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 ㅣ 김겨울기자]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조직일 뿐이다. 직접 연관이 있는 재경부, 국세청 등에 대한 로비 규모는 훨씬 크다"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에서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5일 털어놓은 삼성그룹의 생존방식이다. 삼성그룹 법무팀에 들어간 게 인생 최대의 실수라고 고백한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검찰 및 재경부, 국세청 등 고위 관리직에게 해마다 정기적으로 뇌물을 돌렸다"고 폭탄선언했다.


삼성그룹의 전방위적인 로비.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을까. 김용철 변호사는 "전직 검사출신인 자신은 현직 검사를 관리하는 게 주요업무였다"며 인맥을 통한 로비 방법에 대해 간접적으로 밝혔다. 즉, 전직 타이틀 출신 인사를 대거 영입해 현직 관계자를 포섭한다는 것. 실제로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을 살펴보면 과거 '한자리'했던 거물급 인사로 가득하다.


특히 전력기획실 법무팀과 그룹 계열사 사외이사의 경우 대법원, 국세청, 청와대 등에서 근무한 핵심인력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이에 대다수 국민들은 "삼성그룹의 화려한 영입인사들이 삼성의 로비창구가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삼성그룹을 삼성공화국으로 만든 골드인맥. 스포츠서울닷컴에서 정리했다.


◆ 법무팀장은 노 대통령 최측근


삼성그룹의 법무실은 웬만한 로펌 보다 규모가 크다. 현재 삼성을 담당하는 법무실 소속 변호사 수는 170여명. 국내 최대 규모다. 변호사 커리어 또한 국내 최고다. 우선 실장 자리(사장급 대우)를 맡고 있는 이종왕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다. 사법시험 17회 동기로 노 대통령의 친목 모임인 '8인회' 회원이다. 노 대통령 탄핵 당시 변호인단으로 활약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종왕 변호사를 필두로 서우정 변호사, 김수목 변호사, 신홍철 변호사, 여남구 변호사, 이기옥 변호사 등이 법무실을 이끌고 있다. 서 변호사는 23기로 특수부 부장 출신이다. 김 변호사와 이 변호사 역시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이용호 게이트'와 '린다 김 사건'을 담당해 주목을 받았다. 여 변호사와 신 변호사는 판사 출신이다.


이 외에도 삼성은 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를 법조인 출신으로 대거 구성해 법조 인맥을 공고히 하고 있다. 삼성SDI는 장준철 전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삼성전기는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을, 삼성전자는 정귀호 전 대법원장을, 삼성중공업은 고중석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삼성증권은 신창언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삼성화재보험은 김영철 전 법무연수원장 등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고 있다.




◆ 재경부 및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


사외이사의 역할은 이사회에 참여해 집행간부들이 제대로 일을 하는지 견제하는 것이다. 삼성그룹은 17개 계열사에 적게는 2명 부터 많게는 6명 정도의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17명이 국세청, 공정위, 금감원 등 고위 관료출신으로 채워져 있다. 김용철 변호사의 주장을 참고할 때 견제의 기능 보다 다른 기능(?)에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우선 국세청 관료출신이 5명으로 가장 많다. 삼성물산 사외이사인 사상주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삼성 SDI 사외이사인 최병윤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삼성전자 사외이사인 황재성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삼성정밀화학 사외이사인 박병일 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2국장, 삼성증권 사외이사인 이주석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이다.


다음으로 제일기획 사외이사인 서승일 전 대통령 비서실 조세금융 비서관, 삼성전기 사외이사인 강병호 금융감독원 부원장과 남궁훈 전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장, 에스원 사외이사인 김영섭 전 관세청장, 삼성엔지니어링 사외이사인 박인주 전 인천세무서장 등도 내로라 하는 금융관료 출신들이다. 이외에도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사외이사에 이갑현 전 외환은행장, 삼성중공업 사외이사에 손수일 전 산업은행 부총재 등을 임명해 금융권 인맥도 닦았다.


◆ 사외이사, 또 다른 로비창구 의혹


삼성그룹이 법조계 및 정·재계에 어떤 방식으로 로비를 하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게다가 삼성그룹이 가지고 있는 골드인맥이 로비에 동원됐는지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업 관계자들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목적이 뻔히 보인다"며 사외이사 제도의 왜곡을 걱정했다. 심지어 삼성그룹 관계자 또한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외이사를 회사에 도움이 되는 여러 분야 전문가로 임명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며 견제 기능을 간과하는 입장을 보였다.


이는 김선웅 좋은기업지배연구소장의 우려와도 일맥상통했다. 김 소장은 "사외이사 역시도 회사와 이해관계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보니 행정부나 법조계 쪽 고위 인사들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 위주로 영입한다. 소위 권력 기관의 사람들이 대기업으로 들어오는 절차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어 이 같은 문제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사외이사의 자격을 제한할 기준 재정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외이사라는 게 경영진이나 대주주로부터 독립해 기업의 가치 보호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현 시스템에선 대주주가 사외이사 선정에 관여하고 있다. 대주주 입장에서 경영 감시가 잘 이뤄지지 않는 가까운 사람을 뽑게 되는 건 당연하다"며 역할 왜곡을 막기위한 제도개선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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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2007-11-07 12:54:09]

"도망 다니는 일은 난생 처음인데…."

당연한 일이다. 그는 원래 검사였으니까.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게 그의 본업이었다. 이런 그가 칫솔 하나 지니지 않은 몸으로 이리 저리 떠돌고 있다. 하지만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스스로 잘못을 고백한 자가 누리는 편안함이다.

6일 오후 서울 제기동 성당 사제관에서 만난 그는 바로 김용철 변호사다. 검사복을 벗고 삼성으로 이직한 첫 번째 사례로 주목받았던 그는 지난 1997년부터 2004년까지 삼성 구조조정본부에서 일했다. 법무팀장을 맡아서 삼성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그가 삼성이 막대한 비자금을 불법적으로 관리해 왔으며, 이 돈을 권력기관에 뿌리는 뇌물로 활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리고 이런 범죄 행각에 자신도 가담했다고 고백했다. 최근 열흘 사이의 일이다.

'삼성에서 화려한 대우를 받았던 그가 왜 이제 와서 친정에 돌을 던지는가', '재벌의 비리를 들춰낸 그는 과연 '의인'인가' 등 온갖 구설수가 뒤따랐고, 지난 5일 그는 발 디딜 틈 없이 모인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개 숙여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검찰 최고위층에도 삼성의 뇌물을 받은 이들이 여럿 있다"고 밝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소위 '떡값'이라는 명목으로 삼성의 뇌물을 받은 검사들은 이제 편한 잠을 잘 수 없게 됐다. 밝은 표정의 '죄인'은 과연 잠을 설치고 있을 '검사'들의 명단을 공개할까. 궁금증을 지우지 못한 <프레시안> 기자들이 김용철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 결함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그게 사태의 본질인가?"


▲ 김용철 변호사. ⓒ프레시안

프레시안 : 어제(5일) 삼성이 보도자료를 냈다. 김 변호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이다.

김용철 : 삼성의 반박문을 읽지 않았다. 볼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괜히 기분만 상할 뿐이다. 나는 삼성의 구성원 누구에 대해서도 험담을 한 적이 없다. 사생활을 들추지도 않았다. 재산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삼성은 내가 하는 말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려고 하는 듯하다. 내 증언이 유력한 증거인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다. 삼성은 나를 '믿을 수 없는 사람'으로 몰아붙인다.

하지만 내가 의인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문제인가. 나는 결함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사건의 본질이 아니다. 내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내용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을 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은 지엽적인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내가 언제 "나는 깔끔하다"라고 했나. 내가 언제 "내 인격을 검증해 달라"고 했나. 언론이 삼성 임원들을 취재해서 내 이야기가 사실인지를 검증하려 하지 않고, 이런 엉뚱한 문제에 매달리는 것을 보면 답답하다.

"찾아갔을 때 대꾸도 안 하던 언론이 갑자기 취재에 나섰다"

프레시안 : 언론에 대한 불신이 깊은 듯하다.

김용철 : 사제단 신부님이 인간은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말씀을 했다. 그리고 이번 회오리가 지나고 나면, 쓸쓸할 거라고 했다. 공감했다. 정치인도 못 믿고, 언론도 못 믿는다. 그래서 이미 쓸쓸하다.

사제단을 처음 찾아왔을 때, 원로 신부가 나를 야단쳤다. 삼성에서 호의호식하다가 왜 이제 와서 그러느냐고 했다. 맞는 말이다. 나는 더 혼나야 한다.

언론을 못 믿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당신들(기자들)이 더 잘 알거라고 본다. 얼마 전 한 신문에서 연락이 왔다. 취재를 하겠다고 했다. 안 만난다. 삼성의 잘못을 알리겠다고 내가 찾아 갔을 때, 대꾸도 안 했던 이들이다. 그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이런 언론에 어떤 기대를 하겠는가.

프레시안 : <한겨레> 기획위원 경력이 있다.

김용철 : 삼성에서 나온 뒤, 개인 변호사를 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다시 공직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어디든 좋으니 내가 속할 조직이 필요했다. 언론사가 적당해 보였다. 몇몇 언론사에 뜻을 전했다. 하지만 응답이 온 곳은 <한겨레> 뿐이었다. 그래서 <한겨레>에 들어갔다. 다른 이유는 없다.

"뇌물 받은 검사 명단, 사실 공개하고 싶지 않다"

프레시안 : 언론이 아닌 사제단을 통해 삼성의 범죄를 폭로했다. <한겨레> 기획위원 시절, <한겨레>를 통해 알릴 수도 있지 않았나.

김용철 : <한겨레>에 들어갈 때, 삼성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칼럼을 쓰면서도 삼성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굳이 사제단을 찾은 이유는 절망감 때문이었다. 삼성에 대한 이야기를 도저히 안 할 수 없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어디서도 부담스러워 했다. 언론도, 시민단체도 다 마찬가지였다.

답답해하던 차에 한 친구가 "신부님들을 한 번 뵙자"고 했다.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을 만나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연세가 예순이 넘은 분들인데, 눈빛이 너무 맑았다. 아이들처럼 순수했다. 과거 목숨을 걸고 독재정권과 싸웠던 분들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지금은 사제단 신부들에게 모든 것을 맡긴 상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다 지엽적인 것들이다. 사태의 본질이 아니지 않는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프레시안 : 삼성에서 뇌물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은 언제 공개할 생각인가. 대중의 관심이 쏠린 대목이다.

김용철 : 사실 나는 공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검사를 하고 싶은 사람이다. 사건의 본질은 재벌의 부당한 권력이다. 지금 명단이 언론에 공개되면, 초점이 흐려질 수 있다고 본다. 어차피 내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모든 게 밝혀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은 사제단에 맡겼다. 명단도 사제단에 넘겼다. 사제단이 공개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언론은 왜 내 입만 바라보나. 다른 삼성 임원 계좌를 확인해 보라"

프레시안 :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사건 당시 증인과 증거를 조작했다고 밝혔다.

김용철 : 구체적인 내용을 이 자리에서 말할 수는 없다. 어차피 검찰 수사나 청문회 등 공개적인 절차를 통해 검증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기서 말을 많이 하면 상대방(삼성)을 도와주는 셈이 된다. 이쪽이 갖고 있는 것에 맞춰, 삼성 측이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미 상당수의 증거들이 삼성 내부에서 폐기됐을 게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른 조사가 빨리 시작돼야 한다.

지금, 언론에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삼성 전·현직 임원들에게서 제보를 받아 달라. 삼성 비자금 차명 계좌 관련 제보다. 익명이라도 좋다. 이런 제보를 받아 확인하여 보도하는 게 언론의 역할 아닌가. 언론이 왜 내 입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검찰 조사 받기 전에 미리 다 내놓고 당하라는 말인가.

수사는 신속해야 하는데,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증거가 다 사라질 수 있다. 언론이 지엽적인 문제를 부각해서 논점을 흐리면 안 된다. 수사가 사건의 본질을 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은행, 왜 삼성위해 범죄 저지르나"

▲ ⓒ프레시안

프레시안 : 비자금이 담겼다고 폭로한 차명계좌가 우리은행에서 개설됐다. 우리은행과 삼성의 관계가 상당히 긴밀해 보인다.

김용철 : 그런 것 같다. 이미 밝혔듯 나는 우리은행에 계좌를 개설한 적이 없다. 그런데 보안계좌가 개설됐다. 본인 확인 없이 보안계좌를 개설한 것은 금융실명제 위반이다. 명백한 범죄다.

프레시안 : 만약 그렇다면, 우리은행이 삼성을 위해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이런 점만 봐도 삼성과 우리은행의 관계는 무척 가까워 보인다.

김용철 : 은행은 공신력이 생명이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내가 차명계좌를 폭로한 지, 시간이 꽤 지났다. 그 사이에 우리은행 계좌번호가 갑자기 찾을 수 없게 됐다. 분명히 세금도 냈는데 말이다. 금감원을 통해 확인하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사태에 대한 우리은행 측의 내부 조사 결과도 아직 안 나왔다. 우리은행이 삼성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프레시안 : 삼성과 우리은행의 관계가 유독 관심을 끄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삼성이 금산 분리를 철폐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산분리가 철폐된다면, 그래서 삼성이 은행을 소유하게 된다면, 우리은행이 대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김용철 : 가능한 이야기라고 본다. 하지만 나는 금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기 힘들다.

"국세청 뇌물은 '0'이 하나 더 붙는다"

프레시안 :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당신이 어제(5일) "검찰은 삼성이 관리하는 작은 부분일 뿐이며, 이해관계가 있는 재경부 등에 대해서는 로비의 규모가 더 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경제 부처에 대해 로비를 했다면, '금산분리 철폐'라는 목표를 갖고 움직였을 가능성이 있다.

김용철 : 그런데 이런 질문을 굳이 나에게 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삼성이 경제부처에 대해 어떤 로비를 해 왔는지는 기자들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X파일'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전직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0'이 하나 빠진 것 아니냐"라고 말이다.

검찰이 받은 뇌물이 자신들이 받아 왔던 뇌물보다 훨씬 적어서 놀랍다는 뜻이다. 경제부처에 대한 로비는 워낙 일상적이어서 금산 분리 철폐 등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국세청 6급 직원(주사)에게 향응을 베푸는 자리에 삼성 임원이 참석하기도 한다. 또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워낙 접대를 화려하게 해서 내가 삼성에 있을 때, "이 정도로 많은 비용을 써야 하느냐"고 한마디 한 적이 있다.

"이 회장 지시 사항 전달한 친구, 안 잘렸을까"

프레시안 : 최근 언론에 이건희 회장의 지시 사항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눈에 띄는 대목이 많다. 분당 삼성 플라자 관련 내용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삼성 특유의 경영 방침에 대한 이 회장의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김용철 : 회장에게 노조 설립을 저지했다고 자랑스럽게 보고한 것 아니냐. 당연히 불법 행위가 뒤따랐을 게다. 노조 설립을 어떻게 저지하나. 회유, 매수, 협박 등이 없이 가능했겠는가. 그 문건 속의 문장 한 줄은 그냥 한줄이 아니다. 추미애 의원을 언급한 대목도, 언론이 확인하니까 삼성이 거액을 들고 찾아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나.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그 문건 속에 있는 내용들을 그냥 흘리지 않을 게다. 하나하나가 신문 일면 머릿기사 소재들 아닌가. 그런데 언론은 추미애에 관한 부분을 확인하고는 그냥 지나쳤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뇌물공여죄에 해당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언론에 공개된 문건은 밀봉돼서 구조본 팀장급에게만 전달되던 문건이다. 아무나 볼 수 있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걸 두고, '단순 참고 사항이다', '이행되지 않은 것이 많다'고 삼성에서 해명하더라. 그걸 해명이라고 했던 그 친구, 아직 안 잘렸나?

"이건희의 현장 방문, 김일성의 현장 지도 분위기다"

프레시안 : 언론에 공개된 문건에서도 이 회장이 사회 곳곳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종종 있었다. 이런 영향력이 가능한 배경에는 권력 기관에 대한 불법 로비가 있었으리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다.

김용철 : 삼성은 자랑스러운 기업이다. 다만 삼성과 이건희 일가는 분리해서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전무가 삼성의 현지 공장을 방문하면 북한 김일성, 김정일이 현장지도 할 때와 유사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거의 종교적인 분위기다.

삼성 직원들은 왜 이건희 일가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추종할까. 권력기관까지 휘두르는 막강한 영향력이 무서워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그냥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나도 삼성에 있을 때, 수없이 갈등했다. 하지만 참았다. 스톡옵션을 행사하려면 3년이 지나야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나도 다른 삼성직원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조직의 배후에 비수를 꽂는 배신자는 내가 속한 유형이 아니다. 혁명 투사 역시 아니다. 물론 크게 한탕하려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오히려 조직에 잘 순응하는 유형이다. 검찰에서도, 삼성에서도 그랬다. 지시를 잘 따르고, 다른 생각하지 않은 유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조직에 고분고분했던 내가 삼성을 떠나면서, 휴대전화를 바꿨다. 삼성 제품에서 다른 회사 제품으로. 삼성에 관련된 사람도 만나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 제품도 쓰지 않았다. 식구들이 너무 심하다고 할 정도였다. 삼성을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삼성을 떠올리는 게 싫어서 그랬다.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와 버렸을까. 운명일 수도 있고, 하느님의 섭리일 수도 있겠다. 나도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내가 원했던 길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을 분리해서 생각하자"

 
▲ ⓒ프레시안

프레시안 : 삼성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이건희 일가와 삼성을 떼놓고 생각하기 힘들어서 생긴 현상일 게다.

김용철 : 거듭 말하지만 삼성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만한 기업이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지금 보다 많이 생겨야 한다. 그리고 이런 훌륭한 기업이 이건희 일가와 몇 명 가신들의 부당한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계속 발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삼성 내부에 양식 있는 분들이 많다. 이른바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집단이다. 그 분들이 이 씨 일가의 경영 세습에 찬성하겠나, 전혀 검증되지 않은 외아들이 총수가 되는 것에 대해 찬성할리 없다. 다만 대놓고 말하지 못할 따름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가 삼성 구성원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철저하게 이 씨 일가와 그 가신들의 잘못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7년 간 두 번 출근한 이건희와 실세 이학수·김인주, 직원들이 누구 눈치를 더 볼까"

프레시안 : 이 씨 일가의 가신들이라면 이학수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을 가리키는 듯하다. 그들의 영향력이 그토록 막강한가.

김용철 : 그렇다. 그들은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다. 내가 삼성에서 보낸 7년 동안, 이건희 회장이 삼성 본관으로 출근한 것을 딱 두 번 봤다. 경영에 관한 대부분의 사안은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처리한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까 직원들도 어떤 면에서는 이 두 사람의 눈치를 더 많이 본다. 자신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삼성 측이 이건희 회장에 대한 비판보다 이학수, 김인주에 대한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경제 걱정'은 검찰의 몫이 아니다"

프레시안 : 이건희 회장의 잘못을 지적하면, 경제 불안을 이유로 만류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김용철 : 최태원이 구속되니까, SK계열사 주가가 올랐다. 삼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본다. SK텔레콤 주가가 한때 400만원까지 오른 적이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100만원도 못 넘겼다. 삼성전자가 SK텔레콤보다 못한 기업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삼성은 강한 기업이다. 이건희 회장 일가와 가신들이 삼성전자의 이익을 다른 곳으로 유출하지 않는다면, 삼성전자는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회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검사들은 국가의 경제를 걱정한다며 재벌에 대한 수사를 머뭇거린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경제를 걱정하는 것은 애당초 검사의 몫이 아니다. 검찰이 법에 따라 부끄럽지 않은 수사를 하기 바란다. 검사는 검사답게 검사의 길을 가고, 기업은 기업의 길을, 언론이 언론의 길을 갈 때 올바른 사회가 되지 않겠나.

강이현,성현석/기자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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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협 "비밀유지 의무 위반"… 시민단체 "공익위한 내부고발"
대한변호사협회(회장 이진강)는 김용철(49)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전략기획실) 전 법무팀장이 삼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을 폭로한 행위를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 위반’으로 보고, 징계를 위한 내부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김 변호사의 폭로를 바탕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을 고발한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김 변호사의 행위를 공익을 위한 내부고발로 규정,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변협 고위관계자는 “김 변호사에 대한 징계 필요성과 관련해 상임이사회 차원의 논의가 있었다”며 “김 변호사가 업무상 알게 된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해 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다”고 7일 밝혔다.
변협은 김 변호사가 삼성그룹 법무팀장 시절에도 변호사 등록을 유지했던 점 등을 들어, 삼성과 김 변호사의 관계를 고용주와 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의뢰인과 변호사 관계로 보아야 한다고 잠정결론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비밀을 공개할 경우, 변협은 내부윤리규정에 따라 ‘비밀유지 의무 위반’을 적용해 제명(등록취소), 정직, 과태료부과 등의 징계를 내릴 수 있다.
변협은 본격적인 징계절차 착수에 앞서 김 변호사가 폭로한 내용의 사실 관계 및 동기 등부터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변협 집행부의 한 간부는 “김 변호사의 폭로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고 동기도 공익에 부합할 경우는 비밀유지 의무 예외 조항에 따라 징계를 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측에서도 김 변호사의 신분을 단순 고용자가 아닌 ‘사내 변호사(In-house Counsel, 기업에 고용돼 경영과 관련한 법률자문이나 외부 변호사, 로펌과의 업무협조 등을 담당하는 변호사)’로 보고 대응여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김 변호사가 고용인으로 입사하긴 했지만 변호사이기 때문에 고용한 사내변호사”라며 “로펌에 고용된 변호사처럼 사내변호사도 변호사인만큼 변호사로서의 의무를 지킬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변호사 업계에서조차 김 변호사의 행위를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위반으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김 변호사는 삼성 임직원의 일원인 법무팀장으로 고용될 것일뿐 삼성과 수임계약을 맺은 변호사와 의뢰인의 관계는 아니라는 것이다.
변협이 김 변호사 징계논의에 착수한 것은 이번 사건이 사내변호사 시장의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와 관련있다는 관측이다. 변협이 변호사 1,000명시대를 맞아 기업들을 상대로 사내변호사 고용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들이 사내변호사 영입을 극도로 기피할 움직임을 보이자 즉각 조치에 나섰다는 것이다.
변협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변호사 윤리장전 개정도 서두르기로 했다. 개정안에는 변호사의 비밀유지 의무와 관련된 강화된 규정과 함께 사내변호사가 어떤 경우에 고용주의 범죄행위를 수사기관에 고발해야 하는지 같은 구체적 내용들이 다수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변호사가 의뢰인과의 상담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권리를 담은 ‘변호사의 비밀유지특권(Attorney-client Privilege)’의 입법청원도 추진할 방침이다.

[한국일보   2007-11-07 18:44:15]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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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11-07 1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 말이 안나온다 정말. -_-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나 잘하세요.
 



 

웃으면 죽는 희귀병에 걸린 아기의 사연이 공개되어
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15일자 영국 선지는 생후 11개월 된 에드워드 데이비드란 아이가
코넬리아 디란지 증후군이란 희귀병을 가지고 있는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하고 있다.에드워드 데이비드가 앓고 있는 희귀병은
웃거나 울을 때 폐와 연결된 기도가 막혀 숨을 거두게 되는 병으로
영국에만 400명이 이 질환을 가지고 있다.

 

데이비드가 웃음을 지으려고 입가에 미소만 띠어도 부모는
긴장을 하고 아기를 주시하며 이를 제지해야만 하는
기막힌 사연을 가지고 있다.하지만 데이비드의 부모는
"사랑스러운 아기"라며 치료할 수 있는 약이라도 사용해 보았으면
좋겠다고 밝힐 만큼 아직 이 병에 대한 치료법은 발견되지 않았다.


 
언젠가 웃거나 울다가 기도가 막혀 질식사를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데이비드의 기막힌 사연에 영국인들은
물론이고 많은 해외 네티즌들도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며
성원의 메시지를 남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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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첫날인 7월1일,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하고 파업을 벌였다. 6월30일 시작된 파업은 1300여 명의 참여로 격렬하게 진행됐다. 매장 점거농성→공권력 투입→매장 재점거 농성→공권력 재투입으로 노사(勞使) 모두가 상처를 입었다. 그들의 극한 대결은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나눔과 베풂 실천한다는 회사가 직원을 배신”
“여름에는 날씨가 더워서 기절할 뻔했는데, 가을이 되니 오히려 추워져서 걱정이네요.”
이랜드그룹 비정규직 근로자가 홈에버 상암점을 점거한 지 123일째인 10월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 앞에서 김정애(45) 씨를 만났다. 그는 지난밤 이곳에서 홈에버 동료 25명과 노숙했다. 소슬바람은 으스스했다. 이불과 두꺼운 재킷, 종이박스, 비닐장판을 준비해 왔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에 밤새 뒤척였다.
“우리 아들이 스무 살이거든요. 지키고 있는 전경 애들 보면 우리 아들 고생시키는 것 같아 안쓰럽죠. 고생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죄 없는 애들만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해요.”
그는 까르푸 시절인 2003년 홈에버에 입사했다. 분식집, 정육점 등 안 해본 장사가 없을 만큼 열심히 살아온 그였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힘겨워하던 상황에서 “까르푸 같은 좋은 일터에 취직했다”는 것이 더없이 기뻤다고 한다. 대형 화물차를 운전하는 남편과 고등학생 두 아이를 두고 빠듯한 살림을 꾸려오던 그에게 월급 80여만 원은 값진 돈이었다.
“이런 데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까르푸에 들어갈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샐러드바에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즐거웠고, 축산 파트로 옮긴 뒤에는 “장사만은 자신 있다”며 부지런히 일했다. “보너스가 없어 서운한 적은 있지만 비정규직이란 말이 뭔지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이랜드그룹이 까르푸를 인수해 홈에버 소속이 됐을 때는 자신처럼 “하나님을 믿는 회사”라 내심 기뻤다.
이랜드그룹은 김씨의 말마따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으로 알려져왔다. “기업 활동에서 벌어들이는 순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내부 시스템을 갖춰놓았으며, 매년 100억원 넘는 예산을 ‘사회복지 기관, 시설 지원’ ‘북한 주민 돕기’ 등에 사용하고 있다.”(‘한경비즈니스’ 6월19일자)
김씨의 종교적 친근함이 실망감으로 바뀐 것은 그의 소개로 2005년 까르푸에 들어온 친언니와 몇몇 동료가 해고당한 올 2월부터다. 친절사원으로 뽑힐 만큼 열심히 일했던 언니가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눈물을 보이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 “배신감이 컸다”고 한다. 그 후 ‘파업투쟁’에 참여했고 어색하기만 하던 시위현장도, 민중가요도 익숙해졌다.
“파업이란 것도 처음 해봤고 경찰서에 연행된 것도 처음이에요. 남편은 난리가 났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도 들었고요. 텔레비전에서 데모하는 거 보면 왜 저렇게 거칠게 싸울까 했는데, 그동안 겁도 없어진 것 같아요. 처음엔 며칠만 하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가고 보름이 가더니 어느새 넉 달이 지났네요. 무슨 꿈을 꾼 것 같아요.”
이랜드그룹은 독특한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키워왔다. 현재는 13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순위 32위(공기업 포함)의 기업집단으로, 모태는 박성수 회장이 1980년 서울 신촌에 꾸린 2평짜리 옷가게다.
박 회장은 기독교 장로로,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언급한 것과 비슷한 청교도적 기업가로 알려져왔다. 그는 신앙생활과 근면·검약 정신이 맞물려 돌아가는 기업문화를 구축해 ‘구멍가게’를 26년 만에 매출 2조6000억원의 대기업으로 키워냈다. 그는 부(富)의 사회 환원을 강조해왔으며 인수합병도 선교의 일환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 회장은 노조에는 차가웠다. 2005년 5월 삼일교회의 간증에 참석해 ‘직업(job)이냐, 소명(calling)이냐’를 주제로 강연했는데, 근로자들이 ‘일’로서가 아니라 ‘소명’으로서 회사에 다니기를 바라는 듯했다. 실제로 이랜드그룹엔 ‘소명 의식’을 가진 임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그가 비정규직 대량해고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해요”
통계청에 따르면 임금 노동자의 35.5%인 546만여 명(2006년 현재)이 비정규직이다. 임금 노동자 10명 중 3.5명꼴인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정규직의 62.8%에 그친다. 한 대기업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하는 김모(25) 씨는 “똑같은 일을 직영(정규직)보다 2배, 3배 더 하고도 월급은 절반조차 안 되는 생활을 이젠 그만 접고 싶다”고 했다.
비정규직보호법 시행에 맞춘 이랜드그룹의 대량해고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가슴에 맺힌 한을 자극한 측면이 크다. 이인숙(42) 씨는 2006년 4월부터 뉴코아 강남점 킴스클럽에서 일했다. 뉴코아는 결혼 후 20년 가까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그의 첫 직장. 남편이 지난해 대장암 선고를 받은 뒤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초등학생과 중학생인 두 아들의 “교육비라도 벌고자” 수납원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주 자리를 비우면 안 되니까 몇 시간 동안 화장실도 못 가고 참을 때가 많았어요. 비정규직은 휴무도 주말에는 못 내요.”
정규직 근로자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이씨는 4월 중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두 달 전 10개월 연장 재계약을 체결한 터라 부당 해고라며 회사에 항의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자 홀로 점포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나중에 노조에서 문제를 제기하니까 그제야 ‘계약서가 잘못됐다, 복귀하라’고 하더군요. 살아오면서 부당하게 차별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정말 화가 났어요.”
그는 이후 노조의 파업에 동참했다. 급여를 받지 못하다 보니 생활을 꾸려나가는 게 시급한 문제다. 체육특기생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아들에게 가정형편상 운동을 그만둘 것을 호소했다고 했다.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아들이 월급도 안 주는데 왜 매일같이 나가냐고 물어요. 그럼 ‘이 엄마가 처음으로 직접 번 급여로 네 회비 낼 수 있어서 자부심을 갖고 일했는데, 그렇지 못해 속상하다’고 설명하죠. 생계 때문에 시위를 그만두는 분도 많은데, 이제부터 저도 저녁에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생계문제는 거리로 나선 ‘아줌마 근로자’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대부분의 아줌마들이 넉넉지 않은 형편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직업전선에 뛰어든 이들이고, 개중에는 남편 대신 생활을 꾸려야 하는 가장도 적지 않다.
“아까 은행에 다녀왔는데,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서 주변에서 나는 소리가 하나도 안 들리더라고요.”
7년간 홈에버 면목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해온 L씨(40)는 “매달 결제일만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초등학교 6학년 딸과 3세 아들을 둔 그는 몸이 안 좋아 입원한 남편을 대신해 생계를 꾸리는 실질적 가장이다. 정규직으로 파업에 참여한 그는 엄마 대신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12세 딸에게 “친구가 학교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아닌데요’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지만,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엄마로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아닌지 고민이 크다”고 털어놨다.
2004년 남편과 사별하고 초·중·고생 세 아이를 키우는 C씨도 ‘내 옆에 있던 동료가 안 보이고, 차별받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에 파업에 참여했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빨리 정상적으로 돌아가서 근무하고 싶어요. 아이들에게도 계속 싸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요.”



국정감사에서도 이랜드그룹 성토 빗발
비정규직보호법은 2년 넘게 고용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고, 같은 사업장에서 구체적인 이유 없이 비정규직을 차별대우할 수 없게끔 돼 있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취지를 살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분리직군제를 도입해 고용을 보장하고 복리후생을 정규직 수준으로 개선한 기업이 적지 않다.
‘이랜드그룹 사태’는 사측이 비정규직법을 회피하기 위해 계약해지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사실상 해고하고 계산원 업무를 외주화하면서 촉발됐다. 이 과정에서 이랜드그룹은 백지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거나 단체협약을 어기는 등 ‘명백한 잘못’도 저질렀다. C씨가 국회 앞에서 불안한 시위를 벌이고 있을 때 국회 안에선 이랜드그룹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여야가 따로 없었다.
10월23일 오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장은 ‘이랜드그룹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한선교 의원(한나라당)은 백지계약서와 관련해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계약서를 그렇게 쓰지는 않는다. (계약서의 문구를) 화이트로 지우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몰아붙였고 우원식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근로계약서를 위조했다. 그건 사문서 위조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종길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파업으로 조합원이 빠진 계산대에 (월 30만원의 연수비를 받는) 청소년 직장 프로그램 연수생들을 배치했다(대체근로는 불법이다)”고 주장했으며, 조성래 의원(대통합민주신당)은 “외국 출장을 구실로 박 회장이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은 까닭”을 추궁했다. 홍준표 위원장(한나라당)은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랜드그룹 경영진을 질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마음대로 경영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헌법상 노동권은 기업경영의 자유보다 우선하는 ‘기본권’이다. 11월2일 노동부 국정감사에 출석하라고 박 회장에게 전하라. 출석하지 않으면 고발할 것이다.”
오상흔 이랜드리테일(홈에버) 대표이사, 최종양 뉴코아 대표이사가 국회에서 진땀 빼고 있을 때 김민자(33) 씨는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국회 밖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김씨는 “아이를 낳을 때까지 이번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 주변에서 말려도 집에서 쉬고 있으면 답답해 현장에 나온다”고 했다.
이랜드그룹 사태의 겉으로 드러난 주인공은 김씨 같은 ‘평범한 여성’이다. 하지만 비정규직보호법 시행 후 첫 분규는 비정규직보호법을 둘러싼 ‘힘 겨루기’로 비화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학생 등 비(非)이랜드그룹 노조원이 ‘불법 점거농성’ 등에 뛰어든 것. ‘아줌마 조합원’들의 생존권 투쟁이 민주노총의 ‘비정규직 투쟁’에 이용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랜드그룹 사측은 “노조가 교섭에 나서려 해도 민주노총이 이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상수 노동부 장관도 “제삼자인 민주노총이 사태 해결을 어렵게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장관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가계에 보탬이 되려 일터에 나온 아주머니들이 영업장을 무단 점거해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랜드 파업사태는 개별기업의 노사문제로 다뤄졌다면 이렇게 오래 끌 일도 아니었다”(박종남 대한상의 조사2본부장)는 주장도 나온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법안 상정 후 2년여의 논의 끝에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노동계와 경영계 모두 이 법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노동계의 반발이 경영계보다 좀더 강한데, 기업의 집단해고와 외주화로 고용안정이 오히려 약화된다는 것이다. 반면 경영계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노동의 유연성을 떨어뜨려 거꾸로 실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랜드 사태 장기화 민노총·노동부는 책임 없나
즉각적인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정규직 근로자가 ‘특정 이유’로 일을 못할 때만 계약직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경제계는 “비정규직의 고용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려야 한다”고 밝힌다. 경영계는 일단 비정규직법을 안착시킨 뒤 미비점을 보완하자는 주장이다(한국노총, 노동부의 견해는 경영계와 비슷하다).
홈에버, 뉴코아 노조의 ‘아줌마 조합원’들은 이튿날 오후 종로에 다시 모였다. 노사 협상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조합원들은 종각에서 세종로 네거리까지 3보1배를 했다.
홈에버 상암점에서 수납원으로 일하던 J씨(52)는 “7시간 넘게 계산대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않고 일하고, 과잉친절이라 할 만큼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려 했다”며 “점거농성을 하면서 썩은 계란이나 물대포를 맞을 때 내가 몸바쳐 일한 회사가 이런 수준이었음을 생각하고 쓸쓸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을 “웬수 보듯” “때려잡듯” 한 회사에 원망이 크다. 일터로 복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9월에는 회사로부터 사정이 어렵거나 비교적 온건한 일부 조합원에게 “추석 전까지 복귀하면 조건 없이 받아주겠다”는 연락도 왔다고 한다. 생계 또는 다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복귀해야 하는 이들의 사정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조합원들은 이런 말을 했다.
“그렇게 하나 들어가면 하루가 늦춰지는 것 같고, 둘이 들어가면 이틀 늦춰질 수 있으니까 한편으론 섭섭하기도 하지만 들어간 사람들도 마음이 편하지는 않겠죠. 들어갔다가도 얼마 안 돼 그만두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것은 점거농성을 가서 같은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들과 싸워야 할 때예요. 회사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싸움 붙이는 격이죠.”
“결혼한 아줌마가 할 수 있는 건 보험영업, 식당 서빙, 유통업이 전부예요. 여길 그만두고 다른 데로 가도 비정규직으로 잘릴 상황이 되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이런 나쁜 기업은 망해야 앞으로 우리 같은 피해자가 안 생기죠.”
세계은행은 최근 발표한 ‘2008 기업환경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용환경을 세계 131위로 평가했다. 전투적 노동운동은 외국자본의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다. 기업들은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비정규직을 통해 풀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 노조의 기득권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으며, 합리적인 노동운동과는 거리가 먼 노조의 ‘떼법’으로 사회가 지불하는 코스트도 결코 작지 않다.
그러나 이랜드그룹은 국정감사에서 “악덕 기업주”(우원식 의원)라는 소리까지 들을 만큼 부도덕한 면이 많았다. ‘이랜드 신화’의 축이던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회사’ ‘선교와 구제를 펼치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는 물거품이 됐으며 ‘돈보다 일, 일보다 사람’이라던 기업정신도 머쓱해졌다. 이랜드그룹의 사례에서만큼은 ‘위선(僞善)’이 ‘떼법’보다 훨씬 커 보인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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