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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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알려면 같이 여행하라'는 말이 있는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재미가 있다. 사람을 안다. 여행을 한다. 어떠한 연관성이 있길래 그러한 말이 생겼을까.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게 되면 사람의 성격이 자연스레 드러나기 때문에? 아니면 여행을 하면서 겪어야만 하는 상황들을 대처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혼자 다니는 것보다 단체 관광이 수익성이 좋아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인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은 무엇을 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간적, 공간적인 해방을 통한 자기 성찰의 기회라고 본다(수학여행, 묻지마 관광, 사진만 찍어대는 여행은 제외). 정리하자면, 사람을 안다는 것은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고, 그것은 타인에 대한 발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가까워 지는 것은 내면이다. 일종의 회귀 본능이라고 해야 하나. 자의식의 본질이 끊임없는 스스로의 발견과 인식에 있다면,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던 자의식은 여행을 통하여 영혼의 안식처를 얻게 된다. 따라서 ‘같이 여행을 하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나를 알게 된다’는 문장이 좀 더 자세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같은 맥락으로 보면 '여행 에세이'이면서 '심리 에세이'라는 이 책의 성격은 자기 성찰의 의미가 강하다. 심리 용어 별로 단락을 구성하고,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받은 인상을 그 단락에 맞춰서 해석을 하는 형식이 ‘심리 용어 입문서’처럼 보이게 하지만, 이 책은 명백히 인간(자신)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인간에 대한 관찰은 사실 본능적이다(관음증은 이게 좀 병적으로 발전한 것 아닌가). 누군가를 관찰하고 분석함으로써 자신을 면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내면이란 결국 비교대상을 필요로 한다. 대체로 사람들이 심리학을 흥미로워 하는 이유는 불분명한 정체성이 분명해지고 싶어하는 욕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현실에 대한 회피를 목적으로 여행을 했다고 하고, 누군가를 관찰하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놓지 않는 것은 본능의 연장선에 비춰보면 어느 정도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해지고 싶고, 진실에 다가가려는 이러한 노력이 아이러니 하게도 극히 주관적인 믿음에서 출발한다. '꿈 보다 해몽'이라 하지 않던가. 사람 속을 어떻게 알까. 이 책 전반적으로 확신에 찬 자의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모호할수록 확실해지는 심리 분석의 진가를 보여준다. 그것의 근거란 것이 '정신분석'을 받은 것과 자신의 심리학 관련 서적으로 얻은 지식이 전부이다. 어디서 얻은 확신인지는 모르겠으나, 누군가의 심리를 단정적으로 규정하고 이해하려는 태도는 불온적이다.

그래도 책 전체적으로 보면 깔끔한 편이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작품들에 투사된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고, 심리학 용어 사전 같은 구성도 나름대로 독특하다. 델포이 신전의 신탁에 있는 '상처 입은 자가 치유한다'라는 글귀로 이 책을 해석하고 싶다. 저자는 아마도 자·타 사이의 깊은 공감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네가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네 속에는 네가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 네가 싫어하는 것이 실은 네 자신의 일부이다. 늘 이것을 명심하거라. (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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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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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만이 영화를 빛내는 것은 아니다. 미장센이 은근히 독특한 맛을 주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그림자에 가려진 얼굴에서 그의 내면, 성향을 추측해 볼 수도 있고, 카메라의 각도,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서 관계, 심리 등 무수히 많은 의미를 만들어 내기에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풍부하고 강해진다. 이 책 또한 숨겨진 맛을 내용보다는 형식과 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각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헌법 전문에 있다, 그 장의 내용이 헌법 전문과 대조를 이룸으로써 현실의 부조리를 극대화, 표면화 시켜서 얻게 되는 카타르시스가 백미 중의 백미이다.

각 장을 살펴 보면, 1장 ‘정답은 없다.’ 이 부분에서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라는 헌법 전문을 인용한다. 최상위의 법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명시한 ‘헌법 전문’은 현실 앞에서 유명무실해 진다. 자율과 조화라는 말은 질서와 권위라는 이름으로 억압된다.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여 합리적 절차를 이끌어 내야 진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확립할 수 있지 않은가. 정답은 없는데 정답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에 메스를 들이대는 장이다.
2장 ‘국가란 이름의 괴물’에서는 「대한 민국은 민주 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본질은 침해할 수 없다」는 부분을 인용하지만, 국가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과 독재성을 말한다. 법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국가의 권력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마치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로봇들의 갑옷이 로봇 보호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로봇의 힘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말이다.
3장 ‘법률가의 탄생’은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떤 형태로든 창설할 수 없다.」를 인용하면서 법률가 집단이 형성하고 있는 특권적 계층의식과 사회적 지위로 부당한 이익 취함을 낱낱이 까발린다.
4장 ‘똥개 법률가의 시대’를 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심판한다.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인권을 옹호하고, 사회정의를 실현…」한다고 하지만, 법관과 변호사가 가지는 법조계의 전관 예우, 전혀 독립적이지 않은 관계 등을 말하면서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할 제도적 장치를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5장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에서는 헌법에 명시된 검찰의 권한과 의무를 명시하고, 현실에서의 검찰의 남용되고 있는 권리를 고발하고 있으며,
헌법정신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설명하는 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정신’에서는 사장, 종교, 양심의 자유 등을 역설하고, 7장에서는 침해되고 있는 기본권인 진술 거부권을 논하고, 8장에서는 침해되는 권리들을 어떻게 찾을 것이며, 평등과 자유가 실현되는 사회를 만들 어 가는 지향점을 이야기한다. 역시 헌법 전문과 반대되는 현실에 심한 혼란스러움을 받게 되는 장들이다.

짜임새가 돋보이는 책이고, 법이라는 틀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왜 법과 가까울 수 없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줄 수 있는 책이다. 헌법의 '풍경’이라는 제목답게 시야도 넓혀준다. 국가, 법률가, 기본권 등 헌법을 둘러싼 세계는 복잡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를 말해준다. 우리는 바꿀 수 있는 세상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법조계가 높은 장벽을 쌓고,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어서 그것을 업고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현실은 사실이지만, 그 장벽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무너지지 않을 장벽은 아니다. 법조계에서도 이두식씨 같은 키메라들이 출현하고 있지 않은가. 두드려라 그럼 무너질 것이다. 일단 말도 안 되는 한자, 일본 어휘로 일반인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용어들부터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법조인 다운 뻑뻑한 어휘가 전혀 없음이 매우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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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을 위한 유쾌한 성공론 - 내 인생을 바꾸는 82가지 질문
김도연 지음 / 원앤원북스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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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가지 질문을 내놓고 답변하는 식의 구성으로 된 깔끔한 책이다. 쉽게 읽히고, 고민 없이 볼 수 있어서 금방 읽게 되는데, 왠지 모르게 식상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들, 유명인의 말, 너무나 뻔한 명제들(실천, 목표, 꿈, 성찰, 대인관계). 방법론은 어찌나 다들 비슷하던지 이런 종류의 책들을 많이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포장지만 다르지 거의 다 똑같다. 물론 저자의 해석이 가미되고 포장에 들인 노력을 인정해줘야 하겠지만, 읽어서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책들이 던지는 화두와 면면들을 가만히 보면 살면서 내가 나에게 던졌던 질문들이고 고민했던 것들이다. 물론 그것에 대한 답들은 물음표로 남았거나 해결된 것들, 아직 진행중인 것들, 영원히 풀 수 없는 것들로 되어 있다. 문제는 고민 없이 책이 제시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자신과의 대화는 줄어든다는 점에 있다. 이건 책의 의도와는 반대로 실패하는 길로 들어서는 지름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책은 많이 읽을 필요 없다. 현재를 충분히 즐기고, 충실하게 산다면 되는 것이고, 미래를 보장 받고 싶다면 준비하고 더 노력하면 된다. 말은 쉽다. 책도 그렇게 쉽게 던진다.

How? 저자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 오직 본인만이 그 해답을 갖고 있으니 자신과 많은 대화를 나누길. 교훈적인 문장, 예가 많으니 가끔 보면 기분은 좋아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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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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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지하철에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날 적잖게 당황하게 만들었다. 비장한 각오로 출근 전선으로 투입된 전사들 사이에서 나 홀로 히죽히죽 웃기란, 괄약근의 힘으로 조이고 조여 설사를 틀어막고 오리걸음을 간신히 떼는 것만큼의 심한 내외합일을 요구했다. 이외수씨의 이미테이션 같은 범상하지 않은 외모는 ‘이 괴수’의 글에 담긴 비범함을 분명히 초반부터 경고하고 있다.

글에도 돌연변이가 있으니, 이 터무니 없이 진지하고도 자학적인 개그는 분명히 다이옥신과 페놀이 다량 함유된 어느 공장의 폐수를 먹고 자라났을 거라고 추측해 본다. 달짝지근하지만 살짝 유통기한이 지난 콜라 같은 쌉쌀한 맛이 우리의 기억과 감각을 점유해 버리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책의 흡입력의 정체가 혹시 돼지 발정제를 책에 발라놓아서? 꿀떡 삼키자니 찝찔하고, 어쨌든 먹다 보니 재미, 비애, 감동, 오르가즘, 잡스러움, 자유분방함, 질퍽하고도 쿨하게 내지르는 문장들의 반란에 온 몸의 털이란 털은 기개를 드높인다.

인천, 만년 하위권 야구단, 바글대는 신도림역. 소설 속의 풍경은 수 많은 이들의 삶을 투영한다. 인천에 살고 있고, 후속 모델 태평양 돌핀스를 좋아했고, 신도림역을 8년째 왔다 갔다 하는 본인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그래서 남다르다. 소설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유는 아마 내 삶을 관통하고 있는 시대적 공감의 절규라서 그럴 것이다. 으아악.

프로. 어쩌다 보니 난 프로의 삶을 갈구하고 있었다. 평범하다고 믿었던 그 삶은 썰렁하게 선인장만 덩그러니 있는 황무지였다. 현실적인 삶 속에서 끊임없이 찍어대는 채찍질에 청춘은 시들어가고, 그렇게 지나온 세월에 삶의 진의는 벽장 깊숙한 곳에서 박제가 되어 간다. 이것을 흔히들 평범한 삶이라고 부른다지만, 사실 평범해지기 위한 노력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쟁취한 ‘위대한’ 투쟁의 노획물이다.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놓고 본다면, 위대함은 ‘위가 크다’는 것으로 치환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보다 더 먹어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함은 사회 곳곳에서 누런 이를 드러낸다. 학벌의 위대함, 자본의 위대함, 소속의 위대함,
위가 커서 슬픈 짐승이여, 그들은 너무나 굶주려서 외롭다.

더 먹어야 한다. 보다 많이, 보다 빠르게… 올림픽 구호가 아니다. 삶은 전쟁이다. 자본을 신앙으로 삼아, 국가 경쟁력의 첨병이 되어 금메달을 향해 총력전을 펼치는 영웅적인 삶이 인생의 목표이다. 삼미 슈퍼스타즈는 이러한 세상을 가르는(홍해를 가르듯) 구세주의 느낌이 들게 든다. 공부하느라, 암기하느라 삶을 소비한 주인공에게 주체적 삶을 가르쳐 준다. 실패하면 뭐 어때? 도발적인 질문은 충만한 은혜로운 빛이며, 행복으로 가는 비단길을 펼쳐놓는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뉴스를 보라.
‘자본을 섬기지 않는 게으른 일가족이 생활고를 못 이겨 집단 자살했습니다. 당신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경제난으로 실업자가 늘고, 개인파산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당신은 안전합니까?.’, ‘학벌과 소속, 능력으로 당신의 몸값을 높이세요. 당신의 삶은 그것에 좌우됩니다’.

어디를 가던 우리는 사회적 협박과 공포에 주눅이 든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안정적인 삶은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한 칸을 자리잡았다. 안정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당연히 실패 없는 삶이다. 무결, 무패, 무적의 신화를 만들어야 한다. 9회 말까지 퍼팩트 게임을 만들어야 우리는 안도할 수 있게 된다. 인생이란 언제 뒤집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소설처럼 그냥 방바닥에 널부러진 채로 가끔 앞 뒤로 뒤집어가면서 사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을 것 같기도 하다. 전문 용어인 ‘폐인’이란 수식어가 붙겠지만, 인간이란 뭐든지 금방 익숙해질 수 있는 사회적 짐승 아니던가. 열심히 살려는 의지만 없다면 누구나 ‘실패’를 맞보기 힘든 성공적인 삶의 한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이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고 가벼운 소설일까. 재미를 살짝 걷어내고 그 안을 들여다보면 스물거리는 우리 사회의 억압 기제가 내 몸을 서서히 타고 올라와 소름을 돋게 한다. 자조적인 성찰이 숙연하고도 진지한 자극이 되어 12만 볼트에 이른다 해도 여전히 우리는 배가 고프다.

왜냐하면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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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프 - 죽음 이후의 새로운 삶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파라북스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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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충만감이 끔찍하게 차오른다.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데, 심하게 곤혹스러웠다. 제목대로 사후 경직된 시체가 주인공인지라 겉 표지에 있는 시신의 하얀 발부터 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시신이 가지는 문화적 상징을 떠나 세밀한 묘사와 ‘적절한’ 비유가 가득하여 원치 않는 상상의 날개를 절로 달게 된다(다행인지 불행인지 사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 질병, 사고, 불행, 혐오의 상징인 시체를 담은 이 책을 굳이 읽은 이유는 지적 충만감이 주는 황홀함을 피해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후 세계가 종교적인 관심사였다면, 사후 처리되어야 할 육신은 사회적 관심사이다. 수없이 많은 탄생 뒤에 찾아오는 죽음은 사회적인 문제로 부각될 만큼의 시사성을 가진다. 뉴스기사로도 가끔 등장하는 묘지가 매년 여의도 면적의 몇 배 만큼 증가 한다는 둥, 화장터, 납골당 유치 문제로 지역주민과 마찰이 있다는 둥. 인간은 죽어서도 문제를 일으킨다. 한국의 상황과는 연관성이 없는 듯 하면서도 어느 정도 관련성이 있게 이 책은 시신의 유용성과 다양한 사후 처리를 말한다. 해부 실습용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일반적인 장례절차를 거치지 않는 망자들의 다양한 행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에 소개된 예를 언급하자면, 충돌 실험용, 해부 실습용, 탄도 실험용, 종교성을 띤 십자가 실험, 기요틴으로 참수 된 시체를 이용한 머리 이식, 의료용 식인행위, 퇴비 등의 예는 죽음 뒤의 세상을 실험실로 연상케 한다. 자르고, 베어내고, 찢고, 드러내고, 안구에 강한 충격을 주고, 총을 쏘고, 장기를 적출하고, 피를 뽑고, 펌프로 대동맥에 방부액을 밀어 넣고, 심지어 간다. 이쯤 되면 좀비, 슬래시, 스플래터, 하드고어 영화가 떠오른다. 비슷하긴 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시체는 얌전하고 사전에 동의를 했다는 점(유족 또는 본인)이다.

기증이라는 절차를 거쳤으므로 잔인하다는 표현은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끔찍함은 가시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자연적인 분해과정(범죄 수사를 위한 사체 연구소의 실험), 방부 처리하여 장례를 치르는 과정 또한 HDTV급의 선명한 묘사를 하며, 미적차이는 별로 없다고 너스레를 떤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레닌처럼 깔끔한 박제(미적으로 뛰어난)가 되려면 어느 공장의 생산라인과 비슷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는 될 수 없는 일 아닌가.

일단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다르게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얇게 저민 살(삼겹살이라 명명된), 벗겨낸 피부(돼지 껍질), 머리와 발(머리고기와 닭발, 족발), 살아있는 채로 살을 발라내고(회), 배를 가르고, 뼈를 몇 시간동안 삶는다. 고추장도 모자라 온갖 자극성 있는 물질로 잘 버무려지는 대상들 또한 살아있었던 생명체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인식, 감성적 반응을 무뎌지게 하는 작업이 꼭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인간에 대한 위대한 휴머니즘, 존중을 유지한 채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들(의사, 연구원, 장례업자 등)은 이러한 과정을 거쳤음은 물론이다. 결코 즐겁지 않은 일들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익숙함과 식상함이란 신이 준 선물 중 하나가 아닐까.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섬세하게 적은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녀의 눈과 귀는 인식의 전환을 이끄는 엔진이 된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기능의 중추를 인터뷰가 담당하고 있는데, 꺼림직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큐멘터리만큼의 사실성과 현장감을 전해준다.
‘의학도들은 해부학만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대면 하기도 한다. 또한 존중과 동정이 아닌 스스로를 무뎌지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무의식적 동일성 상실은 인간이 자연과의 격리에서 오는 고립에 근거한다. 유일하게 그 끈을 이어주는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저승행 열차를 타는 순간인데, 인간이 가장 당황스러워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인간다움’을 가장 훼손당하기 쉬운 부분이기도 하다. 불경에 ‘염처경’을 보면 시체를 곁에 두고 가르침을 받는 부분이 나온다. 시체는 썩어가고 승려는 어느 순간 한줄기의 미소를 짓는다는데, 육체의 덧없음을 깨닫는 수행이라고 한다.

덧없는 육체,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자는 식의 뉘앙스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죽은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면 이야기는 틀려진다. 시체의 유일한 재능은 고통을 받아넘기는 재주 아니던가. 그러한 재주 때문에 당신의 안전(안전 벨트, 에어백의 안전성은 그들이 검증했다), 당신의 생명(장기 이식 또한 그들이 주는 새 생명)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리는 것이 이 책의 주목적이다. 이것을 안다면 감동은 아니더라도 이해는 하게 된다.

의학, 범죄, 과학, 역사 등을 아우르는 입체적인 통찰을 보여주면서도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위험스럽고, 혼란스럽다. 뇌사자가 죽음에 가까운가, 생에 가까운가를 따지는 일 만큼이나…
‘삶과 죽음 사이에는 가사상태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과 죽음 사이에 있는 것을 바라지 않죠.’

말없는 시신이 유일하게 말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것을 연구함으로써 죽음을 밝히는 과정은 부담스럽지만, 생의 조건(유감스럽게도 죽이는 조건도 부수적으로 밝히는)을 밝히는 빛이다. 불교의 덧없음과 살포시 맞닿아 있기에 절묘한 양립이 경이적인 이 책은 겉 표지와는 다르게 경쾌하게 쓰여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죽음에 대한 정의는 물론이고 이성적, 감정적으로 바라본 장기기증에 대한 이율배반적 인식이 조금은 달라질 듯 싶다. 끔찍하게 재미있으니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다 읽고 나서 가장 놀라는 일은 처음과 다르게 사람을 꿀에 절여서 약재로 쓰는 밀화인(본초강목 기록된)이나 약재로 미이라나 사람을 먹는 행위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마냥 신기해 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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