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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마르잔 사트라피 지음, 김대중 옮김 / 새만화책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의(definition)를 내리는 자가 정의(justice)롭지 못할 경우 우리는 혼란에 빠진다. 대상에 대한 왜곡은 진실을 가리는 것을 넘어 존재를 부정하고, 황폐화 시킨다는 점에 있어서 파괴적인 범죄 행위이다. 힘의 불균형이 클수록 이러한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령, 미국에 의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침공이라던지, 인혁당 사건이라던지, 십자군 전쟁 같은… 역사는 늘 그것을 기억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되새김질 한다.
역사의 기억과 개인의 추억이 만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진실의 부정합이 가져오는 혼돈과 좌절을 맛 볼 것 같다. ‘그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받아들여 하는 억울함, 진실은 어쩌면 약자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명예인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는 전혀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천 몇 년 몇 월 며칠.
부시 왈 “악의 축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북한, 수단 ….”
불량국가 1순위로 지목된 이란에 붙은 각종 수식어들은 불량배 미국이 마음대로 정한 것이었다. 500년 전의 최초의 수세식 변기를 사용하는 이란 남성들은 앉아서 소변을 보고, 이슬람력을 쓰고, 아라비아 숫자와 그들만의 숫자를 함께 쓰는 시간이 정지한 듯한 이란에 대한 시각은 ‘낡고 부패한 폭력적인 국가’에 머물러 있다. 동서문명의 용광로 역할을 했던 찬란한 역사를 두고서도, 23년째 교역이 봉쇄당하여 경제난을 겪는 이란을 대표하는 이러한 이미지는 그다지 공정한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이 책을 보면, 이란이 가지고 있던 이미지가 얼마나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는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전쟁과 혁명이라는 혼란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는 끈끈한 생의 의지를 가진 자들이 사는 지구상의 한 국가일 뿐인데 어찌 그런 무책임한 편견이 그들을 정의 내렸을까.
페르시아는 문화와 역사의 중심으로 이란인들의 가슴에 자리잡고 있는 시공간적 자존심의 뿌리이다. 마치 한국인들이 반만년 역사에 커다란 ‘긍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제목인 페르세폴리스, 페르시아의 수도라는 그리스어인데, 아마도 이 책에 서려 있는 것은 이란을 대표하는 그 무엇을 간절히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일 것이다. 그리고 빨간 원색의 표지의 한 가운데 창으로 검은 차도르를 입고 있는 여자애가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들어야만 하는 진실의 한 부분일 것이다.
이란의 감성을 보여주는 타룩(이란식 농담)의 한 대목
누군가의 초대를 받은 당신(여자여야 한다)이 서두르다 그만 꽃 가져오는 것을 잊었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원칙이다. “죄송합니다. 그만 꽃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초대한 사람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괜찮습니다. 당신이야말로 장미보다 아름다운 걸요.”
동승할 여인이 먼저 차에 오를 경우 여인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등을 보이게 돼 죄송합니다.” 세련된 당신이라면 이 정도는 대답해야 한다. “장미에게 어디 앞뒤가 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