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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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신 너무 도도하군요. 알 수 없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나의 심미적 관점을 이해 못하는 것을 이해합니다. 다만 대상과 본연에 대한 다른 시각을 통하여 좀 더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자유로움? 당신이 말하는 자유가 공허한 울림으로 보이는군요. 형식에 너무 치우쳐 본래적 의미를 어설프게 복제, 재생산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은 해보셨나요?"

"본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본질에 다가가는 노력은 존재의 무게감을 더할 수 있는 위대한 투쟁이며, 하늘이 내린 인간의 숙명입니다."

"그것이 숙명이라면, 그러한 노력이 빛을 발하려면, 주위와의 끊임없는 소통을 통하여 함께 하는 미덕 또한 보여야 마땅한 것 아닌가요? "

"보이는 것만 담으려고 하는 시각적 관성에서 벗어나면 보이지 않는 것도 담을 수 있고,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습니다."

"소통의 전제 조건은 열림과 낮은 문턱입니다. 당신을 이해하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하루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고개에 비해 너무나 높습니다. 스스로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예술과 대중이 맞선을 본다면 아마 이런 식의 대화가 오고 갈 것 같다. 너무나 높은 벽을 두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대중’양과 ‘예술’씨. 서로 간의 소통의 필요성을 인식은 하고 있으나, 각고의 노력은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짠~ 하고 나타났다. 대중양과 예술씨의 연을 맺기 위해 여러 권의 책을 낸 ‘베테랑 마담뚜’ 이주헌.

그의 그림 보기는 상당히 전문적이다. 그러나 전문적인 글쓰기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베테랑 마담뚜의 기본적으로 가장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이해와 포용의 길을 트기 위해서는 너무 낮지도, 너무 높지도,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균형감각을 유지해야 성공적인 맞선을 이끌 수 있다. 서로에 대한 기대와 만족은 수평적이고, 격이 없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번역과 비슷한 부분인데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작업에는 각자의 언어와 정신를 이해하고, 깊고 따뜻한 애정을 담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커다란 울림을 전해준다.

‘나는 찾지 않는다. 발견한다’라고 피카소가 말했듯이 이 책에서는 기쁨을 발견한다. 발견한 기쁨은 고속도로 휴게소와 같은 여유와 문화적 갈증 해소에 있다. 열심히 달려온 당신, 좀 쉬어라.
좀 쉬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왔는가. 나는 왜 이런 즐거움을 맛보지 못하고 있었는가.(개인적으로 예술은 대중과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는 본다. 너무나 친밀해지면 역시나 자본 획득의 도구로 전락해 버리니까) 나는 문화적 배경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창의성보다는 생산성에 중점을 둔 사회 아니던가. 다시 말하면, 얼마나 더 돈벌이에 적합한 활동을 하고 있느냐가 주된 관심사가 되고, 삶의 동력원이 된다. 그런 면에서 회화, 조각, 설치미술 같은 것은 세계적인 명성을 갖지 않는 한 돈벌이에는 아주 부적합하다. 당연히 관심에서 멀어질 수 밖에……. 가끔 뉴스에서 어느 화가의 무슨 작품이 수십 수백억에 팔렸다, 라는 것을 중점 보도하는 것을 보면, 예술적 가치 또한 화폐적 가치로 치환되고 있음을 노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싹을 틔우기란 어렵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도 나에겐 어렵다. 그림보다 글이 먼저 눈에 파고드는 것을 막느라 진땀을 뺐다. 하지만 의미 있는 책읽기였음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죽은 서양 화가들이 아닌, 살아 있는 한국 화가를 소개하는 이런 책은 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양적 요소와 현대적 시선의 조화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둘째, 제목에서 보듯이 오늘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연결선상에 있다. ‘오늘의 화가’, ‘오늘의 그림들’에서는 과거와 미래로 동시에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내포하고 있기에 나 같은 사람에게 적합하다.

셋째, 책의 3부에 해당하는 ‘뭐가 보입니까?’는 정말 독특한 설치미술, 조각 등을 감상할 수 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캐닝을 이용한 홍성도씨의 작품이라던가. 동양적 샤머니즘의 21세기 버전 홍성담씨의 작품, 레이저와 보살상을 이용한 이한수씨의 ‘팬시 니르바나’, 박성태씨, 배준성씨 등의 작품들은 개성이 철철 넘치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철학과 예술의 미는 맞닿아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왼쪽 눈, 오른쪽 눈이 가지는 시선의 미묘한 각도 차이가 있음으로 해서 현실을 직시하게 하듯이, 철학과 예술은 인간 탐구, 만물에 대한 이해를 돕는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지 않았나 하는 막연한 태초의 기억을 더듬게 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나의 삶과 영혼의 감로가 되어 촉촉이 적시는 그림들을 다시 한번 그려보게 하는 묘한 뒷맛을 주는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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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haGreen 2005-01-18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보고 싶네요....^^ 추천 누르고 갑니다^^

라주미힌 2005-01-18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
 
- 생각하는 그림들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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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인간의 냄새가 가장 짙게 베어있는 정서이기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단어이다. 그것의 실체를 어떤 이는 피속에서 찾기도 하고, 어떤 이는 휴머니즘에서 찾기도 한다. 인간적 사랑일 수도 있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인간적 예의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분명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것은 인간의 체온이 식지 않는 한, 영혼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 지지 않는 한 그것은 늘 우리의 호흡과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존재함으로써 알게 되고, 알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경배한다.

 

이 인간의 영혼을 잇는 고리라 하면, 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고리이다. 설레임, 고독, 죽음보다 강렬한 유혹. 추구하되 소유하면 잃게 되는 마르지 않는 욕망. 그 중심에서 꽃피는 예술은 탐닉을 일삼게 한다. 아찔하게 비척거리는 정체성은 파고드는 나의 욕망으로 서서히 잠식되는 자아의 발견으로 확인된다. 참을 수 없는 욕망과 인간 정서의 공통분모. 그림 읽기는 그 둘의 결정체를 다듬고 새기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생각보다 쉽게 접근한다. 알아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면 보인다. 보이는 것에 모든 답이 있으니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다. 그림과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 그림은 나직이 속삭임을 내뱉는다. 속삭임은 나의 감각을 울리고, 나의 기억을 불러온다. 사랑, 관심, 감사, 지혜, 열정, 희망, 고독, 번뇌, 투기, 질투, 실패, 고통

 

그림은 이 세상의 저편에서 자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술가의 재능은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과 차이에 변화를 줄 뿐이다. 예술이란 벽은 무관심으로 다져진다. 우리의 삶, 이웃의 삶에 대한 무관심은 척박함을 낳고, 잔인하게도 그림의 대화를 닫아버린다. 생각하는 그림들 , 이 책은 닫아버린 대화의 창을 여는 창문이다. 하얀 벽지에 작게 열린 창으로 고개를 내밀면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이 그림은 나에게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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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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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에밀레종의 울림처럼 처음엔 강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퍼지는 이 느낌을 글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글을 보았으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상태를 에밀레종에 새겨진 명문이 대신한다면 적절하겠다. "무릇 심오한 진리는 가시적인 형상 이외의 것도 포함하나니 눈으로 보면서도 알지 못하며, 진리의 소리가 천지간에 진동하여도 그 메아리의 근본을 알지 못한다. ~ 중략 ~ 그 메아리가 끊이지 않으니 장중해서 옮기기 힘들며, 함부로 다루지 못한다.’

많은 SF 작품을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마니아 요소가 강한 SF 소설의 깊이와 폭의 확장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섬세한 상상은 탄탄한 이론을 바탕으로 과학적 엄밀성을 내포함으로써 현실의 시뮬라크르를 만들어 낸다. 현실이 가질 수 없는 ‘대안의 상상’ 속에는 실제 모델을 뛰어넘는 역동성과 창조성을 지니고 있다. 신화, 종교, 언어, 수학, 심리 등 수많은 분야를 아우르고, 조합하여 탄생한 각 단편들에서는 지적 사고의 실험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간략하게 내용을 소개한다면, 땅을 파고 들어가 듯이 하늘을 파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맞이한 세계상이 던지는 허무함.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자기 굴레적 삶과 세계를 보여준 [바벨론의 탑]. 수학적 사고의 결함을 발견한 수학자의 혼돈이 주는 진실성과 확실성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공감을 통하여 수학적 사고에 갇힌 세계관을 흔들어보는 [0으로 나누면]. 치명적인 자기 통찰이 자기 파괴와 맞닿아 있는 초인의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실용주의가 심미주의를 죽인 현 시대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이해]와 같은 작품들에서의 배경 세계와 상징적 의미는 SF소설다운 철학적 사고의 깊은 맛을 낸다. 연금술, 유전자 복제, 폰 노이만의 오토마타 이론 등이 연상되는 [일흔두 글자]는 명명학이나 전성설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엮어 판타지풍으로 재설계함으로써 생명과 창조의 신비를 흥미롭게 그려내었다. [지옥은 신의 부재] 또한 독특한데 천국과 지옥을 탐구의 대상, 목표 지향적인 세계로 보고 신앙에 대한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모순적인 결말을 통하여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맹목적이고 광신적인 신도들에게는 비수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외계 언어와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가 자신의 인생을 통찰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음에도 커다란 고통과 환희에 찬 자신의 삶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여 기꺼이 걸어갈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장면이 묘한 여운을 준다. 마지막으로 [외모 지상주의에 관환 소고]는 외모가 미치는 사회적 현상과 파장을 다양한 사람의 의식구조를 펼쳐내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사고의 확장을 이끌어 낸다. 소설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자율과 평등에 관한 논의의 핵심은 각각 차별과 억압이라는 그림자의 균형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치환할 수 있는 상황 연출에 있다. 예를 들면 시장중심주의와 복지중심주의, 교육 자율화와 교육 평준화, 개성과 획일성, 이미지와 실제, 형식과 의미 등 수많은 현실 문제를 반영하고 해결점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 된다.

책 전체적으로 보면 이전의 SF 소설과는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생뚱맞은 상황전개는 없다. 이야기는 단단한 암반 위에서 시작되고, 그것을 다지는 작업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또한 전혀 낯선 세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도 아니다. 과학은 단지 지적 실험의 재료이며, 사고 작용을 이끌어가는 도구일 뿐이다. 게다가 주류문학처럼 아름다움과 감동까지도 수반을 하니…

이러한 장르의 책이 비주류인 것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지적영감, 신화-과학적 상상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현실의 문제는 현실의 한계 내에 존재한다. 현실 밖의 문제를 안으로 끌어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밖으로 투영된 세계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 가야 한다. 대안의 상상력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문화적 역량의 기본이며 추진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테드 창이 보여준 대안의 상상력, 이 짜릿한 상상의 나래를 달아 자유로운 지적 비행을 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내지르자. 롤러코스터를 탄 것 마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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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혜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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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고 하길레 웃으려고 읽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더라.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콩트를 보는 것 같고, 인터넷에 유행했던 폐인 시리즈 같기도 하고… 정말 독특한 괴짜네. 하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읽었다. 결론적으로 저자의 글재주에 담긴 재치가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 저렇게 대처하는 주인공의 반응을 생각해 냈을까?

단조로운 일상을 저렇게라도 벗어나고 싶은 내면의 욕구를 과장해서 잘 그려낸 것 같다. 그리고 이 일탈의 상상화는 기계적인 삶에 익숙해진 사람일수록 더 끌리는 듯 싶다. 평범하지 않은 사람의 일주일이 평범한 사람에게 주는 유쾌함. 아무 생각 없이 타인의 글재주에 그냥 몸을 맡기는 것도 가끔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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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사다리
노아 벤샤 지음, 공경희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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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글과 말에 힘이 실려 있음을 느낄 때가 있는데, 아마 그것은 책 밖으로 튀어나와 변화를 이끌 때가 그렇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면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이러한 책들이 도움을 주는데, 흔히들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지혜를 담은 이 책은 그렇기 때문에 묵직하다.

짧고 간결한 문장은 선인들의 지혜로 가득하여 소제목만 보아도 책 한 권을 읽은 기분이 든다. ‘나직이 말하고 크게 들어라’,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뒤돌아볼 때 이해가 된다’, ’친구를 얻으려면 친구가 되어주라’, ‘타인을 볼 때 자신을 보게 된다’ 등 생각하면 할수록 그 깊이의 맛에 취한다. 종교적인 색채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무관하게 읽을 수 있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채근담, 탈무드, 명심보감 같은 분위기라서 얘들한테 읽히기에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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