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편집기술.

 

"촬영,편집=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박영대 기자"  라나 뭐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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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6-16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에가서 봐야징... 쩝... 안봐도 뻔한 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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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6-14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제 해결을 기상청에.."
"왜 하나님과 소통을.."
ㅎㅎㅎㅎㅎㅎ

차좋아 2008-06-1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전 재미있게 토론 봤습니다.
보수와 진보측패널로 나뉘는거 맞죠? 둘다 진보 같아서...ㅋㅋ
둘 다 맞는 소리 하는거 같은데~
감각적이고도 뾰족한 비유로 상대 패널을 궁지로 모는 진중권교수는 본인에 대한 비아냥에는 상당히 민감하고 억울해 하네요..진중권 싫어해야지.
보수 논객들 중 최고네요. 할아버지 최고

라주미힌 2008-06-16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 표정 원래 저래요 :-) ㅎㅎㅎ
논리 전개방식은 그다지 새로울게 없던데.. 저 할아버지.
논리 보다는 상식이 중요하다가 생각해용.
 



자궁수술중 촬영… 난포의 빨간 돌출체 통해 빠져나와

사람의 난소에서 난자가 탄생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고 영국 BBC 인터넷판이 11일 보도했다. 그동안 동물의 배란 과정이 관찰된 일은 있지만 인간 난자의 탄생을 선명하게 촬영한 것은 처음이다.

난자의 탄생 과정은 벨기에 브뤼셀의 루뱅 가톨릭 대학병원에서 40대 한 여성의 자궁절제수술 도중 우연히 포착됐다. 수술 도중 ‘마침표(full-stop)’만 한 크기의 난자가 난소 표면의 난포를 뚫고 빠져나오고 있었던 것.

수술 집도의인 자크 도네 박사는 “난자는 지금까지 몇몇 이론들처럼 한순간에 ‘폭발하듯(explosive)’ 나오는 것이 아니고 난포에서 완전히 나오기까지 15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난자가 난포에서 나오기 직전 난포 조직이 분해되면서 빨간 돌출체가 형성되었으며 이를 통해 난자가 빠져나왔다고 설명했다.

영국 의학연구위원회의 앨런 맥네일리 교수는 “우리가 실제로 인간의 배란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며 “생명의 시작 단계를 보는 놀라운 순간”이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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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8-06-13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기하다. 제 난자도 좀 나왔음 좋겠는데, 요놈들은 게을러서.

라주미힌 2008-06-13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 낳는거 같아요..
 

명박산성(明博山城)



광종(狂宗) (연호:조지) 부시 8년(戊子年)에 조선국 서공(鼠公) 이명박이 쌓은 성으로 한양성의 내성(內城)이다.
성(城)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당시 육조거리에 막아놓은 기대마벽(機隊馬壁)이 백성들에 의해 치워지매,
그에 대신하여 더 견고한 철궤로 쌓아올린 책(柵)에 불과하다.

이는 당시 서공(鼠公)의 사대주의 정책과 삼사(三司: 조선, 중앙, 동아) 언관들의
부패를 책하는 촛불 민심이 서공의 궁(宮)으로 향하는 것을 두려워 만든 것이다.

무자년(戊子年) 유월(六月) 패주(敗主) 두환을 몰아낸 일을 기념하여
백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자 한성부 포도대장 어(魚) 아무개의 지시로,
하루 밤낮만에 쌓아올려져서 길 가던 도성의 백성들이 실로 괴이하게 여겼다.

한편으로는 그 풍경을 관람코저 모여든 백성이 그 머릿수를 헤아리매
팔만(포도청 추산)이 넘어, 도성 내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될 날이 머지 않았다고도 전한다.

[출처: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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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온트로츠키, 2008-06-12 02:56:47 (코멘트: 23개, 조회수: 313번)
 



#1.

 혹자는 이야기한다. "지도부가 없고, 단일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도 새로운가~" 식의 포스트모던 찬양하는 듯한 발언들. 너무나 낭만적이기 이를 때 없는 "직접 민주주의"적 실험? "제 2의 민주화" 등등. 그리고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건 운동권 집회가 아니다.> <좌파, 우파 문제가 어디 있느냐. 이건 우리 모두의 문제.>식의 발언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어딜 가든, 좌파와 우파는 존재한다. 모든 가치와 삶에 있어서, 돈에 얼마나 비중을 두느냐가 좌파와 우파의 기준을 결정한다. 좌파와 우파를 딱딱 나누고 구분짓고 하는 것은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이번 촛불시위의 이슈인 쇠고기 재협상,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에게 확산되는 "공기업 민영화 반대", "한반도 대운하 반대", "건보 민영화 반대", "미친 교육 반대" 등은 분명히 좌파적인 이슈이다.

 

 <좌파의 이슈>라는 것이 아니다. <좌파적>인 이슈라는 거다. 좌파를 표방하는 정당이 내건 의제나 정책이 아니라, 좌파를 표방하는 정당이 흡수할 수 있거나 내걸 수 있는 의제나 정책이란 뜻이다.

 

 한반도 대운하를 반대한다는 것은, 한반도 대운하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건설경기의 일시적 호황과 부동산 값의 폭등, 그리고 관광 수입 증가보다 내가 살고 있는 땅의 생태를 지키고 싶다, 내가 사는 땅의 역사, 즉 문화재를 수몰시킬 수는 없다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 아닌가. 결국 근본적으로는 돈보다는 생태와 문화를 중시한다는 말이다.

 

 공기업 민영화를 반대하는 것은 일부 사기업들이 일부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공급하는 "질 좋은 서비스"를 거부한다는 이야기다. 즉, 질 좋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돈을 더 버는 것을 원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나보다 더 돈이 없는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인간의 생활"이 가능한 서비스를 받게 해야 한다는 생각.

 

 영어몰입교육과 학교자율화, 사교육 확대 정책에 반대하는 소위 "미친 교육 반대"는, 한국사회에서 가장 유력한 상징자본이 되어버린 "학벌" - 이것은 흔히 미래의 고소득을 보장한다. - 만을 원하는 학벌지상주의를 반대하고, 10대들에게 보다 자유로운, "공부 이외의 자율"을 주기 위한 것이다.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와 쇠고기 재협상 요구도 마찬가지다. 둘 모두, 돈보다 국민의 건강, 생명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건강보험 민영화를 통해서 의료"산업"을 키우고, 돈 있는 병원에서 더 질 좋은 장비와 서비스, 더 많은 혜택의 민영 의료보험으로 (물론 고액으로) 변환시켜 의료를 제공한다는 것인데, 결국 민영 의료보험이 서서히 증가하고, 여기에 부자들이 가입하고 건강보험은 탈퇴하면서 건강보험은 재정이 악화되고 결국 건강보험은 폐지되고...그리고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거나, 기존보다 훨씬 비싸진 진료비를 바라봐야 하는 대다수 서민들에게, "돈 없어도 건강할 권리가 있다."라는 생각을 외치는 것, 이것은 결코 "국민으로서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명백히 <선택>할 수 있는 의제다.

 

 광우병 걸릴 확률, 한 명의 개인으로 따지면 얼마 안된다. 수백만 분의 1이다. 혹자는 로또에 당첨되서 당첨금을 은행에서 수령해 가는데 벼락맞을 확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5천만명이다.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이 재협상되지 않는 한, 우리는 항구적으로 영원히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 수 천만 분의 1(좋다, 로또 당첨이 수백만 분의 1이니, 벼락맞을 확률까지 더 하자.) 곱하기 5천만 곱하기 (365일 중 1달에 1번은 쇠고기를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화장품, 알약, 과자 등에 들어가는 소 추출 재료는 편의상 제외한다.) 12를 해보면, 1년에 수십명은 광우병인지 치매인지 모를(구분이 어려우므로) 병으로 죽는다는 말이다. 이번 쇠고기 협상은, 이런 위험도 FTA를 위해 도움이 되고, 그 FTA로 대기업이 이익을 얻으면 그건 몇 명 죽어도 그 것을 상쇄할만큼 좋은 일이라는 가치관의 발로였을 뿐이다. 지극히 우파적인 사고방식이었고, 이것에 대응하는 것은 분명히 <좌파적> 의제이다.

 

 이 모든 것들을 진행하는 이명박 정부에 반대하는 국민들의 가장 큰 짜증, 거리로 나오게 하는 원동력은, "이게 아닌데...왜!"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게 아닌데, 왜 하는가. 즉, 사람들 다수가 동의하지 못하는 데 왜 지들 멋대로 하느냐 말이다. 이명박 정부는 소득적 성취를 통하여 이런 협상에 <사후적 정당성>을 얻으려 했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역사는 나를 알아줄 것이다."라는 자뻑 논리. 박정희, 노무현 등이 주로 생각했던 바로 그 사고방식. "돈이면 인정받을 것이다."라는 생각에 뒷통수를 쳐 버린 소통에의 요구. 이것은 바로 민주주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다. 돈보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건데, 이건 결국 "돈보다 중요한 다른 가치들이 존재한다."라는 생각에서 이번 시위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한다.

 

#2.

 그럼에도 사람들은, "난 좌파나 우파가 아니야, 나는 <순수한> 시민이야."라고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들이 거리에 나오면서, 그리고 아프리카 중계를 보면서, 인터넷 댓글을 달면서 지지하게 되는 그 의제들은 결국은 좌파적인 의제이다. 진보신당이나 민노당이 아닌 어떤 정당이 미국과의 재협상과 더불어, 공기업 민영화, 건보 민영화에 반대하고, FTA에 반대할 것인가? FTA때문에 앞장서서 쇠고기 수입 재개를 결정했던 참여정부 시절의 여당인 민주당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가? 건강보험 민영화 점진적 추진하자고 맨 처음 주장한 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님이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건 몰라야 하며, 한없이 <순수>하고 싶어한다.

 

 물론 그들은 "우리들 순수한 시민들의 성과"를 어떤 특정 정치세력이 성과를 가져가길 원치 않는다. 그러나 묻고 싶다. 정치는 누가 하나? 정책 집행은 누가 하나? 국민이 하는가, 정당이 하는가. 특정 정당이 흡수 가능한 의제가 있고, 불가능한 의제가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시위의 의제들을 수용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시위는 반 한나라당 성향을 띠고 있다. 이것은 정치적이지 않은가? <반 한나라당> 이외의 어떤 정치적 성향도 형용할 수 없게 만드는 <순수함>은, 결국 "그래도 제일 힘 있는 야당"을 밀어주게 마련이다. 그것은 옳지 않다? 정당 따위 듣보잡이다, 오로지 국민이 위대하다? 라는 식의 자뻑 문구는 그 비현실성에 짜증만 늘어날 뿐이다. "내가 집회 한번 안 나와봤는데 이번엔 순수한 열정에서 나왔다."라는 사람들의 다수가 이런 식의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시위가 아닌 보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은 정당체제, 정치과정에서 정치적 의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집회 한번 안 나와 본 게 무슨 자랑이나 된다고) 호들갑스레 "집회 한번 안 나와봤는데 순수한 시민으로서 나왔고, 이것은 좌파와 우파가 아니다." 라는 말은 그러므로 거짓이다. 또한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인 해결방식으로 치닫게 되는 사고방식이다. - 그리고 보통 해결되지 않고 흐지부지로 종결되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단순히 순수한 열정으로 즐기기엔, 반 정부 시위는 월드컵 응원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 물론, 이것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팽배해서 그런 것이고,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또한, 소위 조중동의 "좌빨", "배후설" 등에 대응하기 위한 논리인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스스로 행하고 주장하는 사안의 정치성과 그 성격마저 변질시키려 하는 것은 곤란하다. 왜 스스로 조중동의 프레임에 갇히려 드는가.

 

 <순수한 시민>이라는 "하나된 이름", 그것은 또 다른 억압일 수 있다. 더 논의를 확장해 보자.

 

#3.

 우리 모두는, <순수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 "배후"는 없어야 하기 때문에, 그 안에 운동권이나 정치 세력은 있어서는 안된다. 정치세력이 참여는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을 외면한다. 정치인 중 유일하게 그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강기갑은, 민주노동당이라는 자신의 정당체제를 통해 서는 것이 아니라, 강기갑이라는 개인의 인물을 통해 선다. 노회찬, 심상정은 진보신당의 노회찬, 심상정이 아니라, 노회찬, 심상정의 당인 진보신당의 대표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한다. 그 곳에서 정당은 들러리다. 정당이 "지도해야 한다."라는 입장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정당은 그 자신의 특정한 흡수가능한 의제를 어필하면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하지만 공기업 민영화 반대, FTA 반대, 건강보험 민영화 반대, 한반도 대운하 반대 등의 의제는 정당의 의제가 아니라 <순수한 시민의 상식>으로 이야기 한다. 그럼 그것을 주장하지 않는 자는 상식이 없는 무식한 자인가? 이 타이밍에 회색분자들(흔히 볼 수 있는 찌질이)이 들고 일어난다. 이를 테면, "촛불 집회는 마녀사냥이다. 또 다른 광기다. 누구나 자신의 관점이 있고, 누구나 자신이 100퍼센트 옳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런데 조중동 폐간해야 하고, 저런 정치적 주장에 정부가 무작정 따르기만을 협박하다니~ MBC와 경향 한겨레가 국민의 편이라고? 황우석 사건 때는 졸라 욕했자너~~소위 특정 세력(진보나 보수)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국민만 변한다. 국민들은 변하지 않는 그들에게 끌려다닐 뿐이다."라는 식으로 말이다. 어처구니 없지만 말이다.

 

 "국민", 혹은 "시민"은 결코 동질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가 있고, 때로는 사안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부동층이 존재한다.(이를 테면, 아직도 진보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라는 선택지에 응답한 사람들이 다시 경제를 살릴 것 같아서 이명박을 지지한다라고 응답한 모 설문조사 라든가.) 성향과 성격, 재산, 지지정당이 모두 다르다. 그런데 그들을 왜 하나로 묶으려 하는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순수한 시민"이라서 하나로 묶을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모든 집회나 시위, 투표 등의 일련의 정치적 행위들은 평소 가치관의 발현이다. 돈을 중시하느냐, 그보다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느냐에 대한. 순수함이란, 모두 존재하거나 아예 없는 것이다. 가치관 없이 사는 정상인은 없으니까. 목적이 같아도 여러 단체가 뭉치듯, 목적이 같아도 <다른> 여러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것이다.

 

 #4.

 문제는 지금부터다. 즉 그 예의 <집회에 한번도 안 나와 본 사람들>이 다수인 것 같은데, 그들은 <순수한 열정에서 나온 시민들>이라서 "우리는 기존의 운동권들의 폭력 시위와는 다른 평화 시위를 할꺼에요" 라며 비폭력을 외친다. (운동권이 폭력시위를 하는지 안 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그들의 비폭력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 여기에서부터 우리는 합의점이 없었고, 아직도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의 폭력, 정당한 집회와 시위를 막는 억압에 대한 저항도 폭력인가? 만약 저항이 비폭력이라면, 비폭력은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모두 생각이 다르다.

 

 그런데 어제, 이에 대해서 짜증나는 그놈의 "스티로폼 사건"이 터졌다. 스티로폼 쌓는 것을 아예 방해하며 "비폭력, 비폭력"거리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고, 인권단체 연합인가 뭔가 하는 곳에서 갑자기 스티로폼 연단을 가로채더니 더 이상 쌓게 하지 말자, 우리는 이것을 상징적 연단으로 하자 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를 포함한) 스티로폼 쌓았던 사람들과, 기타 컨테이너를 넘어가거나(설마..있었으려나? 뒤에 다 전경버스고, 컨테이너는 2층인데-_-;) 거기에 올라가서 어떤 상징적인 저항 시도를 하려던 사람들은 그 인권단체 연합의 "빨간 조끼녀"에게 끊임없이 <내려와 내려와>, <올라가자>, <더 쌓아라> 등등을 외쳤다. (딴 걸 다 떠나서 이 인권단체 연합이라는 사람들, 참 웃긴 사람들이다. 누구 멋대로 그들이 대중을 견인하고, 선동하려 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연단을 차지할 권리를 줬나? 스티로폼은 그들 것도 아니었다.-_-) 그리고 다시 한 편에서는 <비폭력 비폭력>을 신경질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우리와 그들 사이의 일부 흥분한 시민들간의 말다툼도 잦게 되었다. 그리고 스티로폼 더 쌓는 것을 방해하는 사람들, 스티로폼 연단에 올라가려는 것을 끌어내리는 예비군(예비군이 전경이냐?)도 있었다. 짜증나서 4시 반쯤에 집에 가려다가, 갑자기 깃발들이 올라가는 걸 보고, '그래~ 컨테이너에 올라가서 그런 걸 해줬어야지~ 아 젠장 이런 거 막으려고 3시간 동안 그렇게 싸워댔냐;' 생각하고 8시까지 남아 있었다.

 

 가장 짜증나고 화가 나고 어이없었던 것은, 올라가자고 외쳤던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에게, 그 사람들은 "프락치는 집에가라" 등의 구호와, "흥분하신듯 한데 잠시 가라 앉히시고~"식의 발언들을 퍼부었다.

 

 이 시위는 축제와 같이 제각각의 사람들끼리 모여서 옹기종기 노는 식이었다. 이런 방식이 탐탁치 않은 사람들이 있고, "우왕~ㅋ 굳ㅋ" 이런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도부가 없고, 누가 누구의 지도에 따를 권리도 없다면, 모두가 나름의 저항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저항방식에 대해서 존중해야할 의무가 모두에게 있다. 물론, "여론이 악화될 수 있다."라는 전술적인 측면에서의 전면적인 <폭력 투쟁>은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비폭력이고, 어디서부터가 정당방위, 저항이며, 어디서부터가 폭력인가? 여기에 대한 어떤 합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끊임없이 <비폭력 비폭력>, <내려와라 내려와라>, <앉아라 앉아라> 등만 외쳤다. 안전사고 등의 위험? 그거 7시 넘어서 여경이 한 말이다. 안전, 위험 걱정하면 아예 안 나오면 그만이다. 왜, 각자의 저항방식이 있는데 (쇠파이프를 들었나 뭘 들었나? 컨테이너 올라 가는게 폭력?) 이것을 비폭력이라는 이름하에 가로막는가? 이것이야말로 나, 그리고 우리들에게 가해진 폭력이다. 시민의 시민에 대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이건 비폭력이 아니라 빅(Big)폭력이다.

 

사실 단순히 가로막는 게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과 다른 이들에 대해서 존중할 줄 모른다는 것에 있다. 비폭력의 정의가 다르고, 어디까지 저항해야 할지에 대해서 각자의 생각이 있다. 그런데 자신과 생각이 다르고, 다른 행동을 하면, <프락치다!> <일부 강경파>, <흥분하신 분>으로 말하는가? 그들은 우리가 <순수한> 하나된 국민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가 하나되는 월드컵 응원이 정!말!정!말! 아니며, 하나의 정치적 목표(재협상) 속에 각각의 몇 가지 정치적 목적들(이것은 단순히 정치조직의 목적이 아니라, 일반 국민이 이 시위가 종결되는 시점에서 궁극적으로 바라는 선을 뜻한다.)이 혼재되어 있고, 여기서부터는 전혀 통일될 수 없다. 목적부터 표현방식까지 다들 조금씩 다르다.

 

 어쩌면 비폭력이라는 그 참으로 순수하신 구호가, 전경들이 들이닥칠 때는 예비군들이 스크럼짜주고, 자기네들은 앉아 있거나 뒤에 있거나 인도로 가는 사람들에게 아주 훌륭한 도피처적 주장이 될 수도 있다. (왜, 여자들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시위에 나온 모든 사람들은 보호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저항하러 온 것이다. 예비군은 그저 묵묵히 스크럼을 짜거나, 남을 도와주면 될 일이다. - 물론 이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나 - 어느 누군가를 "인도"하거나, "보호"할 것이 못된다.) 그렇지만 프락치가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이 정권에 보다 강하게 저항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있는 법이다.(그것도 꽤 많이) 그들을 <자제>시킨다? 그것은 그들을 <방해>하는 폭력일 뿐이다. 무작정 비폭력, 비폭력 외치기 전에, 비폭력의 선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며, 자신과 다른 주장을 한다고 하여 툭하면 프락치로 몰고 가는 그 못된 습관은 버려질 필요가 있다. (연단을 더 쌓자는 사람이 더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참 힘드네요 어쩌구 하면서 물타기 하는 빨간 조끼녀의 모습, 완전히 이명박이더라. 허허. 결국 더 쌓아 올리기로 했고, 그런 시도가 있었지만, 또 해체하라느니, 내려오라느니 하는 그 다툼은 정말 눈살이 찌뿌려졌다.) 우린 어쨌건, 시위 와서 놀고 술마시고 잡담하려고만 온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김유평
컨테이너에 깃발 좀 올리자는 게 폭력하고는 관계 없죠. 청와대를 향해 행진 좀 하자는 게 폭력이 아니듯이. 폭력에 대한 '집단적 호들갑'의 수준이라고 봐요 요즘 상황은. 조 앞에 엄기호님 글 처럼, 비폭력이되, 완강해야합니다. 그 완강함을 표현할 어떤 행동방식이 이제는 필요합니다. 주최측 발표 70만의 군중이 모엿는데도, 오늘 아침 10시 최종 해산할 때까지도, 경찰은 아주 여유있고 널럴하게 행동하더군요. 그냥 김 빼기 작전입니다. 겁을 안먹는 거죠. 또 저 앞에 신장식님 글처럼...완강하고, 집요하고, 심히 게릴라스러운, 그런 저항의 행동방식을 가지고 솔선수범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류
그런데 어제의 상황에서 제가 보기엔, 자기검열도 있었겟지만 사고에 대한 불안심리도 강했다고 봐요. 누군가 떨어져 다치면 어쩌나, 불이나도 붙으면 어쩌나 등등...넘기도 전에 우리들끼리 우왕좌왕 사고가 나는 최악의 상황.
자기검열과 안전의식 두가지가 뭉쳐진 거죠. 그래서 개념없이 비폭력만 외치며 가로막은 자들이 힘을 받은거고..


부정변증법
수십만명이 모일거면, 한 10만명만 광화문에 모여있고(그럼 전경 몇만명이 거기 있어야 함. 즉 다른 곳에는 전경 없음), 나머지 10만명은 1000명 단위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 포위하자는 안도 있더군요. 비폭력이지만 아주 무섭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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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8-06-12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깝깝하드만.. 뭐만 하면.. 비폭력 비폭력 째지는 목소리로 막으면서 그렇다고 하는건 하나도 없이. 구석에서 수다만 떨다 집에가니깐.. 이명박은 각오만 새로 다지는 것이 아닌가
ㅡ..ㅡ;
쪽수의 의미도 크지만, 그 놈의 정치적 영향력도 확실하게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런지..
시간만 질질 끌다보면 언젠가는 피곤해질테고.. 이러다가 '쬐그만 당근' 하나 던져주면 '큰 만족'하고 만세를 부르며 해산할까 우려스럽군.

드팀전 2008-06-12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읽지는 않았지만 ...제가 애초부터 제기했던 문제의식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다중의 발견'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왜 '당'이나 '정치'가 역사적으로 나오고 또 실패하고 다시 재발견되는지 짚어볼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이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그람시를 떠올렸던 것도 그 때문이구요..

차좋아 2008-06-14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0만의 촛불, 100만의 목소리가 하나의 창구로 집중되면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겠죠.
자연발생적 시위라며 시민의식의 성숙이라 자부하는 많은 사람들을 좀 더 진취적인 방향의 행동으로 진행되길 바라겠진만 안타깝게도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쬐끄만 당근하나에 해산되더라도 얻은건 당근뿐이 아니니까 만족해도 될 것 같아요.
여세를 몰아 청와대로는 진보진영의 데미지만 남길뿐입니다.
고의든, 미필적 고의든 운동권이 이번 시위를 이끌었고(어느시점부터) 자발적 시민 참여를 이끌어 낸 성과에 만족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세餘勢는 여세일 뿐 대세가 아닙니다.

놀러나온 시민들에게 붙잡힌 또다른 시민들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자승자박 같기도 하고.. 더 큰 자중지란으로 번지지 않았지만 그게 우려되는게 현실이구요.

눈 앞의 이익에서 시작한 이번 집회는 또다시 눈 앞의 이익에 사그라들 것입니다.
촛불시위 대다수의 시민들은 사는게 힘들어요.
그래도 이번에 많이 왔잖아요^^