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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 전쟁사 박물관 ㅣ 르네상스 라이브러리 9
존 워리 지음, 임웅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2월
평점 :
“정치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이란 피를 흘리는 정치다”라고 한 마오 쩌둥의 말은 전쟁과 정치의 성격을 잘 대변한다. 인류의 역사는 인간에게 필요한 자원의 획득과 배분에 대한 영향력을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라는 인류의 오랜 고민을 해결하려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폭력적인 모습으로 드러나면 그것은 전쟁이 되었고, (대중의 지지와 동의를 구하는 듯한) 정치구조의 진화는 그 폭력성의 가면이 되어 더욱 집요하고도 견고하게 기득권 구조를 다져왔다. 어찌 보면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 볼 수 있는 전쟁과 정치, 그 둘의 관계는 역사 속의 커다란 흐름을 이끌어 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읽어내야만 한다.
서양 문화의 중심 축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쟁사를 다룬 이 책의 흥미로운 점은 역사적 사료의 방대함과 세밀함에 있다. 신화의 시대 트로이 전쟁에서부터 로마 말기까지 전쟁의 정치적 배경, 전투와 전술, 인물간의 갈등과 야심, 세력의 흥망성쇄, 식민과 반란 등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놀라운 것은 아주 오래된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부대의 배치, 인원, 전쟁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명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객관성의 정도는 알지 못하겠지만(이 책에서도 한계와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책에 남긴 수많은 역사가와 정치가들의 사회적 지위를 감안한다면 사료의 정치적, 역사적 의미를 이미 기원전에서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만큼의 정치조직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음을 유추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한 시민사회(물론 제한적이지만), 지중해 무역을 둘러싼 이권다툼 등을 볼 때면 기원전이라고 해도 현재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권력의 원천은 군사력과 대중 지배 그리고 돈이었다.>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에는 까다로운 면이 있다. 장대한 역사를 지나치게 축약하였기에 배경지식이 없다면, 책을 덮은 후에는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역사적인 인물도 단 한 줄로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전쟁사이기 때문에 전쟁을 중심으로 역사를 서술하게 됨으로써 전쟁의 배경이 되는 사회, 문화에 대한 설명이 빈곤하다. 그것은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장애를 안긴다. 전쟁 자체만으로는 전쟁을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쟁사는 헐리웃 영화(브레이브 하트, 트로이 같은)의 전투신의 강렬한 인상만을 주게 된다.
이 책의 활용성을 보자면 참고문헌으로써는 훌륭하다. 유물에서 복원한 무기, 갑옷, 전함, 전술도 등 다양한 도판이 볼만 하다. 또한 연대기 순으로 이뤄졌고, 전쟁 하나만큼은 많은 지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영화 볼 때도 즐거울 수가 있다.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으니까. 이 밖에도 팔랑크스 진형이 로마 보병대에 무너진 이유나, 육군에 미치는 해군의 전술적 의미, 해상전의 변모, 로마는 왜 요새를 중심으로 싸웠고, 그리스 시대에는 평야에서 줄 서서 싸웠는지, 영웅의 활약과 전술 등 재미있는 내용이 많다.
이 책을 읽고 영화를 다시 한번 보게 된다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영화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