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한 번 엎드리면 방 끝에 있는 것까지 전부 집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겠죠” 198p


삶의 질이 평형의 크기에 비례하다고 믿는 세계에서 이것은 한 편의 코미디이다. 몸 하나 가두면 가득해지는 이 둘레의 공간은 다른 것이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공간이기도 한데, 그가 기어코 ‘협소의 미’를 발견해낸 것일까? 더 많은 것을 가둘수록 행복해질 것이라 믿는 사람에게 이 이야기는 누군가의 특수한 삶을 관음(觀淫)하게 한다.

이 자전적 소설은 11년간을 그 작은 공간에 머물게 했던 한편의 모험과 같은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그리고 좁을수록 극명하게 보여지는 공간과 삶의 밀접한 관계를 엿보게 한다. 옆 방의 소음과 음식 냄새조차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그 곳. 공동의 것으로 전락하게 된 사생활을 움켜지려는 개인과 개인의 푸닥거리 또한 흥미롭다. 인간 개개인들의 습성을 관찰하는 재미는 백미 중의 백미다.

타인의 소음에 유난히 민감하지만 자신의 냄새에는 심하게 둔감한 사람, 자타의 경계를 잃어버린 사람의 빈번한 끼어들기, 모험정신이 충만한 사람들의 별난 도전들, 삶과 삶이 밀접하게 충돌하고 타협하는 일상의 여러 단면들은 유쾌한 만화의 숏컷처럼 이어지고, 잘라 붙여진다.

일단 저자의 약력을 살펴보면 정말 비범하다. 와세다 대학을 7년만에 졸업하고, 탐험부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괴수를 찾으러 콩고에도 가고, 아마조네스를 찾으러 아마존에도 가고, 미얀마 아편 조직에도 들어가보고, UFO 탐사도 한다. 따지고 보면 이 사람의 자취방은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방 값이 싸다는 것 말고도 그곳엔 특별함이 있다.

일단 ‘궁핍의 철학’을 몸으로 보여주는 저자에게 경제성을 그 집의 매력으로 들 수 있겠다. 카레 종류를 좋아하게 된 이유는 ‘만들어 놓으면 한참을 두고 먹을 수 있기 때문’(최대기록은 카레만 연속 25끼)이라는 그의 변이 말해 주듯 생활은 방값에 맞춰진다.

게다가 청결의 문제를 수영장에서 해결한다.

“노노무라에 살았던 11년 동안 되도록 목욕을 하지 않았다.” 109p
”연중무휴,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고 ~ 중략 ~ 손톱 끝까지 말끔해지고, 독한 소독약에 한두 시간 몸을 담그고 있다 보면 청결을 넘어 체내 유익균까지 다 박멸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될 정도다.” 111p

43%의 TV 보급률을 자랑하는 노노무라에서
“TV 보급률이 너무 높으면 사람 사이의 살가운 교류를 빼앗을 우려가 있지만, 보급률이 딱 43퍼센트 정도면 활성화하는 순기능이 있다”
이런 원리를 발견해내기도 한다.

도전 정신도 훌륭하여 향정신성 식물에 관한 인체 실험도 거침없이 이루어진다.
“마귀광대버섯 임상체험… 반은 구워먹고, 반은 된장국에 넣었는데 맛만 좋았다.”
“그렇지만 그 자리에서 토해버리면 남는 게 없잖아. 그 고통을 참고 참았더니 갈수록 의식이 몽롱해지더니…” 87p

“허나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라 생각했으며, 우리가 지향하는 바는 쾌락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마약중독자와 분명 차별화된다고 보았다.” 88p

늘 그렇게 결론만큼은 깔끔하다.

‘비경제적 삶’에 관한 철학 또한 심오하기까지 하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생태 환경 문제에 있어 고도 자본주의사회, 소비문명사회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우리가 소비하는 물질은 (개발도상국)타국의 환경을 희생시켜가며 얻은 것이지 않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늘리자며 관민이 하나 되어 환경 파괴에 전념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해야 한다. 따라서 인류가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생활 수준을 떨어뜨려야 한다. 경제 비활성화를 지향해야 하고, 비경제인, 비주류, 문명외곽의 인류, 주변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

“자다 지쳐 다시 잠을 자는 이른바 영구수면법을 연구하고 있다.” 201p

(영구수면법으로)식사량을 줄이고, (손바닥 지압법으로)식욕을 억제하며, (청결을 위한)수영장 가는 것도 줄이고, 외출을 줄인다. 물욕은 물론 성욕도 없어지는 부작용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철학적인 삶을 추구한다.


제목처럼 이것은 청춘기이다. 청춘이 내뿜은 ‘열기’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청춘기. 일본의 거품경제가 꺼지고, 수 많은 젊은이가 막막하기만 하여 ‘막막증’에 빠져든 시기에 노노무라는 어쩌면 어둠의 등불 같은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성세대에 편입되기를 주저하고, 현실에 맞춰 살면서도 현실을 긍정해야만 했던 시대,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던 시대, 모험이 없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던 시대가 남긴 초상이 이렇게 유쾌할 수 있다는 것은 추억할 수 있는 자의 특권일 것이다.


오랜만에 하하하 웃으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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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7-10-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짐 사다놨는데 아직 읽지를 않았는데 보기만해도 재미있을거 같군요^^
 
와세다 1.5평 청춘기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오유리 옮김 / 책이좋은사람 / 2007년 9월
절판


노노무라는 내게 있어 긴 세월 동안 신어온 낡은 신발과 같은 존재다. 닳고 닳아 누가 봐도 명이 다 했다는 걸 안다. 버려 마땅하나 내 발에 너무나도 길이 잘 들어 있어서 버릴 수가 없다. 너무 완벽히 밀착되어 있어 다른 것들이 이물질로 생각되는 것이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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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어려서는 예의를 배우라.
젊어서는 스스로를 절제하라.
중년이 되어서는 공평하라.
노년에는 좋은 조언을 주라.
그리고 후회 없이 죽으라…    

- 키네아스의 묘에 새겨진 다섯 개의 금언..



시간이 흘러도 변함이 없는 것은 삶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불완전함일 것이다. 단속하고, 정리하고, 주의 깊게 살아가도 삶의 미련과 후회는 늘 따라다닌다.
오직 죽음만이 사하노라? 질곡의 세월이 남긴 상흔의 기억들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


역사인가, 철학인가 아니면 로맨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을 회고하는 한 의사의 서술로 시작한다. 기원전 1300년경 고대 이집트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며, 이집트의 민간 설화와 프로이트의 ‘모세와 유일신앙’(1939)을 치밀하게 혼합한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특정’ 종교적 색채를 찾아내려는 노력은 무모하다. 이 소설은 사랑과 모험과 인생철학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과 상징이 하나의 실체를 이루었던 고대 이집트는 지적흥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소재이다.
신이라 불리었던 사람이 절대왕권을 가지고 있던 시절, 살아있을 때보다 죽음을 더 가까이하고, 종교적 삶이 그 모든 것을 말하던 그 때는 분명히 요즘의 삶과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물론 그 차이로 인하여 초반에 몰입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차이가 주는 즐거움, 시대를 거슬러올라 맘껏 누리는 문화의 진풍경이야말로 역사소설의 매력 아닌가.

이집트 역사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이 소설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객관성의 정도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꽤 많은 부분은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한다. 아케나톤의 혁명성과 좌절, 투탕카몬의 죽음과 이집트 공주와의 혼인을 앞두고 살해된 히타이트 왕자, 호렘헵의 활약(?), 아이의 음모… 하지만, 사실성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부분은 작가의 상상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데, 대단히 깔끔하고 완성도 높은 소설이었다고 생각한다. 영원한 생명을 꿈꾸며 잠든 고대 이집트의 미이라에 ‘동안’을 찾아준 것마냥 사실적이었고, 흡입력 있는 스토리텔링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상과 종교, 문화, 망탈리테를 투영하는 작가의 섬세함이 돋보였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성격 또한 분명하고, 개성이 강하여 소설의 재미를 한껏 더한다.
하늘의 이상을 땅 위에 심으려 했던 파라오 아케나톤, 전쟁으로 자아를 확인하려는 호렘헵, 광신에 찬 야심가 아이, 위험한 꽃 네페르티티, 네페르네페르네페르, 운명을 짊어진 홀로된 자 시누헤, 비참했지만 의젓하게 골로 간 아지루 왕, 깜찍한 노예 카프타 그리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들…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동감은 살아있는 화석 실러캔스 같았다.


홀로된 자 시누헤, 그는 누구인가

소설은 전형적인 영웅신화의 구조를 띤다. 고귀한 혈통이었지만, 버려지고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여 정상에 오르는 과정까지만 그렇다. 그러나 결국엔 영웅이 아닌 평범한 인간이 되어 내려온다. 그가 찾으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찾아 나선 것은 지식이었다. 아니 진리였다. 크레타, 히타이트, 바빌론, 시리아의 신들을 알게 되었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실존적 신은 없었고 오직 인간만이 신의 목소리와 힘을 가지려 했다는 것이다. 욕망하는 인간들, 그리고 자신이 만들어낸 탐욕의 운명을 확인한 것이다.

   
  나는 인간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더 많은 것을 욕망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꼴이 되었다.” 12p  
   


누군가는 기록하려 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지우려 한다. 그것은 역사를 바꾸는 힘의 대결이며, 진리와 욕망의 충돌이다. 미이라로 남겨진 자는 영생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 믿었고, 재로 사라지는 것은 영원한 욕망의 소멸을 의미했다.
전쟁과 파괴, 죽음의 그림자가 늘 시누헤를 쫓아다녔지만 그는 살아 남았고 그것을 기록한다. 따라서 시누헤의 존재 자체가 기록이며 욕망의 본질을 말한다.

   
  왜냐하면 나 시누헤는 인간이니까. 나는 나보다 먼저 살았던 모든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었으며, 나보다 나중에 살아갈 모든 사람들 속에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의 눈물과 웃음, 인가의 슬픔과 공포, 그리고 인간의 선량함과 사악함, 정의와 불의, 나약함과 강건함 속에 깃들어 살아갈 것이다. 나는 인간으로서 인류 속에 영원히 깃들어 살아갈 것이다.”  376p  
   



모두가 사라진 지금, 홀로 남겨졌기에 그는 홀로된 자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운명이었다. 그리고 인간이 지닌 고독의 근원을 말하고 욕망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집트는 그러한 욕망을 말하기에 적절한 배경이었던 것이다.

시누헤는 영원히 인간 속에 살아있다.
그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경험했고, 그것으로 깨달음을 얻었다.
죽음이 남긴 자취, 인간의 욕망이 벌인 일들...
한 권의 소설이지만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와 성찰은 그리 가볍지 않다.

머리에 재를 뿌리고 통곡할 욕망이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있으니까.


   
  인생의 봄을 지나쳐 버린 외로운 사람에게는 참보다 거짓이 감미로운 법이지요.”  390p  
   


믿고 싶지 않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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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품절


아케나톤은 그 신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고 너무 자주 이야기해. 무슨 일이 생기기만 하면 새로운 신과 연결시켜서 주변 사람들을 자기보다 더 열광하게 만들어. 파라오는 자신은 진리에 의지해서 산다고 하더군. 하지만 진리는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과 같은 거야. 칼은 칼집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만 꺼내야 하네. 진리도 마찬가지야. 특히 통치자에게는 진리는 무엇보다도 위험한 칼이네. -187쪽

인생이 뜨거운 여름날이라면 죽음은 아마도 시원한 밤이겠지요. 인생이 얕은 시냇물이라면 죽음은 맑고 깊은 바다랍니다.-120쪽

나는 병을 치료하고 목숨을 구하려고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의 사악함 때문에 돌아가셨고, 미네아는 나의 나약함 때문에 죽었고, 메리트와 어린 투트는 나의 그릇된 판단 때문에 죽었고, 파라오 아케나톤은 나의 증오심과 우정, 그리고 이집트 때문에 죽었다.-3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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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은밀한 사생활 - 탐미의 시대 유행의 발견, 개정판
이지은 지음 / 지안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차이는 이것이다. 부자는 먹고 싶을 때 먹지만, 가난한 사람은 먹을 수 있을 때 먹는다.”     윌터 롤리 경


인간 사회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환경적, 문화적, 계급적 차이가 가져온 차별성은 각자의 역사로 기억되어 왔다. 하나는 소수의 지배계급으로 다른 하나는 다수의 피지배계급으로, 하나는 고급과 엘리트라는 간판을 달고 살아가고, 다른 하나는 대중성과 미디오커라는 태그를 달고 살아간다. 그렇게 일생을 살아가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의 한계와 경계는 이미 결정되어 진다. 따라서 경험은 간접적이고 지식은 가식적으로 발전할 수 밖에 없게 되는 구조를 띤다.

여기는 분열된 세계, 저편에 있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 책은 다수가 경험할 수 없었던 18세기의 문화와 예술과 유행, 그들만의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그리고 저자는 오브제 아트를 감정하는 (외모도 ‘귀족’적인)전문가답게 전문적인 지식과 대중적인 편안함으로 오브제 아트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은 역시나 화려하다. ‘엘레강스’한 궁정의 예술품을 담은 도판이 가득하다. 보기만 해도 ‘이거 비싸구나’라는 것을 ‘국보급 둔치’라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진귀한 것이 많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tv프로그램(특히 ‘x요일 x요일 밤에’)에서 보여지는 골동품, 문화재, 예술품에 대한 자본적가치 매기기의 천박함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거 비싸?
브랜드는 뭐고 소비자가격이 얼마야?

물건을 보고 그것의 가치를 묻는 질문은 보통 이런식이다. 하지만, 이 책에 실린 수 많은 오브제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보아야 할 것들이 아니다. 저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만든 ‘장인’의 솜씨와 열정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노동의 예술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지녀야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앤틱 가구를 산다는 것은 그것이 겪어온 역사뿐 아니라 처음부터 손으로 일일이 나무를 다듬어낸 장인들의 손길과 그들의 인생을 함께 사는 것이다. 장인이 되는 데 빨라도 20년의 세월이 걸린 시대에 그야말로 그들의 작품은 한 사람의 일생을 바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160p


물론 이 책에는 장인의 손길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에 손 때를 묻히며 사용하던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왕’과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을…
마치 신혼 첫날밤에 화장을 지운 아내의 얼굴에서 눈썹을 발견할 수 없는 것 같은 당황과 황당함이 넘친다. ‘더티한 궁정생활’이라던가, 난잡스러움, 정말 ‘깬다’라는 느낌을 안겨주는 왕의 일상 등 읽을 거리의 풍성함이 매력적이다.

18세기 여성들은 두 번의 투왈렛 시간을 가졌다. 첫 번째 투왈렛은 남에게, 특히 애인이나 남자에게는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 여기서 말하는 첫 번째 투왈렛은 바로 세수하는 일을 가리킨다. ~ 하지만 당시에는 세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풍습이었다. 213p

당시의 문화와 유행을 살펴보는 것 또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살롱에서 왁자지껄 수다를 떠는 지식인들, 거드름을 피우며 자신이 가진 ‘물건’을 전시하는 부유한 작자들, 첨단 유행의 도시 베르사유를 배회하는 ‘촌뜨기들’… 상상을 자극하는 상황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있다.

유행의 첨단을 달린 베르사유는 판화가나 장식가들이 활동하는 주무대였다. 그들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왕의 도시 베르사유에 가서 새로운 문화와 유행을 직접 목격했다. 루이 14세가 거의 모든 것을 통제하던 베르사유는 신분이 높건 낮건 모두 왕을 위해 일하는 정치 도시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궁정인들이 벌이는 연극 같은 생활을 신기한 듯 구경하는 일종의 극장이기도 했다. 136p


이 책을 읽다 보면 ‘예술은 태생부터 귀족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생을 바쳐야만이 이를 수 있던 장인들을 ‘서포터’ 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은 그들 귀족 밖에 없지 않은가. 먹고 살기 위해 포기해야만 했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재능이란 꿈에 불과한 것이지 않은가.
웬지 멀게 느껴지는 그들의 세계, 하지만 저자는 예술과 삶의 가교 역할을 한다. 멀리 있어도 그것은 우리 삶의 여러 모습 중에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고급의 의미'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얼마 짜리인가’가 아니라, 얼만큼의 애정과 정성이 담겨있는가를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오브제 아트라는 낯선 분야가 나에게 남겨준 것은 아름다움이란,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빛나게 하는 것이다라는 점이다.

궁중예술품은 ‘프랑스의 위대한 혁명’으로 왕정의 붕괴, 장인의 몰락과 함께 사라져 갔다. 이 책에서 묻어나는 저자의 아쉬움은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에 대한 진지한 연민이다.

정치적으로는 위대한 혁명일지 모르지만, 예술적으로는 지나치게 잔인했던 혁명이었다. 3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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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7-09-0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조와 파괴의 양면성에 대한 진지한 연민이라..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이들과 토론 수업을 한 적이 있었어요. 똘똘한 아이 하나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아름다움은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처음부터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요. 그랬더니, 다른 똘똘한 아이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아름다움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요. 제가 이 책을 읽었더라면, 더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들을 많이 해줄 수 있었을텐데, 아쉽네요.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때, 파괴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그 파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좀 다른 측면인 것 같아요. 그래서 상업성을 띄지 않는 예술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합니다. 아침부터 되게 어렵네요 ㅋㅋ

라주미힌 2007-09-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얘들 똑똑하네.. 가시장미가 가르쳐서 그런가봐.. :-)

sokdagi 2007-09-1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멜기세덱 2007-09-1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ㅊㅋㅊㅋ

마노아 2007-09-19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이주의 마이 리뷰 당선이군요! 축하합니다. 저도 얼른 이 책 읽어야 할 텐데 여진히 책장에만...;;;;

라주미힌 2007-09-19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7-09-20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