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사회에 있어서 개인이란 무엇인가? 사유의 공간, 행동의 조건이 집단, 기관, 정부에 의해 규제되고 조정되어 진다면 개인이 진정 개인으로 존재하는가? 자아의 의지와 인식의 출발은 과연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삶과 개인의 성찰로 향하는 시발역이면서도 정치적, 경제적으로 훈육된 의식이 끊임없이 주입되고 있는 현실의 종착역이다. 공간의 뒤틀림으로 시작과 끝이 맞닿아 있는 듯한 우리는 과거와 미래,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다. 개선의 의지는 모호하며, 현실의 현상은 난해하다. 어쨌든 ‘오로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좋건 나쁘건 여기서 살려고 온 것(61p)’ 아니겠는가.

에티엔느 라 보에티의 ‘자발적 복종’은 고도화 된 사회적 억압기제에 무기력해진 개인의 죽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목표를 추구하기에 개인은 소외되고, 초라하고, 나약해진다. 그렇게 탄생한 흔해빠진 편의의 논리, 편의의 정치학은 경쟁이란 구도 위에서 무적이 되곤 한다. 그렇다 타산적인 이해를 부정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기적 존재로 사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이다. 소수의 희생을 요구하였고, 우리는 양심을 안락사 시키기 위한 독극물을 늘 염두에 두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 목이 칼칼하지 않을까. 심장이 뜨끔거리고 식도가 타는 느낌에 밤잠을 설칠 것 같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독립된 개체로서의 존엄은 내 안에서 스스로 결정 해야 한다. 그래야 생의 의지가 되는 것이다. ‘윌든’에서의 녹색사상가로 잘 알려져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는 개인의 양심, 자연적 도덕률을 깨우는 아침 수탉의 횃소리가 되기를 선언한다. 이름하여 ‘시민 불복종’.
‘정부는 한 인간의 지성이나 도덕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육체, 그의 감각만을 상대하려고 한다. 정부는 우월한 지능이나 정직이 아니라 우월한 물리적 힘으로 무장하고 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강요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내 방식대로 숨쉴 것이다. 누가 강한지는 두고 보도록 하자.’ (155p)

전쟁에 반대하고, 노예제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그들의 힘보다는 자신의 양심의 목소리에 따르겠다는 그의 선언은 책 제목대로 세계를 뒤흔든다. 맑스주의자, 자유주의자, 환경주의자, 인권운동가, 히피 등을 비롯해 간디, 마틴 루터 킹에 이르기까지 그의 사상은 수많은 이들의 영감이 되었고 실천이 되었다. 150년 전의 선언은 현재에도 유효하기에 예언자로써의 그의 영향력과 선견지명이 놀랍지만, 그만큼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변화는 무지 어렵다는 것을 반증한다. 하여튼 당시에는 비난과 왜곡된 평가로 무시되어온 개인의 목소리가 세계의 양심을 이끄는 초석이 되었다. 소로우가 말하는 저항정신, 그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개인의 힘에 현대인의 무기력증을 대입시키려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시작이 얼마나 작아보이는가는 전혀 중요하지가 않다. 어떤 일이든 한번 제대로 행해지면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48p)

사실 현대인들은 결과를 두려워 한다. ‘결과가 나에게 이득일까. 손해를 본다면?. 시간낭비일수도 있고, 귀찮아!.’ 그렇기 때문에 결과에 따라서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진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의 운명은 비극인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장미빛이었던 경우가 있었던가? 기득권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가슴 속에 공포와 좌절을 심어준다. 그리고서는 이렇게 외친다. ‘나에게 힘을 달라. 내가 세상을 바꿔주겠노라.’

‘당신의 표를 모조리 던져라. 종이쪽지 한 장이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져라. 45p’
우리는 우리의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를 못하고 있다. 양심의 목소리보다는 왜곡된 ‘상식’과 자본주의적 ‘합리성’에 노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사슬을 벗어나려는 노력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예’들은 그 사슬을 더 견고히 하기에 바쁘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정치적, 종교적인 이유로 사상전향이나 병역을 거부한 양심수들일 것이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유일한 의무는, 어느 때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는 것이다.’ (54p)

법과 질서, 제도와 정치는 인간을 위한 것이지,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 하고 우리는 인간을 억압하는 데에 기꺼이 동조하는 경우가 있다. 빨갱이, 병역기피자로 보는 건조한 시선에서 느껴지는 기계적인 관성으로 보아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 국가주의적인 요소가 깊숙이 박혀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될 사회는 단결이 잘 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리고 법을 잘 지키는 사회가 아니다. ‘국가가 자신의 권위와 권력의 원천으로서 개인을 더욱 고귀하고 독립된 힘으로 인정하고 그에 걸맞게 대접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자유롭고 계몽된 국가는 없을 것이다.’ (125p)
다수가 하나인 사회가 아니라, 하나가 다수가 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는데도 가난하고 천하게 산다면 수치스런 일이며, 나라에 도가 행해지고 있지 않는데도 부귀를 누린다면 이 또한 수치스런 일이다.’ 65p
소설가 공선옥씨는 그 수치스러움을 ‘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라는 산문집에서 제대로 느끼고 있다. 나의 배부름을 나의 부끄러움으로…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 책이 흥미로울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세상을 흔들 수 있는 힘이 개인에게서 나올 수도 있다는 역사를 담았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개인의 힘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것에 간디의 비폭력, 사티아그라하(Satyagraha, 진리의 힘), 마틴 루터 킹의 민권운동, 그리고 환경운동 등으로 확장되고 진보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개방성의 일면을 드러내려고 이 책은 친절하게 그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다. ‘사상의 배경’, ‘선언문’, ‘선언의 여파’. 크게 보면 이렇게 구성되어 있고 어느 곳을 펼쳐도 역사의 각 장면들을 선명한 칼라로 확인할 수 있다.

얇으면서도 강렬한 책이다. 안 읽으면 후회할 책.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알고싶다 2005-06-0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주미힌님 리뷰에서도 사티아그라하가 느껴집니다. 안 읽으면 후회할 리뷰를 읽었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라주미힌 2005-06-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닉네임 바꾸셨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5년 5월
평점 :
절판


한 줄로 이 책을 설명하자면 그림은 삶의 투영이다. ~싶을 때, ~싶지 않을 때, ~그리울 때, ~생각날 때, ~느낄 때… 책의 각 단락들은 이렇듯 우리 일상의 순간들을 그림과 함께 소박하게 담아내었다. 살아있어서 감사해야 하나.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는 것들… 감각이 퇴행적이지만 않았어도, 예술은 없었을 것이다. 기억의 저편에 대한 아쉬움, 동경은 미술이라는 복제를 낳았다. 기억하고 싶은 사람, 감정. 순간. 현대의 사진이 많은 부분을 이를 담당하고는 있지만, 그림에 담긴 손길과 인내의 온정을 표현하지는 못한다. 사진은 차갑다. 렌즈는 보여주기만 할 뿐 소통은 적막하다.

이 책에서 시선이 머무는 곳을 천천히 살펴보자. ‘베일을 쓴 여인’ <17p>의 눈에는 수정 같은 사랑이 빛나고 있다. 그녀의 시선에 나의 시선이 닿자마자 차원의 문이 열린다. 사랑은 눈빛에서도 발견 할 수 있는 선명한 것이다. 그렇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제 나무에 기댈 줄 알게 되었다./ 나무에 기대어 흐느껴 울 줄 알게 되었다./ 나무의 그림자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 나무의 그림자가 될 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나무 그늘을 찾아/ 지게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셨는지 알게 되었다.’(정호승, ‘아버지의 나이’ 중에서)<42p>. 이해라는 이름의 그것은 피만큼이나 진하게 젖어 든다. ‘아버지’<41p>는 희생의 다른 이름이었다. 깊은 골, 굳어버린 생명력에는 한 인간의 일생이 닳고 달아 존재의 흔적만을 남긴다. 닳아서 모두 없어질까 우려하는 마음이 그림을 메우고 가슴을 메운다. 그렇지만 복제의 욕망은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내 자식이 아무리 예쁘다고 그 아이를 수십 명 복제하고 싶지는 않지요. 하나로서 오히려 소중한 존재이니까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결코 복제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요. 소중하나 복제하고 싶지 않은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이가 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183p>

이주헌씨의 이번책은 그림이 주인공이 아니다. 그림 속의 내가 주인공이다. ‘그림 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라는 제목은 여인의 시선에 자신을 던지고 싶어하는 저자의 시도이고, 바람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시선, 아내의 시선에는 저자가 느끼지 못했던 위대한 감성의 보고, 삶의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믿음과 진리로서 예술을 뛰어넘는다. 하여 이 책에 수록된 인간적인 그림들은 그가 해석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들이다. 가장 완벽한 이해는 ‘되어 보는 것’이기에 저자의 친절한 시도는 독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되어 보기. 그림을 읽는 것은 사실 어렵게 느껴진다. 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 벗은 느낌. 깊이 감추어 놓은 것을 꺼내 놓았을 때 진실 또한 거짓이 없다. 그렇게 표출한 감정의 누드를 이 책은 ‘댓글’로 보여준다. 인터넷의 풍경은 댓글 문화라는 적극적인 표현을 권장한다. 이 책의 출판 계기가 된 사이트에 전시되었던 그림과 댓글을 고스란히 담아 놓았기에 풍성함, 생생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독자의 마음을 쓸 수 있는 공간 여백이 꼭 있다는 점이다. 이름란과 밑줄란. 이 책을 읽을수록 저 공간이 탐이 난다. 나도 댓글을 달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펜을 짚는다.

무엇을 볼 것인가. 고민할 필요 없이 그림 속의 나에게 걸어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어의 탄생 - 옥스퍼드 영어사전 만들기 70년의 역사
사이먼 윈체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고대 그리스인들의 평균 수명은 19세였다. 16세기의 유럽인들의 평균 수명은 21세였고, 19세기에는 34세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 인간의 수명은 80세에 육박한다. 팔만대장경 제작에 16년이 걸렸고, 민중의 피를 쪽쪽 빨아먹던 박통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35년 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옥스포드 영어 사전 편찬 사업이 완료되기 위해서는 무려 70년이란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70년. 이 기겁할 만한 시간의 역사 속에서 사전 편찬에 몸을 담았던 이들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시작을 했을까. 끝을 기약하지 않은 시작은 아니었을 것인데, 예상을 훨씬 넘어선 과정과 결과가 남긴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시작을 이끌던 이들은 완성된 사전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영어의 모든 의미를 담겠다는 목적은 어찌 보면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허황된 의지일 수도 있었다. 역류는 거칠고, 미답의 숲을 뚫고 지나려는 이들의 삶은 지루했다. 그렇게 탄생한 사전은 4만개의 표제어와 2백만개의 예문을 수록한 1만5천 페이지의 거대하고도 위대한 업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분량과 시간이라는 수치를 말하고는 있지만, 누군가의 시간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땀이었을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으니 그 안의 것은 수천명의 자원 봉사자의 노력과 열정으로 대치 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들의 평범함과 비범함으로 장대하고도 어찌 보면 무모한 일의 시작은 필연성을 띠었다. 이 책의 서두는 영어 사전이 탄생 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 영어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확장과 수용, 변이와 융합이 요동치는 영어는 사실 침략자들의 언어이기에 가능한 특징을 지닌다. 그들의 힘과 영향력은 생명력이고 번영을 의미한다. 실제의 의식화를 담당하는 것은 바로 언어이기에 언어에 대한 완벽한 정리, 이해는 세계에 대한 도전이고 정복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위치에 대한 확인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들의 지성은 축적되었기에 충분히 도전할 만한 것이었다.

미답의 길을 가는 것은 수많은 난관을 예고한다. 사전의 정의부터 모호했던 시대에 Meaning of everything(이 책의 원제)을 목적으로 하는 작업에 맞지 않는 비효율성, 막무가내식의 접근방법은 20년을 허송세월한 원인이 되었다. 체계가 필요했고, 열정이 필요했다. 3대 편집장 제임스 머리는 영어의 특징에 맞게 기술적 방식(예문의 용법으로 설명)을 중심으로 한 사전 편찬에 힘쓴다. 14세에 학교를 그만두었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난 언어능력을 지닌 그는 사전의 정의를 제대로 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관성, 정치성을 배제하고, 쉬운 설명, 정확하고 구체적인 예문을 잘 골라냄으로써 사전다운 사전을 만들어 냈다. 게다가 역사적 원칙에 의하여 단어의 변천사도 함께 서술함으로써 보다 명료해졌다.

이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국어사전을 비교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보다 보면 어이없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데, 단어를 단어로 설명하는 경우, 쫓아가면 빙빙 돌다가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 온다. 그리고 쉬운 단어를 어려운 한자어로 기술하여 무슨 뜻인지 더 알 수 없는 경우 등 사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한 것들이 꽤 있었다. 그래서 ‘영어의 탄생’은 현재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그게 가능했단 말인가? 그렇게까지 했단 말인가?

큰 뜻을 품지 않는다면, 큰 뜻을 이룰 수 없다. 그리고 누군가의 의미가 되어 준다는 것은 누군가의 헌신을 전제로 한다. 사전에 기록된 수 많은 이들의 이름은 그래서 영원히 기억되어야 할 상징이자 신화가 되었다. 사전이 사물과 정신의 다리가 되어 주듯이, 이 책은 인간의 숭고한 역사의 장면들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이첼 2005-10-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우리말의 탄생>을 보면 국어사전이 왜 영어사전처럼 용례가 위주가 아닌 지 알 수 있더라고요. 식민지라는 특수 상황이 우리말사전을 지금의 모습처럼 만들었다는 가슴 아픔....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 1 - 동양의 마음과 상상력 읽기, 중국편
정재서 지음 / 황금부엉이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 정신과 현실세계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의 가치회복에 대한 당위성을 이야기 하고 있다면,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 신화는 신화의 서구적, 남성적 이미지를 걷어내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 사실 그렇다. 이윤기씨의 부단한 노력때문만은 아니지만, 신화의 매혹적인 상상은 반쪽짜리였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신화의 대명사가 되어 우리 삶에 녹아 있는 동양 신화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화의 부흥이 또 다른 신화의 죽음, 상상력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었다니 뱀이 뱀의 꼬리를 삼키는 형상이 연상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이런 대중적인 신화서적은 신선한 재미를 한껏 안겨준다. 아틀라스가 서구 세계를 떠받치고 있었다면, 동양 세계를 짊어진 반고는 죽어서 피와 살과 뼈로 세상이 창조되었다. 창조주에 의해 창조된 서양 세상과 비교되게 동양은 저절로 이루어진 세상(자연)이다. 소머리를 한 미노타우르스가 사람을 잡아 먹는 괴물이었다면, 소머리를 한 농경신 염제는 인류에게 풍요를 안겨준다. 인어 아가씨의 몸매를 상상하다가 인어 아저씨 저인을 보고 있자니 야릇한 당혹감이 밀려 온다. 거인족과 올림푸스의 전쟁보다 더 화끈하게 펼쳐지는 동양 신들의 패권 다툼은 인간 세계만큼이나 치열하고 냉정하다. 죽어도 굴복은 없는 치우, 머리가 잘려서도 투지만은 살아있는 형천 등은 기괴한 느낌마저도 들게 한다. 

 

이렇듯 창조 신화, 전쟁 신화, 영웅 신화, 시조 신화 등 풍부한 이야기들은 전설, 전래 동화만큼이나 흥미롭고도 다채롭다. 비교대상이 있다는 것, 그리스 로마신화와의 차이점과 유사점이 한 눈에 들어 온다는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이외에도 여신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은 이채롭다. 창조와 치유의 여신 여와, 죽음과 생명의 여신 서왕모, 무산신녀, 그리고 유명한 견우 부인 직녀 등을 다루면서 여신의 지위가 유교 문화에 의해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역사학적,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또한 읽는 재미를 더한다. 추녀가 미녀로, 중심적인 신에서 남신의 주변으로 서서히 밀려나는 것을 보면은 신화를 읽는 것은 인간을 읽는 것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시조 신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치적인 이유로 승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인물과 신의 성향이 변형되고 있다는 점은 신화 또한 역사의 산물이란 것을 잘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은 이미지 자료의 다양함과 풍성함, 화려함에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전 이미지에서부터 현대 미술까지 책 곳곳에 배치하였다. 상상의 이미지를 좀 더 시각화하고, 역사적으로 접근하기에 책의 대중성을 가지면서 양서로써의 위신을 유지하는 등 편집, 기획에서 많은 공을 들인 티가 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 - 카이에 소바주 1
나카자와 신이치 지음, 김옥희 옮김 / 동아시아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이라 최고라고? Best? 아니군 자세히 보자. 最古의 철학이구나. 인문대생은 정의라는 단어에서 Justice의 의미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공대생은 Definition으로 인식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생각난다. 알게 모르게 작용한 우열에 관한 가치 판단은 이미 내 주위를 포위한 환경이 내뱉은 배설물이었다. 환경은 늘 우리 주위에서 서서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라고 뇌까리지만, 그 근본을 느끼기에는 한참 부족한 무딘 감각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런 무딘 감각에 의존하여 자아를 구원하려는 인류의 위대한 노력은 태고적 기억을 잊어가는 방향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망각을 깨워라. 마치 이렇게 외치듯이 이 책은 인류 최초의 사고(사건이 아닌), 레비 스트로스의 야생의 사고를 찾아 신화 속으로 지적 탐험을 떠난다. 잊어버린 과거, 인류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것은 의무에 가깝다. 그러나 탐험의 스릴, 신기함, 새로움은 독자에게 훌륭한 동반자가 되어 주니 든든하면서도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저자의 강의를 책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생명력까지 더한다. 훌륭한 강의는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때로는 유연하게 그러다가도 거침없이 흐르는 물처럼 수강생들의 호흡을 느끼며 함께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는 독자, 수강생들의 흥미를 잡아 끄는 데에 있어서 전 세계에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펼쳐놓음으로써 극을 달린다.

 

어렸을 때에 외국 동화와 우리 나라의 전래동화가 비슷한 것이 많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이유를 치밀하게 추적하여 보여준다. 그것 뿐만 아니라,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의 의미와 오이디푸스와의 연관성을 이끌어내는 등 대단한 통찰력으로 신화의 가치를 입증한다. 신화는 종교와 다르게 현실의 구체성과 가상의 확장성을 연결하는 중간자적인 위치를 지니고 있어서 인간의 사고를 풍요롭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의 문명은 이러한 균형을 상실해 가고 있다. 대중매체는 현실을 가상으로 포장함으로써 점점 더 현실을 멀어지게 한다. 장 보르드라야르 시물라시옹에서 말하는 허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들의 사유에 있어서 신화는 커다란 의미로 작용될 듯 싶다.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싶어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속에 책 2007-08-0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카이에 소바주 읽고 있어요..그래서 리뷰 쭉 보고 있는데, 라주미힌님이 쓰신게 나와서 반갑네요..토요일에 나오시나요? 그때 또 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