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 여행
아이작 아시모프 지음, 김대웅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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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특징 중에는 사회성과 역사성이 있다고 어렸을 적 국어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이러한 특징이 개념이라는 틀을 넘어 언어의 생명성이 바로 피부에 와 닿을 때가 가끔씩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후가 그렇다.

생명체는 그냥 태어나지 않는다. 이유 없는 존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근원이 있고, 그곳에는 사연, 전설,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계절이 바뀌고, 밤 낮이 바뀌며,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 등의 현상들에 대한 인간의 상상력은 문학성과 역사성, 문화, 신앙을 녹여 신화를 탄생 시켰다. 신화는 이렇게 이성적 앎의 욕구가 만들어낸 인간의 또 다른 역사이다. 비록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하여 ‘신화적 상상’은 사라졌지만, 그 시대의 정신은 언어에 그대로 남아있다. 언어의 무한한 번식력과 생명력을 감안한다면, 신화는 인간 사회와 시대상을 파악 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화 속으로 떠나는 언어 여행’이 즐거운 이유는 ‘언어의 광맥’ 그리스 로마 신화를 탐험하여 우리가 쓰는 언어의 뿌리를 찾아내는 발견의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태초의 우주는 혼돈(chaos) 상태였으나 형태와 모양이 갖춰진 우주(cosmos)가 탄생함으로써 이야기는 시작한다. 현대에 이르러 온실 가스(gas)는 환경을 혼돈 상태로 만들었다, 우주는 화장품(cosmetics)이 되어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 여성들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았고, 로마의 대지의 여신(Terra)은 스타크래프트의 테란이 되어 저그를 무찌르고, 그리스의 대지의 여신(Gaea)은 지질학(geology)을 연구한다. 화산의 분화구가 연상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Cyclops)는 매년 여름에 나타나 휘젓고 다닌다(Cyclone). 거인족, 올림푸스 신들은 행성이 되어 태양계를 빙빙 돌거나, 화학 주기율표의 한자리를 차지하여 수험생의 암기대상이 되었다, 꿈의 신(Morpheus)는 모르핀으로 둔갑하여 고통을 덜어준다. 큐피드의 정신을 쏘옥 •壺記?프쉬케(Psyche)공주는 심리학(Psychology)을 전공하고 있다.

신화에서 파생된 단어들의 분야와 범위, 용도를 살펴보면 대단히 흥미롭다. 물론 20세기의 최고의 지성 아이작 아시모프는 단순히 어원을 찾는 과정만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동양의 한자에는 동양철학이 담겨 있듯이 서구 문화의 코어 부문에 해당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살펴봄으로써 문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를 준다. 그것은 언어의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문화와 정신의 고리를 잇게 한다. 아름답고 서정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 이렇게 읽어도 재미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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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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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비슷한 오늘을 살고 있다. 오늘과 비슷한 내일이 올 것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은 두 번 오지 않는다. 매일 보이는 것이 어제와 같지 않을 것이고, 매일 느끼는 것들은 새로운 얼굴이 되어 나타나지 않던가. 이러한 순간들이 인생이 되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한다면? 이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크로키가 될 것이고, 글로 표현한다면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이 해당 될 것 같다. 이 책에 삽입되어 있는 삽화와 글들이 그렇다. 가볍고, 빠르고, 어? 하게 만드는 순간의 단편들. 번쩍하고 지나가지만, 손에서 눈에서 기억에서 떠나지 않는 것들.

이 책 서두에서 순간은 모두가 황홀할 수 없지만, 어느 한 순간이라도 내 인생이 아닐 수 없고, 인생의 열쇠가 될 수는 있지만, 인생 전체는 아니다.라고 말을 한다. 콩트, 유머, 일기, 메모, 우화 같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기에 딱 맞는 말이다. 소설집이라는 간판이 무색한 ‘이상한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나름대로 독특하게 읽히기는 하는데…

솔직히 기대에 못 미치는 내용들이었다. 성석제 특유의 필치가 드러나는 ‘부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전체적으로 흥이 나질 않는다. 해학, 풍자 뒤의 껄쩍지근함 어디로 갔나. 껄껄거리다가 ‘턱’하고 턱 빠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번쩍’하는 순간 순간의 일상의 단편들이라서 그런가 크로키 하듯이 휙휙 그려낸 이야기들은 정말 ‘번쩍’하고 지나간다. 순간의 ‘가벼움’이 이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의 황홀함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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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털 같은 나날
류진운 지음, 김영철 옮김 / 소나무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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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의 삶을 현미경으로 그려냈다는 「닭털 같은 나날」을 읽어보니 수학에만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는 일상의 공식, 그렇게 매일 소비되는 인생을 돌아볼 기회조차 잊어버리게 하는 남루한 일상. 그것들은 국경, 시간을 넘어 비슷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늘 숨쉬고 있었다. 더럽고, 치사하고, 왠지 쪼잔한 느낌마저 갖게 하는 그것들이 몸에 익숙해지는 순간을 ‘사회화’됐다고 하는 것일까. 꿈이 발육촉진제로써의 역할에 그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시도를 통하여 얻은 좌절과 비애가 던져주는 현실감각이 우리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변화에 대한 당위성, 무엇보다도 어떻게 되든 살아야 한다는 목표는 비장하고 비정한 바람이 되어버렸다.

양은냄비 같이 가볍게 달그락 거리는 값싼 일상과 우리도 익숙한 ‘이기적 소시민’을 보여주는 ‘닭털 같은 나날’, 권모와 술수, 탐욕과 영욕으로 가득찬 전형적인 관료사회를 비판하는 ‘관리들 만세’와 재난보다 더 무서운 정부의 무책임함과 야만성을 기록한 ‘1942년을 돌아보다’, 이 세가지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인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엿보기의 즐거움, 소설은 현실을 이야기하고, 우리는 현실을 말하려 한다. 그렇지만 친숙하지 않은 곳에서 발견한 반갑지 않은 친숙함이 무척 당황스럽다.

해답이 없는 공식이 답답하다. 하지만 작은 소득, 사소한 행복을 빛나게 한다. 조금씩 전진하고 다시 돌아가고, 반복되어도 어느샌가 이만큼 진보한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안도감이 주는 여유는 거울을 보게 하고, 거울을 보니 거울은 자신의 모습뿐 만 아니라 세상을 비추고 있었다. 몰랐던가. 내가 중심에 서 있는 삶에서 시선을 돌리니 그곳에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있었다. 인간이 주인인 세상, 그러나 주인답지 못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

닭털 같은 나날을 보내는 세상… 일상의 공식이 사람을 잡아먹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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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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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선과 여백이다. 그것은 대상을 마음으로 느껴서 알고 있던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하여 얻은 단순 지식에 불과하다. ‘미’는 인류가 추구해오던 가장 본능적인 욕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의 대상과 의미를 누군가에 의해 주입되었다는 사실은 꽤나 불쾌한 느낌을 준다. 한국인이 한국의 미를 제대로 모른다면, 느낄 수 없다면 그것 참 안된 일이다. 주입된 지식을 거부하고, 제대로 된 느낌을 원한다면 우선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지고 바라보아야 하는가’부터 고민해야 한다.

이 책이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은 ‘옛 그림을 감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감상하라.’ 그리고 글씨를 좌에서 우로 썼듯이 그림도 우상에서 좌하로 읽어가라. 그림의 크기에 따라 거리를 두어라. 시간을 가지고 여유롭게 감상하라 등 가장 기초적인 사항들이지만, 몰랐거나 소홀히 했던 것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지식으로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즐길 수 없던 현실이 참으로 건조하고 비틀리게 느껴진다. 이렇듯 어린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듯이 걷는 법을 가르치고 난 뒤에 옛 그림 한 점 한 점들을 감상하기 시작하는데, 저자의 강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해온 사람답게 대중이 무엇을 원하고, 흥미로워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또한 일방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또는 독자와의 호흡이 이뤄지고 있다. 대중의 반응까지도 책에 표시해 두니 독자 또한 생생한 강의 느낌을 갖는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든 점은 적절한 그림의 적절한 배치를 꼽고 싶다. 그림을 읽어주는데 그림이 빠지거나 글과 너무 떨어져 있다면 감상 또는 독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을 것이다.

감상은 ‘보인다’와 ‘본다’의 차이를 넘어서 마음을 마음으로 느끼는 작업이다. 저자의 강의는 이 부분에 중점을 둔다. 화폭에 담긴 화가의 정신, 그 시대의 가치관과 문화, 역사까지 어떻게 마음에 그려내야 하는가를 보여주는데…
어렵다. 저자의 설명이 아무리 쉽다고 해도 내 것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욕심이 앞서는 것일까. 감상이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답답함이 여전하다. 단순히 보여줄 뿐 상상력과 영감을 주지는 않는 영상매체에 괜한 탓만 해 본다.

‘내 집사람이 일찍이 말하기를 매일 밤 베개밑에서 ‘쉬이! 비켜섰거라 하는 권마성이 들리는가 하면 노새 말방울 딸랑거리는 소리가 나고 ~ 생략 ~ 잠이 막 들라는 순간에 정신을 번쩍 차려서 어디서 나는 소린지 애써 신경을 써보라 했더니, 바로 그 소리가 머리 위 병풍 사이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병풍이었고, 다른 곳으로 옮겨 놓으니 그 뒤로는 다시 그런 일이 없었다’ 82p 조선말 이유원의 기록은 참으로 재미있으면서도 왠지 부럽다.

마지막으로 솔직히 이 책의 서두 ‘책을 펴내며’ 부분은 읽기가 상당히 거북했다. 민족주의가 안 좋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최고’라는 생각이 주는 편협함이 싫다. ‘한국인은 언제나 위대했다. 몽골은 어떠했고, 베트남은 어떠했고, 우리의 역사는 찬란하고… ‘ 우리의 위대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우리 주변을 격하시킨다. 그리고 우리를 구분 짓기 위해서 우리에 포함되는 부분과 아닌 부분을 격리 시킨다. 혈통의 순수성을 위해 비순수성을 억압한다. 이질성을 거부하고 극으로 달리는 모습은 역사를 통해서 많이 보아오던 것들이다. 그러나 책 전체로 보아서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일제에 의하여 빼앗기고 훼손된 문화와 문화재에 대한 분노라 보겠다.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좀 과하게 호소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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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읽는 알고리즘 -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알고리즘 이야기
임백준 지음 / 한빛미디어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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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프로그래밍에 이어서 나온 책으로서 전작은 전산분야에 대한 흥미를 이끌었다면, 이번 책은 알고리즘에 대한 재미를 준다. 물론 깊이가 있거나 교육을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 아니기 때문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알고리즘이 재미가 있을 수가 있구나 정도(?).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정보의 주목적이니 충분히 만족스러운 내용이었다.

저자가 퀴즈를 내고 독자가 해결함으로써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는데, 이것은 개발자가 개발업무를 하면서 느끼는 희열과 유사함을 지닌다. 저자는 알고리즘은 바로 이러한 퀴즈와 동일선상에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구성과 글솜씨를 보여준다. 전혀 엔지니어 답지않다.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들은 3줄짜리 코드라던가, 처음 들어보는 알고리즘들이었다. 짧은 코드에 담긴 심오함, 최적화되어진 코드에서 풍겨나오는 개발자들의 아이디어가 기분을 좋게 한다. 카누스 교수의 말대로 알고리즘을 어떻게 보면 또 다른 예술의 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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