 걸려온 소비자 피해 상담 전화를 받고 있었다. “혹시 대형 할인점 안 가는 사람 없어요?” 물었더니 주위가 잠잠해졌다. 대신 주말이면 온 가족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대형마트를 가지 않은 김미란씨.그는 대형마트를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니까 아빠와 함께 가요. 아빠가 쇼핑카트를 끌고, 쇼핑 도중에 푸드코트에서 밥도 먹고….” 대형마트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사로 통했던 쇼핑에 남성을 끌어들여 좋다는 것 같았다. 한 대형 할인점의 임원은 신문 기고에서 “대형마트의 출현이 가족 간의 화목을 증진시켰다”고 주장한 일도 있으니.

여지없이 깨진 ‘쇼핑의 로망’

나도 그런 ‘쇼핑의 로망’을 꿈꿨다. 쇼핑카트를 앞세우고 단란히 걸어가는 가족의 모습. 감격스럽게도 지난해 결혼에 성공해 쇼핑의 로망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제적 현실은 로망을 산산이 깨뜨렸다. 한번 마트에 갈 때마다 10만~15만원은 기본이었던 것이다. 일주일치 식품을 쇼핑카트에 가득 채우고 자동차용품이나 가구 코너를 기웃거린 게 화근이었다. 그러곤 석 달 전 마트 출입을 끊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노마트족’이라고 해도 될까. 생각보다 ‘노마트족’을 찾긴 어렵지 않았다. 대형 할인점 중심의 과잉소비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분자’에서부터 결심은 했으나 순간순간 기회를 엿보는 ‘회색분자’까지 할인점을 지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부천에서 만난 김미란(37)씨 가족은 ‘노마트족’의 혁명분자들처럼 보였다. 김씨가 말하는 ‘마트의 횡포’란 이런 것이었다.

“큰아이 입학 전에 마트에서 스케치북 10권을 묶어 팔았어요. 3천~4천원쯤 됐나? 싸다 싶어서 냉큼 담았지요. 그런데 10권이 필요하겠어요? 지금 아이가 3학년인데, 아직도 다 못 썼을걸요.”

노마트족으로 전향한 김씨는 현재 부천 두레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다. 김씨는 매주 금요일에 다음주 먹고 쓸 물건을 주문한다. 친환경 비누와 같은 생활용품에서 야채·과일 등 식품까지 망라한다. 주문한 물건은 화요일 오전에 배달된다.

김씨의 식구 4명이 이레를 날 물건들이 6월13일 오전 배달됐다. 마른 멸치, 애호박, 오이 2개, 곶감, 새송이버섯, 완숙 토마토, 산양유, 찌개용 두부… 6만6726원이 영수증에 찍혔다. 일주일에 보통 5만원을 쓰는데, 이번에는 곶감 때문에 1만6천원이 초과됐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할인점에 가지 않는 대신 생산지를 찾아간다. 지난해 봄에는 모내기가 끝난 용인 원삼농협 경작지에 찾아가 오리를 논에 풀어줬다. “우리가 오리농법을 하는 쌀을 받아먹거든요. 모내기가 끝난 논에 오리를 풀어주는 거죠.”

그렇게 일을 거둬 만든 쌀이 가을이 되어 가족 밥상에 오른다. 1년에 몇 차례 있는 생산지 방문 행사를 통해 소비자는 생산자의 힘겨운 노동을 몸소 체험하고, 소비자를 만난 생산자는 더욱 정성을 기울인다. 생산과 소비라는 행위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파주에 사는 김영희(39)씨는 김미란씨보다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김씨가 사는 곳은 이마트, 하나로마트 등 마트에 둘러싸여 있는 곳. 김영희씨도 한때 ‘마트의존형 인간’이었다.“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이프스타일처럼 마트에 갔죠. 그런데 씀씀이가 너무 커지는 거예요. 사온 먹을거리 중 상당수가 버려지고….”

김씨 가족은 2년 전부터 동네 슈퍼와 야채·채소 전문점을 다니는 버릇을 들였다. 처음엔 신선채소류부터 동네에서 해결했고, 나중에는 공산품 구입 때도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를 밟아갔다. 일주일 지출액이 10만~15만원에서 10만원 이하로 줄었다.

“동네 슈퍼도 나름대로 훌륭해요. 채소도 덤으로 얹어주고 단골을 만들 수도 있고….” 대형 할인점을 멀리하고 나선, 그는 동네 상인들과 인사를 할 정도로 잘 알고 지낸다. 그리고 자동차로 지나쳤던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소비와 판매를 매개로 움직이는 동네 커뮤니티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도시의 30~40대가 마트의 주 고객층

지난해 브랜드 가치평가 기관인 브랜드스톡이 리서치 패널 2451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 대형 할인점의 주 고객층은 30~40대로 나타났다. 이들이 할인점을 가장 자주 이용하고 지출액도 가장 컸다. 30~40대의 1회 평균 지출 비용이 12만7천원이나 됐다. ‘쇼핑 때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30대의 81%가, 40대의 92.8%가 할인점을 꼽았다. 전체 조사 대상자로 보면, 한번 방문할 때마다 5만~10만원을 쓴다고 대답한 사람이 40.2%로 가장 많았고, 10만~20만원은 25%로 나타났다. 대형 할인점이 소비상권을 장악한 도시의 30~40대는 마트에 의존해 일상을 영위하는 ‘마트형 인간’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 대형마트가 커뮤니치를 해체하는 소비라면, 동네슈퍼나 생협은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소비다.

혁명분자이건 회색분자이건 대형마트를 지양하는 사람들은 “마트를 줄이기 시작했더니, 소비가 줄어들었고, 씀씀이도 적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난 라이프스타일이 주는 괴로움도 있다. 풍족한 소비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때론 불편한 삶도 감수해야 한다.

김미란씨 가족이 지향하는 생활은 가난한 삶이었다. 대형마트에서뿐만 아니라 공산품이나 의류도 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랫집 언니의 옷을 물려 입고, 구멍난 옷은 꿰매 입는다. 한국소비자본주의가 이마트 체제가 되기 이전,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렵지 않은 풍경이었다. 대형 할인점이 유도하는 과잉소비는 제3세계의 빈민들에게도,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구에게도 죄악이다. 김씨는 “대형마트는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마트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삶의 철학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형마트는 환경의 적

물류센터를 활용하는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유독 한국에서만 대형 할인점 대 재래시장의 밥그릇 다툼으로만 비쳐져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형 할인점의 반환경성을 견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윤리적 소비’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은 지역경제에 관한 이슈이기도 하면서 환경에 관한 이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공공연히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 벗은 “대형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소매 체계가 지역의 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시스템이라면, 대형마트 체계는 지역의 산물을 중앙의 물류센터에 보냈다가 다시 각 지역으로 분배하는 체계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이를테면 일산에서 많이 나는 엽채류가 일단 타 지역의 중앙 물류센터로 갔다가 다시 일산의 할인점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불필요한 이동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의 유통 거리는 어마어마하다. 영국의 할인점 테스코의 주요 매장 9곳의 화물차는 한 해에 6억7천만 마일을 달린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24만 마일이니, 9개 매장의 화물차가 지구와 달 사이를 한 해 140번 왕복하는 셈이다.

지구적 규모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할인점은 좀더 싼값으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산을 쓰지 않고 중국이나 타이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에 갈 때도 개인 자동차를 몰고 간다. 이에 따라 화물선과 자동차가 내뿜는 온실가스는 극대화된다.

영국 테스코는 4월25일 1억파운드를 환경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지구의 벗은 “사회적 환원은 환영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유통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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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6-06-2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경청할 만하네요.

마노아 2006-06-23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하고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