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휴가에서 돌아와 처음엔 그녀가 무슨 스캔들을 일으킨 줄 알았다. 해맑은 모습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아나운서 노현정씨가 자사 연예프로그램의 리포터가 다가갔는데 자꾸 피하기에 말이다. 듣고 보니, 결혼발표를 했다나. 그건 그렇고 대체 상대가 누구길래, 저렇게 “잘 살겠다”는 말만 되풀이할까. 또 알고 보니, 재벌 3세라나.
‘재벌가와 결혼을 하면 갑자기 함구해야 한다. 그게 정숙한 예비 신부로서의 도리다?’ 알 수 없는 법칙 하나였다.
“연예인답지 않은 소박함이 맘에 들었어요.” “책임감 있고 성실한 모습에 끌렸죠.” 연예인들이 유력한 사람과 결혼할 때 흔히 나오는 ‘멘트’가 이번에는 없었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또 다시 드는 의문은 두 사람의 결혼 과정을 왜 남자 쪽 회사의 보도자료를 통해서 알려야 하는 걸까 말이다. 본인 직업이 ‘아나운서’ 아니던가. 알리는 일을 해온 그녀, 아니던가.
결국, 그건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결혼할 때 여자로서의 자세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이었다. 딸이 태어났을 때, “뭐라도 하나 달고 태어나지 그랬노” 하는 탄식을 하는 경우는 이제 드물다. “딸이 더 낫지”가 면피성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 되고, 학교에서도 남녀 차별없이 경쟁하다가 직장도 들어가고…. 거기까진 여자라서 뒤로 빠지고 하는 경우는 확 줄었다.
여성으로서의 콤플렉스를 거의 못느끼고 살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륜지대사’ 결혼이라는 상황에 부닥치면 ‘아녀자’로서의 자신의 처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될 것이다. 일단 상견례 자리부터 남자 집안에 ‘일단 굽혀주는’ 여자 부모님부터 시작, 시댁 쪽에 인사를 드리는 차원에서 드리는 예단, 결혼 후 시댁 쪽 친척만 모아서 드리는 폐백, 이바지 음식까지.
재미있는 건, 사회적 명성이나 경제적 지위가 높은 시댁일수록 ‘여자는 여자’ 법칙을 더 까다롭게 지키려 하고, 여자 쪽은 “시댁이 엄하셔”라며 무릇 이런 피학적 상황을 대외과시용으로 삼는 경향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가학과 피학의 전제는 괜찮은 요즘 기준으로, 아파트 한 채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안하고, ‘엄한 시댁’ 노릇을 하려 했다간 망신만 당할 터.
부자나 유명인의 결혼 현장을 보존하는 것도 좋은 일인 듯 싶다. 전주대사습 놀이 이래, 가장 아름다운 전통 계승의 현장이 아닌가 말이다.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 [블로그 바로가기 zeen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