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 부키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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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경쟁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다. 네가 많이 차지하느냐, 내가 많이 차지하느냐. 눈에 핏발을 세우고 으르렁 거리다 보면 서로의 정신과 몸에는 상처만 남게 된다. 그렇지만 나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알게 하기 때문에 그 고통들이 점철되어 질서를 낳는다. 질서는 상생과 공존, 평화의 다른 이름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우둔한 인류에게 공존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내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끊임없이 야만의 뇌를 깨운다. 패자(敗者)들의 질서는 패자(覇者)들에 의하여 피로 얼룩지고, 패자(悖子)들만의 질서를 세운다. 그 중에서 가족, 공동체 단위에서의 질서는 윤리교과서를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국제 질서는 인간의 바닥을 드러나게 하고, 이에 대한 저항을 매우 힘들게 한다. 무엇이?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힘의 논리에 쉽게 굴복하는 항민들은 이것이 현실이라며 스스로를 저주하면서 산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질서 속에서 자신만의 안위를 고민하는 인간들은 ‘이것이 국익이다’라고 왜곡하며 전쟁터로 이웃을 떠미는 작태까지 보인다. 이들의 굳은 믿음은 그들의 비정상적인 정신세계 속에서만 영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믿음을 현실화 시키려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치명적이 듯이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가로막는 이들의 존재는 호환, 마마보다도 지저분하다.

이 책은 이러한 패자(覇者)들의 질서의 한 예로 들 수 있는 신자유화와 세계화를 요구하며 개발도상국에게 이런 저런 정책과 제도를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까발리는 게 주목적이고 그 역할을 충분히 한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프리드리히 리스트가 자국 산업 보호를 목적으로 외국의 개방압력을 비판할 때 비유했던 말이라고 하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다. 먼저 올라갔기에 나중에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 차버리는 ‘심술’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덩달아 외치는 사다리 밑 존재들에 대해서는 시간이 아까워서 생략한다.

이 책의 설득력과 정당성은 역사에 근거한다. 1부에서는 선진국들이 과거에 저질렀던 ‘불륜’을 적나라하게 펼친다. 법정에 선다면 위자료 물고 이혼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그들이 현재 개발도상국들에 권고하는 ‘바람직한 정책과 제도’는 상당히 멀리했고,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과 제도’로 산업 성장을 해왔다. 2부는 개발도상국의 제도의 발전 속도는 그 당시 선진국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다만 제도의 발전은 요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진국들의 역사적 접근방법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정착,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3부는 정책과 제도에 대한 재인식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동반자로서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관계와 비전을 모색한다. 개발도상국의 발전 단계에 맞는 적절한 제도와 적절한 정책으로 인한 경제성장이 선진국에도 투자와 무역의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끝을 맺는데…

그렇지만 결국은 죄수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질서의 탄생은 그들이 아닌 우리 스스로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 개인을 막론하고 농민, 실업자가 자살하는 현실을 외면하는 자들에게도 냉혹한 미래는 똑같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명심한다면, 대상화와 타자화로 점점 더 고립되어 가는 세계는 분명히 새로운 질서를 맞이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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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연구원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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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너무나도 유명한 「데미안」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그런데 알은 깨고 나와야 하는 세계여야 하는가. 그 당위성은 아주 냉엄하고도 비관적인 미래를 보여주는 제레미 리프킨의 엔트로피에서 설파된다. 어떤 세계를. 왜. 무엇을 위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관에 의해 의식의 한계성을 지닌다. 삶 자체에 깊숙이 스며있고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하는 세계관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지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우리 대부분의 삶의 목표는 물질적 풍요와 욕망에 대한 충족을 들 수 있다. 사회 활동 자체가 우리의 욕망을 채우는 과정인 것이다. 기술은 이러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진보해왔으며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가 열역학 제2법칙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총량이 증가한 다는 것은 무용한 에너지의 증가를 의미하고 이것은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한계를 의미한다. 물론 에너지가 전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생명체가 살 수 있게 하는 포괄적인 자원의 한계를 말한다. 또한 엔트로피의 증가는 무질서를 양산하기 때문에 인류의 시스템은 비대해지고, 전문화되어 간다. 그 비대함을 유지 관리 하기 위해 더욱 더 고 엔트로피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브레이크 없이 인류는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가 이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이 책에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한들 마이너스 엔트로피는 폐쇄계에서는 불가하다. 단지 엔트로피의 증가만을 가속화 시킬 뿐이다. 인구의 증가는 더욱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그것이 나무에서 석탄으로, 석탄에서 석유로 그리고 원자력으로 얻기 힘들고 위험한 대상으로 옮겨 가고만 있지 전혀 개선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자연은 순환하는 것이고, 인간은 언젠가는 땅에 묻히기 마련 아닌가. 다만 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중히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절벽으로 달리는 우리의 ‘숙명적인 아주 먼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을까?하고 의구심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우리의 현재의 삶에도 그 영향력이 없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를 생각해보면 알 것 같다. 오염과 혼란, 각종 위험과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삶이 바로 고 엔트로피 문화가 만들어낸 부산물 아니던가.

간단히 이 책의 주제를 말한다면, 오만한 인간 중심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저성정, 저 엔트로피 문화를 형성하고,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과 자연과의 동화를 통하여 공존을 모색하라. 제목만 보아서는 물리학 관련 서적 같지만, 이 책의 성격은 주제만큼이나 복합적이다. 동양 철학과 종교의 사상을 말하고, 생태주의와 저성장과 분배를 논한다. 분배 없이 저성장을 논하는 것은 선진국의 횡포이며, 서양의 물질중심, 자연의 식민화를 비판하면서 동양사상에서 그 대안을 찾는 등 그 범위와 깊이에 있어서 흥미를 돋군다.

'전쟁 준비는 인간 활동 중 가장 많은 엔트로피를 증대시키는 활동이다. 미사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 뿐이다. 파괴를 위해 사용하거나 고물이 될 때까지 보관하다가 폐기하는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 미사일을 만드는 데 들어간 지구의 자원은 고정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후손들이 쓸 쟁기를 빼앗아 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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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을 배우기 전 세상은 아름다웠다 - 톨텍 인디언이 들려주는 지혜의 목소리
돈 미구엘 루이스 지음, 이진 옮김 / 더북컴퍼니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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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담백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맑고, 깨끗한 맛을 나타낼 때 ‘담백하다’고 표현을 한다. 여기까지 좋은 의미이고, 또 다른 의미로 담백하다고 표현을 하는데, 맛이 닝닝하고, 뭔가 빠진 듯 한데 썩 끌리지는 않으면서 개성은 없고, 딱 뭐라 표현하기 뭐할 때 ‘담백하다’라고 얼버무린다. 그래서 이 책은 ‘담백하다’고 말할 수 있다.

명상책들의 보편적인 성격이기도 하지만, 뭔가 있긴 있는데 어디서 들어 본 듯 하고, 읽다 보면 그게 그 내용이라 심각하게 지루하다.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은 형식이 의미를 지배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볼 수 있다. 고로 말을 배움으로써 거짓의 지식을 알게 하고, 그것이 진리와 나를 멀어지게 함으로써 불행이 나를 찾아온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화내지 말며, 진리를 추구하고, 사랑하라는게 이 책의 테마이자 줄기로 요약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주장을 듣다 보면 몽실몽실한 뜬구름을 잡으려고 손짓하는 나를 보게 된다.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모습이 진리에 다가가는 행위일까? 읽으며 내내 고민했다. 계속 읽어 말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세상을 살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관념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책을 보는 건 심한 인내력을 요구한다. 좋은 재료는 음식 맛의 전부가 아니다. 손맛이 있어야 하고, 주방장의 요리철학이 담겨 있어야 참 맛이 살아난다. 흔하면서 늘 다루는 주제를 식상한 방식으로 요리한 이 책에서 그나마 발견한 것을 굳이 꼽자면, 사람, 음식, 책에는 공통적인 것이 있었다. 바로 궁합. 그리고 나와 이 책은 상극이라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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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 삶과 전설 1
부사령관 마르코스 지음, 주제 사라마구 서문, 후아나 폰세 데 레온 엮음, 윤길순 옮김 / 해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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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거리도 아니오, 볼거리도 아닌데 그 곳에는 세계의 시선이 모여있다. 전체 인구의 70%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50%가 영양실조이며, 3분의 2는 하수 시설이 없어 마실 물 조차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거기.
최저 임금보다 못한 임금에 만족해야 하며 전력도 없고, 포장 도로 조차 없는 거기에는 병원 대신 병영이, 학교 대신 감옥이, 진흙 바닥 생활을 하는 그들의 삶을 비웃기라도 하듯 관광을 위한 숙박시설만 있을 뿐이다. 그 어느 곳보다도 결핍과 불평등이 가득하면서도 ‘고칠 수 있는 병’에 사라지는 영혼만큼은 어느 곳보다도 풍부한 곳이 바로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이다. 그곳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원주민들의 위대한 저항이 10년째 계속 되고 있고(아니 500년째!), 진정한 민주사회로 대체하기 위한 혁명의 바람을 응축하고 세계 곳곳으로 전파하기 때문이다.

개발과 근대화라는 이름의 강요는 그들의 토지를 앗아가고, 정글로 깊숙이 밀어내었다. 존엄과 정의는 사라지고 그들의 이름과 존재는 가려졌기에 그들은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 폭력적 혁명이 아닌 근본적이고 민주적인 대화를 통하여 ‘단지 세상을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 그들이 요구한 전부였고, 단지 존재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군대와 백색경비대, 지주들의 폭력과 살육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던 그들은 이제 전 세계와의 연대를 통하여 미완의 혁명을 지속시키고 있다.

역사 속에는 이러한 악취가 나는 야만의 그늘이 늘 드리워져 있었다. 금덩이에 환장한 청교도 정복자들에 의해 붉은 피가 대지 위에 뿌려지고, 그 후손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박물관의 박제로 전락한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이 그러하고, 평화롭고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들을 ‘보호’와 ‘관리’라는 백인들의 정책에 의해 거리의 부랑자, 약물 중독자 같은 사회 부적격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 그러하다. 이러한 근대화, 문명화의 탈을 쓴 야만적 행위는 19세기 식민정책에서 경쟁과 자유무역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무장한 21세기 ‘식민(食民)’정책에 의해 더욱 위험해지고, 노골적으로 변해버렸다. 원주민을 원시인으로 착각한 미천한 세력들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 존재, 물질, 가치를 자본의 노예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을 피부로 느끼면서도 거부할 수 없게 만들고 있으니 인류 최대의 위기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말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여 가장 기본적인 생존과 존엄을 찾으려는 사파티스타의 당위적 요구를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여러 글을 통하여 전한다.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이 질리게 하지만, 끝을 보고 나면 부수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멕시코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그들의 사상과 철학이 어떻게 변하고 대처하는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무기입니다’ 이 책의 제목이 매우 흥미롭다.
그들의 무기는 말이다. 무기는 본래 파괴 또는 방어의 목적을 지니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말은 소통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인류는 그토록 잔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와 존엄을 이야기 할 수 있고, 설득하여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통을 방해하는 자’들에게는 말은 가장 큰 위협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기는 말이다.
민주, 자유, 정의, 존엄을 위한 그들의 무기는 그들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주변화 된 가치와 사람들의 바람이 되어 세계로 퍼져나간다.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힘이 세계를 움직인다지만, 절벽의 꽃이 보이지 않는다 한들 향까지 감출 수는 없는 것이다. 내일의 나무는 누군가는 심어야 내일의 과일을 맺을 수 있는 것이고, 현재의 그늘은 그 자리를 벗어나야 지울 수 있는 것이다.

거울은 우리를 가둔 세상만큼을 비추지만, 유리는 건너편의 세상을 보여준다. 유리의 장막, 그것조차 깨버리고 건너편으로 한걸음 내딛는 힘은 끊임없는 관심과 의식의 진보, 용기 있는 실천에서 온다. 타인을 타인으로써 인정하고, 관리의 대상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써 바라본다면 이것이 진정한 세계시민으로써 기본 자세이며 우리가 바라는 사회로 가는 정도가 아닐까? 사파티스타, 이제 멀지 않은 우리의 이야기임을 절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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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 - 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
정문술 지음 / 키와채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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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성공적이면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인간만큼이나 다양하다. 부의 축적을 위해, 사회적 지위 상승을 위해, 명예와 존경을 받기 위해, 헌신과 희생으로 타인의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 물론 어느 것을 지목해서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규정 지을 수 있는 성향의 것들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의 방식을 존중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살아도 되는 자유가 있지 않던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의 삶을 지켜보고, 그들의 삶에 다가서려고 노력한다. 책을 통해서건, 대중매체를 통해서건 삶의 모델을 찾는다. 그 속에는 자신이 바라던 삶의 한 부분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꿈, 이상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그것.

벤쳐 신화라 불리는 정문술씨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경영’은 경영자의 한 모델을 보여준다. 물론 극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이고, 그러한 기업을 만들어내면 ‘훌륭한’ 경영인이라 불리는 것이 정석이다. 극대 이윤을 위해서라면 도덕적 해이는 기본으로 하고 탈법까지 일삼는 ‘변질된 정석’이 더욱 사랑받는 이 땅에서 그는 ‘거꾸로 경영’을 한다는데…

정리한다면 거꾸로 걷는 놈들 사이에서 똑바로 걸으니 ‘상대적으로 거꾸로 가기’인 셈이다. 솔직히 모두 거꾸로 가는데 혼자서 똑바로 걷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너도 한번 거꾸로 걸어봐’하고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은 계속 귀에서 윙윙거릴 테니 여간 신경쓰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이 그 부분이다. 인간적인 고뇌. 똑바로 걷기의 어려움.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사실이 잘 드러나는 일화들. 이것은 경영철학과 소신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고집불통이 되어야 한다. 책 내용 중에 그런 면이 꽤 보이는데 심하다 싶을 정도로 거침없이 일을 처리한다. 예를 들면 ‘방만한 운영’을 지적하는 재무이사를 도리어 해고한다던가, 정부의 벤쳐 지원을 오히려 거부하고, 이런 저런 행사에 불참하는 등 강경한 자신만의 원리를 실천한다. 그 고집이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 뿌려졌다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서민의 피와 영혼을 빨아먹고도 뻔뻔하게 29만원 신고한 인간백정 전모씨나 수 조원을 해외로 빼돌리고 도망다니는 김우x씨 같은 이들의 재물에 대한 고집 얼마나 지독하고 추잡하고 더럽던가.

보편적 윤리와 도덕성을 강조하고 그렇게 벤쳐신화를 창조한 저자의 열정과 노력이 취업을 희망하는 대학생, 회사에서 밤샘하면서 젊음을 태우는 회사원들, 그리고 경영인들에게 작은 자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액을 기부한 행위 자체보다는 사회, 즉 이웃, 동료와 함께 하고, 기술과 인간경영으로 목표를 이루고 또다시 목표를 만들어 내는 진정한 벤쳐정신(도전, 창의, 호기심)만이 IT산업의 비전을 제시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저자의 말대로 ‘착한 기업’이 오래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똑바로 걷는 것이 정석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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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5-01-19 1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에 당선되셨네요. 축하드립니다^^

라주미힌 2005-01-2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경써서 쓴 것은 반응이 별로 없는뎅.. 운좋게 됐네요..
ㅋ.. 암튼 감사합니다.

IshaGreen 2005-01-22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늦었긴 하지만 이주의 마이리뷰 당선 축하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