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07-11-07 03:04:00]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와 이회창 전 총재가 삼성 비자금 로비 의혹을 두고 고민스러운 표정이다. ‘경제 대통령론’으로 대선을 주도해온 이후보로선 그의 ‘재벌 철학’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총재는 지난 두번의 대선도전 과정에서 삼성 비자금 문제에 연루된 악연(惡緣)이 원인이다. ‘원칙’이냐 ‘실리’냐의 갈림길에서 원치 않는 선택에 직면한 셈이다.
이후보측은 지난달 29일 삼성의 비자금 로비 의혹이 불거진 후 10여일 가까이 침묵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지난 5일 “검찰은 이런 (의혹) 제기가 상당히 신빙성 있다고 판단되면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증폭시키지 말고 즉각 수사에 착수해야 할 것”(나경원 대변인)이란 원론적 입장을 내놓은 것이 유일하다.
이같은 상황은 그간 이후보가 ‘기업 살리기’를 최우선으로 강조해온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 의혹에 대한 철저한 규명 요구는 자칫 2002년 ‘반미(反美)’ 논란처럼 원칙을 접고 시류에 휩쓸린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검 도입에 대해 “아직은 부정적이다. 일단 검찰 수사를 지켜보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인 것도 그런 이유다.
문제는 삼성의 비자금 로비 의혹이 자칫 ‘재벌 대 반재벌’의 이슈로 번지면서, 대선정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이력과 금산분리 완화 등 대기업 친화적 정책공약으로 “지나치게 친대기업적”이란 지적을 받은 상황을 감안하면, 그의 재벌정책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박형준 대변인은 “우리 국민들이 대기업의 남은 비리 문제와 시장에서 기업의 중요성을 혼동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후보로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핵심 당직자는 “검찰이나 특검의 비자금 수사는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김용철 변호사가 주장한 시점이 대선자금과도 관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선자금 문제로 번질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전총재에 비해 이후보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전총재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1997년 대선에서 ‘X파일’ 문제, 2002년 대선에선 무기명 채권 등 삼성으로부터 계속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이력 때문이다. 당장의 소나기는 그의 출마 여부에 관심의 초점이 맞춰지면서 피해가고 있다. 이흥주 전 특보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현재로서는 그런(삼성 비자금이나 차떼기) 거는 생각하고 있는 게 없다”고 짧게 말했다.
문제는 본격적인 대선행보에 나선 이후다. 결국 이전총재의 삼성 대선자금 수수 문제는 불거질 수밖에 없고, 이번 삼성의 비자금 로비 의혹 파문과 맞물려 이전총재의 도덕성 문제는 증폭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후보측이 이전총재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대선자금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