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
오드리 설킬드 지음, 허진 옮김 / 마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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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인의 역사'와 '역사 속의 개인'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특수한 목적을 위해서 특정 집단에 의해 왜곡되었던 과거를 '역사 바로 세우기', '인물의 재평가' 등으로 재정립하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구이다. 왜냐하면 거짓으로 점철되고, 왜곡으로 얼룩진 진실은 비정상적인 관계를 지속시키고, 우리의 미래를 변형시키기 때문이다. 가령 친일파 후손이 일제 때 수탈했던 재산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이라던가, 빨갱이로 몰려 학살당했던 민중들의 억울함 같은 것을 보아도 과거의 문제는 오늘날의 문제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물론 한계는 분명히 있다. 현재는 ‘그 때’를 재현할 수 없으며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조차도 그 기억에 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기는 힘들다. 객관적인 사실에 접근해야 하지만, 객관적일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진실은 과연 누구 편을 들어줄 것인가? 역사는 기록되었지만, 그 기록은 개인의 역사를 담고 있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지 않던가? 과오를 역사를 통하여 본다면 어떤 기준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재평가는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러워야 하며, 단정지을 수 없는 불가지의 영역에 있음을 전제해야 한다고 본다. 정황과 심증만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단지 접근할 뿐이다. 접근방법의 개방성과 포괄성만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 것이다.

그 부분에 있어서 ‘좀’ 억울함을 호소할 만한 여성이 있다. 인종학살, 전쟁, 대중동원의 시대에 영화감독, 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레니 리펜슈탈’.
"순간의 분위기에 완전히 몰입해버리는 열정, 인간의 육체를 보는 감식안, 호화로운 장관과 운동 경기에 매료되는 적극적인 근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모든 조건과 상황이 주는 즐거움을 그대로 영감으로 받아들이는 재능이야말로 진정한 그녀의 재능이었다.” 91p
그녀는 재능이 뛰어났다. 정열적이고, 거칠게 없었다.
"레니는 자신의 필터 없이 다른 사람의 견해나 지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보다는 자신의 본능적인 감각을 굳게 믿으며 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114p
인간과 자연의 힘에 열광했고, 그 아름다움을 ‘산악 영화’, ‘다큐멘터리’로 그의 재능을 세상에 알렸다. 문제는 히틀러와 괴벨스의 정치적 수단으로써 그녀의 재능이 필요했다는 점이다. 프로파간다 영화로 널리 알려진 ‘의지의 승리’는 그녀의 전생애에 ‘나치’라는 꼬리표를 달게 해주었다.
괴벨스는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모든 스타들 중 그녀만이 우리를 이해한다.’” 236p


"대중의 수용력은 매우 제한적이고 그들의 지식은 아주 적다. 반면에 망각의 힘은 어마어마하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를 위해서는 요점을 단 몇 가지로 간추려야 한다. 또한 요점은 슬로건의 형태로 만들어서 대중 한 명 한 명이 모두 당신이 이해시키고자 하는 내용을 이해할 때까지 그 슬로건을 되풀이해야 한다.” 257p
어찌됐든 그녀의 뛰어난 능력은 나치의 프로파간다로 훌륭하게 작용했다.

"레니는 강한 인상을 받으면 누구든 어느 때든 그 사람을 직접 만나냐 직성이 풀렸다. 일단 직접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면 레니는 그 사람을 사로잡을 수 있었고 본인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레니는 이렇게 직접 부딪히는 방법을 통해 스스로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나간다고 믿었다.” 153p
어찌됐던 그녀의 열정은 그녀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 서사를 서술하고 과정을 살펴본다. 그것에 당사자들의 해명, 당대의 매체들의 반응, 대중들의 평가를 싣고 있다. 이것은 그동안 레니 리펜슈탈에게 달려있던 부정적인 평가에 다른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는지, 얼마나 공정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저자는
리펜슈탈은 거의 전 세계적인 공모에 의해 역사의 각주로 쫓겨났다. 프로파간다와 예술을 구분할 방법이나 구분하려는 의지는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그것은 공평한 일이었을까?” 35p
이러한 의문을 갖고서
"히틀러 정권과 같이 악명 높은 정권의 경우에는 선입견 없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는 불가능했다. 그러한 예술이 표상하는 내용에 대한 혐오감, 또는 악명 높은 정권과 연루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또는 예술을  선동하던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해 사상과 생계를 희생했던 사람들에 대한 존경 때문에 당시의 예술을 진지하게 연구할 길은 막혀 있었다.” 564p
라는 주장을 하며, 레니 리펜슈탈에 대한 정치성과 예술성을 분리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공과 업에 대한 평가를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하자고 제안을 한다. 그것은 독자의 판단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판단에 달렸다고 독자에게 선택권을 쥐어준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레니는 나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도 않았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쏟은 것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잘못된 세상에 태어나 사회보다 자신에게 더 많은 시간과 애정을 가진 것 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영화사에 남긴 예술성은 인정해 주되 정치적, 사회적으로 방관했던 도적적 책임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그녀 또한 피해자이다. 히틀러의 광기 속에서 그녀의 재능과 기회는 제한적이었으니까. 그녀의 예술적 과잉이 히틀러의 야욕에 이용되었다는 점이 그래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그것으로 명성을 얻었다. 몰랐다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무게 아니던가.


"예술은 전체주의 정권의 초기 목표다. "
"예술은 예술가를 넘어선다, 정치와 예술은 혼동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러니한 위의 두 문장이 레니 리펜슈탈의 표상이다.
책 제목은 이렇게 바꿔도 될 듯 싶다.
레니 리펜슈탈의 ‘위험한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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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원의 고전강의 공산당 선언 - 젊은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입문서
강유원 지음, 정훈이 그림 / 뿌리와이파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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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기계발 서적은 넘쳐 난다.
재테크, 자산 관리, 잠재된 능력 계발, 자신감 고취시키기, 각오 다지기, 구체적인 방안, 성공사례에서부터 뜬구름 잡기식까지 다양한 시도로 독자를 유혹한다. 그것은 실용성이란 명목하에 일상의 전장터에서 전투력 배가를 위한 소위 말하는 ‘경제적 능력’을 획득하기 위한 ‘비급서’처럼 활용되고 있다. 경쟁적인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목표 없이 살다가 명퇴, 정리해고로 마감되는 인생은 마치 중독처럼 서서히 우리를 잠식한다. 자본주의의 중독은 스스로에게 욕망을 강요함으로써 본인의 의지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있어서 위협적이다. 끊임없는 경쟁과 불안과 불확실성에 자신을 던지고 하루하루에 탈진한 ‘신인류’의 자본주의 사랑은 ‘안~되요 되요 되요 되요’와 같은 두 가지 속성을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종속과 탈피.

우리는 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자본주의의 심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속적일지라도 잘 적응하기 위해서 또는 이상적인 삶의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라도 어찌됐던 알아야 한다. 현실과의 대면, 그것은 관찰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책임지려는 최소한의 노력인 것이다.

후세에 모범이 될만한 가치를 지닌 것을 고전이라 불렀으니, 공산당 선언은 자본주의의 성질을 잘 정리해 놓은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은 공산당 선언을 읽고, 체제 속의 인간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들이댄다. 노동과 자본, 국가와 계급을 통하여 우리의 위치와 미래를 고민하게 한다.

이것은 현실적이다.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과 책임을 말하는 직접적인 방식이다.
 
150년 전의 선언이지만, 아직까지도 유효한 부분들을 발견하는 것은 놀랍고도 씁쓸한 맛을 남긴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접근하는 데에 있어서 이 문장의 의미는 가벼이 여길 수 없다. 비정규직과 하도급 노동자들의 불평등한 노동조건, FTA라는 비밀스러운 협약이 민중의 삶에 미칠 효과를 고려해 본다면 위의 문장은 마치 운명처럼 들린다.

우리의 운명을 자본주의에 맡길 것인가, 포스트 자본주의를 선언할 것인가…
진정한 자기계발은 사회와 자기 자신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고전 읽기의 새로운 시도는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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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6-07-2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업 자본주의의 ‘자기계발서’를 뒤집는 전복적 메타포를 보여준다.
음...땡기네요.^^

라주미힌 2006-07-2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재미나요... 꼭 읽어보세욤.
 

발터 뫼어스 지음, 안영란 옮김, 귀스타브 도레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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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발터 뫼르스의 소설.

‘루모의 어둠 속의 기적’을 읽고 난 후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를 읽으면서, 이 책을 읽었다. 세 작품을 거의 동시에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비슷한 세계관과 주제의식에 약간의 노곤함을 느끼면서도 각각의 상이한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이 책은 ‘귀스타브 도레’라는 19세기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들을 짜맞추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야기의 흐름과 그림이 매우 잘 어우러져 있어서 ‘그림을 위한 글’이었어도 ‘글을 위한 그림’처럼 다가온다. 상상을 위한 소설에 그림이 필요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것은 괜한 것이었다. 굵고 거친 고딕의 선이 음침함을 더하고, 그로테스크한 일러스트가 악마적 분위기를 돋군다. 유명한 그림들이라고 하니 ‘그런가 보다’하고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환상 소설에 가까운 이 모험담은 발터 뫼르스의 다른 소설들처럼 인생을 빗대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사랑, 근심, 운명, 시간, 공포, 꿈, 그리고 죽음…
전인류에게 똑같은 기회로 고뇌를 안기는 삶의 마디마디는 영원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확실하고 불완전한 것이기에 그것은 모험인 것이다.

그렇다고 근심할 필요는 없다.

 “내 몰골을 보면 우유도 금세 상해버리고 말 테니까. 언젠가 잔잔한 물에 내 모습을 비춰본 적이 있는데, 그 때 난 거의 기절할 뻔했지…”
괴물의 ‘근심에 찬 한탄’은 공포마저도 무기력하게 한다. 저자가 말하려는 것은 이런 것이겠지.

‘우유가 상할 정도의 몰골’을 당신 인생에서 치워주세요!

그래서 발터 뫼르스에게 있어서 ‘삶’은 ‘경이로운 모험’ 이어야 한다. 모험은 활력이고, 미래를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이 소설에서 보여지듯이 주인공은 죽음과 내기를 하고, 죽음에 도전을 하고, 죽음을 극복한다.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주와 사후 세계, 괴물과 영웅들을 치환하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형을 천진하게 또는 광폭한 손짓으로 조물락거리는데 그 조형물은 가히 기괴하다.

도움이 절실할 것 같은 전라의 ‘아마조네스 여전사’는 ‘생식 다이어트’하듯이 용을 갈아 마시고, 괴물은 근심에 싸여 마른 장작이 되어가고, ‘괴물 돼지’는 썩은 어금니를 뽑아달라 한다. 공간과 시간, 우주와 차원을 넘어선 상상의 언어는 상식을 전복한다. 창조는 파괴 뒤에 오는 것 아니겠는가.

밤...
시간의 전복, 세계의 전복, 상상의 전복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우리가 모두 꿈꾸는 그것이 살아나는 밤에.

 


사랑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아니 정말로 가슴이 찢어져 정확히 반으로 나누어지고 말았다. 이것으로 영영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처녀를 품은 쪽과, 아직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남아 있는 나머지 반쪽으로 가슴 한복판을 관통하는 그 차가운 균열의 느낌은 여태껏 느껴본 그 어떤 육체적 고통보다 심한 것이었다.”  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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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0년의 한국정치 - 1945~2005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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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해방 60주년을 맞아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가 삼성공화국 내지, 미국정치를 비판할 때 쓰는 표현대로, ‘돈으로 살 수 있는 최상의 민주주의’일 수는 없지 않은가? 군사독재 못지않게 자본의 지배 역시 민주주의의 적이며, 군사독재를 대체한 것이 기껏해야 금권의 지배와 정-경-언 유착구조라면 그것은 반쪽 민주화일 뿐이다.”

”이제 다시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로 돌아갈 수는 없다. 따라서 한국정치가 진보정당의 성장을 통해 진보-보수의 구도로 전면 개편될 때 지역주의는 약화될 것이다.”

구구절절 맞는 말을 듣다 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마비된 사고를 추스르고 보려 해도 반세기의 역사를 감당하기엔 내 역량으로는 한없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말하려는 이유는 나는 이곳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 ‘시장 경제는 정치적이다.’
한정된 자원의 배분을 놓고 벌이는 ‘정치’는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저임금을 놓고 벌이는 노동계와 재계의 갈등, FTA에 반대하는 목소리들, 스크린쿼터제 축소에 항의 하는 영화인들. 안마사 법에 대한 위헌판결에 대한 시각 장애인들의 시위 등을 보면서 정치라는 지배체제의 질서가 ‘먹고 사는 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정치가 싫어서 관심이 없어요.’라고 말한다면 ‘나는 먹고 사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제 그런 무책임한 말은 꺼낼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기득이익이 가장 강력한 헤게모니를 갖고 있는 영역은 경제’이고, 그곳에는 늘 정치 권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경분리를 말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경제와 정치를 분리하지 말아야 하는 것에 있다. 분절된 정치는 사적영역의 정치를 위한 정치에 머물고, 실제적인 공적영역의 정치를 실행하지 않음으로써 혈세 낭비는 물론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한국 정치의 문제는 정치적인 문제를 비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했고, 그렇게 해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분단과 반공 이데올로기, 군사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이어지는 ‘한국정치 로드맵’을 걷다 보면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의 방향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를 심어주는 데에 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와 FTA라는 거대한 파고에 직면한 현 시점에서 우리의 선택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 하지만, 흔히들 ‘어쩔 수 없다’라는 말. 또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서 비판만 하지 말라는 ‘관망적인 태도’보다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21세기 한국의 발전 모형이 ‘좌파 신자유주의자’가 이끄는 FTA이여야만 한다면, 우리는 그것의 타당성을 제대로 검증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코 이런 식으로 생략되어서는 안된다. 대의제라고 모든 결정권을 청와대와 국회에 넘긴 것은 아니다. 국민의 판단과 선택을 존중해야 하며, 우리의 삶에 직결된 문제일수록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역사에 치이고 밟혀도 결국에는 민중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의 삶이 버겁다면, 버거움의 원인을 고민하고 함께 풀어야 할 것이다. ‘좌파 신자유주의자’의 독선적인 판단에 우리의 생존을 맡긴다면 ‘로또 인생’으로 불려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

양극화, 모 아니면 도 인생?
난 그렇게 되기 싫거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된 삶이다. 농민이 자살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노동자가 분신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시각장애인의 울분을 지켜보는 것도 아니다.
 
그 놈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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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0년의 한국정치 - 1945~2005
손호철 지음 / 이매진 / 2006년 5월
절판


일부 학자들이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고 보는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즉 서구의 경우 신자유주의는 복지의 축소, 국가책임의 축소로 나타난 반면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은 복지의 확대, 국가책임의 확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적 배경의 차이를 무시한 분석이다. 서구에서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위기’ 속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복지국가의 부재’ 속에서 생겨났다. 주목할 것은 이런 역사적 조건의 차이에 따라 김대중 정부의 복지 확대, 국가책임의 확대라는 것이 사실은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복지레짐의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이라는 점이다. … 다시 말해 김대중 정부의 복지확대라는 것이 우리의 복지를 신자유주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한 것이다.-251쪽

복지정책의 경우 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면, 복지정책의 경우 적극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복지확대가 필요했다거나, 소극적으로는 복지확대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본질적 장애가 되지 않기 때문에 IMF 등도 이것을 추천했고 김대중 정부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260쪽

이 세상에 좌파정부란 없다. - 들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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