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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에 가정은 없다’라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학의 명제에 반기를 드는 책이다. 과거가 아닌 미래의 역사를 서술하겠다니, 무속신앙적인 예언서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예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저자의 시도가 아주 잘해봐야 흥미를 돋구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결과론적인 가치판단이 앞서기에 그러한 선입견을 어떻게 떨쳐내려 했는가는 이 책에 흥미를 가지게 된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호기심. 후자가 이 책을 펼치게 된 대부분의 이유였을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종교적 신앙에 기반을 둔 예언서에 불과했다. 무엇을 믿고 숭배하느냐? 과학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직업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과학 기술’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론은 흥미를 나름대로 잘 돋구었으니 성공은 했다고 본다. 종합한다면 들이킬 때는 청량음료처럼 시원한데, 마시고 나면 살만 찐다. 두세번 읽을 만한 영양가가 있는 책은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영양가가 없어도 대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매력은 무시할 수 없다. 학교 앞의 불량식품이 히트 상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니까. 시각을 자극하는 화려한 인공색소, 미각을 자극하는 화학성분, 그리고 턱관절과 턱근육을 흥분시키는 탄력적인 질감은 단점이면서 장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선상에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 봐야 할 ‘자세’를 이 책은 필요로 하고 있다.
일단 이 책은 치밀한 상상이 돋보인다. 생뚱맞은 내용이라고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먼 미래가 아닌 가까운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까운 미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시간적 개념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 기술들을 기반으로 하여 확장된 미래를 펼쳐놓기 때문이다. 유전자 공학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줄기 세포나 배아 복제, IT산업에서는 유비쿼터스, 나노 로봇, 인공지능 로봇, 양자 컴퓨터, 우주 공학의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우주엘리베이터, 우주 여행 등 이젠 너무나 흔한 주제가 되어버린 것들을 다룬다. 어떻게 보면 식상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 식상함을 덜어주는 것은 대중성을 의식해서인지 일반인들의 생활 풍경을 소설 쓰듯 표현했다. 그렇게 해서 딱딱하기 쉬운 기술 동향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읽기 쉽고 친근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이면서 읽어 본 독자들이 ‘생생하다’, ‘영화같다’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 부분이 가장 뛰어나게 표현된 곳은 1부 생물학 혁명과 2부 핵전쟁이다. ‘치밀하다’, ‘현실감 있다’라는 표현 이외에는 적당한 표현이 없다. 1부 생물학 혁명에서는 근래에도 많이 이슈가 되었던 생명 윤리에 관한 논란이 현란하게 펼쳐진다. 인간 복제의 상업성에 매몰된 과학자와 순수하게 인간 생명의 가치를 지키면서 기술을 접목시키려는 과학자. 이 두 형제 과학자들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가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재미있으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지만 적절한 비유,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을 거의 대부분을 지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쉽고 긍정적으로 바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예를 들면, 휴머니즘과 상업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별로 없다. 기적의 항암제라는 초국적 기업 노바티스사의 글리백이라는 약품을 두고 일어났던 사회적 논란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생명권이 기업의 이윤에 희생되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그늘은 유전자 공학이 주는 달콤함 열매에도 해당 될 것은 자명하다.
그리고 책 전체적으로 봐서는 기술의 발전과 생활 풍경에 대한 상상이 치밀한 반면에 그것을 받쳐주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상상은 빈곤하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예를 들면, 지적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의 발전 속도를 제도와 법규, 시민 의식이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하고도 흥미로운 현상이다. 산업, 유통, 기술, 소비자, 문화의 균열은 점점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정보 사회의 최첨단을 걷고 있다는 한국 사회의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위 정도의 문제는 독자의 판단과 고민에 맡겨도 되는 사안이지만, 3부 대혼란, 4부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어리숙한 국제감각은 황당하게 펼쳐진다. 차라리 쓰지를 말았어야 했다. 미국의 MD가 중국 견제용이 아니라 깡패국가 이라크와 북한 때문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미국인과 영국인이 썼다는 걸 너무 티내는 것 같다. 1조 달러 이상을 써도 될까 말까한 MD사업을 하는 이유가 1달 만에 점령한 이라크와 국제 지원 없이는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북한 때문이라니… 그 외에도 중국의 위세에 눌린 일본의 외교 자세 또한 엉성한 누더기의 형상이다. 미국 몰락의 전조를 나타내는 부분은 유치함의 극을 친다. 화산, 지진, 주식 시장 급락, 심지어 점술가와 사이비 종교 지도자까지 등장하여 불안을 외친다. 마치 그것 같다. 국운이 쇄하면 신성한 나무가 울고, 부처상이 피눈물을 흘리고, 샘이 마르고…
이처럼 정상에 있는 자들이 느끼는 불안의 공통점은 정상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전교 1등 하는 학생이 2등 했다고 자살하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투머로우’는 사실 공포 영화였다. 세계 최강의 부국이 자연재해로 멕시코에 신세를 진다는 상황 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설정인가! 헐리웃의 수많은 영화에 등장하는 불안은 늘 영웅을 필요로 했고, 이 책 또한 영웅을 생산해 낸다. 개인의 삶을 비춘다지만,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가상의 인물들은 엘리트적 영웅들의 모습이다. 세계 평화를 위해, 환경을 위해, 국가를 위해 리더가 되어 불안을 잠재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반세계화를 외치고, 국가 정책,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을 아나키스트, 반정부주의자, 테러리스트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불안을 생산하는 세력이니까! 불안은 공공의 적이니까!
본인처럼 이것저것 따지면 재미없는 책이다. 상상이란 즐기는 데에 있다는 점을 숙지하고 그것에 충실하게 따라가면 몰입감은 꽤 클 것이다. 분량도 꽤 되고, 많은 정보를 다뤄야 했지만, 저자가 즐겁게 썼다는 것을 글에서 은근히 느낄 수 있다.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빠져드는 가상의 역사 아닌가. 청소년기의 성적인 상상처럼 말이다.
쥘 베른 서거 100주년이라고 한다. 쥘 베른이 상상했던 오늘. 그리고 이 책이 상상한 미래.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미래에 대한 상상은 자기 투영이다. 자기가 바라는 유토피아적 환상. 내가 발견한 그곳에는 내가 바라던 것들이 있기를 기대하는 그런 심정이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이 책에서 당신들과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미래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